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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APOCCAZADORRETIRADO / Chapter 8: 8

Capítulo 8: 8

7.

붉은 안개로 가득 찬 정원.

사람 손을 타지 않은 게 제법 된 듯 풀이 우거진 그곳에 3미터 체격의 리틀 오우거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그런 리틀 오우거의 모습은 무시무시하기 그지없었다.

외모를 말함이 아니었다.

애초에 몬스터들의 얼굴이 험악하고, 추악한 건 당연한 일.

무시무시한 것은 리틀 오우거의 몸뚱이였다.

그 몸뚱이는 놀라운 수준의 근육질이었다. 도무지 그 육체에서 나올 힘이 상상이 안 될 만큼.

무엇보다 무서운 것은 지금 리틀 오우거가 잠들거나 쉬는 게 아니라는 점이었다.

크르, 크르, 크르!

놈의 입에서는 새하얀 입김이 쉴 새 없이 나왔고, 놈의 부리부리한 붉은색 눈동자는 쉴 새 없이 주변을 훑었다.

놈은 분노로 가득 차 있었고, 그 분풀이를 토해낼 상대를 쉴 새 없이 찾고 있었다.

그 순간이었다.

스윽!

사람으로 보이는 것이 리틀 오우거의 영역에 접어들었다.

크르!

그 사실에 리틀 오우거는 바로 반응했다.

그러나 당장 그 안개 너머의 사람을 향해 달려들진 않았다.

리틀 오우거가 분풀이감을 찾는 건 맞지만, 그냥 단순히 지나가는 새나, 동물 따위에 분풀이를 할 정도는 아니었다.

"살려주세요!"

그러나 그 소리를 듣는 순간, 그 순간은 달랐다.

"살려주세요! 으악! 괴물이다! 살려주세요!"

크어어어!

그 사람이 내지르는 소리를 듣는 순간 리틀 오우거는 매우 엄청난 욕을 들은 듯한 표정과 함께 바로 괴성을 내지르며 그 사람을 향해 달려들었다.

"살려주세요! 으악! 괴물이다!"

그러자 곧바로 그 사람은 리틀 오우거를 피해 미친듯이 도망치기 시작했다.

크어어어!

그 사실에 리틀 오우거가 괴성을 내지르며 더더욱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런 리틀 오우거의 가속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슈퍼카들이 흔히 내세우는 제로백 속도가 처량하게 느껴질 만큼.

단숨에 거리가 좁혀지는 건 당연지사.

그 순간이었다.

도망치던 사람이 갑자기 하늘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고, 그 사실에 오우거가 놀란 눈으로 고개를 들었다.

크르?

사실 이쯤 되면 리틀 오우거도 분풀이를 포기했다.

하늘 위에 있는 것을 상대로 힘을 뺄 만큼 바보는 아니었으니까.

크르르!

실제로 리틀 오우거는 자신이 닿을 수 없는 곳이라는 것을 파악하는 순간 등을 돌렸다.

더 이상 저것에 관심을 주지 않고자 했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으악! 괴물이다!"

그러나 그것이 내지르는 소리를 듣는 순간.

투투투투!

그리고 그것이 내뿜는 무언가가 리틀 오우거의 피부를 파고드는 순간, 그 순간은 달랐다.

크어어어!

리틀 오우거가 다시 등을 돌리고는 그것을, 그 마네킹을 쫓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리틀 오우거가 먼 곳으로 가는 순간, 그 순간 김지운이 움직였다.

'시간이 얼마 없다.'

김지운은 잽싸게 김영훈의 방공호로 들어가는 입구를 찾았고, 그 안으로 들어갔다.

너무나도 순조롭게.

물론 들어갈 때는 마음대로였지만, 나올 때는 달랐다.

나갈 때 김지운이 마주하게 될 건 분노가 머리끝까지 오른 리틀 오우거가 될 테니까.

그러나 김지운은 그 부분을 걱정하지 않았다.

걱정할 이유가 없었다.

삑!

김영훈이 잘라준 손가락을 이용해 문을 열자, 보이는 드넓은 방공호.

그 방공호를 가득 채운 정말 엄청난 고가의 와인들 사이로 김지운은 볼 수 있었으니까.

금고 하나를.

그리고 그 금고 역시 김영훈의 손가락을 이용해 연 김지운은 마주할 수 있었다.

[룬(텔레포트)]

- 등급 : 레전더리

- 순간이동을 할 수 있다. 순간 이동이 가능한 거리는 마력 수치에 비례해 늘어난다. 스킬 랭크가 오를수록 순간 이동이 가능한 최대 거리가 증가한다.

- 20레벨 이상 습득 가능

- 음험한 사기꾼만 습득 가능.

자신이 바라던 그 스킬을.

그것을 본 김지운은 입가에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오랜만이군.'

이 스킬 룬을 마주한 건 이번이 두 번째였으니까.

58화 17화. 리틀 오우거 (1).

1.

어비스의 헌터들이 가장 집착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 질문에 관광객들은 아이템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나 헌터들의 생각은 달랐다.

"스킬보다 중요한 건 없다."

헌터들은 그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스킬에 집착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스킬은 그 누구도 빼앗을 수 없으니까."

최악의 순간에 믿을 수 있는 건 자신이 이룩한 능력치와 스킬 슬롯의 스킬뿐이라는 것.

하지만 좋은 스킬이라고 해서 헌터에게 유용한 것은 아니었다.

스킬을 쓰는 데에는 생각 이상으로 많은 재능 그리고 많은 숙련도를 필요로 했다.

사례는 많았다.

예를 들어 염력 스킬, 이 스킬은 잘 쓰기만 하면 그 효용성은 그 어떤 스킬보다 높았다.

그러나 그 염력 스킬을 퍼스트 킬러만큼 제대로 쓸 수 있는 헌터는 많지 않았다.

그나마 많은 이들이 습득해서 경험이나 노하우를 들을 수 있는 스킬 같은 경우는 나았지만, 그마저도 불가능한 경우가 있었다.

텔레포트 스킬이 그랬다.

이 스킬의 존재는 헌터들 사이에서 나름 알려져 있었다.

텔레포터 브루스, 그 때문이었다.

어비스가 등장한 초창기에 미국의 이글스 클랜의 헌터 브루스는 최초의 텔레포터로 존재감을 알렸다.

그 시기에 활동하던 헌터들 중에서는 꽤 유명했다. 김지운이나 이수연, 김영훈보다 더.

그도 그럴 것이 모든 것이 미지의 영역이고, 공포의 영역인 어비스에서 텔레포트 능력은 솔직히 사기에 가까웠다.

그러나 그 명성은 오래 가지 않았다.

텔레포터 브루스는 오만했고, 어비스는 오만한 자를 용납하지 않았으니까.

그렇게 그가 죽은 후에 몇몇 헌터들이 텔레포트 능력을 선보이긴 했지만, 그 무렵에 살아남은 헌터들은 자중하는 법을 알았고, 대부분은 텔레포트 능력을 숨겼다.

어쨌거나 텔레포트 스킬은 존재했고, 많은 헌터들이 그 스킬을 얻기 위해 노력했다.

'그때 가지고 싶어서 몸부림을 쳤었는데.'

그중 가장 노력한 건 다름 아니라 김지운이었다.

이상할 건 없었다.

생존을 그 무엇보다 우선시하는 김지운에게 있어서 다른 그 어떤 스킬보다 탐나는 게 텔레포트 스킬이었으니까.

그러나 어떤 대가를 지불하려고 해도, 시장에 나오는 물건이 없었다.

'결국 인디고 존에서 얻었지.'

그러다가 결국 그때, 그 절망의 무대에 돌입했을 때, 그때 김지운은 텔레포트 스킬룬을 얻을 수 있었다.

천운이었다.

'덕분에 목숨을 수백 번 구했고.'

그 텔레포트 스킬 덕분에 김지운은 홀로 인디고 존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으니까.

즉, 김지운은 경험이 있었다.

텔레포트 스킬을 쓴 경험이.

그것도 그냥 쓴 게 아니라 목숨이 걸린 가장 절박한 순간에서 사용한 경험이 수없이 많았다.

덕분에 김지운은 잘 알았다.

'이동 거리는 마력 스탯 1포인트에 1미터.'

텔레포트 스킬의 특징들을.

'F랭크에서 최대 이동 거리는 100미터, 이후 랭크가 오를 때마다 2배수씩 증가. 쿨타임 역시 이동 거리에 비례.'

스킬창이 보여주지 않는 디테일한 특징들을.

'직접 가본 장소로만 이동이 가능. 그곳에 물체가 있을 경우에는 크래셔가 일어난다.'

그리고 그 리스크까지.

물론 가장 중요한 건 그거였다.

텔레포트는 그냥 머릿속에 원하는 장소로 이동하는 것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시전되는 게 아니라는 것.

일단 두 가지 문제가 있었다.

하나는 텔레포트를 하기 위해서는 자기의 존재 그리고 자신이 가진 소유물에 대한 명확한 인지가 필요하다는 점이었다.

단순히 머리로 알고 눈으로 본다, 같은 개념이 아니었다. 그 존재를 인지해야 했다.

또 다른 문제는 이동 후였다. 먼 거리를 이동할수록 텔레포터에게는 강력한 흔들림이 왔다.

일종의 전신에 뇌진탕 같은 게 오는 것과 비슷했다.

그것을 피하기 위해서는 역시 능력과 경험이 필요했다. 접시 위에 물이 가득 찬 컵을 올려놓고 달려도 컵의 물이 흘러내리지 않는 능력이, 자신의 존재를 잃지 않는 능력이.

정리하면 존재감을 인지하는 능력이 텔레포트에는 가장 중요했고, 김지운에게는 그 능력이 있었다.

그렇기에 김지운은 시간낭비하지 않았다.

김지운, 그가 손가락을 튕겼다.

2.

이수연 그리고 김영훈.

그 둘은 전투가 치러지는 김영훈의 집으로부터 먼 곳에 대기하고 있었다.

대화는 없었다.

그들이 있는 곳은 김포국제공항이 아니었고, 도처에 어떤 몬스터가 있어도 이상할 게 없었으니까.

무엇보다 그들은 김지운이 아니었다.

물론 말뿐인 대화가 없었을 뿐, 그 둘은 마치 소꿉장난을 하는 애들처럼 머리를 맞대고 아이패드 위를 쉴 새 없이 움직였다.

[어쩌다 이렇게 됐냐?]

[그러게. 인생 참 빌어먹네.]

[그보다 와인은 어떻게 할 거야? 저거 방공호가 무한동력으로 돌아가진 않을 거 아니야?]

[일단 시간은 제법 있는데, 그래도 리틀 오우거 새끼부터 치우고 어떻게든 잘 돌려야지. 거기 와인이 인류 최후의 와인이야.]

[그러니까 그냥 나처럼 위스키나 모으지. 그냥 적당한 곳에 때려 박으면 그만인데.]

[야, 어떻게 위스키랑 와인이랑 비교해? 와인은 신이 내린 선물이라고!]

[아무리 처마셔도 취하지도 않는 거 무슨 술이라고.]

[어휴, 술고래년. 장담하는데 넌 간암으로 죽을 거다.]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몬스터한테 씹어 먹히는 것보다 간암 때문에 빌빌 거리면서 뒈지고 싶다.]

그 둘이 하는 이야기는 남들이 보면 우스꽝스럽기 그지없는 잡담이었다.

어비스의 헌터, 그중에서 별을 하나도 아니고 다섯 개 이상 가진 헌터들이라고 보기에는 헛웃음이 나올 만큼.

하지만 오히려 이게 별을 가진 헌터들의 특징이었다.

일단 별을 가진 헌터들은 눈앞에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이 오더라도 절망에 빠지지 않았다. 코앞에 다가온 죽음도 받아들이기는커녕 살아남기 위한 의지를 불태웠다.

애초에 죽음과 절망에 쉽게 물드는 자는 어비스에 들어올 수가 없었다.

[그래서 네 위스키는 멀쩡하냐?]

[일단은. 몬스터들이 술에 취해서 약탈하는 게 아닌 이상.]

두 번째 특징은 지금 이수연이나 김영훈이 보여주는 것처럼 집착이 남다르다는 점이었다.

비단 둘만 그런 게 아니라 별을 가진 헌터들은 대부분 어떠한 것에 집착했다.

그리고 그런 비이상적인 집착이 있어야 어비스에 거듭 들어갈 수 있었다.

그게 아니면 이미 많은 것을 이룩한 헌터들이 그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는 어비스에 몸을 던질 이유가 없었으니까.

물론 그들도 알았다.

[우리도 미친놈이다. 이런 세상에서 술 생각이나 하고.]

자신들이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킬러만큼은 아니지만.]

[아무렴.]

그러나 그런 별을 가진 헌터들조차도 이상한 놈으로 취급되는 게 바로 김지운이었다.

모두가 안 된다고 생각했을 때 김지운은 오히려 된다고 덤벼들었다.

물론 결과를 보면 언제나 김지운이 옳았다.

그래서 모두가 퍼스트 킬러를 인정했고, 두려워했다.

[그래도 이번은 좀 힘들지 않으려나?]

문제는 지금 김지운에게 주어진 과제가 결코 쉽지 않다는 점이었다.

[들어갈 때는 마음대로였지만 나올 때는 쉽지 않을 텐데?]

김영훈의 집 밖에서 리틀 오우거를 유인하는 것과 집 안에서 리틀 오우거를 유인하는 것, 이 차이는 엄청났으니까.

당장 집 안에서 나오려는 순간 리틀 오우거의 지독한 포스에 노출된다는 의미였다.

결정적으로 리틀 오우거는 바보가 아니었다. 한 번 속은 방법에 또 속을 가능성은 없었다.

물론 방법이 하나 있었다.

[텔레포트를 쓰면?]

[그게 말처럼 쉬울까? 그 정도 스킬을 습득하자마자 쓰는 게?]

그쯤이었다.

둘이 필담을 멈추고 동시에 같은 방향을 바라봤다.

사냥꾼의 눈빛을 하고서.

그런 그들의 눈에 새하얀 안개 너머로 무언가가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사람의 형태를 한 것이.

그러나 사람이라고 확신할 수는 없었다. 산 사람보다는 사람 모습을 한 것이 더 많은 세상이었으니까.

그것을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하나.

휘익, 휘익!

양팔을 머리 위로 들고 흔드는 것.

그것을 본 이수연과 김영훈도 양팔을 머리 위로 들고 흔들었다.

[문제없었나?]

김지운, 그가 돌아왔다.

그리고 그것을 보는 순간 이수연과 김영훈은 확신했다.

김지운이 텔레포트 스킬을 써서 나왔음을.

'배웠었구나.'

더불어 이번이 처음이 아님을.

'그것도 제대로.'

그게 아니면 이렇게 텔레포트 스킬을 습득하자마자 바로 완벽하게 쓰는 게 가능할 리 없었으니까.

그때 김지운이 김영훈에게 가방을 건네줬다.

김영훈이 밖으로 상황 파악을 위해 나올 때 미처 챙기지 못했던 아이템들이었다.

[거래는 끝이다.]

텔레포트 스킬 룬에 대한 대가이기도 했다.

그 사실에 김영훈은 쓴웃음을 머금었다.

딱히 이 거래에 불만을 가질 생각은 없었다.

불만은커녕 김영훈은 이번 거래에서 많은 것을 얻었다. 

애초에 손도 못 대던 자신의 집에 있던 아이템들을 얻었고, 헬의 축복도 얻었다.

그 대가로 텔레포트 스킬룬과 인디고 등급의 무지개꽃이 소모되긴 했지만 아쉬울 건 없었다.

[고맙다.]

결정적으로 김영훈은 마주했다.

[살아있어줘서.]

자신과 함께 어비스를 모험했던 이들을.

그렇게 아이패드를 든 김영훈의 모습에 이수연이 미소를 지었다.

반면 김지운은 달랐다.

그는 제 손에 든 스마트폰을 터치하고는 보여줬다.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지?]

그 질문에 김영훈은 바로 대답했다.

[내 집을 되찾아야지.]

김영훈은 자신의 집을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그리고 그건 김지운만이 아니라 여기 있는 이들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어비스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것 중 하나는 돌아가서 쉴 곳이었으니까.

무엇보다 김영훈에게 집은 그냥 단순한 집이 아니었다.

자신이 모은 모든 것이 있는 곳이었다.

[헬의 축복도 들어왔겠다, 아이템도 손에 넣었겠다, 30레벨만 찍으면 리틀 오우거는 우습지.]

계획도 있었고, 김영훈에게는 그 계획을 달성할 만한 능력 역시 있었다.

그런 김영훈에게 김지운은 스마트폰을 터치한 후 보여줬다.

[리틀 오우거 처치해주겠다.]

그 말에 김영훈은 물론 이수연도 놀란 표정을 지었다.

지금 도망치는 것도 쉽지 않은 리틀 오우거를 잡는다?

어림도 없는 소리

그러나 문제는 그 소리를 지껄이는 게 김지운이란 것이었다.

그는 잡을 수 있다, 라고 한 몬스터는 무조건 잡았었다. 그 몬스터가 어떤 몬스터이든 간에.

그렇기에 김영훈은 질문했다.

[뭐가 필요하지?]

대가를.

그리고 그 질문에 김지운이 스마트폰을 짧게 터치하고 보여줬다.

[제시.]

3.

김지운이 63빌딩으로 돌아왔다.

"대장, 하던 일은 잘 됐습니까?"

"거래는 무사히 됐다."

무사히, 그 말에 이영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솔직히 기대보다는 걱정이 큰 거래였으니까.

"다행입니다."

그러다가 이내 깨달았다.

"가만, 그럼 지금 대장은 텔레포트를 배운 겁니까?"

그 질문에 김지운은 고개를 끄덕였고, 그 대답에 이영후는 머릿속으로 상상을 했다.

지금도 말도 안 되는 능력을 보여주는 김지운이 텔레포트로 이곳저곳을 움직이는 것을.

그 상상에 이영후는 등골이 오싹해졌다.

기분 좋은 오싹함이었다.

"잘됐네요."

김지운이 강해져서 가장 이득을 보는 건 그 누구도 아닌 그를 따르는 이들이었으니까.

"아, 그보다 케이크 미리 하나 꺼내뒀습니다. 드실래요?"

그렇게 김지운을 위해 준비한 케이크를 가져오려는 이영후에게 김지운은 말했다.

"아직 해야 할 게 더 있다."

"예?"

아직 케이크를 맛볼 때가 아니라고.

"거래를 했다. 리틀 오우거를 사냥해주기로."

그 설명에 이영후는 바로 반응을 보이지 못했다. 인간이 뇌가 정지하면 짓는 표정을 보여줄 뿐.

이윽고 뇌가 다시 돌아갔을 때 이영후는 기겁하며 말했다.

"오, 오우거요?"

이영후는 오우거는 물론 리틀 오우거를 본 적조차 없지만, 나름 관심은 있었다.

정확히는 어비스 관광객들에게 오크나, 트롤, 웨어 울프나 오우거는 동물원으로 따지면 사자, 호랑이, 코끼리, 판다 같이 아주 인지도가 높고 보고 싶은 몬스터였다.

당연히 관광객들은 인지도 높은 것을 보고 싶어 했고, 그 이야기를 들은 헌터들은 대답했다.

트롤이 등장하면 일단 도망칠 수 있을 때까지 같이 도망치겠지만, 오우거가 등장하면 거기서 관광객을 버리고 도망칠 거라고.

그게 클랜이 내린 수칙이라고.

"그 미치광이 괴물을 잡으시겠다고요?"

이영후가 놀라는 건 그 때문이었다.

"아니, 대체 왜 잡으시는 겁니까?"

그 의문에 김지운은 대답했다.

"말했다시피 거래를 했다. 리틀 오우거를 잡아주는 대가로 아이템 하나를 받기로."

거기까지였다.

김지운은 자신의 거래 내용을 자세히 말해주지 않았다.

"조금 시간이 걸릴 거다."

시간이 금인 세상에서, 이번 사냥을 위해선 적지 않은 시간을 써야 했으니까.

"제52보병사단으로 가서 무기를 챙겨 와야 한다."

그 말에 이영후가 조심스레 물었다.

"어떤 겁니까?"

"M15."

그리고 나온 대답에 이영후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게 뭡니까?"

그 질문에 김지운이 대답했다.

"대전차지뢰다."

59화 17화. 리틀 오우거 (2).

3.

"조심하시죠."

김지운이 떠나는 순간 이영후는 진심을 담아 걱정을 표했다.

김지운이 관악산과 여의도를 30분 만에 주파하긴 했지만, 그건 과거의 일이었다.

그동안 지하철 안에 무슨 생겼을지는 아무도 몰랐다.

그러나 그 염려가 무색할 만큼 김지운은 저번보다 더 빠르게 관악산을 향해 이동했다.

당연했다.

검은 이무기의 역린 장갑으로 안개는 물론 더 이상 어둠도 김지운에게는 문제가 안 되는 상태.

크르르!

'웨어 울프 무리가 들어왔군.'

그리고 문제가 생기더라도 김지운에게는 아무래도 좋았다.

탁!

이미 지나갔던 길, 손가락을 한 번 튕기는 것으로 김지운은 그 문제를 건너뛸 수 있었으니까.

덕분이었다.

김지운은 이제 20분 만에 관악산에 도달할 수 있었다.

동시에 마주했다.

이제는 정말 무협 소설에서 나올 법한 산채를, 산적들의 아지트가 자리잡은 관악산을.

나무를 잘라 목책을 세우는 것은 물론 조잡하지만 집도 지어져 있었다.

"대장? 언제 오셨습니까?"

"조금 전에 왔다. 그보다 많이 바뀌었군."

그건 김지운의 예상보다 빠른 변화였다.

그리고 쉽지 않은 변화였다. 나무 등으로 집을 짓는 건 생각보다 많은 기술과 경험을 요구하는 일이었으니까.

"누가 지었지?"

"아, 여기 머리 좋은 애들 많은 곳 아닙니까? 알아서 세팅해주니까 뚝딱뚝딱 만들더군요. 역시 이래서 사람은 공부해야 합니다."

그런 박준호의 설명에 김지운은 납득했다.

전문적인 지식의 보고라고 할 수 있는 대학, 그곳의 지식인들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

더욱이 건설 자체는 더 쉬워졌다.

"레벨이 오른 모양이군."

"열심히 오는 몬스터들 때려잡다 보니까 오르기 싫어도 오르더라고요."

이제는 헌터가 되어 근력 스탯을 올리면 무거운 나무기둥 하나도 혼자서 짊어질 수 있었으니까.

"그런데 무슨 일이십니까?"

감탄은 거기까지였다.

"이거 구경하러 오신 건 아닐 테고."

"제52보병사단에서 무기는 얼마나 가져왔지?"

그 물음에 박준호는 대답 대신에 바로 고개를 돌려 외쳤다.

"지호야!"

"예."

"무기 상황."

그러자 근처에 있던 대학생으로 보이는 덩치 좋은 사내 한 명이, 군대에서 제대하지 얼마 안 된 듯 짧은 헤어스타일이 인상적인 사내가 바로 품에서 서류를 건넸다.

이제까지 박준호가 제52보병사단에서 가지고 온 무기의 재고를 정리해 둔 서류였다.

"꽤 많이 가져왔군."

"최대한 챙겨야죠. 언제 무슨 일이 생길 줄 알고 놔둡니까? 대장도 오케이했고."

당연한 말이지만 그건 김지운이 허락해 준 일이었다.

본래 김지운의 성격을 생각하면 총기로 무장한 자들을 늘리는 것은 용납될 수 없는 일이었다.

실제로 지금도 김지운은 여의도에 있는 생존자들 중에 극히 소수에게만 총을 허락하고 있었다.

그러나 관악산은 상황이 달랐다.

일단 김지운 입장에서 이곳은 흑랑 클랜이랑 손을 잡은 오산공군기지가 노리는 지역이었다.

충분한 무장상태를 갖춰야 한다는 의미

또 다른 문제는 제52보병사단의 존재였다. 그냥 거기에 무기를 놔두면, 결국 다른 누군가가 챙기고 갈 가능성이 높다는 것.

그 다른 누군가에는 코볼트 같은 몬스터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 몬스터나 다른 생존자에게 빼앗길 바에는 차라리 믿을 만한 박준호가 가지고 있는 게 나았다.

제52보병사단에 가기 전에 이곳에 온 이유였다.

"필요한 게 있으십니까?"

"있다."

그리고 김지운의 예상대로 이곳에 있었다.

"뭐가 필요하십니까?"

"M15."

"아, M15이요. 자동소총 말하시는 건가요?"

그때였다.

옆에 있던 지호라는 사내가 말했다.

"M15라는 총은 없습니다."

"응? 그럼 여기 적힌 건 뭔데?"

"대전차지뢰입니다."

"뭐?"

그 설명을 듣는 순간 박준호가 놀란 눈으로 김지운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니, 대장. 대전차지뢰가 필요하시다고요? 무슨 오우거라도 잡으실 생각이십니까?"

말을 뱉는 박준호의 입가에는 실소가 걸려 있었다.

장난으로 내뱉은 말이라는 의미.

"어?"

그러나 대답 없이 자신을 바라보는 김지운의 모습에 박준호의 미소는 사라지기 시작했다.

"대장 설마?"

알았으니까.

"리틀 오우거를 잡을 거다."

김지운이 진심임을.

4.

김지운은 필요한 무기를 챙기는 순간 바로 김포 고촌읍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모든 것이 갖춰진 이상 전투를 망설일 이유는 없었다.

그리고 김지운이 등장했을 때 김영훈의 앞마당에 앉아 있던 리틀 오우거는 바로 반응했다.

크르!

놈은 바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김지운이 만든 마네킹을 쫓아 움직였다.

스윽!

그쯤에서 움직이는 이들이 또 있었다.

[킬러 왔다.]

이수연과 김영훈, 둘이 전장을 향해 움직였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어떻게 잡으려나?]

하나는 김지운이 리틀 오우거를 사냥하는 방법이 궁금하다는 것.

[뭐든 우리가 나설 일만 없기를 바라야지. 솔직히 구해줄 자신이 없다.]

다른 하나는 혹시 모른 상황이 일어났을 때 김지운을 구해주기 위해서였다.

두 이유 중에 후자의 이유가 더 컸다.

단순히 김지운이 친구라서 그런 건 아니었다. 분명 그것도 이유이긴 했지만 어비스의 헌터들은 기본적으로 다른 무엇보다 자신의 생존을 우선시 여겼다. 이기적인 게 아니라 그게 기본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이수연과 김영훈은 결론을 내렸다.

[그래도 해봐야지. 킬러 뒈지면 우리도 좋은 꼴 보기 힘든데.]

김지운이 목숨을 부지하는 게 자신들의 생존 확률을 가장 높여주는 방법이라고.

그만큼 김지운에 대한 둘의 믿음은 컸다.

[그래서 잡을 수 있을까?]

달리 말하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지금 김지운의 사냥 실패 가능성을 꽤 높게 보고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리틀 오우거, 이 새끼 진짜 약아빠진 새끼인데.]

리틀 오우거의 무서움이 그저 그 흉포함과 힘뿐만이 아니라는 것.

그때였다.

콰광!

그 둘의 귓속으로 강렬하기 그지없는 소리가 들렸다.

폭탄이 터지는 소리가 아니었다.

아주 거대한 무언가가 땅에 떨어지는 소리.

그리고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이수연과 김영훈은 바로 떠올릴 수 있었다.

'돌을 던졌구나!'

그 예상대로였다.

크어어어!

김지운이 염력을 이용해 움직이는 마네킹을 보는 순간 리틀 오우거는 이미 준비해둔 돌멩이를 집어 던졌다.

물론 리틀 오우거의 기준에서 돌멩이란 거지, 사람 기준에서는 사람 몸뚱이만 한 돌이었고, 그런 돌은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그리고 섬뜩할 정도로 정확하게 김지운의 마네킹에 명중했다.

심지어 리틀 오우거의 주변에는 놈이 가져온 돌덩이들이 하나도 아니고 수십 개가 있었다.

리틀 오우거가 무서운 이유 중 하나였다.

놈은 헌터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영리했으니까.

그러나 김지운도 그냥 물러서진 않았다.

'마네킹은 충분히 준비했다.'

다시금 마네킹 하나를 움직였고, 리틀 오우거는 다시금 돌멩이를 들어 마네킹을 향해 던졌다.

콰광!

이번에는 김지운도 마네킹을 움직이며 돌멩이를 피해냈다.

크어어어!

그 사실에 리틀 오우거가 분노를 토해내며 가지고 있던 거대한 몽둥이를 들었다.

콰앙!

그리고 그대로 몽둥이로 땅을 내리쳤다.

콰왕!

거듭해서.

그뿐이었다.

리틀 오우거는 제 분노를 미친 듯이 표출했지만, 김지운의 마네킹을 향해 달려들지 않았다.

투투투!

김지운이 마네킹에 끼워놓은 K2자동소총으로 사격을 해도 리틀 오우거는 분노를 표할 뿐 접근하지 않았다.

알았으니까.

저것을 쫓아봤자 의미가 없음을.

투투투!

때문에 거듭된 총격에도 몸을 웅크릴 뿐 대응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정도면 충분했다.

투투투!

리틀 오우거의 질기디질긴 가죽과 그 가죽 너머에 있는 매우 두껍고 밀도 높은 지방 그리고 그 너머에 존재하는 강철 같은 근육 앞에서 K2의 총알은 사람으로 따지면 꿀벌의 벌침 정도일 뿐이었으니까.

아프긴 했다.

그러나 죽을 정도는 아니었다.

이쯤 되면 김지운 입장에서도 선택을 해야 했다.

이런 식으로 공격을 하는 것은 그저 총탄을 낭비하는 것에 불과할 따름이었으니까.

무엇보다 위험한 건 시간은 김지운의 편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때문에 김지운은 망설이지 않았다.

그가 마네킹을 물리고 모습을 드러냈다.

크르르!

그러자 리틀 오우거의 반응이 달라졌다.

크어어!

놈이 이제까지와 달리 김지운을 향해 전력을 다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김지운 역시 움직였다.

그런 그 둘의 추격전은 그리 길어 보이지 않았다.

쿵, 쿵, 쿵!

김지운이 달리는 속도도 빨랐지만 리틀 오우거의 속도는 감히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더 빨랐으니까.

또한 리틀 오우거는 김지운을 잡을 필요도 없었다.

포스의 영향이 미치는 거리가 되는 순간 김지운은 균형을 잃고 그대로 쓰러질 테니까.

당연히 김지운 역시 긴 추격전을 벌일 생각은 없었다.

'왔다.'

김지운, 그가 미리 정해둔 무대에 오는 순간 바로 주저 없이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그의 몸이 그대로 사라졌다.

텔레포트가 발동되는 순간.

크르?

그 사실에 리틀 오우거가 뜀박질을 멈추고 고개를, 눈알을 굴려 사방을 훑었다.

탕!

그때 김지운이 총성으로 자신의 위치를 알렸고, 리틀 오우거가 그에 바로 반응했다.

고개를 돌렸다.

크어어어!

그리고는 내지를 수 있는 가장 흉포한 울음을 토해냈다.

당장 김지운을 때려죽이기 위한 분노를 토해내며 움직였다.

그 순간이었다.

크어어!

발걸음을 몇 걸음을 내디딘 리틀 오우거가 갑자기 그 자리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는 두 눈알을 굴렸다.

그것은 본능이었다.

지금 상황이 자신에게 위험하다는 것을 감지하는 본능.

그게 어비스가 무서운 이유 중 하나였다.

그렇게 위기를 감지한 리틀 오우거는 김지운을 향해 더 이상 걸음을 내딛지 않았다.

크르르르!

오히려 그 순간 리틀 오우거는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그 사실에 김지운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그와 동시에 김지운이 들고 있던 K2로 리틀 오우거를 겨누고는 그대로 방아쇠를 당겼다.

투투투!

울린 총성이 리틀 오우거의 피부에 꽂혔다.

그러나 그 공격에도 리틀 오우거는 뒷걸음질을 멈추지 않았고, 분노하지 않았다.

오히려 눈빛을 빛냈다.

네놈이 가진 수작은 뻔히 알았다, 라는 눈빛을.

승자의 눈빛을.

그 순간이었다.

콰과광!

뒷걸음질 치던 리틀 오우거의 발아래에서 거대한 폭발이 그대로 치솟았다.

그야말로 천둥소리와 같은 폭발이!

그 폭발과 함께 쓰러진 리틀 오우거.

크르르?

그런 리틀 오우거의 입에서 가장 먼저 나온 건 의문에 찬 울음소리였다.

그러나 그 소리는 오래 가지 않았다.

봤으니까.

자신의 왼쪽 다리는 무릎 아래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짓뭉개진 상태인 것을.

그것을 보는 순간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이 리틀 오우거를 찾아왔다.

크어어어!

리틀 오우거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전부 예상대로 나와주는군.'

김지운이 기다렸던 비명이.

'하나부터 열까지.'

말 그대로였다.

김지운은 리틀 오우거가 마네킹을 쫓지 않고 돌멩이를 던지리란 것도, 자신을 쫓다가 자신이 사라지면 그것을 의심하리란 것도, 전부 예상하고 있었다.

잡아봤으니까.

수도 없이 많은 오우거들을.

리틀 오우거는 물론 오우거에, 불러드 오우거, 심지어 오우거들의 정점이라고 여겨지는 검은 이빨도 잡아본 적이 있었다.

때문에 김지운은 애초에 대전차지뢰를 땅에 매설하는 방법으로 리틀 오우거를 잡을 생각이 없었다.

정확히는 그 방법 자체가 그다지 성공확률이 높지 않았다.

수백 개가 넘는 대전차지뢰를 매설해도 재수가 없으면 리틀 오우거가 밟지 않을 수도 있었다.

더욱이 김지운이 가지고 온 대전차지뢰의 개수는 8개에 불과했다.

김지운이 아무리 힘이 좋다고 하더라도 개당 10킬로그램을 훌쩍 넘기는 대전차지뢰를 수백 개를 들고 다닐 수는 없는 일이었으니까.

또한 많이 가지고 다닐 필요도 없었다.

이제는 A랭크가 된 김지운의 염력을 이용하면 대전차지뢰를 움직이는 것은 일도 아니었으니까.

즉, 김지운에게 필요한 건 하나였다.

리틀 오우거가 잠시 멈춘 후에 움직이는 것.

그리고 김지운이 바라던 대로 상황이 흘러갔다.

리틀 오우거가 움직이는 순간 어느새 놈의 발 아래에 깔린 대전차지뢰는 훌륭하게 제 역할을 해냈다.

리틀 오우거의 왼쪽 다리를 빼앗았다.

크어어어어!

물론 이것만으로 리틀 오우거는 죽지 않았다. 배에 구멍이 나더라도 몇 시간을 버티는 게 리틀 오우거란 생명체였다. 고작 다리 하나 날아갔다고 해서 당장 죽을 일 따위는 없었다.

그저 기동력이 사라졌을 뿐.

김지운 역시 대전차지뢰 하나로 리틀 오우거를 처치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았고, 기동력을 빼앗은 것 정도면 충분했다.

툭!

바닥에 쓰러진 채, 이제는 기어갈 수밖에 없는 리틀 오우거의 주변에 대전차지뢰를 대놓고 놓아두면 될 뿐이었으니까.

그 후에 기다리면 될 뿐이었으니까.

콰과과광!

대전차지뢰가 터지기를.

이윽고 김지운이 기다리던 소리가 들렸다.

[리틀 오우거를 처치했습니다.]

[도감에 리틀 오우거가 등록됐습니다.]

[근력이 2포인트 상승했습니다.]

5.

강렬하기 그지없는 폭음이 들렸을 때 이수연과 김영훈은 직감했다.

'킬러가 잡았다!'

김지운의 사냥 가능성이 높아졌음을.

그리고 고요함이 내려앉는 순간 둘은 확신했다.

사냥이 끝났음을.

그 확신에 부응하듯 김지운이 그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거기서 대화는 없었다.

김지운이 턱짓을 했고, 그 턱짓에 김영훈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내 걸음을 내디뎠다.

이윽고 그들 모두는 김영훈의 집으로 들어갔다.

"후우."

공기여과장치 덕분에 깨끗한 공기가 가득 한 그곳으로.

"여길 다시 오는구나."

그렇게 집으로 돌아온 김영훈은 어느 때보다 감흥으로 가득 찬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러나 그 감흥은 오래 가지 않았다.

"그럼 컴백홈 축하주로 한 병 까볼까?"

이수연이 잽싸게 벽을 가득 채운 와인셀러에서 와인 하나를 꺼냈고, 그것을 보는 순간 김영훈이 소리쳤다.

"야! 손 떼! 그거 로마네 콩티야!"

"아, 그거 유명한 거 아니야? 잘 됐네? 기념비적인 날 깔만한 녀석이네."

"1945년 빈티지라고! 이제 경매에도 안 나오는 물건이야!"

"그래? 아이고, 난 몰랐지. 내가 술은 한 잔도 못 하는 숙맥이라서 말이야."

"지랄하네. 일부러 너 그거 골랐지?"

"아니, 나 술 모른다니까. 어떻게 일부러 6억짜리를 고르겠어?"

김영훈은 이제부터 치러야 했으니까.

"김영훈."

"······알아."

집을 찾아준 대가를.

물론 이미 어떤 대가를 치를지는 이야기한 상태였다.

"따라와."

김영훈이 바로 김지운을 안내했다.

"마녀, 너도."

"나? 에이, 특별한 곳에 갈 텐데 내가 어떻게 따라가. 난 여기에 있을 게. 일 보고 와."

"와인 훔쳐가는 꼴을 두고 보느니, 그냥 내 비밀금고를 들키는 게 낫지. 그냥 따라와."

말과 함께 김영훈이 와인셀러 한 곳을 열더니, 그 후에 와인들을 새로 배치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다른 곳에 있던 와인셀러 하나가 옆으로 움직이며 문 하나가 빠끔히 모습을 드러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손가락 열 개 모두의 지문인식 그리고 홍채 인식, 마지막으로 김영훈이 가진 열쇠까지.

그 모든 과정을 거친 후에야 비로소 문이 열렸다.

비밀 금고였다.

그러나 막상 그 엄청난 보안에 비해 비밀 금고 안에는 단 하나의 아이템만이 있었다.

마치 악어 가죽으로 만든 듯한 조끼 하나가.

그러나 그것을 본 김지운과 이수연의 눈빛은 달라졌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니드호그의 가죽 조끼."

이 아이템은 어비스의 헌터들 사이에서도 전설, 그 이상의 값어치로 평가 받는 아이템이었으니까.

[니드호그의 가죽 조끼]

- 아이템 등급 : 레전더리

- 28레벨 이상 착용 가능

- 공격력 : F 랭크

- 내구도 : B-랭크

- 착용 시 마력 100포인트 증가

- 착용 시 마력 회복 속도 100퍼센트 증가

- 착용 시 마력 소모량 30퍼센트 감소

- 니드호그의 가죽으로 만든 조끼다. 니드호그의 강력한 마력을 품고 있다.

등급 자체는 전설 등급으로 분류되지만, 헌터들은 신화 등급으로 따로 분류하는 아이템이었으니까.

옵션 역시 그럴 만했다.

가뜩이나 마력이 부족한 헌터들에게 이것보다 더 끝내주는 아이템은 없었다.

여기에 하나 더, 내구도가 B-랭크라는 건 엄청난 것이었다.

자동소총 따위로는 결코 뚫리지 않는다는 의미.

"이걸 이렇게 보네. 원래는 항상 입고 다녔었잖아? 목욕할 때도."

그래서 김영훈은 항상 이것을 가지고 다녔다.

"그런데 왜 여기 둔 거야?"

그러나 이곳을 나갈 때는 달랐다.

김영훈은 이 니드호그의 가죽 조끼를 밖으로 가지고 나가지 않았다.

"돼지 목에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채우면 돼지가 어떤 꼴이 될 지는 너무 뻔하니까."

이 아이템의 레벨 제한은 28레벨.

당장 김영훈 입장에서는 쓸 수가 없었고, 너무나도 귀했기에 여기에 두고 나갔다.

어쨌거나 이제는 더 이상 김영훈의 물건이 아니었다.

"킬러, 약속대로."

거래를 했으니까.

"세 달만 빌려주는 거다."

이 엄청난 놈에 대한 소유권을 김지운에게 석 달 동안 넘겨주기로.

"세 달 후엔 무조건 돌려주는 거야. 우리 사이니까 믿는다."

그렇게 김영훈이 김지운에게 니드호그의 가죽 조끼를 건네줬고, 그것을 받아든 김지운은 말했다.

"물론이다."

짧게 대답을 하고 조끼를 챙기는 김지운.

"그런데 킬러, 당장 쓰지도 못하는 아이템은 왜 챙기는 거야?"

그때 나온 이수연의 질문에 김지운은 대답했다.

"못 쓰면 쓸 수 있게 만들면 된다."

그건 별 문제가 아니라고.

"그럼 다음에 보자."

어쨌거나 이제 모든 게 끝났고, 김지운은 이제 준비했다.

"그때까지 살아있어라."

"잠깐, 그러지 말고 한잔 해. 로마네 콩티까진 아니더라도 괜찮은 와인 하나 까줄게."

"미안하지만 시간이 없다."

"시간이 없다고?"

"더 늦으면 케이크가 너무 녹아버릴 테니까."

김지운, 그가 집으로 돌아갔다.

"대장!"

그리고 그런 그를 이영후가 반겼다.

"좆됐습니다, 어비스넷 서버 내려간 거 같습니다!"

60화 18화. 업데이트 (1).

1.

아포칼립스가 시작된 여의도.

그곳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에게 있어 김지운의 존재는 절대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김지운의 부재 속에서도 여의도의 생존자들은 흔들림 없이 자신의 역할을 수행했다.

둘 덕분이었다.

"여의도역에 설치된 함정에 도그블린이 걸렸다. 도그블린 무리를 사냥하러 갈 헌터들을 모집한다."

일단 고강수, 그는 김지운보다 더 확실한 생존자들의 리더가 되어 있었다.

당연했다.

생존자들에게 김지운은 다가오는 미증유의 재앙을 처리하는 전설 속의 존재인 반면, 고강수는 꾸준히 그들 곁에서 지시를 내리고, 결과를 만들어내는 눈에 보이는 존재였으니까.

"열 명이다."

무엇보다 고강수는 혼자가 아니었다.

"서른 명이 손 들었군."

그의 명령에 주저 없이 따르는 부하들의 숫자가 열을 넘어, 서른에 이르고 있었다.

"가위바위보로 결정하도록."

그야말로 늑대 무리의 리더였다.

그런 고강수에 버금갈 만큼 존재감을 발휘하는 이는 다름 아니라 강현중이었다.

"강현중."

강현중의 경우에는 따로 세력을 이끄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절대적으로 믿음직한 요소 하나가 있었다.

"수색을 부탁한다."

그가 없으면 생존자들은 사실상 장님과 귀머거리가 되어버린다는 것.

또한 강현중의 경우에는 김지운이 숨겨놓은 무기의 위치를 전부 알고 있었다.

김지운이 죽으면 그가 여의도로 모아온 엄청난 양의 병기 모두가 강현중의 몫이 된다는 것.

그건 엄청난 권력이었고, 동시에 위험한 일이었다.

"지원이 필요한가?"

그러나 고강수는 그 부분에 대해서 별 불만이 없었다.

"총 따윈 필요 없다."

도리어 그는 총과 총알을 사양했다.

"그런 것보단 이거에 익숙해지는 게 더 중요하다."

대신 자신이 든 도끼를 믿었다.

그게 이 안개로 뒤덮인 몬스터 세상을 마주한 고강수의 신념이었다.

"이 세계는 총으로 해결될 수 없는 세상이니까."

막연한 신념이 아니었다.

"대장이 그랬던 것처럼."

김지운을 비롯해 어비스의 헌터들이 이 시대에 강한 것은 총 없이 몬스터를 상대했다는 것, 그 때문이었으니까.

여하튼 그 둘은 김지운이 없는 상황에서도 자신의 방식대로 여의도의 오아시스를 견고하게 만들고 있었다.

'강수랑 현중이가 저렇게 열심히 하는데 나도 뭔가 해야 해.'

그리고 그 사실에 이영후는 조급함을 느끼고 있었다.

'난 절대 전투로 도움이 될 수가 없으니까.'

자신은 헌터의 재능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고, 결국 다른 방법으로 도움이 되어야 한다고 느꼈으니까.

다행히도 기회가 왔다.

김지운이 가져온 15개나 되는 접시는 이영후에게 있어 그야말로 날개였다.

접시가 늘어났다는 것은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는 데이터의 양이 늘어났다는 의미.

해서 이영후는 찾고자 했다.

어비스넷에 올라오는 무수히 많는 정보들 중에서 정말 끝내주는 정보를, 보물과도 같은 정보를.

'대장이 돌아올 때까지 큰 거 하나 먹여 드린다.'

그것을 찾아 헤매던 이영후, 그런 그의 앞에 김지운이 등장했고 그에게 이영후는 줬다.

2.

"어비스넷 서버가 터졌습니다."

그 말을 뱉는 이영후의 얼굴은 무덤덤했다.

그건 이영후가 모든 상황을 받아들인 것이 아니었다.

너무 당황한 나머지 감정을 표현하는 것조차 잊어버렸다는 것, 그만큼 어비스넷이 무너졌다는 사실에 이영후가 느끼는 절망감은 지독했다.

비단 그만 그런 게 아니었다.

소식을 듣고 온 고강수와 강현중도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비스넷이?"

어비스의 안개와 몬스터로 가로막힌 세상, 그 세상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자들이 소통할 수 있는 무대가 무너진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으니까.

다시 아포칼립스가 시작된 것과 같은 일이었으니까.

"확실한 거야? 잠깐 통신이 안 돼서 그런 거 아니야?"

"2시간 동안 계속 확인했는데, 조짐조차 안 보여. 혹시 몰라서 다른 부분으로 찾아봤는데 통신이 불안정한 게 아니라 그냥 서버 자체가 문을 닫은 상태야."

더불어 이영후가 내린 결론은 수없이 많은 시도 끝에 나온 것이었다.

그렇게 모두가 놀랐다.

"그렇군."

김지운만 제외하고.

사실 그는 처음부터 어비스넷을 그렇게까지 견고한 세상으로 취급하지 않았다.

위성으로 통신을 하더라도 결국 그 서버가 있는 곳은 지상.

그리고 지금 그 지상은 어비스에 의해 잠식되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김지운이 보기에 어비스넷의 서버는 망망대해를 떠다니는 조금 큰 낚싯배 정도에 불과했다.

태풍 한 번이 크게 몰아치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신세라는 의미.

무엇보다 김지운은 애초에 어비스넷 없이 어비스를 모험한 헌터였다.

어비스넷이 없어진다고 해서 그가 해야 할 일이 달라지는 것도,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었다.

'조금 더 힘들어지겠군.'

물론 놀라지 않았을 뿐 이 상황 자체를 긍정적으로 본다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래서였다.

"일단 한 번 확인해 보지."

이영후의 말이 사실인지, 그 진위 유무를 확인하고자 한 것은.

이영후를 의심해서 그런 게 아니었다.

이건 중대한 일이었고, 중대한 일은 직접 보는 게 김지운의 지론이었다.

김지운 입장에서는 확인사살이 필요했다.

"예, 바로 보시죠."

그런 김지운에게 이영후는 고개를 끄덕이며 기다렸다는 듯이 가지고 온 노트북을 펼친 후에 새로 고침을 눌렀다.

그러자 모두는 볼 수 있었다.

"응? 잘 접속되는데?"

"뭐?"

"이거 어비스넷이잖아?"

"뭐, 뭐라고?"

너무나도 잘 들어가지는 어비스넷을.

"그, 그럴 리가?"

그 사실에 놀란 이영후가 바로 노트북을 보고 새로 고침을 몇 번 했고, 그때마다 어비스넷은 게시판에는 새로운 글들이 갱신됐다.

평소처럼 활발한 활동을 보여줬다.

"이, 이거, 그러니까, 이거. 제, 제가 분명······."

물론 이영후가 장난을 친 게 아니라는 것은 모두가 알았다.

게시판에 올라오는 글들 역시 잠시 동안 사라진 어비스넷에 대한 반응들이었으니까.

어비스넷의 서버가 잠시 동안 내려간 것은 분명했다.

그 때문이었다.

김지운의 눈매가 가늘어진 것은.

'뭔가를 했다.'

그리고 김지운은 발견할 수 있었다.

"이영후."

"저, 저기 대장. 그게 그러니까······."

"새로운 목록이 생겼다."

"예?"

"저기 게시판 상단에 새로운 항목이 생겼다."

"어, 어? 어! 퀘스트?"

어비스넷에 업데이트가 이루어진 것을.

당연히 이영후는 새롭게 생긴 퀘스트 카테고리를 눌렀고, 이내 그들은 볼 수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어비스넷 유저 여러분. 삼족오 클랜의 이도준입니다.]

3.

[이도준입니다. 일단 갑자기 공지 없이 어비스넷 서버가 내려간 것에 사과드립니다.]

이도준, 다시 등장한 그의 첫 말은 사과였다.

아주 짤막한 사과.

그러나 그 사실에 분노를 품거나, 사장 나와! 같은 소리를 지껄이는 이는 없었다.

애초에 어비스넷은 상업적인 사이트도 아니었을 뿐더러, 어비스를 아는 이들에게 이도준은 보통 정말 적으로 둬서는 안 되는 몇 안 되는 존재들 중 한 명이었으니까.

이도준도 알기에 사과로 데이터를 낭비하는 짓 따위는 하지 않았다.

[서버가 내려간 동안 업데이트가 이루어졌습니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퀘스트 카테고리를 신설했습니다. 퀘스트 카테고리의 목적은 간단합니다. 올라온 퀘스트를 완료하고, 증명하면, 퀘스트의 보상을 지급하겠습니다.]

그리고 이야기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뭐야?"

더 이상의 설명 따위는 없이 영상은 그대로 종료됐다.

"이게 다야?"

보던 모두가 놀랄 만큼.

반면 김지운은 달랐다.

그는 이 내용을 듣는 순간 바로 이해했다.

이도준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사실 그 목적이 새로운 건 아니었다. 이도준은 처음 어비스넷을 바꿀 때부터 영상을 통해 말했다.

어비스넷을 통해 생존자들이 의견을 나누고, 서로 협력을 하고, 그럼으로써 마주한 몬스터들을 처리하고, 더 나은 상황을, 희망을 만들자고.

실제로 어비스넷은 분명 생존자들에게 적잖은 도움이 됐다.

하지만 아주 그 결과물은 결코 만족스러운 수준이 아니었다.

당장 아이템을 가지고, 경험을 가진 헌터들은 제 존재를 숨기거나 몸을 사리고 있었으며, 적지 않은 이들은 오히려 어비스넷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용해 먹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이도준은 결론을 내린 것이다.

이 엉덩이 무거운 헌터 새끼들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결국 대가를 거는 수밖에 없음을.

'헌터의 방식이군.'

그리고 그게 이제까지 클랜이 어비스의 헌터들을 다룰 수 있었던 방법이었다.

즉,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충분한 대가가 주어진다면 헌터들이 움직이지 않을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으니까.

물론 이 방법에는 한 가지 전제조건이 붙었다.

"그러니까 몬스터 잡으면 아이템 준다는 건데······ 아니, 이 시국에 아이템을 어떻게 줍니까? 그리고 아이템이 어디에 있는 겁니까?"

준다고 하는 게 공수표인지 아닌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

그에 대해서 김지운은 생각했다.

"클랜들을 설득했을 거다."

"예?"

"보통 어비스에서 가지고 온 아이템들은 대부분 클랜이 보유하고 있다. 몇몇 실력 좋은 헌터들의 경우에는 개인 소유를 인정해주지만 극히 일부에 불과할 따름. 즉, 헌터들이 합의를 하면 아이템 물량 자체를 확보하는 건 어렵지 않다. 그리고 클랜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 이대로 세상이 멸망하기를 바라진 않을 것이다."

지불할 능력 자체는 있음을.

이제 남은 건 방법.

"문제는 지급 방법인데······."

사실 이에 대한 방법 자체는 의외로 많았다.

마녀가 하는 방법처럼 골렘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었고, 현대과학의 기술인 드론 등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었으며, 헌터의 스킬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었고, 그냥 사람을 이용해서 전달하는 방법도 있었다.

문제는 어떤 방법을 쓰든 배송 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은 꽤 높다는 점이었다.

"이 역시 실패를 감수할 각오가 됐다면 못할 건 없지."

그러나 이 역시 지급하는 쪽이 배송 사고에 따른 페널티를 짊어진다면 해결될 문제였다.

여하튼 안 될 건 없었다.

그런 김지운의 말에 모두는 이해를 했고, 해서 한 가지 의문에 도달했다.

"아니, 대체 왜 이런 짓을 하는 겁니까? 자기들 아이템 창고를 털면서 까지?"

아이템이 사람 목숨보다 몇 배는 더 가치 있는 상황에서 왜 삼족오 클랜을 비롯해 다른 클랜들은 이런 일을 하는가?

"클랜은 아이템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아이템을 쓸 줄은 모른다. 그들은 헌터가 아니니까. 이대로 그냥 버티다간 아이템을 가진 채 죽는 것뿐이다."

이에 대해 김지운은 조금의 의문도 가지지 않았다.

"그리고 이대로 세상이 멸망하면 가장 손해를 보는 건 클랜과 그들의 후원자들이다."

"예?"

"그들은 아포칼립스가 터지기 전까지만 해도 세상의 지배자들이었으니까."

지금 사태에서 클랜 그리고 그들의 배후에 있는 자들은 계산기를 두드릴 때가 아님을.

"의심은 여기까지 하고."

때문에 이 순간 김지운과 생존자들이 생각해야 하는 것은 하나였다.

"일단 퀘스트부터 확인한다."

어비스넷이 몇 시간 동안 서버를 내리면서까지 한 업데이트의 결과물을 확인하는 것.

해서 이영후는 퀘스트 게시판은 빠르게 확인했다.

퀘스트 게시판에 들어가자마자 가장 먼저 나오는 것은 바로 국가를 선택하는 것이었다.

거기서 이영후가 한국을 선택하자 곧바로 게시판이 등장했고, 그 게시판에는 7개의 글이 올라와 있었다.

그런 그들의 앞에는 지역이 적혀 있었다.

서울과 경기, 인천, 대전, 강원도, 부산 그리고 제주도란 지역이.

이영후는 당연히 서울이 적힌 게시글을 눌렸고 이내 그들은 볼 수 있었다.

[제목 : 서울 퀘스트]

[작성자 : 어비스넷 한국 관리자]

[내용 : 현재 서울 경복궁을 점령하고 있는 몬스터들을 처치하십시오. 그럼 보상으로 다음과 같은 아이템을 지급하겠습니다.]

아주 담백한 텍스트를.

보상 : 모루뱀의 눈.

그러나 그 담백한 내용의 끝에 달린 보상은 결코 담백한 것이 아니었다.

"어?"

그것을 본 모두는 기겁했다.

"이, 이거 진짜입니까?"

모두는 모루뱀의 눈이 얼마나 대단한 아이템인지 다른 그 누구보다 뼈저리게 느낀 상태였으니까.

"이도준이 제 얼굴 걸고 구라를 치진 않았겠지."

더불어 이것이 가짜일 가능성은 없었다.

적어도 김지운이 아는 이도준은 이런 식의 장난을 치는 사내가 아니었다.

무엇보다 김지운이 알기로 삼족오 클랜에는 모루뱀의 눈이 생각보다 많이 있었다.

'내가 잡아준 모루뱀만 네 마리, 물량은 충분하다.'

아주 많이.

물론 가진 모루뱀의 눈이 제법 많다고 해서 모루뱀의 눈이 가진 가치가 줄어드는 건 아니었다.

아주 값비싼 물건인 건 맞았다.

그렇기에 김지운은 두 가지 의문을 가졌다.

'이도준은 결코 퍼주는 자가 아니다.'

일단 김지운이 아는 이도준이라면 그 임무에 걸맞은 대가를 정확하게 지불하는 자였다.

즉, 이 정도 물건을 대가로 내건다는 건 그만큼 어려운 일이라는 의미.

더불어 김지운은 생각했다.

'그리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다른 이에게 맡기는 자가 아니다.'

아무리 헌터들이 평상시에 자기 집에서 쉰다고 하지만, 삼족오 클랜에 속한 헌터의 숫자는 수백 명이 훌쩍 넘었다.

그들 모두가 박준호처럼 집에서 쉬고 있었을 리 만무.

이도준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의 주변에는 적잖은 헌터들이 대기하고 있을 터였다.

그런데 그가 이런 식으로 누군가에게 대가를 걸고 부탁을 한다?

둘 중 하나였다.

지금 삼족오 클랜이 김지운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상태가 좋지 못하거나.

'대체 뭐가 있는 건지 모르지만 보통은 아닐 거다.'

혹은 상태가 괜찮음에도 불구하고 어찌할 수 없을 만한 엄청난 게 경복궁에 있거나.

물론 이에 대한 고민을 김지운은 오래 품을 필요가 없었다.

"이영후."

"예, 대장. 그럼 경복궁 다녀오겠습니다."

61화 18화. 업데이트 (2).

4.

업데이트가 된 이후 어비스넷의 게시판은 어느 때보다 뜨겁게 달아올랐다.

ㅇㅇ : 대체 뭘 하나 싶었더니 이런 이상한 짓이나 하고 있었네!

ㅁㄴㅇ : 이런 이상한 짓을 할 바에는 그냥 차라리 아이템을 지급해주는 게 정답 아님?

123 : 결국 해먹던 놈들만 해먹으라는 거지!

더불어 대부분은 불만을 토로하고 있었다.

이상할 건 없었다.

현재 어비스넷을 이용하는 이용자들 중 상당수는 헌터가 아니라 관광객들이었다.

동시에 지금 꽤 안정적인 상황을 갖춘 이들이었다.

최소한 오아시스 지역 또는 어비스의 안개를 처리할 수 있는 방공호 설비와 식량을 갖추고 있으며, 위성 통신이 가능한 접시를 소유할 것, 그게 어비스넷을 이용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이었으니까.

그리고 이런 조건을 갖춘 이들 대부분은 그냥 앉아서 상황이 알아서 해결되기를, 혹은 누군가 자신의 입에 떡을 넣어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즉, 이번 퀘스트 카테고리 업데이트는 엉덩이 무거운 그들의 인생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일이었다.

ㅇㅇ : 삼족오 클랜은 이상한 짓 하지 말고 아이템을 뿌려라!

오히려 배가 아픈 일이었다.

누군가는 결국 아이템을 얻는다는 셈이었으니까.

물론 엉덩이만 무겁고, 누군가 입에 떠먹여주기를 바라며 키보드를 두드리는 이들은 지금 세상에 딱히 도움이 되지 않았고, 그렇기에 그들이 지껄이는 소리를 신경 쓸 이유는 없었다.

어비스넷에 원하는 것은 진짜배기 실력자들이 움직이는 것이었고, 그들은 이 상황을 반겼으니까.

[제목 : 경복궁 원정대 모은다]

[작성자 : 드래곤슬레이어]

[내용 : 긴말 안 한다. 경복궁 갈 사람들 쪽지 보내도록.]

이미 빠르게 움직이는 자들도 있었다.

물론 그중에서 가장 빠르게 움직인 것은 김지운 쪽이었다.

"그럼 경복궁 다녀오겠습니다."

이영후는 김지운으로부터 유리룡의 눈을 받은 후에 바로 천리안을 발동해 경복궁으로 이동했다.

가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 더 이상 이영후는 어수룩하게 행동하지 않았다.

그가 천리안 스킬을 사용한 건 국회의사당, 국방부 그리고 관악산에 이어서 이번이 네 번째.

이제는 이영후도 천리안에 익숙해졌다.

그는 바뀐 환경에 당황하지 않았다.

'레드존.'

자신이 붉은 안개 속에 있다는 사실에도 당황하지 않았다.

어차피 이 안개가 자신에게 그 어떤 영향도 미치지 않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니까.

'최대한 움직여서 정보를 얻는다.'

그리고 주어진 시간이 얼마 없다는 것도.

때문에 이영후는 달렸다.

전력으로.

100미터 달리기를 하듯이 뛰었다.

그러자 보였다.

'뭐야, 이거? 숲이야?'

경복궁이 아니라 밀림이라고 해도 될 만큼 빼곡하게 차오른 나무들이.

예상치 못한 이 광경에 이영후는 당혹감을 느꼈다.

그때였다.

키이!

날카로운 소리 하나가 이영후의 귓가를 간질였고, 그 소리에 이영후가 고개를 돌렸다.

'리자드맨!'

그러자 보이는 건 두 발로 걸어 다니는 도마뱀 인간, 리자드맨이었다.

이영후가 어비스 관광을 할 당시 봤던 몬스터이기도 했다.

'얘들이 왜?'

즉, 리자드맨은 그렇게까지 강력한 몬스터가 아니었다. 실제로 리자드맨은 화이트 클래스였다.

반면 이곳은 레드존.

이건 꽤 중요한 부분이었다.

화이트 클래스의 몬스터가 레드존에서 움직이는 데에는 이렇다 할 제약 따윈 없었다.

하지만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는 화이트 클래스 몬스터가 레드존에 자리를 잡는 일은 없었다.

그건 강아지가 늑대 무리 사이에서 지내겠다고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짓이었으니까.

그런데도 이 지역을 리자드맨이 점령하고 있다면 특별한 경우가 있다는 의미.

키이!

키에!

'뭐 이렇게 많아?'

일단 당장 리자드맨의 개체 수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기는 했다.

그냥 숫자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많았다.

'머릿수로 자리를 잡은 건가?'

강아지들이 모이면 늑대도 도망치게 만들지도 모른다,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많이.

그때였다.

'저거?'

달리던 이영후의 눈에 무언가가 보였다.

그 순간이었다. 

5.

"헉!"

쓰러졌던 이영후가 숨 넘어가는 소리를 내뱉으며 정신을 차렸다.

"우웨에에엑!"

그리고 바로 준비했던 비닐봉투에 속에 있는 모든 것을 게워냈다.

그렇게 한없이 정신을 못 차리던 이영후가 이내 고개를 드는 순간, 그 순간 대화가 시작됐다.

"이영후."

"······리자드맨입니다. 붉은 안개로 가득 찬 경복궁에 리자드맨이 엄청나게 많았습니다."

그 대답에 김지운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레드존을 리자드맨이 점령하고 있는 것 그리고 고작 리자드맨을 해치우는데 모루뱀의 눈이 대가로 지불될 리가 없었으니까.

"그런데 좀 이상한 게 많았습니다. 일단 말이 경복궁이지, 거의 숲이나 다름없었습니다. 물론 잘못 간 건 아니었습니다. 땅이나 곳곳에 경복궁의 건물들이 보이긴 했습니다. 정확히는 근정전이었습니다. 제가 거기 생각하고 천리안을 썼거든요."

"나무줄기의 색은?"

"그게······ 검은색이었습니다. 갈색 느낌이 조금 나는 검은색."

"나뭇잎이 혹시 톱니바퀴 모양에 붉은색이었나?

"어? 아시는 겁니까?"

"버니 나무다. 어비스에서만 등장하는 나무로, 나무가 스스로 열기를 내뿜는다."

"아! 그래서 리자드맨이 살 수 있었군요!"

리자드맨은 어느 정도 추위에 대한 내성이 있긴 했지만, 지금 한반도를 덮친 추위는 어느 정도라는 단어로 분류할 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자드맨이 경복궁에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건 김지운이 말한 버니 나무 덕분이었다.

더불어 버니 나무의 효과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버니 나무의 열매를 먹은 리자드맨은 레드 클래스가 된다. 버니 나무의 숲 한정이긴 하지만."

"예?"

"말 그대로다. 오크를 맨손으로 찢을 수 있을 만큼 강인한 리자드맨 개체가 된다."

그런 김지운의 설명에 이영후의 표정이 굳었다.

"맙소사, 리자드맨 숫자가 천 단위는 훌쩍 넘었는데요? 오크를 찢어버리는 애들이 그렇게 많다고요?"

저번 호른 오크와 오크 무리를 상대했을 때와는 그 난이도가 차원이 달랐으니까.

"그건 문제가 안 된다."

"예?"

하지만 김지운의 지금까지 말한 것, 그 자체에는 크게 위협을 느끼지 않았다.

"뭐하면 폭격을 하면 된다. 버니 나무가 불에 잘 안 타긴 하지만, 그래도 그 위로 집속탄을 몇 개 떨어뜨리면 어지간한 건 정리가 된다. 무엇보다 버니 나무가 불타면 그곳에 있는 리자드맨은 추위에 대부분 죽을 거다."

어비스면 모를까, 지금 이 세상에서 버니 나무와 리자드맨을 처리하는 건 그리 어려운 방법이 아니었으니까.

"겨, 경복궁에 폭탄이요?"

물론 이영후 같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경복궁을 폭격한다는 것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면 마땅히 지켜야 하는 유산 아닌가?

"그게 되겠습니까? 어비스넷도 그걸 피하려고 이렇게 퀘스트로 내건 것 아닙니까?"

해서 이영후는 이번 퀘스트에 막대한 보상이 걸린 이유가 경복궁을 지키기 위함이라고 생각했다.

괜한 소란 피우지 말고 은밀하게 리자드맨과 버니 나무만 제거하라는 의미라고.

그러나 김지운의 생각은 달랐다.

"지금 문화재 보존을 해야 할 만큼 상황이 괜찮은 것 같지는 않다."

그가 보기에 경복궁이든, 파리 에펠탑이든, 개선문이든 뭐든 전 세계 문화 유산은 있으나 마나 한 것이었다.

"어차피 인류가 다 죽으면 봐줄 사람도 없으니."

그건 결국 인류의 유산일 뿐이었고, 그 유산은 인류가 있어야 지킬 수 있는 것들이었으니까.

더불어 이런 사고방식은 김지운만의 사고방식이 아니었다.

'이도준의 생각도 나와 같을 거다.'

그만큼 합리적으로 생각하는 이가 최소 한 명은 더 있었으니까.

'계획을 세워봤을 것이다. 그럼에도 실행에 옮기지 않은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도준이 이런 결정을 내렸다면 그건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보낼 전투기가 없거나.'

폭격이 불가능한 상태라는 것. 이 역시 가능성은 제법 있었다.

현재 확인된 공군기지 중에 제 역할을 하는 곳은 오산공군기지였고, 이곳은 지금 흑랑 클랜이 반쯤 점령한 상태였으니까.

'아니면 폭격을 할 수 없는 상태이거나.'

또 다른 경우는 폭격을 할 경우 더 골치 아픈 일이 터질 가능성이 높을 경우였다.

여기서 김지운은 한 가지 경우를 떠올렸다

'혹시.'

그때였다.

"아, 그리고 대장. 확실한 건 아닌데 뭔가 안개 너머에서 황금빛이 반짝이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이영후의 말을 듣는 순간 김지운의 얼굴이 굳었다.

"어?"

이제까지 본 표정들 중에서 손에 꼽을 만큼 딱딱하게.

"무,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아직은 없다."

"그럼 나중에는 생긴다는 겁니까?"

이어진 물음에 김지운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영후, 네가 본 건 리자드킹의 알일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만약 리자드킹이 부화한다면 종로를 비롯해 강북 지역은 리자드맨의 영역이 된다."

말을 하는 김지운은 떠올렸다.

"리자드킹은 그린 클래스다."

리자드킹을 마주했던 때를.

좋았던 기억은 아니었다.

동료를 잃었으니까.

물론 어비스에서 몬스터를, 그것도 그린 클래스에의 보스 몬스터를 사냥하면서 무사히 돌아오는 것을 바라는 건 쉽지 않은 일이긴 했고, 때문에 아주 특별한 경우는 아니었다.

"그리고 놈은 안개의 영향을 받지 않는 몇 안 되는 몬스터 중 한 마리다."

하지만 리자드킹이 그린 존을 벗어나 옐로우 존으로 도망치는 것은 매우 특별한 일이었고, 그때 알게 됐다.

놈의 진정한 무서움을.

더불어 그 무서움은 지금 어느 때보다 김지운의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었다.

"폭격과 같은 몬스터들이 인지할 수 있는 수준을 벗어나는 공격이 가해질 경우 리자드맨들은 알을 가지고 도망칠 것이다."

그때 리자드킹이 도망친 곳은 어쨌거나 어비스였지만, 지금 이곳은 달랐으니까.

"그리고 도망치는 곳은 높은 확률로 지하철역이 될 거다."

만약 리자드맨들이 왕의 알을 가지고 도망치면, 그 이후에 그것을 쫓을 방법은 사실상 없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리자드킹의 알이 부화하게 되면?

김지운이 말한 지옥이 펼쳐질 터.

그쯤에서 이영후는 이해했다.

왜 모루뱀의 눈이 보상으로 걸렸는지.

여기서 김지운은 더 이상 고민하지 않았다.

"잡아야 한다."

이건 단순히 하고 자시고를 결정할 문제가 아니었다.

경복궁에서 김지운이 있는 여의도까지는 결코 먼 거리가 아니었다.

무엇보다 김지운은 알았다.

"겨울이 지나면 그때는 리자드맨의 세상이 올 것이다."

한국에는 이제 겨울 그리고 여름만 있음을.

2월 중순만 지나도 기온이 빠르게 오르고, 3월이면 반팔도 어색하지 않은 더위가 오리라고.

그때가 오면 리자드맨의 활동 반경은 모두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드넓어질 거라고.

사실 여기서 김지운이 우려하는 요소는 하나 더 있었다.

"그리고 그 세상을 피해 몬스터들이 이주를 시작할 것이다."

왕의 등장 앞에서 혼란과 공포를 느끼는 것은 사람만이 아니라는 것.

그때는 여의도는 안전하기는커녕 오히려 훨씬 더 위험한 지역이 될 가능성이 컸다.

"레드 클래스 몬스터들은 싫어도 여의도 그러니까 국회의사당에 오게 될 거다."

안개가 없는 곳이 인간들에게 오아시스이듯, 레드 클래스 몬스터들에게는 레드존이 오아시스였으니까.

'어떻게 리자드킹의 존재를 알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들긴 했지만, 김지운은 그 의문을 깊게 파고들지 않았다.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그 고민은 지금 상황을 전부 정리한 후에 해도 늦지 않았으니까.

"다행히 리자드킹의 알은 쉽게 부화하지 않는다. 최소한 3월까지는 시간이 있다."

여기서 위안을 가질 만한 것은 아직 시간이 남았다는 점이었다.

"일단은."

하지만 그 위안을 품고 뒷짐을 지고 있을 순 없었다.

결국 행동은 최대한 빠르게 이루어져야 했다.

"다른 헌터들이 이상한 수작을 부리지만 않는다면."

변수는 온갖 곳에 있었으니까.

특히 이 대목에서 김지운은 염려했다.

'린샤오웨이 같은 놈들이.'

흑랑 클랜은 관악산 점령을 위해서 힌의 알을 쓸 만큼 정도를 모르는 놈이었다.

그런 놈들이 과연 이 기회를 그냥 지켜만 볼까?

그러기는커녕 관악산 점령에 실패한 이후 입지가 줄어든 린샤오웨이가 이번 일로 반전을 꾀할 가능성이 높았다.

막말로 린샤오웨이가 제 부하를 시켜 오산 공군 기지에서 전투기 하나를 탈취한 후에 경복궁에 집속탄 하나만 떨어뜨려도 서울 사대문 안쪽 지역은 지옥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대장, 어떻게 합니까?"

여기서 남은 건 방법.

그에 대해서 김지운은 긴 고민을 하지 않았다.

사실 방법 자체는 어려울 게 없었다.

참담한 상황은 미래의 상황일 뿐, 지금 당장 눈앞에 직면한 상황은 최악이 아니었다.

오히려 긍정적인 요소는 많았다.

"여전히 추운 기온 탓에 리자드맨들은 버니 나무의 숲에서만 지내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일단 리자드맨의 영역은 지극히 제한된 상태.

"리자드킹의 알은 매우 단단하다. 금고 수준이라고 보면 된다. 그러니까 폭약을 제법 쓰면 터뜨리는 건 어려울 것 없다."

또한 어비스와 달리 지금 지구의 헌터들은 정말 상식 밖의 무기가 수중에 있었다.

결국 남은 건 진입.

"다행히도 이영후, 네가 알의 위치를 봤다."

여기서도 대략적인 위치는 파악한 상태였다.

즉, 남은 건 하나였다.

"속도가 생명이다."

망설이지 않고 움직이는 것.

그리고 김지운은 누구보다 그 사실을 잘 알았다.

"파티 멤버를 짠다."

해서 김지운은 바로 움직이고자 했다.

"나, 고강수, 강현중."

가장 확실하게 믿을 수 있는 소수정예와 함께.

"그리고 이영후."

"예? 저요? 별 도움이 안 될 텐데요?"

그런 김지운의 선택이 당혹감을 느끼는 이영후에게 김지운은 분명하게 말했다.

"지금 살아남은 자중 가장 믿을 수 있는 건 너뿐이다."

김지운에게 필요한 건 동료라는 것을.

그 사실에 이영후는 더 이상 반문이나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고개를 끄덕일 뿐.

"그럼 30분 후 출발한다."

그렇게 여의도에서 4명의 헌터들이 경복궁을 향해 움직였다.

동시에 오산공군기지에서도 헌터가 움직였다.

62화 18화. 업데이트 (3).

5.

어비스넷의 퀘스트 업데이트가 어비스넷 유저들에게 미친 영향력은 생각보다 컸다.

어비스넷의 유저들은 깨달았으니까.

- 드래곤슬레이어 : 경복궁 레이드 참가자 모집한다.

ㄴ ㅇㅇ : 이제 매크로 돌리나? 모든 글에 댓글이 붙네.

ㄴ 123 : 다른 건 몰라도 드래곤슬레이어 보고 싶어서라도 경복궁 가고 싶어지네.

ㄴ 123123 : 그래도 이렇게까지 매크로 돌리면서 댓글 다는 거 보면 드래곤슬레이어도 제대로 진심인 모양이네?

상품이 아니더라도 인연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지금 상황에서 이 인연이란 메리트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 붉은늑대 : 클랜에 관심 있는 사람 쪽지 주십시오.

때문에 적극적으로 세력을 키우려는 이들 역시 어비스넷 게시판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렇게 어비스넷 게시판은 이제 모든 것이 경복궁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 차 있었다.

- 술은맥캘란 : 경복궁 핫하네. 거기 근처 호텔들에 비싼 위스키 많은데 구하면 쪽지 보내라. 아이템하고 교환해준다.

ㄴ 신의물방울 : 좋은 와인 있으면 모아둬라. 내가 나중에 사줄게.

ㄴ 술은맥캘란 : 그쪽은 뭐하는 분인데 남이 하는 장사에 왜 끼어들고 지랄이세요?

ㄴ 신의물방울 : 맛도 없는 위스키는 줘도 안 마시니까 걱정마세요 ^o^

ㄴ 술은맥캘란 : 이 새끼가, 너 나한테 걸리면 뒈진다.

ㄴ ㅇㅇ : 병신 둘이서 지랄하네. 아포칼립스 세상에 도움도 안 되는 이런 키보드 워리어 새끼들 좀 어떻게 안 되나?

정말 사소한 이야기조차 경복궁과 관련되어 있을 정도.

물론 모두가 좋은 의미를 가지고 이번 경복궁 퀘스트를 지켜만 보는 건 아니었다.

'삼족오 클랜이 움직였군.'

린샤오웨이, 오산공군기지에 자리 잡은 그는 이 소식을 듣는 순간 표정이 굳었다.

표정이 좋을 수가 없었다.

일단 린샤오웨이는 지금 그 처지가 매우 안 좋은 상태였다.

관악산 점령을 실패한 이후 이준휘 준장은 린샤오웨이를 사실상 구금해 버렸다.

언제든 린샤오웨이를 처리할 수 있게.

단순히 그가 실패를 해서 그런 게 아니었다.

이준휘 준장이 걱정하는 것은 실패가 아니라 관악산을 점령한 세력이 매우 강력하다는 것, 그 사실이 오산공군기지에 알려지는 경우였다.

관악산을 점령한 세력이 오산공군기지에 적대적이든, 우호적이든 결국 린샤오웨이가 그들을 공격했고, 린샤오웨이의 뒤에는 이준휘 준장이 있었으니까.

'그 빌어먹을 놈들이.'

더불어 흑랑 클랜과 삼족오 클랜은 앙숙 중의 앙숙이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삼족오 클랜은 흑랑 클랜의 천적이었다.

그런 삼족오 클랜을 중심으로 무언가가 진행된다는 것은 린샤오웨이는 물론 흑랑 클랜 전체에 좋을 게 없었다.

당연히 린샤오웨이는 이 퀘스트가 제대로 진행되도록 놔둘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경복궁, 근처에 누가 있지?'

그는 전력을 다해 이번 일에 재를 뿌릴 생각이었다.

'현재 보고 받은 바에 따르면 서울지부에 헌터들이 남아서 대기 중이라고 합니다.'

'서울지부 헌터들? 관악산에서 다 죽은 거 아니었나?'

'포폰 나뭇잎이 멀쩡합니다. 전부 관악산으로 가진 않은 모양입니다.'

'명령조차 따르지 않는다니, 역시 쓰레기들이었군.'

하지만 지금 움직일 수 있는 카드들은 린샤오웨이 입장에서는 사실상 버리는 카드들이었다.

애초에 정말 쓸모 있는 카드들이라면 서울지부가 아니라 부산지부에 있었을 테니까.

서울지부는 그저 어비스 관광을 위한 가이드만 배치해둔 곳일 뿐이었으니까.

물론 지금 상황에서 린샤오웨이가 찬밥 더운밥을 가릴 수 있는 처지는 아니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지.'

때문에 린샤오웨이는 결단을 내렸다.

'아랑을 맞이할 준비를 하라고 보내라.'

6.

여의도에서 경복궁까지 도보로 가는 것은 결코 쉬운 거리가 아니었다.

빠른 걸음으로도 최소 3시간은 잡아야 했다.

어비스 아포칼립스 세상에서 편도로 3시간 거리가 걸리는 것은 그냥 다른 나라로 가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김지운 파티는 그 거리를 2시간 만에 주파했다.

'대장은 이제 안개 따위는 문제도 안 되는 모양이네.'

김지운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우리는 뭐가 뭔지도 모르겠는데.'

그의 동료들은 솔직히 지금 자신들이 제대로 경복궁으로 향하는 것인지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가 알던 서울이 아니야.'

어비스의 안개로 잘 보이지 않는 것도 그렇지만, 가장 큰 이유는 그냥 도시가 바뀐 탓이었다.

거리에는 자동차들 시체가 즐비했고, 그 주변으로는 몬스터에 의해 파괴된 건물들이 늘어져 있었다.

'모든 게.'

그리고 곳곳에는 처음 보는 종류의 식물들이 자신들의 영역을 넓히고 있었다.

그들이 기억하는 서울의 모습이 빠르게 사라지고 있었다.

하지만 경복궁 근처에 도착했을 때는 달랐다.

'맙소사.'

모두가 분명하게 경복궁이 근처에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덥다고?'

이제까지 불어오던 차디찬 기운이 빠르게 사그라지기 시작했으니까.

마치 누군가 거대한 난로를 틀어놓은 것처럼.

김지운이 말해주었던 버니 나무 때문이었다.

'이 정도일 줄이야.'

그러나 직접 마주한 열기는 너무나도 충격적이었다.

한 겨울에 이 정도 열기를 내뿜는 숲이 있다는 것, 그것은 그야말로 인류의 상식을 벗어나는 것이었으니까.

그게 어비스에 무수히 많은 이들이 열광한 이유였다.

단순히 아이템들만이 아니라, 어비스에 있는 모든 것들이 지구의 상식을 부수는 것들이었으니까.

그리고 그게 어비스가 무서운 이유였다.

김지운이 보기에 지구의 생태계가 온실 속에서 키워진 병아리라면 어비스의 생태계는 시베리아에서 살아남은 북극곰이었으니까.

물론 그에 대한 감상은 오래 가지 않았다. 이곳에 온 건 감상을 하기 위함이 아니었으니까.

김지운은 경복궁 근처에 온 걸 확인하는 순간 이제 주변 수색에 나섰다.

[시체를 찾아라.]

그중에서도 김지운이 중점적으로 찾고자 한 건 시체였다.

이상할 건 없었다.

어비스 안개에 당한 이들은 시체가 되지 않았다.

으어어어!

그들은 그저 방랑자가 될 뿐.

그런데 만약 시체가 있다? 그럼 높은 확률로 생존자라는 의미.

[헌터의.]

그리고 지금 시대에서 살아남은 자들 대부분은 자의든 타의든 이제 헌터라고 불러도 이상할 게 없었다.

물론 인간의 시체는 몬스터들에게는 탐스러운 식량인 만큼 시체 자체를 찾는 건 솔직히 거의 불가능했다.

하지만 김지운이 말한 건 애초에 진짜 시체가 필요하다는 게 아니었다.

'대장! 여기!'

필요한 건 흔적이었다.

'살이랑 뼈는 다 먹고 남은 흔적입니다.'

몬스터들이 먹지 않을 옷이나, 철붙이 따위들.

그리고 이번에는 굉장히 운이 좋았다.

'총이군.'

다른 것도 아니고 K2자동소총이 발견됐다.

지금 시대에서는 헌터의 증거였고, 김지운은 바로 사이코메트리 스킬을 통해 정보를 읽었다.

'경복궁 안에 들어갔었군. 하루 전에.'

더 운이 좋은 건 죽은 지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거기까지였다.

운이 따르는 건.

김지운은 이 헌터와 그 동료들이 죽음을 마주하는 광경을 보는 순간 입을 꾹 다물었다.

동시에 신호를 줬다.

자신의 오른손을 왼손으로 자르는 신호를.

'어?'

그것을 본 모두는 놀랐다.

'무조건적인 후퇴?'

오른손을 자른다, 이 신호는 그 어떤 의문도 품지 말고 집으로 돌아가라는 신호였으니까.

그때부터 대화는 없었다.

걸어온 걸음이, 소모한 시간이 무색하게 김지운 파티는 바로 여의도로 향했다.

대화는 집에 돌아온 후에 이루어졌다

"후우."

짧게 숨을 고른 김지운이 질문을 받기도 전에 자신이 물러난 이유에 대해 말해줬다.

"경복궁 안에 리자드맨 주술사가 있다."

"리자드맨 주술사요?"

물론 어비스의 몬스터에 대한 지식이 없는 동료들 입장에서는 그것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었다.

해서 김지운은 추가로 설명을 해줬다.

"레드 클래스 보스 몬스터다."

"위험합니까?"

"개체의 강함 정도만 보면 호른 오크보다 약하다. 문제는 리자드맨 주술사가 가진 감지 능력이다."

그 대목에서는 이제 모두는 눈치를 챘다.

물러난 이유를.

애초에 김지운 파티의 목적은 경복궁을 쓸어버리는 게 아니었다. 은밀하게 침투해서 리자드킹의 알을 파괴하는 것이었지.

그런데 감지 능력이 우수한 존재가 있다?

물론 어지간한 수준이면 김지운은 작전을 속행했을 것이다.

"어느 정도입니까?"

"개랑 후각이 비슷하다."

그렇기에 이 대목에서 모두는 고개를 갸웃했다.

개의 후각이 뛰어난 건 맞지만 아무리 대단하다고 하더라고 경복궁 전체를 커버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

"이것만이라면 문제가 안 되겠지만, 리자드맨 주술사는 저마다 가루를 가지고 다닌다. 독특한 냄새를 가진 가루들을. 그리고 그것을 영역에 뿌려놓는다."

"아!"

하지만 이어진 설명을 듣는 순간 모두는 이해했다.

왜 김지운이 빠르게 도망쳤는지.

사실상 몸에 그 가루란 게 묻는 순간 리자드맨 주술사에게서 벗어날 수 없다는 의미였으니까.

그리고 이내 모두의 등골은 오싹해졌다.

"몬스터가 이렇게까지 영리합니까?"

그냥 단순히 능력이 뛰어나다, 수준이 아니었으니까.

그에 대해서 김지운은 말했다.

"난 2개 국어를 이해할 줄 아는 몬스터가 등장해도 놀라지 않을 자신이 있다."

모든 건 아니지만 영리한 몬스터의 수준은 인간의 상식 범주를 아득히 벗어나는 수준임을.

"방법을 바꾼다."

이런 몬스터 상대로 어설픈 성동격서 방법을 쓰는 것은 오히려 일만 키울 따름이었다.

"제대로 된 성동격서를 쓴다."

여러 헌터들을 이끌고 확실하게 전투를 치러서 신경을 빼앗는 사이 알을 노리는 정공법을 쓰는 수밖에.

물론 이 방법을 쓰는 데에는 여러 문제점이 있었다. 

헌터들을 모으는 것도, 얻은 모루뱀의 눈에 대한 소유권을 정하는 것도, 작전 자체를 수행하는 것도, 어느 것 하나 쉽게 풀릴 건 없었으니까.

그래도 해야 했다.

아무리 어려워도 리자드킹하고 생존게임을 펼치는 것보단 쉬울 문제였으니까.

그쯤이었다.

이야기를 듣던 이영후가 슬그머니 품에서 나무상자 하나를 꺼냈다.

그건 습관이었다.

30분마다 품에 있는 포폰 나뭇잎을 확인하는 건.

'응?'

그리고 그것을 확인한 이영후가 말했다.

"대장, 연락이 왔습니다."

7.

[아랑을 보낸다.]

흑랑 클랜에서 온 내용은 매우 짤막했고, 동시에 일방적이었다.

어떤 이유로, 의도로 아랑을 보내는지에 대한 설명 따위는 없었다.

그리고 이게 흑랑 클랜의 방식이었다.

정확히는 중국이란 나라의 방식이었다.

그들은 지도자의 의견 외에 다른 의견은 그 존재 자체를 용납하지 않았다.

그러나 김지운은 바로 이 의도를 파악할 수 있었다.

'방해 작전을 펼치려는 모양이군.'

예상한 바였으니까.

그래서 지금 상황 자체는 김지운에게 긍정적이었다. 어쨌거나 흑랑 클랜이 움직였다는 걸 알게 됐으니까.

여기서 김지운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오는 아랑을 처리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문제는 그다음.

관악산 때와는 달랐다. 그때는 적이 있는 곳에 아랑을 보낸 거니 소식이 끊겨도 그냥 죽었다고 생각하면 될 일.

하지만 이번에는 아군에게 보내는 상황인데, 그런데 만약 연락이 두절된다면?

'아랑을 죽이면 그때부터는 이 지역은 흑랑 클랜의 적지가 된다.'

그때부터 서울지부는 흑랑 클랜에게 없는 곳이 될 것이다.

당연히 린샤오웨이는 다른 방법으로 경복궁 퀘스트를 방해하고자 할 터였다.

'내가 없으면 너무 위험해진다.'

아직은 집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흑랑 클랜의 견제를 받는 것은 결코 기분 좋은 일이 아니었다.

해서 김지운은 말했다.

"뭔가 좋은 방법이 필요하다."

"좋은 방법이요?"

"지금 흑랑 클랜과의 이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 하루라도 더 좋으니까."

그 순간이었다.

"저기 대장."

기다렸다는 듯이 이영후가 말했다.

"차라리 들이박아 보는 게 어떻습니까?"

"들이박아?"

"더 이상 명령을 듣지 않겠다, 차단 박는 겁니다. 그럼 당연히 중국 애들 성격상 응징하러 올 텐데요."

말을 하던 이영후가 손가락을 두 개 펼쳤다.

"그런데 지금 상황이 응징하는 게 쉬운 게 아니니까 경우의 수는 두 개가 됩니다. 하나는 이 꽉 물고 응징하려고 아이템 낭낭하게 챙긴 헌터들 이쪽으로 보내는 경우. 위험하지만 잘만 제거하면 인벤토리가 넉넉해지죠."

"다른 하나는?"

"협상을 시도할 겁니다. 당장 자기 물어뜯을 개를 어찌할 방법이 없으면 달래다가 사냥이 끝나면 삶아먹을 준비를 하면서. 토사구팽에 중국 애들이 또 환장하거든요."

설명을 들은 김지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오는 아랑을 처리하면, 그다음에는 더 강력한 아랑들 혹은 헌터들이 올 수밖에 없었다.

그럴 바엔 차라리 이번에, 성장하기 전에, 그냥 확실하게 처리하는 게 나았다.

반대로 린샤오웨이가 서울지부를 상대로 협상을 하고자 한다면?

"이영후, 가능하겠나?"

"중국 애들 설득하는 재주는 없지만 중국 애들 빡치게 하는 건 자신 있습니다."

그 설명에 김지운은 고개를 끄덕였고, 곧바로 자리가 만들어졌다.

바늘을 펜촉 대신 끼운 펜과 포폰 나뭇잎 그리고 돋보기안경이.

그것을 본 김지운을 비롯해 모두는 긴장했다.

'쉽지 않은 일이다.'

이 대화는 사실상 첫 문장으로 모든 게 결정될 수밖에 없었다.

자신들의 처지나 불합리함 따위를 항변하는 문장을 구구절절 써봤자 오히려 역효과라는 의미.

불만을 표시하면서도 상대방의 자존심을 정확하게 자극하면서도 짧고 굵은 문장을 떠올려야 한다는 의미.

쉬익!

그러나 이영후는 이렇다 할 고민 없이 바로 글을 썼다.

이윽고 펜을 놓는 순간 김지운이 조심스레 질문을 던졌다.

"뭐라고 보냈지?"

그 물음에 이영후가 웃으며 말했다.

"타이완 넘버 원이라고 중국어로 보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김지운을 포함한 모두의 표정이 굳었다.

그런 동료들에게 이영후는 설명해줬다.

"그냥 욕을 보내는 것보다 더 효과적일 겁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그냥 욕을 하거나 요구를 하면 그냥 배신을 했다고 생각할 겁니다. 그런데 대만을 가지고 이야기를 한다? 이건 그냥 단순한 배신이 아닙니다. 정치적 스탠드가 달라진다는 의미이거든요."

"정치적 스탠드? 미국?"

"그럴 리가요. 중국 상대로 이런 소리를 하는 건 열 명 중 아홉 명은 한국인입니다. 자, 관악산에 다녀온 애들이 갑자기 이런 소리를 지껄인다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관악산 쪽 세력에 매수됐거나 최소한 접촉한 상태라고 생각하겠지."

"그렇죠. 그럼 그때부터 계산기가 바뀔 겁니다. 알지 못하는 세력 속에 침투한 배신자를 포섭하면?"

"이중첩자가 되는 거겠지."

"꽤 매력적인 포지션이죠."

그쯤에서는 더 이상 이영후의 선택에 의문을 가진 이들이 없었다.

그저 깨달을 뿐이었다.

'생각보다 무서운 자다.'

이영후가 그저 돈 많은 졸부가 아니라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무법시장에서 온갖 조폭이나 사기꾼들을 상대로 돈을 쟁취한 자라는 것을.

물론 이게 통할지 안 통할지는 몰랐다.

다행히도 시간은 낭비되지 않았다.

이영후가 메시지를 보내고 10분이 지났을 때 답변이 왔으니까.

"대장! 답변이 왔습니다!"

"뭐라고 왔지?"

"어, 그게······ 검은 이빨을 주겠다는데요?"

그리고 그 답변을 듣는 순간 김지운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이게 뭔지 아십니까?"

"흑랑 클랜만이 사냥한 어비스의 몬스터인 옐로우 클래스 보스 몬스터인 외눈박이 늑대의 이빨이다."

"외눈박이 늑대요?"

"나도 잡은 적이 없어서 모르지만, 한 마리를 잡고 이빨이 41개쯤 나왔다고 하더군. 그리고 흑랑은 그것을 가장 뛰어난 공적을 세운 헌터에게 훈장 대신 준다. 헌터에게 별을 주듯이."

"그럼?"

"최고 대우를 해주겠다는 거다. 자신들에게 충성을 맹세한다면."

이영후의 낚시에 린샤오웨이가 걸려드는 순간.

'이것에 걸린 걸 보면 린샤오웨이의 처지가 생각보다 그리 좋지 않은 모양이군.'

당연히 낚싯대를 잡아당기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수락해라."

이영후가 바로 무엇을 원하는지 질문을 건넸고, 그러자 바로 대답이 왔다.

"CIN132992······."

한자가 아닌 영어와 숫자가.

그러나 그것을 보는 순간 이영후는 바로 알았다.

"이거 아무래도 어비스넷 닉네임 같은데요? 이쪽으로 쪽지를 보내라는 것 같습니다."

린샤오웨이가 더 긴밀한 대화를 원함을.

"해킹 걱정은 마십시오. 접시 충분합니다."

그리고 그 대화를 피할 생각이 없음을.

해서 바로 무대가 만들어졌다.

남은 건 하나였다.

"대장, 그럼 우리 이름은 뭐라고 할까요?"

흑랑 클랜과 대화할 이름을 정하는 것.

"민트초코탕후루라고 할까요?"

"······그냥 대충 영어하고 숫자 조합하도록."

"아, 네."

물론 바로 대화가 이루어지진 않았다.

어느 정도 뜸을 들여야 저쪽도 상황을 믿을 테니까.

그렇게 기다리는 동안 이영후는 질문했다.

"그런데 뭘 요구할까요?"

이 대화에서 목적이 무엇인지.

"설계를 한다."

"설계라면?"

"우리는 지금 관악산을 점령한 집단에 들어온 상태이나, 현재 의심을 받고 있다. 그래서 이번에 경복궁 레이드에 강제로 참가하게 됐다. 여기서 공을 세워야 한다고. 그리고 이쪽에서 파악한 결과 경복궁을 점령하고 있는 건 리자드맨 주술사 같다고."

"그리고요?"

"여기까지만 하면 알아서 준비해줄 거다."

여기서 김지운은 헌터 린샤오웨이의 실력을 믿었다.

"대장, 아쿠하시아를 주겠다는데 이게 뭡니까?"

"진짜인가?"

"네? 아, 네. 그런데 이게 뭡니까?"

"아쿠하시아 열매 가루로 만든 포션이다."

그리고 그 믿음에 린샤오웨이는 기꺼이 응해줬다.

"일명 투명 물약이다."

63화 19화. 번개 모임 (1).

1.

투명 물약!

그 표현을 듣는 순간 이영후를 비롯해 모두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비스에 신비한 게 많다는 건 알았지만, 설마 투명 물약 같은 게 존재할 줄이야?

물론 어비스에 존재하는 신비들을 생각하면 투명 물약은 굉장히 가소로운 것이었다.

오히려 버니 나무가 현대 문명 입장에서는 더 경이로운 것이었다. 제 스스로 열을, 그것도 이런 엄청난 열을 낸다? 그것을 에너지원으로 쓴다면?

그럼에도 모두가 투명 물약에 반응한 건 로망 때문이었다.

"진짜 내 어릴 적 꿈이 투명 인간 되는 거였는데, 그것만 있었으면······."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상상했을 그 로망.

"네가 생각하는 그런 투명 물약이 아니다."

그런 동료들에게 김지운은 말해줬다.

"몸을 투명하게 해주는 그런 게 아니다. 투명 물약의 효과는 다름 아니라 탈취다."

"탈취요?"

"그렇다."

여기서 모두는 아니, 탈취제가 무슨 투명 물약입니까? 지금 장난해요? 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오히려 소름이 돋았다.

알았으니까.

'어비스에서는 청각과 후각이 절대적이다.'

어비스의 안개에서 대부분은 그 눈이 제 역할을 못 함을.

그런 세상에서 만약 냄새를 감출 수 있다면?

'귀신발까지 쓰면.'

더욱이 소리를 죽이는 방법도 어비스의 규칙에는 존재하고 있었다.

'투명 인간이다.'

김지운이 왜 이 포션을 투명 인간 포션이라고 표현했는지 모두는 뼈저리게 이해할 수 있었다.

"굉장히 효과가 좋다. 효과만으로 보면 어비스에서 구할 수 있는 탈취제 중에 세 손가락 안에 든다."

더불어 이 탈취 효과는 어비스의 신비답게 상식의 수준을 벗어나는 정도였다.

"어떤 냄새가 몸에 묻어도 뿌리는 순간 사라진다. 그것도 꽤 오랜 시간 동안."

거의 마법에 가까웠다.

"그래서 각 클랜에도 보유한 물량이 많진 않다."

물론 그만큼 구하기 힘든 물건이었다.

일단 아쿠하시아 열매 자체가 어비스에서도 매우 구하기 힘든 열매 중 하나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구하더라도 수요를 못 따라가니까."

탈취제에 대한 헌터들의 수요는 상상 이상으로 높았다.

그도 그럴 것이 어비스는 특성상 몬스터들도 후각이 예민해질 수밖에 없었다.

반면 헌터들은 인간인 이상 어쩔 수 없이 몸에서 냄새가 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어비스의 환경은 대체적으로 더웠고, 더위 앞에서 땀이 나는 것을 막을 방법은 그리 많지 않았다.

물론 평소에는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목숨을 건 전투라면 그 작은 냄새조차도 너무나도 큰 문제가 되고는 했으니까.

달리 말하면 그래서 이해가 됐다.

'헌터들은 탈취제를 항상 가지고 다니지.'

린샤오웨이가 아쿠하시아 열매 가루를 가진 것에 대해서는.

놀란 것은 그것을 주겠다는 점이었다.

"엄청난 물건을 주네요. 포섭 치고는 너무 화끈한데요?"

"나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아무리 변절자들을 이중첩자로 이용해 먹기 위해 포섭하고자 한다고 하지만 너무 과한 물건 아닌가?

무엇을 믿고?

그 대목에서 김지운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혹시?'

"이영후, 어비스넷에 리자드맨으로 검색해 봐라."

그 말에 이영후는 바로 움직였고, 이내 그가 게시글 하나를 김지운에게 보여줬다.

[제목 : 경복궁 리포트.]

[작성자 : 드래곤슬레이어]

[내용 : 경복궁에 다녀왔다. 본래는 그냥 숨기고 단독 공략하려고 했는데 상황이 심각해서 글 남긴다.

경복궁은 지금 버니 나무로 가득 차 있는 상태다. 그리고 그 안은 리자드맨으로 가득 차 있다.

그리고 리자드맨 주술사가 있다.

여기까지 설명해줬으면 지금 경복궁이 어떤 상태인지 헌터들이라면 대충 알 거다.]

드래곤슬레이어, 어비스넷 한국게시판에서 가장 뜨거운 유저인 그가 경복궁 상황을 알려줬다.

매우 자세히.

'우리 쪽 정보의 신뢰도가 높아졌다. 혹은 의심하겠지.'

그것을 보자 김지운은 이해했다.

'우리 뒤에 드래곤슬레이어가 있다고.'

린샤오웨이의 머릿속 상황을.

그리고 생각보다 그 가능성은 꽤 높았다.

지금 드래곤슬레이어의 활동 범위는 드러난 이들 중에서 가장 넓었고, 동시에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결정적으로 현재 어비스넷의 유저들은 드래곤슬레이어가 국방부 문제를 정리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린샤오웨이 입장에서는 자신의 상대편에 드래곤슬레이어가 있다고 믿는 게 합리적인 생각일 터.

'일이 순조롭게 풀렸다.'

김지운 입장에서는 나쁠 게 없었다.

호가호위, 이런 상황에서 린샤오웨이가 서울지부가 있던 영등포와 여의도에 들어오는 데에는 리스크가 컸으니까.

달리 말하면 지금 이중첩자라고 여기는 서울지부원들에 대한 기대가 클 수밖에 없었다.

물론 모든 게 해결된 건 아니었다.

넘어야 할 난관은 여러 가지가 있었다.

당장 아이템을 수급하는 것부터 문제였다.

"아이템은 던져준답니다. 경복궁 근처에 지정된 위치로. 던져놓으면 그때 위치를 알려준다고 합니다."

이런 식의 배달 과정에서는 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이 낮지 않았으니까.

'이대로 그냥 넘어갈 리 없다. 분명 판을 망치려고 수작을 부릴 가능성이 있다.'

또한 린샤오웨이가 다른 식으로 움직일 가능성 역시 낮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김지운은 알았다.

'아쿠하시아 열매가루가 있다고 해도 상황은 쉽지 않다. 리자드맨 주술사를 잡는 게 아니라 리자드킹의 알을 파괴해야 하니까.'

이번 과제 자체가 매우 어렵다는 것을.

사실 이쯤에서 김지운은 염두에 두었다.

'우리 파티만으로는 힘들다.'

단독행동이 아니라 다른 헌터들과의 협업을.

'마녀와 빙신이 추가되어도.'

더불어 꽤 많은 이들의 협업이 필요했다.

지금 기준으로 10레벨이 넘는 헌터가 최소 오십 명 이상이 필요했다.

그쯤에서 김지운은 떠올렸다.

'붉은늑대.'

압구정 로데오거리에서 만났던 자들을.

"대장."

그렇게 다양한 선택지를 늘려가는 김지운, 그러나 그런 그의 고민은 곧 무색한 것이 됐다.

"사건이 터졌습니다."

올라왔으니까.

"드래곤슬레이어가 번개 모임을 올렸습니다."

2.

아포칼립스 소설이나 영화를 보면 언제나 공통된 주제가 있다.

"사람이 제일 위험하다."

멸망한 세계에서 인간을 믿어서는 안 된다고.

어비스 아포칼립스가 되어버린 지금 세상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어떤 몬스터들보다 인간을 의심하고, 경계했다.

- ㅇㅇ : 어비스넷 없었으면 답답해 뒤졌을 거야.

ㄴ 123 : 비대면이 미래다!

ㄴ ㅁㄴㅇ : 그나마 코로나 덕분에 마스크랑 비대면 시스템이 갖춰져서 다행이야. 그러니까 다들 중국에 감사하자고

ㄴ 123 : 응, 시진핑 개새끼.

어비스넷의 인기가 폭발한 건 그 때문이었다.

얼굴을 마주하지 않고 커뮤니티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건 아포칼립스 세상에서 최고의 메리트였으니까.

달리 말하면 어비스넷에는 정해진 건 아니지만 암묵적인 합의가 존재하고 있었다.

현실에서 만나자는 말을 자제하자고.

물론 막는 건 아니었다.

사람을 모집한다, 라는 글을 올리거나 혹은 쪽지로 만남을 요청하는 것 정도는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나 정말 대놓고 모임을 가지자, 라는 식의 글에 대해서 어비스넷 유저들은 같은 대응을 했다.

그 어떤 댓글도 달아주지 않는 최고 수위의 대응을.

하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제목 : 번개 모임 공지]

[작성자 : 드래곤슬레이어]

[내용 : 경복궁 퀘스트에 참가할 이들을 대상으로 번개 모임을 진행하려고 한다.

참가자격은 몬스터 머리 100개다. 사진 찍어서 쪽지 보내면 자세한 위치와 일정을 알려주겠다.

선착순 100명이다.]

한국 게시판의 아이돌과 같았던 드래곤슬레이어가 대놓고 번개 모임 글을 올렸다.

- ㅇㅇ : 번개 모임? 딱 봐도 이거 함정이네.

- 123 : 드래곤슬레이어가 결국 본심을 드러냈네. 헌터들 모아서 아이템 갈취하려고 하네.

- ㅁㄴㅇ : 이거 믿는 흑우 없제?

선을 넘는 행위였고, 그렇기에 이제까지와 달리 그 글에는 온갖 악플이 달렸다.

그러나 김지운의 생각은 달랐다.

글을 보는 순간 김지운은 확신했다.

"드래곤슬레이어는 최소 별이 하나 이상 있는 헌터다."

100명의 헌터, 그것도 당장 몬스터 머리 100개를 모아올 실력자가 필요하다, 그건 김지운이 내린 판단과 똑같았으니까.

또한 방법도 마음에 들었다.

"시간의 소중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

드래곤슬레이어는 그동안 어비스넷에서 쌓아온 이미지가 무너지는 것을 감수하고 글을 올렸다.

지금은 이미지보다 경복궁을 정리하는 게 우선이란 판단을 내린 것이다.

이 대목에서 김지운은 드래곤슬레이어에 대해 준 점수를 높였다.

이 정도로 결단력 있는 판단을 내리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었으니까.

어쨌거나 김지운 입장에서는 좋은 기회였다.

"이 번개에 참가한다."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시체를 모아둔 곳에서 머리를 잘라오도록."

번개 모임 참가 조건인 몬스터 머리 역시 이미 일찍이 몬스터 시체를 정리해둔 김지운 입장에서는 어려울 게 없었으니까.

"사진은 컨테이너 트럭 안에서 찍는다."

더불어 자신들의 위치를 들키지 않을 만한 장소를 마련하는 것 역시 어려울 게 없었다.

덕분에 모든 과정은 빠르게 이루어졌다.

남은 결정은 하나였다.

"대장, 어떤 이름으로 보낼까요?"

여기서 김지운은 결단을 내렸다.

"민트초코케이크로 움직인다."

이제는 존재를 드러내기로.

그렇게 모든 결정을 내린 김지운이 드래곤슬레이어에게 사진을 넣은 쪽지를 보냈다.

답장은 빠르게 왔다.

[드래곤슬레이어 : 닉네임이 민트초코케이크?]

거의 1분 만에.

[드래곤슬레이어 : 뭘 좀 아는 녀석이군. 마음에 들어. 합격이다.]

매우 호의적인 반응이 왔다.

"민트초코케이크를 좋아하는 모양이네요. 대장이랑 꽤 잘 어울릴 듯합니다."

"난 딸기케이크가 제일 좋다."

김지운 입장에서는 살짝 탐탁지 않은 호의가.

물론 둘의 취향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드래곤슬레이어 : 머리가 400개인 걸 보면 참석인원은 4명인가?]

[민트초코케이크 : ㅇㅇ]

[드래곤슬레이어 : 일단 일정은 24시간 후다. 촉박하지만 어쩔 수 없다. 상황이 좋지 않다.]

지금은 그런 취향 따위를 염두에 둘 때가 아니었으니까.

[드래곤슬레이어 : 번개 모임을 하자마자 곧바로 경복궁에 진입할 거다. 컨디션 관리하고 오도록.]

[민트초코케이크 : 문제없다. 그래서 위치는?]

[드래곤슬레이어 : 번개 모임 위치는 청와대다.]

3.

청와대, 그 단어가 나오는 순간 김지운은 이해했다.

왜 그곳이 번개 장소로 꼽혔는지.

일단 경복궁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다.

'방공호가 있지.'

결정적으로 청와대에는 핵전쟁이 일어나도 버틸 수 있을 만큼 튼튼한 방공호가 여러 개 존재하고 있었다.

청와대가 국민에게 개방된 이후로는 운영이 중단되었겠지만, 그 설비 등의 보수는 꾸준히 이루어졌을 터.

그야말로 최고의 번개 모임 장소였다.

단지 김지운은 여기서 한 가지를 확신했다.

'드래곤슬레이어는 정부 고위 공직자 혹은 군의 상층부와 접점이 존재한다.'

드래곤슬레이어의 뒤에 꽤 높으신 양반이 있으시란 것을.

그도 그럴 것이 청와대의 방공호 위치는 극소수만 알고 있는 극비 중의 극비였다.

또한 그곳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몇 가지 과정을 거쳐야 했으며, 그 과정을 거칠 수 있는 자는 대한민국에서 서른 명이 넘지 않았다.

'생각보다 세력이 거대하다.'

여하튼 드래곤슬레이어가 그 정보력까지 손에 넣었다면 그의 세력은 모두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강력할 가능성이 높았다.

대한민국에는 국민들이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한 것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었으니까.

당장 청와대 근처에는 알려지지 않은 무기고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많았다.

그리고 그게 당연했다.

대한민국은 휴전 국가였고, 전쟁과 테러에서 가장 최우선으로 노출된 곳이 청와대였으니까.

그 주변에 긴급한 사태에 대비한 군수물자가 있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

'그곳의 무기를 수급했다면 화력은 남다를 거다.'

그동안의 파격적인 행보가 이해가 되는 대목.

지금 김지운 입장에서는 반가운 일이었다.

드래곤슬레이어의 세력이 강력하다는 것은 경복궁 레이드가 순조롭게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였으니까.

그쯤이었다.

린샤오웨이 쪽에서도 쪽지가 왔다.

[좌표다.]

아쿠하시아 열매 가루를 던져놓은 위치를 적은 쪽지가.

그 순간 더 이상 김지운 파티는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5시간 후에 출발한다."

"어, 그럼 약속시간까지 3시간밖에 안 남는데요? 너무 촉박한 거 아닙니까?"

"시간은 남을 거다."

그렇게 번개 모임 약속 시간으로부터 3시간이 남는 순간, 그 순간 김지운 파티가 움직였다.

그리고 김지운 파티는 2시간 만에 목적지엔 청와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시간이 단축됐어?'

그때보다 더 빨리.

물론 김지운 입장에서는 당연했다.

이미 한 번 움직인 루트인데 느려지면 그게 오히려 김지운 입장에서는 이상한 일이었다.

그렇게 도착한 청와대 앞에서는 드래곤슬레이어의 동료로 보이는 헌터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공기호흡기를 짊어지고, 청와대 경호원들이 쓰는 MP7 기관단총을 손에 든 채로.

그들은 김지운 파티가 등장하는 순간 바로 총구를 겨누었고, 그들 앞에서 김지운 파티는 양팔을 머리 위로 들었다.

그리고는 흔들흔들, 양팔을 흔들고는 바로 양팔을 교차하며 엑스자 표시를 만들었다.

번개 참석자란 걸 증명했다.

그러자 바로 공기호흡기를 찬 이들이 다가오더니 이내 손에 든 스케치북을 보여줬다.

[제1회 드래곤슬레이어배 청와대 번개모임 참석을 환영합니다.]

그 후에 한 명이 김지운 파티를 매우 친절하게 청와대 구석진 곳에 숨겨진 방공호로 안내했다.

그렇게 도달한 방공호에는 이미 적지 않은 헌터들이 모여 있었다.

그중에는 익숙한 얼굴도 있었다.

'붉은늑대랑 엘리스.'

압구정 로데오 거리에서 봤던 얼굴이.

그들 역시 김지운을 발견하고는 눈매를 가늘게 떴다.

그뿐이었다.

인사는 없었다.

굳이 미리 알고 있는 사이인 걸 드러내서 좋을 건 없었으니까.

"자리에 앉으시죠."

그렇게 김지운 파티는 마련된 자리에 앉았다.

편의점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접이식 플라스틱 원형 테이블 하나 그리고 의자 4개가 마련된 자리에.

[민트초코케이크]

그리고 그 테이블 위에는 김지운의 닉네임이 적힌 큼지막한 종이 카드가 꽂혀 있었다.

그 자리에 김지운 파티가 앉았다.

"그럼 제1회 드래곤슬레이어배 청와대 번개모임을 시작하겠습니다."

그와 동시에 번개 모임이 시작됐다.

"일단 이번 번개 모임을 주최한 드래곤슬레이어 님의 말씀이 있겠습니다."

바로 준비된 단상 위로 한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제는 마스크를 벗고 오롯한 모습으로 등장한 드래곤슬레이어의 외모는 피골이 상접했다, 라는 느낌이 들만큼 날카로운 인상의 40대 중년 사내였다.

그러나 나약하다 느낌은 없었다.

오히려 한 벼려진 한 자루의 칼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런 드래곤슬레이어는 모두를 향해 말했다.

"긴 말하는 재주는 없으니까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자. 모두 모인 목적은 경복궁 퀘스트 보상이겠지? 그러니까 경복궁에 있는 리자드맨 애들을 쓸어버리고, 가장 많은 공을 세운 쪽이 모루뱀의 눈을 가져간다. 디테일하게 들어가면 보스 몬스터를 잡은 파티 그리고 리자드맨을 가장 많이 잡은 파티, 두 파티가 알아서 결정하게 놔둔다."

깔끔하게 상황을 정리했다.

"이에 대한 반문은 있나?"

그 누구도 반문을 할 수 없을 만큼 깔끔하게.

그 때문이었다.

"거기."

모두가 가만히 있는 상황에서 손을 든 한 명의 사내에게 모든 이들의 시선이 꽂힌 것은.

"민트초코케이크, 뭐가 문제이지?"

그런 모두의 시선 속에서 김지운이 말했다.

"총 없이 갔으면 한다."

"뭐?"

"말 그대로다. 이번 경복궁 레이드는 모두 총을 비롯한 폭약 같은 현대 병기 없이 진행했으면 좋겠다."

그 말에 좌중의 반응이 달라졌다.

지금 인류가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를 버리고 싸우자고?

누가 들어도 미친 소리였으니까.

'대장?'

당장 김지운의 동료들조차도 이 발언에 놀랐다.

그렇게 모여든 시선은 따갑기 그지없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헌터들, 이제까지 사람과 괴물을 사냥해오던 자들의 시선이었으니까.

하지만 김지운은 개의치 않았다.

"안전을 위해서다. 만약 모두가 총을 쏘면 경복궁이 총성으로 가득 찰 거다."

그는 말했다.

"그런 상황에서 누군가 총을 들고 헌터들을 사냥해도 눈치 챌 도리가 없다."

총이라는 무기가 가진 위험성을.

그 말에 드래곤슬레이어가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

"이 번개 모임에 마피아가 있다는 건가?"

소름이 끼칠 만큼 차가운 표정으로.

그러나 김지운 입장에서는 감흥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마피아 정도면 상관없다. 총 들고 설치든 말든. 하지만 스킬을 가진 헌터가 총을 들고 설치는 건 솔직히 부담스럽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이는 게 아니었으니까.

"그러니까 총성 없는 상황에서 싸우고 싶다. 그러면 총성이 들리는 순간 도망이라도 칠 수 있을 테니까."

때문에 김지운의 말에 모인 헌터들의 표정이 바뀌었다.

충분히 타당한 말이었으니까.

그런 그들에게 김지운은 결정타를 날렸다.

"무엇보다 총을 쓰는 건 헌터답지 않다."

"뭐?"

"말 그대로다. 어비스에서 총 없이도 다들 문제없이 사냥했다. 그런데 굳이 지금 총이 필요한가?"

그 말에 모두의 눈빛이 달라졌다.

자존심을 자극 받은 눈빛을.

드래곤슬레이어도 마찬가지였다.

김지운의 말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어비스의 헌터답게 해야지. 저 의견에 나는 찬성한다. 반대하는 자는?"

그 말에 손을 드는 이는 없었다.

그것으로 이야기는 끝이었다.

"좋아, 그럼 합의가 끝났으니까 다음으로 넘어가자고."

남은 것은 사냥 뿐.

"이제 남은 건 두 가지야. 하나는 제비뽑기를 할 거야. 경복궁에 들어갈 순서 그리고 위치를 정하는 제비뽑기지. 여기 지금 총 12개 파티가 모였으니까 시계 시침 순서대로 루트를 정했어."

그 말에도 반대는 없었다.

대신 의문은 있었다.

"남은 하나는 뭐지?"

진입 루트까지 정하면 사실상 이야기가 끝난 셈인데 해야 할 게 또 있다니?

그 반문에 드래곤슬레이어가 웃으며 말했다.

"아주 중요한 게 남았지."

그리고는 드래곤슬레이어가 턱짓을 하는 순간 그의 동료들이 잽싸게 가지고 온 플래카드를 펼쳤다.

"기념비적인 어비스넷 한국게시판 첫 번개 모임인데 단체 사진 하나 찍어야지."

'제1회 드래곤슬레이어배 번개 모임' 이란 글자가 쓰인 플래카드를.

64화 19화. 번개 모임 (2).

4.

"자자, 들어오세요. 거기! 등에 칼 차고 계신 헌터분! 옆에 분하고 좀 더 붙어주세요."

사진 촬영은 꽤 본격적이었다.

"맨 뒤쪽 분들! 사이사이에 들어와야 얼굴이 보입니다! 어깨 사이로 얼굴 내미시고요."

마치 결혼식 단체 사진을 촬영하는 것처럼.

물론 대부분은 이 사진 촬영을 반기지 않았다. 

얼굴이 드러나기를 바라지 않은 이들이 대부분이었고, 해서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있었고, 필요에 따라서는 선글라스 등을 쓰는 이들도 있었다.

김지운과 그 동료들도 마찬가지였다. 준비해 온 발라클라바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달리 말하면 그렇게 하면서까지도 모두가 사진촬영 무대에 올라섰다.

예의였다.

"다들 조금만 더 협조해달라고. 그래도 이렇게 모이는 게 쉬운 건 아니잖아? 안 그래? 오늘 이 사진이 나중에 역사적인 기념물이 될 수도 있다고."

이 무대를 만들어둔 드래곤슬레이어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실제로 이 무대를 만드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많은 시간과 인력을 소모해야 가능한 일.

심지어 드래곤슬레이어는 이 번개 모임을 위해서 귀중한 무대라고 할 수 있는 청와대 방공호를 공개했다.

아포칼립스가 되어버린 세상에서는 정말 대단한 결정이었다.

물론 이것이 순수한 호의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이곳에 단 한 명도 없었다.

모두는 알았다.

이건 드래곤슬레이어가 살아남은 헌터들에게 보이는 메시지임을.

이 청와대와 경복궁이 있는 곳을 제 집으로 삼았다는 것을 알리는 메시지.

'야망이 넘치는군.'

그리고 한반도 역사에서 그게 어떤 의미인지 모르는 이는 단 한 명도 존재치 않는다는 것.

여러모로 소란을 피우기에는 좋은 무대가 아니었다.

"자, 그럼 찍습니다! 하나둘셋, 김치!"

그렇게 모두가 사진을 촬영했다.

"아, 좀 빗나갔네요. 거기 맨 오른쪽에 계신 방독면 쓰신 분! 조금 더 안쪽으로 붙어주세요! 예! 좋습니다!"

10번 넘게.

"끝났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그렇게 긴 촬영을 마친 후에야 비로소 모두는 시작했다.

"이제 경복궁으로 가셔도 좋습니다!"

경복궁 레이드를.

5.

어비스넷이 불을 피우고, 드래곤슬레이어가 기름을 끼얹은 경복궁은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서울 내에 거주하며 여유가 있는 헌터들은 정말 예외 없이 경복궁이 있는 종로로 향했다.

그곳이 위험하다는 걸 모르는 이는 없었다

'모루뱀의 눈은 그렇다고 쳐도, 여기서 헌터들을 확인하는 건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반대로 손을 놓고 있기에는 이번 일은 여러모로 여파가 클 수밖에 없었다.

다들 짐작했으니까.

경복궁을 방문한 헌터들이 앞으로 있을 아포칼립스 생존에서 적잖은 영향을 미치게 되리란 것을.

최소한 서울에서는 그들이 룰을 만들게 되리란 것을.

이건 리스크와 메리트를 계산하기에 앞서 꼭 확인해봐야 하는 일이라는 것을.

'문제가 생겨도 총이 있으니까.'

물론 그들을 움직이게 해준 가장 큰 비결은 다름 아니라 그들이 가진 무기였다.

총이라는 무기가 어비스에서 쓰기 좋은 무기는 아니었다. 소리에 민감한 몬스터들을 너무 자극했으니까.

그러나 위급한 순간 총보다 더 믿음직한 무기는 없었다. 어지간한 화이트 클래스 몬스터라면 순식간에 처리가 가능했으니까.

때문에 이제 살아남은 자들은 총을 제외한 무기를 다룬다는 것은 쉽사리 상상할 수 없었다.

남은 탄약을 제 수명처럼 여겼다.

그런데 지금 경복궁 진입을 앞둔 헌터 무리들 중에는 총을 든 이가 존재치 않았다.

"총 없이 싸우라니."

그게 이번 레이드의 조건이었으니까.

이해하기 힘든 일.

그러나 막상 그 상황을 마주한 헌터들의 표정에 당혹감이라 그런 표정은 없었다.

오히려 모두의 표정에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드래곤슬레이어도 그랬다.

"이래야지."

호흐프 열매를 머금은 그의 입가에는 진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증거였다.

"사냥은 이래야지."

그가 진짜배기 헌터라는 증거.

츠릉!

그렇게 드래곤슬레이어가 칼을 뽑았다.

그것은 평범하게 생긴 검이었다. 흔히 말하는 롱소드라고 부르는 검.

그러나 그 크기는 범상치 않았다. 검의 길이가 칼자루를 포함해서 2미터를 훌쩍 넘길 정도.

검이라기보다는 창에 가까웠다.

휘두르는 것이 상상이 되지 않을 정도.

하지만 드래곤슬레이어는 그 검을 가뿐하게 한 손으로 들었다.

그리고는 나아갔다.

열기로 가득 찬 버니 나무로 채워진 경복궁을 향해서.

위풍당당하게.

그 걸음은 경복궁을 코앞에 둔 상황에서도 달라지지 않았다.

드래곤슬레이어는 마치 보란 듯이 경복궁의 정문, 광화문을 향해 걸음을 내디뎠다.

샤아!

그리고 드래곤슬레이어가 광화문을 넘는 순간, 그 광화문 위에 있던 리자드맨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섬뜩한 광경이었다.

저마다 손에 창이나 칼과 같은 무기를 든 2미터에 이르는 도마뱀 인간 수십 마리가 방문객을 내려다보는 광경을.

심지어 새빨간 안개 탓에 제한된 시야는 그 리자드맨들을 더더욱 무시한 존재들로 만들었다.

"와라!"

그러나 그 광경을 향해 드래곤슬레이어는 겁에 질리기는커녕 오히려 소리를 내질렀다.

샤아!

그 외침에 리자드맨은 기꺼이 응했다.

리자드맨들이 광화문에서 뛰어내렸고, 드래곤슬레이어는 놈들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쉬익!

그렇게 휘두른 드래곤슬레이어의 검이 코앞에 있던 리자드맨을 단칼에 두 동강을 냈다.

압도적인 위력이었다.

드래곤슬레이어가 자신의 닉네임을 왜 드래곤슬레이어로 지었는지 기꺼이 알 수 있는 위력.

더불어 드래곤슬레이어 파티는 그만 강력한 게 아니었다.

그의 뒤를 이어서 곧바로 동료들이 붙었다.

모두가 도끼나 해머 같은 무식하기 그지없는 무기를 들고 있었다.

샤아!

그 무식한 무기들도 덤벼드는 리자드맨들을 상대했다.

치열하고 소란스러운 전투가 시작됐다.

"이런 식의 전투는 별로인데."

그러나 이건 어비스의 헌터답지 않은 전투 방식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비스에서는 소란을 피우지 않는 것이 기본 중의 기본이었다.

개미가 사마귀들하고 소란스럽게 치고받고 싸우면 지나가던 새나 개구리들이 가만히 볼 리 없지 않은가?

그럼에도 이렇게 싸우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리자드맨 주술사의 존재였다. 놈이 가진 특별한 재주 앞에서 은밀하게 움직인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래도 뭐 열두 곳에서 소란을 일으키면 리자드맨 주술사라고 해도 문제없지."

다른 하나는 이곳에 무려 열두 개나 되는 헌터 파티가, 백 명에 이르는 헌터가 있다는 점이었다.

리자드맨 주술사가 아무리 재주가 좋다고 하더라도 열두 곳에서 들어오는 모든 이들을 파악하고 그에 맞는 전술전략을 펼치는 것은 불가능했다.

결국 리자드맨 주술사는 혼란을 느낄 것이고, 리자드맨들은 전술적인 움직임 대신 그냥 본능적인 움직임만 보일 것이 분명했다.

그게 드래곤슬레이어가 이번 번개를 주최한 이유였다.

사방을 두드리면 공략 난이도가 급격히 내려간다는 것.

"마스터."

물론 이 계획에는 한 가지 결점이 있었다.

"체리피커가 나오면 어떻게 합니까?"

모두가 소란을 피우는 사이에 한 파티가 은밀하게 리자드맨 주술사를 처치할 수도 있다는 것.

그렇게 되면 나머지들은 그야말로 들러리가 되는 셈.

"걱정하지 마라."

하지만 그에 대해서 여기 모인 헌터들은 걱정하지 않았다.

확신했으니까.

"그럴 만한 헌터라면 별이 하나도 아니고 최소 다섯 개는 되어야 할 거다."

여기서 은밀하게 리자드맨 주술사에게 접근할 수 있는 파티는 단 한 곳도 없으리라고.

6.

'고요하다.'

삽시간에 소란으로 가득 찬 경복궁.

'우리만.'

하지만 김지운 파티는 어느 때보다 조용하게 그 경복궁을 거닐고 있었다.

그것은 정말 경이로운 일이었다.

'마법 같다.'

이제까지 온갖 기상천외한 상황을 경험한 김지운의 동료들조차도 경이로움에 감탄을 되새김질 할 만큼.

'이 정도로 효과가 좋을 줄이야.'

동시에 이 마법 같은 일을 가능케 한 아쿠하시아 열매가루의 능력이 감탄이 나왔다.

물론 지금 김지운 파티가 경복궁을 관광하듯 거닐 수 있는 건 오롯하게 투명 물약 덕분은 아니었다.

애초에 아쿠하시아 열매가루라고 하더라도 만능은 아니었다. 냄새만 지워줄 뿐, 소리나 모습을 없앨 수는 없었다.

'대장 손에 들어오니까 진짜 투명 물약이 되네.'

길잡이가 다른 누구도 아닌 김지운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더불어 김지운에게는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예상대로 열심히 난리를 쳐주는군.'

그도 그럴 것이 하나도 아니고 무려 열한 개나 되는 파티들이 경복궁을 두드리는 중이었다.

그것도 아주 소란스럽게!

리자드맨 주술사 입장에서는 어떤 낌새도 없는 곳에 병력을 배치할 여유는 조금도 없었다.

물론 몇몇 리자드맨이 남긴 했지만 그 역시 김지운에게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일단 김지운에게는 모루뱀의 눈을 이용해 안개 속에 숨은 리자드맨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었다.

동시에 김지운에게는 그게 있었다.

끼엑!

염력을 이용해 몇 안 되는 리자드맨을 정말 조용하게 제거할 수 있는 기술이.

그 덕분이었다.

김지운 파티는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목적지에, 경복궁의 중심인 근정전 근처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내 근처에서 들을 수 있었다.

키르르르! 키르르르!

보통의 리자드맨과는 전혀 다른 울음 소리를 내뱉는 존재를.

'리자드맨 주술사다!'

그건 김지운 파티 입장에서는 그리 유쾌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애초에 김지운 파티의 목적은 리자드맨 주술사 사냥이 아니라 리자드킹의 알을 파괴하는 것이었다.

즉, 리자드맨 주술사와 조우해서 좋을 건 하나도 없었다.

더군다나 리자드맨 주술사는 꽤 골치 아픈 몬스터였다.

일단 놈은 적을 마주하는 순간 제 부하들을 전부 불러모을 게 분명했다.

그리고 그렇게 몰려온 부하들에게 리자드맨 주술사는 그 이름처럼 주술을 걸 수 있었다.

리자드맨들을 고통을 느끼지 않는 전사로 만들 수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리자드맨 주술사 자체도 일반 리자드맨 따위는 그냥 맨손으로 찢을 만큼 강했다.

여기에 리자드맨 주술사는 불덩이를 만들어내거나 산성액을 토해내는 공격형 주술도 쓸 수 있었다.

여러모로 좋지 않은 상대.

'역시 있었군.'

그러나 그 리자드맨 주술사의 존재를 확인한 김지운 파티는 크게 놀라지 않았다.

'대장이 말한 대로.'

이미 김지운이 예고한 바였으니까.

그리고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기도 했다.

이곳에 있는 모든 리자드맨에게 가장 중요한 건 자신들의 목숨이 아닌 왕의 알이었다.

그런 왕의 알을 위협하는 존재들이 온 상황에서 리자드맨 주술사가 왕의 알 곁에 없다면 그게 이상한 일.

[전투다.]

때문에 김지운가 보낸 수신호가 모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기다렸다.

김지운이 작전을 설명해주기를.

동시에 긴장했다.

'어떤 작전이든 간에 쉽진 않을 거다.'

김지운의 능력을 의심하는 건 아니지만, 저 괴물을 상대로는 김지운도 고전을 각오할 수밖에 없음을.

어쩌면 오늘 이곳에서 희생자가 나올수도 있음을.

그 사실에 각오를 다짐하는 동료들에게 김지운이 작전을 적은 스마트폰을 보여줬다.

[총으로 쏴 죽인다.]

그리고 그 작전을 보는 순간 모두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니, 총 안 쓰기로 합의했잖습니까?'

이곳에서 총성을 없앤 건 그 누구도 아닌 김지운 아니었던가?

그런데 총을 쓴다?

하지만 김지운의 표정은 담담했다.

그도 그럴 것이 김지운이 총성을 없앤 이유는 총이 가진 위력 때문이었다. 

리자드맨 주술사가 바보도 아니고 이미 몇몇 헌터들과 조우를 하면서 총의 위력을 잘 알고 있을 터였다.

그리고 이제까지는 위협되지 않은 숫자가 오니까 그 위협을 감수하고 이 자리를 지켰을 터였다.

그런데 어비스에서 제법 굴러본 헌터 백 명이 총기를 들고 사방에서 진입을 한다?

리자드맨 주술사가 과연 그들을 상대로 전투를 치를까?

아니면 그냥 리자드킹의 알을 가지고 도망을 치고자 할까?

답은 뻔한 바.

그래서 총을 막았고, 그 덕분에 김지운은 리자드맨 주술사와 리자드킹의 알을 코앞에 둘 수 있었다.

이제 총을 쓰는 걸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물론 한 가지 중요한 부분이 있었다.

'총을 쏘면 합의 위반 아닙니까?'

다른 누구도 아니고 헌터들과 한 약속을 어긴다는 것.

아포칼립스로 변한 세상이기에 그 약속은 굉장히 중요했다.

그런 모두의 의문을 예상한 듯 김지운은 스마트폰을 가볍게 터치하며, 미리 써둔 답변을 보여줬다.

[모루뱀의 눈을 포기하면 된다.]

아주 깔끔한 답을.

그리고 완벽한 답이기도 했다.

애초에 이곳에 모인 모든 헌터들의 목적은 리자드맨이나 리자드맨 주술사와 춤을 추는 게 아니었다.

모루뱀의 눈을 가지는 거였지.

김지운이 그런 모루뱀의 눈을 포기한다면 헌터들이 더 이상 그와 얼굴을 붉힐 이유는 없었다.

그리고 김지운 입장에서는 리자드킹의 알을 확실하게 처리할 수 있다면 모루뱀의 눈 따위는 얼마든지 포기할 수 있었다.

'역시 대장.'

그런 김지운을 동료들은 빠르게 이해했다.

자신에게 위협되는 몬스터를 제거하기 위해 가장 최선의 방법을 거침없이 선택하는 것, 그게 김지운이 이제까지 보여준 모습이었으니까.

그렇게 고개를 끄덕이는 부하들 앞에서 김지운은 큼지막한 가방에서 준비해온 총을 꺼냈다.

'뭐지?'

그렇게 꺼낸 총은 K2자동소총하고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컸고, 또한 분해된 상태였다.

'저격용 라이플인가? 근데 총구가 총 같지가 않은데?'

익숙하지 않은 총이었고, 해서 이영후와 고강수는 총을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맙소사.'

반면 총을 아는 강현중은 어느 때보다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K6를 가져왔다고?'

김지운, 그가 가지고 온 건 K6 중기관총이었으니까.

65화 19화. 번개 모임 (3).

7.

대한민국의 상징 중 하나인 경복궁.

캬아!

"잡아!"

어떤 순간이 오더라도 영원할 것 같았던 그곳은 지금 괴물과 헌터의 전장이 되어 있었다.

샤아!

"뒤로 가는 루트 만들어!"

"벽에 막혔습니다."

"부셔!"

그리고 그 전투 속에서 경복궁의 온갖 것들은 처참하게 유린 당하고 있었다.

콰앙!

곳곳에 있는 아름다운 석상들은 부서졌고, 고풍스러운 벽은 무너졌으며, 하나하나가 국보와 같은 전각들은 쓰레기 취급을 당했다.

"불 질러!"

화르르르!

심지어 이제는 곳곳에서 불꽃이 피어올랐다.

경복궁이 무너져가고 있었다.

처참한 현실.

"저거 전부 찍어."

"예?"

"경복궁 부서지는 거 전부 제대로 찍어."

드래곤슬레이어는 데리고 다니는 카메라맨에게 이 모든 과정을 사진과 영상으로 담으라고 했다.

"이 정도는 보여줘야 방공호에서 엉덩이 붙이고 있는 놈들이 현실을 깨닫지."

말을 뱉은 드래곤슬레이어의 입가에는 미소가 그어져 있었다.

'생각보다 수확이 더 크군.'

그는 지금 이 세상을 즐기고 있었다.

그만큼 그는 자신이 있었다.

이 빌어먹을 세상에서 살아남는 것은 물론 그 이상을 이룩할 수 있는 자신이.

'이대로 30레벨만 찍으면.'

자신감이 넘치는 건 어비스의 경험 때문이 아니었다.

'그걸 쓸 수 있다.'

그의 수중에 이 모든 상황을 무색하게 만들 만큼 강력한 아이템이 있다는 것.

사실 그 때문에 드래곤슬레이어는 원하는 레벨을 찍을 때까지 행보를 자제하려고 했다.

'모루뱀의 눈이 있으면 레벨업은 더 빨라진다.'

그러나 이번에 걸린 아이템은 드래곤슬레이어도 움직이게 할 만큼 매력적이었다.

달리 말하면 그는 확신이 있었다.

이 경복궁 레이드에서 승자가 될 확신이.

그것도 막연한 확신이 아니었다.

"상황은?"

"아직 리자드맨 주술사 위치는 파악되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중심부로 가까워지니까 조금 있으면 보일 듯합니다."

"좋아."

그는 준비했다.

"그럼 모두들 총하고 클레이모어 준비하도록."

아주 강력한 것들을.

물론 번개 모임에서 약속을 했다. 총을 쓰지 않기로.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번개 모임의 약속일뿐, 어비스넷의 퀘스트와는 관계가 없었다.

경복궁의 리자드맨들을 총으로 쓸어버리든, 핵폭탄으로 쓸어버리든 어쨌거나 쓸어버린 자에게 보상이 지급된다는 의미.

더군다나 드래곤슬레이어는 여기서 체면을 깎을 필요도 없었다.

"대기 중이 애들에게 신호 보내. 바로 움직일 수 있도록 준비하라고."

숨겨둔 병력이 나설 테니까.

그 후에 드래곤슬레이어는 자신이랑 상관없는 일이라고 발뺌하면 될 뿐이니까.

사실 이건 드래곤슬레이어만 할 수 있는 생각은 아니었다.

여기 온 헌터들 중 상당수는, 아니 어쩌면 전부는 드래곤슬레이어와 같은 생각을 할 가능성이 높았다.

여차하면 총을 쓴다, 라는 선택을.

그게 목숨을 잃거나 혹은 아이템을 잃는 것보다 훨씬 더 나은 선택임을.

해서 드래곤슬레이어는 자신이 있었다.

갑자기 총성이 나더라도 놀라지 않을 자신이.

분명 그랬다.

콰콰콰콰!

"뭐, 뭐야?"

그 소리를 듣기 전까지는.

8.

K6.

중기관총으로 당연한 말이지만 그 위력은 보통의 자동소총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러나 총에 대해 별 지식이 없는 이들은 그 차이가 얼마가 되는지 알지 못했다.

그냥 좀 더 강하구나, 라고 생각할 뿐.

하지만 실제로 두 총을 경험한 이들은 말한다.

중기관총쯤 되면 그건 총으로 분류하기보다는 그냥 또 다른 무기로 봐야 한다고.

그리고 그 차이는 총성을 듣는 순간 바로 알 수 있었다.

지금도 그랬다.

콰콰콰콰콰!

김지운이 준비해온 K6의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 총성과는 비교할 수 없는 소리가, 고막이 터질 듯한 소리가 들렸다.

과장이 아니었다.

실제로 김지운은 지금 귀마개를 하고 있었다.

K6가 내뿜는 소리는 정말로 사람의 귀를 멀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으니까.

그리고 어비스 안개에서 청각을 지키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었으니까.

당연한 말이지만 K6중기관총은 다른 자동소총이나 저격용 총처럼 들고 다니는 무기가 아니었다.

본래대로라면 분해 후에 운반하는 데에만 병사 두세 명이 달라붙어야 하는 무기.

그러나 헌터들의 경우에는 달랐다.

이미 초인적인 힘을 가진 김지운 입장에서는 분해된 K6를 가지고 다니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콰콰콰콰!

그러나 K6의 방아쇠를 당기는 김지운의 표정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

좋을 수가 없었다.

일단 김지운은 K6를 쓰는 것, 그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방아쇠를 당길 때마다 자신의 존재감을 사방에 뿌려주는 아이템은 생존을 우선시하는 김지운의 가치관에 가장 반하는 무기였으니까.

들고 다니는 것도 쉽지 않았다. 무게를 떠나서 그 부피가 너무나도 컸다. 이동 시에 제약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 건 그거였다.

'이걸 쓰게 될 줄이야.'

이런 무기를 써야만 하는 상황을 마주했다는 것.

그만큼 리자드맨 주술사를 잡는 것은 쉽지 않았다.

정확히는 리자드맨 자체가 트롤만큼은 아니지만 생각보다 매우 뛰어난 회복력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리자드맨들은 상처를 입어도 금방 지혈이 됐다. 도마뱀이 필요에 따라 꼬리를 잘라내는 수준은 아니지만, 팔다리가 잘리거나 배에 구멍이 나도 과다출혈로 죽는 일은 많지 않았다.

그런 리자드맨을 상대로는 어지간한 총격으로는 도리어 큰 데미지를 주기 힘들다는 의미.

그뿐만이 아니었다.

'시간이 없다.'

K6는 강력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한정 사용할 수 있는 무기가 아니었다.

총 자체의 문제보다는 보유할 수 있는 탄약에 한계가 명백했다.

그리고 총성이 터지는 순간 경복궁에 있는 모든 리자드맨들이 소리가 난 곳으로 몰려올 게 분명했다.

'30초 안에 모든 걸 마쳐야 한다.'

즉, 이 시간부로 김지운에게 주어진 시간은 1분은커녕 그 절반에 불과할 따름이었다.

달리 말하면 김지운은 자신이 있었다.

콰콰콰콰!

30초 안에 리자드맨 주술사를 처치할 자신이.

그만큼 K6가 보여주는 위력은 절대적이었다. 애초에 이건 리자드맨 주술사 수준에서 방어가 가능한 수준이 아니었다. 

또한 이곳을 가득 채운 버니 나무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것들은 K6가 내뿜는 무시무시한 총알 앞에서 종잇장에 불과할 따름이었다.

결정적으로 김지운은 30초 안에 리자드맨 주술사를 끝장을 낼 자신이 있었다.

콰콰콰콰!

그러니까 그 말도 안 되는 거대한 무기인 K6로, 저격용 라이플과는 정확도를 비교할 수 없는 그 무식하기 그지없는 무기로 리자드맨을 정확히 명중시킬 자신이.

당연히 막연한 자신감이 아니었다.

이미 김지운은 실전 테스트를 마친 상태였고, 거기서 김지운은 결론을 내렸다.

'30발.'

100미터 내에 위치한 리자드맨 주술사를 잡는 데에는 30발의 총성이면 충분하다고.

콰콰콰콰!

그리고 지금 그 30번째 총성이 들렸을 때 김지운은 방아쇠에서 손가락을 땠다.

동시에 들렸다.

[리자드맨 주술사를 처치했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리자드맨 주술사가 도감에 등록됩니다.]

[마력이 3포인트 상승합니다.]

사냥이 끝났음을 알리는 알림이.

그러나 김지운에게 쉴 틈은 없었다.

그는 이미 빠르게 K6를 분해하는 작업에 나섰다. 

이제부터 모든 것은 초 단위로 계산이 되어야 했으니까. 1초가 매우 중요한 순간이었으니까.

그렇게 김지운이 K6를 적당히 분해하고, 챙기는 순간 곧바로 김지운의 근처에 등장했다.

샤아!

리자드맨 두 마리가.

그 두 마리를 향해 김지운은 괜한 장난질 따위는 하지 않았다.

타앙, 타앙!

바로 허리춤에서 꺼낸 권총으로 두 마리의 미간을 완벽하게 꿰뚫었다.

그렇게 리자드맨을 처치한 김지운이 그 자리에서 일어나 도망치기 시작했다.

샤아!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더 많은 리자드맨이, 수십에 이르는 리자드맨이 김지운을 따라왔다.

하지만 추격전은 길지 않았다.

김지운은 버니 나무 한 그루를 올라탔고, 그 나뭇잎 사이에 모습이 가려지는 순간 손가락을 튕겼다.

그와 동시에 김지운이 순간이동을 했다.

'확실하게 죽었군.'

리자드맨 주술사의 시체가 놓인 곳으로.

그곳에서 김지운은 잽싸게 리자드맨의 주술사가 손에 쥐고 있었던 지팡이를 쥐었다.

그것을 쥐는 순간 보였다.

[얼음용의 피를 빨아먹은 나무 지팡이]

- 아이템 등급 : 레전더리

- 22레벨 이상 착용 가능

- 공격력 : D-랭크

- 내구도 : D-랭크

- 화려한 장난꾼만 사용 가능

- 착용 시 마력 +10

- 착용 시 얼음 속성 스킬 지속 시간 22퍼센트 증가

- 착용 시 얼음 속성 스킬 데미지 22퍼센트 증가

- 착용 시 얼음 속성 스킬 쿨타임 22퍼센트 감소

- 착용 시 얼음 속성 스킬 마력 소모량 22퍼센트 감소

- 얼음용의 피를 조금 빨아먹은 나무 지팡이다. 신비하고 강력한 힘을 품고 있다.

이 아이템의 능력이.

꽤 놀라운 아이템이었다.

'레전더리일 줄이야.'

김지운도 예상치 못한.

그리고 옵션도 굉장히 좋았다.

솔직히 이 정도 옵션이면 20레벨은 물론 30레벨, 그 이상에서도 쓸 만한 아이템이었다.

물론 감상은 오래 가지 않았다.

김지운이 피어오른 꽃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새 창이 떴다.

[룬(강렬한 일격)]

- 등급 : 유니크

- 기력을 소모해 강력한 공격을 날린다. 스킬 랭크가 오를수록 스킬의 위력이 증가한다.

- 17레벨 이상 습득 가능

- 우둔한 사냥꾼만 습득 가능.

스킬룬이.

'고강수는 운이 따른 편이군.'

이 역시 매우 좋은 스킬이었다.

'가장 중요한 스킬 2개를 파밍에서 얻다니.'

좋은 정도를 떠나서 우둔한 사냥꾼에게 2개의 스킬을 고르라면 열 명 중 아홉 명은 고를 스킬이었다.

위력도 위력이지만, 쿨타임이 거의 존재하지 않았으며, 동시에 기력 소모량이 적었다.

권투로 따지면 잽과 같은 스킬이었다.

모루뱀의 눈을 얻지 못하더라도 아쉬울 건 하나도 없을 만한 수확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감상은 길지 않았다.

이제 해야 할 일이 더 남아 있었다.

그쯤에서 김지운이 고개를 돌렸고, 그러자 김지운은 들을 수 있었다.

타앙, 타앙!

총성 두 발을.

신호였다.

'설치가 끝났군.'

김지운이 리자드맨 주술사를 상대하는 사이, 세상의 시선을 끄는 사이 남은 세 명이 리자드킹의 알 근처로 이동한 후 클레이모어 설치를 끝냈음을 알리는 신호.

동시에 그 총성이 난 곳이 위치였다.

클레이모어의 격발 장치가 있는 위치.

김지운이 망설임 없이 그곳으로 갔고, 그러자 김지운의 눈에는 덩그러니 놓인 격발장치가 보였다.

동료들은 보이지 않았다.

그들의 역할은 설치만 하고 도망치는 것뿐, 격발 장치를 누르는 건 김지운의 몫이었으니까.

그리고 그게 당연했다.

이 격발장치를 누르는 순간 K6중기관총의 총성과는 비교할 수 없는 폭발음이 터질 것이다.

동시에 이곳에 있는 리자드맨들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파괴될 것이다.

리자드맨들이 미쳐 날뛰게 될 거라는 의미.

사실 여기서 격발 장치를 터뜨리는 건 그냥 폭발이 아니라 자폭과 같은 일이었다.

그러나 김지운은 망설이지 않았다.

'37초.'

총성이 터지고 37초가 지난 지금 동료들을 충분히 먼 곳까지 도망친 상태일 터.

딸깍!

그렇게 계산을 마친 김지운이 격발 장치를 눌렀고, 그러자 들을 수 있었다.

콰과과과광!

설치한 클레이모어 열 개가 동시에 격발되는 소리가.

[리자드킹의 알을 처치했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리자드킹의 알이 도감에 등록됩니다.]

[근력이 10포인트 상승합니다.]

그리고 목적을 완수했음을 알리는 소리가.

샤아아아아아!

그와 동시에 경복궁에 있는 모든 리자드맨들이 울음을, 분노를 터뜨리는 소리가 들렸다.

경복궁 전체가 울리기 시작했고, 동시에 모든 리자드맨이 모이기 시작했다.

샤아아아!

왕을 죽일 자를 처치하기 위해서.

눈이 돌아간 채.

그야말로 몰려오는 해일과 같았다. 도망칠 구석 따위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해일.

김지운이 보기에도 그랬다.

모루뱀의 눈이 가진 사안 스킬 덕분에 보이는 리자드맨 무리 속에 비집고 나갈 틈 따위는 없었다.

그러나 개의치 않았다.

탁!

그저 손가락을 튕길 뿐.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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