새빨간 피가 줄줄 흐르는 얼굴로 그는 나를 바라봤다.
우선 깜짝 놀랐다. 건널목에서 갑자기 피를 뒤집어쓴 사람과 10인치도 안되는 거리에서 마주쳤는데 놀라지 않을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동시에 머릿속으로 정말 수많은 생각들이 지나갔다.
사실 붉은 잉크가 아닐까. 물론 레이가 장난을 치기 위해 붉은 잉크를 얼굴까지 구석구석 칠한 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추측 또한 그럴싸 했지만, 코 끝에서 느껴치는 철 냄새 같은 비릿한 향기는 확실히 피였다.
그래 피. 생물의 몸에 흐르고 있는 붉은 액체.
일반적으로 피를 보기 위해서는 동물이든 인간이든 상처가 나야 된다.
그리고 온 몸이 얼어붙었다. 머리 털이 삐죽삐죽 해지는 느낌 이였고, 시간이 멈췄다.
조용히 서로 쳐다보았다.
그리고 레이가 입을 벌렸다.
당황할 틈도 없이 바로 도끼를 들어 내리 찍었다.
그러나 도끼가 너무 느린 건지 레이는 바로 뒤로 물러서서 공격을 회피했다.
"뭐 하는 거야!"
"씨바아아알! 레이가 물렸어!"
...
재차 도끼를 휘두르려는 제이크를 보며 당황함과 동시에 그가 왜 이러는지 깨달았다.
지금 나는 온 몸이 피로 범벅이 되어 있지. 아마도 내가 물렸다고 착각을 하는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나 같아도 피 철갑이 된 사람이 바로 앞에 나타나면 놀랄 거다.
"멈춰 멈춰! 나 감염 안 됐어 병신아!"
"젠장! 레이가 말까지 하잖아! 변종이야!"
"나니까 말하지 등신 새끼야! 당장 도끼 치우지 못해!"
"레이?"
"그래 나야. 멍청아."
멀뚱멀뚱 눈을 끔뻑이던 제이크는 이내 도끼를 손에서 떨어뜨렸다.
"오 젠장. 레이. 너가 죽은 줄 알았어."
"나도 내가 죽을 줄 알았어. 너한테."
"미안, 진짜 미안..."
제이크가 마른 세수를 하는 것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소방 도끼를 챙겨온 걸 보니까 일이 잘 풀린 것 같네."
"당연하지. 그런데 그것보다 대체 왜 온 몸에 피를 바르고 있는 거야? 아니 그거 피야? 페인트같은 거지? 붉은 잉크?"
"피야."
"....오 젠장. 이럴 때 장난 치지마. 그 혈 향은 진짜같아서 속을 뻔..."
"진짜 피야. 머저리야. 누가 이딴 걸로 장난을 치겠어. 그것보다 나 씻는 것 좀 도와줘."
"진짜 피라고? 어디 다친거야? 오 세상에. 어디 봐봐."
"내 피 아니야. 나도 지금 역겨우니까 제발 그 피 소리 좀 그만해. 빨리 화장실로 가자."
"주방에 싱크대 있지 않아?"
"바로 옆에 제임스가 누워있어서 안돼."
"뭐...?"
"일단 씻고 나서 자세히 말해줄게. 나 지금 진짜 찝찝해. 빨리."
"아 알았어. 일단 가자."
화장실은 가까이 있기 때문에 금방 도착해 대충 온 몸에 물을 뿌리며 피를 씻어냈다.
온 몸에 피가 묻어있었지만, 여분의 옷이 없기 때문에 찝찝하지만 옷을 입은 채 씻었다.
샤워 실을 갔으면 좋았겠지만, 방공호 내부엔 그런 좋은 시설까지 있기를 바라는 건 사치였다.
제임스가 어디선가 꺼내온 스펀지로 내 옷을 박박 문질렀다.
"제임스가 이미 감염이 되었다니..."
"그런데 이상해. 정신 차리고서 그의 몸을 확인해봤는데, 물리거나 공격을 당한 흔적이 없어."
"뭐? 공기 감염이야?"
"그건 나도 몰라. 제발 공기 감염은 아니길 바래야지."
그린 플루의 전염 속도는 경이로웠다.
그도 그럴 것이 실제로 바이러스 감염자들이 진짜로 달려와서 물어 뜯어 바이러스를 전파했으니까.
식품 창고에 발을 옮기자 마자 나를 향해 뛰어온 것은 감염된 제임스였다.
아마도 변종.
감염자들은 가만히 있을 때도 끊임없이 가래가 끓는 듯한 소리나 앓는 신음 소리를 내는데 감염된 제임스는 특이하게도 내가 창고에 갈 때까지 아무 소리도 없이 침묵하고 있었다.
또한 나를 보자마자 시끄러은 괴함과 함께 엄청난 점프력으로 나를 향해 뛰어 들었고, 거기에 나는 전혀 반응할 수 없었다.
나는 나를 향해 달려든 감염자에게 강하게 밀쳐져 바닥과 머리를 부딪혀 잠시 기절을 했고, 정신을 차렸을 때는 머리가 기묘한 형태로 꺾인 감염자가 나를 덮고 있었다.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상황은 끝나 있었고, 정황을 보아하니 좁고 낮은 창고 문 천장에 엄청난 힘으로 점프를 하니 거기에 머리가 부딪혀 즉사한 듯 했다.
만약 방공호의 천장 높이가 높았다면 나는 바로 사망했으리라.
이야기만 들으면 웃기고 어이없는 일이지만, 나로써는 정말 구사일생이고 천만 다행인 상황 이였다.
그대로 기절한 사이 감염자의 저녁 식사가 되어 버릴 뻔한 일 이였다.
"물리지 않아도 감염될 수 있다면, 너도 위험한 거 아니야? 이렇게 감염자의 피를 뒤집어 썼는데?"
말을 하면서도 제이크는 스펀지로 내 등을 문질렀다.
"아마도 괜찮아. 감염이 됐다면 내가 기절한 사이 전염되어 변했겠지. 그것보다 빠르게 움직이자. 위스퍼와 스티브를 데리러 가야해."
"그렇지. 너무 당황스러워서 잊고 있었네. 거의 다 닦았어. 기다려봐."
제이크는 마지막으로 스펀지에 비누를 문질러 거품을 냈다.
그런데 저 비누는 몸을 씻는 용도가 아닌 것 같은데? 대체 어디서 가져온 거야.
"됐어. 끝."
제이크가 마지막으로 거품을 물로 씻어냈다.
"좋아. 가자."
"잠깐 기다려봐."
그 말을 하고 제이크는 다시 어디선가 휴지를 한 가득 꺼내왔다.
"물 닦자."
"고마워. 대충 빠르게 해줘."
그리고 제이크는 나를 기어이 미라로 만들었다.
"하하하. 그 모습 웃겨."
"그렇겠지."
전신에 휴지를 둘둘 말은 것이 아니라, 휴지를 물에 불려서 덕지 덕지 붙혀둔 모습이다.
"흐음...이거 괜찮을지도?"
"응? 뭐가?"
"아니야. 그냥 괜찮은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일단 가자. 급해."
팔에 둘둘 말린 휴지를 보니 괜찮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뉴스에서 본 거지만, 두꺼운 옷을 손에 둘둘 말면 개가 물어도 괜찮으니 비상시에 옷을 벗어서 대응하라는 간단한 뉴스였다.
사람의 치악력이 어느 정도 되는지는 모르지만, 개보다 강할 리는 없겠지.
영화에서 손에 천을 가득 덧댄 사람의 손에 매가 내려 앉는 장면도 있다.
매의 발톱은 날카로워서 잘못하면 팔이 잘린다고 하던가.
물론 그거 하나 믿고 멍청하게 감염자에게 다가가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단지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할 뿐.
우선은 다시 배식실로 가기로 했다.
내가 놓고 온 식칼들도 그렇고, 식량 창고에 통조림들이 쌓여있음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방공호를 빠져나갈 수 있을 지는 모르지만, 빠져나간다면 가장 먼저 직면하는 문제는 감염자지만 그 다음으로 직면하게 될 문제는 바로 식량과 식수다.
우리는 힘이 약하니 많이 챙길 수는 없겠지만, 조금이 나마 챙겨야 한다.
그런 의미로 제이크가 꺼낸 쓰레기 봉투는 상당히 쓸만해 보였다.
물론 부시럭 거리는 소리 때문에 감염자들의 관심이 몰릴 지도 모르지만, 1층 거주구에서 괜찮은 가방을 찾을 수 있을 거다.
물론 우리가 그곳을 무사히 통과해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있지만.
배식실에 도착해서 일은 빠르게 끝났다.
식칼을 챙기고, 바닥에 누운 제임스를 보고 토악질하는 제이크를 걷어차고, 식량 창고에 들어가 오래 보존할 만한 통조림들을 골라 챙겼다.
위스퍼와 스틸버그를 데리고 돌아와서 챙겨가면 좋겠지만, 그럴 여유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언제 감염자가 2층에, 3층에 내려올 지 모른다.
즉 챙길 수 있는 건 챙길 수 있을 때 챙겨둬야 한다.
비닐 봉투를 겹쳐서 통조림을 열심히 담았고, 나보다 힘이 좋은 제이크가 그걸 양손으로 들었다.
제이크가 양손으로 들 수준이면 나와 제이크, 위스퍼, 그리고 스틸버그가 나눠 들고 뛸 수 있으리라는 계산이였다.
"레이? 그냥 내가 해도 괜찮을 것 같은데."
"아니야. 내가 할게. "
크아아악!
우리를 바라보며 열렬히 날뛰는 푸룽푸룽을 향해 높이 나는 도끼를 들었고.
강하게 내리 찍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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