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자! 유럽으로 >
유럽 전쟁은 급박하게 돌아갔다.
콰쾅! 콰쾅쾅쾅!
제국군의 집중포화.
드렉 카락스가 일으킨 병력의 숫자는 약 150만.
포탄과 미사일, 로켓이 언데드 군단을 덮쳤다.
파파파팍! 퍼퍼퍽! 퍽퍽!
강한 폭발에 휘말려 부서지는 몸체.
대부분 마수였다.
약한 인간 언데드가 아닌.
언데드화된 마수는 키메라급.
따라서 아무리 현대 화기라 할지라도 이렇게 맥없이 당하진 않는다.
신성력이 존재한다면 혹시 모를까?
지금까지 교전으로 소멸한 언데드 마수의 숫자만 거의 30만.
처음 150만이었던 병력이 120만으로 줄었다.
드렉 카락스는 날아오는 포탄 하나를 흑마법으로 끌어당겼다.
슈우우우웃!
터지지 않고 힘없이 끌려오는 폭탄.
'흐음, 그럴 줄 알았어.'
포탄 표면에 새겨진 마법진.
'역시 한 수가 있었군.'
인챈트 마법으로 강화한 포탄이었다.
새겨진 문자가 지구 것이 아닌 걸로 보아, 이걸 만든 놈도 영혼 연결자.
그러나 드렉 카락스는 피식 웃었다.
'겨우 이따위를 믿고 있는 건 아니겠지?'
자신이 연결한 다른 세상의 같은 영혼.
그는 네크로맨서의 정점이었다.
마왕을 굴복시키고, 인간으로서 최초로 마계를 정복한 차원의 최강자, 그가 쌓아 올린 시체의 숫자만 해도 수십억이 넘었다.
'볼 건 다 봤으니,'
드렉 카락스는 언데드 흑마법사들을 불러 지시했다.
"전략을 변경한다. 지금부터는 적극적인 공세로 나아갈 것이다."
- 명을 받드옵니다.
"나의 권능을 나눠주겠노라. 너희는 병력 백만을 이끌고 뒤로 후퇴한다. 그리고 제국군의 경계가 허술한 지역으로 가서 마수 밀집지대를 공략하라."
병력을 분산한다.
자신은 소수의 언데드 엘리트 마수들을 이끌고 선봉으로, 4명의 8클래스 언데드 흑마법사들은 뒤로 우회하여 병력을 불리고.
때가 됐다.
신성력이 한 줌도 없는 세상에서 네크로맨서는 무적이다.
게다가 의식의 성공으로 데우스 리치의 경지까지 올랐다.
또한 이 지구상엔 언데드로 만들 수 있는 마수들의 숫자는 셀 수도 없다.
뿐인가?
지금은 자신에게 총구를 겨누는 적군들이지만, 그들은 곧 시체가 되어 충실한 아군으로 변할 것이다.
백만의 언데드 마수 군단이 남하를 시작했다.
드렉 카락스가 부하들에게 나눠준 권능.
죽은 마수의 시체를 언데드로 변화시키는 흑마법.
그 힘으로 마수 밀집지대를 공략하면서 점점 규모를 키워나갈 터.
군단은 살아있는 생명체가 아니다.
따라서 지치지도 않았다.
보급?
그딴 게 필요하나?
대규모 병력이 남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하자, 드렉 카락스는 남은 20만의 정예 언데드 마수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속도에 강점을 가진 중소형 엘리트 언데드 마수들만 곁에 두었다.
"급속 전진."
두두두두두두두!
약한 고리부터 공략한다.
목표는 이곳에서 가장 가까운 유럽 제국군의 자주포 사단.
데우스 리치의 언데드 강령술은 특별하다.
인간이었을 때 가졌던 기억의 일부를 보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무기를 다루는 기술 같은 것.
제국군을 언데드로 흡수할 계획.
그래서 일부러 움직이는 과녁처럼 전술을 운용했다.
날아오는 미사일과 폭탄도 다 맞아줬다.
후방의 제국군 기계화 부대를 깊숙이 끌어들이기 위해서.
퍼퍼펑! 콰콰콰콰쾅!
다시 화력이 집중됐다.
지금부터는 순순히 맞아주지 않을 생각.
여태까지 숨겨왔던 최정예 언데드, 엘리트 마수를 언데드화시켜, 거기에 자신의 흑마기로 강화한 특수 부대.
콰콰쾅! 콰콰콰콰쾅!
융단 폭격이 이어졌지만.
무시무시한 기동력의 언데드 정예 20만이 유럽 제국군의 자주포 사단을 순식간에 쓸어버렸다.
꽈득! 꽈드드득! 꽈드드드드득!
"아아악!"
"사, 살려줘!"
"크으으윽!"
"끅?"
.
.
.
이제 언데드가 된 제국군 병사들.
잠시 후,
자주포는 언데드가 아닌 제국군을 향했다.
※ ※ ※
삼한제국.
파주 영주관 식당에서 조촐한 모임이 열렸다.
초대된 인원은 티제이 길드원 8명, 백서연, 백홍표, 정연희, 서필명 행정관, 정욱철 백두 그룹 회장, 리더스 클럽의 이고르 바라노프.
"연희씨, 진철이는···?"
"아! 황궁 추방령이 철회되었다고 해서 황궁으로 돌아갔습니다. 인사를 하고 가신다고 했지만 회장님 수련이 길어지는 바람에."
"그래요?"
황제가 자식들에게 가한 규제를 풀어준 모양.
언제까지 황자와 황녀들을 밖으로만 내돌릴 순 없으니까.
리더스 클럽 이고르 바라노프도 들은 정보가 있는지 태주에게 슬며시 말했다.
"황후님들과 재상 및 장관들의 설득이 있었나 봅니다. 황태자를 확고하게 정하는 것이 국정 안정에도 도움이 되지 않겠냐고."
하긴, 이 거대한 제국에 후계가 없다는 건 말이 된다.
그나저나 류진철 5황자는,
'먹을 인연이 없었나 보네.'
다 제 운이지.
"우리끼리 시작하죠."
한 명 더 오겠다고는 했는데, 지금까지 안 오는 걸 보니 빼고 해도 될 터.
텅 빈 테이블.
차려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투명한 크리스털 잔 15개뿐.
"흐음, 준비가 덜 됐나?"
백두 그룹 정욱철 회장이 태주에게 물었다.
"다 됐는데요?"
"···명색이 잔치라며, 설마 음식이나 마실 것 없이 앉아서 이야기만 하다가 끝내는 건 아니겠지?"
"하하하, 딱 두 가지만 준비했습니다. 그거면 충분해서요."
태주는 식당 한구석에 있는 커다란 대형 단지와 보자기로 덮은 바구니를 가리키며 말했다.
"무슨···?"
고개를 갸웃하는 정욱철.
간단하게 준비하겠다는 말은 들었지만 이렇게 소박할 수가.
그러나 내색하지 않았다.
음식이 중요한가?
사람이 중요하지.
태주는 술 항아리 입구에 씌워진 종이도 천천히 벗겼다.
그러자 안에서 피어나는 짙은 주향.
"헉!"
"오!"
"이 향기는···,"
"저 항아리 전체가 다?"
이미 마셔본 사람들이 눈을 둥그렇게 떴다.
백홍표, 백서연, 그리고 창훈이와 순철이.
선도(仙桃)도 꺼냈다.
먹기 좋게 잘 잘라서 접시 가득 담아.
떨리는 목소리로 물어오는 백홍표.
"태주 동생, 설마 그때 그···?"
"네, 맞습니다."
"허어,"
백서연이 입맛을 다셨다.
백창훈과 장순철의 엉덩이가 들썩였다.
이들이 왜 이러는지 알 리가 없는 사람들.
"첫 잔은 제가 따라드릴게요."
태주는 기를 끌어올렸다.
우우우웅!
그러자 항아리 속에서 빠져나와 허공을 빙빙 도는 물방울 15개.
손을 한번 떨치니,
휘릭! 휘휘휘휘휙!
방울들이 갈라져 각자의 술잔 속으로 정확하게, 심지어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깔끔하게 들어갔다.
"···."
"오오오!"
"미쳤다!"
"어, 어떻게?"
화경의 고수만이 펼칠 수 있다는 술 따르기.
이 정도 퍼포먼스는 우습지.
"건배는 생략하고, 마음껏 드세요. 그리고 이 복숭아는 2개씩···,"
그때였다.
삐걱, 열리는 식당문.
누가 왔나?
머리를 빼곡 들이미는 한 사람.
"험험,"
원래 참석하기로 했던 궁정 비서관 금수호였다.
"늦으셨네요."
"그, 그게···,"
사실 금수호도 초대할 계획이 없었다.
요즘 이래저래 안팎이 시끄러운데 공무에 바쁜 사람에게 놀러 오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서.
그런데 어제 안부 전화가 왔다.
요즘 뭐 하고 지내냐는 질문에,
'친목 모임이나 하려고요. 지금까지 절 도와준 사람들을 초대해서 간단한 파티나 열려고···,'
- 나는? 난 왜 초대장을 안 보냈어?
'국정에 바쁘신 몸인데, 성가시게 하면 안 되잖아요.'
- 어허! 국정은 폐하께서 알아서 할 일이고, 일단 내 자리 비워둬. 휴가 낼 테니까, 무조건 가겠네.
그래서 늦게나마 온 것이다.
조금 당황스러워 보이긴 했지만.
"아무튼 잘 오셨어요. 빨리 앉으세요."
하지만 금수호는 우물쭈물,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했다.
"왜···?"
"화, 황, 황···,"
"네?"
"···황제 폐하 납시오!"
"뭐요?"
화들짝 놀라는 사람들.
그럴 리가, 황제가 여길 어떻게?
하지만 진짜였다.
평상복을 입고 금수호 비서관의 뒤에서 나타나, 식당 안으로 들어오는 류태현 황제.
"에이, 엎드리지 마, 그냥 목례나 하면 돼. 공식 석상도 아니잖아."
"···."
"필명이 잘 있었나? 황궁 나가더니 얼굴이 좋아졌어."
"폐, 폐하!"
"정회장, 오랜만이오. 건강해 보이니 기분 좋소."
"화, 황공하옵니다."
"자네가 이고르인가? 리더스 클럽의?"
"···망극하옵니다."
황제까지 왔다.
초대할 생각도 안 했다.
아니, 못했다.
아무리 태주라도 삼한의 지배자, 절대권력, 만인지상의 황제를 어떻게 오라 가라 할 수 있나?
예상치 못했던 상황에, 금수호에게 귓속말로 타박하는 태주.
'몰래카메랍니까? 폐하가 오신다면 미리 이야기하셨어야죠.'
'끄응, 우리가 전화하는 걸 엿들은 모양이야. 원체 귀가 밝잖아. 오늘 아침에 집 앞에서 기다리고 계셔서.'
'이유가 뭐가 됐던 이 분위기 어쩌시려고? 우리 마음 편하게 놀 수나 있겠습니까?'
'미안하네.'
그러자,
"다 들리네."
황제가 불퉁한 얼굴로.
"나는 좀 놀면 안 되나? 내가 뭘 어쨌다고! 얼굴이나 보려고 왔는데, 허허, 늙으면 죽어야지."
"아니, 그게 아니라."
"근데 잔치라더니만 차린 것도 없군. 쯧쯧, 이건 뭐, 황궁 아침 밥상만도 못한 수준···"
갑자기 말을 멈추더니 코를 킁킁거리는 황제.
"어?"
킁킁킁킁,
개처럼 냄새를 맡으며 테이블로 다가가더니.
"헉!"
그러고는 태주에게,
"마, 맞나?"
"네."
"내 몫도 있는가? 제발 있다고 해주게."
"···있습니다."
"오오오오! 이 은혜는 절대 잊지 않겠네."
금수호의 눈도 초롱초롱 빛났다.
어느새 술잔과 의자를 두 개씩 가지고 와서 황제와 나란히 앉았다.
정욱철과 이고르는 도무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
이 술과 복숭아가 대체 뭐길래, 폐하께서 저러시지?
"빠, 빨리 마시자고."
"네, 다들 드세요."
태주가 술을 따라주자, 황제와 금수호가 기다렸다는 듯 술잔을 입에 털어 넣었다.
쪼옥!
한 방울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혀로 술잔 바닥까지 핥았다.
핥! 핥!
나머지 사람들도,
쭈욱!
그리고 침묵이 흘렀다.
술에 대해 그 어떤 품평도 하지 않았다.
이 느낌을 무슨 말로 표현해?
"복숭아는 안주입니다."
정욱철은 무언가에 홀린 표정.
태주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평생 수많은 술을 마셔왔다.
한 병에 1억이 넘는 싱글몰트 위스키도 먹어봤다.
그러나 이 술은 차원이 다르다.
애초에 술이라고 부를 수 있나?
신들이 마시는 전설의 넥타르가 실존한다면 바로 이 술이겠지.
'안주도 필요 없겠군.'
그제야 알았다.
이렇게 단출하게 상을 차린 이유.
이 술에 어울리는 안주는 단연코 없다.
어설픈 안주로는 술맛 뚝 떨어질 것이 뻔하다.
'하지만 과일을 준비한 정성도 있으니.'
정욱철은 접시 위에 썰린 복숭아 한 조각을 집어 입에 넣었다.
와그작!
동시에 눈을 번쩍 떴다.
"대체 무슨···,"
입에 들어오자마자 녹는다.
그리고 온몸으로 은은하게 퍼지는 따스한 기운.
"허허,"
어울리는 안주가 있었다.
이 복숭아, 아니, 복숭아라고 부를 수 없는 천상의 과일.
하나 더···,
정욱철은 접시 위로 손을 뻗었다.
순간!
덥석!
그의 손을 잡아 오는 황제.
"어허! 알만한 사람이! 한잔에 안주 하나, 술자리 규칙은 지켜줬으면 좋겠군."
"···."
갑자기 황제가 얄밉다.
규칙은 무슨,
두 개 먹으면 안 돼?
"더 있으니까 마음껏 드세요. 집에 갈 때 복숭아 두 개씩 챙겨드릴게요."
"오!!!"
정욱철도 표정이 밝아졌다.
따로 두 개씩 챙겨주겠다는 말이지?
그럼 손녀도 2개를 받을 테고.
와그작, 복숭아를 씹은 채 정욱철은 옆에 앉은 정연희의 손을 슬며시 잡았다.
"연희야, 2개 중 하나는 할애비에게···,"
"죄송해요, 할아버지."
잡힌 손을 빼며 외면하는 정연희.
아무리 할아버지라도 절대 복숭아는 포기할 수 없다.
이고르 바라노프도,
'여기 안 왔으면 후회할 뻔했군.'
스케줄이 있었지만 포기하고 왔다.
무리해서라도 온건 평생에 있어 가장 잘한 결정.
서필명 행정관도,
'황궁에서 나오길 잘했어.'
이 술 한잔으로 모든 보상을 받은 느낌.
그리고 술을 처음 마셔보는 티제이 길드원들도.
'단전이 꿈틀거려.'
'나도,'
'영약인가?'
'그거 하고 비교가 돼?'
태주는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웃으며 말했다.
"술은 각자 알아서 국자로 퍼 드세요. 전 복숭아 몇 개 더 잘라 올게요."
스팟!
황제가 제일 먼저 반응했다.
그 뒤로 금수호가, 정연희도.
항아리 앞에서 국자로 조심스럽게 술을 따르는 사람들.
마실수록 새로운 맛.
도무지 질리지 않는 향기.
잔치는 그 커다란 신선주 한 항아리가 다 비워질 때까지 계속됐다.
길었던 잔치도 슬슬 끝이 나고,
거나하게 취한 황제가 태주에게 다가와 말했다.
"자네, 유럽에 가볼 생각은 아니지?"
"글쎄요."
솔직히 반반.
남의 나라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그렇다고 외면할 수도 없고.
"하여간 얼씬도 하지 말게. 알렉스, 그 새끼,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어."
"생각해보겠습니다."
"허허, 알았네, 그럼 난 이만, 자리를 너무 오래 비웠어. 내 자식들이 모두 돌아와서 또 황궁이 시끄럽거든. 가서 교통정리라도 해야지."
"참!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태주는 뒤로 돌아서 전용 스마트폰의 답례로 검선이 준 보검을 꺼내 황제에게 건넸다.
"이거, 상청검이라고 하던데."
고풍스러운 은빛 검을 멍하니 바라보는 황제.
"나, 날 주는 건가?"
"네."
"상청검이라···,"
만져만 봐도 알겠다.
이 검이 얼마나 대단한 보물인지.
당장이라도 휘둘러 싶은 마음뿐.
"혹시 자네 황제 해볼 마음 없나? 당장이라도 황위를 물려줄 수 있어."
"···검 다시 주시죠. 그냥 제가 쓸게요."
"취소하겠네. 다음부턴 말조심하지."
나보고 황제를 하라고?
차라리 재입대가 낫다.
※ ※ ※
잔치가 끝나고 태주는 구례 티제이 바이오 제약 연구실에 틀어박혀 며칠째 신약 발명에 여념이 없었다.
정연희를 비롯한 티제이 길드원들은 파주 DMA 마수 밀집지대 공략에 착수했다.
레이드용 도핑 물약은 이미 만들어뒀다.
부작용 또한 대폭 줄였고.
지금은 발모제 연구 중.
모든 게 순조로웠지만 유럽 상황은 점점 꼬여갔다.
<마침내 확대된 전선, 동부 유럽 전역에서 국지전이 벌어져,>
<아메리카 공화국 지원 의사 밝혀, 그러나 카이사르 황제는 거부.>
카이사르 황제는 진짜 정신이 나간 모양.
전 세계가 힘을 합쳐도 모자랄 판에.
드렉 카락스보다 저놈이 더 문제.
<인간과 언데드의 전쟁,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제국군 기계화 사단, 전선에서 줄줄이 후퇴?>
<유럽 정부, 전술적 판단이라며 후퇴를 부인.>
전술적 판단은 개뿔.
<지금도 계속 불어나는 언데드 군세>
<난민들의 행렬이 줄을 잇고 있다.>
<삼한 제국, 시베리아 개척 군단 파병을 검토 중.>
시베리아 개척 군단은 아버지가 계신 곳.
"···하아,"
<알렉스 카이사르 황제, 우리가 이기고 있다, 이길 것이다라며 직접 육성 기자회견.>
<그러나 전황은 부정적, 인명 피해가 어느 정도인지 추정도 힘들어.>
이런 상황에서도.
<유럽 제국 정부, 아메리카 공화국과 삼한 제국에게 엄중히 경고, 타국의 그 어떤 간섭도 불허하겠다.>
태주는 발모제 연구를 중단하고 벌떡 일어났다.
'가자.'
이대로 둬선 안 되겠다.
드렉 카락스도 문제지만 카이사르 황제란 새끼도 똑같은 놈.
지원 요청이 오든 말든, 만천화우로 확 쓸어버린다.
< 가자! 유럽으로 > 끝
ⓒ 꾸찌꾸찌
=======================================
< 만천화우 >
알렉스 카이사르 황제는 개전 후 처음으로 위기감을 느꼈다.
이틀 전까진 순조로웠다.
물밀듯이 밀려오는 언데드 마수들의 진군을 저지하고, 포격으로 꽤 많은 숫자를 줄여놓았다.
터닝포인트는 넘겼다고 생각했다.
드렉 카락스의 전략은 단순했다.
마수 밀집지대를 점령해 언데드 군단의 규모를 확장하면서 공격을 해오기.
그럼 제국군의 대응 전략은?
놈이 마수 밀집지대로 가지 못하도록 길을 틀어막으면 된다.
이후, 소모전으로 마수의 숫자를 줄여나가고.
그런데 그 상황에서 놈이 취한 행동은?
병력 분산이었다.
"남부로 우회한 언데드 마수 병력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규모는?"
"거의 200만···, 그 이상일지도,"
"후우,"
오거스트 국장의 말에 알렉스 카이사르 황제는 눈살을 찌푸렸다.
'내가 놈을 너무 얕봤어.'
다른 세상에서도 이렇게 막강한 네크로맨서를 경험하지 못했다.
또한,
'드렉, 그놈 말고도 언데드 생산과 지휘 능력을 갖춘 놈들이 또 있었군.'
조력자, 혹은 부하들의 존재, 그걸 간과하고 넘어간 것이 큰 실수.
심지어 제국군 일부가 언데드로 넘어가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신성력의 부재가 예상보다 커.'
신성력은 현대 무기로 대체가 될 줄 알았는데.
어쩔 수 없이 전선이 나눠지는 걸 허용하고 말았다.
드렉 카락스의 서부 전선.
놈의 조력자들의 남부 전선.
이 둘을 한꺼번에 상대해야 한다.
당연히 전력이 분산되는 걸 염두에 둬야 하고.
문제는 하나 더 있었다.
"빈센트는? 아직 물량을 보냈다는 소식이 없나?"
"다행히 보급 차량과 수송기가 전선으로 출발했습니다. 남쪽 전선과 서쪽 전선으로 나눠서···,"
빈센트 모레티.
마법 인챈트 대마공학자.
유럽 제국 황립 결정체 공학 연구소 소장.
알렉스 카이사르가 오래전에 수하로 거둬들인 영혼 연결자.
숨겨진 한 수였다.
영혼 연결자가 2명.
전쟁에 질 리가 있나?
빈센트를 시켜 엄청난 양의 인챈트 마법 포탄과 로켓, 미사일, 총탄을 생산, 비축해놓았다.
그런데 그 물량이 거의 바닥났다.
부랴부랴 추가 생산하고 있지만 소모되는 양에 비해 만들어지는 양은 턱없이 부족했다.
게다가 전선이 둘로 갈라진 상황.
'남부 전선이라···,'
알렉스 카이사르 황제는 고민했다.
선택과 집중.
서부 전선이냐, 남부 전선이냐?
사실 결론은 간단했다.
"남부 전선은 포기한다."
"···네?"
"병력을 전부 빼서 서부 전선으로 투입하고."
"아, 알겠습니다."
"무조건 드렉 카락스 놈에게 집중해. 저놈만 잡으면 그날로 전쟁 종료야."
네크로맨서 언데드 마법의 약점.
어차피 언데드라는 것이 시전자의 흑마기로 움직이는 마물.
드렉 카락스만 죽이면 끝난다.
'결국 내가 나설 수밖에···.'
지금부터는 직접 놈을 상대한다.
모든 준비도 끝냈다.
대마공학자 빈센트 모레티가 만든 필생의 역작 둘.
개당 엘리트 마나 결정체가 1만 개 이상 들어간 아이템들.
하나는 절대 방어의 펜던트.
작동하면 20초 동안 어떤 공격도 막아줄 수 있는 보호막을 생성한다.
그래서 절대 방어.
20초면 충분하다.
드렉 카락스 가까이 접근하기만 하면 된다.
나머지 하나는 완전 속박의 토템.
땅에 꽂으면 적은 1분 동안 모든 움직임을 멈추고 허수아비 신세가 된다.
이것이 바로 알렉스가 드렉 카락스에게 집중하기로 한 이유.
놈은 결코 자신을 이길 수 없다.
또한 동부 유럽의 나머지 국가들.
대부분 유럽 제국에 속하지 않았다.
차라리 언데드 군단에게 썰리는 게 낫다.
그게 통일에도 도움이 되고.
※ ※ ※
태주는 유럽으로 가기 전, 파주에 먼저 들렀다.
한창 DMZ 마수 밀집지대 토벌 작전이 시작되기 직전.
태주가 도착하자 정연희가 달려와 그를 반겼다.
"회장님! 어쩐 일이세요? 토벌 작전에 관여하지 않으신다고 하셨잖아요."
"그건 변하지 않았습니다. 전 다른 일이 있어서."
"하아, 조금 섭섭하네요."
"우리 길드원들, 강하게 키워야죠."
참가인원은 조금 적었다.
정연희와 티제이 길드원들, 총 9명.
물론 복마검법을 대성한 지구의 검후, 정연희 혼자서도 엘리트 마수 정도는 무난히 잡는다.
그러나 DMZ의 마수 밀도는 매우 높은 수준, 자칫하면 인명피해가 생길 수도 있는 위험한 작전.
"자, 이걸 받으세요."
태주는 정연희에게 알루미늄 가방을 내밀었다.
"이건···?"
"레이드용 도핑 물약입니다. 푸른색 물약은 마나 증폭, 보라색은 근력 강화, 초록색은 속도 증강, 3종류, 각각 10개씩, 샘플로 만들어 왔어요."
"도핑 물약은 부작용이···,"
"최소한으로 줄였습니다. 잠력 폭발 형식이라 탈진 후유증이 생기긴 하지만, 먹고 난 후 1시간 정도 휴식을 취하면 멀쩡해질 겁니다."
"오!"
"그렇다고 막 쓰지는 말아요."
"위험한 순간에 약을 먹고, 빠지면 되겠네요."
그 정도 부작용이라면 충분히 감내할 만할 것이다.
선도와 신선주를 먹었으니 부작용이 더 줄어들 테고.
하나 더.
툭툭, 태주는 자신의 가슴을 두드렸다.
"야! 그만 자고 나와봐."
"앙?"
빼꼼,
고개를 내미는 이백이.
"게으름은 끝났다. 일 할 시간이야."
"야아아아,"
"연희씨 따라다니다가, 진짜 위험한 일이 발생하면···, 알지?"
"야오오!"
"그렇다고 혼자서 막 설치진 말고, 웬만한 건 길드원들에게 다 맡겨."
"야아앙!"
이제 걱정할 것 없다.
마음 편하게 유럽으로 떠나자.
가서 언데드 조지고 발모제 연구에 전념해야지.
파주 영주관을 나와 만리비검을 타고 구름 위를 뚫고 높이 높이 솟아오르는 태주.
쐐애애애애액!
제일 먼저 유럽 남부 전선에서 활보하는 언데드 마수들부터 정리한다.
숫자가 얼마가 되든 그저 가소로울 뿐이다.
현재 사용할 수 있는 암기의 숫자는 약 만여 개.
유엽비도와 탈명비도, 이화정, 혈우침, 그리고 미리 챙겨온 흑암철 주괴 덩어리.
날붙이로 꽂고, 흑암철 주괴로는 뚝배기를 깬다.
※ ※ ※
동부 유럽의 남부 전선.
언데드 흑마법사 욘슨은 자신이 지휘하는 언데드 마수 군단을 이끌고 계속 남하하고 있었다.
흑해 연안까지 내려왔다.
거의 무혈입성 수준으로.
원래 동유럽과 시베리아로 이어지는 지역은 인구가 희박했다.
국가도 없었고.
흑해 서쪽은 그나마 중소 규모의 동유럽 국가들이 산재해 있었지만, 흑해 동쪽은 온통 마수 밀집지대.
워낙 범위가 넓어 웨이브도 안에서 정리되는 지역.
처음엔 백만으로 시작한 언데드 마수 군단의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각각 4개의 군단으로 또 분리했다.
그동안 인간과의 교전은 최대한 피했다.
무서워서?
그럴 리가.
주인님이 내리신 명령.
무조건 언데드 군단을 부풀려라.
하나의 국가를 집어삼킬 만큼의 병력이 만들어질 때까지.
그리고 주인님이 명하신 대로 충분한 언데드들을 만들었다.
- 일어나라!
뿌드드득, 뿌득.
방금 공략한 마수 밀집지대에서 죽은 마수들이 언데드로 변했다.
아아!
데우스 리치이신 주인님이 친히 하사해주신 권능.
언령 하나만으로 생성되는 언데드들.
남하를 시작하면서 눈에 보이는 마수 밀집지대는 싹 토벌했다.
하나도 빼먹지 않았다.
속속 불어나는 언데드.
얼마나 완벽한 군대인가.
휴식도 보급도 필요 없다.
욘슨 자신이 홀로 이끄는 군단 병력만 무려 70만에 육박.
뭐가 무서울까?
그리하여 지금부터 목표가 바뀌었다.
마수 밀집지대 공략은 잠정 중단.
이제부턴 마수가 아닌 인간.
공략 목표는 흑해 위쪽에 위치한 국가, 키예프 연합.
원래는 우크라이나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과거 유럽의 곡창지대로 유명했던 곳.
유럽 제국의 통일 전쟁에도 밀리지 않고 끝까지 저항해 지금은 키예프 연합으로 국명을 바꾸었다.
모스크바 왕국과는 비교도 안 될 수준의 강국.
키예프 연합을 집어삼킨다.
더불어 그 힘을 발판으로 유럽 제국의 본진을 친다.
공격은 세 방향에서 동시에 진행될 것이다.
마츠모토와 아브라힘이 각각 이끄는 언데드 군단, 그리고 자신.
주인님을 근거리에서 보좌하는 카르멘 군단을 제외하고도 200만이 넘는 병력.
키예프 연합 따윈 일주일도 걸리지 않을 것이다.
언데드 흑마법사 욘슨은 주인님에게서 받은 권능을 이용해 언데드들에게 지시했다.
- 진군하라.
쿠쿠쿠쿠쿠쿠!
70만의 언데드들이 한꺼번에 이동하는 광경.
가히 압도적이었다.
키예프 연합의 국민들과 군인들은 주인님의 충실한 종복으로서 거듭나게 될 것이다.
순간!
우우우우우웅!
기이한 소리와 함께 어두워지는 하늘.
- 음?
욘슨은 머리 위를 쳐다봤다.
- ···먹구름인가?
아니면 메뚜기 떼?
왠지 소름이 끼쳐왔다.
이상하다.
언데드로 거듭난 자신인데, 두려워할 것이 뭐가 있다고.
바로 그때!
후둑,
하늘에서 날카로운 금속 물체 하나가 떨어졌다.
핏!
딱 하나였다.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그 물체는 욘슨 옆에 있던 언데드 마수 한 마리의 머리에 정확하게 명중했다.
"꾸에엑!"
동시에.
파스스스스···,
가루가 되어 흩어져버린 언데드 마수.
- 대체···?
뭐지?
욘슨은 고개를 갸웃했다.
기존 마수보다 더 강한 언데드였다.
고작 금속 조각 하나에 머리를 뚫려 소멸했다고?
하지만 그는 꿈에도 몰랐다.
이것이 언데드 대학살의 시작이었다는 걸.
후둑, 후두두두두두두둑,
빗소리가 들린다.
처음엔 하나였지만,
츠핏, 츠피피피피핏!
- 헉!
가랑비처럼 점점 그 수가 늘어났다.
푸푸푸푸푹!
언데드 마수의 몸속을 파고드는 암기.
믿었던 병사들이 픽픽 쓰러져 나갔다.
저 작은 금속체에 말이다.
- 이, 이럴 수가!
자세히 보니.
- 암기?
햇빛에 반사되어 번쩍이는 암기들.
은빛 꽃과 같았다.
- 어, 어디서, 누가?
가랑비는 소나기로 발전했다.
크고 작은 암기의 폭우.
후두두두두두두두두···,
피피피피피피피피핏!
무언가 시커먼 덩어리 같은 것도 마수들의 대가리를 강타하며 다시 올라갔다.
푹! 빠각, 퍼벅! 푸푸푹! 파스스스스···.
언데드들이 소멸하고 있었다.
게다가 이상한 건,
- 비, 빗나가지 않아?
이 많은 암기가?
하나라도 빗나갈만한데.
단 한 개도 그냥 땅에 떨어지는 법이 없었다.
떨어지는 족족 모조리 마수의 몸에 박혔다.
- 마, 맙소사.
욘슨은 경악했다.
이게 무슨 일이지?
눈앞에서 벌어지는 참상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마수 군단이 위치하는 전 지역에 내리는 죽음의 소낙비.
어찌나 촘촘하고 빠른지 피하지도 못했다.
저항 불가능, 하늘에서 떨어지는 걸 어떻게 피해?
갑자기 금속 투사체들이 뭉치기 시작했다.
쿠오오오오오오!
그리고 만들어진 대형 암기의 회오리.
이윽고.
회오리가 비스듬히 기울어지더니.
콰콰콰콰콰콰콰!
지면에 낮게 깔려 내려앉았다.
회오리에 스치는 모든 것들이 삭제되었다.
믹서기처럼 갈려 나갔다.
사방이 암기의 폭풍이었다.
피핏! 피피피피핏!
휘어지고 꺾이고, 올라갔다가 내려갔다가, 회전했다가, 느닷없이 직선으로 쏘아지고,
뭐라도 해야 했지만,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언데드들이 소멸되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만 볼 뿐.
지리멸렬 이곳저곳으로 흩어지는 언데드.
언데드 마수들이 공포에 질렸다.
두려움의 원인이 되어야 할 언데드가?
욘슨도 무사하지 못했다.
그도 암기의 폭풍에 휘말렸다.
- 다크 배리어, 다크 배리어, 다크 배리···,
중첩 보호막을 몇 겹이나 씌웠지만,
콰콰콰콰콰콰콰콰!
- 끄아아아아!
처음엔 한 개, 두 번짼 가랑비, 세 번짼 소나기, 그리고 폭풍.
욘슨의 몸이 분해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저 먼 하늘에서 검을 타고 천천히 내려오는 한 명의 인간.
- 아!
그제서야 깨달았다.
- ···김태주.
주인이 가장 두려워했던 그.
놈이 왔다.
욘슨은 소멸하는 순간에 불충한 생각을 떠올리고야 말았다.
- 주인님···,
그분은 과연 저놈을 감당해내실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결론은 부정적이었다.
프스스스스스.
암기 폭풍이 지나간 자리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어느덧.
70만에 달했던 언데드 마수들이 완전하게 소멸해버렸다.
"하아,"
태주는 만리비검을 타고 땅에 내려섰다.
'내가 한 거지만···, 나도 믿을 수가 없네.'
실전에서 처음 사용한 만천화우.
독기에 선기까지 합해지니 독선 당군악이 강호 무림에서 펼쳤던 그것보다 더 무시무시했다.
물론 단점이 있다.
태주는 땅에 털썩 주저앉았다.
'···힘이 하나도 없어.'
독령으로 진화한 독정이 형편없이 쪼그라들었다.
만천화우는 그 위력만큼이나 엄청난 기(氣)를 소모하는 기술.
태주는 무한공간에서 신선들이 선물로 준 독초와 약초, 그리고 요괴 내단을 씹었다.
조금 살 것 같다.
온전히 회복되려면 시간이 걸리겠지만.
그나저나 오길 잘했다.
만리비검으로 날아오면서 언데드와 맞서는 유럽 제국군이 있으면 어떡해야 하나 걱정하고 있었는데.
'아무도 없네.'
전투는커녕 그냥 방치한 수준.
아예 포기했나?
이럴 거면 도와달라고 했어야지.
태주는 다시 만리비검을 타고 북상했다.
그러자 또 보였다.
'어휴,'
개미 떼처럼 진군하는 언데드 무리.
그리고 저 앞에 보이는 도시.
언데드가 덮쳐오자 도시를 빠져나가는 시민들의 탈출행렬,
한 번 더 만천화우를 시전하기엔 무리가 있고.
제천대성의 힘을 빌려볼까?
태주는 밑으로 내려와 무한공간에서 황금빛 털을 한 움큼 꺼냈다.
스스스스스스슷!
뿌려지는 제천대성의 털.
팟! 팟! 팟! 팟···,
원숭이 분신체들이 나타났다.
동시에 분열을 시작했다.
끝도 없이 늘어났다.
※ ※ ※
적막한 선계.
오로지 메시지 알림음 소리만 울렸다.
케톡! 띠링, 딩똥! 배달의 선계!
삼삼오오 선계 곳곳에 흩어져 스마트폰만 만지는 신선들.
"화선, 이거 봤소?"
"뭐요? 재미난 거라도?"
"검선의 별스타그램 말이오."
"우리 관종 신선이 또 뭘 올렸나."
화선은 별스타그램을 실행해서 검선이 올린 게시물을 확인했다.
제목 : 방금 쇼핑몰에서 구매해 원숭이에게 배송받은 핸드크림.
- 요즘 일을 많이 했더니 손이 거칠어졌소. 핸드크림을 바르니 좀 낫구려.
겉보기엔 핸드크림에 대한 내용이었지만···,
"쯧쯧, 허세가 뇌를 지배했구만."
"내 말이!"
검선이 올린 사진.
손을 위주로 찍은 건 맞다.
그의 손이 스포츠카 앰블럼이 박힌 자동차 핸들 위에 올려졌고, 그 손목엔 고급 시계가 번쩍번쩍 자태를 빛내고 있다는 게 핵심이긴 하지만.
결국 시계 자랑, 자동차 자랑이었다.
신선들이 가만히 있었을까?
검선의 게시물에 비추 폭탄이 떨어졌다.
좋아요! 는 단 하나.
착하디착한 해맑 선녀뿐이었다.
< 만천화우 > 끝
ⓒ 꾸찌꾸찌
=======================================
< 제천대성의 황금 분신들 >
제천대성이 직접 자신의 털에 요력을 불어넣어 건네준 황금 털.
한 움큼 잡고 뿌리자,
팡! 팡! 파파파팡! 팡팡팡팡!
첫 번째 분신들이 나타났다.
겉모습은 평범한 원숭이였다.
그저 맨 원숭이.
털 한 개에 한 명의 분신체.
털의 개수가 약 오천여 개 정도였던 모양.
그래서 나타난 분신도 오천 명.
색깔도 죄다 황금색.
'흐음, 조금 적지 않나?'
언데드 군단은 백만 단위인데···,
하지만 분열이 남아있었다.
태주의 생각을 알아차린 듯 오천의 분신들이 스스슷 몸을 털었다.
그러자 분신에게서 떨어지는 털.
그 털도 역시 분신으로 변했다.
이것도 다가 아니었다.
분열로 생겨난 분신들이 몸을 털고, 또 분신이 생기고, 몸을 털고, 또 생기고···,
'···.'
미친!
대체 몇 명이야?
눈대중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게 불어난 황금색 제천대성 분신들이 대평원을 가득 메웠다.
'대충 오십만? 100배 정도 불어났네.'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어마어마한 기운.
물론 힘의 차이는 존재했다.
처음 털에서 나온 분신과 그것의 분열을 통해 만들어진 분신.
최초 분신의 힘은 독령을 깨우치기 전 자신의 힘과 비슷했다.
혼원무상독령공으로 비교하자면 거의 9성.
한마디로 최강의 오천 결사대.
그러나 분열될수록 약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마지막 분신의 힘을 가늠해보니 엘리트 마수보다 약간 강한 정도.
"우끼끽?"
"끼익?"
"케에에엑?"
"꾸우잇?"
.
.
.
모든 분신체들이 다소곳이 앉아 태주만 바라봤다.
불러냈으니 빨리 뭐라도 시켜라! 하는 느낌.
'이제 뭘 하면 돼?'
'그냥 놀까?'
'심심하다고!'
'빨리 명령을 내려줘.'
태주는 의식을 집중해 목표를 부여했다.
<언데드와 마기를 품은 모든 존재 말살.>
'부탁한다.'
순간!
스윽!
약 오십만 마리의 황금색 제천대성 분신체들의 머리가 한꺼번에 같은 방향으로 돌아갔다.
그들이 바라보는 건, 저 멀리 수평선 근처에서 도시로 진군하고 있는 언데드 마수 군단.
'알았어.'
'쟤들만 처리하면 되지?'
'걱정하지 마. 한 놈도 남겨두지 않을게.'
'재미있겠다. 놀아볼까?'
분신 한 마리가 머리를 하늘로 쳐들며 포효했다.
"끼아오오오오오!"
나머지 분신도,
"꾸우우우!"
"키아아악!"
"캬아아아악!"
"우끼끼끼끼!"
.
.
.
그렇게 서로 교감을 나누더니.
스팟! 파파팟! 팟팟팟팟팟!
오십만의 제천대성의 분신들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언데드 마수들에게 돌진했다.
※ ※ ※
언데드 흑마법사로 변한 마츠모토와 아브라힘.
주인님의 지시를 충실하게 이행하는 중이었다.
밑에서 올라오는 욘슨 군단과 합류해서 키예프를 멸망시킨다.
저 멀리 도시가 보인다.
키예프 연합 대도시 중 하나인 하르키프.
허둥지둥 달아나는 피난민들도.
- 서두릅시다, 마츠모토, 이러다 놈들이 다 도망가겠습니다.
- 걱정하지 마세요. 도망가봤자 멀리 가지 못합니다. 보세요. 도로에 꽉 찬 자동차들을, 서로 도망가겠다며 아우성치는 미천한 인간들을.
- 맞아요. 클클클, 주인님의 종이 될 자격이 충분합니다.
- 수확의 시간이 왔습니다.
거의 150만에 육박하는 언데드 마수 군단.
하르키프 시(市)는 시작일 뿐이다.
모조리 흡수해서 언데드 노예로 삼을 것이다.
그리고 다음 도시로, 또 다른 도시로···,
바로 그때!
쿠구구구구···,
미세하게 땅이 진동하고 있었다.
- 음?
저 멀리 남쪽에서 다가오는 거대한 흙먼지.
- 욘슨의 언데드 군단이 오는 모양이군요.
- 쯧쯧, 조금 늦었어요.
- 오다가 마수 밀집지대를 하나 더 공략했나 봅니다.
- ···그런데 속도가 무척 빠릅니다.
- 약속을 지키기 위해 서둘러 오는 게 아닐까요?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지평선 너머에 있던 누런 흙먼지가 어느덧 바로 코앞.
선두가 보인다.
그런데 누런 흙먼지 속에 숨어서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던 무리의 정체.
- 헉?
황금색 털의 원숭이.
- 무슨?
언데드 마수는 아니다.
놈들에게서 흑마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진짜 원숭이들이다.
네발을 이용해 땅을 박차고 달려왔다.
- 이, 이놈들?
- 어어···,
대응할 새도 없었다.
제천대성의 대규모 분신들이 언데드 마수 군단 진형의 옆부분을 처박았다.
콰콰콰콰콰콰콱!!!
단번에 두 동강 난 진형.
그리고 학살이 시작됐다.
분신들이 미친 듯이 날뛰었다.
마치 놀이라도 하는 것마냥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을 집어던지고 뜯어버렸다.
"우끼기기긱!!!"
분신 한 마리가 앞에 있는 언데드 마수를 잡아 뒤로 던지면 따라오는 분신들이 잡아서 찢었다.
펄쩍 뛰어서 머리를 잡아 뽑고, 하나에 서너 마리씩 붙어서 오체분시를 해버리고, 그대로 박치기에서 몸을 뚫고 나오고, 언데드 다리를 손으로 잡고 땅에 질질 끌다가 그대로 패대기 쳐버리고.
태주는 만리비검을 타고 저 위에서 내려다보는 중.
'와! 이건 정말···,'
언데드에 비해 분신들의 숫자는 3분의 1.
크기도 훨씬 작았다.
하지만 그딴 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언데드 마수들이 부서지고 죽어 나갔다.
거대한 예초기가 정원에 난 잡초들을 깎아버리는 것 같다.
살점과 뼈의 파편들이 허공으로 흩날렸다.
'기가 막히네.'
물론 자신이 불러내긴 했지만.
'아니, 이 힘을 가지고 왜 천도 도둑질에 실패했지?'
해맑 선녀가 큰 역할을 했다고 독선에게 듣긴 했어도.
'상성 때문인가?'
제천대성의 또 다른 지위.
그가 있던 곳은 선계가 아닌 여래계.
그래서 다른 이름도 가지고 있었다.
투전승불(鬪戰勝佛)
즉 싸워서 이기는 부처였다.
제천대성이 심은 기운엔 요력 뿐만 아니라 불력도 포함되어 있었다.
사악한 흑마기가 어떻게 부처의 불력을 감당해?
콰콰콰콰콰콱! 콰콰콰콱!
그냥 가지고 노는 수준이었다,
마츠모토와 아브라힘은 기겁했다.
예상치도 못했던 상황.
여기서 왜?
- 원숭이라니,
- ···심지어 마수도 아닙니다.
생김새와 크기가 익히 알고 있던 그 원숭이와 다를 바 없었다.
황금빛이라는 게 조금 특이하지만.
그런데 저렇게 강해?
언데드로 강화된 마수들을 찢어버릴 정도로?
그들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흑마법으로 분신들을 상대하는 마츠모토와 아브라힘.
- 본 월!
- 다크 스피어!
- 피어 오브 헬.
- 다크 스톰!
그러나 소용이 없었다.
방패막으로 세운 거대한 본 월은 골다공증 환자의 뼈처럼 힘없이 산산조각이 났고,
파사사삭!
흑마법으로 생성한 검정색 마기의 창은 분신의 몸에 적중되자마자 튕겨 나갔으며,
팅팅팅팅!
지옥의 공포를 느끼게 하는 정신 공격도, 무시무시한 마기의 소용돌이도, 원숭이들에게 그 어떤 데미지도 주지 못했다.
그리고 마침내,
마수들을 걷어내면서 마츠모토와 아브라힘의 전면에 도달한 분신들.
"우끼긱?"
수백 마리의 원숭이들이 마츠모토와 아브라힘을 에워쌌다.
보통 흑마법으론 안 된다.
전신을 불살라 최후의 마법을 시전하고자 했지만,
- 데블 소울 디스트럭···,
- 미티어 오브 헬···,
"캬악!"
"끼아오!!!"
주문이 완성되기도 전에 분신들이 덮쳤다.
- 끄아아악!
- 허어어억···,
마츠모토와 아브라힘도 찢기고 뜯겼다.
허공으로 비산하는 뼈와 살점.
파사사사사삭!
하지만 분신들은 멈추지 않았다.
몸체가 작은 조각으로 분리되기까지.
피난하던 하르키프 시민들도 그 기막힌 광경을 두 눈으로 지켜봤다.
가지고 있던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찍으면서.
시민들도 모스크바에서 일어난 전쟁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비교적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고, 유럽 제국군도 맞서 싸우고 있던 터라 여기까진 전쟁의 여파가 미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뜬금없이 하르키프 외곽에 나타난 언데드 무리들.
시민들은 혼비백산했다.
서둘러 피난길에 나섰지만 따라잡히는 건 시간문제.
절망적이었다.
죽는 것도 두렵고, 죽고 나서 언데드가 되는 것도 무서웠다.
그런데 저게 뭐지?
어디선가에서 갑자기 나타나 언데드 군단에게 돌진하는 황금색의 물결.
"···원숭이?"
"원숭이들이 맞아."
"저렇게 많은 숫자가···,"
"마수가 아닐까? 웨, 웨이브일지도."
"아니야, 이쪽 지역 마수 밀집지대엔 저런 마수들이 없어."
"그래, 원숭이 마수는 열대 우림 같은 곳에 가야 볼 수 있잖아."
원숭이들은 폭군이나 다름없었다.
아무런 주저함 없이 언데드들을 잔인하게 찢어발겼다.
언데드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어느덧, 셀 수 없이 많았던 언데드 군단 무리는 눈 씻고 찾아볼 수도 없었다.
이제 끝?
바로 그때!
스윽!
황금빛 원숭이들의 눈동자가 이번엔 피난 중인 하르키프 시민들에게 향했다.
"이, 이쪽을 봤어."
"맙소사!"
"···피해!"
"사, 살려줘!"
하지만,
두두두두두두두둑!
빛살처럼 빠르게 돌진해오는 원숭이들.
피하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아아아!
시민들은 직감했다.
다음은 우리 차례,
덥석!
원숭이들이 도망가던 시민 한 명의 뒷덜미와 다리를 잡아챘다.
"헉!"
그 모습에 태주도 깜짝 놀랐다.
"야! 안 돼! 뭐 하는 거야?"
분신이라서 피아 구분을 못 하는가, 요괴의 본능이 남은 건가?
인간에게 달려들어?
"씨발, 원숭이 새끼들이···,"
우우우우우웅!
스스스스스슷!
무한공간에서 암기들을 꺼내고,
목표 지정으로 원숭이 분신들을 만천화우로 처리하려 했는데.
멈칫!
'···음?'
아하!
그런 상황이었구나.
원숭이들에게 잡힌 시민은 얼굴에 문양이 그려진 각성자였다.
"우끼기기긱!"
동시에 그 각성자는,
뿌드드득, 뿌득!
단숨에 목과 다리, 그리고 허리가 꺾여 버렸다.
그 자리에서 절명한 시민 각성자.
스르르륵!
그리고 마수의 형태로 변했다.
깜짝 놀라는 시민들.
"···어어어,"
"뭐, 뭐야?"
"마인···,"
"마인이라고?"
죽고 나서 정체가 밝혀졌다.
그렇게 시민들과 함께 섞여 살아가면서, 하르키프 시의 수많은 적합자와 일반인들을 몰래 사냥했던 연쇄살인마 마인이 제천대성의 분신들에게 죽었다.
"우낏?"
"우끼긱!"
"으갸갸!"
"끼이우, 우끼깃···,"
마인을 죽이고 나서야 원숭이들이 서로를 바라보며 환호성을 질렀다.
임무를 완수했다는 기쁨의 표현.
다른 시민들은 쳐다보지도, 건들지도 않았다.
지들끼리 노래도 부르고, 심지어 덩실덩실 춤을 추기 시작했다.
덤블링에 공중제비도 돌고, 서로 숨바꼭질하듯 신나게 뛰어다니며, 장난질도 하다가···,
갑자기!
파팟! 파파파파팟! 파파팟!
비누 방울이 터지듯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리는 원숭이.
파파파파파파파파파파파···,
순식간에 그 많던 원숭이들이 모조리 사라졌다.
시민들은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
보긴 봤는데, 영상으로도 찍었는데, 언데드들의 잔해도 저쪽에 있는데, 정작 자신들을 구해준 신기한 원숭이들이 거품처럼 사라져?
꿈을 꾸는 것 같았다.
태주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언데드 마수 군단을 처리하고 나서 곧바로 시민들에게 돌진했을 땐 정말이지 모골이 송연했다.
하지만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이제야 기억났다.
분신들을 불러내 그들에게 한 부탁.
언데드와 마기를 품은 모든 존재 말살.
당연히 마인도 포함하는 게 맞지.
'역시 제천대성 분신들이네.'
그러나 아직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저 북쪽에서 느껴지는 진득한 마기의 기운,
기력도 다 회복됐으니까, 이번엔 만천화우로?
'털은 아껴야지.'
소중하니까.
※ ※ ※
천계 자미궁.
옥황상제는 자그마한 스마트폰에 눈을 바짝 가까이 대가며 손가락으로 조심조심 터치했다.
"아이참! 상제니임! 좋아요는 여길 눌러야 되요오오. 상제님이 누른 건 싫어요잖아요오."
"잘 누른 거 맞다만, 내가 검선 놈이 올린 글에 좋아요를 누를 이유가 있느냐?"
"검선님이 불쌍해서 그래요오."
"그래도 기뻐하는 것 같은데?"
검선이 자신이 올린 게시물에 스스로 단 댓글.
└ 니들이 암만 비추 폭탄을 눌러봐야 타격감 제로니라. 난 해맑이가 남긴 좋아요 하나면 만족해.
그러나 가만히 있을 신선들이 아니었다.
└ 응, 다음 정신승리.
└ 추하다, 추해.
└ 시계 사고, 차 사서, 코인 다 탕진하고 맨날 1코인짜리 눈깔사탕이나 사 먹는 주제에.
└ 오죽 불쌍하면 해맑이가 좋아요, 눌러줬겠어?
└ 해맑이는 원래 다 좋아요, 눌러줘.
"비추가 중복은 안 되느냐?"
"안돼요오."
"쯧쯧, 생각 같아선 나도 비난 댓글을 달고 싶구나."
상제는 검선의 별스타그램 말고도 다른 신선들이 올린 게시물도 찬찬히 읽어보았다.
언어의 문제는 전혀 없었다.
해맑이와의 대화를 통해 이 처음 보는 글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금방 익혔다.
물론 술법의 힘도 도움이 됐지만.
'천인들이 좋아할 만하군.'
선계를 찾아가는 천인들의 숫자가 점점 늘어가는 건, 어쩌면 당연한 현상.
상제는 쇼핑몰도 들어가 봤다.
수많은 상품이 종류별로 나와 있었다.
가지고 싶은 것도 많다.
시계, 만년필, 선글라스, 각종 술과 안주, 음료수···,
하지만 이걸 사려면 코인이 있어야 한다.
어떻게 코인을 벌지?
상제 체면에 천계꽃을 따다 팔 수도 없고.
그러자 해맑이.
"상제님, 시계 하나 사드릴까요오?"
"응?"
시계라니,
제일 싼 게 2만 코인이다.
비싼 건 30만 코인까지, 차라리 자동차가 더 싸다.
30만 코인이면 선도 3,000개의 가치.
"됐다. 벼룩의 간을 빼먹고 말지. 또 네 돈으로 물건을 산 게 알려지면 난 큰일 나."
"저 코인 많아요! 또 아무도 모르게 하면 되죠오."
"응? 천계꽃 따봐야 얼마나 한다고? 한 송이당 1코인이라 하지 않았느냐."
"독선님이 막 주셨어요오. 보세요."
코인 지갑을 실행해서 상제에게 보여주는 해맑.
"어디 보자, 응? ···배, 백만 코인?"
"모자라면 더 찍어주신댔어요."
"어음,"
해맑은 쇼핑몰에 들어가 30만 코인짜리, 스위스 파텍 손목시계 하나를 일시불로 구매했다.
"헤헤, 됐다."
"뭐가 됐다고?"
"시계 하나 샀어요. 조금만 기다려주세요오."
기다린다니?
대체 무엇을?
영문도 모르겠지만 일단 해맑이 말대로 기다려 보자.
시간이 흐르고,
자미궁 안, 상제가 있는 방의 문이 삐걱, 열렸다.
"상품 배송 왔습니다. 해맑 선녀님?"
"오! 원숭이님! 어서오세요오!"
"하하, 여기 사인 좀."
"넵!"
배달의 선계라는 글자가 새겨진 겉옷을 입고 나타난 원숭이 한 마리.
머리에 긴고아가 없는 걸로 봐서.
'분신이군.'
제천대성이 부리는 분신체.
옥황상제는 어이가 없었다.
스마트폰 쇼핑몰에서 물건을 사니, 그걸 원숭이가 가져와?
정말이지, 요지경처럼 변하고 있는 상위 계 세상이었다.
'한 번 더 상위 계 전체 회의를 열어야겠어.'
이젠 인정해야지, 어쩌겠나?
< 제천대성의 황금 분신들 > 끝
ⓒ 꾸찌꾸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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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이, 설마! >
메가 로마, 유럽 제국 황립 결정체 공학 연구소.
빈센트 모레티 소장은 군사용 드론을 통해 실시간으로 전송되는 영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니엘, 저 부분을 확대해봐. 저 언데드 부대 바로 위에서 둥둥 떠 있는 인간."
"네."
영상이 확대됐다.
그러자 드러나는 소름 끼치는 형상의 괴물.
멀리서 보면 인간처럼 보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악마와 같은 형상.
머리엔 두 개의 뿔, 그리고 흰자위 없는 까만 눈동자, 콧대는 사라져 구멍 두 개만 뚫려 있었고, 이빨은 짐승처럼 뾰족한 송곳니만 가득했다.
'리치로 변했군.'
그것도 보통 리치가 아니다.
'데우스 리치인가?'
아마도 그럴 가능성이 높다.
물론 황제도 만만하진 않지만.
'어렵겠네.'
일대일로 붙는다고 해도 말이다.
결국 자신이 건네준 두 개의 아티팩트, 절대 방어의 펜던트와 완전 속박의 토템을 사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실험 결과를 볼 때가 됐나?'
가슴이 두근거렸다.
저기, 각 차원의 절대자 둘이 있다.
정확하게는 그들과 같은 영혼이지만.
알렉스 카이사르와 드렉 카락스가 가진 엄청난 생체 에너지.
그리고 자신이 만든 아티팩트의 마력이 조합해서 만들어질 변화.
같은 세상의 다른 영혼들.
그들에겐 일정한 법칙이 있다.
연결되는 영혼들이 하나같이 그 차원의 최강이라는 것.
알렉스 카이사르는 소드 카이저, 드렉 카락스는 최흉의 네크로맨서.
빈센트 모레티도 다를 바 없었다.
그도 다른 세상의 절대자와 영혼이 연결됐다.
뭔가 이상하지 않나?
고작 인챈트 대마공학자가 절대자라니.
하지만 빈센트와 같은 영혼도 최강자가 맞다.
심지어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이 사는 세상을 파멸시킨.
일종의 매드 사이언티스트.
그가 가장 잘하는 건 차원 공학과 골렘 공학.
그래서 아공간 가방도 제작할 수 있었던 거고.
그런 빈센트 모레티가 알렉스 카이사르의 밑으로 들어간 이유, 바로 비밀 유지와 안전 때문이었다.
대마공학자의 가장 큰 약점은 초기 성장 시 무력 기반이 취약하다는 것.
성장하기도 전에 죽거나 납치당해, 어두운 골방에서 평생 마법 아이템 만드는 노예로 전락할 수 있다.
그래서 알렉스 카이사르가 내민 손을 잡았다.
그의 명에 순순히 따라줬고, 대신 시간을 벌었다.
지금부터는 그럴 필요 없다.
충분히 기반을 다졌으니까.
독립할 여건도 마련했고.
"다니엘."
"네."
"전에 내가 정리한 자료 있지?"
"네."
"언론과 인터넷 커뮤니티에 터뜨릴 준비해."
"네."
이제 판을 깨버린다.
극소수의 사람만이 알고 있던 정보를 만천하에 공개해서 숨어있던 자들이 튀어나오게 만든다.
"그리고 그동안 확보한 핵심 재료들 아공간 가방에 담아와."
"네."
단답형으로만 대답하는 다니엘.
당연하다.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신의 다음 거처도 이미 마련해뒀다.
아프리카, 거대한 마수 밀집지대가 산재해 있는 대륙으로.
'그전에 실험 결과만 확인하고.'
매드 사이언티스답게, 빈센트는 전쟁에서 누가 이기든, 몇 명이 죽든, 피해가 얼마든,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오로지 자신이 설계한 실험이 성공하는지, 아니면 실패하는지, 그게 가장 중요한 관심사였다.
그러나 성공을 장담할 수 없다.
'쯧, 드래곤 하트 하나만 있었어도···,'
하지만 그걸 지구에서 어떻게 구해?
드래곤이 있는 것도 아니고.
뭐, 있어도 잡을 순 없겠지만.
'혹은 비욘드 엘리트 결정체라도.'
물론 그것도 구하기 어려운 재료.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것이 엘리트 마수 결정체를 이용하는 것.
입자 가속기를 돌려 엘리트 결정체의 성질을 변환하고, 최대한 압축시켜 짝퉁 드래곤 하트를 가공했다.
성공할 가능성보다 실패할 가능성이 더 높은 불완전한 실험.
그래도 황제가 잘해준다면?
'열심히 해보렴. 내게 결과를 보여줘.'
사실 빈센트에게 있어 알렉스 카이사르는 실험 재료 셔틀이자 대상에 불과할 뿐이었다.
그건 그렇고,
'전황은 어떻게 되어가나?'
황제 쪽 말고 우회해서 남하한 언데드 군단 말이다.
빈센트는 스마트폰을 들어 너튜브를 실행했다.
실시간 정보를 확인하기에 이것만큼 좋은 게 없다.
방금 올린 듯한 영상들이 줄줄이 튀어나왔다.
주로 키예프 연합의 대도시, 하르키프에서 찍은 것들이었다.
빈센트는 그중 가장 조회수가 높은 영상을 실행해봤다.
'오! 키예프 연합을 집어삼키겠다는 말이군.'
대규모 언데드 부대였다.
하르키프 바로 앞까지 진출했다.
어차피 예상한 바다.
병력을 빼돌려 뭘 하겠나?
마수 밀집지대 공략이나, 도시를 습격하겠지.
기껏해야 사람들이 언데드들에게 죽어 나가는 내용이겠지만···,
"응?"
영상을 시청하는 도중, 갑자기 눈을 부릅뜨는 빈센트.
"···이게 무슨?"
진짜 예상하지도 못한 광경이 스마트폰 화면 안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 ※ ※
언데드와 인간의 대전쟁.
전쟁 초기엔 정보가 통제되어 일반인들이 잘 접근하기 어려웠지만 황제가 직접 전쟁에 나서면서부터는 관련 영상이 넘쳐나고 있었다.
주로 제국군이 융단 포격으로 언데드를 무찌르는 영상.
드론이 촬영한 걸 유럽 제국 정부 홍보부가 잘 편집해, 너튜브나 TV를 통해 내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다른 영상들도 존재한다.
주로 개인 방송자가 올리는 컨텐츠.
사실 이게 인기가 더 높다.
참혹한 전쟁의 양상을 가감 없이 보여주고 있었으니까.
전쟁에 참전한 제국군이 되려 언데드로 변한 모습.
모스크바를 벗어나 동부 유럽을 활보하는 대규모 언데드 군단.
그런데 갑자기 너튜브에 새로운 영상들이 수십 개씩이나 올라왔다.
올린 사람들은 대부분 하르키프 시민.
영상을 본 사람들은 경악했다.
이거 진짜가 맞나?
혹시 조작이나 연출된 거 아닌가?
하지만 제각기 다른 각도에서 찍은 영상만 해도 수십 개인 판에.
└ 원숭이 떼가 언데드를 말살시켰다, 조작도 아니고, 환장하겠네. 저게 믿어져?
└ 언데드에 원숭이, 세상이 망할 징조구나.
└ 망하기는 무슨! 원숭이는 우리 편인데?
└ 그렇긴 하지. 언데드와 마인에겐 무자비한 원숭이, 그러나 인간들에겐 따뜻하지.
사람들은 원숭이들을 좋아했다.
인간들에겐 그 어떤 위해도 가하지 않는 그들.
심지어 앞에서 춤추고 놀면서 개인기까지 부려댔다.
└ 근데 왜 갑자기 사라진 거야?
└ 그러게. 마치 비눗방울 터지듯,
└ 깔끔하잖아. 위기에 빠진 인간들을 구해주고 홀연히 떠나는 원숭이 군대.
└ 알렉스 카이사르 황제보다 원숭이들이 훨씬 낫네.
└ 황제가 엎드려 절해야 하는 거 아니야?
└ 어쨌든 원숭이보다 못하다는 건 입증됐지.
한 커뮤니티의 유저 한 명이 흥미로운 가설을 제시했다.
└ 혹시 그거 아닐까?
└ 그거라니?
└ 원숭이들 털이 황금색이었잖아.
└ 진한 황금빛이었지.
└ 하나같이 똑같이 생겼고. 또 숫자를 봐. 수십만 마리가 한꺼번에 움직였어, 키예프 연합 주위에 마땅한 원숭이 서식지도 없는데 말이야.
맞다.
뜬금없이 나타났다.
하늘에서 떨어진 건지. 땅에서 솟아났는지도 모르게.
└ 그래서 말하고자 하는 게 뭔데?
└ 만약 나타난 원숭이들이 분신이라면?
└ 분신? 갑자기 분신이 왜 나와!
└ 이쯤 되면 생각나는 거 없어? 분신과 원숭이.
└ 어?
설마···,
모두가 하나의 대상을 떠올렸다.
황금 원숭이, 언데드도 씹어먹는 막강한 힘, 분신처럼 똑같은 생김새들.
아주 오랜 옛날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컨텐츠로 사람들에게 사랑받아온 소설 속 캐릭터.
└ ···손오공? 제천대성?
└ 빙고!
└ 무슨 말도 안 되는.
└ 아니야. 신빙성이 있어. 모든 상황이 정확하게 들어맞는데?
└ 그럼 진짜 제천대성이 지구에 있다고? 인간을 구하기 위해 분신을 불러냈단 말이야?
└ 오오! 반야바라밀!
전 세계 커뮤니티가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 ※ ※
아메리카 공화국에서도 황금 원숭이 떼는 연일 화제였다.
백악관 빌리 피트먼 대통령이.
"자네들은 어떻게 보나? 진짜 소설 속 존재가 현실에 나타난 건가?"
안보 보좌관이 어깨를 으쓱하면서 질문에 답했다.
"뭐, 알고 보면 네크로맨서나 언데드도 서양 문화의 창작물 아니겠습니까. 이 상황에서 동양의 소설 캐릭터가 나타났다 한들···, 솔직히 300년 전 마나의 침범부터 기존의 과학 상식은 무너진 거나 마찬가지였죠."
빌리 피트먼도 수긍했다.
틀린 말이 아니니까.
"어무튼 알렉스, 그놈의 표정이 궁금하군. 혼자 받아야 했을 스포트라이트를 원숭이들이 다 가져가 버렸으니까."
"쌤통이죠."
삼한제국 황궁에서도 류태현 황제가,
"황당한 세상이야. 제천대성이라니."
"원래 세상은 늘 그래왔죠. 그보다는 이번 전쟁으로 깨달은 게 많습니다."
"뭐가?"
"정보 수집이 너무나 안 되고 있습니다. 당장 블랙 마피아건만 해도 그렇고, 언데드 범람이라든지, 느닷없이 전쟁에 출현한 인챈트 마법 신무기도 의심스럽고."
황제도 동의했다.
"흐음, 맞는 말이야. 너무 안일했어."
"제정원을 개편해야 합니다. 해외 파트를 지금보다 더 강화하겠습니다."
"원장 불러서 같이 방안을 연구해봐."
세상에 블랙 마피아 같은 조직이 하나만 있다는 보장도 없다.
"참! 김회장은? 아직 삼한 땅에 있겠지?"
"글쎄요, 일단 연락은 안 되고 있습니다만."
잠시 생각하다 말을 이어가는 류태현 황제.
"···내 생각인데 말이야, 이번에 나타난 원숭이 떼, 혹시 김회장과 관련 있는 게 아닐까?"
"쯧쯧, 김태주 회장이 제천대성이라도 된단 말씀이십니까? 머리에 긴고아도 없고, 여의봉도 안 가졌고, 근두운도···, 어?"
고개를 갸웃하는 금수호.
"근두운이라."
지금까지 김태주가 보여준 신출귀몰한 움직임.
중국에서 비욘드 엘리트 마수를 처단하고, 어느새 삼한 땅에 온다든지, 뉴서울에 있던 사람이 갑자기 구례에서 나타나고.
"그 복숭아도···,"
"아!"
제천대성의 복숭아 에피소드는 너무나 유명하다.
"에이, 설마!"
"···내가 너무 오바한 거지?"
"맞습니다. 그럴 리 없죠. 김회장은 사람인데. 하하하."
"그, 그렇지. 억측이 심했어. 하하하."
한편, 유럽 모스크바 서부 전선.
제국군을 지휘 중인 알렉스 카이사르 황제도 황금 원숭이 떼 영상을 봤다.
"이건 또 무슨?"
키예프 연합을 위협하던 대규모 언데드 군단이 원숭이 떼에 의해 싹 청소되었지만 카이사르 황제는 심기가 불편했다.
제국군이 한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뜬금없이 나타난 황금 원숭이들이 주역.
어처구니가 없었다.
황제임에도 불구하고 직접 전쟁에 참전해 언데드에 맞섰지만 정작 세상의 관심은 원숭이 따위에게 집중되고 있다니.
게다가 자신에 대한 온갖 조롱도 쏟아지고 있었다.
졸지에 원숭이만도 못한 황제가 되고 말았다.
"제기랄!"
미적댈 때가 아니다.
"오거스트."
"네, 폐하!"
"모든 화력을 쏟아부어. 오늘 안으로 결판 짓겠다."
"알겠사옵니다."
무리해서라도 드랙 카락스 저놈을 처리해야 한다.
※ ※ ※
쐐애애액!
만리비검이 날았다.
태주는 모스크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지금까지 처리한 언데드 마수의 숫자만도 200만이 넘었다.
가만히 두면 바퀴벌레처럼 무수히 늘어나는 놈들.
근원의 싹을 자를 때까진 돌아가지 않을 생각.
발모제 연구도 마음이 편해야 성과가 나오지.
순간!
'응?'
언데드 마수들이다.
엄청나게 많다.
그리고 무리 중앙에서 놈들을 지휘하며 북상하는 인간 여인.
'낯익은 얼굴이네.'
이름이 카르멘이었던 블랙 마피아의 장로.
꿈속에서 검선과 만나게 해줬던 그녀.
언데드로 부활한 탓인지 앙상한 뼈가 밖으로 드러난 팔다리, 군데군데 살점이 떨어져 나간 얼굴, 머리카락은 거의 다 빠져 민머리 상태였다.
그래도 인간이었을 땐 예뻤는데.
'이래서 발모제 발명이 중요한 거라니까.'
쐐애액!
태주는 놈들을 앞질러,
슈우웃!
땅에 내려섰다.
동시에 저벅저벅 걸어서 언데드 마수 군단을 향해 다가갔다.
저쪽도 자신을 발견했나 보다.
언데드들의 흉흉한 살기가 느껴졌다.
'기력도 다 채워졌고.'
독령은 충만하다.
한번 비우고 나니, 더 많이 채워진 것 같다.
우우우우웅!
태주의 몸에서 강기처럼 발산하는 독기.
독령으로 펼치는 독기방사.
'놀아보자.'
무리에서 떨어져나온 언데드 한 마리가 겁도 없이 달려들었지만.
치지지지직!
태주에게 닿기도 전에 녹아 문드러졌다.
※ ※ ※
선계(仙界).
태상노군은 방구석 폐인 상태였다.
거처에서 나오지도 않았다.
선계 인트라넷이 완성된 이후로 더 심해졌다.
쇼핑몰에서 빔프로젝터와 스크린, 사운드 빵빵한 블루투스 스피커를 구입해서 선계 전용 스마트폰과 연결했다.
간편한 옷차림으로 편안한 침상에 누워 사타구니 벅벅 긁으며 온종일 영화와 드라마만 시청하는 태상노군.
필요한 것이 있으면 쇼핑몰에 접속해 주문하고.
원숭이가 바로 배달해주니까, 바깥에 나갈 필요가 있나?
그때였다.
나풀나풀.
새하얀 나비 한 마리가 태상노군의 방안으로 날아들었다.
"뭔가?"
그리고 태상노군의 앞에서 팟! 하고 사라지더니,
한 장의 편지로 변해 내려앉았다.
"쯧쯧, 이런 전근대적인 방식을 아직도···,"
할 말 있으면 케톡이나 문자로 날리면 되는 데 말이다.
편지는 자미궁에서 왔다.
상위 계 대표자 회의가 있을 예정이니 참석하라는 내용.
"에이, 귀찮게시리."
태상노군을 스마트폰을 들어 누군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노군] : 나요.
케톡!
[독선] : 요즘 뭐하십니까? 얼굴도 통 보이지 않고.
당군악이 답장했다.
케톡!
[노군] : 바쁜 일이 많아서, 아무튼 상위 계 대표자 회의가 열릴 예정이라오.
[독선] : 아! 그런가요? 그런데 그걸 왜 제게?
[노군] : 독선이 회의에 참석해야지.
[독선] : 제가 왜요? 우리 대표자는 노군 아니십니까?
[노군] : 난 뒷방 늙은이고, 솔직히 누구나 인정하는 선계 대표자는 그대 아니었소?
귀찮아서 떠넘길 의도였지만, 뭐, 틀린 말은 아니다.
신선들도 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고.
[독선] : 아니, 갑자기 이러시면.
[노군] : 갈 때 멋들어진 자동차나 몰고 가시오. 천계 자미궁 관리들 기절초풍하게.
[독선] : ···.
메시지 톡을 종료하고,
태상노군은 다시 트렁크 팬티 속으로 손을 넣어 엉덩이를 박박 긁었다.
대표자 회의는 무슨,
영화 볼 시간도 부족한 판에.
< 에이, 설마! > 끝
ⓒ 꾸찌꾸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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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를 왜 울려? >
언데드 흑마법사 카르멘은 서둘러 모스크바로 북상하는 중이었다.
상황이 급변했다.
병력을 분산시켜야 할 때가 아니다.
현재 모스크바 안에서 농성 중인 주인님께 합류해야 한다.
알렉스 카이사르 황제가 이끄는 유럽 제국군의 반격 때문에?
그깟 놈들이 뭐가 두려울까?
언데드 마수 군단을 살찌울 수 있는 먹이일 뿐이었다.
일어난 변수는 따로 있다.
김태주.
주인님의 대적자.
강력한 영혼 연결자.
그가 나타났다.
주인님의 은총을 받아 새로 태어난 장로들이 차례로 소멸당했다.
욘슨도, 마츠모토와 아브라힘도, 모조리 죽었다.
- 어서 늦기 전에···,
그러나!
슈우우웃!
- 아아아!
한 자루 검을 타고 군단의 진로를 막아선 인간.
- ···김태주.
기어코 나타나고야 말았다.
주춤, 주춤,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언데드 마수들.
카르멘도 가슴이 서늘했다.
인간이었을 때도 이런 기분은 아니었는데.
무섭다.
온몸이 갈기갈기 찢길 것 같다.
얼마나 강한지 측정도 불가능.
마치 주인님처럼.
공포를 이기지 못하고 달려드는 언데드 마수 한 마리.
그러나,
치지지지직!
가까이 가기도 전에 녹아내렸다.
- 세, 세상에.
저건 비욘드 엘리드 마수의 강기 보호막 아닌가.
어떻게 인간이 저런 힘을···.
언데드들이 불나방처럼 뛰어들었다.
통제도 불가능했다.
치지지, 치칙! 치지지직!
죄다 녹았다.
매캐한 연기와 함께 말이다.
※ ※ ※
원래 독기방사(毒氣放射)는 공기 중으로 독을 퍼뜨리는 기술이다.
중독을 목적으로, 아주 미세하게, 상대가 알아차릴 수 없을 만큼.
하지만 독령을 깨우치고 난 뒤 독기방사는 이전의 그것과 차원이 달라진다.
독기를 농밀하게 뭉치고 뭉쳐 강기 보호막의 형태로 발현할 수 있었다.
치직, 치지직,
닿기만 해도 언데드들이 지워졌다.
하지만 역시 기력을 크게 소모해야 한다는 단점.
'독기방사는 이 정도로 하고.'
소득이 없는 전쟁.
재미도 없는 사냥.
마수는 죽이면 결정체라도 나오는데, 언데드로 변한 탓인지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빨리 끝내자.'
스슷! 스스슷!
무한공간에서 줄줄이 나오는 암기.
만천화우의 시간이다.
일만 개 이상의 암기에 독기와 강기, 선기까지 부여했다.
츠피피피핏! 츠핏!
하늘에서 암기의 폭우가 떨어진다.
푸푸푸푸푹!
태주는 카르멘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독령은 훌륭히 제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기력 소모만 빼면 달리 할 것도 없다.
그저 바라만 보기만 하면 된다.
특정 대상에게 살의를 발현하면 독령이 알아서 타겟을 지정한다.
하는 일이라고는 그저 암기들을 하늘 높이 쏘아 올리기만 하는 것뿐.
후두두두둑!
푸푸푸푸푹!
절대 빗나가지 않았다.
도망가도 암기가 스스로 쫓아갔다.
저 앞에 자신이 한번 죽였던 흑마법사 카르멘이 보였다.
지금은 언데드로 변해 몰골이 형편없었지만.
태주가 그쪽으로 걸어가자 악착같이 막아서는 언데드 마수들.
'길을 열어줘.'
태주가 움직인 건 독령뿐이 아니었다.
철장 선인의 보패, 영(靈)을 가진 암기.
츠핏!
신령비도가 날았다.
푸푸푸푹! 푸푸푸푸푸푹!
앞길을 막아서는 언데드들을 관통하고, 또 관통하고, 다시 돌아오면서 꿰뚫어버리고.
동시에 하늘에선 만천화우.
후두두두두두!
길이 뻥 뚫렸다.
다리를 후들거리면서 벌벌 떨고 있는 그녀.
카르멘은 정신이 나간 상태.
뭐라도 해야 하는데 몸이 뻣뻣하게 굳어버렸다.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범접해서는 안 되는, 절대적인 권위의 존재를 마주한 느낌.
저자는 신(神)인가?
이곳, 지구는 신성이 부재한 차원 아니었나?
흑마기가 꽁꽁 묶여버렸다.
눈만 마주쳤는데도 말이다.
"다시 살아났네?"
- 너, 너···,
"뭐라도 해봐. 왜 쥐새끼처럼 벌벌 떨고만 있나, 내가 그렇게 무서워?"
- 네, 네깟놈이 뭐가 무, 무섭다고.
"무섭구나."
굳이 판관의 반지를 확인할 필요도 없다.
행동이 증명하고 있으니까.
"이미 한번 죽였는데, 또 죽이려고 하니 미안하긴 하다."
- 이, 이놈!!!
"잘 가라. 또 볼 수 있으면 보고."
- 아, 안 돼! 아직 주인님의 대, 대업이···,
"조금만 기다려. 그 주인도 함께 보내주지."
태주는 거미줄에 걸린 곤충마냥 움직이지 못하는 카르멘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 꺄아아아아악!
치지지지지직!
머리가 녹았다.
상체가 허물어지고 하체도, 육신이 전부 한 줌 독수로 변했다.
언데드 마수군단은?
전장엔 온통 암기들, 강기 서린 암기와 흑암철 주괴가 번뜩일 때마다 모든 게 파스스, 사라졌다.
정리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휴우,'
또 독령을 싹 비웠다.
'하나 남았나?'
다시 만리비검을 타고 최종 목적지 모스크바로.
빠르게 날았다.
쐐애액! 콰콰콰쾅!!! 콰콰콰콰콰쾅!
가까이 가면 갈수록 커지는 폭음 소리.
잠시 비행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대단하네.'
멀리서 봐도 보인다.
불바다로 변한 모스크바가.
그리고 쉴 새 없이 떨어지는 로켓과 미사일.
콰콰콰콰콰쾅! 콰콰콰콰콰콰쾅!
알렉스 카이사르 황제가 작정한 것 같다.
저렇게 엄청난 화력을 집중시키는 걸 보면.
'흐음,'
이러다가 핵폭탄이라도 떨어질라.
삼한의 류태현 황제가 자신을 말렸던 이유도 그거다.
제국군과 언데드가 교전하는 상황에서 유럽 제국군이 미친 척하고 핵이라도 날리면 어떡하겠느냐고.
맞는 말이다.
또한 핵을 유럽 정부만 가지고 있나?
드렉 카락스, 그 새끼도 소유하고 있을지 모른다.
이미 몇 번 터뜨리기도 했었고.
'지금 안으로 들어갔다간 눈먼 미사일이라도 한 대 맞으면···,'
무리할 필요는 없지.
엄청나게 때려대고 있으니 조만간 결판이 날 터.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자.
언데드 마수 군단을 제외하면 모스크바 안엔 아무도 없을 것이다.
태주는 불타는 모스크바의 모습이 훤히 보이는 장소에 내렸다.
무한공간에서 캠핑용 의자를 꺼내 앉고 선도 하나를 으적으적 씹었다.
콰콰콰콰쾅! 콰콰콰콰콰!
여전히 계속되는 폭격.
어느 정도 떨어뜨리고 나면 각성자들을 위시한 전투 부대들이 투입되겠지.
할 건 다 했다.
유럽 제국군이 방치한 언데드 마수는 남김없이 소탕했다.
더불어 놈들의 키예프 연합 침공 시도를 막았으며, 시민들의 생명도 구했다.
그리하여 남부 전선은 해결됐다.
남은 전투 현장은 저 망해버린 모스크바.
'아직 멀었나?'
명색이 유럽 제국군인데, 저렇게 엄청난 화력을 퍼붓고 있는데, 삼한의 류태현 황제만큼이나 강하다는 유럽의 알렉스 카이사르가 친히 참전했는데.
순간!
찌르르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은 배송 신호.
"왔구나."
역시 엄청난 양의 천계꽃과 흑암철.
'털은 없네.'
하긴, 제천대성의 몸에서 자라는 털이다.
막 뽑을 수 있나?
발모제 발명이 시급하다.
사실 시간문제였다.
지금까지 천계꽃은 MRC 제조에만 쓰였다.
그것도 단 두 종류, 금정화(錦淨花)와 음양화(陰陽花)만.
그러나 이번에 만든 레이드용 도핑 물약에 다른 종류의 천계 꽃이 들어갔다.
초령화(蕉靈花)라는 꽃이었다.
그 꽃이 도핑 물약의 부작용이 대폭 사라지게 했다.
발모제 연구도 천계 꽃을 중심에 두고 진행할 생각.
물건을 교체하고,
공유창고 반짝임의 시간도 늘어나서 여유가 있다.
이번에 보낼 것은 선계 전용 스마트폰 2차 분량 5,000개.
거기에 온갖 자료가 들어있는 추가 데이터 서버.
더불어 귀곡 선인이 요청한 스마트폰 어플 프로그램 제작 툴이 들어간 데스크탑 컴퓨터까지.
이걸 위해 김동훈이 밤낮없이 작업했다.
친목 모임에 참여하지 못할 정도로 바쁘게.
물론 따로 찾아가 선도와 신선주를 건네주긴 했지만.
'그나저나 공간이 무지하게 커졌네.'
무한공간도, 공유창고도.
'여기서 조금만 더 커지면 집도 들어가겠어.'
예를 들어 내부에 거실과 침실, 싱크대와 화장실 등등 설비가 완전하게 갖춰진 고급 컨테이너 주택.
구례로 돌아가면 구해다 넣어보자.
쓸모가 많을 것 같다.
태주는 의자에 편하게 기대고 앉아 무한공간을 정리했다.
뒤죽박죽 섞인 천계 꽃은 종류별로 분류하고, 흑암철은 한 번에 꺼낼 수 있도록 차곡차곡 쌓고.
공간 한구석에 황금빛 털 뭉치들이 보인다.
제천대성의 분신을 소환할 수 있는 보패.
아직 많이 남아있다.
'마침 심심한데···,'
조심조심 딱 한 가닥 꺼내서,
휘잇!
펑!
나타나는 황금 원숭이 한 마리.
"우낏?"
태주를 바라보면서 무슨 일을 시킬 것인지 물었다.
"그냥 심심해서, 같이 놀자고."
"끼기기기긱!"
분신체가 한 바퀴 공중제비를 돌았다.
펑, 펑펑! 퍼퍼퍼퍼퍼퍼퍼펑!
분열로 늘어나는 원숭이들.
그리하여 백 마리의 분신들이 모였다.
콰콰콰쾅! 쾅쾅!
폭음이 들리던 말든, 서로 장난치며 놀기 시작하는 제천대성의 분신들.
"하하하하,"
태주는 크게 웃었다.
분신들이 함께하니 무료함 같은 건 전혀 없었다.
쾅쾅! 쾅, 쾅쾅, 콰아···,
폭격이 조금 잠잠해지는 것 같기도 하다.
※ ※ ※
알렉스 카이사르는 마침내 결정을 내렸다.
"그만하면 됐다. 폭격은 중단한다."
지금까지는 매우 순조로웠다.
언데드들의 숫자도 꽤 줄였고, 드렉 카락스를 압박해 다시 모스크바로 밀어 넣었다.
각성자 특수부대와 탱크들이 도시 포위를 완료했고.
"이제 결판을 내겠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폐하!"
함께 싸울 각성 군인 2천 명도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
최소 슈페리어 익스퍼트, 태반이 마스터인 최정예 각성자들.
모두 최고의 장비와 무기로 무장했다.
"오늘, 전쟁을 끝낸다. 저 간악한 네크로맨서를 처치하고 유럽의 평화를 지킬 것이다."
"뜻대로 이루어질 것이옵니다."
"내가 앞장서겠다. 그리고 단 한 사람도 죽지 마라!"
와와와와와와!
함성이 터져 나왔다.
황제와 함께 하는 전투.
유럽의 평화를 위한 명분 있는 전쟁.
각성자들의 사기가 하늘을 찔렀다.
하나같이 검과 무기들을 번쩍 들고서,
지이잉, 지이잉, 지이잉, 지이이···,
마나 블레이드가 광선검처럼 솟아났다.
"언데드와 네크로맨서의 완전한 말살을!!!"
스팟!
알렉스 카이사르와 2천 명의 각성자들이 무서운 속도로 모스크바로 돌진했다.
그 뒤를 수백 개의 촬영용 드론들이 쫓아갔다.
※ ※ ※
선계(仙界).
당군악은 주선의 바에서 얼음을 넣은 마티니 한잔을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중.
"노군이 무슨 의도인지 모르겠구려. 날 보고 상위계 대표자 회의에 나가라니."
쉐이커를 흔들던 주선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럴 만도 하지. 할 일이 없잖소. 사고 치는 신선들이 있나, 요괴들도 잠잠하고."
"아무리 할 일이 없어도···, 선계의 법도가 무너질 판이오."
"법도는 무슨, 이제 선계의 법도는 독선, 그대에게 있지 않소이까. 태상노군도 그렇게 판단했기 때문에 넘긴 거지."
하지만 당군악은 동의하지 않았다.
노군의 의도를 누가 모를 줄 알고.
쇼핑몰에서 빔프로젝터와 스크린을 사갈 때부터 알아봤다.
그전에 못 했던 게으름, 이 기회에 마음껏 피우겠다는 의도일 터.
"아무튼 기대되는구려. 가서 상제와 용왕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주고 오시오."
"에잉!"
당군악은 인상을 찌푸리며 마티니를 홀짝 들이켰다.
순간!
"독선."
선계 인트라넷 메인 서버실에 있던 귀곡 선인이 와서,
"왜 그러시오?"
"쇼핑몰 매출 집계를 하다가 특이 사항이 발견되어 알려주려고 왔소."
"특이 사항이라니."
"30만 코인짜리, 스위스 파텍 손목시계가 팔렸소."
"음?"
그 비싼 걸 누가?
파텍을 살만한 사람이라면···,
당장 생각나는 이들이 서왕모나 염라 정도.
서왕모는 시계에 큰 관심이 없고,
"염라가 샀소?"
"아니오. 해맑이가 일시불로 구매했소이다."
"···해맑 선녀?"
그럴 리가!
욕심이 없는 해맑이가 시계를 탐낸다고?
"배송은?"
"원숭이가 했지."
당군악은 즉시 제천대성을 호출했다.
"불렀소이까?"
극장에서 영화를 보다가 내려온 듯했다.
머리엔 스냅백을 삐딱하게 걸쳤다.
목에는 두꺼운 체인형 금목걸이, 팔목엔 주렁주렁 금팔찌, 손가락에도 금반지,
상의는 흰색 민소매 셔츠, 똥 싼 듯한 배기팬츠와 발목까지 오는 농구화를 신고서.
원숭이 힙합퍼라고 불러도 무방한 옷차림.
"탕진 플렉스로구만."
"···스웩이라고 생각해주시오."
"잘하면 랩도 하겠군."
"연습 중이오."
선계 신흥 부자로 떠오르는 제천대성.
분신을 이용해 선계 월드 관리, 각종 노동이나 심부름, 음식이나 커피 배달, 쇼핑몰 배송을 도맡아 하고 있었다.
"물어볼 게 있는데, 파텍 손목시계 배송했지 않소? 해맑이에게."
"잠깐만···."
제천대성이 눈을 지그시 감고 분신들과 교감을 나눴다.
그러더니.
"배송은 문제없었소. 사인까지 받았고."
"혹시 해맑이 말고 다른 사람은 없었는지?"
"상제가 있었다고 하더이다."
"···상제?"
이제야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것 같다.
바 테이블을 손으로 쾅! 치며 분노하는 주선.
"이런 빌어먹을 영감탱이가, 해맑이 코인이 자기건 줄 아나?"
"선물은 못 해줄망정, 그런 파렴치한 짓을 저질러?"
"당장 자미궁으로 쳐들어갑시다."
"···먼저 상황이 어떻게 되는지 알아보고."
"알아볼 게 뭐가 있나?"
당군악은 일단 멀티플렉스 바깥으로 나갔다.
이리저리 두리번거려 보니
마침 머리에 커다란 꽃을 달고 선계월드 쪽으로 폴짝폴짝 뛰어가는 해맑 선녀.
지구에서 저러면 미친 사람 취급받는데···,
아아! 해맑이에겐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
"해맑 선녀, 어디 가십니까?"
"앗! 독선님! 안녕하세요오!"
"하하하, 내가 물어볼 것이 있어서 불렀소이다."
"뭐든지 물어보세요오."
당군악은 해맑의 초롱초롱한 눈을 지그시 바라보며 물었다.
"쇼핑몰에서 산 시계는 마음에 들었소?"
"넵! 정말 기뻐하시던···, 아니! 기뻤어요."
표정이 살짝 이상하다.
뭔가 숨기는 듯한 느낌.
시계는 상제에게 간 것이 분명해 보였다.
뒤탈을 우려해서, 해맑이에게 입단속을 시켰을 테고
"허허, 상제께서 시계를 그렇게 마음에 들어 할 줄은 꿈에도 몰랐소."
"아니에요오! 엄청 좋아하시던에요오···, 으엣? 아, 아니, 제, 제가 조, 좋아하셨, 아니 좋아요오."
"하아, 해맑 선녀."
"···네네?"
"천인께서 이러시면 아니 됩니다. 선의의 거짓말이라도 남을 속이는 건 똑같지 않습니까?"
"으음, 어어어, 거, 거짓말···,"
갑자기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는 해맑 선녀.
"호, 혹시, ···저 지옥 가나요?"
"그, 그게 아니고."
"으아아! 지옥 가면 안 되는데. 으앙!"
"아, 아니, 우, 울지 마시오,"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대성통곡을 하는 해맑 선녀.
그러자 멀티플렉스 안에 있던 신선들이 화들짝 놀라며 뛰쳐나왔다.
"뭐야? 어떤 놈이 해맑 선녀를 울려?"
"누구야? 주리를 틀어도 시원찮을!"
"잡아다 혼쭐을 내겠다!"
그러다 해맑 앞에서 어쩔 줄을 몰라 하는 당군악을 발견하고는.
"···독선?"
"설마 독선이 그랬소?"
당군악이 더듬거리며 변명했다.
"오해요, 난 그저 쇼핑몰에서 해맑이가 파텍 시계를 산 연유를 알아보려고···,"
그러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시계? 고작 시계 가지고 해맑이를 울렸다고?"
"허어, 그렇게 안 보였는데. 실망이군."
"시계를 백 개 사줘도 모자랄 판에!"
"내가 누누이 말했지, 선명에 독(毒)이 달리 들어갔겠소?"
"쯧쯧, 원숭이와 짝짜꿍할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어."
난리가 났다.
쏟아지는 비난과 손가락질.
"선계 대표자 자리에 오르더니 기고만장이야!"
"이 사태를 어떻게 수습할 거요? 당장 책임지시오."
"아주 뼛속까지 자본주의에 물들었어."
"당장 선계 보패드림에 올려 참교육에 들어갑시다."
"넷신선들의 힘을 보여주겠소."
스마트폰을 꺼내 열심히 글을 올리는 신선들.
'어···,'
당군악은 그전에 이야기를 나눴던 주선와 귀곡, 그리고 제천대성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오해를 풀어달라고.
하지만 슬며시 눈을 피하며 외면하는 그들.
'이런 배신자들이!'
역시 세상에 믿을 신선 하나도 없다.
< 애를 왜 울려? > 끝
ⓒ 꾸찌꾸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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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가 왜 들어가? >
알렉스 카이사르는 자신의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드렉 카락스가 무시무시한 네크로맨서라 하더라도 본질은 마법사.
주문을 완성하기도 전에 근접으로 바짝 붙어 칼질이든, 도끼질이든, 무조건 때려 갈겨 몸을 쪼개놓으면 된다.
물론 드렉 카락스라고 해서 자신의 약점을 모를까?
절대 거리를 허용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를 위한 대비책도 마련했다.
천재 대마공학자 빈센트 모레티가 만들어낸 아이템.
절대 방어 펜던트로 마법 공격을 무시하며 급속 돌진, 유지 시간이 20초라 시간도 충분하다.
그리고 완전 속박의 토템.
특정 범위에서 1분간 놈을 허수아비로 만들 수 있다.
블링크나 플라이로 도망치지 못하도록,
이미 그전에 시연해봤다.
대신 착용시켜 작동이 순조로운지 지켜보기도 했고, 직접 온몸으로 검증도 했다.
타타타타탓!
주저함 없이 돌격하는 제국군 정예 각성자들.
쿠쿠쿠쿠쿵!
그리고 편차를 두고 뒤를 따라오는 탱크와 헬기, 장갑차 등의 기계화 부대.
든든했다.
지고 싶어도 질 수 없는 싸움.
위이이이잉!
하늘 위 촬영용 드론이 이 영광된 승리의 현장을 생생하게 찍을 것이다.
유럽의 구원자, 세계의 메시아로서 우뚝 선 자신을,
그깟 노란색 원숭이들 말고.
카이사르 황제는 모스크바 붉은 광장으로 들어섰다.
폭격으로 엉망진창이 된 시내.
진형을 짜서 제국군을 맞이하는 언데드 마수 무리.
폭격으로 인해 많이 줄었다.
감당해낼 수 있는 숫자.
그리고 광장 중앙, 허공에 둥둥 떠올라 있는 기괴한 형색의 네크로맨서.
"드렉 카락스!!!"
"클클클, 교활한 놈, 아직도 각성자 흉내를 내고 있구나."
"닥쳐라! 더러운 언데드야!"
"기다렸다. 어서 오너라, 널 나의 충직한 수하로 다시 태어나게 해주지."
두두두두두두둑!
콰쾅! 콰콰콰쾅!
각성 정예 제국군과 엘리트 언데드 마수 부대가 충돌했다.
지이잉! 찌잉!
서걱, 서거걱!
콰악! 콰지직!
곳곳에서 벌어지는 난전.
드랙 카락스도 한 수가 있었다.
유럽의 황제, 한번은 부딪혀야 할 놈.
사기로 가득 찬 모스크바 시내.
죽어간 인간과 마수들이 남긴 원념과 영혼.
그것들을 제물 삼아 여길 지옥의 땅으로 만든다.
헬 마쉬 오브 커럽션.
타락과 부패의 지옥 늪.
죽은 자가 아니더라도 결국엔 언데드로 변하고 마는 데우스 리치의 흑마술 주문.
'어서 들어오너라.'
황제가 맹렬하게 돌진했다.
마나 블레이드가 짙게 어린 검을 휘두르며.
직접 선두에 나서며, 뒤로는 제국군 마스터들이 보좌를 받아, 쐐기 형태로 엘리트 언데드 마수의 진형을 뚫어냈다.
거의 지척이었다.
'다 왔군.'
스윽,
드렉 카락스는 땅으로 내려서면서 들고 있는 지팡이를 땅에 꽂았다.
콱!
우우우우웅,
스슷, 스슷, 스슷···,
검게 변해가는 광장의 바닥, 끈적하고 물렁물렁해지더니, 딛고 있던 발들이 땅속으로 푸욱, 푹푹 들어갔다.
걷기 힘들 정도로.
심지어,
쑤우우욱!
늪 바닥에서 앙상한 해골 손이 올라와, 위를 지나가는 제국군의 종아리를 잡고 끌어당겼다.
"으악!"
"제, 제기랄!"
"폐하를 보호해라!"
"커어어억···,"
마스터들은 견뎌냈지만 약한 익스퍼트들은 언데드로 점점 변해갔다.
황제 또한 지옥늪의 방해로 주춤했고.
'조금만 더.'
이 정도 난관도 예상 못 했을까.
곧 사정거리 안에 들어온다.
억지로 발을 움직여 앞으로 걸었다.
더더욱 거세지는 엘리트 언데드 마수의 공격과, 끈적한 늪, 발목을 잡아 오는 손.
우우우웅,
파삭, 파스슥, 파사삭!
황제의 전신에 삐쭉삐쭉, 가시처럼 생긴 강기 보호막이 생겨났다.
끈질기게 전진했다.
가시 보호막이 늪에서 나온 손을 바스러뜨렸다.
한발 앞으로 내디뎌서,
츠핏!
마나 블레이드가 달려오는 엘리트 언데드 마수를 일검에 갈라버렸다.
서거거거걱!
한 걸음 더.
드렉 카락스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제국군 전체를 향해 내려앉은 광역 흑마법 저주 공격.
츠츠츠츠츠···,
"타락하라! 부패하라! 썩어 문드러져라!"
각종 저주의 향연.
황제는 오러를 일으켜 저항했다.
또 한 발짝, 한 발짝, 한 발짝···,
극도로 쇠약해져 발도 뗄 수 없는 순간에 와서야.
'됐어.'
지이잉!
드디어 절대 방어 펜던트가 작동했다.
파슛!
투웅!
튕겨 나가는 저주 주문,
완벽한 방어 효과.
역시 천재 대마공학자 빈센트가 만든 역작이었다.
드렉 카락스가 흠칫 놀랐다.
알렉스 카이사르는 비릿하게 웃었다.
"끝났군."
놈이 블링크를 시전하기 전에,
스팟!
쐐액!
가까이 근접해서 주머니에서 은빛 금속으로 만들어진 직육면체를 꾹 눌러 앞쪽으로 던졌다.
툭!
스우우우우웅!
토템에서 발생하는 엄청난 마나의 유동.
화아아아아악!
눈이 부실 정도로 환한 빛과 함께.
파파파파파팟!
현장에 있는 모든 이들의 몸을 꽁꽁 묶어버렸다.
제국군도, 언데드 마수도, 드렉 카락스도,
그런데?
"크헉!"
이게 무슨 일이지?
황제는 믿을 수 없었다.
속박이 작동하는 건 확인했다.
'왜 나까지?'
그도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전신의 마나가 토템으로 빨려 들어갔다.
온몸이 조각조각으로 분해되는 것 같았다.
'대, 대체?'
시전자를 제외하고 눈앞의 적만 움직이지 못 하게 하는 아이템 아니었나?
빈센트도 그렇게 설명했고, 직접 실험했을 때도 확인했었다.
이런 효과는 듣지도, 경험하지도 않았다.
드렉 카락스도 황당한 표정.
흑마기가 금속의 토템으로 흘러 들어간다.
저항도 못 했다.
속박?
데우스 리치가 그깟 주문에 영향을 받을 리가.
하지만 지금은 꼼짝없이 걸리고 말았다.
저게 어떤 아이템이길래.
"너, 무, 무슨 짓을 한 거냐?"
그리고,
알렉스 카이사르와 드렉 카락스 사이에.
째애애앵!
사람 키보다 조금 더 큰 타원형 거울 같은 것이 나타났다.
거울 표면이 물결처럼 일렁이고 있었다.
"···어?"
"거, 거울?"
저게 뭐지?
뜬금없이 대형 거울이 나타나?
순간!
쑤우우우욱!
사람의 다리가 거울 표면을 비집고 나타났다.
"저게 뭐···,"
"···."
다 빠져나왔다.
사람이었다.
머리엔 화려한 관을 쓰고, 화려한 복색을 입은 중년 남자.
알렉스 카이사르는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바로 자신이었기 때문이었다.
정확히는 같은 영혼,
다른 세상의 아발란 제국의 황제, 소드 카이저 트릴리안 랜서.
"트, 트릴리안?"
"알렉스···, 네가 왜?"
그런데,
치지지직, 치직! 치지지직!
둘 사이에서 오고 가는 사슬처럼 생긴 번개 줄기들.
"뭐?"
"아···,"
스르르르륵!
두 개의 몸이 서로에게 끌려가기 시작했다.
거리가 너무나 가까웠다.
알렉스 카이사르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불길했다.
동일한 영혼끼리 붙게 된다면?
이거 설마?
"빈센트 모레티!!! 이 개자식, 죽일 테다! 죽여 버릴 테다!!!"
치지직!
도망갈 새도 없이 두 개의 육신, 같은 영혼들이 하나로 합쳐졌다.
※ ※ ※
붉은 광장 전투가 벌어지기 30분 전.
태주는 슬슬 캠핑용 의자를 접어 무한공간에 넣었다.
드디어 제국군의 융단 포격이 멈췄다.
어느 틈에 조용해지는 모스크바.
저 멀리서 은은하게 함성이 들려왔다.
'지상군 진입이군.'
당연한 수순이었다.
포격만으로 전쟁을 끝낼 순 없다.
지상군이 마지막 차례.
'슬슬 들어가 볼까.'
함께 놀던 제천대성의 분신들도 다 사라졌다.
'간단한 준비 정도는 해야지.'
태주는 무한공간에서 호신부(護身籍)를 꺼내 가슴에 붙였다.
하루에 한 번이지만 치명적인 공격을 막아주고 30초간 무적상태를 유지해주는 단주 선인의 부적 보패.
이거면 핵마저도 걱정할 필요 없다.
'투명부(透明籍)도 붙이고.'
괜히 전장 한복판에 나타났다가 오해를 살 수 있다.
저 먼 타국의 제약회사 회장이 전투가 벌어지는 현장에 모습을 드러낸다는 건 누가 봐도 이상한 일이니까.
쐐애애액!
태주의 만리비검이 모스크바를 향해 쏘아졌다.
순식간에 도착한 붉은 광장.
'오!'
막 시작됐구나.
집중 폭격이 효과가 있었던 모양.
언데드 마수들의 숫자가 매우 적었다.
그리고 전쟁의 주역들을 눈으로 보게 됐다.
알렉스 카이사르 황제와 네크로맨서 드렉 카락스.
둘 사이에 벌어지는 치열한 전투.
'확실히 대단하긴 해.'
드렉 카락스야 영혼 연결자이니 그렇다 쳐도, 알렉스 카이사르는 각성자에 불과한데···,
'응?'
황제의 얼굴을 보니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투명 상태의 태주가 만리비검을 움직여 광장 가까이 내려왔다.
'황제가···,'
알렉스 카이사르의 얼굴에 나타난 각성 문양.
명백한 가짜였다.
'각성자가 아니었다고?'
그럼에도 저렇게 강한 기운을 품고 있다면···.
'···알렉스 카이사르도 영혼 연결자였어.'
숨기고 있었던 것이 틀림없다.
지구상에 도대체 몇 명의 영혼 연결자들이 있을까?
그때였다.
찌이잉,
거대한 마나의 유동과 함께 한창 전투를 벌이는 알렉스와 드렉 사이에 희한한 거울이 생겨났다.
동시에 그 안에서 한사람이 빠져나왔다.
치지지직, 치지지직!
알렉스와 정체불명의 남자 사이에서 오고 가는 사슬의 번개.
'이런!'
번개 사슬.
경험해 본 적이 있다.
선계에서 당군악과 처음 만났을 때,
알렉스와 거울에서 나온 존재, 서로 생김새도, 풍기는 분위기도 일치했고.
그렇다면?
"빈센트 모레티!!! 이 개자식···,"
파지지지지지지···,
번개 사슬이 서로를 끌어당겼다.
눈 깜짝할 새 합쳐지는 두 사람.
"미친!"
같은 영혼의 합일.
합쳐진 육체가 일순 부풀어 올랐다.
마치 전구처럼 빛났다.
"끄으으으···,"
그리고,
꽈광! 꽈과과과과과광!
대폭발이 일어났다.
무시무시한 파동이 모스크바를 휩쓸었다.
촤라라라라라락!
유럽 제국군 각성자들이 파동에 휘말려 소멸했다.
뒤에서 천천히 진입하던 탱크도, 헬기도, 장갑차도.
시내의 모든 건물 또한 가루가 되어 허물어져 내렸다.
언데드들도 마찬가지.
심지어 드렉 카락스마저도.
그 어떤 것도 제 형체를 유지하지 못했다.
태주라고 다를까.
덮쳐오는 강력한 파동.
그러나,
위잉! 위이이잉.
호신부의 작동으로 몸에 생성되는 보호막.
완전한 평지로 변한 모스크바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오직 태주뿐이었다.
※ ※ ※
유럽 제국 메가 로마.
황립 결정체 공학 연구소.
모스크바에서 일어난 모든 과정은 촬영용 드론에 의해 생생하게 전송되고 있었다.
물론 폭발로 인해 드론이 박살나면서 영상전송이 중단되긴 했지만.
그래도 직전까지는 관찰했다.
피식, 웃음을 흘리는 빈센트 모레티.
'실험은 성공했네.'
게이트가 만들어졌다.
가능성은 확인했다.
차원과 차원의 직접 연결.
두 개의 같은 영혼이 합쳐졌을 때 나타나는 결과도.
'우리 가설이 맞았군.'
빈센트 자신도 영혼 연결자.
첫 연결을 경험했을 때부터 궁금했다.
비록 간접적이지만 영혼과 영혼이 만날 수 있다.
그럼 실제 육신은?
세상과 세상은?
물질과 물질이 만날 수도 있지 않을까?
예를 들어 다른 세상의 물건이나 사람들이 이쪽저쪽으로 건너갈 가능성 말이다.
그와 같은 영혼인 다른 세상의 대마공학자 자크 델루안의 생각도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서로 영혼이 연결될 때마다 그 주제에 대해 함께 토론하고 연구를 해왔다.
차원 연결 또한 영혼을 매개로 이루어진다.
그래서 알렉스 카이사르의 같은 영혼인 트릴리안 랜서가 그 자리에 나타났었던 것이고.
하지만 영혼과 영혼이 합쳐졌을 때의 부작용.
더불어 차원 게이트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방법.
아직 풀어야 할 과제가 많다.
'뭐, 시간문제니까.'
빈센트 모레티는 다니엘에게 지시했다.
"마무리는 다 했나?"
"네."
"비행기는 준비됐지?"
"네."
"폭로할 준비도?"
"네."
"아프리카에 도착해서 자리를 잡으면 바로 뿌리도록."
이제 곧 영혼 연결은 비밀이 아니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애써 찾으려 하지 않아도 영혼 연결자들이 여기저기서 자연스럽게 드러날 것이다.
주머니 속 송곳은 숨기지 못하는 법이니까.
※ ※ ※
태주는 허탈한 표정으로 모스크바, 아니 모스크바였던 곳에서 홀로 서 있었다.
그냥 평지로 변했다.
도시 하나가 사라진 셈.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결과였다.
'분명 같은 영혼이었을 거야.'
선계에서 경험했던 현상과 똑같았으니까.
다른 점이라면 자신과 당군악은 신선들이 막아서 합쳐짐 현상을 피할 수 있었고, 알렉스 황제는 그러지 못했다.
호신부가 작동할 정도로 엄청난 규모의 폭발과 파동.
거의 핵폭발과 다를 바 없었다.
만약 자신과 당군악이 선계에서 합쳐졌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누가 무슨 의도로?
알렉스 카이사르 황제가 스스로 저지른 짓은 아닐 테고.
단서가 있긴 하다.
터지기 직전 그가 마지막으로 부르짖었던 이름.
'빈센트 모레티.'
알아봐야 한다.
일단 삼한으로 가서.
태주는 만리비검을 꺼내려고 했다.
바로 그 순간!
우우우우우우우···,
현장에서 느껴지는 진득한 흑마기의 기운.
더불어,
투툭, 툭툭, 툭! 툭! 툭!
허공에서 뭉치는 물질.
자세히 보니 뼛조각들이다.
'응?'
가루가 합쳐서 조각으로, 조각들이 뭉쳐 뼈다귀로, 뼈다귀가 합쳐서···,
'하?'
이것 봐라?
'살았어?'
이 엄청난 폭발에도?
데우스 리치, 드렉 카락스의 몸이 재구성되기 시작했다.
머리가 완성되고, 상체와 팔, 하체와 다리.
뼈다귀 위에 살가죽도 입혀졌다.
죽기 전과 거의 비슷해진 모습.
드렉 카락스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멍청한 놈, 이런 결과도 예상하지 못하고선!"
자신은 살아났다.
언데드의 신(神), 데우스 리치가 가진 불멸의 권능으로.
아무튼 전쟁은 끝났다.
새로운 몸으로 부활하느라 남아 있는 흑마기가 하나도 없지만 다시 시작하면 그만.
황제까지 죽은 이상 김태주만 조심하면···,
그런데?
스팟!
"헉!"
깜짝 놀랐다.
"···너, 넌?"
어느새 앞에 나타난 한 명의 인간.
"기, 김태주?"
"어, 맞아."
덥석!
태주는 드렉 카락스의 머리통을 한 손으로 잡았다.
우우웅!
놈의 머리를 통해 주입되는 선기와 독기.
"너 어떻게 살았어?"
"···놔! 놔라!"
"희한하네. 잘하면 핵이 터져도 살겠다?"
그러나 힘이 다 빠진 듯,
휘릿! 휘릿!
태주의 팔 움직임에 따라 리치의 신체가 종이짝처럼 무기력하게 따라 흔들렸다.
"걱정 마. 내가 완전히 죽여줄게."
"···네가?"
"어, 내가 직접."
"낄낄낄, 그래 어디 한번 죽여봐라. 부활해 줄 테니."
"알았어."
고민할 필요도 없다.
독기방사.
스우우웅!
선기, 독기, 마나 등, 농축된 복합 기운이 드렉 카락스를 덥쳤다.
치지지지지직!
완전히 녹아내렸다.
이래도 살아?
하지만 태주는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부활한다는 놈의 말, 진실이었다.
판관의 반지가 증명했다.
시간이 흘렀다.
이전과 비교해 꽤 오래 걸렸다.
1시간이 흐르고, 2시간이 흐르고, 3시간이 넘어갈 무렵.
"···음?"
마기의 흐름이 감지됐다.
주위를 살펴보니,
"···환장하겠네."
진짜 살았다.
이곳과 꽤나 거리가 떨어진 곳에서 이미 제 형체를 찾아가는 드렉 카락스, 게다가 플라이로 도망가려고까지.
츠피피피핏!
태주를 표홀질풍보로 빠르게 달려 놈의 뼈 모가지를 잡아챘다.
"크윽!"
그럼에도 드렉 카락스는 비릿하게 웃었다.
"클클클, 그래, 잡혔구나. 또 죽여보렴."
"하아, 씨발."
"인간의 격을 포기하고 불멸을 얻어냈노라. 적어도 이 지구엔 날 죽일 자는 아무도 없다."
"···."
진실.
이걸 어떻게 처리하지?
'곤란한데.'
죽이면 또 살아날 것이고.
계속 여기서 죽치고 있을 수도 없고.
'집으로 데리고 가서 천천히 죽여볼까.'
그것도 문제.
어떻게 데려가?
만리비검 함께 타고 가려면 여간 성가신 게 아니다.
'무한공간에 집어넣을 수만 있으···,'
그때였다.
스슷!
사라지는 드렉 카락스.
"어?"
들어갔다.
니가 왜 들어가?
확실하다.
놈은 무한공간 안에 있었다.
살아있는 생명체는 못 들어가는 그곳에.
며칠 전에도 확인했다.
살아 움직이는 동물이면 작은 모기조차 안 된다.
'한번 죽어서 그런가?'
아니면 언데드라서?
'그럼 꺼낼 수도···,'
스슷!
다시 나타났다.
"이놈!!! 내게 무슨 짓을!!!"
뭐긴, 넣다 뺐다 해보는 거지.
스슷!
다시 집어넣고.
스슷, 꺼내고,
"가, 감히···,"
스슷,
이거 재밌네.
확실한 건 무한공간이 이놈을 물건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
'공유 창고에도 들어갈는지 모르겠군.'
그거야 직접 해보면 되고.
< 니가 왜 들어가? > 끝
ⓒ 꾸찌꾸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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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은 끝났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