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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DRAGONINTHENOVEL / Chapter 2: 2

章 2: 2

104화. 영웅 (3)

파츠측-.

입구 쪽에서 들려온 기묘한 소리.

곧이어 한 줄기의 하얀 전류가 피어올랐다.

그리고.

번쩍-.

세상을 집어삼키는 빛.

노부부는 어마어마한 빛에 놀라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쾅-.

"컥?!"

무지막지한 충격음과 비명이 들려왔다.

잠시 뒤 눈을 뜬 부부.

그들의 시야에 머리가 바닥을 뚫고 들어간 습격자와 그 곁에선 거한이 들어왔다.

팔다리를 바동거리는 습격자의 허리를 거한이 짓밟았다.

쾅- 우득-.

무언가 부러지는 듯한 소리에 노부부는 절로 눈을 찔끔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또 한 명의 습격자를 처리한 파브로가 노부부에게 시선을 돌렸다.

"괜찮으시오?"

"아...."

노부부는 파브로를 보며 감격스러워했다.

노부인이 파브로에게 달려가 손을 덥석 잡았다.

"고맙습니다! 이 은혜를 어찌...."

"되었습니다. 위기에는 서로서로 돕고 살아야지 않겠습니까?"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노부인이 연신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때 부인의 옆으로 노인이 다가오며 말했다.

"은인… 감사합니다."

"그러지 마십쇼. 뭐 대단한 일을 했다고."

"대단하지 않다뇨! 당신은 우리의 영웅입니다!"

위기의 순간 나타나 구해 준 파브로가 그들의 눈에는 영웅처럼 보였다.

이어지는 칭찬에 파브로가 멋쩍게 웃어 보였다.

"크흠, 무, 무슨… 영웅씩이나."

겨울 대륙에서 산적질을 하던 파브로가 언제 이런 대접을 받아 보았겠는가.

그의 입꼬리가 씰룩였다.

하지만 그것도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어쭈? 뭐 하냐? 혼자 놀고 있지?]

귓가에 울리는 심기 불편한 목소리.

어깨를 흠칫 떤 파브로가 재빨리 기절한 습격자의 다리를 잡았다.

그가 노부부를 보며 말했다.

"식당으로 가시오."

"식당 말씀이십니까?"

"식당에 먼저 구해 준 이들을 모아 두었소. 그곳은 안전합니다. 가는 길은 싹 정리해 두었으니 습격도 없을 게요. 날 믿고 가시오."

"알겠습니다."

파브로의 말에 아내의 어깨를 끌어안고 고개를 끄덕이던 노인,

그는 기절한 습격자의 다리를 잡아 질질 끌고 나가는 파브로의 뒤에 대고 외쳤다.

"은인! 이름… 이름이 어찌 되십니까?"

그 물음에 덤덤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파브로요."

그것을 끝으로 파브로의 모습은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파브로… 파브로라."

자신들을 구해 준 이의 이름을 되뇌던 노부부는 영웅이 말한 안전지대인 식당으로 발길을 돌렸다.

* * *

"…이게 무슨?!"

페이지는 정신이 없었다.

로이스 일행에게 습격자들을 죽이지 말아 달라고 하긴 했지만, 그 과정이 그리 순탄치 않으리라 생각했었다.

적을 죽이는 것과 완전히 무력화시켜 제압하는 것.

두 가지 일의 난이도는 명백하게 큰 차이를 지니고 있으니 말이다.

하물며 비공선을 습격한 자들의 수는 못 해도 두 자릿수였다.

그들 모두를 제압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의 예상은 보란 듯이 빗나갔다.

"이쪽 끝!"

"여기도 끝!"

쾌활한 얼굴로 노릇노릇 지져진 사람을 하나씩 끌고 오는 쌍둥이.

'대, 대체 뭐야?!'

파브로도 나름 활약을 하기는 했지만, 쌍둥이의 활약이 압도적이었다.

'저 애들도 괴물이었어!'

애늙은이 백발 꼬맹이만 무서운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철부지 같던 은발의 꼬맹이들도 만만치 않은 괴물이었다.

페이지는 대체 저 쌍둥이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조차 확인도 하지 못했다.

그저 뇌전이 번뜩이는 순간 습격자들이 픽픽 쓰러졌다는 것뿐.

그건 다시 말해 모두 한 방에 정리가 됐다는 뜻이었다.

그렇게 방을 나선 지 채 20분이 되기도 전에 인근 객실을 돌며 습격자들을 모조리 잡아 온 로이스 일행.

'나… 이런 이들을 상대로 일을 꾸미려 했던 거야?!'

만약 일이 잘못됐다면?

그랬다면...?

페이지는 오스스 소름이 끼쳐 몸을 떨었다.

그사이 로이스가 기절한 놈들의 어깨에 문신이 있는 것을 확인했다.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문신이 있다.'

그것도 틀에 찍어 낸 듯 전부 어깨에 말이다.

확인한 습격자를 가볍게 휙- 던져 버리는 로이스.

그 모습에 페이지는 질린 얼굴이 더욱 창백해졌다.

'…이 아이들 정체가 뭐냐고!'

페이지가 놀라 토끼 눈을 하는 사이 로이스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페이지, 손이 쉰다? 팍팍, 세게 묶으라고!"

"아, 넵!"

로이스의 핀잔에 페이지는 화들짝 정신을 차리고 기절한 습격자들을 결박했다.

'대체 이 밧줄은 어디서 난 거지?'

밧줄 강도가 일반적인 밧줄이 아니었다.

그런 밧줄을 주머니에서 계속해서 꺼내는 로이스 덕분에 페이지는 쉬지 않고 움직여야 했다.

"너 때문에 안 죽이고 살려 둔 거니까, 만약 이놈들 풀려나서 난리 치면 네가 책임져야 해."

"최, 최선을 다해 묶을게요!"

이미 쌍둥이의 실력을 본 페이지는 있는 힘껏, 절대 풀리지 않게 밧줄을 묶어 나갔다.

그렇게 페이지가 모든 습격자들을 꽁꽁 묶었을 때, 하늘에서 무언가가 뚝 떨어졌다.

-뀻!

로이스의 앞에 착지한 카이.

그와 함께 로이스의 품으로 날아든 핀.

"다녀왔습니다!"

"확인했어?"

"지금 객실을 습격한 놈들은 이게 전부인 거 같아요. 나머지 잔당은 전부 함교에 모여 있더라고요."

로이스와 대화를 나누는 의문의 목소리에 페이지가 집중했다.

"함교라… 숫자는?"

"일곱 명입니다! 그중 대장으로 보이는 이도 있었고요."

"놈들의 목적은 알아봤어?"

"정확한 목적은 모르지만, 목적지는 알아냈어요!"

"오? 어딘데?"

"여름 대륙의 프렌체 왕국이라고 하던데요?"

핀의 정보에 로이스가 인상을 썼다.

그가 페이지를 보며 물었다.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레온 혁명군인가 뭐시기가 프렌체 왕국에서 활동하는 집단이냐?"

"…네."

"설마 그 목표가 악독한 왕의 폭거에 맞서 왕국을 바로잡겠다느니 뭐… 그런 거는 아니겠지?"

"...."

페이지는 답하지 못했다.

무언은 긍정이라 했다.

복잡해 보이는 페이지의 얼굴을 보며 로이스는 더 묻지 않고 몸을 틀었다.

"여긴 정리 끝났으니 함교로 간다."

어차피 로이스의 최종 목적은 혼란을 틈타 함교의 장물을 손에 거머쥐는 것.

지금까지 일은 그 최종 목적에 도달하기 위한 몸풀기에 불과했다.

"앞장 서, 페이지."

"네…."

로이스의 명령에 함교의 잠입을 위해 위치를 외워 뒀던 페이지가 앞장서서 길을 안내하기 시작했다.

* * *

구불구불 꼬인 비공선의 복도를 따라 위로 올라온 로이스 일행.

이제 한 모퉁이만 돌면 함교가 나오는 상황.

슥-.

그때 페이지가 우뚝 멈춰 섰다.

"왜?"

로이스의 물음에 페이지는 손가락으로 입을 가렸다.

조용히 하란 소리였다.

그녀가 매우 작게 속삭였다.

"함교 앞에 보초가 있어요."

굳은 얼굴의 그녀가 작은 거울을 꺼내 함교 문을 비췄다.

거울에 칼을 든 두 사내가 문을 지키고 서 있는 모습이 담겼다.

"잠입하기 쉽지 않겠네요...."

페이지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런 페이지를 보고 로이스가 피식거렸다.

"잠입은 무슨."

"네?"

"네가 뭘 착각하고 있나 본데, 우리는 조용히 와서 조용히 가려고 한 게 아니거든."

"...?"

페이지의 의문 어린 시선을 뒤로하고 로이스가 발을 내디뎠다.

그러자 그의 발끝에서 번져 나가는 검은 기운.

복도 바닥을 타고 빠르게 번져 나간 검은 기운이 함교와 복도를 감쌌다.

'공간 분리.'

로이스가 펼친 성법이 함교와 복도의 공간에 틈을 만들었다.

이제 복도에서 폭탄이 터져 나가도 함교에서는 이를 전혀 눈치채지 못하리라.

만반의 준비를 한 로이스가 쌍둥이의 손목을 잡았다.

그러고는 모퉁이를 빠져나갔다.

"어?!"

"괜찮습니다."

놀란 페이지를 파브로가 진정시켰다.

그사이 함교의 보초들이 로이스와 쌍둥이를 발견했다.

"애들?"

"이 새끼들이 뭐 하느라 저런 꼬맹이가 접근하게 그냥 둔 거야?"

보초들의 얼굴에 귀찮음이 드러났다.

그랬던 표정이 변하는 건 순식간이었다.

"읏차!"

쌍둥이의 손을 잡고 제자리에서 빙그르르 회전하는 로이스.

팽이처럼 빙빙 돌던 그는 속도가 일정 수준에 도달하자 쌍둥이를 집어 던졌다.

그러면서 쾌활하게 외쳤다.

"가랏! 뇌전쌍둥몬!"

드래곤의 우월한 힘에 회전력까지 더해지니 쌍둥이의 몸이 포탄처럼 날아갔다.

"헛!"

"뭐, 뭐야?!"

어린아이들이라고 얕보고 있던 보초들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칼을 빼 들었다.

하지만 그보다 로이스와 쌍둥이가 빨랐다.

쌍둥이가 복도의 중간쯤을 지났을 때 로이스가 연이어 외쳤다.

"뇌전쌍둥몬! 100만 볼트!"

"백마아아안!"

"보오올트으으!"

하늘을 날며 뇌전을 피워 올린 쌍둥이.

그들에게서 뻗어 나온 벼락이 두 명의 보초에게 내리꽂혔다.

"...?!"

뇌리를 강타하는 아찔함에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입만 뻥긋거린 보초가 흰 연기를 피워 내며 그대로 쓰려졌다.

그런 상황을 처음부터 끝까지 본 페이지는 눈알이 튀어나오는 줄 알았다.

"저게… 뭐야…?"

"일일이 그렇게 반응하다가는 본인 심력만 낭비하는 거니… 그냥 그러려니 하십쇼."

로이스와 쌍둥이에게 시달리며 해탈한 파브로가 건네는 적절한 조언이었다.

그사이 쌍둥이가 로이스에게 쪼르르 달려갔다.

"로이 로이 이거 재밌다!"

"또 하자!"

"로이, 백만 볼트가 뭐야?"

백만 볼트가 뭔지도 모르면서 그냥 로이스가 한다고 따라 한 쌍둥이.

그 와중에 보초들이 죽지 않게 힘을 조절한 걸 보면 기가 막힐 따름이었다.

깔끔하게 보초를 제거하고 로이스가 파브로와 페이지를 향해 손짓했다.

안 오고 뭐 하냐는 뜻이었다.

"가시죠."

"아… 네."

이제 로이스와 쌍둥이에게 면역이 된 파브로는 담담하게, 페이지는 쭈뼛쭈뼛 걸음을 옮겼다.

함교의 문을 앞에 두고 로이스가 턱을 쓸었다.

'둘을 처리했으니 안쪽에 있는 건 다섯인가?'

기감으로 함교 안쪽 상황을 살핀 로이스.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면 파브로 혼자 되려나?'

가장 강한 기운이 파브로와 비슷한 정도였다.

'잘됐네. 이참에 파브로도 운동시키고 실력도 좀 기르게 해야지.'

실력 향상에 실전만큼 좋은 게 있을까?

근래 매번 자신과 쌍둥이가 알아서 처리하다 보니 파브로가 살만 뒤룩뒤룩 찌고 있는 듯싶었다.

물론 그건 로이스만의 생각이었지만.

그가 배시시 웃으며 파브로를 돌아보았다.

"파브로."

"네?"

"아까 영웅 소리 듣고 기분 좋아 보이더라?"

"큿흠."

그건 또 언제 보셨대?

멋쩍음에 파브로가 헛기침을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로이스의 말이 이어졌다.

"이왕 그렇게 된 거 진짜 영웅 한번 되어 보지 않을래?"

"예?"

도무지 로이스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리는 파브로.

이에 로이스의 미소가 짙어졌다.

"헤헤, 걱정 마. 내가 다 알아서 판을 짜 줄게."

"...?"

"넌 내가 시키는 대로 해 봐. 일단 한 발 들어."

"…이렇게 말입니까?"

무언가 수상쩍었지만, 일단은 로이스가 시키는 대로 하는 파브로였다.

그건 뼛속까지 스며든 드워프의 노예근성 때문이리라.

"그 상태에서 함교에 가져다 대."

파브로의 발이 함교 문에 닿았다.

그의 자세를 요리조리 살피던 로이스가 무언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추가 명령을 내렸다.

"망치도 좀 그럴싸하게 잡아 봐. 가슴까지 탁 끌어 올려서!"

"…했습니다."

"인상도 팍 쓰고!"

"이렇게요?"

"오! 좋아 좋아! 지금 그 표정! 아주 마음에 들어! 옳지, 그 상태로 대기."

자다가 깨서 보면 기겁할 파브로의 표정에 로이스는 좋다고 박수를 쳤다.

"자, 너희는 이쪽으로 빠지고."

로이스가 쌍둥이와 페이지를 벽 쪽으로 끌어당겼다.

"...?"

"뭐야, 뭐야?"

"로이, 뭐 하게?"

페이지와 쌍둥이가 의문스러운 시선을 보내 왔지만, 로이스는 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함교의 문을 향해 손을 뻗었다.

'공간 결정.'

처쩌적-.

성법이 펼쳐지기 무섭게 문에서 심상치 않은 소리가 들려왔다.

무언가 이상함을 눈치챈 파브로가 다리를 떼려 했지만, 이미 늦어도 한참은 늦어 버린 뒤였다.

'파쇄!'

쾅-.

거친 소음을 내며 함교의 문이 안쪽으로 튕겨 나갔다.

"헉?!"

난데없는 상황에 파브로가 놀라 그 자세 그대로 굳어 버리고 말았다.

훤히 함교 내부가 드러나자 로이스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그가 손을 휘두르자 4개의 검은 기운이 빠르게 쏘아졌다.

"컥!"

"큭!"

정확히 4번의 신음과 함께 함교를 장악했던 이들 중 넷이 쓰려졌다.

그와 함께 곧장 투명화로 파브로의 뒤로 숨은 로이스.

그가 굵직한 목소리를 흉내 내며 우렁차게 외쳤다.

"여기 대가리가 어떤 놈이야! 당장 나와! 대갈통을 뽀사 줄 테니!"

함교를 울리는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파브로는 두 눈을 끔뻑일 뿐이었다.

황급히 뒤를 확인한 그는 자신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입을 벙끗거렸다.

그사이 쓰러진 부하들을 한번 흘끗거린 습격자의 우두머리가 검을 뽑아 들었다.

"…어떤 놈인지는 모르겠지만."

-스르릉.

"여기까지 온 걸 후회하게 해 주마."

서늘하게 빛나는 칼날을 보며 파브로는 억울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 아니, 이게… 내가 그런 거 아니올시다만?"

105화. 영웅 (4)

탓-.

칼자국 사내가 지면을 박찼다.

순식간에 몸을 날린 그는 번개처럼 검을 휘둘렀다.

'제, 젠장!'

파브로의 인상이 확- 구겨졌다.

이건 뭐 설명하고 자시고 할 틈이 없었다.

아니, 솔직히 설명이 필요 없기도 했지만....

지금의 상황은 누가 봐도 자신이 문을 부수고 들어온 것처럼 보이지 않은가.

파브로의 머릿속으로 로이스의 낭랑한 목소리가 흘렀다.

[헤헤, 걱정 마. 내가 다 알아서 판을 짜 줄게.]

판을 짜도 너무 잘 짰다.

꼼짝없이 모든 것을 뒤집어쓰고 말았다.

'망할!'

하지만 언제까지 불평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자신에게 날아드는 검을 향해 파브로가 망치를 휘둘렀다.

쾅-.

검과 망치가 부딪치며 폭음이 터져 나왔다.

"큭!"

망치는 검보다 무거운 중병이다.

검보다 속도는 느리지만, 그만큼 압도적인 파괴력을 자랑한다.

빠르게 달려들던 사내가 이를 악물며 뒤로 튕겨 나갔다.

그는 처음과는 달리 경계 어린 눈으로 파브로를 바라보았다.

파브로의 실력이 만만치 않음을 첫 격돌로 깨달은 것이다.

반면 파브로는 망치를 굳게 말아 쥐었다.

"퉷!"

거칠게 땅에 침을 내뱉은 파브로.

"오냐, 어디 한번 해보자!"

첫 격돌로 파브로 역시 깨달았다.

저자의 실력이 자신과 호각이란 것을 말이다.

굳건하게 땅을 내디딘 파브로의 육체에서 갈색의 기운이 무럭무럭 피어올랐다.

그에 맞서 칼자국 사내도 기운을 끌어올렸다.

화르르-.

칼자국 사내의 전신에서 뜨거운 열기와 함께 붉은 기운이 일렁였다.

이를 본 파브로의 눈에 이채가 스쳤다.

'화 속성!'

화(火)와 토(土).

상성 면에서는 딱히 불리하지 않았다.

'해볼 만하다!'

3티어에 상급에 오른 두 개의 기운이 맞부딪히며 대기를 울렸다.

드드드-.

그 상태 그대로 잠시의 소강상태가 이어지고.

쿵-.

기회를 엿보던 와중 먼저 움직인 것은 파브로였다.

그가 지면을 박차며 달려드는 것으로 둘의 격돌이 다시금 이어졌다.

한편, 박진감 넘치는 싸움을 뒤쪽에서 지켜보고 있던 로이스가 쌍둥이에게 말했다.

"파브로가 죽을 거 같으면 도와줘."

"웅웅!"

"파브로가 이길 거 같으면?"

"그럴 때는 그냥 알아서 하고."

"웅웅!"

쌍둥이는 파브로의 고군분투를 흥미진진하게 응시했다.

이에 로이스가 피식거렸다.

'그래, 원래 허접들 싸움이 더 재밌는 법이지.'

로이스는 싸움에서 눈을 못 떼는 녀석들의 손에 사탕을 꼬옥 쥐여 주었다.

딴짓하지 말고 여기서 저거나 보고 있으라는 뜻이었다.

그러면서 페이지를 흘끗거렸다.

파브로의 싸움을 보며 넋이 나간 것을 보니 굳이 따로 말을 걸 필요는 없어 보였다.

'이쪽은 파브로한테 맡겼고.'

저 대장으로 보이는 놈만 처리하면 한밤중에 일어난 습격 사건은 잘 마무리될 듯싶으니.

'그러면 이제....'

로이스의 입꼬리가 씨익- 말려 올라갔다.

'오늘의 수확을 건져 볼까?'

그토록 원하고 원하던 순간이었다.

습격자고 자시고 간에 이게 제일 중요했다.

적어도 로이스에게는 말이다.

그가 페이지의 눈치를 보며 핀에게 속삭였다.

"…어디야? 비밀 공간이?"

"저쪽이에요!"

핀의 손가락이 향한 곳은 함교의 한쪽.

로이스는 격돌이 벌어지는 함교를 기어서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쾅- 쾅-.

싸움에 정신이 팔린 파브로와 습격자의 대장은 이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 * *

쾅- 쾅-.

격렬한 싸움을 뒤로하고 살금살금 움직인 로이스.

"여기야?"

"네!"

오늘의 보상을 챙기러 온 로이스는 열려 있는 함장의 침실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열려 있는데?"

"…그러게요? 이게 왜 열려 있지?"

원래라면 꽁꽁 잠겨 있어야 할 문이다.

적어도 핀이 확인한 바로는 늘 잠겨 있던 곳이 함장의 침실이었다.

이를 알고 있는 로이스의 눈에 당황이 서렸다.

'설마!'

습격자들의 목적이 장물이었던 거 아냐?!

로이스가 다급하게 문을 열었다.

곧 그는 진하게 풍겨 오는 피 냄새에 인상을 썼다.

함장의 침실.

그곳에 여러 구의 시신이 놓여 있었다.

"…이것들이 여기다 옮겨 놨네."

시신은 전부 승무원으로 보이는 이들이었다.

'딱히 뭔가를 뒤진 흔적은 보이지 않는데?'

그렇다면 단순히 시신만 이곳에 치워 놓은 거라고 볼 수 있었다.

핀이 그중 가장 직급이 높아 보이는 시체를 가리켰다.

"어? 쟤가 함장이에요!"

가슴에 관통상을 입은 안대를 찬 중년인.

그를 한번 힐끗거린 로이스는 이내 흥미를 거뒀다.

대신 그는 비밀 공간을 찾아 눈을 빛냈다.

"비밀 창고가 어디에 있을까나?"

마치 보물찾기를 하듯 즐거운 심정으로 방 안을 기웃거리는 로이스였다.

"그건요...."

막 핀이 비밀 장소를 알려 주려는 찰나, 로이스가 손을 들어 말을 잘라 냈다.

"잠깐!"

"네?"

"내가 찾아볼게. 또 이런 걸 찾는 게 재미 아니겠어?"

로이스의 눈이 반짝였다.

'나도 이런 거 완전 해 보고 싶었다고!'

숨겨진 단서를 찾아 방을 탈출하거나 문제를 해결하는 일.

생각만 해도 손이 근질근질했다.

"보자 보자. 보통 이럴 때는...."

로이스가 흥분된 얼굴로 방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액자 같은 거는 없고.'

영화나 만화에서 보면 꼭 그림 액자 뒤에 비밀 금고 하나씩은 있지 않은가?

그런데 함장의 침실에는 작은 액자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그럼...."

이후 그는 촛대나 길쭉한 물건을 하나씩 움직여 보았다.

하지만 그 어디에서도 특별한 무언가는 발견되지 않았다.

방의 벽면도 열심히 두들겨 봤지만, 이상한 점은 없었다.

어지간한 곳은 모두 둘러본 로이스의 시선이 한 곳으로 향했다.

"그렇다면...?"

그의 시선이 닿은 곳에는 큼지막한 침대가 놓여 있었다.

갈색의 카펫 위에 놓인 침대.

로이스가 기대를 품고 침대를 밀어 버렸다.

잽싸게 카펫을 치우자 드러나는 맨홀 뚜껑처럼 생긴 쇠문.

"빙고!"

로이스가 기쁨에 양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역시 비밀 장소 입구의 정석은 침대 밑이지!'

액자 뒤 비밀 금고와 함께 비밀 장소의 정석이 바로 침대 아니겠는가.

희희낙락하는 로이스는 자신이 발견한 쇠문을 두들겨 보았다.

텅텅-.

묵직하게 울리는 소리.

두께가 꽤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만 문을 잡아당길 고리가 보이지 않았다.

"특수한 잠금장치가 걸렸다는 건데...."

얼핏 봐도 평범한 쇠문은 아니었다.

슬쩍 마나를 투과시켜 본 로이스.

"기물은 아닌 거 같고."

기물이라면 술식 회로가 느껴져야 하는데 그런 건 전혀 없었다.

아마도 순수 금속 가공으로 만들어낸 특수 제작품인 듯싶었다.

'드워프가 만들었을 가능성이 커.'

이대로 부숴 버릴까 싶었던 그는 쇠문의 정중앙에 둥그렇게 파인 홈을 발견하고 멈칫했다.

"흠… 여긴가?"

문고리도 없고 딱히 열쇠 구멍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 둥그런 홈이 출입키를 꽂는 자리이리라.

'이것만 찾으면 된다!'

로이스가 벌떡 일어나 한쪽에 놓인 책상으로 가 서랍을 뒤졌다.

'대충 호두알 크기. 모양은 구체로 추정.'

하지만 아무리 뒤져 보아도 그러한 물건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때 로이스의 뇌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으니.

'비밀 장소는 함장이 침실조차 떠나지 않고 매일매일 지켰어. 그런 중요한 장소의 출입키를 아무렇게나 방치하지 않았겠지.'

만약 자신이었다면....

'늘 지니고 다녔다!'

그리 생각한 로이스가 함장의 시체로 달려갔다.

함장의 옷가지를 뒤적거리는 로이스.

하지만 곧 그의 얼굴에 난감함이 깃들었다.

"…여기도 없다고?"

함장의 전신을 샅샅이 뒤적거려 보았지만, 나오는 물건은 없었다.

"뭐지? 왜 없지?"

그 정도로 중요한 물건이라면 반드시 몸에 지니고 있을 텐데?

'에이 씨, 그냥 부숴 버려?'

답이 보이지 않자 가장 먼저 떠오른 게 힘으로 해결하는 방식이었다.

로이스가 고민을 하고 있자 핀이 쪼르르 날아왔다.

"알려 드릴까요? 후후."

언제든지 말만 하라는 듯한 핀의 말투가 로이스에게 오기를 불러일으켰다.

입술을 삐죽 내민 로이스가 아무 말 없이 손을 내저었다.

말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얼레?"

곧 그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고개를 들었다.

"호두알 크기의 구체. 항상 몸에 지니고 있어야 할, 절대 분실해서는 안 될 물건."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 로이스의 시선이 함장의 얼굴에 닿았다.

정확히는 함장의 검은 안대에 말이다.

"설마…?"

함장의 얼굴 쪽을 향해 손을 뻗는 로이스.

안대를 벗기자 눈꺼풀을 가로지르는 상처가 가장 먼저 보였다.

그는 자신의 추리가 정답이기를 바라며 눈꺼풀을 뒤집었다.

그러자 드러나는 은빛 광택.

이에 로이스가 화색을 지었다.

'정답이다!'

활짝 웃은 로이스는 함장의 눈에서 금속 구슬을 뽑아냈다.

"으엑, 더러워!"

점액이 묻은 구슬을 함장의 옷가지에 쓱쓱 문지른 로이스가 쇠문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달칵-.

그는 망설임 없이 홈에 구슬을 끼워 넣었다.

그러자 드르르- 잘게 진동하던 금속 구슬이 저절로 반 바퀴 회전했다.

트득-.

끼릭끼릭-.

곧이어 무언가 맞물리는 소리에 태엽이 풀리는 듯한 소리가 뒤섞이더니 쇠문이 움직이며 사르르- 입구를 벌렸다.

덩달아 로이스의 입꼬리도 씩- 말려 올라갔다.

"됐다! 현명한 드래곤은 역시 머리를 써야지! 암! 무식하게 힘만 쓰는 게 전부가 아니라고!"

"역시 로이스 님!"

"후후, 뭘 이 정도를 가지고."

조금 전 문을 부숴 버리겠다고 생각했던 것을 까맣게 잊어버린 모양이다.

핀의 칭찬에 로이스의 어깨가 우쭐 솟아올랐다.

그는 열린 입구를 보며 살짝 혀를 내둘렀다.

'페이지의 계획대로 잠입했어도 쉽게 문을 열지 못했겠네.'

문의 열쇠를 함장이, 그것도 한쪽 눈에 품고 있을 거라고 예상이나 했겠는가.

아마 원래의 계획대로 했다면, 제법 애를 먹었으리라.

어쩌면 정체불명의 적이 급습을 해 준 것은 로이스에게 큰 호재일지 몰랐다.

"그럼 가 볼까?"

로이스는 신난 얼굴로 열린 입구를 향해 발을 내디뎠다.

텅- 텅-.

쇠로 만든 계단을 타고 내려간 로이스.

그렇게 얼마나 내려갔을까?

자신의 앞에 나타난 광경에 로이스의 입이 커다랗게 벌어졌다.

"와아…."

처음에는 무슨 고대의 유물이라기에 빗살무늬토기 같은 것을 떠올렸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여기도 반짝, 저기도 반짝! 모두모두 반짝반짝!"

고대의 유물이라 불리는 것들은 전부 값비싼 은과 금으로 만들어진 물건이었다.

'이러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페이지는 유물의 수가 백여 점 정도라고 했지만, 그녀의 정보는 틀렸다.

"마, 많네요."

족히 15평은 넘어 보이는 넓은 공간.

그런 곳에 반짝이는 것들로 가득차 있었다.

그 수가 못해도 수백 점 이상은 되리라.

그리고 한쪽에 곱게 쌓여 있는 상자.

로이스가 그중 하나를 들춰 보았다.

"헤...."

기쁨으로 푸들푸들하는 로이스의 입꼬리.

"영약이다… 그것도 최상급의!"

놀랍게도 상자에 든 것은 최상급의 영약이었다.

영약을 입에 달고 사는 로이스이기에 한눈에 그 품질을 알아봤다.

"설마… 이게 전부?"

로이스는 층층이 쌓인 상자를 보며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이 정도면 쌍둥이와 나눠 먹어도 족히 1년은 더 먹을 수 있을 양이겠는데?'

극상의 희귀한 영약은 아니지만, 지금 로이스에게 이 정도면 진수성찬이나 다름없었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얻은 수확.

횡재도 이런 횡재가 있을까?

로이스는 이제는 멀어진, 그리고 다시는 볼 일이 없는 사무엘 영주가 있을 방향을 향해 엄지를 치켜 올렸다.

"잘 먹겠습니다!"

당차게 따봉을 날려 준 그는 아공간을 열어 비밀 창고 안에 있는 것들을 쓸어 담기 시작했다.

"어우야… 이걸 절반이나 내줬으면 피눈물 날 뻔했네."

만약 페이지와의 계약대로 이중 절반을 내줬다?

배가 아파서 대성통곡을 했으리라.

"미니 토토, 밥 먹자."

로이스는 한쪽에 수북이 쌓인 금화 더미에서 한 줌을 집어 토끼 지갑에 채워 넣었다.

삽시간에 빵빵해진 토끼 지갑.

로이스의 눈에는 그게 너무도 예뻐 보였다.

"에헤야 디야! 일하자, 일!"

토끼 지갑을 갈무리한 로이스는 다시 힘내서 장물들을 아공간에 쓸어 담기 시작했다.

창고를 가득 채우고 있던 반짝이는 물건과 영약이 모두 사라지고.

"끝!"

로이스가 유쾌하게 웃으며 손을 탁탁- 털었다.

그러고는 일말의 망설임 없이 내려왔던 계단을 올라갔다.

"흐흥~."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폴짝폴짝 계단을 뛰어오르는 로이스.

텅텅 빈 창고를 등지고 떠나가는 그 모습이 빵빵해진 토끼 지갑과 닮아 보이는 것은 착각이었을까?

106화. 영웅 (5)

무사에게 있어 4티어의 경지가 체내에 쌓은 속성력을 육신 곳곳으로 퍼트려 초인이 되는 기틀을 만드는 거라면.

3티어는 그 기틀을 밟고 본격적으로 날아오르는 단계였다.

체내에 축적한 속성력을 외부로 끄집어내 속성력이 타고난 고유 특성을 마음껏 활용하는 경지.

물론 3티어의 경지도 숙련도에 따라 급이 나뉘는 것은 당연했다.

그런 의미에서 파브로와 그를 상대하고 있는 이는 완숙된 3티어에 도달했다고 봐도 무방했다.

슥-.

칼날이 파브로의 볼을 스쳤다.

뒤이어 따라오는 화 속성의 뜨거운 열기에 이마가 절로 씰룩였다.

하지만 금세 되돌아오는 검의 궤적을 보며 파브로는 망치를 휘둘러야 했다.

쿵-.

다시 한번 검과 망치가 부딪치며 두 사람의 몸이 훌쩍 떨어졌다.

"후욱 후욱-."

파괴력 강한 망치를 피하려고 누구보다 빠르게 움직여야 했던 파브로의 상대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반면, 몸 곳곳 자상을 입었지만, 파브로는 숨 하나 흐트러지지 않았다.

그 모습에 칼자국 사내가 이를 악물었다.

'이래서 내가 토 속성 놈들을 상대하기 싫어하는 거다!'

토 속성을 타고나 무사들은 그 어떤 속성의 무사보다 높은 체력과 생명력을 지닌다.

토 속성의 무사를 상대하는 자들은 이를 '징그럽다'고 표현할 정도였다.

'이대로라면 내가 먼저 지치겠군.'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뿐.

'단숨에 끝낸다!'

단 한 번의 공격으로 놈의 숨통을 끊는 방법뿐이었다.

뇌전 속성 다음으로 뛰어난 공격력을 자랑하는 게 바로 화 속성.

칼자국 사내는 자신이 보유한 속성의 공격력을 믿었다.

"후욱...."

길게 심호흡을 한 칼자국 사내가 검을 비스듬하게 내렸다.

곧 그의 주변으로 후끈한 열기가 몰아쳤다.

상대방이 이번 한수로 승부를 보려는 것을 깨달은 파브로도 그에 맞서 모든 속성력을 끌어올렸다.

우직 우직-.

파브로의 육신이 강대한 힘을 머금고 비명을 내질렀다.

"...."

"...."

파브로와 칼자국 사내.

둘은 말없이 서로를 노려보았다.

"오오!"

"오와!"

쪽쪽-.

쌍둥이는 흥미진진한 결전의 순간에 흥분하여 사탕을 거세게 빨았고.

꿀꺽-.

페이지 역시 이번 한 번으로 지금까지의 싸움이 결론 지어질 것이란 것을 깨닫고 마른침을 삼켰다.

마지막 겨룸은 칼자국 사내의 선공으로 시작됐다.

츠츠츠-.

붉게 빛나는 그의 온몸에서 강렬한 열기가 뿜어져 나왔다.

숨조차 쉬기 힘들 정도로 뜨거워진 함교.

"파열참!"

사내가 피워 올린 열기가 검조차 달궜고, 시뻘겋게 변한 한 자루의 검이 파브로의 심장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이를 본 파브로도 자신이 익혀온 최고의 기술로 대응했다.

"흐아아아!"

당차게 기합을 내지르며 달려 나가는 파브로.

웅웅-.

혼신의 힘을 담은 그의 망치가 울부짖었다.

"얼음산...."

황토색으로 물든 파브로의 망치가 수직으로 떨어질 준비를 마쳤다.

겨울 대륙의 칼바람을 맞으며 단련한 최고의 공격기.

수백에 달하는 겨울 오크의 머리통을 날려 버린 공격이 이번에도 역시 적의 머리를 날리기 위해 기세를 뽐냈다.

"가르기이이이…이이…이?!"

당차게 외치며 적의 머리통을 날려 버리려는 찰나.

퍼걱-.

칼자국 사내의 머리가 뒤로 꺾였다.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두 줄기의 붉은 액체.

이를 본 파브로가 동작을 멈추고 눈을 끔뻑였다.

'…뭐야?'

자신이 본 게 맞다면 지금 저건....

"코피?"

선명하게 허공을 가로지르는 건 붉은 코피였다.

그게 시작이었다.

퉁- 퉁- 퉁-.

갑자기 허공에서 생겨난 탁구공 크기의 검은 결정이 칼자국 사내의 전신을 두들겼다.

퍽- 퍽- 퍽-.

"컥?!"

사방에서 날아드는 산탄총 같은 공격에 반응해 보려 했지만, 모든 게 무용지물이었다.

자신의 반응속도보다 빠르게 움직이는 검은 결정에 칼자국 사내는 속수무책으로 쉼 없이 얻어맞았다.

그렇게 얼마나 흘렀을까.

5분이 넘는 시간 동안 두들겨 맞은 칼자국 사내가 그대로 바닥에 털썩- 쓰러졌다.

그런 그의 얼굴은 벌에 쏘인 듯 퉁퉁 부어올라 알아볼 수조차 없을 지경이었다.

빡!

곧 주먹만 한 검은 결정이 쓰러지는 칼자국 사내의 뒤통수를 후렸고.

"컥!"

단말마 같은 비명을 내지르며 그는 기절하고 말았다.

"어...."

죽을 둥 살 둥 맞상대하던 적수가 허망하게 쓰러진 것을 보고 파브로는 말을 잊지 못했다.

곧이어 뒤따르는 뚱한 목소리.

"뭐야, 얘들 아직도 싸우고 있었네?"

배부르게 포식해, 얼굴이 반들반들해진 토끼가 주머니에 손을 넣고 껄렁껄렁 나타났다.

* * *

함교가 정적에 휩싸였다.

불과 20여 분 사이, 생기 넘치는 모습으로 나타난 로이스.

그가 파브로를 뚱하게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난 한 10분이면 끝날 줄 알았는데 아직도 이러고 있었어?"

"...."

로이스가 팔을 뻗어 파브로의 엉덩이를 토닥여 주었다.

원래라면 어깨를 토닥여 주려 했지만 말이다.

"뭐, 어쨌든 고생했어."

"아… 예.... 뭐 그렇죠...."

심히 허탈한 얼굴의 파브로.

그가 애먼 천장을 바라보았다.

'나… 뭘 한 거냐.'

자신이 이 악물고 싸워 온 상대를 파리 잡듯 때려잡은 로이스를 보고 있자니 삶의 회의감이 들었다.

"아앗! 로이 치사해! 내가 도와주려 했는데!"

"아닌데! 내가 하려 했다고!"

쌍둥이가 나타나 자신들이 할 일을 가로챈 로이스에게 원망을 퍼부었다.

물론 로이스는 이를 깔끔하게 무시했지만 말이다.

그사이 로이스는 숨만 쉬고 있는 습격자 무리의 대장을 내려다보다가 무언가를 깨닫고 주먹으로 손바닥을 내리쳤다.

"아, 맞다! 뭐 때문에 이 짓을 벌였는지 물어본다는 걸 깜빡했네."

함장실의 장물이 고스란히 있는 것을 보아 이들의 목적이 장물이 아닌, 순수하게 비행선을 탈취하는 것이란 것쯤은 알 수 있었다.

문제는 비행선을 탈취해 뭐에 쓰려는지를 모른다는 점이다.

그것도 승객들을 전부 죽이면서까지....

로이스가 페이지를 보며 물었다.

"아는 자야?"

그 물음에 페이지가 혼란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내저었다.

"아뇨… 처음 보는 사람이에요."

페이지는 혼란스러웠다.

파브로와 싸운 사내는 분명 처음 보는 이였다.

사내가 혁명군이 아닐 확률이 높음에도 페이지의 안색이 좋지 못한 이유는 그녀가 보내 온 세월에 있었다.

페이지가 여름 대륙을 떠난 지 20년.

그 사이 혁명군 진영에 새로운 이들이 가담했을 것이다.

이자 역시도 그런 혁명군 중 한 명일지 모른다.

하지만.

'이자가 혁명군이 아니라면...?'

대체 이들은 혁명군을 가장해 무엇을 얻으려 한 거지?

그것도 비공선의 주인인 사무엘 영주를 적으로 돌리면서까지 말이다.

고민하는 페이지를 보고 로이스가 어깨를 으쓱였다.

"뭐, 됐어. 자세한 얘기는 깨워서 캐물으면 되니까."

그리 말한 로이스가 기절한 사내를 깨우려는 찰나였다.

쿵-.

비공선이 크게 흔들렸다.

"뭐, 뭐야?!"

몸이 붕 떠오르는 느낌에 놀란 파브로가 옆의 기둥을 부여잡았다.

놀라기는 로이스도 마찬가지였다.

"어라?"

몸이 붕 떠오르는 느낌의 원인은 간단했다.

'고도가 낮아지고 있어?'

그것도 급격하게 말이다.

그제야 이상함을 알아차린 로이스.

그는 황급히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안개와 같은 구름, 거기에 칠흑 같은 어둠으로 인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여기 대체 어디쯤이냐?"

습격자들을 처리하며 함교로 이동하랴.

누가 볼까 재빨리 장물을 주워 담으랴.

정신없이 지나간 상황에 잠시 까먹고 있었다.

이미 비공선이 착륙했어야 시간을 훌쩍 넘었다는 것을 말이다.

쿵-.

그사이 또 한 번 비공선의 고도가 낮아졌다.

급격하게 앞으로 쏠리는 비공선의 몸체.

곧 구름 속을 헤매던 비공선이 밖으로 빠져나왔다.

그제야 함교 선창 너머로 풍경이 펼쳐졌다.

비공선의 유리창.

그 너머로 보이는 것은 제법 규모가 있는 도시였다.

"뭐야? 웬 도시?"

드문드문 불이 켜진 도시의 야경은 높은 곳에서 보니 제법 운치가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눈앞에 나타난 도시를 본 페이지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정확히는 도시 중앙에 자리한 거대한 궁전을 말이다.

"서, 설마?!"

겨우겨우 중심을 잡고 있던 페이지가 낯익은, 그리고 너무도 보고 싶었던 장소의 등장에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녀는 비공선의 직선 궤도를 살폈다.

만약 이대로 시간이 흐른다면 비공선이 떨어질 장소.

그곳은....

"버니엄 궁전!"

"응?"

페이지의 외침에 놀란 로이스가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게 무슨 소리야?"

"여, 여긴 프렌체 왕국이에요!"

"역시 이 자식들 그 레온 뭐시기 혁명군이 맞았던 거야?"

"아니요!"

페이지가 큰 목소리로 부정했다.

그녀의 머릿속에서 지금까지 겪은 사건이 모두 일목 정연하게 정리되기 시작됐다.

어째서 이들이 비공선을 탈취했는지.

왜 승객들을 죽인 건지.

그들의 최종 목적이 무엇인지.

모든 것을 깨달은 페이지가 소리쳤다.

"이들은 프렌체 왕가의 무사들이에요!"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놈들이 노리는 게 바로 왕궁이라고요! 이대로 왕궁에 비공선을 떨어트릴 작정이라고요!"

"아니, 프렌체 왕가의 무사들이 왜 왕궁을 노리는데?"

페이지의 말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왕궁을 노리는 왕가의 무사라.

그렇게 로이스와 페이지가 대화를 나눌 때 옆에서 고함이 들려왔다.

"지금 그러고 한가하게 이야기 나누실 땝니까?! 어떻게 좀 해 보세요!"

새파랗게 질린 파브로가 덜덜 떨며 외쳤다.

'20년 동안 50번밖에 안 떨어졌다며! 그렇다며!'

시시각각 다가오는 지상.

51번째의 추락을 자신이 겪게 될 거라고 생각한 파브로는 덩치에 안 맞게 울먹였다.

이에 로이스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자세한 얘기는 나중에 하자."

페이지를 뒤로하고 곧장 조종대로 간 로이스의 얼굴이 굳어졌다.

"이거...."

비공선의 조종키는 뽑혀 있었고, 그마저도 박살이 난 상태였다.

다른 이것저것을 만져 보았지만, 모두가 먹통이었다.

그제야 로이스는 지금의 사태가 습격자들이 꾸민 계획이란 것을 깨달았다.

'아까 급가속을 한 것도, 지금에 와서 고도가 낮아지는 것도 계산된 거였구나!'

그게 사실이라면 이는 하루 이틀 계획해서 될 것이 아니었다.

어느 지점에서 어떻게 비공선을 떨어트려야 완벽하게 목표를 부술 수 있을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계산했어야 할 테니 말이다.

'하이재킹이라니!'

전생에서는 영화에서나 볼법한 하이재킹을 실제로 당하게 될 줄을 상상도 못 했다.

"왜, 왜 그러십니까?! 뭐가 이상해요?"

파브로의 물음에 로이스가 볼을 긁적였다.

"음… 그… 조종 키가 박살 났는데?"

"...."

로이스의 말에 정적이 흘렀다.

잠시 뒤 파브로가 괴성을 내질렀다.

"으아아! 그, 그러게 왜 저 새끼 대갈통을 깨 버리셔서는!"

파브로가 말하는 '저 새끼'는 비공선 한쪽에 굴러다니고 있는 습격자 무리의 대장이었다.

놈이라면 이번 사태를 해결할 방법을 알고 있을지도 몰랐지만.

'…너무 많이 팼나?'

기절한 채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모양새를 보니 쉽게 깨어나기는 그른 듯싶었다.

로이스가 다시금 볼을 긁적였다.

"아니, 내가 이럴 줄 알았나."

판타지 세상에서 하이재킹당할 거라고 내가 어찌 예상했겠냐고.

투덜거린 로이스의 시선이 정면을 향했다.

'이대로라면 아주 제대로 꼬라박겠네.'

떨어지는 각도상으로 봤을 때 왕궁의 정중앙 건물을 그대로 들이박을 듯싶었다.

그것도 몇 분 내에 말이다.

"음...."

로이스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꺄하하!"

"누나, 누나 이것 봐라!"

쌍둥이는 기울어진 함교를 붕붕 뛰어다녔고.

"으어어어!"

파브로는 기둥 하나를 부여잡고 괴성을 내질렀다.

페이지도 급경사에 제 몸 하나 가누는 게 전부인 듯 보였다.

그나마 멀쩡한 것은 핀뿐.

"어쩌시게요?"

핀의 물음에 로이스가 옅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쩔 수 없지."

현 상황을 해결할 존재는 여기서 자신뿐이었다.

그 말을 끝으로 로이스의 드래곤 하트가 맹렬하게 기운을 뿜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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