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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73% MULTIVERVENENOSO / Chapter 5: 5

章節 5: 5

< 지리산 마수 대토벌 작전(2) >

엘리트 마수들은 밀림 깊숙한 곳에 산다.

놈들은 매우 영리하다.

가장 위협적인 적이 누구인지 잘 알고 있었다.

인간.

무리를 지어 다니며 자신을 사냥하려는 하는 놈들.

인간이 나타나도 엘리트 마수는 좀처럼 몸을 드러내지 않았다.

인간들이 영역을 침범하긴 하지만, 눌러살지 않고 돌아갈 거라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갑자기 달라졌다.

엄청나게 많은 숫자의 인간들이 지리산 밀림에 출현했다.

게다가 한 방향이 아니다.

사방에서 포위하듯 지리산 전체를 좁혀왔다.

게다가 밤에 돌아가지도 않았다.

그로 인해 엘리트 마수들은 인간의 행동에 자극받고 있었다.

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인간의 움직임.

엘리트 칼날이빨 담비도 마찬가지.

그래서 먼저 몸을 드러냈다.

감히 자신의 영역을 침범한 인간이 누구인지 확인하기 위해.

태주는 먼저 심호흡부터 했다.

'휴우···,'

드디어 만났다.

원했던 바이지만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

싸움을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이끄는 것이 먼저.

엘리트 마수는 강호 무림의 영물과 비슷하다.

동물과 식물 가운데 천운을 받아 오래오래 살아서 영성(靈性)이라는 것이 깃들면 영물이 된다.

예를 들어 영설묘, 만년금구, 백선학, 천년설삼···,

영물과 비슷한 요물도 있다.

구미호, 인면지주, 이무기 등등.

영물과 요물의 공통된 특징이 있다면 매우 강해서 초절정의 무인도 잡기 어렵다는 것, 그리고 운이 좋아 놈들을 잡게 되면 천고의 보물인 내단을 얻을 수 있다.

엘리트 마수는 요물에 가깝지만, 놈들의 몸속에서 채집할 수 있는 엘리트 마나 결정체, 바로 내단 아닌가.

물론 내단과 결정체는 똑같지 않다.

오히려 엘리트 마나 결정체의 쓰임새가 훨씬 많다.

영약으로도 쓰이고 무기를 만들 때도 사용된다.

태주는 혼원무상독령공 7성을 준비하고 있었다.

아직은 6성이지만 현 속도로 보아 금방 올라갈 터.

그렇게 되면 자신도 암기에 강기(罡氣)를 입힐 수 있게 된다.

독이 발려진 암기에, 그 위에 강기까지.

문제는 무기에 강기를 주입하게 되면 수명이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

평범한 마나 강철은 금방 부서진다.

엘리트 마나 결정체를 함유한 강철, 그걸로 제작한 무기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정학의 검에도 엘리트 결정체가 들어가 있었고, 오진형이 가지고 다니는 대도(大刀)도 엘리트다.

황제가 마스터에 오른 장군에게 하사하는 무기 또한 다 엘리트 무기들.

태주도 가지고 싶었다.

하지만 가지고 다니는 암기가 좀 많나?

유엽비도에, 탈명비도, 혈접, 폭우이화정···.

일단은 종류별로 몇 개만 만들자.

강기 주입 전용 암기를.

7성에 오르면 원거리 무기 회수도 가능해지니 잃어버릴 염려도 없고.

엘리트 칼날이빨 담비는 천천히 주위를 돌면서 눈앞에 태주를 탐색하고 있었다.

'이 새끼, 간을 보나?'

태주도 섣불리 먼저 달려들지는 않았다.

스윽, 코트를 벗고.

털썩, 옆에다 내려놓았다.

여우 가죽 코트는 몸을 움직이기에 거추장스럽기만 하다.

암기는?

많을 필요가 없다.

견제용으로 조끼와 팔목 허리춤에 있는 유엽비도와 탈명비도만으로 충분하다.

츠츠츠츠···.

움직일 때마다 들려오는 마나와 공기의 마찰음.

놈의 신체에 푸르스름하게 덮여 있는 막.

강기 보호막이었다.

강호 무림에선 호신강기(護身罡氣)라 부르고.

인간 각성자 중 강기 보호막을 펼칠 수 있는 마스터는 극히 일부.

그러나 엘리트 마수는 보호막이 기본적으로 장착되어 있었다.

오로지 강기로만 깰 수 있다.

암기 던져봐야 뚫지도 못한다.

그러나 암기 말고 독이면 자신 있다.

6성에 오른 혼원무상독령공.

그래서 용독법 중 하나인 '독기방사(毒氣放射)'를 운용할 수 있다.

독기방사.

시전자를 중심으로 사방에 독기를 뿜어낸다.

독정에 각인된 독은 아무거나.

조합해도 되고, 단일 종류도 되고.

모든 살아있는 동물은 호흡을 한다.

저놈도 그렇다.

그러기에 강기 보호막으로는 절대 독을 막을 수 없다.

만약 혼원무상독령공을 대성하고 독령(毒靈)에 다다르면 어떻게 될까?

마치 방사능 인간처럼 주위의 모든 것을 중독시키고 녹여버린다.

아직은 공력이 부족해 방출되는 독기의 양이 적고, 위력 또한 강하지 않지만···.

가랑비에 옷 젖듯, 찬물이 담긴 냄비에 개구리를 넣고 천천히 온도를 높여 익혀 죽이듯, 독기방사로 엘리트 칼날이빨 담비는 천천히 녹아 죽을 것이다.

스스스스스스스스···,

이윽고 독기가 방사되기 시작했다.

무색무취.

볼 수도 느낄 수도 없는 독기.

흔히 이걸 무형지독(無形之毒)이라 오해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렇지 않다.

무형지독은 독의 형태를 칭하는 말이 아니다.

그것은 심독(心毒)의 경지다.

당연히 독령(毒靈)을 이루어야만 가능하고.

"캬악!"

무언가 위협을 느낀 듯 엘리트 칼날이빨 담비는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냈다.

바로 그때!

파슛!

순식간에 사라지는 놈의 신형.

스슷!

동시에.

타악!

엘리트 담비가 허공에서 갑자기 나타나 태주의 목을 물었다.

따그닥!

하지만 이빨끼리만 부딪쳤다.

이미 태주는 환영미리보를 이용해 몸을 감춘 후.

뒤를 이은 공방전의 시작.

엘리트 마수답게 놈은 엄청나게 빠르다.

쐐애액!

캬득!

순간적으로 달려왔다가 도약하더니,

츠팟!

느닷없는 앞발 공격.

그리고 곧바로 몸을 낮춰서 발목을 물어온다.

"캬악!"

태주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렇다고 거리를 벌리는 것도 금물,

독기방사 때문이다.

아직 성취가 부족해 일정 거리 이상 떨어지면 효과가 급감한다.

덥석!

놈의 꼬리에 벼락처럼 손을 뻗어 금나수를 시전해 집중력을 흩트려버린 후에.

스슷!

허리춤에서 탈명비도 두 자루를 꺼내 들고,

츠피피핏!

사정없이 그었다.

하지만 어느새 사라진 놈의 형체.

어디 갔지?

순간 뒷덜미가 서늘하다.

'뒤!'

태주는 빠르게 회전하면서 눈앞에 커다랗게 벌려진 놈의 입을 향해 탈명비도를 쑤셔 넣었다.

츠핏!

하지만 탈명비도가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놈의 이빨이 비도를 콱 물어버렸다.

콰득!

급기야.

뎅겅!

이빨에 물려 두 동강이 난 비도,

급하게 허리춤에서 한 자루 더 빼 들었지만,

츠핏! 츠피피핏!

엘리트 담비의 섬전 같은 발톱이 얼굴을 덮쳤다.

"이런!"

태주는 빠르게 머리를 뒤로 젖혔다,

스릿! 서걱! 서거거걱!

얼굴은 피했다.

하지만 어깨와 가슴은 아니었다.

가죽으로 만든 조끼가 찢겼다.

마땅한 방어구를 입지 않은 어깨는 놈의 공격에 그대로 노출됐다.

"윽!"

다행히 피부만 얇게 베였지만.

어깨가 화끈거린다.

줄줄 흘러내리는 피.

태주는 몸을 바닥으로 눕히면서 굴렀다.

"캭!"

놓칠세라 강기로 빛나는 이빨을 드러내며 따라오는 엘리트 담비.

스슷, 스스슷, 스슷!

연속적으로 펼치는 환영미리보.

츠핏! 츠피피핏!

유엽비도 6자루에 한꺼번에 쏘아졌다.

그러나,

탱탱! 태태탱! 탱!

강기 보호막에 막혀 튕겨 나가는 비도들.

움찔!

그래도 놈을 저지하는 효과는 있었다.

"너 좀 친다?"

"캬르르릉!"

얼굴을 당했으면 어쩔 뻔했나?

흉터가 남으면 잘 낫지도 않았을 터.

"후우,"

숨이 가쁘게 차올랐다.

잠시 휴식이···,

"캬악!"

쐐애액!

쉴 틈도 주지 않았다.

집요하게 급소를 노리는 놈의 이빨.

"숨 좀 돌리고 하면 안 되냐?"

어깨에 금창약도 발라야 하는데.

들어줄 리가 없지.

스슷!

환영미리보로 피하고,

그러나 일정 거리는 무조건 유지.

츠피피피핏!

연속적으로 쏘아지는 유엽비도.

조끼와 팔목에 찬 건 이미 다 소모했다.

남은 건 허리춤에 탈명비도 몇 자루.

츠팟!

태앵!

탈명비도도 튕긴다.

"씨발!"

강기만 입히면 쑤욱 들어갈 텐데.

어깨에서 피가 줄줄 흘러내린다.

비릿한 혈향이 이 치열한 전투의 현장에서 널리 퍼져나갔다.

싸우면 싸울수록 집중되는 정신.

치열하게 움직이니 독정이 반응했다.

지이이잉!

파팟!

펄쩍 도약하면서 내리꽂는 발톱 공격도 피하고.

퍼억!

가끔 혈인독장으로 몸의 몸통을 때리면서.

아슬아슬하다.

종이 한 장 차이로 목숨이 오고 간다.

그나마 침투경의 묘리를 섞은 혈인독장과 금나수가 도움이 됐다.

하지만 힘에 부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독기가 무한한가?

아니다.

독기방사를 통해 빠져나간 독이 엄청났다.

다시 채워지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태주는 바지 주머니에서 말린 독더덕, 독도라지, 독고사리 등 독물들을 꺼내 마구마구 씹었다.

조금 낫다.

눈곱만큼이지만.

그러나 지금까지 조금씩 미미하지만 끊이지 않고 공기 중으로 방사되는 독기, 여러 종류로 조합된 독이 태주와 엘리트 칼날이빨 담비가 싸우는 현장을 가득 덮어버렸다.

마치 안개와 같았다.

아니, 그것보다는 스모그, 혹은 미세먼지 구름이라는 표현이 맞겠지.

스스스스스···,

주위의 나무의 잎들이 말라 갔다.

빌 밑에 난 풀은 노랗게 변해버렸고.

엘리트 담비도 뭔가 이상함을 느낀 모양.

"키킥?"

행동이 갑자기 느려졌다.

"···크엑."

놈이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무언가 이상하게 돌아가는 걸 느꼈나 보다.

"자식아! 늦었어."

당황한 눈빛의 엘리트 담비.

"끼잉? 끼이이잉?"

왜 그런지 영문을 모를 것이다.

공격은 자신이 더 많이 했는데, 심지어 상처도 입혔는데.

급기야 네발로 폴짝, 폴짝 뛰면서 자리를 벗어나려고 한다.

전세가 역전됐다.

아마 독정에서 나온 모기 독이 놈의 마나를 갉아먹기 시작했을 것이다.

사실 변종 3줄 무늬 모기들이 밀림에서 물 수 있는 마수들은 그리 많지 않다.

특히 담비가 가진 긴 털과 억센 가죽은 모기 침이 뚫지 못한다.

하지만 공기 중으로 방사된 모기 독.

호흡기를 통해 들어가는데 어떻게 막아?

다음은 포자 독이 장기를 녹였을 것이고, 칠점사 독은 출혈을, 푸른 배 개구리의 독은 수면 효과, 최근에 흡입한 사린 가스는 신경 계통을 공격했을 터.

"케에에엑! 케에에에에···,"

엘리트 담비가 비틀비틀 현장에서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썼다.

'끝났구나.'

이제 서두를 필요는 없다.

태주는 놈을 천천히 따라가면서 바닥에 놓아둔 코트를 들었다.

코트 안에서 최근에 만들어둔 금창약, 연고제를 꺼내고 쭉 짜서 상처 난 어깨에 조심조심 펴 발랐다.

'겸사겸사 약효도 시험해 보는 거지.'

화끈하다.

동시에 시원하다.

흐르던 피가 금방 멎었다.

'괜찮네.'

팔아도 될 물건이다.

아니, 팔면 히트칠 물건.

'하지만 특허를 제대로 내는 게 관건이야.'

혼원무상독령공으로 가공한 약이 아니라서 성분만 알면 쉽게 베낄 수 있다.

그 와중에도 기어가듯 도망치려는 엘리트 칼날이빨 담비.

급할 게 있나?

놈은 이미 죽어있는 시체와 다를 바 없는데.

천천히 코트를 입어주고, 태주는 이제 죽음을 직감한 듯 발랑 배를 보이고 몸을 까뒤집은 담비에게 다가갔다.

"끼이이잉···,"

놈의 눈에서 생명의 빛이 꺼졌다.

그럼 엘리트 마나 결정체를 꺼내 볼까?

'없으면 나가리 판인데,'

푸욱!

탈명비도를 꺼내 심장이 있는 부위에 찔러넣고,

스그극!

힘차게 갈랐다.

"오!"

있다.

크고 아름다운 엘리트 마나 결정체가.

코트 소매에 슥슥 닦으니 찬란한 보라색 빛깔이 사방으로 퍼진다.

'목걸이로 만들어 목에 걸고 다녀도 괜찮겠다.'

이걸로 유엽비도 10자루는 만들 수 있겠다.

탈명비도는 3자루 정도?

이제 겨우 하나다.

모든 암기를 강기 전용으로 바꾸는 그날까지 부지런히 모으자.

그때였다.

치이익!

귀에 착용한 이어폰에서 들리는 무전 소리.

- GS팀, 엘리트 마수 발견, 종류는 붉은 털 늑대. 지원은 필요 없음. 다른 팀은 현재 위치에서 대기 바람.

GS팀이라면?

S는 스페셜 레이드팀을 의미한다.

R은 본대를 뜻하고.

앞에 붙는 글자는 지역 이름.

함양 사단 스페셜리스트 레이드팀은 HS, 산청은 SS, 남원은 NS, 그리고 구례는 GS.

'내 팀이네?'

혼자 빠져나온 사이, 엘리트 붉은 털 늑대와 마주친 모양.

백창훈과 장순철도 GS팀에 있다.

휘릿!

태주가 사라진 자리에 세찬 바람이 불었다.

※ ※ ※

원래 엘리트 마수는 절대 혼자 잡지 못한다.

마스터도 그렇다.

물론 태주는 특별한 경우.

하지만 태주 또한 독이 없었다면 매우 어려웠을지도.

조금 전에도 독기가 모자라 도망쳐야 했을 수도 있었다.

GS팀에 나타난 엘리트 붉은 털 늑대.

다행히 암수 두 마리 함께 다니는 일반 붉은 털 늑대와는 달리 엘리트 늑대는 혼자 다닌다.

오진형 군단장과 슈페리어 익스퍼트들이 함께 한다면 잡는 건 어렵지 않을 터.

아무튼 빠르게 현장에 도착했는데.

"아우우우우!"

튼튼한 합금 와이어 4개가 엘리트 붉은 털 늑대에 네 발에 각각 감겨 있었다.

"잡아당겨!"

"와이어 물지 못 하게 해!"

"어어! 돼, 됐다."

사방으로 당겼다 풀었다 해가며 엘리트 붉은 털 늑대를 꼼짝 못 하게 하는 GS팀.

그리고 오진형이 나섰다.

자신의 키만큼이나 큰 대도를 들고, 우우웅, 마나를 불어넣으니, 지잉! 우윳빛으로 빛나는 검강, 마나 블레이드.

그대로 돌진해서,

서걱!

늑대를 두 쪽으로 갈라버렸다.

"와!"

태주는 감탄했다.

이렇게 쉽게?

하긴 사람도 많고, 무기도 좋고.

싸움은 숫자와 아이템 빨.

"음? 언제 왔나? 쯧쯧, 자넨 너무 늦게 왔어."

"그러네요. 근데 엘리트가 이렇게 쉽게 잡힙니까? "

"무슨 소리? 저 마나 합금 와이어를 놈의 네 다리에 거느라 얼마나 힘들었는데, 그게 공략의 90%야. 나머지는 보다시피···, 쉽지."

"아하."

아쉬운 표정의 오진형.

"조금만 빨리 왔어도 엘리트 마나 결정체 지분을 나눠줄 수 있었을 텐데 말이야."

"괜찮습니다. 저도 한 마리 잡았거든요."

"에이, 일반 마수 말고. 난 엘리트를 말하는 거네."

"네, 엘리트요."

"···뭐???"

태주는 주머니에서 찬란하게 빛나는 보라색 엘리트 마나 결정체를 보여줬다.

"어···, 무, 무슨? 이, 이게···, 대체?"

오진형은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잠시 저 앞에 가보고 온다더니, 엘리트 마수 결정체를 떡 하니 들고 나타났다.

'엘리트를 혼자서 잡았다고?'

물론 혼자 잡을 수 없는 마수는 아니다.

뭐, 황궁에 괴물 같은 비서관 금수호 정도면 쉽게 잡겠지, 황제는 말할 것도 없고.

하지만 눈앞에 김태주 회장은 서른도 안 된 청년이지 않나.

'미친···,'

이게 가능한 일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바로 그 순간!

콰콰콰콰콰쾅!

"어이쿠! 까, 깜짝이야."

저편에서 들리는 폭발음.

밀림에서 화기를 사용한다고?

그리고 잠시 후.

치직! 치지직!

- SS팀이다. 엘리트 강철 깃 부엉이와 오크 다수 출현. 상황이 좋지 않다. 지원 필요! 지원 필요!

산청 쪽이다.

여기서 가장 빠른 사람은 태주 자신,

"제가 갑니다."

"자, 잠깐!"

팟!

태주는 또 달렸다.

오진형은 그저 멍한 표정으로 뒷모습만 바라볼 뿐이었다.

< 지리산 마수 대토벌 작전(2) > 끝

ⓒ 꾸찌꾸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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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산 마수 대토벌 작전(3) >

본대와 스페셜 레이드 팀은 서로 간의 원활한 소통이 중요하다.

되도록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엘리트 마수를 탐색해야 한다.

급박한 위기 상황이 닥쳐도 대처가 빠르니까.

구준영이 이끄는 산청 스페셜 레이드 팀, 즉 SS팀도 처음엔 무리하지 않았다.

낮에는 주변을 꼼꼼하게 탐색하면서 사냥하고, 밤에는 채취한 부산물을 가지고 본대로 복귀해 재정비도 하고.

그러다 3일째 되는 날.

본대와 조금 멀리 떨어져 버렸다.

사냥의 재미 때문이다.

마수 밀집지대답게 시시때때로 출현하는 마수들.

이렇게 오랫동안 밀림에서 작전을 수행했던 적이 있었던가?

팀원 하나하나가 최소 미들 익스퍼트 급으로 구성된 스페셜 레이드 팀.

그래서 마수들이 나타나는 족족 가볍게 썰어버렸다.

마나 결정체나 가죽 같은 부산물을 채취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5황자 류진철은 특히 더했다.

황궁에서 벗어나 마수 밀집지대를 활보하면서 사냥하고, 이런 재미를 언제 느껴봤을까?

"갈수록 여기가 마음에 듭니다. 지리산 사단에 입대하는 것도 괜찮은 생각 같습니다."

구준영은 당황했다.

황자가···, 지리산 부대에 입대하고 싶다고?

"오,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런 생각을 들 테지. 하지만 여긴 더운 지방이야. 또 시골이라 마땅한 즐길 거리도 없고 사람도 많지 않네."

"오히려 그게 마음에 듭니다. 복잡한 도시보다 시골이 제 적성에 잘 맞고요."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이럴 때일수록 침착해야 한다.

"흐음, 도시의 화려함에 혹하지 않는다는 말이군. 자넨 요즘 젊은이답지 않아. "

"부끄럽지만 자주 듣는 이야깁니다."

"겸손하기도 하고."

일단 띄워준 다음.

"정 지리산 부대에 입대하고 싶으면 남원이 어떤가?"

"남원 방어사단 말씀이십니까?"

"그래, 산청은 사단 본부도 있고, 군단 본부도 있는 곳이라 다소 번잡하다네. 남원이 조용한 편이지."

"남원이라···."

그래, 남원으로 가라.

산청 사단은 절대 안 돼.

차라리 군단 본부로 가든지.

"하지만 여기 산청 사단 사람들과도 정이 들어서···,"

그때였다.

츠츠츠츠츠츠···,

"부웅, 부우웅, 부아앙!"

거대한 아름드리나무 꼭대기에서 들리는 소리.

모두가 얼어붙었다. 움직이기도 힘들었다.

초식동물이 육식동물을 마주하면 생기는 본능적인 두려움.

"···피어."

확실하다.

엘리트 마수였다.

"정신 차려!!!"

마나가 가득 담긴 구준영 소장의 사자후.

그제야 팀원들은 정신이 번득 들었다.

순간!

슈우우웅, 쿵!

나무 위에서 거대한 물체가 땅으로 뛰어내렸다.

"이런 제기랄!"

하필 나타나도 이런 놈이?

엘리트 강철 깃 부엉이였다.

부엉이처럼 생겼지만 몸집은 자이언트 반달곰만큼 크다.

밤낮 구분하지 않고 활동한다.

날개도 있다.

그래서 날아다니는 비행 마수라고 오해하기도 하지만 놈은 지상 마수였다.

깃털이 단단한 강철로 이루어져 날지 못한다.

아무리 날갯짓해봐야 양력을 발생시킬 수 없으니까.

몸이 무거운 탓도 있고.

나무 위로 올라간 수단은?

발톱으로 찍고 올라간다.

그래도 부엉이 습성이 남아있어 나무 위에서 숨어있다가 사냥감이 나타나면 그대로 뛰어내려 습격한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뒤로 물러난다."

강철 깃 부엉이의 공격과 방어 수단은 이름 그대로 강철로 된 깃털, 매우 날카롭다.

하지만 이놈은 평범한 마수 부엉이가 아니다.

엘리트 마수다.

깃털에 강기가 어려있어 뭐든 스치기만 해도 잘린다.

"부우왕! 부우앙!"

땅 위에 두 발로 우뚝 서서 인간들을 내려다보는 엘리트 강철 깃 부엉이.

휘잇! 쿵! 휘잇! 쿵!

놈은 두 발로 뛰어서 이동한다.

한번 이동할 때마다 땅이 울릴 정도.

"무기도 집어넣어. 자극하지 마라."

그러고 나서 구준영은 옆에서 멍하니 서 있는 5황자 류진철을 보면서.

"황자님께선 멀찍이 뒤로 물러나십시오. 더 멀리!"

지금은 신분 감추기 놀이를 할때가 아니다.

"괜찮네. 나도···."

"어서요!!!"

단호한 구준영의 지시에 할 수 없다는 듯 뒷걸음질 치는 황자 류진철.

황자의 가진 재능이 뛰어나다지만 아직 경험이 부족하다.

천천히 거리를 벌리는 인간들을 보면서 고개를 갸웃하는 엘리트 강철 깃 부엉이.

"부앙?"

사실 이놈은 웨이브 시 제일 잡기가 쉽다.

둔한 놈이라 미사일이나 포탄을 피하지 못한다.

강력한 화력을 퍼부어 집중 공격하면 버티지 못하고 죽는다.

그러나 정작 밀림에선 사냥하기 제일 까다로운 엘리트 마수.

보통 엘리트 붉은 털 늑대, 엘리트 자이언트 반달곰처럼 대형종 엘리트는 마나 합금 와이어를 이용해 사냥한다.

굉장히 튼튼하게 만들어져 강기를 입힌 날붙이가 아니면 잘 끊어지지도 않는다.

늑대나 반달곰이 가진 날붙이가 뭐가 있나?

이빨 아니면 발톱이지.

그래서 사방에서 와이어를 걸고 움직임을 제한하면서 마스터가 마무리하는 게 정석.

이놈은 다르다.

몸 전체에 빽빽하게 박힌 강철 깃.

와이어는 단숨에 잘릴 터.

강철 깃은 무기도 될뿐더러 훌륭한 갑옷의 역할도 한다.

게다가 강기 보호막까지.

웬만한 마스터는 흠집도 내지 못한다.

약점도 있다.

강력한 갑옷을 두르고 있지만, 반대급부로서 몸이 둔하고 머리도 나쁘다.

이번 작전을 계획할 때 엘리트 강철 깃 부엉이 공략 방법에 대한 열띤 토론이 있었다.

잡을까?

회피할까?

1차로 내린 결론은 잡자.

명색이 대토벌 작전인데 잡기 까다롭다고 피하는 건 어불성설.

그럼 밀림에서 어떻게 놈을 잡을까?

결국 저 깃털 갑옷부터 없애야 한다.

그래서 착안한 방법.

구준영은 부대원들에게 말했다.

"하이퍼 신궁 대전차 미사일 준비해."

답은 역시나 화기였다.

대전차 미사일 한 방.

강력한 화력을 집중시켜 놈의 깃털을 녹인다.

그러나 양날의 검.

지리산 마수 밀집지대에서 폭발음이 강한 화기를 사용하면 주변에 있는 다른 마수들을 자극하게 된다.

심지어 총기도 아니고 미사일이다.

소리가 얼마나 울려 퍼질까?

온갖 마수들이 벌떼처럼 모여들 것이다.

그래서 폭발음을 줄였다.

따라서 화력도 줄었다.

명중한다면 아주 작은 구멍 하나만 낼 수 있을 정도.

'처음 시도해보는 공략이야. 반드시 성공 사례를 만든다.'

화력 무기 폭발음에 가장 먼저 반응하는 놈들은 바로 변종 이족보행 멧돼지 오크.

여기 지리산에도 오크 무리들이 산다.

3줄 무늬 모기에 적응해 매우 두꺼운 피부로 진화한 놈들.

오크들은 문제없다.

SS팀에 익스퍼트가 몇 명인데?

"신호하면 바로 발사하도록."

"네, 알겠습니다."

구준영은 처음 별을 달았을 때 황제 폐하께 하사받은 장창을 등에서 풀러 두 손으로 꽉 잡았다.

그리고 저벅저벅, 부엉이에게 다가가서 냅다 찔렀다.

츠피릿!

채앵!

당연히 깃털에 막히고.

"부아아아아아앙!!!"

엘리트 강철 깃 부엉이가 굉음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휘잇! 쿵쿵쿵쿵쿵!

느린 놈이라도 화가 나면 매우 빨라진다.

이렇게 유인해서 멀리 떨어뜨린 후.

"쏴!!!"

"소장님, 거리가 너무 가깝습니다."

"난 걱정하지 말고 빨리 쏴!!!"

바로 그 순간!

쐐애애애액!

콰쾅! 콰콰콰쾅!

"부아아악!!! 부악!"

지리산 밀림에 울리는 폭발음.

발사음이 들릴 때 급하게 몸을 피했던 구준영이 다시 맹렬하게 돌진했다.

미사일은 명중했다.

그리고 뻥 뚫린 동전만한 구멍.

지이이잉.

구준영의 강기 어린 장창이 그 구멍으로 쏜살같이 쑥 빨려 들어갔다.

츠핏!

푸욱!

'됐어!'

느낌이 왔다.

깃털이 아닌 몸속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응?"

창이 더 이상 나아가지 않았다

빠지지도 않았다.

그 자리에서 고정된 느낌,

알고보니.

꽈득!

부엉이가 튼튼한 부리로 창대를 물고 있었다.

"이런!"

지이이잉!

강기를 일으켜 봤지만 부엉이 부리에도 강기가 맺혀있다.

"제, 제기랄!"

창대가 빠지질 않는다.

그나마 다행인 건 놈도 움직이지 못한다는 것.

꽈득,

창 윗부분을 단단히 물고 있는 엘리트 마수 부엉이.

순간!

우우우우웅!

창을 통해 들어오는 놈의 마나.

마나 주입 공격.

인간과 마수의 마나는 서로 성질이 다르다.

엘리트 강철 깃 부엉이의 마나가 몸 속으로 침투하면 큰 내상을 입게 된다.

부엉이의 의도는 단순하다.

창대에서 손을 떼라.

그럼 난 창을 뽑고 도망가겠다.

그러나 창에서 손을 떼도 마나가 역류해 부상을 입는다.

어쩔 수 없이 구준영도 마나를 창대에 실어 밀어 보냈다.

우우우우우웅!

마나 대 마나.

일종의 힘겨루기.

밀리면 내상을 입는다.

대치 상태가 이어졌다.

그제야 몰려오는 스페셜 레이드 팀원들.

"마수 집중 공격!"

"슈페리어 이하급은 가까이 가지 마!"

"원거리 무기로 때려!"

퍼벅, 퍼버버벅! 퍼버벅!

엘리트 강철 깃 부엉이가 다구리를 맞았다..

하지만 꽉 문 창을 절대 놓지 않았다.

마나 주입 공격도 멈추지 않았다.

그래도 승산은 구준영에게 있었다.

엘리트 마수의 방어력도 한계가 있는 법.

이렇게 가면 이긴다.

다들 승리를 확신했다.

폭발음을 듣고 오크 떼가 밀려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캬캬캬캭!"

"취이이이익! 칙! 칙!"

"취익! 쿰칫, 쿰칫!"

숲 저편에서 들리는 소리.

"오, 오크다!"

"씨발! 돼지 새끼들!!!"

"하필 이런 때에."

한눈에 봐도 300마리는 넘었다.

아니, 400? 500···,

구준영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지원 요청하고, 오크부터 상대···, 윽!"

잠시 방심하자 몸속으로 침투하는 엘리트 강철 깃 부엉이의 마나.

다시 정신을 집중하고.

난전이 벌어졌다.

각성 장교들이 돌진해오는 오크들을 막았다.

수적인 열세는 분명하다.

그러나 스페셜 레이드팀엔 익스퍼트 등급 각성자가 수두룩했다.

오크 500마리라도 충분히 해볼 만하다.

서걱!

"꾸에에엑!"

푸욱!

"꾸익?"

파바바박! 푹푹!

썰려 나가는 오크들.

5황자 류진철의 활약이 눈부셨다.

사태의 심각성을 알아차린 듯, 전력을 다해 오크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쿠오오오오오!"

전장을 휩쓰는 가공할 외침.

섬찟한 공포가 육체와 정신을 뒤흔들었다.

"헉!"

"어억!!!"

"이, 이럴 수가!"

"아아아아···,"

거대한 몸집의 오크 한 마리가 나타났다.

제 키만큼이나 큰 몽둥이를 든 엘리트 오크 대족장이었다.

각성 장교들은 피어로 인해 몸이 굳어버렸다.

반면 대족장의 등장에 오크들은 힘을 얻어 더더욱 날뛰었다.

"쿠오! 쿠오오오! 쿠오오오!"

대족장의 엘리트 스킬.

지배의 함성.

"이, 이쪽으로 온다. 막아!"

"사단장님을 지켜."

오크들도 약간이지만 지능이 있었다.

더구나 자신들을 지휘하는 군주가 나타났다.

오크들이 대족장에게 달려두는 인간들을 막고 길을 열었다.

달려드는 인간들을 막고서 길을 열어젖히는 오크.

"큼큼! 캬악!"

"캬오오!"

"취엑! 췌에엑!"

채챙! 채채챙!

서걱! 푸욱!

파바바박!

인간과 오크가 싸우든 말든, 엘리트 오크 대족장은 뻥 뚫린 길을 통해 천천히 걸어갔다.

목적지는 구준영과 엘리트 강철 깃 부엉이가 대치하고 있는 장소.

가장 강한 인간과 자신의 경쟁자인 엘리트 마수가 서로 묶여 꼼짝도 못 하고 있었다.

누굴 먼저 죽일까?

부엉이는 크게 상처를 입은 것 같고,

그럼 당연히 인간이지.

구준영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사실 엘리트 오크 대족장 정도야 홀로 상대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이 가진 최대의 강점인 무기가 현재 봉쇄됐다.

아무리 창을 빼려고 해도 빠지질 않는다.

결단을 내려야 한다.

창에서 손을 떼고 엘리트 오크 대족장부터 처리할 생각.

그렇다면 무기는?

허리에 찬 군 보급용 검 한 자루.

이걸로 될까?

어쩔 수 없다.

이렇게 버티다간 놈의 몽둥이에 맞아 죽는다.

"크르르륵!"

지척까지 다가온 엘리트 오크 대족장,

구준영은 창대를 힘껏 밀면서 손을 뗐다.

"으윽!"

마나 싸움에서 먼저 물러난 나머지 반탄력으로 인해 역류하는 마나.

울컥!

속에서 입으로 선혈이 솟아 올라왔다.

구준영은 꾹 참았다.

그리고 전신의 마나를 최대한 끌어올렸다.

자유로워진 손으로 허리춤에 찬 군용 보급검을 빼내 들고 엘리트 오크 대족장을 향해.

츠팟!

번뜩이는 검광이 허공을 수놓았다.

서거거거걱!

하지만.

파앗! 턱!

커다란 몽둥이에 막혀버린 검.

채채채채챙!

급기야 검신이 산산조각으로 부서져 흩어졌다.

이제 보니 놈의 몽둥이도 보통 나무가 아니었다.

하긴, 강기가 맺혀있는데도 멀쩡했으니.

아주 희귀하지만 밀림에 그런 나무가 있다.

300년 동안 마나를 받아들여 엘리트 마수급으로 진화한 나무.

"쿠루루루룩,"

엘리트 오크 대족장은 그런 구준영을 보며 비웃음을 흘렸다.

"···제기랄!"

공격 실패로 힘이 쭉 빠진 구준영의 머리 위에 떨어지는 몽둥이의 그림자.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츠피릿!

태앵!

어디서 날아왔는지 모르지만 군용대검 크기의 투사체가 엘리트 오크 대족장이 들고 있는 몽둥이를 때렸다.

뒤를 이어 줄지어 쏘아지는 투사체.

츠핏! 츠피피핏! 피핏!

태탱! 태태태탱! 탱탱!

그뿐인가?

나풀나풀, 수십 마리의 금속 나비들도 얇은 날개를 이용해 이리저리 비행하면서 날아왔다.

그리고

쐐애액!

표홀질풍보로 달려온 태주가 전장에 참가했다.

※ ※ ※

※ ※ ※

태주는 현장에 도착하기 전 멀리서 이미 상황을 파악했다

창 하나로 대치한 구준영 소장과 엘리트 강철 깃 부엉이, 뜬금없이 나타난 대형 오크, 그리고 구준영에게 닥친 위기.

일단 떨어지는 몽둥이를 탈명비도로 저지하고 날렵한 유엽비도와 혈접(血蝶)을 날려 오크 대족장의 관심을 끈 후에.

펄럭!

환상 여우 가죽 코트 앞섶을 열어젖히고 전장으로 뛰어들었다.

태주는 가슴에 창대를 꽂고 뒤뚱뒤뚱 뒷걸음질 치는 엘리트 강철 깃 부엉이를 확인했다.

'깨졌네.'

창이 박힌 가슴 부위에 강기 보호막이 깨어져 뚫려있었다.

아주 작은 구멍이다.

심지어 창도 꽂혀있다.

저놈부터 깔끔하게 처리해두자.

'근데 탈명비도가 들어갈 틈이 있을까?'

그러나 저 정도도 못 맞히면 절대독마가 아니지.

우웅!

묵직한 탈명비도에 무시무시한 독기를 한껏 불어넣고,

츠피리리릿!

낮게 깔려 날아가는 탈명비도.

눈 깜짝할 새에 부엉이 가슴팍으로 날아가,

푸욱!

창날 바로 옆에 꽂혔다.

"부어어어엉!!!"

저놈은 됐고.

알아서 죽을 터.

동시에 구준영 소장이 몸을 데구르르 굴렸다.

금속 나비에 정신이 팔린 엘리트 오크 대족장의 공격범위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바로 벌떡 일어나 품에서 태홍 회복제를 꺼내 삼키고는,

다다닷!

고통에 몸부림치는 엘리트 강철 깃 부엉이에게 뛰어가,

쑥!

자신의 무기, 장창을 뽑아 들었다.

대역전의 시작이었다.

< 지리산 마수 대토벌 작전(3) > 끝

ⓒ 꾸찌꾸찌

=======================================

< 득템! >

엘리트 오크 대족장은 나풀나풀 날아오는 혈접(血蝶)에 정신이 팔려있었다.

이리저리 규칙 없이 날아드는 듯했지만 정확하게 머리와 눈을 향해왔다.

당연히 신경이 쓰일 수밖에.

"쿠아아!"

타닥! 탁탁!

몽둥이를 휘둘러 혈접을 하나하나씩 걷어내는 엘리트 오크.

하지만 그마저 잘 맞지 않았다.

태주는 다시 몇 개의 폭우이화정을 날려 보냈다.

파파팟!

태태태태태탱!

비록 강기 보호막을 뚫어내지는 못하지만 견제 역할은 충분할 터.

그리고 혈접도 몇 마리 더.

나풀나풀.

"캬악! 캬아아악!"

놈이 자신에게 달려들면 환영미리보와 표홀질풍보를 섞어 유유히 피하고, 그리고 철환과 휘금석 등 여러 가지 암기 섞어 던지고.

시간을 끌어야 한다.

구준영이 회복해서 전장에 투입될 때까지.

엘리트 강철 깃 부엉이는 이미 쓰러져 마지막 가냘픈 울음을 토해내고 있었고.

"부아, 부아앙, 부아아아아···,"

그 옆엔 구준영 소장이 창을 잡고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있었다.

무기를 다시 손에 쥐었는데 뭐 하고 있는 거지?

부상이 심한가?

조금 전에 태홍 회복제를 복용한 걸 분명 봤는데.

바로 그 순간!

벌떡!

창을 두 손으로 움켜쥐고 일어나는 구준영.

그의 눈빛엔 형형한 기운이 어려 있었다.

'회복했구나.'

그럼 그렇지.

누가 만든 회복제인데.

쐐애애액!

그리고는 엘리트 오크 대족장을 향해 재빠르게 돌진했다.

스팟!

"이놈!!!"

"크륵?"

채앵! 채챙!

서로 부딪히는 몽둥이와 창.

비록 오크의 몽둥이가 범상치 않지만 구준영의 무기는 황궁 소속 장인이 최고의 기술로 제작한 엘리트 마나 결정체 무기.

이쪽은 한숨 돌렸다.

이젠 일반 오크들.

태주는 오크 무리 한복판으로 홀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비로소 '독기방사'.

방사되는 독의 종류는 단 한 가지.

변종 3줄 무늬 모기 독.

군인들은 모두 해독제를 복용했다.

영향을 받는 건 오직 오크들 뿐이다.

스스스스스!

독정에서 흘러나오는 무색무취의 독기.

마나를 갉아 먹는 모기의 독이 공기 중으로 스며들었다.

더불어 암기 공격도.

군인과 함께 섞여 싸우는 오크들에겐 일섬(一閃)을,

츠핏! 츠핏!

푸푸푹!

한데 뭉쳐서 달려드는 오크들에겐 빠르게 표홀질풍보로 달려가.

푸다다다닥!

파바바바박!

비폭(飛瀑).

"꾸에에엑!"

"꾸익?"

"···꽤엑!"

오크들이 몰살을 당하고 있었다.

남들이 검으로 한 마리씩 쳐 죽일 때마다 태주는 열 마리씩 죽였다.

그리고 독정이 활성화될수록 빠르게 퍼지는 모기 독 방사, 천천히 오크들의 몸속으로 들어가 활동을 시작했다.

물론 엘리트 오크 대족장도 마찬가지였다.

※ ※ ※

처음 엘리트 오크 대족장이 나타났을 때 부대원들에게 떠오른 공통된 생각.

'좆댔다.'

부대 절반 이상은 여기서 죽을 터.

산청부대 최정예 스페셜 레이드 팀이 지리산 마수 대토벌 작전을 진행하면서 처음으로 마주하는 위기였다.

하이퍼 신궁 대전차 미사일을 날린 것이 실수였나?

그러나 엘리트 강철 깃 부엉이를 잡으려면 그 방법 말고는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실제로 성공했다.

마스터인 구준영 소장의 장창이 부엉이의 가슴을 꿰뚫었고, 다만 놈의 저항이 만만치 않아 잠시 동안 힘겨루기를 해야 했다.

오크들도 출현했다.

폭발음에 자극받아 몰려온 놈들.

그것도 예상 범위 안이었다.

사실 밀림에서 오크는 그다지 위협적이지 않았다.

그깟 변종 이족보행 멧돼지들이 무서워 봤자지.

그런데 엘리트 오크 대족장이라니.

저놈이 저기서 왜 나와?

엘리트 오크는 나타나자마자 구준영을 향해 몸을 움직였다.

이 전장에서 가장 강한 이가 누구인지 아는 듯했다.

결국 구준영의 반격이 실패로 돌아갔다.

엘리트 강철 깃 부엉이도 부상을 당했지만 어쨌든 살아있었다.

두 마리의 엘리트 마수를 어떻게 감당해?

거대한 몽둥이의 공격에 그대로 노출된 구준영 소장.

일반 오크들도 미친 듯이 날뛰었다.

족장의 외침으로 인한 버프.

더더욱 강해진 신체 능력.

각성 장교들은 절망했다.

이러다간 전멸한다.

아니 전멸이 확실시됐다.

그 절체절명의 순간에 저 남자가 나타났다.

태홍 바이오 김태주 회장.

회색 코트를 입고 수십 개의 원거리 무기들을 뿌려대면서.

엘리트 오크 대족장의 공격을 저지하고, 창이 꽂힌 틈으로 단검을 날려 엘리트 부엉이도 마무리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현란한 공격.

작은 비도, 큰 비도, 콩알만한 쇠구슬, 못처럼 생긴 물건···.

저 많은 걸 다 어디에 숨겨두고 있었는지 모를 정도로 끝도 없이 쏟아져 나왔다.

게다가 무서울 정도의 정확성.

던지는 족족 명중했다.

단 하나의 빗나감도 없었다.

또 얼마나 빠른지.

눈으로도 쫓을 수 없는 속도로 전장을 휩쓸고 있었다.

각성 장교들도 힘을 얻었다.

"죽여!!!"

사기가 끓어올랐다.

부상 당해 후방에 빠져있던 장교들도 회복제를 먹고 즉각 전장에 재투입됐다.

태홍 회복제.

이것도 김태주 회장이 만든 약.

진짜 이게 없었다면 어쩔 뻔했나?

"내가 다시 왔다! 씨발, 돼지 새끼들아!"

"밀어붙여!"

삼삼오오 짝을 지어 서로를 보호하면서 오크에 맞서는 각성 장교들.

그러다 위험한 순간이 다가오면,

츠피릿!

어디선가에서 날아온 투사체가 오크들을 지워버린다.

"회장님이다!!! 회장님이 우릴 보호하신다!"

"과감하게 공격해! 우린 절대 안 죽어!!!"

"다치면 회복제 먹고!"

그런데 뭔가 이상해지고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허둥지둥 어찌할 바를 모르는 오크들.

힘도 많이 약해졌다.

반격도 못 할 수준으로.

심지어 도망치다 넘어지기까지.

마치 변종 3줄 무늬 모기에 물려 마나가 소진된 것처럼.

푹푹 찌르면 찌르는 대로,

서걱, 서걱, 베면 베는 데로.

별다른 대응도 하지 못한 채 죽어 자빠진다.

이거 설마?

'···모기 독?'

이거도 김태주 회장이?

자신들은 상관없었다.

해독제를 복용하고 있었으니까.

※ ※ ※

구준영 소장도 분투했다.

마나 블레이드 장창으로 엘리트 오크 대족장과 치열하게 맞서고 있었다.

아직 완전하게 회복된 건 아니지만 엘리트 마나 결정체 장창을 다시 손에 넣었다.

역사적으로 그랬다.

인간이 자연을 지배할 수 있었던 이유.

바로 도구를 사용하는 것.

이건 마수와 비교할 수 없는 강점이다.

아무리 평범하지 않은 몽둥이라고 해도 결국 나무.

째앵!

째째쟁!

몽둥이와 창이 공방전을 벌인다.

강기와 강기가 부딪혔다.

그때마다 몽둥이가 푹푹 깎이면서 부서졌다.

여세를 몰아 구준영은 쉴 새 없이 몰아붙였다.

츠츠츳, 츠츳!

스킬로 보이는 연속 찌르기.

몽둥이로는 막을 수 없는 위력이었다.

다만 엘리트 오크 대족장의 전신에 둘러쳐진 강기 보호막 때문에 치명타를 때리지 못하고 있을 뿐.

한 번씩 손속을 나눌 때마다 놈이 움찔움찔 뒤로 물러났다.

오크들을 처리하면서 한 번씩 구준영의 상태를 살피던 태주에게도 보였다.

'한 손 거들어 볼까?'

태주는 엘리트 오크 대족장의 뒤통수에 유엽비도를 날렸다.

츠피피핏!

태탱!

"크캬캭!"

일명 뒷치기.

그로 인해 흐트러진 놈의 집중력.

뒤에서 날아오는 무기에 분노하면서 태주에게 달려가려 했지만.

"돼지 새끼야! 어딜 가?"

채챙! 채채챙!

구준영이 마나 블레이드 창을 찔러 다시 어그로를 잡았다.

태주의 뒷치기는 정정당당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한창 싸우고 있는 놈의 뒤통수를 노리다니.

하지만 어쩌라고?

누군가 자신의 행동을 비난해도 타격감이 1도 없다.

원래 강호에서도 절대독마 당군악은 비열함의 대명사, 독을 사용한다는 것 자체가 비난받을 일, 피할 수 없는 숙명이었다.

진짜 비겁하다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다.

소위 정파라고 하는 동료들에게도 말이다.

병신들, 고상한 척하는 위선자들.

죽고 죽이는 전쟁에 무슨 정의와 명분을 따져?

마교 새끼들에게 부모 잃고, 아들 잃고, 아내와 딸은 강간당하고···,

그래도 나는 정의로웠노라고 자위할 텐가?

아무튼 전세는 확실하게 역전되고 있었다.

오크들이 모기 독 때문에 거의 쎅토끼 수준으로 약화됐다.

엘리트 오크 대족장의 강기 보호막 또한 흐릿해졌다.

'너도 약해졌구나. ···이거 되겠는데?'

태주는 독기를 가득 집어넣은 유엽비도 한 자루를 준비했다.

구준영은 연속 찌르기로 엘리트 오크 대족장의 보호막을 공격하고 있었다.

파바바바박!

째재재재쟁!

그 순간!

츠피릿!

유엽비도가 날았다.

태앵!

튕겨 나간 유엽비도.

실패했다.

급할 게 있나?

또 하면 되지.

다시 일반 오크들을 상대하다가, 잊을 만하면 나타나서 넓은 등짝에 하나 더 날려 주고.

태앵!

이러기를 수차례.

그러다 마침내!

쑤욱!

유엽비도가 약해진 강기 보호막을 뚫어버리고,

푸욱!

엘리트 오크의 등에 틀어박혔다.

"꾸에에에엑!"

갑자기 등에 파고든 날붙이에 괴성을 지르며 몸부림치는 엘리크 오크 대족장.

이럴 때 어울리는 대사 한마디가 생각난다.

넌 이미 죽어있다.

실제로 그랬다.

독기 충만한 유엽비도를 허용한 엘리트 오크.

몸놀림이 느려지고, 숨을 헐떡이기 시작했다.

승기를 잡았다고 판단한 구준영 소장의 장창 공격은 더더욱 매서워졌다.

한동안 제법 버티는 듯싶더니, 결국!

푸욱!

"끄르르르륵···,"

심장을 파고드는 구준영의 장창에 절명하고 말았다.

"헉헉."

가쁜 숨을 몰아쉬는 구준영 소장.

그리고 태주를 바라봤다.

척!

동시에 올라오는 오른손 엄지, 왼손 엄지도.

연이어 손가락 하트.

다음은 두 팔을 머리 위로 올려 또 다시 크게 하트.

"···."

무슨 스킬도 아니고,

연속 동작으로 엄지척, 쌍엄지척, 손가락 하트, 큰 하트···,

태주는 그냥 목례로 화답했다.

하지만 이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전투가 끝나고 터져 나온 군인들의 환호성.

"김태주! 김태주! 김태주!"

"회장님 만세!!!"

"차렷! 경례! 멸마!"

"감사합니다!"

"앞으로 약은 태홍 바이오에서만 삽니다!"

기분은 좋지만.

민망해 죽겠다.

※ ※ ※

엘리트 오크 대족장이 죽었다.

그 영향은 일반 오크들에게도 미쳤다.

뿔뿔이 흩어져 도망가는 오크들.

각성 장교들은 악착같이 쫓아가서 무기를 찔러넣었다.

전장은 순식간에 정리됐다.

5황자 류진철은 그제야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긴장이 풀린 까닭이다.

처음 대규모 오크 무리가 나타나고 뒤를 이어 엘리트 오크 대족장까지 나타났을 때 든 생각.

여기서 죽나?

물론 혼자 도망가면 살 수 있긴 하지만.

그랬다간 제국민들을 버리고 혼자 도망간 황자라는 오명을 평생 안고 살아야 하는데.

악착같이 버텼다.

몰려드는 오크들을 베고, 또 벴다.

하지만 역부족.

결국 구준영 소장도 죽음의 위기에 처했고.

그런데 갑자기 나타난 회색 코트의 남자.

'누구지?'

순식간에 상황을 반전시키고, 구준영과의 협공을 통해 엘리트 오크 대족장마저도 쓰러뜨렸다.

엘리트 오크가 쓰러지고 난 뒤, 남은 오크들은 오합지졸.

정리가 끝난 후, 연호되는 이름.

'···김태주? 아!'

누군지 알겠다.

그런데 제약회사 회장 아니었나?

각성도 안 한 것 같은데···.

'인사라도···,'

류진철은 쓰러진 오크의 머리에 박힌 비도를 뽑았다.

'이걸 돌려주면서.'

길이도 짧고, 폭도 좁은 나뭇잎 모양의 무기.

그런 후 구준영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회색 코트의 김태주에게 다가갔다.

※ ※ ※

구준영 소장은 빠른 걸음으로 태주를 향해 저벅저벅 걸어왔다.

굉장히 무서운 기세로.

태주는 서둘러 빠져나가려고 했지만,

와락!

자신을 끌어안는 구준영.

"고맙네, 정말 고마워! 내가 말주변이 없어서 이 정도밖에 표현 못 하는 게 안타까울 정도야."

"아, 아뇨. 충분히 전달됐습니다. 그러니 그만 안아도···,"

"자네가 날, 아니 우리 팀 전원을 살렸어."

"뭘요, 저 혼자 잡았나요? 구소장님하고 같이 잡았지."

"무슨 말도 안 되는 겸손을! 우리 군인들을 봐. 다 감사하고 있지 않나."

"하하하! 네, 네."

웃음으로 얼버무리고 태주는 슬며시 구준영의 품에서 벗어났다.

빨리 자리를 떠야지.

자신이 없었다면 거의 전멸이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도 구준영 소장이 없었으면 힘들었다.

엘리트 부엉이야 이미 상처를 입어서 구멍이 뚫려있었기에 비도가 들어간 거고, 엘리크 오크도 구준영이 탱커 역할에, 어그로를 끌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간신히 구준영에게서 풀려난 태주는 먼저 엘리트 오크 대족장의 시체에서 유엽비도를 뽑았다.

재활용해야지.

"그것들 수거해야 하나?"

"네."

"기다려보게. 내가 부하들에게 지시하지. 보이는 투사체 무기 몽땅 주우라고."

다음으로 태주는 엘리트 강철 깃 부엉이에게 다가갔다.

가슴에 박힌 탈명비도.

'이것도 뽑고···, 음?'

그런데 부엉이 시체의 깃털이 예사롭지 않다.

죄다 금속이었다.

태주도 부엉이의 강철 깃털이 꽤나 귀한 마수 부산물이란 걸 미리 알고 있었다.

게다가 이건 엘리트 강철 깃털.

엘리트 마나 결정체와 맞먹을 정도로 희귀한 것.

어쩌면 더 귀할 수도 있었다.

태주는 깃털 하나를 뽑았다.

스윽,

손으로 쓸어보니.

'날카롭네. 단단하고.'

광택도 찬란했다.

양 끝을 잡고 휘어보니 탄성도 기가 막혔다.

다만 무게 중심이 잡혀있지 않아 이 상태론 암기로 쓸 수 없다.

이걸 녹여 다시 모양을 잡아 만든다면?

거기에 엘리트 마나 결정체를 섞어 제련한다면?

탐난다.

암기도 명품이 있다.

절대독마가 가지고 다니던 암기가 그랬다.

당군악은 강호 최고의 대장장이가 운철과 현철을 이용해 만든 암기만을 사용했다.

어느새 다가와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는 구준영.

"왜? 가지고 싶나?"

"몇 개 얻어가면 좋겠네요."

"어허! 무슨 소리? 얻어가다니!"

그리고는 고개를 돌려.

"이봐, 장중령."

"네, 사단장님."

"엘리트 부엉이 도축해서 엘리트 마나 결정체와 몸에 있는 모든 깃털 모조리 모아서 김회장에게 넘겨드려."

"바로 도축 들어가겠습니다."

이렇게 감사할 데가.

"그리고 엘리트 오크 대족장 마나 결정체도 자네에게···,"

"아뇨! 그건 SS팀 실적으로 남겨야죠."

"실적? 그따위는 목숨보다 중하지 않아. 꼭 가져가게. 아니면 버리고 갈 거야."

"으음, 정 그러시다면 뭐."

모든 병사들이 부엉이 시체에 달라붙었다.

차곡차곡 쌓여가는 깃털.

이걸로 암기를 제작하면 그 성능은 얼마나 대단할까?

이로써 득템.

기대된다.

경지에 다다른 무인은 병기를 가리지 않는다지만, 그건 맞지 않은 이야기.

명품 무기를 가지는 것, 무인으로서 또 하나의 즐거움 아니겠나.

< 득템! > 끝

ⓒ 꾸찌꾸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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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 알고있으니까 꺼져! >

사실 작전 실패나 마찬가지였다.

다행히 사망자는 없었지만 부상자가 꽤 많다.

SS팀은 좀 있다가 본대와 합류해 재정비할 계획.

태주는 구준영 소장과 실패의 원인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순간.

"저기···, 이거."

소위 계급장을 단 젊은 남자가 태주에게 다가와 두 손으로 뭔가를 내밀었다.

유엽비도 한 자루였다.

"아! 감사합니다."

태주는 비도를 받았다.

그런데 할 말이 있는 듯 자신을 멀뚱하게 바라보는 청년 소위.

"혹시 용건이라도,"

"아, 아닙니다. 인사를 하고 싶어서, 처음 뵙겠습니다. 류진철 소위입니다."

"네, 태홍 바이오 김태주입니다."

"감사합니다. 회장님, 제 목숨의 은인이십니다."

"뭘요."

태주는 답례를 하면서도 구준영을 슬쩍 쳐다봤다.

'이상하네.'

사단장과 대화하는 자리에 일개 소위가 와서 인사를 청한다?

심지어 사단장에게 경례도 하지 않고?

정신이 나간 소위라면 몰라도···,

하지만 구준영 소장은 매우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다.

'혹시?'

토벌 작전 최종 브리핑에 들은 기억이 난다.

산청부대가 황실 귀빈을 맡기로 한 것을.

'류진철이라,'

황가의 성이 류씨다.

그렇다면?

"황자님이십니까?"

"어? 어떻게 알고···, 티가 났나요?"

"당연히 티가 나죠. 옆에 사단장님 있는데, 경례나 관등성명도 없고."

"아!"

류진철은 머쓱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아무튼 감사드립니다. 제 목숨을 구해주셨어요."

"천만에요. 보니까 황자님께서도 잘 싸우시던데."

그러자 잔뜩 흥분해서 말을 늘어놓는 류진철 황자.

마치 봇물이 터진 것처럼.

"그래도 태주씨만 하겠습니까? 어떻게 던지는 족족 무기가 명중하는지···, 그것도 스킬인가요? 참! 각성 안 하셨지. 정말 대단하십니다. 시간이 되시면 제게 가르침이라도···,"

황자의 성격은 괜찮아 보인다.

권위도 내세우지 않고.

"코트는 환상 여우 가죽으로 만든 겁니까? 그럼 무기들을 코트 속에다 넣고 다니는 건가요? 꽤 무거울 텐데···, 와! 주머니가 많이 달려있네요."

다만 말이 많다.

일일이 대답하기에 귀찮을 정도.

"회복제는 구례에서만 파실 겁니까? 뉴서울에 진출하셔도 좋을 텐데요. 제가 도움을 드릴 수 있습니다. 탈법이나 위법만 빼고, 참! 리더스 클럽이라고 아십니까? 제가 거기 회원으로···,"

태주는 도와달라는 눈초리로 구준영을 바라봤다.

그러나 고개를 절래절래 흔드는 구준영.

하아, 이 양반!

고맙다고 할 때는 언제고.

그때였다.

"모두들 괜찮나? 다친 사람은?"

뒤늦게 태주의 뒤를 쫓아온 오진형 군단장.

"멸마! 이상 없습니다."

구준영이 경례를 붙이며 답했다.

"그래? 다행이군."

기회는 이때.

태주는 스마트폰을 들고 시간을 확인한 후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어? 벌써 시간이 이렇게···,"

"왜 그러나? 무슨 문제라도?"

"아뇨. 퇴근할 시간이 돼서."

"···."

태주는 구준영의 부하가 챙겨준 자루를 집어 들었다.

안에는 수거된 암기들, 엘리트 강철 깃 부엉이의 깃털, 엘리트 마나 결정체가 들어있었다.

"그럼 전 이만···, 내일 새벽에 다시 올게요."

팟!

사라지는 태주.

민간인 좋다는 게 뭔가?

시간이 되면 퇴근할 수 있다는 거지.

오진형은 또 뒷모습만 바라봐야 했다.

그리고는.

"황자님은 괜찮으십니까?"

"네, 중장님, 김태주 회장이 없었다면 큰일 날 뻔했지만."

"다행입니다. 항상 조심, 또 조심하십시오. 옥체에 손상이라도 입으시면 제가 황제 폐하를 볼 면목이 없습니다."

그러고 나서 구준영 소장에게 고개를 돌리는 오진형.

"준영아."

"네, 중장님."

"오면서 들었다. 엘리트 마수 둘이 동시에 나타났다고?"

"그랬습니다. 김태주 회장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됐고, 보고서나 작성해. 이런 상황이 벌어진 이유를 상세하게 써서, 그리고 재발 방지 방안도."

"네, 알겠습니다."

그건 그렇고.

"진짜 사망자가 없나? 오크 무리 숫자도 상당한 것 같은데."

"부상자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마저도 회복제를 복용해서 멀쩡합니다."

"그렇군."

오진형은 고개를 끄덕였다.

엘리트 마수도 혼자 잡는 실력에, 위기가 닥치면 어느새 달려가는 믿지 못할 기동력, 그리고 그가 만들어준 해독제와 회복제.

김태주 회장이 토벌 작전에 참여하지 않았으면 어떡할 뻔했나?

한참 동안 뭔가를 곰곰이 생각하던 류진철 5황자가 오진형에게 말했다.

"군단장님, 요청할 것이 있습니다."

"말씀하시지요."

"지금부터 GS팀, 군단장님 팀에 합류하면 안 되겠습니까?"

천천히 고개를 돌려 황자를 지그시 바라보는 오진형.

이유는 알겠는데 어림도 없다.

"절대 안 됩니다. 그렇지 않아도 부탁드리던 참이었는데, 이만 황궁으로 돌아가시지요."

"네? 그, 그건···, 귀, 귀찮게 해드리지 않겠습니다. 저도 도움이 될 겁니다. "

"부대 최고 지휘관으로서 류진철 소위님께 드리는 명령입니다."

"어어···."

오진형 단호하게 못 박았다. 그리고는.

"구준영 소장."

"넵!"

"호위대 꾸려서 황자님 군단 본부까지 안전하게 모셔드려."

"알겠습니다."

황자가 다치면 여러 사람이 고생한다.

만약 입에 담기도 싫은 비극이 발생하면?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지리산 마수 토벌 작전이 성공한들 뭣하겠나?

다 같이 죽는 거지.

※ ※ ※

지리산 밀림에서 퇴근한 태주는 바로 집으로 가지 않았다.

솔직히 기다릴 수가 없었다.

아직 불이 꺼지지 않은 구례 종합 시장으로 달려가니.

"회장님! 이 늦은 시간에···,"

"안녕하십니까?"

"회장님! 우리 가게도 좀 들려주세요. 회장님은 무조건 반값입니다."

"반값 가지고 생색은···, 우리 식당은 평생 무료!"

가게 사장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너도나도 인사를 한다.

얼굴이 팔린 것보다는 태주가 입고 있는 코트 때문.

그래서 멀리 있어도 누군지 단번에 알아본다.

시장 상인들이 이렇게 환영하는 이유가 뭘까?

태주로 인해 창출되는 구례의 경제적 효과가 엄청나기 때문이다.

태홍 바이오의 3종 신약 라인은 오로지 구례에서만 살 수 있었다.

지금도 수많은 적합자와 각성자들이 그 약을 사기 위해 구례를 방문하고 있다.

오픈런을 위해 하루 머무르는 일은 다반사, 숙박업에 요식업, 유흥업에, 그리고 시장경제 활성화까지.

상인들에게 있어 태주는 은인이나 마찬가지.

그래서 시장을 방문할 때마다 환영 세례를 받고 있었다.

뻘쭘할 정도로.

태주의 목적지는 금속 무기 공방 거리.

그가 나타나자 공방 직원이 반색하면서 뛰쳐나왔다.

"안녕하세요."

"회장님! 또 오셨군요. 그렇지 않아도 제가 연락드리던 참이었는데."

"아! 전에 주문한 거 다 완성하셨나 보죠?"

"네, 여기 직접 오실 필요도 없는데, 직원을 통해 배달해드리겠습니다."

"아뇨, 제가 직접 가져갈게요."

태주 혼자 올려주는 공방 매출만 한 달에 수억 원대.

당연히 극진한 대접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의뢰할 것이 있어서요."

"뭐든 말씀해주십시오. 회장님 의뢰는 항상 최우선으로 처리하고 있습니다."

"이걸로 무기를 제작하려고 하는데···."

태주는 가지고 온 자루를 공방 제작대에 올렸다.

절그럭.

"오! 부엉이 깃털이군요. 마나를 품은 금속 재질이라 일반 강철과 합금하면···, 어?"

갑자기 눈을 동그랗게 뜨는 공방 직원.

"이, 이건 그냥 부엉이 깃털이 아닌데···, 으음, 설마?"

"맞습니다. 엘리트 강철 깃 부엉이."

"헛!"

직원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일반 부엉이 깃털도 귀한 판에 엘리트라니.

"정말입니까?"

"여기 엘리트 마나 결정체도."

"···세, 세상에!"

"이걸로 비도 몇 자루 제작하려고 하는데···,"

"자, 잠시만요!"

공방 직원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이건 제 선에서 처리할 의뢰가 아닙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사장님 모셔올게요."

그러더니 공방 안쪽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헐레벌떡 뛰어나오는 공방의 사장이자 최고등급 장인.

"엘리트 강철 깃 부엉이 깃털이 들어왔다고? 이게 누구한테 거짓말을···."

"정말이라니까요."

그리고 태주와 눈이 마주쳤다.

"···어이쿠! 회장님이셨네. 난 또 누가 사기 치는 줄 알았습니다."

"확인해보세요. 여기 엘리트 마나 결정체도 있으니까."

"헉! 세, 세 개씩이나?"

"어쩌다 운이 좋아서 구했습니다. 제작 의뢰 가능하죠?"

"암요, 그렇고 말고요. 잘 오셨습니다. 제 자랑 같지만 적어도 구례에선 엘리트 강철 깃털을 다룰 장인은 저 말고는 없지요."

태주도 안다.

꽤 실력 있는 장인.

그래서 이 공방과 계속 거래를 해왔고.

"이걸로 전에 만들어주셨던 비도를 만들어보려고 하는데···, 작은 거 30개와 큰 거 10자루 정도?"

"아! 네네, 알겠습니다. 어디 보자···."

한참을 살펴보더니.

"좀 더 나올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럼 작은 거 개수를 늘려주세요. 공임비는 후하게 쳐 드릴게요."

"에이, 넣어두십시오. 재료도 다 가지고 오셨는데."

"아뇨. 드릴 건 드려야 저도 마음이 편합니다."

"아이고, 그럼 열심히 혼신을 다해 만들어보겠습니다."

"언제까지?"

"확답은 못 드립니다. 괜히 시간 맞추려고 서두르다가는 귀한 재료 허공에 날릴 수도 있어서."

좋다.

더 믿음이 간다.

"알겠습니다. 천천히 하셔도 돼요."

일단 가장 많이 사용하는 암기부터.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태주는 집으로 가지 않았다.

시장 안 시장 농업종묘상에 들러.

"제가 부탁한 거 구했습니까?"

"여기···, 아무나 파는 거 아닙니다. 회장님이라서 드리는 겁니다."

"하하 걱정마세요. 이거 가지고 나쁜 짓 하려는 건 아니니까."

청산가리를 비롯한 농약 몇 개도 챙긴 후, 태주는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서 푹 쉬자.

※ ※ ※

산청부대 사단장 구준영의 보고서가 각 부대에 전해졌다.

요점은 엘리트 강철 깃 부엉이 대응 시 문제점과 대처방안.

사실 딱히 특별한 해결책은 없었다.

부엉이를 죽이기 위해선 강기 보호막이 씌워진 깃털을 무력화시켜야 했다.

두 가지 방법 말고는 없었다.

여러 명의 마스터가 한꺼번에 달려들던가, 아니면 늘 하던 대로 하이퍼 신궁 대전차 미사일을 사용하든가.

그래서 해결책도 두 가지.

엘리트 강철 깃 부엉이가 출현하면 각 스페셜 레이드 팀의 긴밀한 협조를 통해 연합 공격을 펼친다.

다른 하나는 부득이하게 하이퍼 신궁 미사일을 사용하게 되면 그전에 무전으로 본대와 합류해서 병력을 보강한 채로 잡는다.

그날 저녁.

함양부대 본대 숙영지.

도민수 소령은 점호 과정에서 임관 예정 사관생도들에게 오늘 있었던 사고사례를 전파했다.

"···그렇게 구준영 소장님이 부엉이와 힘겨루기를 하는 동안 미사일 폭발의 여파로 대규모 오크무리와 엘리트 오크 대족장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경청하는 사관생도들.

한 명이 손을 들고 질문했다.

"사, 사상자는 몇 명입니까? 엘리트 마수 두 마리라면 피해도 엄청났을 건데."

"다행히 사망자는 한 사람도 없다."

"네? 어떻게 그럴 수가?"

도민수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구례 스페셜 레이드팀 오진형 군단장님이 제때 합류하셨다."

"아!"

"오!"

"그렇구나."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탄성.

"그리고 태홍 회복제 알지? 그것도 심한 부상자를 회복시키는데 한몫했고."

순간 번쩍 손을 드는 생도 하나.

"생도 정연희. 질문 있습니다."

"해봐."

"혹시 김태주 회장도 합류했습니까?"

"···뭐?"

도민수는 흠칫 놀랐다.

김태주의 참가.

비밀은 아니지만 이야기해 준 적도 없었다.

"정연희 생도!"

"네."

"김태주 회장님에 대해선 어떻게 알고 있지?"

"···집에서 들었습니다. 단순히 해독제만 만드는 분이 아니라는 걸."

사관생도들은 거의 다 집안이 좋다.

'하여간 금수저 새끼들이란···.'

삼한제국에 떠도는 웬만한 정보들은 다 수집하고 있을 터.

"또한 구례에 출현한 마인 3명을 처단한 주체가 자경단이 아니라 김태···,"

"그만! 거기까지다."

그래도 미련이 남는 듯 정연희는 또 한 번 질문했다.

"우리도 작전 도중에 김태주 회장님 만날 기회가 있습니까?"

"만나고 싶나?"

"네! 꼭 뵙고 싶습니다!!!"

도민수는 픽, 웃으며 말했다.

"그럴 가능성 없으니까 기대도 하지 마라."

"···혹시 토벌 작전이 끝난 다음에라도?"

"쯧, 정연희 생도."

"네!"

"회장님은 함부로 만날 수 있는 분이 아니야. 그러니 꿈 깨."

"···."

"이상, 점호 끝! 내일은 숙영지를 옮긴다. 새로운 진지에서 사냥을 할 테니 미리 준비하도록."

"네, 알겠습니다!!!"

점호가 끝난 뒤에도 삼삼오오 모여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생도들.

물론 김태평과 김태천은 대화에 끼지도 못했다.

그저 처음 들어보는 사실에 경악하고 있었다.

김태주가 해독제를 발명했다는 건 안다.

회사도 차리고 큰돈을 벌었다는 것도.

그런데 엘리트 마수를 상대할 만큼 강하다고?

심지어 마인 처단에도 관여한 것 같다.

오랜 세월을 함께 있었다.

누구보다 김태주를 잘 알고 있는데.

"태평이 형, 도민수 말이 진짜일까?"

"나도 모르겠다. 도무지 믿을 수 있어야지."

"그치? 말도 안 되잖아. 마나 거부자 새끼가 어떻게?"

"뭔가 수작을 부렸겠지. 그놈 돈이 많잖아. 그래서 군단장과 거래를 했을 거야."

"거래?"

"지리산 마수 토벌 작전에 대한 공적? 훈장이라도 달고 싶은 걸지도."

"아하! 맞다. 신빙성이 있어. 그 새끼, 이제 명예까지 욕심내는구나."

정말이라 하더라도 믿고 싶지 않았다.

김태주가 자신들은 꿈도 못 꿀 엘리트 마수를 잡았다는 사실을 말이다.

뭔가 생각난 듯 김태평은 슬며시 일어났다.

"형 어디가?"

"화장실, 먼저 자고 있어."

그러나 화장실이 아닌 반대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김태평.

간이 세면대에서 세수하고 나오는 정연희를 발견했다.

그리고.

"저어, 있잖아."

"뭐?"

김태평이 건넨 말에 싸늘하게 대꾸하는 정연희.

"그···. 김태주 회장 말이야. 밝히지 않으려고 했는데 사실 내 형이야. 배다른 형,"

"그런데?"

"어? 아, 아니 아까 니가 만나보고 싶다고 한 게 기억나서. 내가 도와줄 수도 있다고···."

"하!"

정연희가 코웃음을 쳤다.

"설마 내가 그걸 모르고 있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아, 알고 있었어?"

"그럼 몰랐겠냐? 그 머리로 사관학교는 어떻게 입학했어? 뭐, 알만해, 네 규슈 영지 출신의 일본인 엄마 연줄 때문인 거."

엄마 얘기가 나오자 발끈하는 김태평.

"뭐? 일본인? 삼한제국으로 통일된 지가 언젠데! 그거 차별 발언이야! 당장 취소해."

"이게 얻다 대고 언성을 높여? 죽고 싶어?"

김태평은 찔끔했다.

정연희는 자신보다 두 단계 이상 강하기 때문이다.

"여기 사관생도들, 네 집안 사정 모르는 사람 하나도 없어. 니들과 네 엄마가 김태주 회장님 어떻게 대했는지, 또 지금은 절연한 상태라는 것도."

"···뭐?"

"그리고 중앙제국군 임관은 포기하는 게 좋을걸? 이미 소문이 다 퍼진 상태라, 너희 두 형제가 갈 수 있는 부대는 영지군, 그것도 파주나 규슈밖에 없어."

"···."

"그러니 저리 꺼져! 질척대지 말고. 네 얼굴 보는 것만으로도 재수 없으니까."

김태평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 다 알고있으니까 꺼져! > 끝

ⓒ 꾸찌꾸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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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원무상독령공 7성으로(1) >

백서연은 오늘도 회사 사옥에 남았다.

퇴근할 시간이 지났지만 업무가 많아도 너무 많다.

지금도 곳곳에선 건설공사가 진행 중이다.

공장과 설비, 직원들 기숙사, 편의 시설···.

땅이 모자라면 사들였다.

여기 주변 전체가 태홍 바이오 단지가 되어 간다.

김태주 회장님이 참여하시는 지리산 마수 토벌 작전, 틀림없이 성공하겠지.

그럼 구례는 이전에 없었던 대 부흥기를 맞이하겠고. 회사도 따라서 성장할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구례에서 멈출 생각이 없다.

더 큰 회사, 삼한제국을 넘어 세계를 호령할 초거대 다국적 기업, 그것이 김태주 회장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요즘 백서연은 태홍 고아원에서 먹고 자고 있었다.

아이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에너지 충전도 하고, 마음의 평화도 얻고.

이제 고아라고 차별받는 일은 없었다.

누가 보살피는 고아원인데!

백홍표 원장도 아이들을 극진히 보살폈다.

입고 다니는 옷, 신발, 스마트폰, 일상 용품도 다른 아이들에게 뒤지지 않은 고급품으로.

들어가는 돈이 많았지만 아깝지 않았다.

현재 그녀가 가장 몰두하고 있는 일은 태홍 바이오 대도시 지점 선정 작업.

'아무래도 뉴서울로 가는 게 맞아.'

태홍 바이오가 대기업으로서 발돋움하려면 제일 효율적인 곳이 바로 뉴서울이다.

백서연은 회장님에게 뉴서울에 지점을 내자는 보고를 올렸고, 즉시 승인을 받았다.

상징성도 있고, 인구도 많아 매출도 구례보다는 훨씬 높을 것이고, 인력을 구하기도 편하고···,

다만 구례에서만 팔고 있는 3종 신약은 변함없이 여기서만 팔 것이다.

새로 개발 예정인 외상 치료제, 그리고 자양 강장제, 이 두 개의 신약을 뉴서울에서 특허를 받아 생산에 들어갈 계획, 그곳은 특허권에 대한 보호가 철저한 곳이니까.

'공장 부지도 선정해야겠어.'

뉴서울은 땅값이 비싸다.

그러나 태홍 바이오의 자본력도 만만치 않다.

돈이 중요한 게 아니다.

필요한 건 오직 사람.

그것이 현재 태홍 바이오의 유일한 약점이다.

우수한 인재를 최대한 확보해야 한다.

백서연은 또 전화기를 들었다.

대기업에 다닐 때 많은 사람들을 봐왔다.

그중에 능력이 출중했지만 사내 정치에 휘말려 한직으로 발령받거나 명예퇴직을 당해 쉬고 있는 사람도 있다.

이 사람들을 끌어들일 생각이다.

처음 구례에서 회사의 체계를 잡아나갈 때, 인재 채용은 극히 제한적이었다.

누가 촌구석으로 일하러 올까?

그래서 구례 출신, 아니면 근방에 있던 사람들만 불렀다.

하지만 일하는 곳이 구례가 아닌 뉴서울이라면 인재 채용의 폭은 훨씬 넓어진다.

"여보세요? 최동일 전무님?"

- 누구요? 못 보던 번호인데.

"저, 백서연입니다. 전에 미리내 그룹 미래전략실에서 근무했던."

- 아! 백과장! 오랜만이네. 참! 계속 과장인가? 지금쯤이면 승진할 때도 됐지.

"미리내는 그만뒀어요. 대신 태홍 바이오 총괄경영자로 근무 중이고요. 혹시 아세요?"

- 태, 태홍 바이오? 포자 독 해독제 발명한 그 제약회사?

"맞아요. 전화 드린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뉴서울에 태홍 바이오 지점을 낼 건데···."

백서연은 지금은 집에서 쉬고 있는 최동일 미리내 전자 전(前) 전무에게 뉴서울 진출에 대한 청사진을 조곤조곤 설명했다.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도.

그러자.

- 나 같은 퇴물을 뭐하러.

"그야 최전무님을 믿으니까요. 퇴직도 능력이 없어서 당한 게 아니잖아요. 추잡한 정치질에 휘말려 그렇게 되신 거지."

- ···.

"최고 대우로 모실게요. 아마 저하고 연봉협상을 하시면 깜짝 놀라실 정도로요."

수화기 너머로 최동일 전무의 고심이 느껴졌다.

백서연도 잠시 말을 멈추고 그를 배려해줬다.

이윽고,

- 내가 회사를 나오자, 같이 그만두거나 쫓겨난 부하직원들이 몇 명 있소. 그들과 함께할 수 있다면 승낙하겠소.

"아유, 저야 너무 좋죠."

- 어어, 저, 정말 그래도 된다는 말이오?

"전무님, 구례로 한번 방문해주시겠어요? 그분들과 같이. 빠르면 빠를수록 좋아요."

- 아, 알겠소이다.

아싸!

한 명 잡았다.

아니지. 더 많지.

하지만 백서연은 아직 배가 고프다.

"여보세요? 마석우 차장님? 저 백서연이에요. 네네, 이번에 물류창고 재고 담당자로 발령이 나셨다고요? 어쩜, 차장님 같은 인재를 그런데 처박아 두다니, 제가 전화한 용건은요···."

"구부장님! 호호호, 제 목소리 기억하고 계시네요? 네네, 잘 되고 있어요. 너무 쭉쭉 뻗어가서 감당이 안 될 정도랍니다. 자리 없냐고요? 당연히 있죠. 구례가 아니고 뉴서울에···."

"잘 지냈어? 송수희 대리, 내가 왜 전화한 것 같네. 딩동댕! 정답이야. 호호호, 기다렸다고? 미안해 수희야, 내가 너무 늦었어. 오랜만에 한잔할까? 내가 뉴서울로···, 응? 구례로 온다고?"

백서연의 공격적인 인재 채용은 계속됐다.

그렇게 전화를 하다 보니 어느덧 늦은 밤.

'하아, 지친다 지쳐.'

배도 고프고.

'오늘은 아이들과 밥을 먹을까?'

저녁 시간이 지나 먹을 게 있을지 모르지만.

"아참!"

뭔가 생각난 듯 책상 서랍을 열어보는 백서연.

드르륵.

안에는 검정색 쎅토끼 똥 같은 동그란 환약 하나가 들어있었다.

외견은 태홍 회복제와 비슷해 보이지만 크기가 훨씬 컸다.

김태주 회장님이 만들어주신 영약.

아버지도 받았다.

하지만 그녀는 아직 먹지 않고 있었다.

'으음, 마나 순응자가 먹어서 뭘 한다고.'

백서연은 일반인.

영약은 일반인이 먹으면 효과가 급감한다.

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적합자나 각성자가 먹어야 의미가 있지.

그냥 팔아서 회사 재정에 보태는 게 어떠냐고 말해봤지만 김태주 회장에게 야단을 맞았다.

허튼 생각 말고 반드시 먹으라고.

이건 팔려고 만든 물건이 아니라면서.

이왕 꺼낸 김에 먹어버리자.

마나 순응자라도 건강엔 좋을 거라고 했으니까.

'이거 너무 큰데? 한입에 삼킬 수 있을까?'

백서연은 크게 입을 벌려 영약을 넣었다.

스르륵!

솜사탕처럼 녹아 없어지는 영약.

"아!"

입안에서 도는 청아한 향기.

동시에 강렬한 기운이 몸속에서 휘몰아친다.

그리고.

'···뭐지?'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했던 기운.

'호, 혹시 마나?'

맞았다.

마나였다.

마나가 몰려왔다.

'내가 마나를 느꼈다고?'

일반인은 마나를 느끼지 못한다.

그저 영향을 받지 않고 살아갈 뿐이었다.

적합자라면 모를까···, 설마?

'나 아무래도 적합자가 된 거 같은데?'

세상에!

백서연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진짜?'

온몸에서 불끈불끈 활력이 솟아올랐다.

적합자.

마나를 이용해 신체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사람들.

그러고 보니 피곤이 싹 가셨다.

'이건 또 무슨 냄새야?'

백서연의 피부에서 흘러나오는 끈적한 진액.

심한 악취가 났다.

"어우."

노폐물이 빠져나온 건가?

밥이고 뭐고, 일단 씻어야지.

백서연은 그제야 김태주 회장님이 한 말의 의미를 깨달았다.

절대 팔면 안 되는 물건이라고.

이제야 이해했다.

엘리트 마나 결정체 무첨가 영약이었다.

더구나 단 한 알로 일반인을 적합자로 탈바꿈하게 만들었고.

이 사실이 사람들에게 밝혀지면 어떻게 될까?

백창훈과 장순철이 갑자기 강해진 이유도 알았다.

왜냐고 물어보자 끝까지 대답 안 하고 얼버무렸던 이유도.

'내가 멍청했어.'

절대 팔아선 안 되는 물건.

그리고 팔지 않아도 전혀 문제없었다.

팔 약이 얼마나 많은데.

하여튼 어쩌나?

갈수록 김태주 회장님께 갚아야 할 빚이 많아진다.

어쩔 수 없다.

죽을 때까지 갚아야지.

※ ※ ※

시간이 빠르게 흘렀다.

대토벌 작전 열흘째.

지리산 마수 방어군단은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포위망을 좁혔다.

그 결과 처음엔 멀기만 했던 각 부대 간의 거리가 제법 가까워졌다.

처음 세웠던 전략이 제대로 먹히고 있다는 의미.

이제 서로 간의 소통도 원활해지고 각 스페셜 레이드 팀끼리의 협조도 금방금방 이루어졌다.

칙칙!

무전을 통해서

- HS팀이다. 엘리트 폭풍 족제비 발견. 약 30마리 정도 되는데, 그중의 한 마리가 엘리트로 보인다. 위치는···,

- SS팀이 수신했다. 가까운 곳에 있다. 우리가 지원하겠다.

이렇게 포위망이 좁혀지자 엘리트 마수들도 당황한 모양.

어디 숨어 있었는지 이곳저곳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하지만 구례 스페셜 레이드, GS팀은 느긋하게 움직였다.

지나가는 불쌍한 포자 독 낙타 고라니 한 마리 잡아, 모닥불을 피우고 갖은양념을 발라 올리고는.

지글지글 익어가는 고기.

그릇도 꺼내고, 야채와 소스, 그리고 따뜻한 밥까지.

"자자, 밥 먹고 하자. 밥 한 숟가락에 고기 한 점이다. 알았지? 두 점 집으면 뒈진다!"

원래 GS팀은 본대가 존재하지 않는다.

즉 보급을 받을 수 없다.

그런데 이런 식재료들은 다 어디서 났을까?

오진형이 들고 온 가죽가방에서 나왔다.

"이게 아공간 가방이군요."

"그렇지. 폐하께서 토벌 작전을 위해 특별히 지원해주신 거야. 작전 끝나면 돌려드려야 하고."

"아하."

사실 이게 제일 탐난다.

아공간 가방만 있으면 그 많은 암기들을 일일이 주머니에 넣고 다니지 않아도 되는데.

'아니야. 언제 가방에서 암기 꺼내 던져? 주머니가 제일 빠르지.'

그래도 하나 있으면 좋겠다.

환상 여우 가죽 코트를 왜 입고 다니는데?

암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온도 조절이 된다지만 이 아열대 기후에 바람 하나 통하지 않는 코트를 입고 다니는 건 솔직히 답답하다. 눈에 확 띄기도 하고.

"아공간 가방은 누가 만든 건지 몰라요?"

"알려지지 않았어. 하지만 각성자가 만든 건 분명해."

"각성자요?"

"몇몇 각성자들은 제작 스킬도 가지고 있거든. 그중에 한 명일 거야. 이렇게 엄청난 보물을 만들어내는데 신분이 알려져 보게. 큰일 나는 거지."

"음."

제작 스킬이라.

솔깃하다.

사실 태주도 시스템 각성에 아예 관심이 없는 건 아니다.

절대독마의 무공이 워낙 강해서 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은 것뿐이지.

그런데 제작 스킬이면?

각성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아무튼 우리 같은 각성자들은 스킬이 제일 중요해. 각성자의 힘은 특성과 스킬빨이거든. 마스터가 무서운 게 뭐겠나? 다양한 스킬을 마나 블레이드로 펼칠 수 있다는 거야."

그래 보인다.

당장 오진형 중장만 봐도 그렇다.

엘리트 마수 정도는 단칼에 두 조각 내는 스킬.

"가방이 탐나나?"

"···아뇨."

또 재입대 하라고 할라.

"자넨 돈도 많은데 경매에 나오면 하나 구입하게. 한 5, 6천억이면 될 것 같은데."

"생각해보고요."

사실 여윳돈이 그렇게 많지 않다.

당장 뉴서울에 지점도 내야하고.

앞으로 내놓을 신약이 성공적으로 론칭이 되면 한 3, 4년 안에 살 수 있을지도.

"그나저나 생각보다 토벌이 일찍 끝나겠어. 한 달 정도 예상했는데, 보름도 안 걸릴 것 같아."

"좋은 거 아닌가요?"

"흐음, 당연히 좋지. 하지만 앞으로가 문제야. 바짝 좁혀진 포위망 때문에 엘리트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튀어나올 가능성이 높아."

"대비해야죠."

그런데 바로 그때!

칙칙!

- NS팀. 긴급 요청, 엘리트 자이언트 반달곰 출현. 지원이 필요하다. 다시 말한다. 지원이 필요하다.

- SS팀, 지금 바로 가겠다.

- HS팀, 수신! 기다려라.

엘리트 반달곰?

그렇다면 무려 엘리트 웅담을 얻을 기회.

태주는 벌떡 일어났다.

"왜? 지원 가려고? 3개 팀이면 충분하네."

"마수 부산물 하나 얻을 게 있어서."

"뭘? 엘리트 결정체?"

"아뇨, 웅담요."

"아···! 같이 가세. 내가 잡아주지."

오진형이 바로 무전을 때렸다.

- GS팀도 합류하겠다. 엘리트 반달곰, 잡지 말고 일단 묶어둬.

그리고 태주에게.

"가지."

"네."

백창훈과 장순철도 뒤를 따랐다.

얼음이 채워진 아이스박스도 들고.

엘리트 자이언트 반달곰.

현재 태주 입장에서 제일 잡기 까다로운 마수.

일반 자이언트 반달곰도 독이 잘 듣지 않는다.

물론 혈접을 이용해 눈을 찔러 독기를 한 번에 주입해서 잡았긴 했지만.

엘리트라면 그마저도 쉽지 않을 터.

웅담의 해독작용도 훨씬 뛰어날 것이고.

그래서 이번엔 혼자 가지 않았다.

GS 팀과 함께 움직였다.

팀 간의 거리도 가까워졌기 때문에 금방 도착한다.

밀림 숲속을 헤치고, 작은 계곡도 건너고, 산 위로 올라가는데···,

순간!

'응?'

냄새가 난다, 냄새가.

그것도 아주 달콤한 향기.

'이거 설마?'

뭔지 알겠다.

'잡고 갈까?'

아니다.

혼자 잡는 것이 낫다.

같이 잡게 되면 다른 이들이 위험해질 수 있다.

놈의 독에 대한 해독제도 없고.

일단 장소를 기억해두고.

NS팀이 있는 장소에 도착하자, 이미 3개의 스페셜 팀들이 함께 모여 있었다.

즉 3명의 마스터, 오진형까지 치면 4명.

하지만 사냥이 쉽지는 않았다.

그래도 엘리트인데.

힘 빼기 작전.

놈의 마나를 마르게 하는 것이 먼저.

먼저 NS팀 홍준태 소장이 방패를 들고 엘리트 마수의 앞발 공격을 방어하면 딜러 역할을 하는 슈페리어 익스퍼트들이 곰을 무기로 쿡쿡 찌른다.

"우워어어억!"

홍준태가 지치면 다음으론 SS팀 구준영 탱킹, 구준영이 지치면 HS팀 박필성 소장이.

이렇게 번갈아 가면서 괴롭히니 아무리 엘리트 자이언트 반달곰이라고 해도 견딜 재간이 있나?

충분히 힘을 뺐다 싶으면 마지막으로 오진형을 포함한 4명의 마스터가 한꺼번에 달려든다. 그럼···,

서걱! 푸욱, 서그그그극!

결국엔 머리가 잘려 통나무처럼 뒤로 넘어가게 되는 것이다.

오진형이 태주에게 말했다.

"자, 웅담 빼내 가게."

"고맙습니다. 시간이 좀 걸릴 텐데,"

"기다리면 되지."

태주는 탈혼비도로 죽은 엘리트 자이언트 반달곰의 배를 갈랐다.

그리고.

"창훈아, 순철아!"

"네, 회장님."

"가공 처리해봐."

백창훈과 장순철은 익스퍼트 등급.

또한 태주는 기막, 열양공, 한음공도 가르쳐 스킬화 시켜줬다.

그들에게 웅담 가공 처리를 맡길 생각.

이미 몇 번 해봤다.

엘리트는 처음이고.

기막으로 웅담을 감싸고, 영양공으로 온도를 조절하면서 수분을 날리고, 마지막 한음공으로 꽁꽁 얼리기.

조심조심 웅담을 비닐에 담고 공기를 뺀 후 밀봉, 아이스박스 뚜껑을 열고 담았다.

"잘 관리해. 안 녹도록."

"넵!"

그리고 오진형에게.

"잠시 요 앞에 갔다 올게요."

"응? 또 엘리트 마나 결정체 하나 들고 오려고? 나도 따라갈까?"

"아뇨, 쉬고 계세요. 늦으면 퇴근한 걸로 아시고."

"무전은 꼭 하고 가게."

태주는 좀 전에 기억해 둔 장소로 갔다.

놈은 어디 가지 않았다.

코를 찌르는 달콤한 향기.

독정에 각인된 독이기에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독 발톱 삵.

향기가 엄청나게 진한 걸로 봐서 분명 엘리트다.

잡는 건 어렵지 않다.

삵의 독은 자신에게 통하지 않을 테니까.

다만 이게 독정의 성장에 도움이 될지는 의문.

독정의 성장엔 법칙이 있다.

이놈은 항상 새로운 독을 원한다.

삵의 독은 이미 먹어본 독.

물론 엘리트라 일반 삵보다 독성은 훨씬 강하겠지만,

엘리트의 독도 새로운 것으로 쳐줄까?

제발 그렇게 해주면 좋겠다.

그럼 바로 혼원무상독령공 7성이다.

< 혼원무상독령공 7성으로(1) > 끝

ⓒ 꾸찌꾸찌

=======================================

< 혼원무상독령공 7성으로(2) + 외전. >

혼원무상독령공 6성에 오르고 난 뒤.

태주는 7성에 도달하기 위해 많은 시도를 했다.

토벌에 임하면서 강기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기 때문이었다.

강기 보호막을 뚫어야 독이라도 집어넣을 것 아닌가?

독기방사로는 시간이 제법 걸리고.

7성으로 가자.

그래서 시중에서 농약이나 청산가리 같은 화학 독을 구해 조금씩 먹으면서 독정을 자극해봤다.

하지만 독정이 반응하는 듯하다가 금세 시들해졌다.

화학 독으로는 안 되는 건가?

강화 사린 가스보다 약해서 그런가?

토벌 작전 도중에 처음 보는 독초나 독충들을 먹어보기도 했다.

또 잠시 반응하다 시들시들.

확실히 7성은 만만한 것이 아니다.

충분한 양의 독을 집어넣었다고 생각했다.

화끈한 뭔가가 있으면 팍! 하고 터질 것 같은데.

실제로 당군악도 6성에서 7성으로 올라서기 위해 갖은 노력을 했었다.

특별한 조건?

없었다.

그냥 독을 꾸준히 섭취하는 중에 갑자기 올랐으니까.

그 와중에 엘리트 독 발톱 삵의 흔적을 찾았다.

어쩌면 7성으로 올라갈 수도.

독 발톱 삵은 고양이과 마수답게 조심성이 유별나다.

경계심이 지나칠 정도로 과한 놈, 더구나 엘리트 마수니 오죽하겠나.

그래서 인간들이 포위망을 형성하고 있음에도 섣불리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것 같다.

태주는 여전히 달콤한 향기가 나는 방향을 향해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밀림 수풀 사이로 난 토굴.

저기서 냄새가 난다.

'엘리트 독 발톱 삵 잡으려면 굴에 들어가야지.'

딸깍.

태주는 주머니에서 휴대용 손전등을 꺼내 천천히 안으로 들어갔다.

점점 냄새가 짙어진다.

움직이는 기척도 들리고.

순간!

"캬악!!!"

놈의 피어가 담긴 하악질.

오지 말라는 경고인가?

마치 자신을 두려워하는 듯한 느낌.

'엘리트 마수치고는 너무 졸렬하잖아.'

이유를 알 것도 같다.

엘리트 독 발톱 삵은 독을 주력으로 하는 마수.

본능적으로 알았을 것이다.

토굴로 들어오는 인간이 자신이 가진 독보다 더 강하고 지독한 독을 품고 있다는 걸.

"크르르르르르···,"

태주는 소리가 나는 쪽으로 손전등을 비추었다.

"캭!"

드디어 모습을 드러내는 생명체.

일단 일반 삵보다는 크기가 살짝 크다.

같은 종의 엘리트 마수면 그 크기가 보통 2배 이상인데.

이등변 삼각형 모양의 뾰족한 귀, 양쪽 각각 5가닥씩의 긴 수염, 몸 전체에 난 아름다운 흰색 털과 짙은 검정 줄무늬, 흰자위 하나 없이 까만 눈동자.

놈은 자신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꼬리를 치켜든 채, 배를 바짝 땅에 밀착시키며 태주를 경계했다.

자연계 법칙이 늘 그렇듯 독에 의존하는 생물은 다른 능력엔 약점이 있다.

예를 들어 몸집의 크기라든지, 신체 능력이라든지, 반면 독을 쓰는 능력은···.

"아!"

확실히 알았다.

공기 중에 스며있는 독기.

이놈도 독기방사의 능력을 갖춘 엘리트 마수.

그러나 자신보단 턱없이 약하다.

"너, 나하고 비슷한···,"

타앗!

엘리트 독 발톱 삵이 땅을 박찼다.

"이 새끼가!"

말도 다 안 끝났는데.

태주는 금나수로 놈의 두툼한 턱 밑 살을 움켜잡았다.

눈앞에 보이는 놈의 번득이는 이빨.

순간!

다다다다다!

"씨발!"

뒷다리로 우뚝 선 채 앞발 펀치가 연타로 태주의 얼굴에 작열했다.

발톱에도 강기가 어려있다.

그대로 허용하면 얼굴이 조각난다.

하는 수 없이 두 팔을 들고 막을 수밖에.

파파파파파팟!

코트 소매가 발톱에 잘렸다.

팔뚝에 착용한 가죽 토시가 갈라졌다.

그리고 발톱이 맨살에 닿았다.

서걱!

"윽!"

손을 타고 떨어지는 찐득한 피.

팔뚝이 세로로 길게 베었다.

하도 깊어서 뼈가 보일 정도.

그나마 놈의 강기가 약해서 이만하면 다행이다.

팔에 느껴지는 지독한 격통.

동시에 닥쳐오는 현기증.

상처 때문이 아니다.

독.

엘리트 독 발톱 삵의 독 때문이다.

아니, 이렇게 살벌한 독을 가진 놈이 왜 날 두려워해?

뭐, 자신의 독도 만만치 않은 건 맞지만.

지금까지 이런 극독은 처음 경험해본다.

아무리 마스터라도 긁히면 즉사할 정도,

그런데!

'응?'

순간, 꿈틀거리는 독정.

'오!'

독정이 반응했다.

그렇다면 엘리트 삵의 독을 새로운 것으로 인정하고 있다는 의미.

이제 놈의 몸속에서 독샘만 채취하면 된다.

잡아야지.

태주는 허리를 숙여 삵의 허리를 안고 밀었다.

파바바박!

놈의 발톱이 등짝을 찢어발겼지만···,

"큭!"

그대로 밀착하면서 독기방사.

캬아아악!

태주의 코트가 피로 물들었다.

하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원래 이럴 생각이었다.

어차피 암기도 먹히지 않고.

얼마나 좋은가.

조금 아프긴 해도 놈의 독이 그대로 몸 안으로 들어오는데.

그렇게 팔과 등을 내어주고.

태주는 삵의 털을 단단히 잡고 몸을 돌려 놈의 등에 올라탔다.

정신 바짝 차리자.

"캬악! 캬아아아악!"

펄쩍펄쩍 뛰면서 등에 붙은 태주를 떨어뜨리려는 엘리트 삵.

태주는 마치 로데오 경기 황소 등에 탄 카우보이처럼 딱 붙었다.

독기를 뿜어 대면서 말이다.

절대독마 김태주.

인간 독 살포기.

내 독기방사가 셀까, 네 독기방사가 셀까?

"키엑? 키에에에!"

놈도 느꼈나 보다.

점점 힘이 빠지고 있는걸.

어차피 처음부터 정해진 승부였다.

치명적인 독을 가졌지만 여타 다른 엘리트 마수보다 신체 능력도, 강기의 위력도 약한 놈.

태주는 한쪽 팔을 뻗어 허리춤에 찬 탈명비도를 꺼내 들었다.

동시에 놈의 목 뒷덜미에 힘차게 쑤셔 박았다.

팍!

강기 보호막에 부딪혀 미끄러지는 비도.

아직 독을 덜 먹였나?

태주는 계속 찍었다.

날이 들어갈 때까지.

이윽고.

푸욱!

들어갔다.

푹푹푹푹푹!

막 들어갔다.

"끼이이이···,"

엘리트 독발톱 삵은 엉금엉금 기어가다가 결국엔, 털썩! 쓰러지고 말았다.

'잡았네.'

그제서야 태주는 삵의 등에서 내려왔다.

"후우."

피를 너무 많이 흘렀나?

어질어질하다.

코트도 걸레가 됐다.

이젠 못 입을 것 같다.

새로 하나 사든지, 꿰매서 쓰든지.

주머니도 찢어져 안에 있던 암기들이 다 쏟아져 토굴 바닥에 널려있었다.

금창약이나 바르자.

팔에도 바르고 손을 뒤로 넘겨 등에도 바르고.

"아이고."

힘들어 죽겠지만 할 건 해야지.

태주는 엘리트 독 발톱 삵의 배를 갈랐다.

아쉽게도 엘리트 마나 결정체가 나오지 않았다.

어쨌든 목적은 그게 아니니까.

쓸개 옆에 달린 독샘.

가공할 필요도 없다.

바로 먹을 테니까.

'진짜 이번에 7성 안 오르면 방사능 독 먹어본다.'

태주는 조심스럽게 독샘을 떼어냈다.

진한 독의 향기.

입에서 군침이 돈다.

'먹어볼까?'

꿀꺽!

엘리트 독 발톱 삵의 독샘이 목구멍으로 쑥 넘어간다.

'자, 반응해라. 반응해···,'

그리고.

"우욱!"

순간 치밀어오르는 욕지기.

내장이 찢어질 듯한 고통.

무릎이 저절로 굽혀졌다.

덜덜덜, 온몸이 떨려왔다.

"그, 그렇지. 바, 바로 이거지."

제대로 된 독이다.

이렇게 몸에 부담이 와야 효과가 있다.

당연히 독정이 반응했다.

우웅! 우웅! 우웅! 우웅···,

사정없이 요동쳤다.

환각마저 보였다.

눈 앞에 펼쳐진 총천연색의 풍경.

알록달록한 빛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느껴진다.

독정이 점점 커지면서 회전하는 모습이.

순간!

파아아앗!

"헉!"

떴다!

독정 폭발.

화경으로 가는 첫 관문.

지금까지 겪었던 것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극악한 고통이 태주의 전신을 강타했다.

독정이 터졌다.

지금까지 차곡차곡 모아둔 갖가지 종류의 독이 그 안에서 흘러넘치고 있었다.

새로운 독정으로 변모하기 위한 정상적인 과정.

서로 섞였다가, 흩어지고, 다시 섞이고.

응축과 분해의 반복.

그에 발맞추어 신체도 변화했다.

뿌드득, 뿌드득.

온몸의 뼈가 탈골됐다 다시 맞춰진다.

후두두둑,

머리카락도 한 움큼씩, 우수수 빠졌다가 다시 자라났다.

"으읍!"

이빨이 잇몸에서 밀려 나왔다.

그리고 새로운 이빨이 돋아났다.

손톱도 빠졌다.

발톱도 빠졌다.

그리고 다시 났다.

피부 또한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근질근질했다.

마치 허물 벗듯 껍데기가 되어 흘러내렸다.

환골탈태.

태주는 무아지경에 빠졌다.

주마등.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에 대한 반추.

얼굴도 모르는 엄마, 애증의 아버지, 그리고 지옥 같았던 20대 초반의 청년기.

그러나 다른 세상의 나 자신, 절대독마 당군악을 만나고 변화된 자신.

보고 있나?

내가 이렇게 성장했다.

나도 지구에서 절대독마의 칭호를 받을 만하지 않나?

그때였다.

어디론가로 쭉 빨려 들어가는 의식

이건 그때 설악산에서 경험했던···,

'어?'

순간 어떤 사람의 뒷모습이 보였다.

젊은 나이로 보이는 까만 머리의 남자.

'저건 또 누구야?'

그런데 조금 이상했다.

마치 커다란 벽을 마주한 기분이다.

사람인 듯했지만 사람이 아니다.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신성하고 영험한 존재.

그가 고개를 천천히 돌렸다.

눈과 눈이 마주쳤다.

'···무, 무슨!'

나였다.

아니, 당군악이다.

혼원무상독령공 7성에 오르면서 또 다시 당군악과 마주했다.

'젊어졌네?'

하지만 더 거대해졌다.

같은 인간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로.

그래서 그런가?

심상에서 서로 마주하고는 있었지만 예전처럼 영혼 연결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 ※ ※

지구와는 전혀 다른 세계.

강호 무림.

무시무시한 천마마저도 죽여버리고, 강호를 구한 천하제일 절대독마 당군악이 갑자기 사라졌다.

죽었다면 시체라도 남았을 텐데, 흔적도 없었다.

태상 가주의 갑작스러운 부재에 가문 식솔들은 당황했다.

사천 당가에서 장로들과 가주, 직계들로 구성된 조사단이 꾸려지고, 그래서 결론이 내려졌다.

사라지기 전 항상 입버릇처럼 되뇌던 말.

우화등선(羽化登仙).

태상 가주께서는 신선이 되어 선계로 올라가셨다.

확실하다.

뒷받침해줄 근거도 있었다.

그래서 강호 전체로 초대장을 돌렸다.

사천 당가의 태상 가주, 절대독마 당군악이 우화등선했다고.

강호 무림 사천성 당가타.

마을 전체는 잔치 분위기로 떠들썩했다.

나름 이름이 있다고 알려진 무인들이 속속 사천 당가의 근거지 당가타를 방문하고 있었다.

많은 사람이 초대를 받았다.

멸문한 제갈세가를 제외하고, 제남 남궁세가 태상 가주 남궁훈, 하북 팽가의 팽도중, 진주 언가의 언진명, 그리고 구파 일방의 귀빈들.

남궁훈과 팽도중, 언진명은 당군악과 같은 연배이자 함께 마교와 맞서 싸웠던 인물, 친구라면 친구고 경쟁자라면 경쟁자인 사이였다.

남궁훈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지랄도 풍년이다. 뒈진 거면 뒈진 거지, 무슨 우화등선?"

팽도중도 맞장구쳤다.

"우리 중 사람을 가장 많이 쳐 죽인 자가 누군지 다 알고 있을 거야. 바로 군악이지. 내 아직 잊지 못했네. 무한에서 치른 대회전에서 그놈 혼자 대체 몇 명을 죽였나?"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는 듯 고개를 절래절래 흔드는 팽도중.

절대독마의 경지,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독기, 적 진영 한복판에 홀로 뛰어들어 날뛰었지만 마교 놈들은 접근하기는커녕 도망가기에 바빴다.

그리고 만천화우.

비처럼 내리는 암기들.

절정이고, 화경이고, 스치기만 해도 픽픽 쓰러졌다.

"맞네. 군악이 때문에 마교를 물리쳤다고 하지만, 살업(殺業)은 살업이야. 어찌 우화등선과 어울리겠나."

그러자 진주 언가의 언진명이 언짢은 얼굴로 쏘아붙였다.

"그만들 하지. 네놈들 군악이 없었으면 살아서 젓가락도 못 들었을 터인데, 지금 없다고 흉을 보는 건 너무 옹졸하군."

"···뭐? 마, 말 다 했나?"

"아직 할 말이 많이 남았지만, 원한다면 행동으로도 보여줄 수 있네."

"이익!"

"군악이에게 영약도 얻어먹은 새끼들이, 고맙다고 못 할망정 염치도 모르고."

팽도중은 그저 얼굴만 붉어졌을 뿐, 덤벼들 생각도 못 했다.

당군악이 사라진 현재, 강호 제일의 고수로 거론되는 인물 중의 하나가 바로 언진명이었으니까.

순간.

"어르신들."

중년의 남자가 어느새 다가와 포권으로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

현 사천 당가의 가주이자 당군악의 아들, 당철휘였다.

언진명이 반갑게 맞이했다.

"철휘로군. 자넨 보면 볼수록 일취월장이야."

"하하! 과찬이십니다. 이리로 오시지요. 모두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러자 남궁훈이 불퉁한 목소리로 물었다.

"어디로 가는가?"

"아버지께서 우화등선하시기 전까지 머무르던 작은 초옥입니다. 여러 귀빈분들도 그곳에 계십니다."

"그런가? 알았네, 가세."

가는 도중에도 남궁훈은 속으로 코웃음만 쳤다.

'우화등선은 무슨.'

당가타 가장 깊숙한 곳에 얼기설기 지어진 작은 초옥이 있었다.

그 앞에 모인 다양한 복색의 사람들.

그중에 긴 관을 머리에 쓰고 부채를 든 도사 하나가 말했다.

"올 사람은 다 온 모양인데, 그럼 시작하지."

무당파 태상장로 청허진인이었다.

청허진인은 과연 절대독마 당군악이 우화등선했는지 확인차 왔다.

사천 당가 가주 당철휘가 직접 찾아가 모셔왔다.

"문을 열겠습니다."

삐거덕,

초옥의 문이 열렸다.

그러자 나타나는 광경.

아무런 가구도 없는 방 한가운데 화려한 붉은색 장포 하나가 놓여있었다.

당군악이 즐겨 입고 다녔던 그 옷이었다.

그걸 보면서 빈정대는 남궁훈.

"쯧쯧, 이건 또 무슨 연출인지, 이깟 옷 한 벌 덩그러니 두고 사라지면 다 우화등선이라고 우길 건가?"

하지만 당철휘의 표정은 차분했다.

"진인, 확인해보시지요."

"···어어어."

당철휘의 권유에도 청허진인은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세, 세상에!"

초옥의 문을 여는 순간 느꼈다.

그 안에 가득 찬 선기(仙氣)를.

특히 붉은 장포에 어린 기운은 보기만 해도 정신이 아득했다.

"자, 장포를 만져봐도 되겠나?"

"그리하시지요."

청허 진인은 바닥에 떨어진 장포를 손으로 집어 요모조모 살폈다.

"무량수불, 진짜로군. 당군악 그대, 정말 신선이 됐군. 그리고 이 장포는 보패로 변했고."

"네, 당가의 보물로 대대손손 전할 생각입니다."

우화등선에 증거가 없다고 말들 하지만 사실은 아니다.

등선했을 때 폭발하듯 터지는 고매한 선기(仙氣)가 당사자가 쓰던 일용품이나 무기에 남는다.

그러면 그 물건은 천하제일의 보물이 된다.

한참을 장포만 살피던 청허진인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거 설마?"

그러면서 장포 안주머니에 손을 쑥 집어넣었다.

"허허! 화수분 주머니인가? 물건이 끝도 없이 들어가겠군."

"···어찌 아셨습니까?"

"유독 이 주머니에 선기(仙氣)가 몰려있어서 확인해봤네. 미안하군. 보패의 효능을 함부로 입에 올려서."

"하하하, 괜찮습니다. 알려져도 상관없습니다. 누가 감히 당가의 보물을 탐내겠습니까?"

광오한 말이지만 모두 수긍했다.

강호 최강의 세가가 바로 사천 당가니까.

"등선할 때 선인이 현세에 소망했던 염원이 물건에 남는다는 이야기는 들어 봤는데···, "

"진인의 말이 맞습니다. 무한의 주머니입니다. 이 작은 주머니 하나에 비도를 만 개 이상 넣을 수 있습니다."

"허허. 알만하군. 무한한 주머니라, 과연 당군악 답군."

당철휘는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아버지는 항상 말씀하시곤 했다.

더 많은 암기, 써도 써도 모자라지 않은 암기, 휴대가 간편해 거추장스럽지도 않고···, 그런 건 어디 없을까?

"아무튼 당가의 태상가주 당군악은 등선한 것이 확실하오. 빈도가 보증하겠소."

소림의 방장인 일원 선사도 합장하며 청허진인의 말에 동의했다.

"아미타불, 선재로다, 선재야."

그러자 뜨악한 표정의 남궁훈과 팽도중.

'그 살인마 새끼가 진짜 등선했다고? 무슨 말도 안 되는···.'

하지만 그들도 느끼고 있었다.

이 초옥 안에 가득 차 있는 그윽하고 영험한 기운을, 부정할래야 부정할 수가 없었다.

< 혼원무상독령공 7성으로(2) + 외전. > 끝

ⓒ 꾸찌꾸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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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한공간 >

우화등선(羽化登仙).

무당, 화산, 청성, 공동, 종남 등 구파, 혹은 모산파, 전진파, 정일파···, 도문(道門)의 도사들이 간절하게 소망하는 삶의 목표다.

당군악도 우화등선을 원했다.

굳이 신선이 되고 싶은 마음보다 선계(仙界)라는 걸 경험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이룰 거 다 이룬 강호였다.

천마를 죽여 복수도 했고, 당가를 부흥시켜 중원 최고의 가문으로 올려놨다.

삶이 무료했다.

온갖 산해진미, 보물, 여색, 다 재미가 없었다.

그래서 우화등선을 위해 별짓을 다 했는데···.

뜬금없이 다른 세상의 자신과 만났다.

김태주.

그의 세상을 간접적으로 경험하면서 많은 걸 깨달아 마침내 그토록 꿈꿔왔던 우화등선도 이루었고.

현재 당군악은 선계에 있었다.

절대독마가 아닌 이젠 독선(毒仙) 당군악으로서.

겉모습이 인간과 다를 바 없다지만 본질은 인간의 격을 초월했다.

영생불멸의 삶을 살고, 바람과 비를 부르며, 뭇 짐승들의 말을 알아듣고, 구름을 타고 날아다니는 이를 인간이라 부를수 있을까?

그런데 선계도 별것 없었다.

사실상 여긴 유배지.

인간계에서 순리를 어지럽힐 가능성이 있는 절대자들을 신선으로 격상시켜 가둬두는 곳.

당장 사천 당가에 내려가 자신이 신선이 되었노라고 선언하고 싶지만 갈 수가 없었다.

이렇게 강대한 힘을 가지고 있는데도 말이다.

신선의 힘은 인간계의 인과율을 뒤집는다.

물론 가끔 인간계에 강림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지기도 하지만, 그 경우에도 신선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한다.

하지만 어쩌겠나?

한번 등선할 걸 무를 수도 없고.

그렇게 선계에서 무료한 시간을 또 보내고 있던 참에.

'음?'

무언가 느낌이 왔다.

전에 겪었던 그 느낌.

'···또?'

동시에 의식 저편에서 낯익은 얼굴이 나타났다.

'허허, 이런 일이.'

김태주였다.

대체 우리를 연결하게 해주는 주체는 무엇일까?

여긴 선계였다.

여기까지 연결이 들어왔다는 말은 선계보다 더 상위의 힘이 작용했다는 뜻일 텐데, 과연 그 힘은 무엇일까?

아무튼 반갑다.

이게 얼마 만인가?

'잘 지냈나?'

당군악은 태주를 유심히 관찰했다.

서로 다른 차원에 있지만 그의 면면을 속속들이 알 수 있었다.

'벌써 혼원무상독령공이 7성?'

확실히 자신다웠다.

아무리 기억과 경험을 공유한 사이라고 해도 1년도 안 돼 벌써 7성이라니.

하지만 그때와 다른 점이 있었다.

자신은 저쪽 김태주의 의식과 경험을 들여다볼 수 있지만, 김태주는 그러지 못하고 있다는 것.

당군악은 이유를 알고 있었다.

같은 영혼이라고 해도 격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인간의 탈을 벗은 자신.

반면 아직 인간에 머무르고 있는 김태주.

물론 해결 방법은 있다.

격을 살짝 낮추어 문을 열어주면 된다.

김태주의 영혼이 자신의 의식으로 조금만 접근할 수 있도록.

너무 깊숙이는 말고.

영혼 격차가 너무 큰 터라, 혹여 탈이 날 수도 있으니까.

그럼···,

'들어오게나.'

※ ※ ※

태주와 당군악과의 만남은 두 번째.

그때와는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었다.

설악산에서 만났던 것처럼 서로 연결되어 그의 의식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단지 지금 앞에 있는 청년이 당군악이라는 것만 알 수 있을 뿐.

'어쨌든 좋아 보이네.'

노인에서 청년으로 변했다.

반로환동이라도 했겠지.

그런데 바로 그때!

'···응?'

갑자기 의식이 쭉 빨려 들어가는 느낌.

심령의 연결이 이루어지는 건가?

그리고 알게 됐다.

이제야 당군악과 자신의 영혼이 서로 연결되었음을.

'아···,'

영혼이 연결되자 태주에게 당군악의 기억이 밀려왔다.

'맙소사!'

진짜?

당군악이 신선이 됐다고?

처음 자신과 연결됐을 때, 바로 그 직후인 것 같았다.

'···나도 할 수 있게 되는 건가?'

그러나 곧 그게 불가능하다는 걸 알았다.

이건 단순히 무공 지식과 기억을 받아들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

무공은 공식이 있다.

그래서 구결을 깨우치면 정해진 길이 나온다.

그 길을 따라만 가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고매한 경지에 다다르는 길은 공식이 없다.

전적으로 '우연'에 달린 것.

사실 어떻게 보면 무공도 마찬가지.

정해진 공식이 있는 것도 있고, 없는 것도 있다.

예를 들어 혼원무상독령공.

10성 대성은 가능하다.

하지만 궁극의 경지인 독령은 영영 깨닫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런 이유로 절대독마, 아니 이젠 독선(毒仙)이 된 당군악의 성취는 태주에게 있어 감히 꿈꿀 수도 없는 영역.

그러나 전혀 부럽지 않다.

오히려 자기 일처럼 기쁘다.

다른 세상의 내가 그토록 바라던 염원을 이뤄냈는데 어찌 기쁘지 않을까?

'축하합니다.'

당군악도 자신의 의도를 알아들었나 보다.

만면에 웃음을 띠면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 ※ ※

당군악은 태주의 진심을 알았다.

'역시, 자넨 나였군.'

뭐, 두말하면 입 아프지.

그러나 김태주가 잘못 안 것이 하나 있다.

선인의 경지에 다다르는 것이 불가능할 거라고?

천만에.

김태주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걸 원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자, 이왕 만난 김에 또 전해줄 것이 있으면 좋겠는데.

같은 영혼이기에 앞으로 걸어갈 길도 비슷할 터.

당군악이 강호를 횡행할 때 가장 아쉬웠던 점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현재 김태주도 그 문제점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바로 암기의 수납.

비록 7성에 올라 암기 회수가 가능하다지만 그걸로는 한계가 있다.

가지고 다니는 암기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김태주는 반드시 독령의 경지에 다다를 것이 분명하다. 운이 따라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있더라도 충분히 해낼 것이다.

독령을 소유하면 당연히 만천화우(滿天花雨)도 전개할 수 있게 된다.

그냥 암기만 냅다 하늘에 뿌려대는 가짜 만천화우 말고 진짜 만천화우를 말이다.

절대독마 당군악이, 혹은 절대독마 김태주가, 만 명으로 분열해서 동시에 암기술을 전개한다고 생각해보라.

자신도 마교와의 대회전에서 만천화우를 사용한 경험이 있다.

부족한 암기를 충당하기 위해 당문의 제자들이 자루에 가득 암기를 담아, 만천화우를 펼칠 때마다 자신에게 건네주곤 했었다.

그래서 항상 고민했었다.

어떻게 하면 암기를 더 많이 가지고 다닐 수 있을까?

그런데 우습게도 그 문제는 등선하고 나서야 해결됐다.

자신의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술법을 자연스럽게 깨우쳤다.

일명 '무한공간 술법진'.

이걸 전해주고 싶다.

어떻게?

무한공간 술법이 이루어지려면 선기(仙氣)가 필요하다.

영험한 신선의 기운 말이다.

하지만 지구의 김태주는 신선이 아니다.

따라서 선기를 다루지 못한다.

'내가 전해주면···.'

전하는 건 어렵지 않다.

자신이 인간이었다면 못했을 테지만 지금은 선인이 됐다.

그러나 두 가지 문제가 있다.

하나는 천기(天機)에 어긋날지도 모른다는 사실.

신선이 인간 만사에 간섭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하지만 저쪽은 인간계라기보단 다른 차원이지 않나.'

맞다.

세상이 서로 다르다.

따라서 천기에 어긋날 일이 없다.

'하나는 해결됐고.'

두 번째 문제도 첫 번째와 연관되어 있다.

과연 다른 세상에도 선기가 전달될까?

'해보면 되겠지.'

간단한 일이다.

당군악은 자신의 선기(仙氣)를 영혼이 연결된 길을 통해 조금씩 흘려보냈다.

그런데.

'이게 되네?'

선기가 전해진다.

다른 세상의 나, 김태주에게 말이다.

'이것도 알지 못하는 힘이 개입한 건가?'

그럴 가능성이 높다.

신선인 자신도 모르는 힘.

고민할 여유가 없다.

빨리 보내기나 하자.

선기는 내공과는 다르다.

소모한 내공은 운기를 통해 다시 채우면 되지만, 한번 빠져나간 선기는 회복이 안 된다.

다른 방식을 통해 새로 쌓아야 한다.

그러나 아까울 게 뭐가 있어?

내가 나한테 주는 건데.

※ ※ ※

현재 태주는 당군악과 연결된 상황.

말은 나눌 수 없지만 그의 기억과 생각이 마치 텔레파시처럼 전해지고 있었다.

'무한공간 술법진···.'

일종의 신선술.

공간을 나눠 시전자만 사용할 수 있는 보관실을 만든다.

손바닥에 술법진을 그리는 형태로 이루어지고.

'암기를 그 안에 넣고 다니라는 말이네.'

그렇게 되면 얼마나 편해질까?

걸림돌도 있는 것 같다.

술법을 위해선 선기(仙氣)라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내가 신선도 아니고.'

그런데.

'응? 전한다고? 나한테 선기를?'

에이, 그게 될 리가 있나!

세상이 서로 다른 판에···,

순간!

'어?'

찌르르르,

의식 안으로 수수께끼 같은 힘이 전해져 왔다.

뭔가 성스럽고, 고결하고, 숭고하고, 감동적인, 사악하고 삿된 것을 물리치는 거룩한 힘.

'이게 된다고?'

이유가 뭐든, 서둘러야 한다.

언제 연결이 끊길지도 모르니 당군악이 그러라고 전했다.

태주는 옆에 손을 뻗어 땅바닥을 더듬었다.

그러자 잡히는 유엽비도 하나.

당군악이 시키는 대로, 그리고 머릿속에 떠오른 모양대로, 태주는 비도를 들어 술법진을 새겼다.

먼저 왼손바닥부터.

스그윽.

비도를 타고 선기(仙氣)가 흐른다.

손바닥에 칼을 그어댔지만 아프지도 않았다.

그리고 오른손바닥.

한 치의 주저함도 없이 칼로 손바닥을 갈랐다.

그럴 때마다 선기(仙氣)는 피부에 스며들었고.

'빨리해야 해. 끊기기 전에.'

이윽고 완성된 두 개의 술법진.

'정말 감사···, 응?'

당군악의 영혼이 느껴지지 않았다.

'···연결이 끊겼구나.'

아아!

이렇게 막 받아도 되는지 모르겠다.

'또 만날 수 있을까?'

자신도 뭔가를 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그렇게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이제 확인할 시간.

무한공간 술법진이 제대로 기능을 하는지 알아보자.

술법진이 무한하다지만 이름 그대로 무한하진 않다.

당군악의 기억대로라면 그 크기는 커다란 식량 보관 창고를 10개 합친 정도.

또한 살아있는 생명체는 수납이 안 된다.

예를 들어 독초 같은 풀뿌리도 땅에서 뽑아내고 시간이 조금 흘러야 넣을 수 있다.

수납 대상의 크기도 제한.

약 가로 세로 높이가 1m, 그거보다 살짝 커도 들어가긴 한다.

'자동차 같은 건 안 되겠구나. ···접이식 자전거는 들어가겠는데?'

그리고 양손에 새겼지만 공간이 두 개로 나누어진 건 아니었다.

들어가는 통로만 다를 뿐이지, 결국은 하나의 공간.

'그럼 넣어볼까?'

바닥에 흩어져있는 암기부터.

손으로 잡아서 넣겠다고 마음을 먹으니.

스륵, 사라지는 탈명비도.

"오!"

들어간 탈명비도를 상상하며 꺼내겠다고 떠올리자.

스슷!

어느새 손에 들려 있었다.

"흐흐흐, 참나, 이거···,"

미치겠다.

너무 좋아서 웃음만 나온다.

암기 수납 문제는 늘 했던 고민이었다.

그런데 이게 이렇게 해결되다니.

심지어 아공간 가방 따위는 범접할 수도 없는 무한공간 술법진.

'다 집어넣고.'

땅바닥에 떨어져 있던 암기들을 다 넣었다.

찢긴 코트 주머니 속 암기들도.

그리고 토굴 밖으로 나와서.

'유엽비도 오른쪽에서 3자루, 왼손에 3자루.'

스슷!

'오른손에 철환 30개, 왼손엔 폭우이화정 30개.'

스스스슷!

후두둑!

"음."

단점이 있다.

손이 꽉 차면 나머지는 밑으로 떨어졌다.

이건 연습으로 극복하면 되고.

무한공간 술법진은 확인했다.

그럼 혼원무상독령공 7성의 결과는?

탈명비도 한 자루를 꺼내,

스슷!

독기를 불어넣자,

지이잉!

파란색 강기 날이 선명하게 비도에 맺혔다.

"하하하."

너무 좋다.

이제 이걸로 엘리트 마수 썰고 다니면 끝.

물론 강기도 우열이 있어서 자신보다 강한 마수의 강기 보호막은 뚫기가 힘들겠지만.

그러나 적어도 지금까지 만난 엘리트 마수들은 한 방에 죽는다.

그런데 그때!

쩌저저적!

표면에 실금이 생겨버린 탈명비도.

"쯧."

강기의 힘을 이기지 못한 모양.

아까운 비도 하나 날렸다.

태주는 유엽비도를 꺼내 강기를 일으키지 않고 독기만 불어넣었다.

전면에 보이는 나무를 향해 일섬을 펼치니.

츠피핏!

콰악! 푹!

줄기를 관통하고도 힘이 남아서 밀림 저편으로 사라지는 유엽비도.

동시에 손을 뻗어.

우우우웅!

휘리리리릿!

착!

날아갔던 암기가 다시 손에 돌아왔다.

'회수도 가능해졌어.'

사실 암기 자체를 끌어당기는 것이 아니다.

암기에 입힌 독을 끌어당기는 것이다.

독정에 각인된 그 독을 말이다.

그러면 암기도 같이 딸려오는 식.

하지만 이것도 단점이 있다.

암기를 발출하고 시간이 지나면 독이 증발해서 회수되지 않는다.

암기에 입혀진 독이 허공으로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발출하고 최소한 30분 안에는 회수해야 한다.

암기 회수도 점검했고.

'독기방사는?'

츠츠츠츠츠츠츠···,

이것도 확실히 강해졌다.

방출되는 속도와 양이 다르다.

'막 뽑아대다가는 독정이 빨리 마르겠네. 조절이 필요해.'

다음으로 혈인독장.

그동안 공력이 모자라 마지막 초식인 독화만무를 펼치지 못했다.

파바바박! 파바바박!

사방으로 꽃이 피어났다.

독의 꽃, 독화.

독기방사를 응용한 광역기.

독화가 떨어지는 범위에 있는 모든 생명체는 중독된다.

그 외, 일섬의 위력은 크게 증가했고, 비폭의 사정거리도 늘어났다.

환영미리보와 표홀질풍보는 말할 것도 없고.

7성의 가장 좋은 점은 따로 있었다.

화경에 이르러면 두 개의 잡무공을 순조롭고 확실하게 펼칠 수 있다.

역용술과 축골공.

역용술을 얼굴을 변화시키는 것이고 축골공은 몸을 작게 만드는 잡기.

공력이 약할 때 역용을 시전하면 얼굴이 변한 듯 마는 듯하다.

큰 차이가 없다.

유지 시간도 극히 짧고.

축골공도 마찬가지.

하지만 혼원무상독령공 7성, 즉 화경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역용과 축골의 효과가 극적으로 변한다.

얼굴이 완전 다른 사람이 되는 거고, 키도 10cm 이상 줄인다.

또 자신의 기척을 숨길 수도 있다.

마치 마나 순응자처럼.

오진형 중장도 자신의 성취를 더 이상 알아보지 못하겠지.

이제 퇴근하자.

나머지 성취는 집에 가서 확인하고.

지리산 마수 토벌 작전도 서서히 끝물에 왔다.

지금까지 잡은 엘리트 마수만 몇 마리인가?

당분간 웨이브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정도.

하지만 태주는 끝까지 참가할 것이다.

엘리트 마나 결정체가 더 많이 필요하다.

'내일부터는 홀로 움직여야지.'

혼자서 지리산 엘리트 마수의 씨를 말릴 것이다.

뭐, 어차피 몇 년 지나면 일반 마수가 엘리트 마수로 진화하겠지만.

< 무한공간 > 끝

ⓒ 꾸찌꾸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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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역 설정. >

태주는 퇴근하는 김에 백창훈과 장순철도 데리고 돌아왔다.

열흘씩이나 밀림에 있었던 터라 둘의 상태가 말이 아니다.

"그동안 애썼다. 당분간 푹 쉬어."

"···내일 또 밀림 나가야 하잖아요."

"안 나가도 돼. 그 정도면 충분해. 실전 연습도 많이 했고."

"아싸!"

태주가 백창훈과 장순철을 데리고 간 이유는 실전을 통해 등록된 스킬을 숙련시키라는 거였다.

할 만큼 했다.

자이언트 반달곰 웅담 가공 처리도 흡족한 수준이었고.

이제는 다른 일을 해야지.

"지금부터는 오행신공으로 해독제 최종 법제하는 방법을 배우게 될 거야."

"네? 비, 비법인데 저희에게 막 가르쳐주셔도···,"

"내가 가르쳐준 거 중에 비법 아닌 게 뭐가 있어?"

"아니, 그, 그래도, 너무 감사해서, 이렇게까지 우릴 믿어주신다니."

"열심히 배워서 회장님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아도 약을 생산할 수 있게끔 하겠습니다."

백창훈은 감격했고, 장순철은 결의를 다졌다.

"쓸만한 애들은 계속 찾고 있지? 원생 출신들도 잘 살펴봐."

"네, 지금도 찾는 중입니다. 능력 있고 성실한···,"

"순철아, 능력이 중요한 게 아니라니까, 신뢰! 오직 그거 하나만 봐야지."

"그건 기본이지. 그리고 최종 결정은 회장님이 하시니까, 우린 찾아서 면접만 보게 하면 돼."

"그야 그렇지만···,"

관상을 보면 1차로 거를 수 있다.

비과학적이라 말할지 모르겠으나, 당군악의 경험으로 비추어 보면 거의 들어맞았다.

이 둘은 차후 세워질 각성자 민간 길드의 실무 책임자가 될 것이다.

태홍 길드, 사냥도 하고, 약재도 채취하고, 경호 및 보안도 담당하고.

사람이 더 필요하다.

세력을 키워 일가를 이루려면 사실 돈보다는 사람이 우선.

강호 무림에서 남궁가나 팽가, 언가, 당가 같은 유서 깊은 세가들이 힘을 떨쳤던 이유도 이와 관련이 있다.

직계든, 방계든, 죄다 혈연으로 연결되어 있었기에, 피로 맺어진 결속력으로 똘똘 뭉친다.

물론 피를 나눴다고 배신이나 뒤통수가 없는 건 아니지만.

태주의 사람들도 마찬가지.

백서연, 백창훈, 장순철, 그리고 원생 출신의 회사 직원들, 백홍표를 통해 알게 된 이들이지만 현재는 태주와도 매우 끈끈한 사이가 됐다.

이렇게 주위의 좋은 사람들과 같이 나아가자.

성공해서 혼자 행복하면 뭘 해?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있어야지.

"배우기 전에 휴가 줄 테니까 푹 쉬다가 와."

"오!"

"목욕부터 해야겠다."

태주도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가서 무한공간 정리도 하고.

순간!

'응?'

아직 불이 꺼지지 않은 태홍 바이오 본사 건물.

퇴근 시간이 지난 것 같은데.

'누구지? 아직 야근이 있나?'

초반에는 인력이 부족해서 어쩔 수 없었다지만 지금은 직원들이 충분해서 추가 야간 근무를 금지했다.

'확인하고 가자.'

그리고 단단히 못 박아야지.

이유를 불문하고 절대 야근은 없다고.

회사 사옥으로 들어가자 경비원들이 태주를 보고 황급하게 달려왔다.

"회장님! 어쩐 일로···,"

"야근하는 사람이 있는 것 같아서."

"백서연 사장님입니다. 아직 퇴근 안 하셨어요."

"아! 그래요?"

사장이면 어쩔 수 없지.

무슨 일이 그렇게 많다고.

만나보고 가야겠다.

백홍표를 만난 것도 행운이지만, 그가 소개해준 백서연도 굴러들어온 호박이었다.

단시일 안에 회사의 체계를 세우고, 지금은 뉴서울 진출마저 계획하고 있었다.

워커홀릭이 걱정될 정도.

인재를 채용해 회사를 운영하고 키워나가는 것, 자신은 절대 못 한다.

신약 제조만큼이나 중요하고 가치 있는 일.

절대독마, 아니 독선 당군악이라고 해서 모든 일에 능숙했을까?

전혀 아니었다.

그도 가문의 운영이나 재산 관리에는 영 젬병이었다.

암기 만든다고 그렇게 돈을 써재끼고 다녔는데.

그래서 믿을만한 사람 들여 총관직을 주고, 당씨 성을 하사해 가문의 전권을 맡겼다.

'보너스라도 줘야겠네.'

백서연은 집도 없이 고아원에서 지내는 듯했다.

성과금이나 포상금으로 구례 캐슬 쪽에 번듯한 건물 하나 사주면 되겠지.

요즘 땅값이 폭락해서 얼마 하지도 않는다.

똑똑.

태주는 노크를 하고 백서연의 사무실로 들어갔다.

"누구세···, 회장님!!!"

"빨리빨리 퇴근하고 집에 가서 주무세요. 인력이 부족하면 몇 명 더 채용하던가."

"지금 막 정리하고 가려고 했습니다."

"흐음, 피부가 좋아졌네요? ···아! 영약 드디어 드셨구나."

"호호, 회장님 덕분이죠. 빨리 먹을 걸 그랬어요. 야근해도 전혀 지치지 않아요. ···그런데 회장님도 피부가 왜 그렇게 매끄러워졌어요?"

"티가 납니까?"

서로 오고 가는 외모 칭찬.

영약빨이 잘 들었나 보다.

기존의 영약은 적합자와 각성자에게만 효과가 있었지만 태주가 만든 건 아니다.

일반인에게도 약효가 그대로 적용된다.

아마 적합자가 된 것 같은데.

"아무튼 잘 오셨어요. 보고드릴 게 있어서."

백서연을 태블릿을 가져와 태주에게 보여줬다.

"뉴서울 지점에서 우리와 함께할 인재들입니다. 능력, 인성, 성실함, 다 염두에 두고 선정했어요."

"벌써요?"

다양했다.

성별도, 나이도.

"그리고 뉴서울 지점 사옥 후보지도 선정했고요. 신종로구에 위치한 건물들인데···,"

"비싸네."

"어쩔 수 없었어요. 뉴서울이라."

제일 싼 건물이 20층에 1천억 대 초반, 30층, 40층 2천억, 3천억 대 있고.

하지만 비싼 건물을 고른 이유가 있었다.

태주가 그러라고 시켰다.

구례 촌동네에서 약 팔아 얼마 벌겠냐는 사람들의 선입견을 부숴줘야지.

"가격 생각하지 마시고, 접근성 좋고 사람들 눈에 확 띄는 건물로 사들이세요."

"네!"

"어차피 우리만 입주하는 것도 아니고, 임대료 수익도 나올 테니까."

"그리고 이것도···."

다음 페이지는 앞으로 출시하게 될 신약 2종에 대한 보고.

이름도 미리 지어봤단다.

외상 치료제는 태홍 새살쑥쑥, 자양 강장제는 태홍 생기불끈.

"으음, 새살쑥쑥, 생기불끈···,"

"촌스럽죠? 근데 이게 요즘 잘 먹혀서요."

"···잘 먹히면 이걸로 가야죠."

뭐, 이름이 문제겠나?

약은 약효로 승부 보는 거지.

"특허 준비는 잘 되고 있겠죠?"

"최고 보안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공장과 생산 설비는 뉴서울 변두리 쪽에 땅을 사서 현재 건설하고 있고요."

특허를 받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다른 경쟁자들이 알아차릴 수 없게 기습적으로.

한번 특허가 인정되면 만료 기간도 없다.

그러나 특허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준비되면 제게 알려주세요. 저도 도울 수 있는 부분은 돕겠습니다."

"네!"

이런 공식적 허가 절차에 있어서 인맥은 매우 중요하다.

불법을 저지르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불이익이 가해지는 걸 방어하는 차원에서 말이다.

'오진형 중장은 뉴서울에 인맥이 없나?'

있어 봐야 군부 쪽이겠고.

그러고 보니 5황자 류진철과 조금 친하게 지낼 걸 그랬다.

'인맥을 넓힐 방법이···,'

태주는 백서연에게 말했다.

"전에 리더스 클럽 초청장 온 거 있죠?"

"보관해두고 있습니다."

"주세요. 지리산 토벌 끝나고 한번 가보게."

그러자 반색하는 백서연.

"네!!! 감사합니다. ···노블 퍼플스 결혼정보회사 초청장도 드릴까요?"

"아뇨! 그건 됐습니다."

점점 커지는 회사.

백서연과 백홍표에게만 맡겨두고 나 몰라라 하는 건 무책임한 짓이다.

딸린 식구들이 많아졌다.

앞으로 더더욱 그럴 것이고.

'나도 할 수 있는 건 해야지.'

태주는 집으로 돌아왔다.

일하는 분들과 인사를 나누고, 안으로 들어가 샤워도 하고 간편한 옷으로 갈아입은 후.

'무한공간'

그러자 심상에서 정육면체 모양의 공간이 나타났다.

원래는 거대하지만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작게 축소되어서.

'구역을 정해야 해.'

들어갈 물건이 소량이면 괜찮지만, 다양한 종류의 물건을, 대량으로 집어넣을 때는 구획 설정을 해서 정리해야 한다.

자동으로 정리되는 게임 인벤토리라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암기는 이쪽으로.'

그러자,

스르르릇,

3차원 입체 공간을 가로지르는 투명한 막이 생겨났다.

암기 구역.

크기는 전체 공간의 60%.

너무 크나?

나중에 다시 설정하면 된다.

이러면 유엽비도가 몇 개나 들어갈까?

한···, 수천만 개?

모르겠다.

복잡한 계산은 넘어가자.

현재 소지한 암기와 여분으로 보관하고 있던 모든 암기들을 다 넣었다.

당연히 종류별로 차곡차곡.

장비 아이템 공간도 만들었다.

크기는 5% 정도?

총기 같은 무기도 보관해야지.

민간 적합자나 각성자도 총기 소유가 가능하다.

가까운 군대에서 허가증만 받으면 된다.

총기 허가는 무척 까다로운 편이지만 군이라면 뭐.

15%는 생필품 공간.

음식, 의류, 생존장비 등등으로 세분화해서.

태주는 자택 지하로 대피소로 내려갔다.

원래 구례에서 집을 지을 땐 대피소가 필수.

안엔 없는 게 없었다.

라면에 각종 통조림, 과자, 저장식, 건조식품, 음료, 주류···,

'역시 꼼꼼해.'

이렇게 만들도록 누가 지시했을까?

당연히 백서연 사장이지.

종류별로 집어넣었다.

나머지 공간은 기타 물품 구역.

'여기도 세분화할까?'

그때였다.

'이건 뭐야?'

무한공간을 살피다가 이상한 점을 하나 포착했다.

한쪽 끄트머리 구역에 이미 설정된 구역이 있었다.

'내가 설정하지 않았는데···,'

크기는 여행용 캐리어 정도.

이 공간이 태주에게 인식된 이유는 은은한 빛을 뿌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빛에서 조금 익숙한 기운이 느껴졌다.

'이거 선기잖아.'

당군악이 전한 선기(仙氣)가 저기 뭉쳐 있는 것 같다.

무한공간을 만들고 남은 선기일지도 모르고.

'저기도 물건이 들어갈까?'

태주는 시험 삼아 유엽비도 하나를 그 구역에 집어넣었다.

스르릇.

들어간다.

스팸 통조림도,

스르릇.

최고급 샴페인도,

스르릇.

과자 한 봉지를 집어넣었다가.

스르릇.

꺼내기도 하고.

스슷.

'음, 똑같군.'

태주는 빛이 나는 공간에 집어넣은 물건들을 다시 꺼내려고 했다.

하지만 그 순간!

팟!

순식간에 빛이 사라져버렸다.

그러자.

'어? 안 꺼내지네.'

오류 같은 거였나.

아마도 그런 모양.

당군악에게서 선기를 받아 무한공간 술법진을 그릴 때, 그리기를 다 마친 순간 그와 연결이 끊겼었다.

그 때문에 문제가 생겼을 수도.

예를 들어 컴퓨터 하드 디스크 배드 섹터 같은 거.

'쯧, 놔두자. 어차피 크기도 눈곱만한 구역이고.'

저 구역에 물건만 안 넣으면 된다.

그러고 나서 태주는 까맣게 잊어버렸다.

※ ※ ※

지리산 마수 대토벌 보름째.

작전은 매우 순조로웠다.

그리하여 각 본대 간의 거리는 1km 안으로 좁혀졌다.

이제 지리산 일반 마수들은 초보 각성 장교들의 훈련용 허수아비로 전락했다.

그리고 속속들이 사냥당하는 엘리트 마수.

- GS팀, 엘리트 칼날이빨 담비 사냥 성공, 엘리트 결정체는 확보 실패.

- SS팀, 엘리트 폭풍 족제비 섬멸, 엘리트 결정체 하나 확보했다.

- HS팀, 엘리트 붉은 털 늑대 잡았다. 결정체 있다.

심지어 어떤 일까지 벌어졌냐 하면.

- NS팀이다. 엘리트 강철 깃 부엉이와 조우했다.

- 포획 방법은?

- 하이퍼 신궁 대전차 미사일 준비 중이다. GS 팀에 사용 허가를 요구한다.

- GS, 오진형이다. 마음껏 써라, 우리가 서포터 하겠다.

이쯤 되면 밀림에 미사일을 사용한다 해도 웨이브 걱정은 없었다.

거의 씨를 말리고 있는 판에.

오히려 주위에 기다렸다가 몰려오는 마수들을 상대하는 것이 더 편하다.

하지만 약간 우려되는 점은.

- GS 오진형이다. 각 팀에게 질문한다. 삼두백호를 목격한 팀 없나?

- HS팀, 보지 못했다.

- NS팀, 엘리트는커녕 일반 삼두백호 으르렁 소리도 못 들었다.

- SS팀, 그러고 보니 이상하다. 지리산에 삼두백호가 없을 리가 없는데.

삼두백호.

일반 삼두백호도 엘리트 마수에 필적할 만큼 강하다.

지리산에선 이보다 강한 마수가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 흐음, 혹시 전부 먹어 치웠나?

- 누가 말입니까?

- 강한 놈 한 마리가 말이야.

잠시 침묵이 흘렀다.

충분히 그럴만한 추측이었기 때문이다.

삼두백호는 유독 영역을 따진다.

이 산에 자신과 같은 종류의 마수는 단 한 마리여야만 직성이 풀리는 놈이다.

또한 엘리트 마수는 같은 종의 마수를 서로 잡아먹음으로써 탄생한다.

만약 삼두백호들이 서로 죽고 죽이는 전투를 통해 단 한 마리만이 살아남았다면?

- 그럼 엄청난 놈이 생겨났겠군요.

- 맞아. 각 팀, 항상 조심하게. 김태주 회장도.

태주도 무전을 통해 팀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치직!

"네, 조심하고 있습니다."

그는 현재 홀로 사냥 중이었다.

일종의 틈새 공략이라고나 할까.

지리산 토벌 작전의 기본 전략은 포위섬멸 공세.

하지만 빠진 지역이 꽤 많다.

태주는 그곳을 집중적으로 공략하고 있었다.

혼자서 다 먹어야지.

오진형 중장에게 양해를 구하고 5일 동안 혼자 사냥 중이었다.

일반 마수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오직 엘리트만.

여우 가죽 코트는 계속 입고 다니기로 했다.

갑자기 입던 옷을 벗고 다니면 이상하게 바라볼까 봐.

그 많은 암기가 어디서 나오는지 궁금해하겠지.

버리지 않고 가죽공방에서 가서 수선했다.

토벌 작전 중에만 입고 다닐 생각.

그래도 얼마나 가볍고 편한지.

코트 주머니가 텅텅 비어서 그렇다.

어느새 나타난 엘리트 폭풍 족제비 무리.

우르르르르!

마치 공 모양처럼 뭉쳐서 태주에게 달려들었다.

엘리트 폭풍 족제비의 특징은 일반 마수 족제비와 모양과 크기가 비슷하다는 것, 그래서 함께 무리를 지어 다닌다.

아마 저 중에 한 놈이 엘리트일 것이다.

스슷!

생각만 하면 암기가 나오고.

지이잉!

강기가 입혀지면서

'일섬.'

츠핏!

유엽비도가 족제비 무리를 향해 빛살처럼 쏘아졌다.

하지만 마수의 몸에 적중되기도 전에,

채채채채챙!

산산조각으로 터져나갔다.

확실히 일반 암기로는 강기의 힘을 감당할 수 없다.

탈명비도는 한 번 정도 견디지만 특히 이 얇은 유엽비도는 중간에 가다가 터진다.

그렇다고 해도.

'오히려 좋아.'

왜냐하면 부서진 파편 하나하나에 강기와 독기가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자동 비폭이구나.'

당군악도 즐겨 사용하던 방식.

단점이 있다면 유엽비도가 산산이 부서져 다시 쓸 수 없다는 것, 조금 아깝긴 하다.

파파파파파파파!

엘리트가 섞인 족제비 무리가 터져나갔다.

'저 중에 어떤 놈이 엘리트지?'

아직 살아서 움직이는 놈이겠지.

마무리는 수강을 입힌 혈인독장으로.

퍼억!

엘리트 마수의 강기 보호막은 이미 무력화되었다.

게다가 독까지 몸 안에 들어갔으니.

남은 건 엘리트 마나 결정체 수거.

'오! 하나 나왔다.'

운이 좋다.

원래 엘리트 마수를 잡았다고 해서 결정체가 무조건 나오진 않는다.

그런데 오늘 잡은 5마리의 엘리트 마수 중에 결정체가 무려 3개나 나왔다.

'결정체는 기타 구역에 넣고.'

구역을 정하니 암기가 매우 빠르게 나온다.

나오는 즉시 날릴 수 있다.

공격받는 대상은 마치 마술처럼 허공에서 나온 암기에 의해 당할 것이다.

'지금도 이렇게 수월한데 나중에 강기에도 견딜 수 있는 엘리트 유엽비도가 만들어지면···.'

바로 그때!

스스스스스!

갑자기 마나의 유동이 느껴졌다.

'뭐지?'

동시에 저 멀리서.

크르르르르르르르르···,

아주 낮은 저음의 마수 울음이 들렸다.

움찔!

태주도 멈칫할 정도로 소름 끼치는 피어가 담긴 포효.

'이거 혹시···.'

순간!

치칙!

- 모두 들었나?

- 네네, 들었습니다.

- 엘리트···, 삼두백호 같습니다.

- 모두 현 위치에서 이탈해서 GS팀으로 모인다.

치칙,

- 그리고 김태주 회장?

치칙!

"아! 네! 들었습니다."

- 조심하게. 일찍 퇴근하던가.

태주는 퇴근할 생각이 없었다.

스팟!

이미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빠르게 달려가고 있었으니까.

소리가 난 곳은 지리산에서 가장 높은 천왕봉이었다.

울음소리 하나만으로 판단할 수 있다.

태주가 여태껏 봐왔던 모든 엘리트 마수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강한 놈이란 걸.

어떻게 생긴 놈인지 구경 정도는 해볼 수 있겠지.

< 구역 설정. > 끝

ⓒ 꾸찌꾸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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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산의 왕 >

다민족 국가임에도 삼한제국은 한민족의 비율이 가장 높다.

그런 이유로 호랑이에 대한 기본적인 숭배 사상이 존재한다.

따라서 삼두백호도 그런 비슷한 대접을 받는 경향이 있었다.

물론 헛소문이겠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사례들도 알게 모르게 퍼졌었다.

- 각성자들이 사냥 중에 삼두백호와 맞닥뜨렸는데 공격하지 않고 그냥 가더라.

- 마수 밀집지대에서 길을 잃었는데 삼두백호를 만나 따라가니 길이 나오더라.

- 우리 지역은 삼두백호가 보호하기 때문에 웨이브가 잘 안 일어난다.

하지만 황실에선 삼두백호를 확실하게 마수로 규정하고 있었다.

이러다 마수 숭배 사상이라도 생겨나면 곤란하기에.

행동으로 보여줘야 했다.

황제가 몸소 삼두백호 출몰지를 찾아다니며 사냥했다.

전설 속 백호와 마수 삼두백호는 전혀 다르다.

마수는 죽여야 한다.

많이도 잡았다.

거의 씨를 말렸다.

그중 상태가 좋은 놈의 가죽을 벗겨 황제의 용상에 깔고 앉았다.

이곳 지리산에도 삼두백호들이 있었다.

개체 수도 많았던 편.

태주도 삼두백호를 마주한 적은 없었다.

원인은 엘리트 삼두백호의 탄생 때문일 것이다.

원래는 서로 영역 다툼을 벌이며 팽팽하게 균형을 이루는 것이 보통이지만, 지금은 한 마리의 삼두백호가 자신의 경쟁자들을 먹어 치우고 엘리트로 진화한 듯했다.

'일단 한번 만나보고.'

혼원무상독령공 7성 전이었다면 어땠을까?

아마 가까이 갈 엄두도 못 냈을 것이다.

태주는 표홀질풍보로 천왕봉 정상을 향해 질주했다.

쐐애애애액!

그 와중에도 들려오는 무전,

- 지리산 작전 종료 전군 철수 준비하라.

- 엘리트 삼두백호는 어떡합니까?

- 잡지 않는다. 지금 병력으론 역부족이다. 그리고 이만하면 작전 성공으로 봐도 무방하다.

'안 잡아도 된다는 말인데···.'

타다다닥!

태주는 마침내 꼭대기에 올라섰다.

지리산에서 가장 높은 곳.

봉우리 꼭대기는 무척 좁다.

그리고 올라온 길을 제외하면 모두 절벽이었다.

중앙엔 천왕봉이라고 쓰인 돌비석 뒤쪽에 놈이 있었다.

지리산 마수의 왕.

크기?

놈의 얼굴을 보려고 고개를 뒤로 한껏 젖혀야 할 정도.

순백색의 털, 회색빛 줄무늬, 사람 몸통만큼이나 굵은 꼬리, 웬만한 자동차는 한 발로 찌그러뜨린 것 같은 두툼하고 큼지막한 앞발.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머리가 3개라는 것.

총 6개의 눈동자가 천왕봉 지척까지 올라온 태주를 바라보고 있었다.

엘리트 삼두백호는 가만히 앉아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호기심 어린 눈초리로 겁 없이 자신의 영역을 침범한 작디작은 인간을 관찰하고 있었다.

태주도 못 박은 듯 움직이지 않았다.

암기도 꺼내지 않고, 독기방사도 하지 않았다.

'대단하네.'

크기는 둘째치고서라도 놈의 몸에 덮인 강기 보호막은 판금 갑옷처럼 두꺼웠다.

뭐, 그래도 자신 있다.

독기와 강기의 조합.

뭐가 두려울까?

'엘리트 마나 결정체 암기가 있으면 더 쉬울 거야.'

그렇다면 독은?

독기방사로 독정(毒精)의 독을 다 쏟아내면 중독시킬 수 있다.

악전고투를 치러야 하겠지만.

지금 싸운다고 하면 쉽게 끝나진 않을 것 같다.

하루 종일 다퉈야 할지도.

아무튼 결론을 내보자면,

'해볼 만해.'

그런데 희한한 점도 있었다.

여태껏 상대했던 마수와는 조금 다르다.

보통 마수들은 인간을 만나게 되면 먼저 공격부터 하고 보는데.

이놈은 가만히 자신을 주시하기만 할 뿐 이빨을 드러내지도 않았다.

그리고 조금씩 느껴지는 기묘한 기운.

'영성(靈性)인가?'

확실히 그런 것 같다.

마수보다는 영수에 가까운 놈이었다.

'흐음, 원래 영수는 죽이는 게 아닌데.'

강호 무림에서 영수를 죽이면 천벌을 받는다고 알려져 있다.

물론 여긴 지구, 그딴 건 믿지도 않지만,

또한 삼두백호는 지금까지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

이 정도 힘이면 당장 내려가 인간들의 군대를 홀로 쓸어버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저 낮은 저음의 포효로 더 이상 다가오지 말라는 경고만 날렸다.

'이거 고민되네.'

한편 엘리트 삼두백호도 고개를 갸우뚱하며 인간을 보고 있었다.

신기한 인간이다.

그동안 지리산 밀림에 드나드는 수많은 인간을 관찰해왔지만 이처럼 이상한 느낌을 주는 자는 처음.

육체 능력은 평범(?)했지만 영혼의 본질이 다르다.

격이 다르다고나 할까?

특히 저 인간의 양손에서 느껴지는 신성하고 경이로운 기운.

삼두백호의 머리 3개가 한꺼번에 갸웃갸웃거렸다.

대체 이 인간의 정체가 뭐지?

순간!

위이잉! 위이이이이이잉!

천왕봉 상공에 떠오른 드론 하나.

엘리트 삼두백호의 주위를 맴돌며 놈을 관찰하고 있었다.

하지만,

"크르르."

귀찮은 듯 희미한 울음을 내뱉더니,

스콰아아아앗!

거대한 꼬리가 마치 파리채처럼 드론을 위에서 밑으로 찍어눌렀다.

콰아아아아앙!

지진이라도 난 듯 들썩이는 천왕봉 꼭대기.

꼬리에 맞은 커다란 바위가 두 조각으로 쩍 갈라졌다.

'···미친!'

저게 진짜 살아있는 생명체냐?

앞이 안 보일 정도로 피어오르는 먼지.

바위 조각이 허공으로 비산했다.

표지석도 부서져 큼지막한 돌조각이 태주를 향해 날아들었다.

손으로 탁탁 쳐서 걷어내고.

자신에 대한 공격은 아니다.

드론을 공격한 것뿐이지.

'애매하네.'

먼저 공격한다면 모를까, 심지어 적대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괜히 죽이면 찝찝할 것 같은 예감.

'인사나 하고.'

오늘만 날이 아니니까.

태주는 한 손을 들어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멈칫! 하면서 뒤로 물러나는 엘리트 삼두백호.

뭘 저렇게 놀라.

손에 뭐가 있나?

아무튼···,

"다음에 보자."

팟!

태주의 신형이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 ※ ※

엘리트 삼두백호의 포효가 지리산 밀림에 깔리는 순간이었다.

소리는 천왕봉 정상에서 들렸다.

밀림에서 작전을 펼치던 모든 군인들이 꼼짝없이 얼어붙었다.

바지에 오줌을 지린 병사들도 있었다.

영향은 받은 건 사람들만이 아니었다.

마치 무소음 방음방에라도 들어온 듯 지리산 전체가 숨을 죽였다.

간간이 들리던 비행 마수의 울음도 멈췄다.

풀벌레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적막한 지리산.

오진형 중장이 얼이 빠져 반쯤 정신이 나간 사단장들에게 말했다.

"정신 차리고, 전군 철수 준비한다."

"···바로 무전 날리겠습니다."

엘리트 삼두백호가 나타난 이상 작전 중단은 불가피하다.

미사일이나 로켓 등 화력 무기도 가지고 왔지만 애써 무리해서 잡는 것보다 안전하게 빠지는 것이 현명한 판단.

그리고 지리산 엘리트 마수들은 충분히 잡았다.

최소 3년에서 4년간은 웨이브 걱정이 필요 없을 정도로.

미련이 남은 듯 천왕봉만 바라보는 홍준태 소장에게 오진형이 말했다.

"준태야."

"···네, 네?"

"정신 차리고 드론이나 날려봐. 가기 전에 그놈 낯짝 좀 보자."

"아, 알겠습니다."

드론 정찰은 지리산 밀림에선 거의 불가능했다.

빽빽한 밀림 때문에 하늘에 떠 봤자 밑을 볼 수 없었고, 고도를 낮추면 장애물들이 많아 조금 날다가 부딪혀 떨어지기 일쑤였다.

하지만 지금은 가능하다.

예상 위치가 사방이 확 트인 저 꼭대기 천왕봉이고, 방금 내지른 놈의 포효로 비행 마수마저 날지 않고 숨어 있었다.

드론이 날아가면 놈의 모습을 똑똑히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만 볼 게 아니라 지리산 군단 전체에 영상을 공유해. 가능하지?"

"네! 군용 스마트폰에 영상 네트워크가 이미 연결되어 있습니다."

각성 장교나 병사들도 알아야 한다.

저렇게 무시무시한 놈이 지리산에 자리를 잡고 앉아있다는 걸.

이런 게 실전 교육이지.

잠시 후.

위이이잉!

정찰용 드론이 출격했다.

엄청나게 비싼 물건이었다.

비행 마수의 공격도 견디고 따돌릴 수 있는 최첨단 기능의 드론.

오진형도 스마트폰 어플을 실행했다.

그러자 밑으로 보이는 빽빽한 지리산의 밀림.

역시 비싼 건 다르다.

출력되는 영상이 제법 선명했다.

잠시 후.

지리산 천왕봉 상공.

그리고 놈이 화면에 나타났다.

"허어!"

"헉!"

"무, 무슨!"

"크기가···, 마, 말도 안 되게."

천왕봉 꼭대기에 앉아 마치 왕처럼 밀림을 내려다보고 있는 엘리트 삼두백호.

드론이 놈의 주위를 빙글빙글 돌았다.

아마 지리산 마수 방어 군단 소속이라면 모두가 보고 있을 것이다.

이 무시무시한 마수를.

그런데.

"응?"

"어?"

"뭐, 뭐지?"

"헐···,"

있어서는 안 되는 존재가 보였다.

오진형이 다급한 목소리로 지시했다.

"드론 다시 움직여봐. 반대편으로, 어, 그래, 바로 거기."

천왕봉 꼭대기엔 엘리트 삼두백호 한 마리만 있는 게 아니었다.

코트를 입은 한 사람이 거기 서 있었다.

오진형은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기, 김태주 회장?"

아니, 저 사람이 왜 영상에 나타나?

분명 김태주 회장이었다.

구준영, 박필성, 홍준태 등 각 사단장도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포효 하나만으로도 자신들을 꼼짝할 수 없게 만든 놈이었다.

그런데 그 앞에 멀쩡하게 서 있어?

순간!

콰아아아아앙!

꼭대기에서 들리는 굉음.

동시에 화면이 픽 하고 암전됐다.

천왕봉 꼭대기에서 마치 화산 폭발이라도 일어난 것 돌덩이가 솟아올랐다.

툭툭, 투두두두두둑!

심지어 이곳까지.

오진형 중장은 서둘러 무전을 날렸다.

"김회장, 김태주 회장! 살아있나? 대답 좀 해!"

다시 한번.

"김태주! 태주야! 야야! 야야야!"

하지만 응답이 없다.

"이런···,"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아니, 거의 틀림없을 것이다.

아무리 김태주가 강하다고 한들, 포효 한 번으로 부대 전체를 꼼짝 못 하게 하는 괴물을 어떻게 감당해?

"하아!"

믿고 싶진 않았다.

그가 누군데 그렇게 쉽게 죽어?

하지만 또 마음 한편으론···,

충격을 받은 듯 멍하니 서 있는 오진형과 사단장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구하러 가야 하나?'

가면 개죽음일 텐데.

그래도 그동안 쌓은 정이 있다.

"자네들은 부대를 지휘해서 철수해. 난 가볼 데가 있어."

오진형의 말에 사단장들이 깜짝 놀랐다.

"중장님! 설마?"

"안 됩니다. 가면 무조건 죽습니다."

"김회장도 이미···,"

다급하게 말리는 사단장들.

"시신은 수습해와야 하지 않겠나. 멀쩡한 사람 끌어들여 죽게 했으니, 다 내 탓이야."

오진형은 결심한 듯, 대검을 손에 들고 천왕봉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결의에 찬 그의 모습.

김태주라는 전우를 구하기 위해.

아니, 시신이라도 데리고 오기 위해.

죽을 것이 뻔한 사지로 용감하게 걸어가는 저 숭고한 군인 정신.

그래서 다들 숙연한 분위기였다.

사단장들의 눈에도 눈물이 맺혔다.

그때였다.

칙칙!

갑자기 전송된 무전.

- 엘리트 삼두백호도 별거 없네요. 그냥 큰 고양이 정도? 전 이만 퇴근합니다. 내일 뵐게요.

"어?"

"오!"

"···."

김태주 회장의 목소리였다.

"···이런 씨발?"

오진형 중장은 머쓱한 나머지 욕을 내뱉고 말았다.

※ ※ ※

지리산 숙영지에서 철수 준비 중인 산청부대, 함양부대, 남원부대, 하던 일을 멈추고 군단장 특별 지시로 스마트폰을 보고 있었다.

지리산 마수 방어 군단 내부 네트워크에서 송출하는 실시간 정찰 영상이었다.

함양부대에 임시로 배속된 졸업 예정 사관생도들도 미리 깔아둔 어플을 실행해 영상을 시청했다.

현재 떠 오른 정찰 드론의 목적이 무엇인지 미리 알고는 있었다.

좀 전에 지리산 전역에 울린 끔찍한 마수의 포효.

엘리트 삼두백호의 가공할 피어.

누구 하나 움직이지 못했다.

그저 소리만 들렸는데도 온몸이 덜덜 떨려왔다.

그 와중에 김태천은 그만 바지에 살짝 오줌을 지렸다.

그래서 모른 척 쪼그려 앉아서 스마트폰을 들여다봤다.

사관생도 모두가 긴장한 표정으로 함께 영상을 시청하고 있었다.

아마 교육 목적에서 그놈의 정체를 보여주려 하는 듯.

드디어 화면에 엘리트 삼두백호가 나타났다.

"와!"

"미친!"

"이걸 어떻게 잡아?"

"핵폭탄 맞아도 살겠네."

"역사 시간에 안 배웠어? 중국이 그러다 망했잖아."

그러자 천왕봉 꼭대기를 빙 돌아가면서 비추는 영상.

그곳에 사람이 있었다.

멀리 있어서 얼굴이 잘 보이진 않았지만.

"사람이네?"

"잘못 본 거···, 어? 진짜구나."

"누구야? 엘리트 삼두백호 앞에서 멀쩡하게 서 있잖아."

"군복을 입지 않았으니까 그럼···."

"민간인?"

"최소 마스터라는 말인데."

순간 신음처럼 터져 나온 김태평의 음성.

"김태주···,"

그 말을 듣고 생도들은 깜짝 놀랐다.

"진짜?"

"이 사람이 김태주 회장이라고?"

"저 새끼가 말했잖아. 김태주 회장 얼굴을 가장 잘 아는 사람 중 한 명일 텐데."

"야! 김태천! 확실해? 김태주 회장님이야?"

김태천도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어어, 마, 맞는 것 같아."

그리고,

픽!

화면이 끊기더니.

콰아아아아앙!

커다란 폭음이 천왕봉에서 들렸다.

그리고 마치 화산 폭발처럼 꼭대기에서 먼지가 피어올랐다.

"헉!"

"마, 맙소사."

"이게···,"

침묵이 흘렀다.

누구 하나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

당황해서 말이 안 나오는 듯 했다.

단 두 사람만 빼고.

김태천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주, 죽었나? 지, 진짜 죽었어?"

"그런 것 같은데?"

김태평이 고개를 끄덕였다.

둘의 표정엔 숨길 수 없는 기쁨이 드러나 있었다.

"죽었구나! 흐흐흐. 그럴 줄 알았다. 하하하!"

그러다 심상찮은 분위기를 감지한 김태평.

"태, 태천아. 조용···,"

"형도 봤잖아, 분수도 모르고 엘리트 삼두백호 앞에서 알짱대다가 뒈진 거야."

"쉿! 좀 조용히 해."

"왜? 난 속이 다 시원한데."

바로 그 순간!

퍼억!

어디선가에서 날아온 군홧발이 김태천의 얼굴에 작열했다.

"미친 패륜아 새끼야! 아무리 배가 다르다지만 형이 잘못됐을지도 모르는데 웃어? 너도 오늘 죽어봐라. 으르릉 소리만 듣고 오줌이나 지리는 새끼가!"

정연희였다.

퍽퍽퍽!

김태천의 머리가 사정없이 땅에 틀어박혔다.

그런 정연희를 말리는 김태평,

"이러지 마! 왜 이래? 분노조절 장애야?"

"뭐? 좋아, 잘 됐다. 마침 너도 잘 걸렸다."

휘잇!

"헉!"

정연희는 김태평의 머리채를 잡고 바닥에 처박았다.

쾅!

"아악!"

"너도 웃었지? 이 음습한 새끼야!"

퍼억! 퍽! 퍽! 퍽!

이어지는 발길질.

"아악!"

"사, 살려줘."

"엄마에게 가서 나한테 맞았다고 일러. 내 이름 똑바로 대고!"

퍽! 퍼억! 퍽퍽!

그러나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

생도들을 관리하는 도민수 소령도.

두 형제가 맞는 모습이 시원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매우 바빴다.

이리저리 전화를 돌려 사실관계를 확인하느라 말이다.

그러다가 직속상관에게서 들은 이야기.

"아! ···퇴근하겠다고 연락이 왔단 말입니까? 다행입니다. 전 잘못되신 줄 알고. 네네, 그렇게 알고 있겠습니다. 멸마!"

도민수는 전화를 끊었다.

그럼 그렇지.

김태주 회장이 누군데!

그나저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니 정연희 생도를 말릴까?

조금 고민하다가 도민수는 못 본 척 고개를 돌려버렸다.

불미스러운 폭행 사건이지만 뒤처리는 금수저 정연희가 알아서 할 것이고,

이로써 지리산 마수 대토벌 작전은 끝이 났다.

마무리도 적당했다.

< 지리산의 왕 > 끝

ⓒ 꾸찌꾸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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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서울 상경 준비 >

한 달을 계획하고 있었지만 보름 만에 끝났다.

지리산 마수 방어군단 전 병력은 질서정연하게 밀림 밖으로 빠져나갔다.

견학 나온 생도들도 사관학교로 돌아갔고.

비록 엘리트 삼두백호는 잡지 못했지만, 실재한다는 사실을 밝힌 것만으로도 성과가 있었다.

지리산 마수 방어군단 본부는 한동안 바빴다.

토벌 과정에서 얻은 성과, 전리품, 또한 문제점을 정리해 합참에 보고해야 했기 때문이다.

엘리트 삼두백호는 어떻게 보고해야 할까?

현재 천왕봉 봉우리에서 찍힌 영상이 있다.

고심하던 오진형 중장은 영상을 두 개 만들었다.

하나는 전체 내용이 다 들어간 영상, 또 하나는 삼두백호의 모습만 나오고 김태주 회장의 모습은 편집한 영상.

전자는 황실과 합참에 보고할 것이고, 후자는 언론에 공개할 예정이다.

그리하여 지리산 마수 대토벌 작전은 대성공으로 막을 내렸다.

<지리산 마수 방어군단 작전 성공에 쏟아지는 찬사!>

<엘리트 마수의 씨를 말렸다.>

<당분간 웨이브 걱정은 안 해도 될 정도.>

<지리산 마수 방어 방어군단이 거둔 엄청난 성과!>

<엘리트 마나 결정체 및 부산물 다량 확보.>

<현장 판매는 없다. 곧 뉴서울 경매장에서 선보일 예정>

<지리산에 산군이 있었다. 엘리트 삼두백호의 무시무시한 위용 - 영상 첨부>

<지리산 방어군, 엘리트 삼두백호가 영수일 가능성 제기.>

<황실과 제국군 수뇌부, 엘리트 삼두백호를 예의주시하겠다.>

<민간 각성자들, 천왕봉 근처엔 가급적 다가가지 말 것을 권고.>

구례시에도 축제가 벌어졌다.

학교들이 임시 휴교일을 선언하고, 회사나 관공서도 직원들에게 하루 유급휴가를 줬다.

웨이브의 위험성이 사라진 구례, 이젠 발전할 일만 남았다.

그 와중에 캐슬로 연결하는 다리는 순조롭게 공사를 진행 중이었고.

태주는 의뢰한 엘리트 암기가 완성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구례 종합시장 금속 공방으로 한달음에 달려갔다.

"회장님! 어서 오세요."

"다 만들었습니까?"

"네, 많이 기다리셨죠? 여기 확인해보세요."

공방 장인이 네모난 알루미늄 가방을 열었다.

가지런히 놓여 찬란한 빛을 뿌리고 있는 명품 암기들.

탈명비도 10자루, 유엽비도 35자루, 장인의 말대로 원래 계획했던 것보다 유엽비도 5자루가 더 나왔다.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다.

심지어 혼원무상독령공 7성에 이른 것보다 더 좋다.

"마음에 드십니까?"

"네, 무척."

"하하하, 다행입니다. 아참! 여기 이것도 챙겨가십시오,"

"···엘리트 강철 깃털이네요,"

"많이 남았습니다. 엘리트 마나 결정체가 더 있었으면 무기들을 더 만들 수 있었을 텐데, 가져가십시오."

엘리트 강철 깃털은 매우 희귀고 비싼 마수 부산물, 빼돌리려고 마음만 먹으면 쉽게 했을 것이다.

'솜씨도 좋고, 정직하기도 하고.'

태주는 미리 준비해온 가방에서 현찰을 쌓아 올렸다.

"공임비 1억입니다."

"헉! 너, 너무 많습니다."

"천만에요. 작을까 고민했는데, 그리고 이거."

가방엔 현찰만 있는 게 아니었다.

"어, 깃털이 또 있네요?"

"네, 이번엔 양이 많습니다."

그러면서 엘리트 마나 결정체도 5개 더 꺼내놓았다.

"헉! 이 귀한 걸 어떻게 매번···?"

"돈으로 샀어요."

"아하."

공방 장인은 빠르게 수긍했다.

구례 최고 부자가 돈으로 샀다는데 뭐가 문제야?

물론 엘리트 마나 결정체는 다 사냥으로 얻은 거다.

무한공간에 몇 개 더 있고.

반면 깃털은 선물로 받은 것.

토벌 과정에서 지리산 마수 방어군단에 의해 엘리트 강철 깃 부엉이가 두 마리나 더 잡혔다.

오진형 중장이 작전에 참여해줘 고맙다는 의미로 그중 한 마리분의 깃털을 태주에게 넘겨줬다.

"큰 거 10자루 더 만들어주시고, 나머지는 다 작은 걸로, 공임비는 두 배로 드리죠."

"아이고, 괜찮다고 해도 그러시네."

상인들과의 거래에서 신뢰는 다 돈에서 나오는 법.

"지금 만든 것처럼만 해주세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것들보다 품질이 더 좋았으면 좋았지, 떨어질 일은 절대 없을 겁니다."

태주는 만들어진 암기를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엘리트 유엽비도를 하나 꺼내.

지이이잉!

자연스럽게 솟아나는 강기.

일반 암기는 강기를 불어넣자마자 부르르 떨리며 힘을 이겨내지 못했는데.

빛깔이 찬란하다.

소리도 얼마나 부드러운지.

'좋네.'

절대 잃어버리지 않는다.

개당 돈이 얼만데.

무한공간에 고이 모셔두자.

※ ※ ※

마수 토벌 후, 특별한 일 없이 시간이 조용히 흘렀다.

태홍 바이오 제약.

겉으로는 한가한 듯 보였지만 놀고 있는 사람들은 단 하나도 없었다.

태주만 빼고.

백창훈과 장순철의 오행신공도 이제 숙련이 많이 늘었다.

태주가 혼자서 했던 약제 최종 법제를 대신할 경지까지 왔다.

"자, 그런 의미에서 모두 나한테 절을 9번씩 해."

"네? 으음, 못할 것도 없지만 갑자기 왜···,"

"나도 몰라, 내가 아는 사람에게 들은 이야기로는 9번 절을 해야 스승과 제자 관계가 성립된다고 해서."

태주의 말에 흠칫 놀라는 두 사람, 그러더니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스승님?"

"제자가 절을 올리겠습니다."

진작 이랬어야 하는데, 조금 늦었다.

"좋아. 창훈이가 대사형이고, 순철이는 둘째다."

"제가 대사형요?"

"네! 따르겠습니다."

위계질서는 세우고.

"쓸만한 아이들은 물색하고 있지? 너희들 밑으로 몇 명 깔아야지."

"그렇지 않아도 재능있는 동생이 한 명 있습니다."

"그래?"

"아직 여고생이지만 곧 졸업 예정이고 원생 출신에, 적합자입니다."

"데려와. 면접 합격하면 각성부터 시키고, 오행신공 가르칠 테니까."

이번에 채취한 엘리트 자이언트 반달곰의 웅담.

약효가 매우 뛰어났다.

태주가 예상하기론 한 알이면 등급을 두 단계나 올릴 수 있을 것이다.

한편 백홍표는 태홍 바이오 실무에서 완전히 손을 뗐다.

모든 직위를 내려놓고 명예 이사직 직함만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도 하는 일이 매우 많았다.

그가 제일 먼저 착수한 일은 제국 전체에 운영이 어려운 고아원들을 찾아가 궁핍하게 지내는 고아들을 구례로 데려오는 것.

매일매일 기차를 타고 어디론가 가더니 어린 고아들 손을 잡고 구례로 돌아왔다.

이일은 제국 전체로 소문이 퍼졌다.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모르겠지만 원생 수가 대폭 늘어났다.

그래서 고아원도 공사 중이었고.

솔직히 훈장은 이런 사람이 받아야지.

백서연은 말할 것도 없었다.

아마 태홍 바이오에서 가장 바쁜 사람은 그녀일 것이다.

오늘도 서류를 잔뜩 들고 태주를 찾아온 백서연.

"뉴서울 지점 사옥 인테리어 공사가 끝났습니다. 지점에서 일할 새 직원들도 오늘부터 실무에 들어갈 예정입니다."

"수고하셨어요."

"그리고 한 달 후에 뉴서울 신공장 준공식이 계획되어 있는데, 아무래도 회장님이···,"

"참석해야 한다는 거죠?"

"네."

그렇지 않아도 회장으로서 제 역할을 해야지 다짐하고 있던 차였다.

무력만이 능사가 아니다.

새로운 직원들 얼굴도 보고, 인맥도 넓히고.

"일정을 잡아보세요. 다 참석할게요."

"네! 열심히 준비하겠습니다."

"그리고 특허 신청은요?"

"회장님께서 뉴서울에 방문하는 것과 동시에 처리할 예정입니다."

특허가 제일 중요하다.

"특허 신청하고 허가받는 기간은 얼마나 걸리죠?"

"한 달 정도 걸립니다. 더 빠를 수도 있고요. 하지만 특허를 냈다고 해도 약품을 판매하려면 식약청 심사가 떨어져야 합니다. 그 기간이 꽤 오래 걸려요."

"아! 그래요? 그럼 특허권 통과될 때까지만 뉴서울에 있을게요."

"네!"

백서연은 잔뜩 흥분된 기색.

"당장 의전 수행팀을 꾸리겠습니다."

"···의전?"

"태홍 바이오 회장님 신분으로 뉴서울에 가시는 거잖아요. 새로운 직원들과 만나게 되실 텐데, 초라하게 가시면 되겠어요?"

"굳이 그럴 필요가···."

지점 방문과 공장 준공식 참석하는 건데 의전은 무슨.

그러나 백서연은 흡사 전(前) 남친 결혼식에 참석하는 각오였다.

그녀는 동분서주 발로 뛰었다.

일단 뉴서울에 호텔을 잡아야지.

최고급 스위트룸으로.

그리고 뉴서울 시내에서 타고 다닐 자동차도.

이미 자동차는 예약을 해뒀다.

최소 3대에서 4대 이상은 되어야지.

렌트는 하지 않을 생각.

실제로 돈 주고 사들일 것이다.

렌터카는 회장님 체면에 어울리지 않는다.

그리고 서울에서 타다가 구례로 가지고 오면 된다.

다음으로 구례에서 제일가는 맞춤 양복점을 찾아가.

"회장님이 곧 뉴서울에 가시는데, 입고 다니실 옷이 별로 없어요. 그래서 몇 벌 맞출까 하는데."

"···회, 회장님 옷이요?"

"네, 돈은 얼마든지 드리겠습니다. 구례의 장인 정신을 보여주세요."

결연한 표정의 재단사.

김태주 회장의 옷을 만들려고 자신을 찾아왔다는 것 자체가 자부심을 가질만한 일.

"제 명예를 걸겠습니다. 회장님 모시고 오세요. 치수를 재야 하니까."

그리고 백화점도 들렀다.

남자의 생명은 손목시계 아닌가?

최고급 라인으로 몇 개 사고.

이제 남은 건 의전 경호팀.

최소 5명 이상이 필요하다.

물론 경호할 필요가 없는 회장님이지만 남들에게 어떻게 보이는지가 매우 중요하기에.

'창훈이와 순철이는 안 돼.'

걔들은 할 일이 많다.

그럼?

백서연은 함양부대 도민수 소령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가 태홍 바이오 경비 임무로 파견 나왔을 때부터 친분을 쌓아왔기에, 비록 승낙은 받아내지 못하더라도 제안 정도는 할 수 있는 사이.

"여보세요? 도민수 소령님?"

- 오! 백사장님. 오랜만에 듣는 목소리네요. 그렇지 않아도 한번 놀러 가려고 했는데.

"언제든 오세요. 대환영이니까."

- 하하하! 알겠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일주일 후에 김태주 회장님이 뉴서울로 가시는데 수행원이 필요해서요. "

- ···수행원 말입니까?

"네. 각성 장교분들로 5명만 도와주시면 안 될까요? 아르바이트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제가 수당은 따로 챙겨드릴게요. 멋진 정장도 한 벌씩 선물로 드릴 거고."

- 아! 회장님 뒤에 설 병풍이 필요하다는 거네요. 혹시 여성 각성 장교도 가능한지?

"얼마든지요. 단! 남자든 여자든, 성별 관계없이 키하고 외모 볼 거예요."

- 하아, 그럼 어쩔 수 없이 제가 빠지면 안 되겠어요.

"···."

- 일단 상부에 허락을 맡아보겠습니다. 위에서도 흔쾌히 협조할 겁니다. 사실 토벌 작전이 끝나고 할 일이 별로 없었거든요.

"그렇다고 너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지 마세요. 적당하게 부탁드려요."

- 모르셨구나? '적당한' 일 처리는 제 특기입니다.

도민수 소령은 상부의 허락이 무조건 떨어질 거라고 확신했다.

무려 김태주 회장과 관련된 일 아닌가!

지리산 마수 방어군단에서 그가 차지하는 위치는 거의 사단장급, 아니 또 한 명의 군단장이라고 해도 무방했다.

그가 없었다면 지리산 토벌 작전이 이 정도로 성공했을까?

특히 엘리트 강철 깃 부엉이와 엘리트 오크 대족장이 한꺼번에 출현했을 때, 김태주 회장이 아니었다면 토벌 작전은 그날로 종료되었을 것이다.

사실 도민수 소령의 걱정은 어떻게 지원자들을 탈락시키는가에 있었다.

아마 벌떼처럼 달려들 것이 분명하다.

서로 하겠다면서.

※ ※ ※

도민수 소령은 함양부대 박필성 사단장을 찾아갔다.

"멸마! 사단장님께 용무있어 왔습니다."

"어, 무슨 일이야?"

"다름이 아니라···."

도민수는 백서연에게 부탁받은 내용을 자세하게 설명했다.

"그래? 당연히 협조해야지. 인원 선발되면 휴가 승인해줄 테니까 마음 놓고 다녀와."

"감사합니다!"

"···그런데 말이야."

은근하게 어필하는 함양부대 박필성 사단장.

"수행원 중에 나이 지긋한 중년도 한 명 있으면 좋지 않나? 예를 들어 마스터 한 명 정도는 끼어야 그럴듯한 병풍이 되지 싶은데···."

도민수 소령에겐 첫 번째로 닥쳐온 위기.

어떻게 하지?

"그, 그게 조건이 있습니다."

"조건?"

"나이 제한 때문에, 죄송합니다."

"겉으로 보면 나도 동안이지 않나?"

"김태주 회장님이 불편해하실 것 같아서. 서로 아는 사이지 않습니까?"

"흐음, 역시 안 되나?"

기회는 이때.

"멸마! 소령 도민수 용무 끝났으니 나가보겠습니다."

"···알았어. 나가 봐."

큰일 날 뻔했다.

사단장도 저런데 공고가 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도민수는 곧바로 함양부대 내부 게시판에 수행원 모집에 대한 글을 올렸다.

1분도 안 되어 반응이 왔다.

첫 번째로 찾아온 사람은 도민수 소령의 직속 상관이었다.

"야! 너 왜 나한테 먼저 말 안 했어? ···자리 있지? 내 이름 넣어라."

"죄송하지만 중령님은 안 됩니다."

"뭐?"

"백서연 사장님이 얼굴하고 키를 본다고 해서, 중령님 포함시켜도 면접 탈락일 겁니다."

"이런 씨발! 나 요즘 노력해서 머리 많이 났단 말이야! 봐봐!"

도민수는 듬성듬성한 상관의 정수리를 보면서 말을 이었다.

"사단장님도 탈락했는데요?"

"···후우."

직속상관이 낙심한 표정으로 방을 나가자마자 동시에 수십 명의 각성 장교들이 들이닥쳤다.

"저요, 저! 지원하겠습니다. 아직 자리 있습니까?"

"소령님! 저 뽑아주십시오. 제가 또 한 외모 하지 않습니까?"

"위관급 이하는 짜져있어. 짬밥도 안 되는 것들이. "

사단 내부의 각성 장교들이 모두 몰려왔다.

뿐인가?

언제 소문이 퍼졌는지 다른 사단에서도 난리가 났다.

- 도소령, 나 알지? 고향 선배잖아. 요즘 내가 헬스를 해서 몸이 꽤 좋아졌어, 그러니···.

- 민수야. 남자는 수트빨이야. 착장샷 보내줄 테니까, 참고해줘.

- 나 안 뽑으면 죽는다. 여자 동기 중에서 미모는 내가 최고 아냐? 그리고 몸매 되지, 얼굴 되지.

도민수는 죽을 맛이다.

차라리 마수 토벌하는 게 더 나을 정도였다.

< 뉴서울 상경 준비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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