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화 밀림 (4)
부대에 복귀한 신영준 병장과 그를 발견한 이상아가 경례를 나눌 때.
병사들은 그 모습을 보며 입을 벌리고만 있었다.
땅이 스스로 움직이고, 마치 길을 안내하는 듯 갈라지는 거목들.
그것만으로도 경외심이 들 정도로 웅장한 광경이었다.
그리고, 그 사이를 아무렇지 않게 걸어 나오는 신영준 병장의 모습까지.
"저게 대체."
"...그러려니 하기. 잊지 말자."
그들이 놀라고 있는 사이.
경례를 마친 이상아는 신영준을 향해 다가갔다.
"어떻게 된 거예요? 안에서 무슨-"
"아, 조심해."
그녀의 발이 갈라지는 나무들 사이를 밟은 순간.
콰직!
"...!?"
물러서던 거대한 나무의 뿌리가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
"진정해."
"...저한테 하는 말은 아니신 것 같은데."
이상아는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그 나무뿌리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말대로.
진정하라는 것은 이상아에게 한 말이 아니었다.
"이 녀석한테 한 말이야."
그의 손이 나무를 부드럽게 쓸었다.
"진정해. 나랑 친한 사람이거든. 걱정하지 않아도 좋아."
부드러운 말을 건네자.
이내 스스슥 소리를 내며 다시 땅속으로 돌아가는 나무뿌리.
"이건 대체."
"아까 말했잖아? 생각보다 잘 풀렸다고."
씨익.
"우리, 이제 친구거든."
* * *
"뭐 아무튼 잘 풀렸다는 것만 알아 두면 될 거야. 그리고."
나를 어이없다는 듯 바라보는 이상아를 뒤로하고.
"철욱 부대원은 거기 있나?"
농부 각성자를 부르자.
사람들 사이에서 한 남자가 뛰쳐나왔다.
"충성! 어떻게, 가신 일은 잘되신 겁니까?"
"덕분에."
"오오...!"
자신이 가르친 비료 제작법이 도움이 된 점이 꽤 뿌듯한 듯.
호탕하게 웃는 철욱.
"다행입니다, 다행이야!"
"그리고. 기뻐할 만한 소식이 하나 더 있다."
"예?"
난 손가락으로 등 뒤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 안쪽에 있는... 뭐라고 했지? 농부의 혼을 불태울 만한 것들?"
"아. 예. 그런 말을 하긴 했습니다만."
"잘 말해 놨으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
"...예?"
요리사인 나는 좋은 재료가 있어야 좋은 요리를 만들 수 있다.
좋은 결과물이 나올수록 얻을 수 있는 경험치의 양도 늘어난다.
다른 생산직도 이런 점은 마찬가지이다.
"대신, 저 안쪽에서 키우는 것만 허용이다. 내가 없을 때는 비료도 좀 챙겨 주고."
"가, 감사합니다!"
전투도 병행하며 경험치를 수급하는 나와 달리.
순수하게 농부로서 능력을 키워 온 그에게 있어서, 재배 가능한 종이 늘어난다는 것은 성장 가능성이 크게 열린다는 뜻.
철욱이 깊게 고개를 숙였다.
"다만 주의할 점이 하나 있어."
"...?"
"내가 처음 발견했을 때랑은 외형이 좀 바뀌어 버렸거든. 신기하기도 하고, 호기심도 일겠지만... 섣불리 다가가진 말도록."
인간으로 치면 영양실조에 걸려 있던 알라우네.
나무 한가운데에 얼굴만 떡하니 박혀 있던 그 기괴한 모습은 뭐랄까.
'일종의 에너지 절약 모드 같은 거였나 보더라고.'
제대로 된 영양 보충이 이뤄지자, 모습이 꽤 크게 변해 버렸단 말이지.
그 모습을 보고 섣불리 다가갔다가 공격이라도 당하면 큰일이다.
친해진 건 나뿐이니까.
철욱이 재배 가능한 채소가 늘어난다는 건 내게도 좋은 일이다.
좋은 재료가 있어야 좋은 음식이 만들어지니까.
그리고 알라우네와 친구가 됨으로써 얻은 또 하나의 장점은.
"부대 후방의 방어는 저 숲에 맡겨도 될 거야."
강력한 아군을 얻었다는 것.
전투직 부대원들 대부분이 춘천으로 원정을 나가 있는 상황.
인제군은 그나마 안정화가 된 편이라고 한들.
전력이 크게 줄어든 건 사실이다.
어떤 괴물이 갑자기 나타날지 모르는 만큼, 마냥 안심하긴 힘들었던 게 사실.
'이제 걱정은 좀 덜어도 되겠지.'
이 부대가 내 집이라고 알려 둔 이상.
친구의 집이 무너지는 걸 보고 있을 리는 없으니까.
어차피 채소 보충을 위해 한 번은 부대에 들러야 했다만.
생각보다 많은 걸 얻어 가는 느낌.
나쁘지 않았다.
'이제 대충 채소들 보충 좀 하고, 다시 춘천 쪽으로 복귀해야 하려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을 때.
"군단장님!"
한 병사가 나를 불렀다.
무슨 일인가 싶어서 바라보자.
"그 남자가, 깨어났습니다!"
"그 남자라니."
"깨어나는 대로 보고하라고 하셨잖습니까? 그, 병실에 누워있던."
아.
당장은 떠날 때가 아닌가 보다.
* * *
병사의 안내를 따라 병실을 찾아가자.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침상에 누운 채 의식을 잃은 상태였던 남자.
그가 눈을 뜬 것이 보였다.
끼익.
어딘가 불안한 듯한 표정으로 여기저기 둘러보고 있던 남자.
문을 열고 들어가자, 그 시선이 나를 향했다.
"다, 당신이 병사들이 불러온다던 그 높으신 분입니까?"
깨어나면 바로 보고하라고 해 놨더니.
진짜로 뭐 설명도 없이 바로 나한테 뛰어왔던가 보네.
"아, 뭐. 일단은 그렇습니다."
"아아! 다행입니다. 제 말 좀 들어주십쇼."
내 옷깃을 붙잡고 다급하게 소리치는 남자.
"내 고향... 춘천을 좀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지금 거긴 지옥이나 마찬가-."
"아. 그건 이미 해결됐습니다."
"지, 모든 게 수몰돼서... 어?"
이렇게 얘기하고 보니.
이 남자가 얼마나 오랫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던 건지 조금 체감이 됐다.
"그, 그랬군요."
난 그에게 춘천에서 있었던 일을 설명해 줬다.
그가 쓰러지기 전에 한 구원 요청을 듣고 춘천으로 향했고.
던전은 클리어, 사람들은 세상으로 탈출하게 되었다는 것까지.
내 얘기를 들은 남자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쓰러지기 직전에 뭔가 말을 했던 것 같기도 한데, 확신이 없었습니다. 그래. 착각이 아니었어...."
"안쪽의 상황을 보니, 조금만 늦었으면 식량 부족으로 인간들끼리 전쟁을 벌였을 것 같더군요. 당신 덕에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건진 셈입니다."
"다행이군요. 정말 다행이야. 감사합니다, 정말로."
꽤 감정이 복받치는 것인지.
고개를 꾸벅이며 고마움을 표하는 남자.
그나저나.
"궁금한 게 하나 있습니다만."
"예? 아. 뭐든 물어보시죠. 제 고향을 구해 주신 은인분들이시니. 뭐든지."
"당신은 그 던전, 이라고 해야 하나? 도시에 갇혀 있던 사람이 맞습니까?"
"예에. 그렇습니다만."
예전부터 궁금했던 게 있단 말이지.
"그 던전에서 어떻게 빠져나오신 겁니까?"
던전에서 탈출에 성공한 것은 오직 이 남자뿐.
"도시를 외부와 단절시켰던 그 폭포는 결코 평범한 게 아니었어요. 어지간한 철판도 금세 갈아 버릴 정도의 수압이었으니. 실제로 다른 사람들은 탈출한다는 생각 자체를 안 하고 있었는데. 당신은 어떻게...?"
이 남자가 엄청난 강자라면 또 모를까.
[식재료 감별(강화)]
[최하급 전령 Lv.3]
그런 것도 아니란 말이지.
그 벽에 쏟아지던 폭포를 뚫고 나올 수 있는 건 우리 부대원 중에서도 드물겠지.
나 역시 [절대미각]의 효과로 여러 요리를 중첩시킨 뒤에야 가까스로 가능하지 않을까.
그나마도 그렇게 통과하고 난 뒤에는 중첩된 버프에 대한 부작용으로 며칠은 앓게 되겠지.
"알고 계실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내 질문에, 남자는 조금 주저하며 답했다.
"그 도시에는 괴물이 있었습니다."
"어인들을 말하는 거라면 알고 있습니다. 놈들의 대장도 죽었고, 나머지도 던전이 닫힌 순간 말라 죽어버렸죠."
"아뇨, 어인도 어인입니다만."
"?"
조심스럽게 입을 여는 남자.
"인간과 어인을 구분 없이 잡아먹는 괴물... 식인종이 있었어요."
이 남자가 그 폭포를 뚫고, 우리에게까지 도착할 수 있던 이유.
그건 꽤 의외의 것이었다.
* * *
대충 탄약대대에서의 일을 모두 마친 뒤.
나는 춘천으로 돌아갈 채비를 했다.
"얘도 데려가세요."
"응?"
그러던 중.
나를 찾아온 이상아가 건넨 것은 검은 솜뭉치 같은 생명체.
-끼잉....
[강철을 먹는 맥]
까망이었다.
전투원들이 많이 빠지면서 혹시 몰라 남겨 두고 간 녀석.
"잘은 모르겠지만, 저 밀림 안에 있는 존재가 이 부대를 지켜준다는 거잖아요?"
"그렇지."
"기름이 없어서 장거리 운용을 못 할 뿐이지. 여기는 전차도 있고, 공병들이 설치한 방어시설들도 많아요. 저 숲까지 우릴 지켜 준다고 한다면 방어력은 차고 넘칠걸요. 그쪽은 그렇지 않잖아요?"
전투 계열 각성자는 춘천 쪽에 더 많지만.
그쪽의 방어시설은 임시 거점으로 활용하고 있는 건물 주변에 방벽을 세운 정도가 전부이다.
나름 공병들이 방어시설을 늘려 보려고 하고 있지만 한계가 있었다.
"부대에서 비축 중인 자재 대부분은 이미 강화가 끝나기도 했고."
"그쪽 공병들이 오히려 자재가 급할 상황 아닙니까. 데려가셔도 될 것 같슴다."
까망이의 능력은 자재를 강화하는 것에도 있었기에 데려가도 되나 했지만.
공병들의 말을 들어 보니 괜찮다는 것 같다.
이상아가 다시 한번 말했다.
"자재 강화도 강화지만. 까망이를 데려가라고 하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군단장님의 호위 때문이에요."
"호위라니."
"저번부터 그랬고, 이번 일도 그렇고. 군단장님은 몸을 너무 안 아끼세요. 그러다 언젠가 호되게 당하실걸요."
"설마."
예전이라면 정말 그랬을지도 모르나.
나름 여러 일을 겪다 보니, 이제는 전투 능력으로도 나름 자신이 생긴 편이다.
다른 부대원들과 비교해도 압도적인 수준의 깡스탯.
거기에 [절대미각]의 강화로 인해 요리의 버프가 중첩되기까지 하니까.
하지만 그녀의 생각은 달랐나 보다.
"군단장님도 사람이잖아요? 사람인 이상 언제나 완벽할 수는 없는 법이거든요. 지금 세상은 실수 한 번에 정말 큰일이 날 수도 있는 세상이구요."
"으음."
"사람 일은 혹시 모르는 거잖아요?. 잔말 말고 데려가세요."
기분이 조금 묘했다.
군대 소문이란 게 으레 그렇듯 조금 부풀려지는 게 있다 보니.
내가 한 일들도 꽤 과장돼서 퍼진 게 많았다.
그 덕분인지, 요즘 병사들은 나를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꽤 있었다.
솔직히 조금은 부담스러울 정도로.
그런 와중에 이런 걱정이라.
꽤 오랜만에 받아 보는 걱정에 생경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지 뭐."
"잘 생각하셨어요."
걱정해 주는 사람의 부탁을 거절하기도 뭐하니까.
실제로 춘천 쪽에 자재가 더 필요할 것이란 것도 맞는 말이고.
-낑!
기쁜 소리를 내며 내 품으로 들어오는 까망이.
저쪽에 돌아가면 일단 이 녀석 전용 요리들부터 다시 만들어야겠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지켜보니.
[전투력 측정기]
녀석의 몸 주변에서 피어오르는 기운이 보였다.
짙은 푸른빛.
"...."
아리엘라는 물론.
알라우네보다도 짙은 색이었다.
조금만 더 짙어지면 남색이 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너. 역시 대단한 놈이었구나."
-낑?
지금은 식사를 제한해 작은 고양이처럼 생긴 모습이지만.
이 녀석의 잠재력이 허용하는 최대까지 철물을 먹인다면.
얼마나 강해진다는 것인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그리고.
"여기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철욱이 작은 박스 하나를 건넸다.
이미 필요한 채소류는 모두 그림자 속에 보충해 둔 상태라 뭔가 했는데.
상자를 살짝 열어 보자.
처음 보는 모양의 식물들이 담겨 있었다.
아니.
처음 보는 건 아니구나.
"벌써 재배가 된 건가?"
"재배라고 하기보단, 원래 자생하고 있던 녀석들이죠. 지력이 달려서 죽어가고 있던 걸 군단장님 비료가 살렸잖습니까."
알라우네의 주변에 박혀 있던 정체 모를 식물들.
"재배하는 게 목표인데, 자생하고 있는 걸 뽑아 오면 안 되는 거 아닌가?"
"하하. 저라고 생각 없이 가져왔겠습니까. 이미 씨앗이나 모종 같은 건 전부 얻어 둔 상태입니다. 맘 놓고 쓰셔도 될 겁니다."
"오."
역시 [농부] 각성자.
이런 능력은 대단한데.
"그럼. 이제 가시면 언제 돌아오시게 되는 겁니까?"
"글쎄. 한동안은 그쪽을 안정화하는 데 집중할 것 같은데."
춘천 쪽은 아직 제대로 자리 잡았다고 말하기가 힘든 상황.
제대로 된 기지조차 없어서 빈 건물 하나를 임시 거점으로 쓰는 정도니까.
"여유가 된다면 좀 자주 들러 주셨으면 좋겠군요."
"왜? 여긴 이미 잘 돌아가고 있는 것 같은데."
"그게. 말씀하신 대로 제가 만든 비료도 주고 해 봤습니다만, 영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라서요."
아.
알라우네를 말하는 건가.
"처음엔 기분 탓인 줄 알았는데, 나무들이 한 번씩 머리통을 툭툭 때리고 지나가고 그럽니다. 그 상자에 담긴 녀석들도 가져가려고 하니까 엄청 화를 내더군요.
"하핫."
"군단장님 드리려는 거라고 소리치니까 그제야 좀 진정됩디다."
"고생했겠네."
"처음 봤을 땐 외모만 보고 놀랐는데, 얼마나 화가 많은 녀석인지. 군단장님을 다시 보고 싶어 하는 것 같았습니다. 가끔 얼굴 좀 비쳐서 그놈의 화 좀 죽여 주셨으면...."
"사정이 되면 한 번씩 들르지 뭐."
사실.
여기 좀 더 머무르는 것도 아주 나쁜 선택지는 아니겠지만.
지금은 할 일이 있었다.
병실에서 남자가 했던 말이 다시 떠올랐다.
-그 식인종은 인간하고 괴물을 구분 없이 잡아먹는 녀석이라, 저도 놈과 마주치고 당연히 죽은 목숨이라 생각했습니다만.
-아니었단 건가?
-저를 붙잡고는 도시의 경계로 끌고 가서 말하더군요.
밖으로 나가라.
바깥의 인간들에게 도움을 요청해라.
-그러곤... 자기 팔로 폭포를 가로막은 뒤, 그 사이로 저를 내던졌습니다.
[던전]은 한번 입장하면 클리어하기 전까지는 나갈 수 없다.
그러나 춘천의 시민들은 춘천이 던전화되자 갇혀 있었을 뿐, 외부에서 던전 안으로 입장한 적은 없다.
폭포만 해결한다면 탈출은 가능하다는 것.
그렇게 밖으로 나오게 된 남자는 어떻게든 자신들을 도와줄 만한 사람을 찾다가, 우리에게까지 도착했다는 거다.
-제가 죽을힘을 다해가면서 여기까지 온 건... 춘천이 제 고향이란 것도 있지만, 두려움도 컸기 때문입니다.
-두려움?
-그 괴물이 한 말을 최대한 빠르게 이행하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쫓아와서 저를 잡아먹을까 봐....
도시 안을 돌아다니던 괴물.
녀석은 던전이 클리어되는 순간까지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상식욕자라.'
안 그래도 한번 찾아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놈에게도 묻고 싶은 게 많거든.
119화 이상식욕자 (1)
부대원들과 나는 철로를 이용해 어찌어찌 춘천으로 복귀하는 데 성공했다.
"그렇게 오래 떠나 있던 것도 아닌데, 뭔가 많이 바뀌었네."
"우리가 떠날 때가 너무 개판이었던 거 아니겠습니까."
"그런가?"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짧은 시간 사이 춘천의 풍경은 꽤 많이 바뀌어 있었다.
여전히 곳곳에 괴물이 돌아다니고 있고, 몇몇 건물들은 근처에 다가가는 것도 허용되지 않는 위험지역이다만.
또 어느 지역은 사람들이 모여서 안전지역을 형성한 것 같기도 했다.
대표적인 안전지대가... 우리 부대 근처인데.
부대가 임시 거점으로 삼고 있는 건물에 접근하자.
그 근처의 무너진 상점가에 간판에 웬 글자가 쓰여 있었다.
[각종 쓸 만한 물건 팝니다.]
[전 물품 작동 확인 완료.]
[구매자의 변덕으로 인한 환불 일체 불가.]
"엥?"
그야.
수천 명의 각성자가 풀려난 도시다.
사람들이 모이면 나름의 사회가 만들어지기 마련이고, 그 안에서.
"거래 같은 게 활성화되고 있나 보군요."
"이거 기분 묘하네."
이런 식의 사회가 만들어진 쪽은 저 인제군의 탄약대대 근처가 먼저겠지만.
그쪽의 마을은 뭐랄까, 공동체 생활의 분위기가 강했다.
다 같이 만들고 다 같이 나눠 먹는다는 느낌.
거래 같은 것도 딱히 이뤄지는 것 같지는 않았지.
반면 춘천은 사정이 조금 달랐다.
각성자들은 여러 그룹에 퍼져 있으며, 던전에서의 일로 인해 서먹서먹한 관계가 많다.
애초에 던전 안에서도 필요한 게 있으면 주고받으며 나름의 교류를 하기도 했다고 하니.
거래가 활성화됐다는 거다.
"나쁘진 않겠네."
사실, 웬만한 물품들은 포인트 상점을 통해 구매할 수가 있다.
하지만 그쪽에 있는 물건들은 비싸기만 하고 품질은 영 별로인 경우가 많단 말이지.
각성자들끼리 필요 없는 물건과 필요한 물건을 물물교환한다면 포인트를 아낄 수 있다.
'남는 포인트로 능력치를 올리거나 랜덤 스킬북을 구매하는 등 성장에 투자하는 게 훨씬 이득이니까. ...응?'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점이 눈에 밟혔다.
[캠핑용 대용량 파워뱅크 배터리 (작동확인 완료)]
[가격 : 3전]
무너져 가는 상가 건물의 유리창.
그 안에 있는 물건은 커다란 보조 배터리였다,
캠핑에 가거나 할 때 쓰는 그거.
용케도 저런 물건이 아직 남아 있나 싶어서 신기하기도 했다만.
문제는 그게 아니라, 그 아래 적힌 가격.
"3전?"
전.
원도 아니고, 전이라고?
"무슨 조선시대도 아니고."
저게 무슨 단위인가 싶어 발걸음이 멈춘 순간.
"저 배터리 얼마요."
"적혀 있잖습니까? 3전입니다."
"고작 배터리 하나가 3전이나 한다고?"
마침 누군가가 가게로 들어서며 흥정을 시작했다.
"이미 작동 확인도 끝났고, 용량도 90% 이상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아시잖습니까? 전기는 다 끊겨 버린 거."
"그건 아는데, 그래도 너무한 거 아뇨. 이거 원래는 30만 원도 안 했을 물건인데."
"그게 뭔 상관입니까. 얼마 전에 본 사람은 1억 원짜리 수표를 휴지로 쓰던데."
"끄응."
...3전이란 게 비싼 건가?
"싫으시면 안 사도 됩니다. 제가 강매하는 것도 아니고. 어디서 발전기랑 가솔린이라도 구해서 그걸로 전기 만들어 내시면 되겠네요. 발전기는 소리도 장난 아닌데 괴물이랑 좀비들 끌고 오는 데는 제격이겠습니다."
흥정하던 남자는 잠깐의 고민 끝에 품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 건넸다.
"급하게 전기가 필요한 상황인 걸 다행으로 아쇼. 아니었으면 이딴 가격엔 눈길도 안 줬을 텐데."
"흐흐. 좋은 거래 감사합니다."
인상을 찌푸리면서 물건을 건네는 남자와 헤실거리며 받는 상인.
그 사이에 오간 물건.
그걸 본 나는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저게 왜 저기서 나와.'
내겐 아주아주 익숙한 물건이었다.
그야 익숙할 수밖에 없지.
내가 만든 거니까!
'전투식량이잖아.'
* * *
"아아 그거? 알고 있지만 대충 묵인하고 있다."
내가 만든 요리가 거래에 쓰이고 있다.
어처구니가 없어서 부대에 복귀하자마자 얘기를 꺼냈더니.
민재 형은 꽤 덤덤한 반응이었다.
"묵인이라니. 내 전투식량이 저렇게 재화로 쓰이고 있는데, 그래도 되는 거야?"
"아~ 요리사로서는 좀 그런가?"
"솔직히 조금은."
"그렇게 말해도 말이지. 영준이 넌 가급적 많은 인간들이 살아남는 걸 바라고 있는 것 같다만, 아니냐?"
"그건 그런데."
내가 사람 죽는 걸 보고 못 넘어가는 선인이라든가.
그런 이유는 아니고.
'지금 세상을 침공해 온 괴물을 상대로 싸우기 위해서는 인간이 많을수록 좋으니까.'
게다가 생존자들이 많을수록 우리 부대에 합류할 사람도 늘어나는 셈이다.
내 요리를 먹게 될 고객이 늘어난다는 거지.
"나도 처음엔 좀 놀랐다. 초반에는 그냥 물물거래로 조금씩 오가는 정도였던 것 같은데, 금방 화폐처럼 자리 잡아 버리더군."
"...굶어 죽으려는 사람들 죽지 말라고 뿌린 식량으로 거래를 하는 건 좀 그런데."
"이해는 한다만. 결국 사냥해 온 괴물로 만들어 주는 식량이니까. 전투직이 아닌 사람들 입장에선 어쩔 수 없는 거지."
아.
그 생각을 못 했네.
난 직접 사냥해 온 괴물만을 가공해 전투식량으로 만들어 주고 있었다.
우리야 도시의 괴물 숫자가 차곡차곡 줄어들고 있으니 이득이고.
저들은 식량을 얻을 수 있으니 이득이니까.
하지만 모든 각성자가 전투직은 아닌바.
"전투로는 못 얻으니, 저런 식으로라도 전투식량을 확보하고 싶다는 거겠지. 전투식량의 버프라면 위기의 순간에 목숨을 건질 수도 있고 하니까."
얘기를 듣자 하니.
이 근처에서 거래가 활성화된 것도 그런 비전투직 각성자들의 영향이라고 한다.
'비전투직들은 약탈에 무력하지만... 우리 부대 근처에서 약탈을 벌일 미친놈은 없을 테니까.'
게다가 전투식량이라는 화폐가 발급되는 곳도 바로 여기.
장사를 하기엔 최적의 환경이란 거다.
"그렇게 거래가 이뤄지다가, 아예 내 전투식량이 재화가 돼 버렸다?"
"정확히 말하면 저것도 물물교환인 건 여전하지. 왜, 물물교환 위주였던 조선시대 경제에서도 쌀이 가격의 기준이 됐다고 하잖아? 그런 거다."
어이가 없네.
하긴, 기존의 화폐는 이제 휴지로 쓰기에도 애매할 정도로 가치를 잃었다.
화폐의 가치를 보호하는 국가는 남아 있긴 한가 의심스러운 상황이니까.
반면 전투식량은 먹을 수도 있고, 버프도 제공한다.
가지고 있으면 확실히 이득이라는 부분이 화폐로써의 가치를 유지해 준다는 것.
거기에 식량으로써 꾸준히 소모되면서도 꾸준히 시장에 풀리고 있다는 점까지.
...이 정도면 뭐.
왜 지금 같은 상황이 됐는지 대충 이해는 가네.
다만.
"그렇게 생각하면 좀 빡치는데?"
"뭐가 화난다는 거야? 요리로 장난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그런가?"
"아니. 그런 것보다."
내 요리가 재화가 됐다.
그것 자체도 기분이 좀 묘하긴 하지만, 뭐 큰 문제는 아니란 말이지.
진짜 문제는 여기 오기 직전에 봤던 광경.
"그 배터리가, 내가 직접 만든 전투식량 3개 정도의 가치라고...?"
이걸 반대로 말하면.
내가 만든 요리가.
예전엔 30만 원도 안 하던 보조 배터리의 3분의 1도 안 된다는 뜻이잖아.
솔직히 말해.
자존심 팍 상하는데?
"형. 아예 공급 물량을 확 줄여 버릴까? 그럼 가치가 좀 오를 거 아냐?"
"...미친 생각은 하지 말고."
"큼."
잠깐 자존심이 상해서 이상한 생각을 해 버렸다만.
'후우.'
뭐 어쩌겠냐.
시장이 그렇게 판단했다는 건데.
내 요리의 가치가 낮다는 건 좀 슬프지만.
공급을 줄인다느니 하는 방법은 결국 사도.
내가 요리 실력을 키워서 요리의 가치를 올리는 게 정도겠지.
"그래서 말인데. 아무래도 조만간 제대로 된 거점을 찾아야 할 것 같다."
"음? 여긴 좀 별론가?"
"아까도 말했지만. 비전투직들은 약탈에 취약하다 보니 그나마 안전한 우리 부대 근처에 모여들고 있거든. 이곳이 딱히 환경이 좋지는 않잖아."
애초에 뭘 고려하고 들어온 건물이 아니다.
말 그대로 잠잘 곳이 필요해서 일단 빈 건물에 들어가면서 생긴 임시 거점.
"기껏 우리 주위로 사람들이 몰려들려고 하는데, 쉽게 커질 만한 환경이 아니란 말이지."
"하긴."
"이쪽은 아무래도 방어시설도 미흡하니까,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려면."
"제대로 된 거점을 마련해야 하긴 하겠네."
"몇 가지 후보군도 있다. 저 강 위에 떠 있는 섬들이나, 아니면 지금은 폐허가 된 중앙부라던든가."
확실히 이 부분도 가급적 빠르게 해결해야 할 것 같긴 하다.
하지만 당장은 아니고.
'일단 지금은....'
춘천에 와서 가장 먼저 해결하려고 마음먹은 일은 따로 있다.
내 직업에 대한 의문들.
그걸 해결하기 위한, 이상식욕자의 탐색.
* * *
"탄약대대에서 일은 네가 잘 마무리하신 거 아닙니까."
"거기서 들은 얘기가 있어서."
춘천으로 복귀한 뒤의 첫 부대 회의.
나는 던전을 탈출했던 남자에 대해 설명했다.
그 남자를 던전에서 탈출시켰으리라고 예상되는 존재.
이상식욕자에 대한 이야기도.
"이 녀석을 찾아야 해."
솔직히 말하면 개인적인 용건이다.
내 직업에 대해서 확실히 짚고 넘어가고 싶다는 이유니까.
하지만 뒤로 미뤘다가 그 이상식욕자가 멀리 떠나 버리기라도 한다면 다시는 해결하지 못할 수도 있는 일.
가장 우선적으로 해결하고 싶었다.
"음. 그렇게 말씀하셔도."
"그런 괴물에 대한 목격담은 들은 적이 없는데요."
무려 식인종 괴물.
본래라면 던전이 클리어된 후로 얼마 안 가서 소문이 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 괴물이 활개 치면 소문이 안 날 수 없으니까.
하지만 녀석은 묘하게 조용했다.
부대의 간부들도 짐작 가는 이야기가 없을 정도.
"수아 양이 열심히 정령으로 주변 정보를 수집 중인 거로 아는데. 딱히 얘기는 없었다."
"...정수아의 정령안도 만능은 아니니까."
오랜 시간 사용하기에는 체력 소모가 크기도 하고.
정령의 눈이라곤 하나 결국 눈으로 확인하는 작업.
꽁꽁 숨어 있는 존재까지 찾는 건 쉽지 않다.
'그렇다고 포기하고 싶진 않은데.'
어떻게든 찾아내서 내 궁금증을 해결하고 싶은데....
"...그러고 보니."
머릿속에.
한 가지 방법이 떠올랐다.
"내 전투식량이 화폐처럼 돼 버렸다고 했지?"
"아. 맞슴다."
내 입장에서는 생각보다 가치가 낮아 울분이 터지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그만큼 전투식량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기에 생긴 현상이다.
그리고.
"그 전투식량이라는 화폐를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건...."
"어. 우리 아닙니까?"
그걸 찍어 내는 게 우리니까.
무려 완성된 전투식량 중 8할이 우리 부대 창고에 쌓이고 있다.
이제는 너무 넘쳐 나서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알고 싶은 정보가 있는데 짐작 가는 게 없는 상황.
이럴 때 가장 효과 좋은 방법이 하나 있지.
씨익.
"집단 지성을 이용하자고."
"...?"
* * *
춘천의 중심부.
군인들이 자리 잡은 거점을 중심으로, 각성자들의 상권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군인들이 근처의 몬스터를 주기적으로 정리해 주는 만큼 몬스터에게서도 안전하다.
그들의 거점 근처에서 분쟁을 벌일 정도로 간 큰 이도 없을 터.
거래 도중의 무력행사나 약탈에서도 안전.
"어디 보자. 오늘 순이익은 5전인가."
그런 환경이기에.
이상협 역시 이곳에 자리 잡고 장사를 시작했다.
"...씁. 적네."
하지만 장사는 영 시원치 않았다.
장사라고 해봐야 판매 물품에는 한계가 있으니까.
지금 그의 주 판매 목록은 과거 도시 안에 갇혀 있을 때 주운 물건들이 대부분.
그 외에는 최근에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주운 물건들이 전부다.
"장사가 잘될 리가 있나."
이상협 역시 맘 같아선 장사 따위 때려치우고 싶었다.
다른 이들처럼 괴물을 직접 사냥해 전투식량으로 가공하면 얼마나 편할까 싶다만.
[이상협]
[신입 상인 Lv. 6]
"후우."
그의 직업은 상인.
전투에는 영 소질이 없다는 게 문제였다.
'기껏 어인을 사냥하고 각성했는데 나온 게 이딴 직업이었을 땐... 정말 죽고 싶었지.'
힘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사회.
그가 가진 특성이나 스킬이라 봐야.
[신뢰도 향상]
[화법 숙련]
[정보 습득 숙련]
거래에서 더 신뢰를 준다거나.
정보 습득 행동에 보너스가 있다거나.
말 그대로 상인으로서만 쓸 만한 것들이 전부.
"어디서 강도당해 죽기에는 딱인 스킬셋이군. 제기랄."
사실.
그나마 순수익이 5전이나 난 것은 이 특성과 스킬들의 덕분이긴 하다.
'전투식량의 가치는 엄청나니까.'
멸망한 세상에서 구하기 힘든 식량으로써의 가치.
먹는 순간 엄청난 버프를 제공하는 아이템으로써의 가치.
그 두 가지만 감안해도 엄청난 가치를 지닌 물건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전투식량의 가치가 오르는 데에는, 마지막 세 번째 이유가 가장 컸다.
'기호품.'
그 맛 자체가....
너무 뛰어나다는 것.
이상협은 초창기에 담배를 팔려고 했던 적이 있었다.
담배가 있을 만한 마트나 편의점 등은 보통 1층.
던전 안에서 모조리 수몰되었던바.
담배의 희소가치는 매우 높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폐암으로 죽기 직전까지 담배를 찾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대표적인 기호품 아니던가.
이런 상황이니만큼.
한 보루의 담배라면 적어도 일주일 치 전투식량과 거래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으나.
"...결국 1전에 팔리고 끝났지."
이것도 그의 거래 스킬이 있었기에 가능한 수준.
상협은 경악을 금치 못했더랬다.
사람들이 담배 맛을 못 느끼게 됐다거나....
담배가 맛이 없다거나.
그런 건 아니었다.
정말 단순한 이유.
"담배보다... 전투식량이 더 맛있으니까."
기호품으로써의 가치.
그 맞대결에서, 담배가 처참하게 패배해 버리고 만 것.
"나 같아도 안 사지."
아무리 담배가 맛있다고 한들.
전투식량 쪽이 더 맛있는데 어떤 미친놈이 그걸 전투식량 주고 사겠는가.
시장에 꾸준히 유통되고 있는 데다가 어느 정도 가치가 보호된다는 장점 등.
여러 이유가 붙어 재화처럼 쓰이곤 있지만.
1전의 가치는 매우, 매우 높았다.
실제로 대부분의 거래는 소수점 단위로 이루어질 정도.
'오늘 낮에 판 배터리만 해도 정상적인 가치를 생각하면 1전 정도가 정상... 아니, 그 아래였겠지.'
상대는 눈치채지 못했겠지만.
그의 상인으로서의 특성과 스킬이 발동한 덕에 터무니없는 바가지를 씌울 수 있었던 거다.
"지금은 그래도 팔 만한 물건들이 있으니, 이 능력으로 어떻게든 바가지 씌워 가며 먹고 살 수 있어. 하지만...."
그 물건도 얼마 남지 않았다.
상인으로서의 능력을 살리려고 해도, 팔 물건이 없으면 말짱 도루묵.
판매하기 위한 물건을 구하려면, 조만간.
'저 밖으로 나가야 하겠지.'
군인들에게 보호받는 안전한 영역을 떠나.
속내를 알 수 없는 다른 각성자들.
그리고 괴물들이 넘쳐 나는 그곳으로 가야만 한다.
"후우...."
그 생각을 할 때면 한숨이 새어 나오는 걸 참기 어려웠다.
그런데.
평소처럼 장사를 시작하려는 차.
길거리에 붙여진 종이 한 장이 눈에 띄었다.
"이건?"
벽에 붙어 있는 종이.
평범한 A4용지에 대충 휘갈겨 쓴 손글씨.
조금 익숙한 형식이었다.
"이 귀찮아서 대충 휘갈긴 느낌이 넘쳐 나는 완성도는... 군인들이 만든 거군."
예전에 본 적이 있었다.
괴물을 잡아 오면 식량을 주겠다던 내용을 적었던 종이도 대충 이런 느낌이었지.
[강철 군단에서 알림]
[수몰된 도시 내부를 돌아다니던 식인종에 대한 정보를 구합니다.]
그런데.
적혀 있는 문구가 조금 달랐다.
"식인종 괴물? 그 녀석이 뭔가 저지른 건가?"
도시 안쪽을 돌아다니던 식인종.
녀석을 모르는 각성자는 적어도 춘천에는 없었다.
인간들 간의 전쟁이 일어났을 때.
수많은 약탈자들을 처형하는 그 모습을, 모두가 똑똑히 봤으니까.
하지만 그것뿐.
"최근에는 솔직히 존재 자체를 잊고 살았는데."
한동안은 직접 본 적도 없다 보니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려 했으나.
종이의 마지막 줄.
그곳에 적힌 내용을 보자, 발걸음이 멈출 수밖에 없었다.
[정보 제공자에게는 진위 여부 확인 후, 전투식량 300개.]
[혹은 그에 상응하는 대가 지급을 약속드립니다.]
[상세한 내용은 군단 임시 거점에 문의 바랍니다.]
[약도 첨부]
"...사, 사. 사, 사... 삼... 삼ㅂ...."
삼백 개!?
상협은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사실.
군단에 괴물을 가져갔을 때 받을 수 있는 전투식량은 그렇게 많지 않다.
무려 수수료가 8할이나 되니까.
하지만 의외로 큰 불만은 없었다.
'애초에 괴물의 사체를 먹을 수 있게 가공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니까.'
군인들도 아무런 대가 없이 그런 짓을 하는 게 불가능할 터.
'많은 노력과 재료가 들어갈 테고... 맛도 효과도 뛰어나니까. 저 정도 수수료는 합당하다고 납득하는 추세.'
그런 점도 전투식량의 가치가 높게 책정된 데에 한몫했다고 볼 수 있겠지.
그런데.
그 전투식량을 30개도 아니고.
300개라니?
"완성된 파티 하나가 목숨을 건 전투를 수십 번을 반복해야 얻을 수 있을까 말까 한 양을... 고작 정보 한 번에 주겠다고?"
그 식인종 녀석.
대체 뭔 짓을 저지른 거야?
'...만약. 저 보상을 받을 수만 있다면.'
상협의 얼굴이 잠깐 흥분으로 달아올랐으나.
"아니. 흥분해서 뭐하냐."
금세 짜게 식었다.
애초에 그 정보가 맞을 때만 진위 확인 후에 지급된다고 적혀 있는 보상.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은 입장에서는 그림의 떡 같은 이야기라는 거다.
"...잠깐?"
그 순간.
이상협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기억이 하나 있었다.
"...이거. 혹시 그건가? 아니. 으음. 아니라면 쪽박 차는 건데."
상협이 상인으로서 가지고 있는 특성.
[정보 습득 숙련].
이 특성 덕에, 상협은 은근히 도시 내의 잡다한 정보를 잘 알고 있었다.
그중에 짐작 가는 부분이 하나 있었으나.
문제는 그게 식인종 괴물의 정보라는 확신이 없다는 것.
'만약 이게 틀린 정보라면, 눈치를 봐야 하는 군인들한테서 미움을 사고 끝나겠지.'
그렇게 되면 최악이다.
하지만.
'아니지. 군인들에게 미움을 받거나 말거나. 어차피 이대로 가다간 물건이 다 소진된 뒤에 목숨 걸고 밖으로 나가야 할 상황인데? 그렇게 죽으나, 군인들한테 미움받으나 뭔 상관이야.'
하지만.
만약 그게 옳은 정보라고 한다면.
전투식량 300개가 중요한 게 아니다.
"전투식량 300개에 상응하는 대가.... 그렇다면."
꿀꺽.
"저 군인들과 거래를 틀 수 있을지도 몰라."
이 일대에서 가장 강력한 세력.
그들과 선을 만들 수 있다면.
상인인 그는 엄청난 성장을 이룰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무조건 성장할 수 있다.'
이것저것 따질 때가 아니다.
"까짓거. 도박 한번 해 보지 뭐!"
상협은 장사 준비를 때려치운 뒤.
군인들이 자리잡은 건물을 향해 몸을 옮겼다.
120화 이상식욕자 (2)
"어때?"
"맞는 것 같아요."
정수아의 눈이 푸른 빛을 번쩍이며 빛난다.
정보를 찾고 있다는 종이를 도시에 뿌리고 난 뒤.
얼마 되지 않아 꽤 많은 제보가 들어왔다.
물론, 99%는 쓸모없는 제보였다.
그냥 틀리기만 한 정보면 그나마 다행이지.
보상에 눈이 멀어 있지도 않은 얘기를 꾸며 가며 제보한 이들이 대다수.
'그 사람들은 따로 리스트를 작성했으니... 장기적으론 다행인가?'
시간이 지나다 보면, 우리 길드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때는 적절한 보상과 함께 다른 이들에게 맡기는 경우도 생길 테지만.
신뢰할 수 없는 이들은 제외될 것이다.
비교적 빠르게 그런 이들을 찾을 수 있으니 다행이라면 다행.
그렇게 쓸모없는 제보들 사이에서 고생하는 사이.
드디어 정답자가 나타난 것이다.
"이상협...이라고 했나? 바로 보상 지불해 줘."
"예. 그런데 그게."
"음?"
바로 전투식량을 지불하면 끝나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자기 정보가 맞다고 판명이 날 경우. 일부는 전투식량으로, 일부는 다른 방식으로 받을 수 있겠냐고 묻더군요."
"...그래?"
"예. 아무래도 우리와 정기적인 거래 같은 걸 하고 싶어 하는 모양새라."
거래라.
생각해 보니, 각성자들 사이의 거래는 활성화되었지만.
우리는 거기에 끼고 있지 않은 상태였다.
'우리한테는 쓸모없을 정도로 넘치는 물건들 중에 남들한테 필요한 것도 있을 거고... 그 반대의 경우도 많겠지.'
대표적인 게 전투식량이겠지.
이 정보를 알려 준 공도 있고.
또 옳은 정보를 가져왔다는 점에서 다소는 신뢰할 수 있다.
게다가.
'그냥 식량을 받고 끝내는 게 아니라 장기적인 이익을 노린다라.'
잘만 이용한다면 꽤 쓸 만한 인간일지도 모르지.
"긍정적으로 검토해 보겠다고 전해."
좀 더 얘기를 해 보긴 해야겠지만.
서로 윈윈할 수 있는 거래가 된다고 하면 마다할 이유는 없으니까.
그나저나.
"묘하게 조용하다 싶더니. 꽁꽁 숨어 있었을 줄이야."
난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일으켰다.
"정보가 사실인 게 확인됐으니, 바로 간다."
"아, 예! 부대원들 대기 시키겠습니다."
"아니. 나 혼자 간다."
"뭐?"
내 말에 민재 형이 고개를 돌렸다.
"혼자 간다니.... 굳이 위험을 자초하려는 거냐?"
"그다지 안 위험해. 알잖아?"
툭툭.
발아래의 그림자.
그리고.
-끼잉.
내 군복 가슴팍에서 놀고 있는 까망이.
환경에 따라서, 그림자 안쪽의 병력들은 아예 쓸모가 없을 때도 있다.
단적으로 말해, 햇빛이 들어오는 곳에서는 그냥 못 써먹는다고 봐야 한다.
하지만 그게 지금은 아니거든.
그도 그럴 게.
이상식욕자 녀석이 숨어 있다는 곳은 다름 아닌.
"하수도라. 좀 더러워지겠네."
이 도시의 지하였으니까.
* * *
철벅....
어두운 공간.
군홧발을 옮기자 물 튀기는 소리가 작게 울려 퍼진다.
나는 도시의 지하 수로에 진입했다.
퀴퀴한 물 썩는 냄새가 주변 전체에 퍼져 있었다.
남들은 바로 코를 막을 정도로 끔찍한 냄새였지만.
"짬 냄새에 비하면 뭐."
음식물 쓰레기 냄새를 맡는 게 일상인 직군이다 보니.
이 정도는 그럭저럭 버틸 만하단 말이지.
"의외로 좁지는 않네."
수로에도 종류가 있는 법이니까.
내가 지금 찾아가는 곳은 저 이상식욕자가 숨어 있는 장소.
전에 만났던 다른 이상식욕자 놈은 덩치가 어마어마했다.
놈과 비슷한 체격이라고 생각하면 평범한 지하수도는 통과하지도 못할 터.
어느 정도 넓이가 있는 것도 당연하다 싶었다.
딸칵.
부대에서 가져온 플래시를 켬 뒤, 조심스럽게 전진했다.
요리를 먹을까 싶기도 했지만 그건 혹시 모르니까 아껴 두기로 했다.
그렇게 어두운 수로를 한참을 나아가던 중.
-...키익!
플래시의 빛조차 닿지 않는 저 멀리.
작은 소리가 들려왔다.
빛도 닿지 않는 거리.
본래라면 그곳을 보는 건 불가능하겠지만.
[전투력 측정기]
지금의 내게는 그 모습이 조금 보였다.
정확히 말하면, 저 괴물이 내뿜는 마력이 보인다고 하는 게 맞겠지만.
-어떻게. 아이들을 내보내면 될까요?
"아니."
조금 더 다가가자.
괴물 녀석의 모습이 좀 더 자세하게 보였다.
[래시안]
[어둡고 습한 공간에서 주로 서식하는 괴물입니다.]
[무리 지어 생활하는 습성을 지니고 있어 사냥이 힘든 데다가, 위생적으로도 썩 훌륭한 편은 아니기에 선호되는 식재료는 아닙니다.]
흙먼지를 뒤집어쓴, 쥐를 닮은 거대 생명체.
녀석의 몸 주위에서 피어오르는 것은... 붉은색 기운.
즉.
서걱-
-카악...!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별거 없는 놈이야."
단칼에 녀석을 베어 낸 뒤.
나는 조심스럽게 주변을 살폈다.
시스템의 설명에 의하면 무리를 지어서 생활한다는 녀석.
그렇다면 이 근처에 놈의 무리가 있을 터.
놈들의 습격을 예상해 주변을 면밀히 살폈으나.
"...조용하네?"
뭐지.
이 녀석은 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놈인 건가?
조금 의아하긴 했다만.
굳이 신경 쓸 일도 아니라 생각한 나는 조금 더 안쪽으로 진입했다.
얼마를 더 전진했을까.
저 앞에 보이는 붉은 기운의 무리가 보였다.
앞서 만난 괴물 녀석의 무리라고 생각했으나.
뭐라고 해야 하나.
딱, 절반의 정답이었다.
[래시안의 앞다리]
-사체뿐이네요.
래시안의 무리라면 무리는 맞다만.
살아있는 녀석이 한 마리도 없다는 게 문제.
"...맛있게도 드셨구만?"
바닥에 흩어져 있는 괴물의 사체 잔해들.
그 모두 대부분에 커다란 이빨 같은 것에 찢겨 나간 흔적이 남아 있었다.
대충 이미지는 그려진다.
이 몬스터를 가차 없이 물어뜯고, 집어삼킨 뒤.
대충 찌꺼기들만 남긴 채 떠나간 녀석이 있다는 것.
즉.
씨익.
"잘 찾아왔다는 거지."
확신을 얻은 나는 발걸음을 빨리했다.
수로의 끝까지 나아가자.
"...?"
그 끝에 있는 것은 뭐랄까.
거대한 공동이었다.
플래시로 주변을 비추어 본 결과.
눈이 조금 커질 수밖에 없었다.
"대단하네."
살면서 이렇게 넓은 공간을 본 적이 있나 싶을 정도로 거대한 공동.
그 안에, 거대한 기둥이 일정한 간격으로 세워져 있다.
그 기둥의 높이만 해도 5미터는 될 것 같았다.
'도시 지하에 이런 시설이 있다니?'
이거 뭐야, 그런 건가?
정부가 비밀리에 만든 비밀 벙커 그런 거야?
자고로 일단 큰 것은 남자의 마음을 울리는바.
조금 흥분해서 각종 상상을 해 보았으나.
벽면에 플래시를 비추자,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춘천시 대심도 빗물 저장소]
"아."
벽면에 커다랗게 적혀 있는 문구.
빗물 저장소.
비밀 벙커 따위와는 거리가 먼 시설이란 거다.
자연재해에 대응 방안을 마련하는 것은 모든 대도시들의 중요 과제 중 하나.
그 과제의 결과물 중 한 곳이 여기란 거다.
"폭우에 대비해 만든 물탱크 같은 건가."
수로의 터널을 나온 나는 조심스럽게 계단을 타고 공동으로 내려갔다.
물기가 많아 상당히 미끄러웠다.
그러고 보니.
춘천의 각성자들의 말로는.
던전화가 시작됐을 때 물이 차오르는 속도가 생각보다 느렸다고 했다.
덕분에 식량을 어느 정도 챙기고 높은 건물로 피난 갈 수 있었다던가.
'멸망 초창기에는 전기도 아직 살아 있었으니, 이런 시설들이 정상적으로 작동한 덕분에 가능했던 거겠지.'
공동 바닥은 저 수로에서 본 것과 비슷한 상태였다.
사방에 퍼져 있는 다양한 색의 기운.
"화려하게도 드셨구만."
온갖 괴물들의 파편이 주변에 널브러져 있었다.
던전이 닫힌 뒤.
도시 곳곳에는 원래 그곳에 있었다는 듯 괴물들이 나타났다.
그 괴물들이 장소를 가려 나타난 건 아니라는 듯.
저 수로나 이 공동에도 꽤 많은 괴물이 나타났었던 모양.
'지금은 죄다 한 끼 식사로 전락해 버린 것 같지만.'
아무튼.
여기 이렇게 괴물들의 사체가 널브러져 있다는 건 즉.
이놈들을 신나게 잡순 놈이 저 안에 있다는 뜻이지.
그런 생각으로 공동 깊은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던 중.
-조심하세요.
"?"
그림자 속에서 들려오는 경고.
그리고.
-그르륵....
저 안쪽에서.
짐승의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
조금 이해하기 힘들었다.
'소리도 그렇고. 아리엘라의 경고도 그렇고... 저기 있는 건 분명한데.'
문제는.
"왜 안 보이는 거지?"
내가 가진 특성.
[전투력 측정기]
이 특성은 단순히 적의 강약을 구분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적의 피어오르는 마력을 시각으로 볼 수 있게 해 주는 능력.
즉.
아무리 어두운 공간이라도 마력을 봄으로써 적의 위치를 알아낼 수 있다는 것.
굳이 [어둠 시야] 같은 특성을 제공하는 음식을 먹지 않은 것도 그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는 어떤 마력의 기운도 보이지 않았다.
대체 원인이 뭔가 싶었으나.
특성의 설명을 읽고 나니 이해가 갔다.
[전투력 측정기]
[이종족의 전투 능력을 그 마력량을 통해 측정합니다.]
이종족의 전투 능력을 측정하는 특성.
즉.
'이거. 동족한테는 안 통한단 건가.'
생각해 보면 다른 부대원들을 상대로도 발동한 적 없었지.
그렇다는 건....
'저 녀석은 일단 인간으로 분류된다는 건가.'
이상식욕자라고 한들.
시스템은 녀석을 '인간'으로 분류하고 있다는 거다.
'지난번에 처치했던 이상식욕자 녀석은. 그렇지 않았을 텐데?'
약탈자 그룹의 리더로 활동하고 있던 녀석.
그 녀석은, 시스템이 확실하게 '인간이 아닌 존재'로 구분했었다.
아니, 그 녀석을 제외하고 보더라도.
인간이 죽어서 영락한 모습인 좀비들조차 붉은 기운이 맴돌았는데.
기준을 모르겠네.
어찌됐든.
눈앞에 있는 저 녀석이 내가 찾던 목표인 것은 틀림없는바.
한 발자국 녀석에게 다가가자.
-머, 멈춰라.
안쪽에서 거칠고 어눌한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난 놀란 감정을 숨기지 않으며 그곳을 바라보았다.
"진짜로 이성이 남아있는 거냐?"
던전을 탈출한 남자.
그는 저 이상식욕자가 자신을 던전에서 탈출시켜주었다고 말했다.
그 얘기를 들었을 때만 해도 믿지 않았었다.
그도 그럴 게.
이상식욕자.
처음 만나 보는 존재는 아니니까.
'지난번에 만났던 놈은 약탈자들의 리더 역할을 하고 있었지.'
하지만.
리더라고 한들 어떤 지혜나 리더십으로 약탈자들을 이끌던 건 아니었다.
놈이 약탈자 그룹의 위에 군림할 수 있었던 이유는....
'오직 힘.'
그 하나뿐이었으니까.
힘만 괴물같이 강할 뿐.
말하는 것도, 실제 지능도 기껏해야 유치원생 수준....
아니, 짐승에 가까운 괴물이었다.
'인간과 괴물을 잡아먹을수록 힘을 얻고. 그 대가로 이성을 잃어가는 것처럼 보였다던가.'
그 약탈자 그룹의 토벌도 이제 꽤 예전 일.
눈앞의 녀석은 그 약탈자 그룹의 리더보다 더 많은 괴물을 집어삼키면 삼켰지.
덜 먹지는 않았을 테지.
그럼에도 아직까지 정신이 남아 있다니.
대강 짐작 가는 이유는 하나뿐이다.
"...정신력이 상당히 강한 놈인가 본데."
본체인 인간.
그 정신력의 차이.
저 녀석이 어떤 인간이었는지.
나는 창수에게 대충 들은 정도밖에 알지 못한다만.
아직까지 이성이 남아 있는 것을 보면.
상당히 강한 정신을 가진 놈이었을 확률이 높겠지.
-꺼, 꺼져라....
그 녀석이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지, 지금은 배고프지 않다. 그러니. 보내줄 수 있어.
"...."
-어서... 돌아가라....
꺼지라느니.
돌아가라느니.
아무래도 내가 그다지 달갑지는 않은가 본데.
난 내게 말을 거는 녀석을 보며 다른 생각을 했다.
'이 녀석. 잘하면 대화도 성립하겠는데?'
철퍽....
놈이 나를 꺼리거나 말거나.
나는 한 발자국 더 앞으로 발을 내디디며 녀석에게 말을 걸었다.
"묻고 싶은 게 몇 가지 있다."
-...죽고 싶지 않다면. 꺼져라...!
"네가 던전 밖으로 사람을 탈출시켰다고 들었다. 내 의문에만 제대로 대답해 준다면 군말 없이 떠나도록 하지."
내 직업 '요리사'.
그 요리사의 대적자라고 하는 '이상식욕자'.
놈과 대화할 수만 있다면.
내 직업에 대한 확실한 정의를 내릴 수 있을 터.
그런 생각으로 발걸음을 옮겼으나.
-아아... 그래서 말했는데.
그르륵....
어눌한 목소리에 짐승의 소리가 섞여든다.
-지금은 배고프지 않았는데.... 참을 수 있었는데....
"...."
-제발. 돌아가라.... 더는. 인간을 해치고 싶지 않아....
뭐라고 해야 하나.
대단한 놈이다.
'이상식욕자는... 괴물이나 인간을 먹을수록 이성을 잃어간다.'
이 녀석의 정신력이 얼마나 강하다고 한들.
그 정신 대부분은 이미 마모된 상태겠지.
그런 상태임에도.
나를 공격하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저렇게 버티고.
돌아가라는 말을 건네고 있다는 것.
내가 저 꼴이 되어 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지만.
조금은 경외감을 가져도 될 것 같다.
하지만.
'나를 먹고 싶지 않으니... 돌아가라?'
그거.
쓸데없는 배려란 말이지.
난 가볍게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누가 먹혀 주긴 한대?"
-...네가 자초한 일이다.
철퍽.
안쪽에 있던 거대한 형체.
스스로를 억압하고 있던 괴물이 몸을 일으키는 것이 느껴진다.
여러모로 묻고 싶은 것이 많다만.
아무래도 당장은 제대로 된 대답을 듣기는 힘들 것 같기도 하니.
"조금 진정시켜 줘야겠네."
바닥에 내려둔 플래시.
그 빛을 받아 그림자가 길게 늘어진다.
툭툭.
그림자 위로 가볍게 발을 두드리자.
길게 늘어진 검은 얼룩 속에서.
수십 명의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주인님의 주인님에게."
"충성을."
당장은 얘기하기 힘들 것 같아 보이긴 한다만....
뭐, 걱정은 없다.
"예로부터 몽둥이가 약이랬거든."
조금 맞다 보면 말할 만한 상태가 되지 않겠어?
* * *
이상식욕자에 대해.
철욱이 했던 말이 기억난다.
-괴물이고 인간이고 가리지 않고 잡아먹었던 사례가 있었소.... 결과는 그다지 좋지 못했지.
던전의 공략이 끝나고 난 뒤.
난 그 일에 대해 조금 더 물어봤었다.
-얼마나 괴물을 증오했던 건지, 그룹에서 건네는 식량도 거절하면서 괴물의 고기를 씹어 먹기 시작하더군.
-허어.
-그걸로 그쳤으면 다행이지만, 괴물의 고기를 씹어 먹기 시작하면서 그 모습이 점점 이상하게 변해 갔소. 조금 겉도는 면이 있긴 해도 원만한 성격이었던 사람이었는데... 조금씩 신경질적으로 변하더군. 그 변화가 외형에서도 일어나기 시작할 때쯤, 스스로 우리 그룹을 떠났소.
그렇게 모습을 감춘 뒤.
이 이상식욕자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은 꽤 시간이 지난 후.
식량 문제를 두고.
인간들 간의 전쟁이 벌어졌을 때였다.
-식량 비축에 실패한 이들이 다른 이들을 공격하며... 전쟁이 시작됐지.
대규모의 약탈자가 발생한 셈이다.
하지만 말이 약탈자지.
지키려는 자와, 빼앗으려는 자.
그 규모는 비등하거나, 오히려 약탈자 측이 조금 앞섰다고 했다.
하지만.
그 전쟁에서 패배한 것은 약탈자 측이었다.
지키려는 쪽이 기가 막힌 전략을 사용했다거나.
그런 이유는 아니었다.
-완전히 괴물이 되어 버려서 돌아왔더군.
그 얘기를 하던 창수의 눈빛에서는....
숨길 수 없는 공포가 새어 나왔다.
-그자가 약탈자들을 처리할 때의 모습이란. 다시 생각해도 끔찍할 정도였어.
홀연히 나타나.
약탈자 측에 선 인간들을 사냥하기 시작한 녀석.
그로 인해, 던전에서의 전투는 약탈자들의 패배로 끝났다.
아무리 저레벨이라고 하나.
수백 명의 인간들을 상대로 압도적인 학살을 펼친 괴물이라는 것.
-...조심하시오. 만약 놈이 아직까지 살아 있다면.
그때보다 더 많은 시간이 지나고, 더 많은 괴물을 집어삼켰을 지금.
-당신들이라도 상대할 수 없는 수준의 괴물이 되어 있을지도 모르니.
확실히 그 말대로.
"위압감은 엄청나구만."
—————!!!
"크악!"
쿵!
괴성을 내지르는 '이상식욕자'.
녀석이 휘두른 손에 그림자 속에서 튀어나온 뱀파이어 한 놈이 튕겨 나간다.
"혀, 형제여!"
"...."
벽에 처박힌 뱀파이어는 정신을 잃은 듯.
그대로 기절해 버렸다.
이전에 만났던 이상식욕자 녀석도 강하긴 했다.
부대원들이 단체로 덤벼들었는데도 버텨 내고, 오히려 우세를 점할 정도였지.
하지만.
지금 저 녀석은, 확실히 그 이상이었다.
[식재료 감별(강화)]
[이현진]
[영장류 인간종 - 이상식욕자]
그 모습은, 이전에 처리했던 녀석과는 꽤 달랐다.
약탈자들의 리더 역할을 하던 녀석이 그저 부풀어 오른 살덩이에 불과했다면.
이쪽은 인간의 흔적조차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뭐야 저건. 비늘인가?"
가장 대표적인 것이, 피부를 뒤덮은 비늘들.
생선의 비늘같이 생긴 그것들이 피부를 덮고 있다.
나름대로 뱀파이어들이 공격을 가하고 있으나.
저 비늘이 대부분의 충격을 흡수하고 있었다.
생선의 비늘 같은 모습.
짐작 가는 게 없지는 않았다.
"저 비늘. 그 비린내 나던 어인들의 비늘하고 똑같네요."
"음."
약탈자들의 리더 역할을 하던 녀석.
그놈은 인간을 잡아먹으면서 몸을 불렸다던가.
하지만 이쪽은 괴물을 위주로 잡아먹었다는 것 같으니.
'그 괴물들의 영향력이 몸에 나타났다는 거겠지.'
비늘이 전부가 아니다.
긴 발톱.
머리에는 커다란 뿔 같은 것도 나 있었다.
온갖 괴물들의 기괴한 융합체 같은 모습.
평범한 살덩이와 비교하면 더 까다로울 수밖에.
하지만.
이쪽 전력도 달리지는 않았다.
"가자, 형제들이여!"
"주인님의 주인님의 명을 따라라!"
지금 녀석을 상대하고 있는 것은.
그림자 속에 숨겨 놓았던 뱀파이어들.
약탈자, 범죄자....
인간들 중에서도 쓰레기라 부를 만한 녀석들.
놈들을 아리엘라의 능력으로 재활용한 결과물이다.
하지만.
재활용이라 해서 성능도 별로란 법은 없잖아?
"큭...."
"형제여!"
이상식욕자 녀석의 커다란 손이 뱀파이어 한 마리를 붙잡았다.
-맛있겠다....
붙잡힌 뱀파이어 녀석은 그대로 이상식욕자의 한입 먹잇감이 되는가 했으나.
"비상 탈출!!! 끼요오오옷!"
[안개화]
-그륵...?
이상식욕자의 손에 붙잡힌 뱀파이어의 몸이 붉은 안개로 변한다.
[안개화]
쿨타임이 길다는 게 문제지만.
물리적으로 타격할 수 없는 안개로 변해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는 특성.
'개사기 특성이지.'
신성력 같은 공격 수단이 없는 한.
한 번의 여유 목숨을 가지는 것이나 다름없다.
햇빛에 취약하다는 약점.
몬스터라는 점 때문에 부대원들에게 보이기 애매하다는 점 등.
대놓고 쓰기에는 여러모로 제약이 많은 전력이었다만.
"후후. 어둠 속은 귀족의 전장."
여러 페널티가 있는 만큼.
뱀파이어들은 평범한 각성자들 보다 강력했다.
"하찮은 돼지 따위가. 밤의 귀족을 상대로 이길 수 있을 것 같더냐?"
부하들이 활약하자.
아리엘라가 의기양양하게 중얼거린다.
'신났네 그냥.'
조금 오그라들었지만,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기로 했다.
실제로 그만한 활약을 보이고 있었으니까.
'아무런 장비도 없던 시절에, 우리 병사들과 비슷한 수준으로 강했던 종족.'
부대의 제식 장비들까지 챙겨 입은 것은 물론.
내 선지 요리까지 먹은 지금.
이 뱀파이어들의 능력은.
우리 부대원들의 평균을 아득히 앞서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쿵!
-고오오오오오-!
-짜증 나는구나...!
전투로 인해 부서져 나가는 각종 철과 파편들.
[강철을 먹는 맥]의 먹잇감들이다.
온갖 파편들을 집어삼키며 급격하게 덩치를 키운 까망이.
어느 새 늑대같은 모습으로 변한 녀석이 이상식욕자의 얼굴을 강타했다.
조금만 성격이 더러웠다면 우리 부대를 진작에 전멸시켰을 몬스터.
-크륵...!
아무리 대단한 '이상식욕자'라고 한들.
피해가 없을 수는 없었다.
-이, 이제야 알겠다.
이 정도만 해도 엄청난 전력.
놈도 내 전력을 눈치챈 듯 으르렁거렸다.
-...너. 날 죽이러 온 거였구나.
하지만.
"이걸로는 좀 모자라지."
아리엘라도.
까망이도.
전성기에 비하면 많이 약해진 상태다.
그나마 [안개화]의 상성이 좋아서 이 정도로 몰아붙일 수 있는 거지.
계속 싸운다면 이쪽이 이기리란 보장은 없다.
그러니.
'마지막 전력이 가세할 필요가 있겠지.'
[요리사의 대적 중 하나, 이상식욕자를 마주하였습니다.]
[직업 퀘스트 - 대적자 척살이 재활성화됩니다.]
[대적자를 주살하십시오.]
[안개화] 따위는 비교도 안 되는.
압도적인 상성.
[대적자를 상대하는 데 한해, 모든 행위에 보너스가 부여됩니다.]
요리사 나서신다.
* * *
도시 지하의 공동에 커다란 소리가 울려 퍼진다.
땅이 흔들리고, 거대한 기둥 몇 개가 부서져 나가는 격렬한 전투.
그리고.
오랜 시간에 걸친 격전 끝에.
-배, 배고파....
쿠웅....
무릎 꿇은 쪽은 저쪽.
놈의 거체가 힘없이 바닥으로 쓰러졌다.
121화 이상식욕자 (3)
춘천시에는 한 경찰관이 있었다.
그 경찰관이 어렸을 적.
집에 강도가 든 적이 있었다.
자칫하면 평생의 트라우마로 남을 수도 있는 일이었으나.
쿵!
문을 부수며 진입한 경찰들.
빠른 대응 덕에, 가족들은 무사할 수 있었다.
얼마나 멋있던지.
그 모습을 보고 꿈을 키운 아이가 경찰관이 되었다.
[봉사와 질서.]
남들이 뭐라 할지언정.
악인을 벌하고 시민을 구한다는 의지 하나로 똘똘 뭉친 신임 경찰관의 탄생이었다.
시간이 흐르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지만.
신임 경찰관은 필요하다면 순직할 각오까지 되어있었다.
자신의 손에 닿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전력을 다해 해결해 보이겠노라.
그렇게 다짐했던 경찰관이었으나.
아쉽게도.
직후에 일어난 일은, 경찰관의 손에 닿는 일이 아니었다.
물에 잠겨 가는 도시.
바깥세상과의 연락 두절.
괴물의 출현.
많은 사람들이 죽고, 도시의 질서가 무너질 때.
갓 임관한 신임 경찰관 따위가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경찰관이 할 수 있던 일은 하나.
도시의 질서를 지키기 위해.
질서를 어지럽히는 괴물들을 잡아 죽이는 것.
-우리 그룹에 가입하겠다고?
마침 비슷한 목적을 가진 이들이 있었다.
복수를 위해 괴물들을 사냥하던 이들.
신임 경찰관과 동기는 약간 달랐지만.
생각해 보면 크게 다른 것도 아니었다.
그들이 주변 인물의 죽음으로 복수자가 되었다면.
경찰관은 무너진 질서에 대한 복수를 행할 뿐.
문제는, 식량이었다.
그룹에서 나름 제공하는 식량이 있었으나, 경찰관은 그걸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모두가 식량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
도시의 질서가 무너진 상황에서, 그 질서를 지켜내지 못한 그가 아까운 식량을 축낼 수는 없었다.
많은 이들이 의아해했으나.
경찰관은 식량을 남들에게 양보했다.
먹을 게 없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괴물을 먹겠다니. 씹어 먹고 싶을 정도의 증오라는 건가.
-...언니는 비위도 좋네요.
구역질 나는 맛이긴 하지만.
배가 채워진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 * *
쿠웅....
놈의 거대한 덩치가 바닥으로 쓰러진다.
빈 공동에 놈이 쓰러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쿨럭.
어떻게든 처치하긴 했다만.
내 쪽도 상황이 영 좋지는 않았다.
"큭큭... 죽겠네, 제기랄."
약탈자 그룹의 이상식욕자와는 격이 달랐다.
그놈은 [대적자] 버프를 받은 나 혼자서도 후드려 팼지만.
이쪽은 그러고도 고전했을 정도의 강적이었다.
슬쩍 몸을 내려다보자.
온몸에 성한 구석이 없는 것이 보였다.
[절대 미각]으로 인한 요리의 중첩까지 있었으니.
평범한 인간이었다면, 이미 시체가 되어야 정상이었을 몸 상태.
그나마 다행인 건.
스르륵....
짓이겨 나간 살점들이 알아서 회복되고 있다는 것.
"몇 번을 봐도 적응은 안 되지만."
짓이겨 나간 살점이 스스로 회복하는 모습은 꽤 징그러웠다.
뱀파이어의 피를 요리하지 않고 생으로 마셔 버린 결과.
내 몸은 '약간' 뱀파이어에 가까워졌다.
괴물이 될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다행히 이 정도 재생력을 얻은 정도로는 그럭저럭 인간 취급인 듯하다.
덕분에, [절대 미각]으로 인한 페널티도 억누를 수 있었다.
지금 같은 중상을 입고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도 마찬가지.
이 재생력 덕에 생존에 유리해진 것은 사실이니.
좋게 생각해야지 뭐.
'난 그나마 다행이다만.'
슬쩍 주위를 둘러보았다.
-끼잉.
전투로 인해 생겨난 파편들을 주워 먹으며 크기를 키웠던 까망이었으나.
지금은 다시 새끼고양이 같은 크기로 변한 채 낑낑대며 휴식을 취하고 있다.
그리고 그 주변에 흩뿌려져 있는 것은.
[최하급 뱀파이어 나이트의 뒷다리]
[최하급 뱀파이어 나이트의 머릿고기]
"...쯧."
여기저기 뜯겨 나간 뱀파이어들의 사체들.
"[안개화] 덕분에 여분의 목숨이 있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해도. 결국 쿨타임이 있으니."
한 번 붙잡혔을 때는 안개화를 통해 탈출할 수 있다.
하지만 두 번째로 잡힌 순간에는 얄짤없이 입안으로 직행.
괜히 이름이 [이상식욕자]가 아니라는 듯.
그렇게 뱀파이어를 잡아먹을 때마다 놈은 조금씩 체력을 회복하는 것 같았다.
심지어 버프라도 받는 듯 힘도 조금씩 강해졌었다.
...내 요리를 먹은 부대원들을 적들이 보면 저런 느낌일까?
싶었을 정도.
"...무능한 것들."
그렇게 주변을 둘러보고 있자니.
옆에서 작게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쪽을 바라보자, 표정을 찡그리고 있는 아리엘라가 보였다.
영 기분이 좋아 보이진 않았다.
"뭐야 너. 싸움은 좋아하는 거 아니었나?"
"싸움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저와 권속이 성장하는 게 좋은 거예요."
그런 거였냐.
힘겨운 전투에 몰아넣어도 좋아하길래 안 어울리게 전투광 속성이 있는가 했더니.
그런 건 아니었던 모양.
지금 묘하게 화난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글쎄다.
권속에게 애정이 있는 것도 아니니.
권속이 죽어서 그런 건 아닐 테고.
"자존심 상해서요."
꽤 간단한 이유였다.
"주인님이 이끌고 왔던 군세처럼 신성력을 두른 것도 아니고. 물리 공격 말고는 할 줄 아는 것도 없고. 말 그대로 힘만 믿고 덤벼드는 돼지 같은 괴물.... 상성으로는 저와 제 권속들이 우위에 있었을 텐데."
결과는 뭐.
보다시피.
나와 까망이가 가담해서 이기긴 했다만.
그럼에도 아슬아슬했다.
아마 뱀파이어들만으로 토벌하는 건 불가능했겠지.
"결국 이기긴 했잖아? 자존심 상할 일인가 싶은데."
"...제 능력과 권속들이 온전했다면, 저희만으로도 이길 수 있었을 거예요."
그런가?
하긴.
나와 부대원들에게 토벌당하기 전에는 권속의 숫자도 엄청나게 많았으니까.
아리엘라도 지금보다 훨씬 강력했고.
인해전술을 통해 어떻게든 이겼을지도 모르지.
'역시. 어느 정도 성장시켜 두긴 해야겠어.'
퉤!
입안에 고인 피를 대충 내뱉은 뒤.
힘겹게 몸을 일으킨 나는 쓰러져 있는 이상식욕자 녀석에게 다가갔다.
그러면서 주변에 쓰러져 있는 뱀파이어들에게 말했다.
"언제 다시 기운 차리고 날뛸지 몰라. 움직이지 못하게 결박해라."
"예...!"
"끄윽. 형제들이여, 일어나라."
"주인님의 주인님의 명령이다."
"윽. 허리가...."
어떻게든 전투에서 살아남은 뱀파이어들.
놈들이 아픈 몸을 끌고 이상식욕자 녀석을 움직이지 못하게 결박했다.
-크륵!
몸의 자유를 빼앗긴 녀석이 불쾌한 짐승 같은 소리를 냈다.
조심스럽게 다가가 보았으나.
-카아아아아악!
"어우. 살벌하네."
힘이 없어서 몸 가누기도 힘든 상태일 텐데.
얼굴만은 엄청나게 살벌했다.
그나마 전투 초반에는 말이라도 했지.
전투가 좀 격화된 시점부터는 저렇게 아예 짐승처럼 변해 버렸다.
"음. 이 상태로 뭘 듣기는 어려울 것 같으니."
다행히.
난 이 녀석에게 듣고 싶은 얘기가 있어서 이곳에 온 바.
이렇게 이성을 잃고 날뛰고 있을 때의 경우도 나름 생각을 했단 말이지.
난 녀석의 얼굴 근처로 몸을 옮겼다.
슥.
놈의 얼굴.
정확히는 입 쪽으로 군홧발을 조심스럽게 내밀자.
-카악!
거대한 괴물이 얼굴을 들이밀며 내 발을 물어뜯으려 들었다.
"어이쿠, 정지."
-그르륵.
가까스로 발이 뜯겨 나가는 걸 피한 나는 벌어진 녀석의 이빨을 잡아 쥐었다.
한 손으로 윗입을 벌리고.
군홧발로 아랫입을 벌린다.
"자, 아~ 합시다."
그렇게 강제로 입을 연 뒤.
그 사이로 준비해 온 음식을 던져 넣었다.
쿵!
음식을 넣고 손을 빼자마자 거칠게 닫히는 입.
조금만 늦었으면 손이든 발이든 한쪽은 잘려 나갈 뻔했다.
"식겁했네."
-그르륵!
녀석은 그러고도 계속해서 내 쪽을 향해 이빨을 들이밀었다.
짐승 같은 괴성에, 입에서는 침까지 주륵 흐르고 있다.
짐승.
아니, 진짜 괴물을 보는 것 같은 느낌.
그러나 그것도 잠시.
내가 던져 넣은 요리가 녀석의 위장에 닿을 때쯤.
-...넌 대체, 뭐 하는 놈이지?
괴물 같던 녀석의 입에서.
평범한 한국어가 들려왔다.
* * *
"정신이 드나?"
-뭐 하는 놈이냐고 물었다.
"음. 괜찮은 것 같네."
짐승처럼 날뛰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조금 까칠하지만 평범하게 말을 하는 녀석.
[냉철한 이성의 슬로스 브리스킷]
[슬로스]는 나무늘보와 비슷하게 생긴 괴물이었다.
강한 완력을 지니고 있어서 위협적이지만.
공격을 받아도 전혀 흥분하지 않고 나른해 보이는 모습으로 싸우던 녀석.
놈이 가지고 있던 특성이 바로 이것.
[특성 : 흔들리지 않는 정신]
[대부분의 상황에서 차분함과 이성을 유지합니다.]
거기에 내 [특별소스]의 효과가 '냉철한 이성'.
특성과 소스의 효과가 겹쳐진 결과.
-배가 고프군....
"미안하지만 참아."
여전히 배고픔을 느끼긴 하는 것 같지만.
어쨌든.
대화는 가능하게 됐다는 게 중요한 거지.
"난 신영준이라고 한다."
-....
"직업은 군인. 취사병 병장."
놈의 앞에 털썩 앉은 나는 자기소개부터 시작했다.
뭐 하는 놈이냐고 묻기에 대답해 줄 생각이었는데.
-...알고 있다. 밖에서 온 군인.
"뭐야? 알고 있었네."
녀석은 날 알고 있던 것처럼 말했다.
하긴.
"네가 나와 부대원들을 던전으로 인도했으니까, 당연한 건가?"
-....
던전을 탈출해, 우리 부대에 구원 요청을 해 온 남자.
그 남자를 보낸 게 바로 이 녀석이다.
던전 공략 때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어쩌면 멀리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
"설명할 필요가 없다면 나야 좋지. 아쉽지만 얘기할 시간이 많지는 않거든."
-무슨 의미지...?
"그 요리의 효과가 오래가진 않아서. 조만간 넌 또 미쳐 날뛰게 될 거다."
-....
"그 전에 할 얘기는 다 해야 하지 않겠어?"
나를 묘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녀석.
난 그 시선을 무시하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내 직업은 요리사다."
-요리사...?
"그래. 요리사. 나도 처음엔 이게 무슨 직업이냐 싶었는데, 지내다 보니 나름 나쁘진 않아."
-요리사가 나한테는 왜.
"최근에 이 직업에 대해서 신경 쓰이는 게 조금 생겼는데 말이지."
녀석에게 식칼을 가리키며 말한다.
"네가 거기에 답을 줄 수 있을 것 같아서."
-....
"너. 원래는 평범한 인간이었다며. 어쩌다 이 꼴이 됐는지 설명해라. 처음부터 끝까지. 가급적 자세하게."
흘깃.
살 속에 파묻혀 있는 눈동자가 내 쪽을 흘겨보았다.
-네 명령을 들어야 하나?
"응. 안 들으면 심하게 맞을 거거든."
-....
"뭐. 방금 건 농담이고."
아무래도 다짜고짜 명령조로 나온 게 조금 자존심이 상한 모양인데.
그런 눈으로 보면 뭐 어쩔 건데.
"던전을 탈출해 우리 부대를 찾아왔던 남자가 있었다. 그 남자는 네가 자신을 보냈다고 하더군. 바깥으로 나가서 도시를 구할 사람을 불러오라는 명령과 함께."
-....
"그 구원 요청을 받고 와서, 도시를 해방시킨 게 우리다. 즉."
슥.
손가락으로 녀석의 미간을 가리킨다.
"너는 우리한테 진 빚이 하나 있다는 거지. 안 그래?"
-...후우.
"네가 원하는 걸 우리가 이뤄줬잖냐. 네 쪽에서도 보답이 있어야지."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묘한 눈빛으로 나를 째려보는 녀석이었으나.
-조건이 하나 있다.
"조건?"
-이야기가 끝나고 난 뒤. 부탁을 하나만 들어다오.
부탁이라니.
"뭘 착각하고 계시나 본데. 네가 지금 뭘 부탁하고 그럴 처지가 아니세요."
-너라면 쉬운 일이다. 싫으면 거절해도 좋다. 나도 입을 열지 않으면 그만이니.
"...그러지 뭐."
미안한 얘기지만.
'너무 어려운 부탁이라면 그때 가서 없던 일로 해 버려도 그만이니까.'
힘이 지배하는 세상.
더 강한 쪽은 나다.
나중 가서 없던 일로 해 버려도 아무 문제없다는 거다.
이 녀석만 화병이 나고 말 텐데.
그러면 몇 대 더 때려주면 되는 거고.
-약속. 믿는다.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아는지 모르는지.
녀석은 나름대로 수긍을 한 듯.
조심스럽게 눈을 감았다.
122화 이상식욕자 (4)
어눌한 말투로 하는 이야기.
전부 알아듣는 게 쉽지는 않았지만 대충 이해는 갔다.
'경찰 출신이라.'
지금의 모습을 보면 상상도 안 가는데 말이지.
도시의 치안과 질서를 담당하는 직업.
신입이라고 하나 녀석은 기묘할 정도로 자신의 의무에 집착했다.
하지만.
"경찰 따위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지."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수준이라는 대한민국 군대조차.
우리 부대를 제외하고는 전멸했다고 봐야 하는 상황.
경찰.
그중에서도 일개 신입이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하지만.
본인의 손이 닿지 않는 일이었다고 한들.
녀석은 도시의 질서가 무너진 것에 책임감을 느꼈다.
그 책임감 때문에 그룹에서 제공하는 식량도 거부.
그 대신.
괴물을 입에 담았다는 것.
한마디로 평가할 수 있다.
"멍청한 짓을 했네."
그 결과가 이 모습이란 거다.
아무리 선의에서 비롯된 행동이었다고 해도 말이지.
결과물이 이래서야 멍청하다는 말밖에 할 수가 없잖냐.
아무튼.
점차 괴물이 되어 가는 자신을 눈치챈 녀석은 창수의 그룹을 떠났다.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 몸을 피한 뒤.
한동안은 괴물을 잡아먹으면서 지냈다던가.
그랬던 녀석이 한참 뒤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약탈자들과의 전쟁이 벌어졌을 때였겠지."
-...놈들은 범죄자들이었다. 제압하는 게, 내 의무.
수몰된 도시.
식량에 여유가 있을 리가 없다.
그나마 많은 식량을 챙긴 그룹들은 사정이 좀 나았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도 많았다.
극한의 상황.
그들은 결국 약탈자가 되기를 선택했다.
빼앗으려는 자.
지키려는 자.
그들 사이의 전쟁이 벌어졌고....
미약하게나마 이성이 남아 있던 시절의 녀석이.
그 전쟁을 목격했다.
그 결과.
"약탈자들은 모두 네게 처리되어 버렸단 거지."
-....
"제압이라고? 경찰이라면 살아서 제압한 뒤에 법정에 넘겨야 하는 거 아닌가?"
-웃기는 얘기로군. 법정이 돌아갈 상황이 아니었다. 조금 과잉 진압을 하게 된 것은 인정하나....
"꽤 유연성 있는 마인드시네."
난 팔짱을 끼며 녀석을 노려보았다.
"그 사람들도 식량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된 걸 텐데."
-...그건.
과잉 진압이니 어쩌니 하더니.
내심 찔리는 건 있었는지, 조용히 입을 다무는 녀석.
사실.
내가 할 말은 아니긴 하다.
'나도 약탈자들 잡아다 병력으로 쓰고 있는데 뭐.'
하지만 바깥의 약탈자들과 그 도시의 약탈자들의 사정이 같다고 보기는 힘들다.
바깥의 생존자들 역시 상황이 어려운 건 마찬가지라고 하나....
그럼에도, 식량을 얻고자 한다면 방법이 없지는 않다.
'그중에서 가장 쉬운 방법으로 약탈을 선택한 것일 뿐.'
내가 약탈자들을 병력으로 활용하게 된 데에는.
그 이유도 한몫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도시의 생존자들은 얘기가 달랐을 것이다.
그 외에는 먹고 살 만한 식량을 얻을 방법 자체가 없었을 테니.
-나, 나도 그러고 싶었던 건 아니야.
궁지에 몰려서 이뤄진 범죄.
법원에서도 이런 류의 범죄는 어느 정도 정상참작이 될 테지만.
그들에게 내려진 판결은 즉결처형이었다.
-처음에는 정말, 정말 제압으로 끝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중간부터, 너무, 너무 배가 고파져서....
"대충 알겠네."
비꼬듯이 말하긴 했다만.
사실.
속으로는 꽤 대단한 녀석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성을 거의 다 잃어버린 상태에서도 범죄자를 제압한다는 생각은 남아 있었다는 거잖아?'
무슨 수십 년을 헌신해 온 사람도 아니고.
경찰관이 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던 녀석.
세상이 이 꼴이 나지 않았더라면 꽤 훌륭한 인물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만.
'마냥 감동하기에는, 그 범죄자들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말 그대로 씹어 먹어 버렸으니.'
저 꼴이 되어가면서까지 남아있는 광기에 가까운 신념.
조금 무서울 정도였다.
조금 시무룩해진 녀석이 말을 계속 이어 나갔다.
-네 말대로. 도시의 식량이 충분했다면 그런 일은 없었을 테지. 그리고... 시간이 지나, 도시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음?"
-다시 비슷한 싸움이 벌어질 것 같더군.
도시의 사람들도 말했었다.
우리가 던전에 들어갈 때쯤.
곧 다시 인간들 사이의 전쟁이 일어날 것 같다고.
"아아. 그래서 우리한테 지원 요청을 보낸 거구만?"
처음 일어난 전쟁이 식량을 두고 일어난 전쟁이었다면.
그 식량마저 다 떨어질 때쯤.
두 번째 전쟁은, 그나마 식량을 구할 수 있는 낚시가 가능한 장소들.
그 영역을 두고 싸우는 영역 전쟁이 벌어졌겠지.
그 꼴을 보고 싶지 않았던 녀석은 다른 방법을 택했다.
일종의 도박수.
쓰러진 녀석의 모습을 전체적으로 둘러보았다.
비늘에 뒤덮인 괴물의 모습.
하지만.
"오른팔에는 비늘이 없네."
-....
"맞춰 보지. 그쪽으로 폭포를 막고. 그 남자를 내보낸 건가."
-바깥에 인간이 살아 있을지는 모르나... 가만히 있는 것보단 나았지.
사람들을 집어삼킨 것은 괴물이라 할 만한 짓이었으나.
결과적으로.
녀석이 우리에게 지원 요청을 보낸 덕에 이 도시의 사람들은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그게 아니었다면 또다시 인간들 간의 전쟁이 벌어졌겠지.
전쟁이 아니더라도.
시간이 지나 던전의 수위가 오름에 따라 모두가 물에 빠져 죽어 버렸을 수도 있고.
난 복잡해진 머리를 긁적였다.
'죄도 상당한 편인데, 공도 상당하단 말이지?'
많은 사람을 죽였고.
많은 사람을 살렸다.
이 녀석이 한 짓을 뭐라고 판단하기가 어려웠다.
...아니.
내가 왜 그런 걸 판단하려 하지?
'내가 판사도 아니고. 그런 거 판단하러 온 건 아니잖아?'
내가 이 녀석을 만나고자 한 이유는.
내 직업에 대한 의문점을 해소하기 위함.
"얘기가 많이 빙 돌아가 버렸는데. 사실 그런 건 내 알 바가 아니고."
-....
"아무튼. 네가 그 꼴이 돼 버린 건 인간과 괴물들을 집어삼킨 결과라는 거지?"
-먹는 거 자체는 중요하지 않다.
"그래. 그건 중요하지 않... 응?"
그 의문에 대한 답을 얻고자 질문하려 했으나.
녀석이 먼저 입을 열었다.
-잘못된 방법으로 먹었다는 게, 중요하지....
"...너 이 새끼!"
-역시. 네가 듣고 싶다는 얘기가. 이 주제였군.
그 말에 나는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내 예상대로.
"뭔가 알고 있는 거냐?"
-배고픔을 참을 수 없어졌을 때, 상태창이 말해 주었지.
"상태창이?"
내가 묻고 싶었던 것이 바로 이 부분이었다.
확신할 수 있다.
그 상태창의 메시지가.
내 직업에 대한 의문을 해소해 줄 단서일 것이라고.
-먹는다는 건... 다른 존재를, 자신의 피와 살. 그 일부로 만든다는 것....
녀석은 입에서 침을 질질 흘리면서 말을 이어 나갔다.
-남을 자신의 일부로 만드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잘못된 방식으로 먹으면... 뒤죽박죽으로 섞이고 말아.
"너처럼?"
-...큭큭. 그래 맞다. 나처럼. 너, 요리사라고 했지?
갑작스러운 질문에 고개를 끄덕인다.
-요리. 원래는 맛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아니란 건가."
-생각이 바뀌었지.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요리란... 일종의 의식이다. 독을 없애고, 나쁜 요소를 제거하고, 정제하고.
온전하게.
올바른 방식으로.
-다른 존재와 하나가 되는... 그런 의식.
살덩이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내가 했던 예상과 정확히 일치하는 것이었다.
-내 모습은 부작용이다. 잘못된 방식으로 다른 존재와 하나가 된 결과....
과거에는 잘못된 식사로 인한 대가가 그렇게 복잡하지 않았다.
제대로 익히지 않아 바이러스까지 섭취했을 때 걸리는 것이 식중독.
독을 제거하지 않았을 때 독에 감염이 되는 정도.
하지만 이 경우엔 좀 다르다.
재료에 담긴 게 독이나 바이러스 따위가 아닌....
마력이었으니까.
"...인간은 마력에 대한 내성이 없지."
그렇기에.
분별없이 괴물을 집어삼켜 나가다 보면.
자신이 또 다른 괴물이 되어 버린다.
그 거친 마력을.
인간에게 부작용이 없도록 정제하는 것.
'그것이 요리사.'
꽤 많은 각성자들을 만나 보았고.
그들 중에는 식당을 운영하던 이들도 있었으나.
[요리사]로 각성한 이는 없었다.
그 이유가 이제야 이해가 간다.
이 직업.
'생각보다 영향력이 크고... 강력한 직업이다.'
단순히 맛있는 요리를 만들 수 있는 정도가 아니다.
괴물의 힘을 정제해 인간의 것으로 가공하는 능력.
그 영향력은 방대하고.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게임에도 가끔 이런 종류의 직업이 있다.
그리고.
그런 직업을 뭐라고 부르는지도 알고 있다.
'레어 클래스.'
숫자가 적을 수밖에.
이런 직업이 흔해서야 쓰나.
"고맙다."
이놈이 죄가 더 많건, 공이 더 많건 간에.
내가 가지고 있던 직업에 대한 의문을 해결해 준 것만은 확실했다.
이것으로.
내가 여기 온 목적은 해결된 셈.
그러니.
"아까 말한 부탁이란 거. 말해 봐."
한동안 의문이었던 것에 확신을 가지게 된 지금.
난 꽤 기분이 좋거든.
어지간한 부탁은 다 들어줄 자신이 있었다.
뒤룩.
녀석의 눈알이 다시금 어디론가로 돌아갔다.
이번에는 나를 향한 게 아니었다.
그보다는 허공.
그래.
각성자로 치면, 상태창이 있을 만한 위치.
-내 상태창은 부서져 가고 있다.
"부서지다니?"
-작은 노이즈들... 대부분의 화면이 가려져 보인다. 내가 인간이 아니게 되며 생긴 대가겠지.
녀석이 괴물이 되기 전.
마지막으로 본 메시지는 이랬다고 한다.
[주의!]
[더 이상의 무분별한 섭취는 신체의 변화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인간의 영역을 벗어나기 직전입니다.]
[더 이상의 무분별한 섭취가 반복될 경우,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상태창은 거짓말을 하지 않지."
-그래. 난 이미 길을 벗어났다. 돌이킬 수는 없어.
클클거리며 가래 끓는 소리를 낸 녀석이 말을 이었다.
-아까 말한 조건. 너라면 간단히 해결할 수 있다.
"...?"
-죽여다오.
쯧.
대충 이런 게 아닐까 싶긴 했다만.
-가끔... 지금처럼 이성을 되찾을 때가 있다. 하지만 난 마음 편히 죽을 수가 없다. 물속에 몸을 던져도, 기절할 것 같으면 괴물의 본성이 튀어나와서....
어떻게든 살아남은 뒤.
다시 무차별적으로 주변을 집어삼킨다는 것.
'이 지하에 숨어 있던 이유도 알 것 같네.'
인간들에게 사냥당하는 게 두렵다거나.
그런 이유가 아니다.
'자신이 인간들을 잡아먹을 게 두려웠겠지.'
뒤룩.
녀석의 눈알이 기괴하게 돌아가며, 내 눈과 마주쳤다.
-노이즈 낀 상태창이지만. 조금씩 보인다. 너는 내 천적이자 사냥꾼.
그건 아마도, 내 상태창에도 떴던 내용.
[대적자]를 말하는 거겠지.
-말했잖나? 너라면 쉬운 일일 거라고.
"...."
-이제 그만. 쉬게 해 다오....
그렇게 말을 끝맺으며, 깊은숨을 내쉬는 녀석.
여러모로 지쳐 보였다.
'쓸데없이 정신력이 강하지만 않았더라도. 그냥 괴물이 돼 버리고 말았을 텐데.'
저 약탈자 그룹에 있던 녀석처럼 아예 괴물이 되었다면 편했겠지만.
이 녀석은 쓸데없이 강한 정신력 탓에 마음대로 이성을 내려놓지도 못한다.
'내가 여기서 녀석을 살려 두고 떠난다면 어떻게 될까.'
글쎄.
잘은 모르겠지만, 편한 삶은 아닐 것이다.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기 위해 계속해서 도망 다니고.
이성을 잃고 먹을 것을 찾아 헤매는 괴물의 삶을 살아가게 되겠지.
'평생을.'
죽어서라도 안식을 취하고 싶다는 마음.
이해는 간다.
그래.
이해는, 가는데.
...뭐라고 할까.
"싫은데?"
-...뭐?
편하게 쉬려는 듯.
감겼던 녀석의 눈이 크게 떠진다.
"미안하지만. 그건 좀 힘들겠다 야."
애초에 이 녀석과 약속할 때도 생각했었다.
이 세상은 강한 자가 법칙.
-아까 약속했다. 조건을 들어준다고...!
약속이고 뭐고.
더 쎈 놈이 나니까.
그딴 약속.
어겨 버리면 그만이거든.
"약속한 건 맞긴 한데... 편하게 쉬겠다니. 그건 좀 그렇지 않나?"
-무, 뭐... 대체 무슨 말을.
신입 경찰관이었다며?
'누구 맘대로 먼저 쉬려고 그러냐.'
말년 병장이었던 나도 뭣 빠지게 일하고 있는데.
"그리고 하나 고쳐 주자면."
녀석은 자신이 인간을 벗어났다고 생각하는 것 같지만.
인간으로서의 정신이 남아 있어서일까.
[전투력 측정기]
'이종족'을 향해서만 발동하는 특성.
이 녀석에겐 발동하지 않았다.
[식재료 감별(강화)]
[영장류 인간종 - 이상식욕자]
식재료 감별에 보이는 정보도 일단은 인간종.
거기다가 노이즈가 꼈다고는 했지만.
일단 상태창도 남아 있다고 했으니.
"너, 아직 아슬아슬하게 인간일걸?"
-...뭐?
아예 괴물이라면 또 모를까.
아직 인간으로 판정되는 녀석이라면.
방법이 없지는 않거든.
"그래. 입맛은 좀 까다로운 편이신가?"
123화 핵 아니냐 이거?
내 직업.
[요리사]는 맛있는 요리를 만들고 끝나는 직업이 아니었다.
각성 초기에는 이게 무슨 직업이냐 싶기도 했고.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을 먹는다는 게 꺼려져 평범한 재료들로만 요리했지.
'멍청했지.'
이 직업.
애초에 괴물을 요리할 때 그 진가가 나타나는 직업이다.
인간이 제대로 섭취할 수 없는 괴물의 신체.
그것을 정제, 가공.
인간의 힘으로 삼을 수 있는 의식이 바로 요리.
요리사는 그 의식을 주관하는 주술사 같은 거다.
-입맛...? 무슨 소리.
그리고.
그 부분에서 떠오르는 아이디어가 하나 있었다.
[이상식욕자].
피와 살이 남의 것으로 채워진 끝에.
뒤죽박죽이 돼 버린 인간.
딱 보기에는 괴물처럼 보인다.
오히려 지난번에 만나 처리했던 약탈자 그룹의 이상식욕자보다 훨씬 더.
"하나만 묻자."
-뭐?
"너. 인간으로 돌아올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하면. 어떻게 할래?"
하지만.
굳이 비교하자면 더 인간에 가까운 건 이쪽이다.
다른 건 둘째 치더라도.
인간으로서의 정신을 아슬아슬하게나마 유지하고 있으니까.
-그런 방법이 있을리가 없다. 말했을 텐데. 시스템이 그리 설명했노라고.
"있다고 쳤을 때."
한동안 말문이 막힌 듯 입을 벌리고 있던 녀석은.
잠시 뒤.
-...돌아가고 싶다.
자신감 없는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내게 그럴 자격이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거면 됐어."
중요한 것은.
이 녀석이, 인간으로서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있는가, 없는가.
그것뿐.
확인은 끝났다.
그렇다면.
"아리엘라."
"...?"
권속의 이름을 부르자.
뒤에서 대화를 듣고 있던 그녀가 가까이 다가왔다.
"너. 자존심 상한다고 했지? 원래 컨디션이었으면 이 녀석쯤은 쉽게 이길 수 있었을 거라고."
"...그런 말을 하긴 했죠."
"그 꼴로 만든 건 나이기도 하니까. 뺏은 만큼 돌려주마."
"네?"
안 그래도 이 녀석도 키울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거든.
그동안 잡스러운 괴물의 피는 주기적으로 먹여 왔다만.
아무래도 그것만으로는 유의미한 성장이 없었으니.
"이 녀석의 피 정도면 어때."
엄청난 숫자의 괴물을 집어삼킨 강대한 괴물.
그 피라면 꽤 쓸 만하지 않을까?
"으음. 조금 이거저거 섞여서 질이 좋지는 않은데...."
"별로인가?"
"아뇨."
싱긋.
그녀의 눈동자가 붉게 빛났다.
"질은 좀 떨어지지만... 그런 건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강대한 마력이에요."
"다행이네."
난 몸을 일으키며 그녀에게 명령했다.
"이 녀석의 피를 전부 뽑아라. 질이 안 좋은 건 걱정하지 말고. 내가 직접 요리해 줄 테니."
"저야 고마운 일이지만요, 전부라 하심은?"
"딱 죽기 직전까지. 절대 죽이진 말고."
"...죽이진 않으시겠다. 음. 뭘 하시려는지 조금 짐작이 가는데요."
내가 하려는 짓을 눈치챈 걸까.
"제 팔을 요리해 드실 때부터 느꼈지만. 주인님."
어이가 없다는 듯.
금발의 뱀파이어가 헛웃음을 지었다.
"제정신은 아니시네요?"
"괴물한테 듣고 싶은 말은 아니네."
난 대충 어깨를 으쓱이며 바닥에 쓰러진 거인에게 다가갔다.
내 명령을 들은 아리엘라 역시 녀석의 목덜미 부근에 다가갔다.
-무슨 짓을, 하려는 거냐.
"조용히 있으렴."
촤악.
아리엘라의 손톱이 녀석의 두꺼운 살을 파고들고, 혈관을 잘라 내었다.
쓰러진 녀석의 몸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스륵.
바닥에 고이던 피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꺾이는가 싶더니.
내 그림자 안쪽을 향했다.
"이쪽은 준비됐어요."
그런 것 같네.
다음은 내 준비겠지.
스릉.
난 거인의 근처로 다가간 뒤.
박씨 할아버지가 만들어 준 두 자루의 칼을 꺼내 들었다.
-편하게 죽일 수는, 없다는 건가.
"응?"
작업에 들어가기 전.
숫돌을 꺼내 칼날을 갈고 있자니, 녀석이 말을 걸었다.
내가 든 칼에 시선이 고정된 녀석.
착각인지는 모르겠지만.
묘하게 식은땀을 흘리고 있는 것도 같았다.
-...역시. 내가 죽인 인간들 때문인가? 편하게 죽이기에는, 그 죄가 너무 크다는 건가.
"뭔 개소리야?"
-그래.... 나 역시 알고 있다. 편안한 죽음 따위, 나 같은 녀석에겐 과한 바람이었겠지.
아.
그제야 무슨 착각을 하는 건지 조금 알 것 같았다.
그야.
편하게 죽여 달란 말을 거절한 직후.
갑자기 칼을 갈기 시작했으니.
'어딜 편하게 죽으려고? 그냥은 못 보내 준다.'
뭐 이런 의미로 오해했나 본데.
"그런 거 아니다."
-뭐라?
"음.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말로 하자니 조금 복잡한데.
칼 손잡이로 머리를 긁적이면서 말했다.
"있잖아. 네 피와 살이 괴물의 것이 되면서, 너도 괴물로 변한 거라고 했지?"
-...그렇다.
피와 살이 괴물의 것으로 채워진 결과.
괴물이 되었다.
그렇다면.
"그 피와 살을 모조리 제거해 내면, 어떻게 될까?"
-...뭐?
크게 지친 듯 반쯤 눈을 감고 있던 녀석이었으나.
내 말을 듣자 상당히 놀란 듯.
크게 떠지는 눈.
그제야 녀석도 내가 하려는 짓을 깨달은 모양인지.
이성에 관련된 음식을 먹었음에도 흥분한 목소리가 튀어나온다.
-미, 미친놈.
"뭐. 그런 반응이 정상이긴 해."
슥.
칼날 손질이 잘 마무리된 것을 확인한 뒤.
[중급 요리 비결]
[영장류 인간종 - 이상식욕자 손질법의 깨달음]
녀석의 살점 위에 부드럽게 가져다 댄다.
"죽이진 않을 거야. 죽이진 않을 건데."
그리고 경고했다.
"조금... 아니. 많이 아프긴 할 거다."
-너, 너는... 광인이다!
서걱!
괴물의 살점이 베어져 나갔다.
* * *
-커허어...!
이제는 꽤 익숙해졌지만.
생명체를 먹을 수 있는 수준까지 손질한다는 것은 꽤 힘든 일이다.
처음 직접 요리를 손질할 때는 아무리 나라도 식은땀 꽤 흘려야 했지.
-끄... 끄륵....
보는 쪽에서도 조금 고통스러울 정도인데.
그 손질을 당하고 있는 쪽의 기분은 어떨까.
어두운 지하 공동에 고통스러운 신음이 계속해서 울려 퍼졌다.
'...뭐랄까. 기분 좀 묘하네.'
요리한다기보다는.
수술을 집도하는 의사가 된 듯한 느낌.
마취를 안 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정상적인 의사는 아니겠지만.
삼국지의 화타는, 관우를 마취도 없이 수술했다던가.
딱 그런 꼴이다.
'맘 같아선 진통제용으로 요리를 좀 먹여 둘까 싶기도 했는데.'
하필이면 이미 먹인 요리가 있어서 그것도 힘들다.
나를 제외한 이들은 요리의 효과가 제거되기 전까진 새 요리의 효과를 받지 못하거든.
하필이면 그 요리 덕에 이 녀석의 이성이 유지되고 있는 것도 있어서.
요리 효과가 끝나길 기다렸다간 힘을 회복한 녀석이 다시 날뛰고 말 터.
결국, 마취는 없이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하필 그 요리 효과도 [차분한 정신]이라.'
마음 편하게 기절도 하지 못한 채.
맨정신을 유지한 채로 고통을 생생히 느끼고 있겠지.
미안하긴 하다만.
"벌 받는다 생각해라."
이 녀석은 수백의 인간을 살해한 괴물이다.
사람들을 죽인 것은 본의가 아니었다고 한들.
그 행위 자체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그리고 난....
그런 짓을 한 괴물 놈을.
쉽게 용서해 줄 생각은 없거든.
-끄륵... 차, 차라리, 죽여다오 제발....
-어, 어머니. 아버지....
이 고통이.
그 대가가 되겠지.
* * *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여기는 끝났어요."
"이쪽도 거의 마무리다."
[이상식욕자의 혼재된 마력의 살점]
[여러 몬스터의 마력이 뒤죽박죽으로 뒤섞이며 혼재된 살점입니다.]
[혼재된 마력의 질은 결코 높지 못하나, 절대적인 마력량이 상당한 만큼 어떤 재료와도 잘 어우러집니다.]
괴물의 피와 살점.
그 모두를 잘라내고, 뽑아내는 작업이 마무리되었다.
지하 공동의 바닥에 남아 있는 것은.
-커. 커허.
고통에 신음하는 인간의 형체.
최대한 죽지 않을 정도의 선에서 박박 긁어냈다 보니.
그 모습은 그나마 인간에 가까워졌다.
원래 어떤 외모였을지는 물론.
성별도 구분하기 힘든 상태기는 하지만.
-고, 고통은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은가. 죽여다오. 제발.
"안 죽인대도. 조금만 더 참아."
-아, 아아...!
"뭐야. 아직도 피눈물이 나오네? 저것도 주워 담아."
"네!"
죽지 않을 선에서, 피와 살을 모두 발라냈다.
하지만 아직 작업이 끝난 건 아니었다.
'일단 형체는 인간의 것처럼 보이긴 한다만.'
저 뼈와 살도.
아직 괴물의 비중이 높을 테지.
"이제 어떻게 하실 생각이신지?"
"피를 뽑고 살점을 게워 냈으니. 이제...."
칼에 묻은 피를 닦아 내며.
뒤에서 대기 중이던 뱀파이어들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빈 곳을 다시 채워야지."
뱀파이어 노동자들이 [그림자 장막] 속으로 들어가고.
그 안에 쌓여 있던 재료들을, 차곡차곡 꺼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치이이익....
그림자 속에 넣고 다니던 간단한 요리 도구들.
그것들을 모두 꺼낸 뒤.
본격적인 요리가 시작되었다.
"다행히 고기도 많고, 채소도 얼마 전에 보충해 온 참이고."
재료는 차고 넘쳤다.
괴물의 것을 모두 비운 공간에, '인간'의 것을 채우기에 충분할 정도로.
[검은모래 유충의 고기 볶음]
[아라크론 계란말이]
[혼재된 마력의....]
간단한 볶음, 구이는 물론.
튀김이나 찌개, 국, 찜까지.
군대에서 배운 요리들.
그중에서도 빠르고 간단하게 요리할 수 있는 모든 레시피를 동원했다.
이미 [차분한 정신]의 요리의 효과가 적용되고 있는 녀석이다.
'다른 요리를 먹인다고 버프가 적용되진 않겠지.'
그렇기에.
요리가 어떤 버프 효과를 뽑아낼지 따위는 생각도 안 하기로 했다.
그냥 양만 채우면 그만.
중요한 건 단 하나.
'잘못된 방식으로 먹은 걸 뱉어낸 뒤, 올바른 방식으로 다시 먹인다!'
괴물의 것으로 이루어진 피와 살을 모조리 베어 낸 뒤.
그 자리에 내 요리를 채워 넣는다면.
'그 피와 살은. 내 요리로 채워질 터.'
참고로.
나는 그렇게 피와 살이 내 요리로 채워진 이들을 알고 있다.
괴물하고는 영 거리가 먼 이들.
"내 부대원들이지."
이 녀석 역시 마찬가지.
내 예상이 맞다면.
"먹어라."
-그윽...?
이 요리를 모두 먹는 순간.
이 녀석은.
'인간으로 돌아온다.'
쌓인 요리의 양이 어마어마했다.
평범한 인간이라면 10분의 1도 먹기 힘들 정도의 양.
하지만.
이 녀석은 [이상식욕자].
-아아, 배고파....
수 없이 많은 괴물들도 집어삼켰다던 녀석이다.
그 위장에 한계 따윈 없었다.
나는 벌려진 입 안에 완성된 요리를 집어 넣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말 그대로 '쏟아 부었다.'
그렇게 요리를 쑤셔 넣고 있자니.
녀석이 고통스러운 와중에도 중얼거렸다.
-마, 맛있어.
피식.
"누가 만든 요린데. 당연하지."
평범한 인간 수준으로 작아졌으나.
그럼에도 끊임없이 들어가는 요리.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내가 만든 요리를 절반 조금 넘게 집어넣었을 때쯤.
...솔직히.
조금 쫄리기 시작했다.
"...왜 반응이 없냐? 이거."
녀석의 얘기를 듣고 나서 불현듯 떠오른 아이디어.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이게 가능할 거라는 어떤 확신 같은 게 있던 건 아니다.
-쿨럭, 무슨 짓을 하려는 건지는 알겠다.
불안함을 느낀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는지.
-하지만. 말했잖느냐.
요리를 집어삼키던 녀석이 말했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는 알 것 같았다.
녀석이 마지막에 보았다던 상태창의 문구.
[인간의 영역을 벗어나기 직전입니다.]
[더 이상의 무분별한 섭취가 반복될 경우,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확실히.
시스템은 거짓말을 하지 않지.
-이미 길을 벗어났으니... 돌아갈 수는 없다고.
"...."
-내가 겪은 고통은, 죗값에 비하면 싸다. 이해한다. 그러니까 이제, 제발.
죽여 달라니.
맘 같아선 그 소원을 들어주고 싶었지만.
조금 마음이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인간을 잡아먹은 죄도 있지만, 구원 요청을 보낸 공도 있잖아.'
죄는 고통으로 치렀다고 치고.
그 공은 어쩌라고?
이대로 죽으면.
녀석은 죗값만 비싸게 치르고 공에 대한 보상은 받지 못하는 셈.
그건 좀.
뭐라 해야 하나.
"짜증나잖아."
시스템이 안 된다고 했다고?
어쩌란 거야.
그딴 건 내 알 바 아니다.
"안 되면... 되게 하라."
갓 이병 시절부터 죽도록 들었던 말.
자고로 살다 보면 이딴 게 가능해? 싶은 일이 많지만.
의외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일도. 해 보면 되는 경우가 많다.
이번 일 역시 마찬가지.
"안 되는 게 어딨어."
될 때까지 쑤셔 박는다.
놈의 몸을 이루는 성분이, 괴물의 것에서 인간의 것으로 바뀔 때까지.
계속 쑤셔 박다 보면 뭐라도 되겠지!
그런 생각으로 요리를 집어넣으려던 순간.
-띠링.
'...?'
귓가에 울리는 청량한 소리와 함께.
시스템 메시지가 눈앞에 떠올랐다.
[주의!]
[인간을 벗어난 존재를 원래대로 되돌리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뭐야.
이젠 내 시스템 창까지 그딴 건 불가능하다고 말해 주는 건가.
"친절한 메시지. 고맙긴 한데."
괜히 시선만 가리잖아.
"쓸데없는 친절이야."
바로 손을 휘둘러 그 메시지를 치워 버리자.
그 아래.
새로운 메시지가 떠올랐다.
[그럼에도, 도전하시겠습니까?]
....
"뭐?"
* * *
[그럼에도, 도전하시겠습니까?]
뭐야.
불과 몇 초 전에 불가능하다고 말한 건 바로 이 시스템이다.
그런데 굳이 도전하겠냐는 물음을 던진다고?
슬쩍 시체 같은 몰골의 이상식욕자 녀석을 내려다보았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
원래 여기 온건 그저 내 의문에 대한 확신을 얻기 위한 게 전부였다.
그 확신은 이미 얻었고.
녀석의 피를 모두 뽑아내기도 했다.
아리엘라의 성장에도 도움이 되겠지.
사실....
'이대로 떠나 버려도, 나는 전혀 손해 볼 게 하나도 없단 말이지.'
굳이 불가능 따위에 도전하지 않아도 된다.
그럴 이유도 없었다.
하지만....
발목을 잡는 것은 단 하나.
"에휴. 이놈의 자존심."
다른 누구도 아니고.
내 요리다.
남들이 안 된다 안 된다 하면 할수록.
'아닌데? 내 요리라면 가능한데?'
라고 말하고 싶어지는 게 나란 새끼거든.
"아직 요리 남았다. 입 벌려."
-...!
상태창이 뭐라고 말하든 간에, 나는 내 할 일을 계속할 뿐.
강제로 벌려진 녀석의 입에 다음 요리를 집어 던졌다.
그러자.
[사용자가 불가능에 도전합니다.]
[조건 확인 중....]
"?"
눈앞에 나타난 메시지.
[조건이 확인되었습니다.]
[신력 : 1]
메시지 창에 나와 있는 것은.
어느 날 스탯 창에 자리를 잡았으나.
도무지 그 용도를 알 수 없었던 능력치.
신력.
['1'의 신력만큼, 불가능을 가능케 합니다.]
[주의!]
[당신의 도전이 실패할 경우, 신력 스탯은 영구적으로 제거되며, 다시는 복구할 수 없게 됩니다.]
"이게 무슨."
그 순간.
몸 안에서, 무언가.
낯선 기운이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 정체를 추측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신력?'
이 녀석이 갑자기 왜 활성화되는건지는 모르겠지만.
신력이라는 스탯이, 어떤 작용을 일으키기 시작했다는 것.
그것만은 확실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지. 잘은 모르겠다만...!"
내가 할 일은 하나였다.
하던 일을 계속하는 것.
-크, 크륵...!
팔이 뻐근해질 정도로 요리를 쑤셔 넣기를, 얼마나 반복했을까.
시간이 지나.
녀석에게 적용되었던 '차분한 정신'의 효과마저 끊기고 말았다.
그럼에도.
나는 요리들을 계속해서 욱여넣었다.
될 때까지 해본다는, 단순한 생각으로.
-그르륵.
그렇게.
영겁과도 같던 시간이 지나고 난 뒤.
-띠링.
[대상의 종족, 직업이 변화합니다.]
더 이상 남은 요리가 하나도 남지 않게 되었을 때.
내 눈앞을 가득 메우는 메시지.
[이현진]
[영장류 인간종 - 이상식욕자]
[변환 중....]
바닥에 쓰러져있던 인간의 형체.
방금 전까지만 해도, 뼈와 혈관만이 아슬아슬하게 남아 있던 그 몸에....
살점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변환이 완료되었습니다.]
[각성자 : 이현진]
[영장류 - 인간종]
[직업 : 이상식욕자 Lv.1]
괴물의 것이 아닌.
인간의 살점이.
[직업퀘스트 - 대적자 척살을 완료하였습니다.]
[퀘스트 목표를 초과 달성하였습니다.]
[퀘스트 달성 보상이 주어집니다.]
[업적을 달성하였습니다!]
[업적 : 기적의 요리사]
[요리를 통해, 인간의 길을 벗어난 대적자를 제 자리로 돌려놓았습니다!]
[전 차원을 통틀어도 보기 힘든 기적.]
[요리사로서 이룰 수 있는 최대의 업적 중 하나입니다!]
[업적의 보상이 주어집니다.]
[신화에 기록될 만한 업적을 이루었습니다!]
[신력 스탯이 '1' 상승합니다.]
[신력 : 2]
'신력.'
도무지 정체를 알 수 없었던 스탯이었다만.
아무래도 그 효과는 꽤 군기가 바짝 든....
기합찬 종류의 것이었나보다.
'안 되는 걸 되게 하는 힘.'
불가능한 일을, 가능으로 만드는 것.
"허, 허허...."
게임처럼 변해 버린 세상.
그런 세상에 대입해 보았을 때.
이런 힘을 뭐라고 부르는지.
대충은 알고 있다.
치트.
혹은.
"...핵 아니냐, 이거?"
124화 당신 대체 뭔 짓을 한 거야
"네가 데려온 사람은 일단 의무병한테 맡겼다. ...괴물을 만나러 간다던 놈이 왜 사람을 주워 온 건지는 잘 모르겠다만."
"얘기가 좀 복잡한데. 나중에 설명해 줄게."
"...후우."
지하 수로에서의 일을 마친 뒤.
나는 부대의 임시 거점으로 복귀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해하는 민재 형이었지만.
'그 식인종 괴물이 사람으로 돌아왔다고 말한다고 아 그러시구나, 할 리도 없고.'
설명할 게 좀 많단 말이지.
"몇 시간 전에, 도시에 큰 지진이 있었다."
"응?"
민재 형이 팔짱을 끼며 말했다.
"우리 부대원들뿐만 아니라 도시의 각성자들도 느낄 정도의 흔들림이었지. 대부분은 그냥 자연재해로 넘어간 것 같다만. 몇몇 사람들은 혹시 도시 지하에서 괴물들이 날뛰는 게 아닌가 하는 얘기를 하더군.... 우연히 네가 지하로 향한 시점에 말이야."
"아."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이거."
"내 얘기 맞을걸."
"...역시."
한숨을 내쉬는 민재 형.
"땅이 울릴 만한 전투라니. 그렇게 강한 괴물이었던 거냐."
확실히 엄청나게 강하긴 했지.
던전의 보스였던 저 [교황]보다 조금 못한 수준.
"역시 부대원들을 데려갔어야 했...."
"아니. 부대원들을 데려가면 뱀파이어를 못 쓰잖아."
민재 형을 비롯한 간부급들은 내 그림자 속에 있는 병력들에 대해 알고 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소수.
'아직 괴물 자체에 대한 반감이 큰 부대원들이 많단 말이지.'
그나마 몬스터의 일종인 까망이와 같이 지내던 공병들이 조금 반발이 덜한 수준.
나머지는 몬스터라고 하면 일단 적으로 인식한다.
하물며 우리가 직접 토벌한 적.
그 과정에서 몇몇 부대원들을 죽이기까지 한 뱀파이어니까.
"알잖아? 햇빛이 없는 곳에서는 뱀파이어들이 더 강력할 수도 있단 거. 그놈들도 많이 죽은 전투였거든."
"부대원들은 데려가지 않은 게 정답이란 건가. 그래서. 원하던 건 얻은 거냐?"
"다행히도."
"그건 잘됐군."
고개를 끄덕이는 민재 형을 보며.
나는 조금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미안하게 됐네."
"음?"
"이번 작전은 사실상, 나 혼자 궁금한 거 해결하겠다고 개인 행동한 거잖아."
이번 지하 행은 내 직업에 대한 개념을 확실히 잡고 싶다는 생각으로 이루어진 일.
사실상 내 독단이었다.
나는 일단은 우리 길드의 장을 맡고 있는바.
그런 놈이 제 궁금증 좀 해결하겠다고 위험한 일에 몸을 들이밀었으니.
고지식한 편인 민재 형이라면 불편해하지 않을까 싶었다만.
"무슨 소리를."
"응?"
"다른 부대원들이 돕지 못한 게 문제면 문제지. 네가 한 행동은 아무 문제없다."
의외로 그렇지는 않았다.
"넌 물론이고, 네 직업이 가진 능력은 우리 부대 전력의 핵심이니까."
"어...."
"네 직업에 대한 의문을 해결하는 데 성공했다며. 그건 의미가 크지. 내가 아쉬운 건 그 과정을 부대원들이 돕지 못했다는 것 정도야."
의외로 긍정적인 모습.
지금 생각해 보니.
민재 형은 부대의 완전 초창기부터 내 직업의 가능성을 높이 평가했단 말이지.
'이 형, 생각보다 감이 좋은 건가?'
나야 이번 일을 통해 요리사라는 직업의 가치를 상향조정했다지만.
그전에는 그냥 요리사가 요리사지 라는 생각이었다.
그때부터 날 대장으로 추대한 것이 민재 형.
예전부터 내 직업의 가능성을 알아본 것까지 생각하면.
생각보다 감이 좋은 양반인가 보다.
아무튼.
이번 지하 행은 내 입장에서 꽤 만족스러웠다.
'단순히 의문점을 해결해서 그런 것만은 아니고.'
[퀘스트 - 대적자 척살]
[퀘스트 목표치 초과 달성하였습니다.]
[초과 달성 보상이 주어집니다.]
[게이트 소환권]
[업적 : 기적의 요리사]
[앞서가는 이를 위한 보상이 주어집니다.]
[최상급 식재료 : 천년 빙하의 핵]
[최상급 식재료 : 세계석의 물방울]
"큭...큭큭."
퀘스트 완료 보상.
그리고 업적 완료 보상까지.
일단 첫 번째로 얻은 것이....
퀘스트, [대적자 척살].
이 퀘스트는 저번에도 클리어한 적이 있었다.
당시의 보상은 특성 강화권이었던 걸로 기억한다만.
"퀘스트 이름은 척살인데, 살려서 인간으로 바꾸니까 초과 보상을 주네."
당연히 퀘스트가 실패할 것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오히려 일이 잘 풀려 버렸다.
퀘스트의 조건을 초과 달성함에 따라 보상도 바뀌었다.
[게이트 소환권]
[원하는 키워드들을 입력할 시, 키워드에 적합한 게이트가 소환됩니다.]
"음...."
게이트.
게이트라.
'그게 뭐지.'
차라리 던전이라면 이해가 간다만.
게이트라는 단어는, 지금까지 들어본 적이 없다는게 문제.
어떻게 써야하는 아이템인건지.
솔직히 감이 잘 오지 않는다만.
'그래도. 무려 초과 보상으로 얻은 아이템이야.'
효과가 나쁠리는 없겠지.
그리고 다음으로 얻은 것은 바로 업적 보상.
이쪽의 보상은 꽤 심플했지만....
그 내용물은 결코 앞엣것에 비해 뒤지지 않았다.
그야.
무려 두 가지의 [최상급 식재료]였으니까.
"다른 업적들을 달성했을 때는 기껏해야 하나였는데."
요리로 김 중위를 굴복시켰을 때와, 아리엘라를 굴복시켰을 때.
각각 하나의 '최상급 식재료'를 보상으로 받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무려 둘.
"이번 업적이 그만큼 대단하단 건가?"
하긴.
인간을 벗어나 괴물이 돼 버린 녀석을, 다시 인간으로 돌려 버렸다.
시스템이 계속 불가능하다고 말하던 것을 기어코 뒤집어버린 것.
사람 한 명, 괴물 한 마리를 내 요리가 아니면 못 살 정도로 중독시켜 버리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된단 거다.
그리고.
최상급 식재료 하면 바로 떠오르는 사용처는 단 하나.
[식재료 감별(강화)]
['능력치 상승의 물약(힘)'의 감별 결과]
[아룡의 심장 - 10%]
[잊혀진 성자의 성혈 - 10%]
[천년 빙하의 핵 - 10%]
[세계석의 물방울 - 10%]
[정체불명의 재료 - ??%]
"흐힛. 히히힛."
웃음이 새어 나오는 걸 참기 힘들었다.
능력치 상승 물약의 재료.
그게 40%나 모였다.
내가 직접 능력치 상승의 물약을 '요리'할 수 있게 될 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
사실.
[신력]의 효과가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된 지금.
혹시 재료가 없어도 능력치 상승의 물약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바로 도전해 볼까 했으나.
[신력 : 2]
['2'의 신력만큼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듭니다.]
[주의!]
[당신의 도전이 실패할 경우, 쌓아 올린 모든 신력을 상실합니다.]
괴물을 인간으로 되돌리는 데 성공한 뒤, 1이 늘어 2가 된 신력 스탯.
설명을 보니 신력의 수치에 따라,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들 수 있는 범위도 달라지는 것 같았다.
문제는 저 '주의' 문구.
핵, 혹은 치트라고 부르기에 모자람이 없는 능력이다만.
페널티가 없지는 않다는 것 같았다.
신력을 사용해 가면서 시도한 도전이 단 한 번이라도 실패하는 순간.
그동안 쌓아 올린 모든 신력 스탯이 한 번에 소멸해버린다는 것.
그리고 요리를 시도해 보려고 하기 직전.
요리사로서의 직감이 말했다.
"씁. 안 되겠는데."
정확한 근거는 없지만.
'2'의 신력으로는 저 부족한 재료들을 메꾸는 것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내 직감이 호소하고 있었다.
어쩌면 굉장히 낮은 확률로 성공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건 지나친 도박수.
잠시 고민을 한 나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굳이 도박을 할 필요는 없겠지."
이미 신력 따위에 의존하지 않고도 재료의 4할을 모으는 데 성공한 상황.
앞으로도 이렇게 해나간다면 머지않은 미래에 모든 재료를 모을 수 있겠지.
그 시기를 조금 앞당기겠답시고 도박을 건다는 건 하수.
"지금처럼만 하자. 언젠가는 만들 수 있을 테니까."
이름만 봐도 한가락씩 하는 '최상급 재료'들.
그게 무려 10개나 들어간다.
물약 한 병 정도 만들고 끝나진 않겠지.
1000점이라는 상당한 포인트를 요구하는 능력치 상승의 물약.
그걸 직접 만들어 낼 수 있게 되는 순간.
부대원들의 능력치는 폭발적으로 상승하게 될 터.
"헤헤헤."
상상만 해도 기분 좋구만.
이번 지하행에서 의도한 것은 내 직업에 대해 알아보는 것 하나였다만.
의도치 않은 보상들을 엄청나게 얻어 버렸다.
보상들의 정리가 끝난 나는 가볍게 몸을 일으켰다.
저 보상들을 얻을 수 있던 이유는 뭐... 내가 잘난 덕이다만.
계기가 되어 준 사람이 있으니까.
"병문안 정도는 가주는 게 예의겠지."
* * *
"아, 충성. 신 병장님 오셨습니까."
병문안...이라고 말하긴 했다만.
우리가 임시 거점으로 삼고 있는 건물은 본래 평범한 상가 건물이었다.
'의무실 따위 있을 리가 없지.'
어쩔 수 없이, 상가 건물의 구획 하나를 떼어다가 의무실로 사용하고 있었다.
좋은 환경이라는 말은 농담으로도 하기 힘들지만.
임시 거점이니 어쩔 수 없잖냐.
급한 일들이 마무리되는 대로 제대로 된 거점을 만들어야겠지.
"마침 잘 오셨습니다. 신 병장님."
"음?"
의무실을 지키고 있던 의무병.
사의준 일병이 내 얼굴을 보고 기쁜 듯 말했다.
"마침 잘 왔다니?"
"하하. 병장님이 데려오신 그 환자분 있잖습니까."
"어어."
"오늘 아침에 막 정신을 차리신 참입니다."
오.
타이밍 한 번 끝내주네.
나는 사의준 일병의 안내를 따라 의무실 안쪽으로 몸을 옮겼다.
가장 안쪽.
커튼이 쳐져 있는 간이침대 하나가 보었다.
"깨어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만. 생각보다 상태가 나쁘지 않더군요. 직접 대화를 나눠 보시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사의준 일병이 그 커튼을 열자.
[이현진]
[Lv.1 이상식욕자]
비대해진 살점으로 인한 어마어마한 덩치.
전신을 덮은 비늘에, 거대한 뿔, 날카로운 발톱.
거친 짐승의 그것과 같은 목소리까지.
그런 거창한 보스 몬스터의 형상은 온데간데없었다.
침대에 앉아,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 여자.
하얗게 센 머리카락 때문일까.
조금 신비한 분위기가 맴돌았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반쯤 괴물이었으나.
내가 직접 때려잡은 뒤, 고생고생해 가며 인간으로 되돌려 놓은 인물.
이현진.
'적응 안 되네.'
그 모습에 약간의 어색함을 느끼며 다가가자.
기척을 느낀 듯, 그녀의 시선이 사의준 일병을 향했다.
"아. 의사 선생님."
"환자분. 기분은 어떠십니까."
"괜찮아요. 잘 보살펴 주신 덕분에...."
"다행입니다."
사의준 일병의 말마따나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것인데도 꽤 멀쩡해 보이는 모습.
"그런데 같이 오신 분은...."
그리고.
그녀의 시선이 내 얼굴에 닿은 순간.
"안녕하십니...."
"히, 히익...!"
귓가에 울리는 짧은 비명 소리.
'...히익?'
조금 전까지 멀쩡하게 대화하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사, 살려...."
비명을 내지르며 구석으로 도망치는 그녀.
팔에 박혀 있던 링거 등이 거칠게 때어져 나갔으나, 그런 것을 신경 쓸 겨를도 없는 듯.
덜덜덜....
방의 가장 구석진 곳까지 도망친 그녀가 이불을 뒤집어쓴 채 벌벌 떨기 시작했다.
"...."
"...."
옆에서 나를 바라보는 사의준 일병의 시선이 느껴졌다.
크게 떠진 눈 속에는.
'당신 대체 뭔 짓을 한 거냐' 하는 뜻이 담겨 있었다.
아니.
"이러려고 한 건 아닌데...."
125화 예상 못 한 보상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일까.
기껏 병문안을 왔건만.
덜덜덜....
내가 찾아온 환자는 나를 보고 공포에 떨고 있고.
"...."
의사 양반은 '뭔 짓을 한 거냐'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돌겠네.'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어 멍하니 있자니.
사의준 일병이 내 어깨를 붙잡으며 말했다.
"일단 환자분은 제가 최대한 진정시켜 볼 테니, 병장님은 잠깐 나가 주실 수 있겠습니까."
"어, 어어."
등을 떠밀려 병실에서 쫓겨난 뒤.
몇 분이 지나자.
"후우."
병실에서 나온 사의준 의병이 말했다.
"일단은. 진정시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다행이네."
"예. 다만, 아무래도 신 병장님을 보면 조금 진정하기가 힘들 것 같다고 하더군요. 얘기할 때는 언행을 좀 조심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다시 병실에 들어가기 전.
나는 사의준 일병에게 궁금했던 점 하나를 묻기로 했다.
"저 사람."
"예?"
"머리카락은, 원래 저런 색이었던가?"
"아아. 그렇진 않을 겁니다."
잠깐 보고 쫓겨나게 되었다만.
침대에 앉아 있던 그녀의 머리는 새하얬다.
평범한 한국인의 머리라고는 보기 힘들 정도로.
설마 환자가 그사이에 염색을 한 것도 아닐 테고.
왜 저런 색이 돼 버린 건가 궁금했는데.
"정확하진 않습니다만, 짐작 가는 부분은 있습니다."
볼을 긁으며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사의준 일병.
"아무래도 최근에 엄청난... 정말로 어마어마한 고통을 느낀 적이 있던 모양이더군요."
"...?"
"저 머리 색은 그 고통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원인인 것 같습니다. 아시다시피 각성자의 신체는 평범한 인간의 그것하곤 조금 다르다 보니, 정확한 원리까지는 파악하지 못했습니다만."
극심한 고통으로 인한 스트레스.
그 고통으로 인해 머리가 하얗게 세 버렸다는 것.
"머리가 저렇게 될 정도의 고통이라니. 후. 솔직히 저로서는 짐작도 안 가는군요."
"크흠."
사의준 일병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녀의 머리가 저렇게 변한 원인이 다름 아닌.
'나 때문이란 거잖아?'
여러 가지 사정이 겹치긴 했다만.
그녀는 말 그대로.
'산 채로 피와 뼈와 살이 분리'
되는 경험을 했다.
'심지어는 [차분한 정신]의 요리를 먹은 탓에, 편하게 기절하지도 못했지.'
결과적으로는 좋게 끝났으니 다행이지만.
머리가 저렇게 돼 버릴 정도의 고통이었다는 것.
"아까 벌벌 떠는 모습도 그렇고. 대체 저 사람한테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괴물한테 붙잡혀서 고통을 받았다든가? 가끔 PTSD를 호소하는 병사들도 있긴 합니다만. 저건 그중에서도 심한 것 같던데요."
"크흠. 컴."
인간을 학살한 죗값에 대한 대가라느니 생각하긴 했다만.
아무래도 그 결과물을 직접 보니.
마음 한구석이 찔릴 수밖에 없다.
약간의 미안함을 느끼며 다시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최대한 상대를 자극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의자에 앉자.
"...감사합니다."
그러자.
조금씩 움찔거리면서도, 조심스럽게 고개를 꾸벅이는 현진.
조금 전까지 내가 준 고통 때문에 머리가 하얗게 변해 버렸다는 얘기를 듣고 왔던 터라.
순간 뭐가 고맙다는 건지 이해가 안 갔다.
덕분에 죽는 줄 알았다, 고맙다.
뭐 이런 비꼬긴가? 싶었는데.
"다시는 인간으로 돌아올 수 없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아아. 그거야 뭐."
난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솔직히 말하면. 그냥 도박 한번 해 본 겁니다. 딱히 그쪽 좋으라고 한 일도 아니었고."
진심이다.
딱히 그녀에게 어떤 감정이 있었던 것도 아니니까.
'그냥, 될 것 같으니까 해 봤을 뿐.'
막말로 성공했으니 다행이지.
도박이 실패했다면 그녀는 고통이란 고통은 다 겪은 다음에야 죽을 수 있었을 터.
감사받을 만한 입장은 아니지.
"감사할 일은 그 외에도 많죠."
"음?"
"원래라면 이 도시를 해방하는 것도 제가 해야 했던 일. 그걸 군인분들이 대신해 주셨으니까요."
조금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때 말했던 경찰이 어쩌구. 그 얘깁니까?"
"네."
저번에도 들은 얘기다만.
다시 들어도 조금 의아한 얘기다.
'그렇게까지 집착할 일인가?'
그녀는 딱히 수십 년 복무한 경찰관 같은 것이 아니었다.
이제 막 경찰이 되어 경력을 시작하려던 참.
그럼에도 그녀는 자신의 의무에 이상할 정도로 집착했다.
약간은 광기라고 느껴질 정도.
'...일종의 PTSD 같은 걸지도.'
지금 생각해 보면.
이것도 '멸망의 날'이 만들어 낸 하나의 병일지도 모른다.
경찰이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음에도.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 한계였던 그녀.
그 마음에, 어떤 부채 같은 것이 자리 잡아 버린 것이겠지.
"제 능력이 부족한 탓에. 사람 한 명을 밖으로 내보내는 것 정도가 한계였죠. 바깥에 도움을 요청하라고 하긴 했지만... 솔직히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진 않았어요."
그야 뭐.
실제로 우리 길드 정도가 아니고서야.
굳이 저 위험한 던전을 공략하려 들 사람은 없었겠지.
"그 구원 요청을 받아들이고 도시를 구해 주셨으니, 이제라도 감사를 드려야죠."
"...."
"그걸로 모자라서, 다시는 인간으로 돌아가지 못할 거라고 포기하고 있던 저를 이렇게 되돌려 주기까지 하셨으니.... 진작에 감사를 표했어야 했는데. 아까는 정말 죄송했습니다."
"아뇨. 그럴 수도 있는 거지 뭐...."
다시금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는 그녀.
하지만 뭐랄까.
난 그 감사가 조금 부담스러웠다.
'딱히 엄청난 선의를 가지고 한 일도 아니었으니.'
구원 요청을 받아들인 건 던전이라는 단어 때문이었다.
우리 부대의 힘을 키우기 위한 것이 첫 번째 목표.
이 사람을 찾아간 건 내 궁금점을 해결하기 위함이었고.
인간으로 되돌린 건....
'자꾸 절대 불가능하다고 하니까 자존심 상해서, 억지 꼬장 한번 부려 본 거였지 뭐.'
결과는 좋게 됐다만.
딱히 감사받을 만한 의도는 하나도 없었다는 거다.
그런데도 저렇게까지 예를 차리니 부담스러울 수밖에.
조금 쑥스러워진 나는 손을 흔들며 말했다.
"감사는 그 정도면 충분하니, 이제 그만 본론-"
"히익...!"
"...."
"아, 아앗. 죄, 죄송해요."
헛기침을 하며 자세를 바로잡는 그녀.
"그... 살점을 도려내시던 기억이 아직 생생해서."
얼굴에는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나쁜 의도가 아니었다는 건 알아요. 결과적으로는 감사드려야 할 일이란 것도요. 하지만 뭐랄까. 그, 머리로는 이해해도 몸이 마음대로."
"이해하니까. 그만 얘기하셔도 됩니다."
조금만 과격하게 움직여도 트라우마로 고통이 떠오를 정도라니.
내가 맘 편하게 감사를 받을 수가 있겠냐고.
여기서 계속 앉아 있는 것도 부담스러울 것 같기도 하니.
그냥 간단하게 본론만 묻고 떠나기로 했다.
"일단. 앞으로의 계획 같은 건 있으십니까?"
"네? 계획이요?"
"이젠 괴물도 아니고, 평범한 인간으로 돌아오셨잖습니까."
괴물이었던 시절의 그녀가 어떻게 지냈을지는 뻔하다.
짐승처럼 잠만 자다가 배고프면 일어나서 괴물을 사냥하고 다녔겠지.
하지만 이젠 그럴 수가 없으니까.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도 생각하셔야 할 텐데. 혹시 계획이 있냐 묻는 겁니다. 뭐 아는 사람이라던가."
"글쎄요.... 이 도시에는 배정받아서 온 거라, 아는 사람은 딱히."
"음. 일단 창수 씨의 그룹에 소속되어 있었던 걸로 압니다만."
"그건, 목적이 얼추 비슷했으니까요."
그녀는 도시를 어지럽히는 어인들을 사냥해 도시를 원래대로 복구시키길 원했다.
창수의 그룹은 어인들에게 복수하길 원했고.
"어인들을 사냥하기 위해 같이 활동한 것뿐이에요. 친하게 지낼 만한 분위기도 아니었구요."
결국.
앞으로의 생활에 대해 생각해 놓은 것은 딱히 없다는 듯.
"그래도 뭔가 하고 싶은 일이 있으실 것 아닙니까."
"하고 싶은 일...."
잠깐 고민하던 그녀가 이내 입을 열었다.
"전 일단은 경찰이었으니까요. 지금 와서 무슨 의미가 있겠냐 싶긴 하지만, 사람들을 지키는 일을 하고 싶어요."
"뭐. 그런 것도 나쁘진 않겠죠."
"그리고 또 하나는."
"?"
그녀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은혜를 갚고 싶어요."
은혜라.
"제가 받은 은혜가 한두 가지가 아니잖아요. 그걸 모르는 척 넘어가기는 싫거든요. 어떻게든 이 은혜를 좀 갚고 싶은데...."
사람들을 지키면서.
동시에 내게 은혜도 갚고 싶다라.
"크흠."
이거.
얘기의 흐름이 나쁘지 않은데?
"일단 사람들을 돕는 부분입니다만."
"네."
"혼자서는 쉽지 않으실 겁니다. 저 도시 안쪽하고 다르게, 바깥세상의 괴물들은 워낙 종류가 다양해서요. 개중에는 혼자서는 대응할 수 없는 종류의 괴물들도 많죠."
"으음.... 그런가요."
혼자서는 힘들 것이라는 얘기에, 조금 아쉬워하는 듯한 그녀.
"다만.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죠."
"네?"
"제게 은혜를 갚고 싶다고도 하셨으니."
내게 은혜를 갚는 가장 쉬운 방법.
그건.
"저희 부대에 가입하신다면, 도와 드릴 수 있을 겁니다."
우리 부대의 인력난을 해결해 주는 것.
그나마 최근에 부대에 합류하는 이들이 조금씩 늘어나고는 있다만.
그 속도가 빠른 것은 아니다.
게다가, 막무가내로 부대원을 늘리는 것도 무리가 있다.
부대에 받아들이고 봤더니 미치광이 사이코패스였더라~ 하는 경우도 있잖냐.
'그런 면에서. 이 사람은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단 말이지?'
과거 사람들을 학살한 적이 있다고는 하나.
그건 어디까지나 몬스터의 본능에 지배당했기 때문.
반대로 몬스터의 본능이 머리를 침범하는 와중에도 경찰로서의 의무감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다.
그 의무감의 발로가 일종의 정신병이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한들.
인성 평가는 통과한 거나 마찬가지.
나한테 어느 정도 고마움을 느끼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니.
잘 꼬드겨서 부대원 한 명 늘어나면 이득이거든.
"...고마운 제안이긴 하지만."
난 나쁘지 않은 얘기라고 생각했는데.
정작 그녀는 조금 망설이는 모양새였다.
"뭐 거슬리는 부분이라도?"
"은혜를 갚고 싶다는 건 진심이에요. 하지만."
"하지만?"
"만약 다른 사람들에게 고통을 줘야 하는 명령 같은 걸 내리신다면, 제가 순순히 따를 수 있을까 싶어서."
그 얘기에.
나는 조금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았다.
"...제가 무슨 미친놈도 아니고."
날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거야.
"남들한테 고통을 주라는 명령을 내릴 사람으로 보이십니까?"
"네? 아닌가요?"
"...."
아니 뭐.
어쩌다 보니 눈앞의 이 여자에겐, 엄청난 고통을 줘버리긴 했지.
"큼. 그쪽은 조금 예외적인 경우였고."
이건 정말 억울하다.
정말 심각한 범죄를 저지른 약탈자 같은 경우가 아니고서야.
죄 없는 사람을 괴롭힌 적은 없었다.
머릿속에 그저 무능하단 이유로 내 요리를 강제로 먹게 된 한 간부의 얼굴이 아른거렸으나.
그건 대충 무시하고 넘어가고.
"아시다시피, 옛날부터 군인과 경찰은 서로 유기적으로 협력하는 관계였잖습니까."
"그건 그렇죠."
"각자 업무가 조금 다를 뿐, 국가를 수호한다는 궁극적인 목표는 같다고 봅니다. 저희 부대에 합류하는 것도, 그 협력의 연장선으로 생각해 주신다면."
조금 망설이는 듯했으나.
내 설득을 듣고는, 이내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
"알겠어요."
"좋은 선택이십니다."
난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겉으로는 잔잔하게 말을 이었다.
"곧바로 병사들한테도 전달할 테니, 머지않아 부대원들한테 지급되는 전용 장비들을 받을 수 있으실 겁니다."
"아, 네."
"부대에 대한 자세한 일은 차근차근 알아 가시면 되겠죠.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이걸로 내 용건은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 업무에 복귀하려고 했다.
그런데.
"아. 그러고 보니."
"네? 다른 볼일이라도...."
"아뇨. 그런 건 아니고."
잘 꼬드겨서 가입시킨 건 좋은데.
아직, 이 여자의 능력치를 확인해 본 적이 없었다.
'레벨 1 이상식욕자라고 했지?'
이상식욕자라는 직업은 처음 본다만.
그래 봐야 레벨은 1.
'괴물이었을 시절의 강함은 없을 테지.'
지하에서 싸웠던 괴물이 그대로 전력이 되었다면 참 든든했을 텐데.
아쉽긴 하지만.
군단에 가입한 이상 충분한 장비와 지원에 힘입어 빠르게 성장할 수 있다.
몇 개월만 지나면 든든한 전력이 되어줄 터.
"...?"
이상식욕자라는 직업이 어떤 특성과 스킬을 가지고 있을지 궁금하기도 하니.
그녀를 조금 유심히 바라보자.
곧, 특성이 발동했다.
[식재료 감별(강화)]
[이현진]
[직업 : 이상식욕자 Lv.1]
여기까진 얼마 전에도 본 내용이다.
문제는 그다음인데....
[능력치]
[힘 94]
[민첩 79]
[마력 65]
[행운 12]
[특성]
[식탐]
"...."
그 내용을 본 순간.
사고가 정지했다.
뭐지 이거.
버그인가?
'능력치가 왜 저래.'
부대에서 가장 높은 레벨을 가지고 있으며.
스탯 또한 가장 높은 게 바로 나다.
하지만.
그녀의 스탯은, 그런 나보다도 미세하게 높은 수준이었다.
'아니, 나도 모아 둔 포인트로 물약을 먹으면 순식간에 오르긴 하겠지만. 그래도 그렇지.'
어마어마한 스탯.
저게 레벨 1이라고?
"하, 하핫."
짐작 가는 이유가 없지는 않았다.
괴물이었던 그녀의 피와 살을 그렇게 분리해 버리긴 했다만.
그렇게 분리해 버린 공간은, 내가 만든 요리들로 다시 채워 버렸으니까.
당시 가지고 있던 힘에는 미치지 않겠지만.
그 힘 중 일부가 그녀에게 다시 돌아갔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다.
'...대박이군.'
이번 일로 얻은 보상들.
다른 것들도 그야 대단하다만.
"아까부터 왜 그렇게 쳐다보시는지...?"
이 영입 또한.
다른 보상들에 절대 꿇리지 않을 보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