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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4% GENIOLINEADESANGRE / Chapter 6: 6

Bab 6: 6

24. 회사 생활 별거 없다.

"넘버 육십오."

"휠 나이트."

바퀴 달린 놈, 눈 마주치면 안 되는 인베이더.

줄줄이 읊었다.

팬더가 고개를 끄덕였다.

출근한 뒤, 인사 대신한 질문이다.

"좋은 아침입니다."

"시발, 좋은 아침은 무슨."

눈이 뻘게진 팀장이 내 인사를 받았다.

어제 밤새 프리미어 리그라도 보셨나. 눈깔 상태가 지나치게 안 좋으시네.

그런데 우리 중 누구보다 일찍 출근하는 얼음 선배가 안 보였다.

빈자리를 보고 묻자.

"정아 선배는요?"

"수면실."

팬더가 답했다.

어째 이 양반도 피로가 느껴진다. 불멸의 예민한 감각은 집중하면 주변 사람의 컨디션을 파악하는 법이다.

어제 단체로 셋이서 소주라도 까셨나.

내 알 바 아니었다.

어느새 2주다. 이제 나도 어엿한 화림인이었다.

외울 거 대충 다 외웠다는 거다.

그래도 여전히 훈련장에는 자주 방문했다.

이게 또 하다가 안 하면 몸이 찌뿌둥하다.

가서 줄넘기 오천 개쯤 하고 샤워하면 상쾌함이 전신에 흘렀다.

하물며 이 훈련 시간도 엄연히 업무 시간이다.

화림의 모든 사원은 육체 단련에 힘쓰는 편이다

불멸자는 재생한다는 것만 제외하면 보통 사람과 비슷한 수준의 신체 능력을 가졌다.

뭐, 순혈은 특별한 힘을 타고난다고는 하는데 그건 아직 자세히 들은 게 없으니 넘어가고.

외우고 익히고 배울 게 많았다.

간간이 총기 훈련과 나이프 훈련까지 받아야 했다.

수습사원으로서 필수적으로 참여해야 하는 교육 시간도 꽤 있었다.

그때마다 동기 얼굴을 보긴 했지만, 한가로이 얘기 나눌 시간은 없었다.

나만 바쁜 게 아니었다.

다들 바빴다. 그 말하기 좋아하는 요한 형이.

"나 먼저 간다."

꼬리에 불붙은 송아지처럼 움직이는 걸 봤다.

"나중에 봐."

귀태 형도 마찬가지고.

정기남과 우미호도 봤다. 둘 다 눈인사도 안 했다.

이 싸가지없는 개나리 둘은 언제 사람이 될까.

일하다가 마주칠 일이 없어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회사 생활 별거 있나.

별거 없었다. 시키는 거 잘하고 먹을 때 잘 먹고 묵묵히 제 할 일만 하면 된다.

가짜 서류 만드는 일도 배우고 팬더 대리가 작성한 옛날 보고서를 보며 보고 양식을 외우기도 하는 시간이었다.

솔직히 말하지.

바쁘긴 한데 외울 거 대충 다 외우니, 딱히 할 일이 없었다.

창가를 보니 겨울 햇살이 반짝이는 빛을 뿌렸다. 히터를 틀지 않아도 햇살만으로 따끈한 온기를 느끼기 좋은, 거참 놀기 딱 좋은 날이네.

다들 바빠 죽는데 왜 이 팀만 한가할까 하는 의문이 생길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의문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이미 아는 답이다.

그동안 받은 교육이 헛되지 않았다.

구조를 알아서 일을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다는 얼음 프린세스 김정아 사원의 말이 맞았다.

난 그저 톱니바퀴가 아니라, 이 회사의 구조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 결과 지금 할 일이 없는 이유를 안다.

간단히 말하자면 화림에는 네 개의 본부가 있고 그 밑으로는 팀이 있다.

그중에서 파견 본부 외부 보안팀은 주로 외적으로 도는 일을 맡는다.

기본적으로 이쪽이 하는 일은 세 개다.

하나, 담당 구역 재난 지원.

어렵게 말하면 이렇고 쉽게 말하면.

어스 블랙홀 터지면 출동하는 거다.

당연하게도 담당하는 지역이 있고 그 지역의 어스 블랙홀을 담당한다.

둘, 테러 대응.

이것도 어렵게 말하면 테러지.

쉽게 말하면 불멸, 변신, 초능, 마법이라 나뉘는 네 개의 특수종 중에 사고 치는 새끼 있으면 잡으러 간다는 거다.

이쪽 일은 많지 않다고 들었다.

주로 처리하는 게 보안 2팀 쪽이기도 하고.

경찰 쪽에서도 내부에 불멸특수대와 비슷한 팀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셋, 지원.

본래 3팀은 이쪽이 주 업무라고 했다.

이쪽 팀 인원이 이렇게 개차반인 것도 그런 이유라고 한다.

순혈 팀장에 혼혈 대리, 비약 인간 선배, 그리고 혼혈 신입.

이제까지 본 바에 의하면 보안 팀은 주로 순혈이 자리를 채웠다.

이유? 하나다.

불멸 순혈의 피가 더 진하고 이 피가 더 진하다는 건 불멸이 가진 힘을 더 잘 쓴다는 거다.

재생을 제외하면 일반적인 인간과 비슷하다는 건 어디까지나 근력 따위의 육체적인 힘을 말하는 거고 그 외의 힘은 또 별개다.

감각, 직감, 육감, 거기서 비롯한 특별한 힘.

거기에 혼혈과는 비교도 안 되는 재생 속도.

보안팀이 일이 주로 '전투'니까 당연한 걸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이 팀이 이상하다는 거지.

순혈에 혼혈에 비약 인간 조합이라니.

그래서 외부 보안 3팀의 주 업무는 지원.

다른 팀에서 일어나는 일에 맞춰 돕는다는 거다.

보통은 한가하다. 이게 정상이었다.

몸이나 풀러 가볼까.

팀장은 아까 나가더니 안 돌아오고 팬더는 묵묵히 모니터를 보며 키보드와 씨름 중이다.

슬쩍 의자를 빼고 일어나 움직이는 중이었다.

탕비실 쪽에서 팀장과 우미호가 나오는 게 보였다.

붙임성 없는 셜록 홈즈 개나리는 표정이 딱딱했지만.

팀장은 달랐다.

"오, 진짜? 희한하네. 그래서 다들 그렇게 생각했다고? 시발, 니들 속은 거 아니냐?"

저거 웃네. 나한테는 비웃음밖에 보여 주지 않은 팀장이 해맑게 웃는다.

뭐지, 이 기분.

뭘까, 곰곰이 이 기분의 정체를 파악해봤다.

어머니가 날 놔두고 남의 집 자식을 칭찬하는 그런 기분이다.

더 쉽게 말하자면 그냥 보는 것만으로 기분이 나쁘다. 불쾌하다. 그만 보고 싶다.

"저는 지금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우미호의 말투는 여전했다. 필요한 말만 필요한 만큼 했다.

근데 뭘 어떻게 생각하는데?

이곳은 불멸의 사무실이다. 개방된 공간은 어쩔 수 없지만, 탕비실이나 회의실 등 몇몇 공간에는 소음 방지벽을 둘러놨다.

탕비실에서 선임을 욕하는 사원의 자유를 존중해준 거다.

진짜 별걸 다 신경 쓰는 복지다.

"시발, 신입."

제 이름은 유광익입니다. 남의 집 자식을 더 좋아하는 우리 집 팀장님.

"네, 신입사원 유광익."

"운동가냐?"

"훈련 갑니다."

"재밌냐?"

"네, 적당히 그렇습니다."

회사 생활 별거 없다.

상사가 물어보면 적당히 마음에 드는 답을 주면 그만이었다.

"너 학교 다닐 때 일진이었냐?"

...어디서 그런 말이 나오는 거냐?

설마 우미호가 생각한 게 내가 일진이었다는 건가?

"아닙니다."

"좀 치지 않았어? 다른 신입 애들 말 들어 보니까 딱 사이즈가 나오는데."

나오긴 뭘 나와 이 양반아.

생각해 보니 이 시발 팀장 나만 빼고 다른 신입과는 꽤 친하다.

우미호 뿐 아니라 정기남하고도 인사하고 하물며 귀태와 요한도 전에 나보고 너희 팀장 입이 좀 걸어서 그렇지 괜찮지 않냐고 물었었다.

물론 난 그 인간 안 괜찮다고 오백오십 번 얘기해 줬다.

"우리 학교에는 일진 없었습니다."

어딘지 모르게 속이 좀 상하고.

"진짜?"

왜 나만 빼고 다른 애들과는 다 친한지 이해가 안 되고.

"네."

팀장 새끼는 굳이 나한테만 왜 만날 이렇게 지랄인지도 궁금했다.

"왜?"

그래서 툭 튀어나오듯 한 마디 뱉었다.

"제가 하지 말라고 했거든요."

"뭘?"

"일진이요."

"니가 하지 말란다고 안 해? 요새 애들 무서운 거 모르네."

무서워도 설마 특수종만큼 무섭겠나.

"네, 제가 하지 말라고 하면 안 합니다. 그거 좀 보기 싫었거든요. 애들 삥 뜯고 나대고 그런 거요. 아, 툭하면 욕하는 것도."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우리 신입이 어디서 좀 논 거 맞네."

팀장이 말했다.

분위기가 묘했다.

우미호가 날 빤히 보더니, 바보라고 입 모양을 보여 줬다.

뭐, 내가 뭐.

시비는 저 팀장 나으리가 24시간 내내 걸고 있다고.

"너 이거 좀 치냐?"

팀장이 허공에 주먹질하며 말했다.

쯧.

누가 혀 차는 소리가 들렸다.

뭔데.

수면실에서 나온 정아 선배가 날 힐끗 보고 자기 자리로 향했다.

저쪽은 이 일에 관심이 일도 없어 보였다.

"조금요."

여기서 물러날 순 없기에 툭 말하니.

"대련 한 판 할래?"

팀장은 미끼를 던졌고.

"콜."

난 그걸 물어 버렸다.

나도 모르게 터진 한 마디.

그래, 솔직히 기대했다. 화림 내에서는 대인 전투훈련도 간간이 한다.

거기서 최고라 꼽히기에 시발 팀장은 S급 대인 전투능력을 가졌다고 했다.

이 기회에 경험해 보고 싶다.

더욱이 난, 입으로 터는 시비보다 한 번의 주먹을 선호하는 바이다.

"콜?"

팀장이 웃었다.

난 속으로만 웃었다.

"야, 오후 일없지? 구경 올 사람?"

팀장이 말했다. 일을 크게 만들었다.

뭐, 그러든지.

"오후 3시에 대련장에서 보자, 신입. 그때까지는 오늘 자유 시간이다. 밥도 알아서 챙겨 먹고. 아, 너무 많이 먹지 말고 토할라."

남 걱정하시기 전에 본인 걱정부터 하시죠.

이것도 속으로만 말했다.

"네. 명심하겠습니다."

심리전도 싸움이다. 일단 말려들면 지는 거다.

어깨를 으쓱하고 답하니.

"미호야 네가 저쪽 세컨 봐줘라."

"시간 낭비 같습니다."

"너 인사고과에 내 평가도 들어가는 건 아니?"

"네, 제가 세컨 보겠습니다."

우미호가 내 세컨이 되었다. 하등 쓸모가 없겠지만.

"난, 정아 네가 봐주고."

"네."

정아 선배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로 대망의 시합이 성사됐다.

처엉코어너!

화림에 들어온 젊은 피, 몸에 변신의 힘을 지녔지만, 누구에게도 말 못 할 비밀이기에 숨긴 채로 나서는 유우우우과아아앙이이이익!

호옹코어너!

화림 전통의 강자이자 챔피언, 이번에 이기면 무려 열여덟 타이틀 방어에 성공하는 노련한 개자식, 이이이주주우웅뽀오옹!

아무리 변신의 힘이 있어도 쉽게 이기진 못하겠지.

그래도 불멸 늙다리에게 지진 않을 거다.

점심 먹고 자유시간을 만끽하고자, 화림 사원증이면 모든 게 다 무료인 카페로 향했다.

그린티 프라푸치노에 생크림 잔뜩 올려 먹어도 열량이 부족한 몸이라 행복했다.

특히 입이 행복하다.

"왜 그랬어?"

"뭐가?"

우미호가 다가와 물었다.

세컨이 된 김에 점심을 같이 먹고 여기까지 함께했다.

그리고 방귀태도 눈 밑이 검어진 채로 함께 했고.

"안녕, 꽃사슴."

요새 전략을 바꿔서 복고풍으로 간다고 했다.

아니야, 헛짚었어. 형, 그건 아닌 것 같아.

들은 내가 속이 메슥거렸다.

우미호는 아예 무시했다. 무시 정도가 아니었다. 그녀의 귀에 귀태 형의 목소리와 모습이 보이지 않는 듯했다.

불멸의 감각으로 느껴도 그녀는 완벽하게 귀태라는 인간을 자신의 인지 영역에 두지 않음을 알았다.

형, 안 되겠어. 얘는 진짜 아니야.

호감을 떠나서 성격이 완전 까칠하다고.

"왜 덤비냐고."

우미호가 다시 물었다.

덤비냐니.

난 최근에 깨달은 회사 생활의 진리를 떠올렸다.

"야, 회사 생활 별거 없어."

적당히 거드름을 피우며 입을 열었다.

둘의 시선과 주변에 있는 불멸 몇의 귀가 쫑긋 선 게 보였다.

"시키는 거 잘하고 하지 말라는 거 안 하고."

지금 한 뻔한 말이 용의 몸을 그린 그림이라면 마지막 이 한 마디는 용의 눈이 되리라.

"상사가 원하는 거 딱주면 돼."

"...너희 팀장님이 너랑 대련을 원했다고?"

"정확히는 날 패고 싶은 게 아닐까 싶다."

확실할걸.

첫날부터 지금까지.

중력 제어 훈련 이후로 암기 지옥, 훈련 지옥을 연 인간이다.

솔직히 내가 마음에 안 들어서 그런 거 아니냐?

"너 삐졌어?"

우미호가 물었다.

"야, 나 사나이야."

그런 거로 안 삐져.

나 좀 싫어하고 욕한다고 주먹부터 나가고 그러지 않는다고.

대인답게 받아넘기는 그런 남자야. 내가.

"삐졌네."

귀태 형이 말했다. 이 인간 눈썰미가 좋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보니까 영 아니네.

"아닌데."

"맞네."

미호가 말했다.

"아니라고."

내가 다시 말했다.

"그래, 아니라고 치자."

"아니라고 치는 게 아니라, 아니야."

"그래, 아니라고 치는 게 아닌 게 아니라고 치자."

이게 무슨 말이야.

"풉."

그 말에 누군가 웃었다.

난 신입이자, 수습이다. 여기서 누가 웃었다면 선배나 동기겠지.

따져서 뭐 하겠나.

"야, 진짜 안 삐졌다."

그저 내 의견을 관철할 뿐.

난 틀린 의견에 동조하는 그런 비겁한 사람이 아니므로 끝까지 말했다.

"진짜 아니다."

둘은 대답하지 않았고 시간은 금세 지났다.

그러니까 오후 3시.

내가 팀장의 죽탱이를 후려칠 시간이었다.

25. 세 개의 비기

우직! 뻥!

두 개의 소리가 뇌리에 울렸다.

이게 어디서 나는 소리지?

과거의 기억이 떠올랐다.

내 나이 열다섯.

인생사 제일 험악하다는 중학교 2학년 시절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왼손에 흑염룡을 감고 그러진 않았지만.

"아, 짜증 나."

어머니와 대화 중에 말실수를 했다.

곁에 계시던 아버지가 엄하게 말씀하셨다.

"유광익, 말버릇이 그게 뭐냐."

"아니, 좀 내버려 두셔도 되잖아요."

뭐 대단한 일로 그랬으면 어머니도 이해해 주셨을지도 모른다.

부끄럽게도 그런 이유는 아니었다.

며칠째 놀다가 늦었고.

일찍 오라는 잔소리를 들었다.

알겠다고 대답하는데도 몇 마디 더하시길래 한 마디 뱉어 버렸다.

그럴 때가 있다.

실수인 걸 알면서도 인정하지 않을 때.

오히려 그걸 부인하기 위해 더 강하게 나갈 때가 말이다.

철이 없던 시절에 하는 실수다.

"저 좀 내버려 둬요."

말하고 방으로 들어갔고 그날 저녁은 걸렀다.

나가서 밥 먹을 용기가 없었다.

다음 날 아침.

"광익아."

어머니가 날 불렀다.

"오늘은 학교 안 가도 된다."

"...에?"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몰랐다.

"대신 엄마랑 얘기 좀 하자."

하루 만에 난 반성했다. 적당히 사과하고 넘어갈 생각이었는데.

"엄마, 어제는...."

"아니, 입으로 말고."

"...네?"

"체육관으로 와. 비워 놨으니까."

이게 뭔가 싶었다.

그때 처음으로 난 어머니를 링에서 마주했다.

어릴 때부터 운동 신경이 나쁜 편은 아니었다.

아니, 나쁜 걸 넘어서 모든 운동에 재능이 있는 편이었다.

어머니는 그런 날 위해 집 근처 체육관에 맡기셨다.

복싱 체육관이었고 대형 복싱장은 아니어서 사람이 많진 않았다.

오전 열 시쯤이었나.

새벽 훈련에 매진하는 형들도 없고.

트레이너 아저씨만 있었었다.

그리고 그날.

"우리 아들 많이 컸네. 어제 뭘 잘못했는지는 몸으로 배우자."

어머니의 훈육을 들을 수 있었다.

처음 한 대 맞았을 때는 이러지 말라고 했고.

몇 대 더 맞았을 때는 나도 모르게 반항했다.

물론 내 주먹은 허무하게 허공을 갈랐다.

패륜을 저지를 생각은 없었다.

하도 맞다 보니 절로 주먹이 나간 거지.

그렇게 맞았다. 몇 대 맞았는지도 모르겠다. 용케 어디 부러지지 않고 얼굴이 팅팅 붓지도 않았다.

그냥 적당히 아팠다.

로우킥에 맞은 허벅지가 아렸고 훅에 맞은 머리가 울렸다.

"아이고, 어머니, 애를 개 잡듯이 잡으면 됩니까!"

트레이너가 놀라서 말렸다.

"괜찮아요. 우리 애 그렇게 약하게 안 키웁니다. 그리고 잘못했으면 맞아야죠. 요즘 애들 놔두면 큰일 나요."

단호한 어머니.

싸움 잘하는 어머니.

주먹과 발을 기가 막히게 쓰는 어머니.

새로운 어머니와 영접한 난 그날 처음으로 요단강 중간쯤에서 사공과 이별한 뒤, 다시는 개기지 않았다.

가출? 했다가 잡히면 진짜 뼈도 못 추릴 거다.

거기에 부모님은 날 정말 극진히 사랑하셨고 그걸 여실히 느낀 나다.

순전히 내 잘못이었기에 인정했다.

맞을 짓 했다고.

그것도 무작정 때리신 것도 아니다. 진짜 대련이었다.

내가 배운 바를 펼치는 거고 어머니는 할 수 있는 걸 하셨다.

하하하.

그래도 치사했어요.

어머니가 변신족이라는 건 몰랐잖아요.

그때의 기억이 떠오른다.

반항과 함께 돌아온 훈육에서 난 커다란 벽을 느꼈다.

그때 당시 나는 나보다 서너 살 많은 형도 때려눕혔었다.

변신족도 불멸자도 아니었지만, 난 꽤 재능이 있는 편이었으니까.

그런데 어머니는 못 이기겠더라.

순전히 실력으로 발렸다.

고통과 함께 상념과 과거의 기억이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난 내 몸을 점검했다.

왼쪽 팔이 덜렁거렸고 앞에 선 작자가 서너 명으로 보였다.

뇌가 흔들렸다.

자각하는 순간 불멸의 회복력이 내 몸을 정상으로 만들었다.

흔들렸던 뇌가 돌아오고.

눈앞에 선 작자가 보였다.

이름 이중봉, 시발 팀장.

"우리 신입, 어디서 좀 놀았다며?"

무기 없는 맨주먹의 한판 승부.

불멸자끼리니까 할 수 있는 룰이다.

솔직히 내가 가볍게 이길 줄 알았는데.

"왜? 이레귤런데 개발리니까 막 분하고 그러냐? 시발, 요새 애들은 어른 보기를 물로 보나."

난 방금 일어난 일을 복기했다.

시작하기 전에 우미호는 최대한 버티라고 했고.

상대방 세컨이었던 정아 선배는 '병신 만들기'는 하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덤볐다.

스텝 두 번에 거리를 좁히고 잽을 넣었다.

팀장이 피했고 난 반사적으로 콤비네이션을 꽂았다.

용케도 다 피하는 걸 봤다.

한 방만 걸리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일부러 틈을 보이고 때렸다.

그러니까 같이 때렸는데.

나만 이 모양이 됐다.

다시 복기다. 더 디테일하게 무슨 일이 일어났지?

내 몸에 생긴 일과 그 순간을 떠올리자 알 수 있었다.

때리는 순간 팀장은 손을 펼쳐 팔뚝을 잡아챘고 난 균형을 잃었다.

그와 동시에 팀장이 내 팔을 부러뜨리고 머리를 때렸다.

뭐로?

자세를 유추했다. 팔꿈치다.

느낀 건 두 개다.

엄청 빠르고 깔끔하다.

"어때? 이제 정신이 좀 돌아오냐? 더 해야지? 우리 시발 신입."

팀장이 말했다.

"후우우."

숨을 골랐다. 그래, 내가 너무 얕봤다.

불멸과 변신의 박투다.

당연히 이기리라 생각했다. 오만했다. 방심했다.

자세를 다시 잡자, 팀장이 빙그레 웃었다.

비웃음이 아니라 진짜 기뻐서 웃는 그럼 미소다.

"다시 갑니다."

이번에는 진지하게 임했다.

근데 아까 뭐라고 했지? 이레귤러?

아, 불멸 이레귤러.

그런 얘기 들어본 적 있었다.

불멸이지만, 내 몸은 아주 튼실하니까.

불멸이지만, 힘이 세고 튼튼한 혼혈.

특별한 혼혈, 팀장은 그걸 비아냥거린 거다.

자세를 잡고 스텝을 밟고 거리를 좁혔다.

이번에는 신중하게.

단숨에 짓쳐 들어가지 않는다.

퉁퉁.

잽을 뻗고 내 거리를 유지한다. 대인 격투의 기본은 거리 싸움이다.

팀장은 실실거리며 피했다.

그게 또 배알이 꼴리기는 했지만, 심리전도 싸움이다.

참는다.

탁. 탁!

주먹과 손바닥이 오간다.

"오, 신입 좀 한다."

"팀장님이 좀 봐주시네."

주변에 떠드는 소리도 무시.

"넌 왜 여기 있냐?"

팀장이 물었다.

이건 무시하기 힘든 물음이다.

"뭐가요?"

"돈 때문에?"

연봉 육천오백, 무시 못 할 액수지.

하지만 그게 전부라고 할 순 없다.

그저 이게 가장 빠른 길이다.

내가 하고 싶고, 되고 싶은 사람이 되는 빠른 길.

대답하지 않았다. 상대의 움직임을 읽기도 바쁘다.

감각을 곤두세웠다.

"어설퍼."

팀장이 말했다.

그와 동시에 난 상대의 움직임을 읽을 수 없었다.

당해 본 거다.

불멸 비전 기척 죽이기.

상대가 인지되지 않기에 자연스레 움직임을 놓친다.

집중!

감각을 곤두세우고 인지 범위를 좁혔다.

아래에서 위로 뭔가 올라온다. 난 고개를 젖히며 몸을 틀었다.

팡!

공기가 터지는 소리가 났다.

짧은 올려 차기다.

올려 차고 내려오는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피하고 반격을 계산하는 순간 팀장은 어느새 본래의 자세로 돌아왔다.

"아니면 같잖은 영웅 심리냐?"

말은 왜 자꾸 거는 거냐.

대답 대신 집중력을 끌어올렸다.

뭐지, 왜 이 양반 나보다 빠르지.

솔직히 변신족의 힘이라면 내가 더 빠르고 강한 거 아닌가?

아니지, 이건 지금 생각할 게 아니다.

상대가 오랜 시간 훈련하고 단련했다면 변신의 육체와 버금갈 수도 있겠지.

불멸, 변신 양쪽 과외 선생이 말했었다.

이제 난 기초를 쌓은 거라고.

심화 과정을 가르치고 싶은 눈치였는데 그때는 시간이 없었다.

그럼 어쩔까?

얌전히 질까?

그래, 인정한다. 시발 팀장은 S급 격투 능력을 갖춘 거다.

인사 명부로 봤던, 그저 알파벳 한 글자라고 생각했던 그 S가 얼마나 대단한지 피부로 와닿았다.

"돈, 영웅 심리도 아니면, 뭐야, 여기서 활약해서 여자애들 환호라도 듣게? 그럼 연예인을 해야지."

말하며 달려온다. 기척이 없기에 반응이 느렸다.

난 선택했다.

느리면 느린 대로.

빠르면 빠른 대로 상대하는 법은 있다.

난 그렇게 했다.

숨을 참고 첫 일격을 끝까지 주시했다.

불멸의 동체 시력이 상대가 내민 무기를 잡아챈다.

손바닥 밑, 단단한 부분이 턱을 노렸다.

이건 맞으면 골로 간다. 그러니 비켜 맞자.

고개를 살짝 비틀었다.

틱, 찌이익!

오른쪽 볼이 긁혔다. 볼을 넘어 안구도 건드렸다.

화끈한 통증과 오른쪽 시야 반쪽이 검게 물들었다.

뼈를 주고, 뼈를 깎자.

불멸이니까 할 수 있는 전법이다.

맞으며 양팔로 상대를 끌어안았다.

뜨거운 액체가 얼굴을 타고 흐른다. 곤두세운 촉각이 그걸 여실히 느끼게 했다.

그리고 잡았다.

양팔로 단단히 상대를 안았다.

꽉 껴안은 형국이다.

날 때리려면 상대도 내 거리 안에 들어와야 한다.

발이 빠르고 날쌔다고 해서 몸이 유령처럼 상대를 통과하는 건 아니니까.

맞으면서 잡으면 잡을 수 있었다.

그리고 힘이라면 내가 우위다. 그건 확실했다.

잡은 채로 내가 물었다.

"팀장님은 왜 여기 있습니까?"

난 꿈이 있고 그걸 이룰 거니까 여기 있는데, 그럼 당신은?

"새끼야, 그것도 모르냐?"

몰라, 자식아.

"사명감이다."

팀장이 말을 이었고 난 팔뚝에 힘을 줬다.

상대는 불멸자다. 전신을 으스러뜨려도 살겠지.

인정사정 안 봤다. 변신족으로 변하며 달라진 근섬유 다발은 인간의 한계를 넘는 괴력을 줬다.

우두둑.

"아퍼. 자식아."

팀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쩍!

그리고 다시 뇌리에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타격음, 그것도 둔탁한 타격음,

스테레오로 머리를 울리는 소리다.

이건 또 뭐야.

양팔이 나한테 붙들렸는데 뭘 한 거야?

눈앞이 까매진다. 암전이다.

고로 난 정신을 잃었다.

* * *

"오, 음. 팀장님, 그거까지 쓴 겁니까? 신입한테?"

옆 팀 대리다.

"자식아 너였으면 털렸어."

중봉이 말하고 부러진 팔을 대충 맞췄다.

"이거 완전...."

괴물이네. 라고 말하려는 걸 참았다.

보는 눈이 많고 듣는 귀도 많다.

"팀장님."

뒤에서 김정아가 다가왔다.

"어, 얘 의무실로 데려가. 반나절은 뻗겠다."

"제가 데려가겠습니다."

세컨하라고 했던 우미호다.

그녀의 얼굴에 글자 네 개가 보였다.

인사고과.

"그래, 잘 처리해 주마."

상황 봐서 적당히.

팀장은 그렇게 생각하고 부러진 팔과 금이 간 갈비뼈가 회복되길 기다렸다.

새끼, 더럽게 무식하네.

"그래서 평가는요?"

지금 이들이 한 건, 외부 보안 3팀 전통의 신입 죽이기다.

한 번 붙어 보고 기도 꺾고 배울 거 배우라고 한 단계 높은 세계도 보여 주는 그런 거.

"평가라."

중봉은 말을 아꼈다.

특수종의 육체는 개발하는 거에 따라 다른 효율을 보인다.

중봉의 격투 S급 능력은 자신의 몸을 그리 개발했기에 얻은 평가였다.

그 과정에서 중봉은 자신만의 기준을 만들었다.

잠재력, 의지, 투지 따위를 종합해서 느끼고 평가하는 자신만의 기준이다.

'이런 새끼가 있었나?'

기억을 더듬어 봤다.

처음 들어왔을 때의 김정아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물론 더 배워야 한다.

몸을 다루는 법과 다양한 상황에서의 전투 능력, 필요한 건 많다.

그런데 그걸 배우지 않고도 자신에게 비기 중 하나를 쓰게 했다.

"씁."

팀장은 말을 아꼈다.

진짜 어떤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이런 새끼가 제대로 배우면 뭐가 되는 거냐?'

기척 죽이기 기습은 피하고.

노림수는 자신이 가진 걸 이용해 받아친다.

싸우는 수준이 어릴 때부터 누군가에게 두들겨 맞고 자란 것 같다.

그것도 어설픈 구타가 아니라 제대로 맞으며 배운 거다.

상대가 이 신입을 키우기 위해 공들였다. 불멸의 육감과 직감은 그걸 알아챘다.

본래 자신이 쓰려 했던 비기는 하나다.

감각 교란.

상대의 감각을 흔드는 파장을 뿜는 거다. 본래라면 이거 하나만으로 신입은 바닥을 구른다.

며칠 전에 정기남이 제 팀 대리와 대련에 이거 때문에 옷깃 하나 못 건드렸다고 들었다.

'그 새끼가 최고라며.'

다들 그랬다. 올해의 신입 중 가장 밝게 빛날 별이라고.

순혈 중에서도 유명한 혈통 중 하나를 이은 놈.

그런데 지금 이 혼혈을 상대하면서 대리급도 아닌 자신이 세 개의 비기를 썼다.

감각 교란, 기척 죽이기, 기척 속이기.

"팀장님?"

"아주 제 팀장 한 대 때려 보려고 독이 올랐네. 이 새끼."

말하며 중봉은 인상을 썼다.

표정 감추는 건 중봉의 특기였다.

그와 반대로 머릿속에는 한 가지 생각뿐이다.

이 새끼 난 놈이다.

구경하던 이들 중 중봉이 세 개의 비기를 쓴 걸 모르는 이들이 많았다.

그만큼 은밀했다. 그런데도 놀랐다.

"올해 신입은 뭔가 박 터지네."

누군가 말하고.

"쟤 혼혈이라며? 중력 제어 훈련도 탑이라던데."

또 누군가 말한다.

미운 오리 새끼.

광익은 자신을 그렇게 생각했지만, 그의 평가는 실시간으로 변하는 중이었다.

숨긴다고 숨길 수 있는 게 아니었다.

26. 기준

쓰러진 뒤 2시간, 튼튼한 변신의 육신과 활발한 불멸의 재생력은 타박상이나 흔들린 뇌를 금세 제대로 돌려놨다.

"완전 깨졌네."

절로 혼잣말이 나온다.

몸을 일으켰다. 아직도 머리가 띵하니 울렸다.

이렇게까지 머리가 울리는 걸 보면 일반인이 맞았다면 확실히 죽을 정도의 타격이었다는 거다.

뇌세포가 순간적으로 오천 개는 타 버렸을 거다.

근데 인간의 뇌세포가 몇 개나 되지.

아니, 난 불멸자니까 특수종이고 특수종 중에서도 혼혈인데 그럼 내 뇌세포는....

"짜증 나."

잡스러운 생각으로 현실에서 도피하는 건 어울리지 않는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진 건 아니다.

어머니한테도 수없이 졌고, 변신족 각성 전에는 여기저기서 져 봤다.

그런데도 짜증이 나는 이유는 왜일까.

뭐에 당하는지도 모르고 쓰러진 게 얼마 만이지?

눈을 감지 않아도 쓰러지기 직전 마지막 순간이 떠올렸다.

분명 양팔을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뭐로 때린 걸까.

솔직히 보이지 않았고 느끼지도 못했다.

느끼지 못했다는 건 기척 죽이기를 이용한 것 같은데, 뭐냐고 대체.

모르면 물어보면 그만이다.

벌떡 몸을 일으켜 문을 열었다.

내가 일어난 곳은 휴게실, 그것도 혼자 시간을 보낼 때 쓰도록 만든 방음 시설 튼튼한 1인 휴게실이다.

불멸의 사무실에 의무실 따윈 없다.

아니, 있긴 했다. 6층인가를 통째로 쓰는 정신의학과.

그쪽에 심리상담사와 정신의학 전문, 그것도 특수종 전문 의사가 있다고 했다.

그들이 처맞고 쓰러진 불멸자를 돌볼 일은 없으니.

내 앞에 선 사람이 의사일 확률은 없었다.

휴게실 앞, 익숙한 뒤태다.

"어? 벌써 일어났네?"

방귀태다.

"여기 왜 있어?"

"너 쓰러진 거 구경하러."

말하며 실실 쪼개는 얼굴에 원투를 꽂을 뻔했다.

참자. 농담에 정색하는 건 진짜, 지이이인짜 폼이 안 나니까.

"다 봤으면 가."

"혹시 어디 문제라도 있으면 돌보라고 동훈 대리님이 보냈다. 뭐 이리 까칠해?"

"뭐가. 난 평소처럼 부드러운 유광익이다."

"까칠해, 지금 말투가 졸라 까칠해."

더 얘기를 나누고 싶지 않았다.

당장 내 머리를 후려친 것의 정체를 밝히러 가야 하니.

"하여간 멀쩡하면 나도 일하러 간다."

귀태 형이 먼저 톡톡 뛰듯이 사라졌다. 바쁜 와중에 내 곁을 지켜준 건가.

그렇다면야, 괜히 가시 돋친 말투로 대한 걸지도 모른다. 아, 몰라. 나중에 미안하다고 한번 하자.

사무실로 향했다.

보무도 당당하게.

패자의 슬픔은 잊고 도전자의 패기로.

언젠가 다시 도전해서 그 면상에 하이킥을 꽂아 줄 거니까. 내 포지션은 도전자다.

"일찍 일어났네?"

"튼튼해."

팬더와 얼음 공주가 날 반겼다.

시발 팀장은 신중하게, 정말 더없이 신중한 태도로 종이접기를 하는 중이었다 팀장은 회사에 반쯤 놀러 오나 보다.

척척 걸어가서 앞에 서니.

"우리 시발 신입, 튼튼하기도 하네. 벌써 일어났어?"

팀장은 그리 말하면서도 나한테 시선을 던지지 않았다.

종이접기에만 집중했다.

"뭐였습니까?"

궁금한 건 알아야 직성이 풀린다.

어머니한테 처맞을 때도, 맞고 나서 그 기술을 그대로 다음에 써먹곤 했다.

이제는 머리가 다 굵어져서 전과 같은 대련은 없지만, 그래도 열여덟 전후로는 많이도 어머니에게 두들겨 맞았다.

그 모든 대련이 변신족 육체 컨트롤 단련법 중 하나라고 하시기도 했고.

힘을 허투루 쓰지 말라는 경고이기도 했다.

팀장을 바라봤다.

알고 싶다.

간절하다.

아마 카메라로 지금 날 찍는다면 불꽃을 품은 눈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뭐가?"

"마지막 그거, 저 기절시킨 거, 몽둥이라도 숨겨 놓은 겁니까?"

내 몸은 튼튼하다. 얼마나 튼튼하냐면, 변신족 선생이 어지간한 통나무로 머리를 후려쳐도 기절하지 않을 거라고 했다.

그래서 질문은 다르지만 같은 내용의 질문 두 번째다.

알고 싶다. 간절하다.

다시 눈빛 발사.

팀장이 손가락을 멈췄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든다.

"마지막 그거?"

어째 얼굴에 웃음기가 어려 있는 것 같다.

"알고 싶어?"

뭐지, 뭘까 이 기분은.

알고 싶다. 그리 말하려고 했다.

그런데 쉬이 입이 떨어지질 않는다.

육감이 주는 경고? 아니다.

이 기분은.

실실실.

웃는다. 팀장이 웃었다. 그것도 입꼬리만 말아서 웃는다.

놀린다. 분명히 놀린다. 알려 달라고 해도 말해 주지 않을 것이다.

정신이 들었다.

이 팀장이란 놈은 절대로 순순히 말해 주지 않을 것이다.

"아니요. 그냥 한번 물어봤습니다. 이기셔서 기쁘십니까?"

"난 언제나 승리에 목말라 있지."

미친 팀장.

"네. 가 보겠습니다."

"응, 가."

배실배실 웃는다. 후려치고 싶다.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야, 신입."

"네. 신입 사원 유광익."

"여기가 학교냐? 물어보면 내가 아, 우리 꽝익이 대가리에 든 게 없어서 내가 알려 줘야겠구나. 이럴 줄 알았냐?"

알았다고 새끼야, 안 물어본다고.

"아닙니다."

대강 답하는데.

"알아내서 보고서 가져와."

팀장이 내 뒤통수에 대고 말했다.

어릴 때부터 받은 투철한 가정 교육 덕분에 난 몸을 돌려 알겠다고 답하고, 감사하다고도 말했다.

아, 처절한 예의범절이여.

그래, 저 작자는 나의 상급자이자 내가 속한 팀의 팀장이며, 후배를 괴롭히는 사디스트에 욕쟁이다.

존경은 못 해도 존중은 해야지.

모니터에 눈을 돌리니, 깜빡이는 알림창이 보였다.

사내 메신저다.

아, 아까 귀태 형에게 너무 까칠하게 대했는데 사과를 해야겠다.

생각하며 메신저를 열었다.

귀태 형한테 온 메시지였다.

절규하는 이모티콘에 '패배자....'란 세 글자가 남아 있었다.

이 새끼가.

타다다닥.

타자에 불이 붙도록 두드렸다.

이 새끼 방귀태야, 너였으면 0.1초 만에 천국 문 노크했어.

요단강에 푹 빠져서 익사했다고.

[방귀태] 응응. 그래그래. 네 말이 다 맞아. 루저.

이 새끼가.

놀리는 말에 하나하나 반응하면 지는 거다. 난 무시했다.

그 뒤로도 요새 엄청 바빠서 메신저도 제대로 못 보는 요한이 축하한다고 말해 줬고.

자기밖에 모르는 우미호도 바보란 두 글자를 남겨 줬다.

다 죽어 버려.

정기남도 알았겠지. 아, 몰라.

일이나 하자.

근데 내가 할 일이 있던가.

외부 보안 3팀은 출동이 없으면 일이 없다.

한두 시간만 있으면 퇴근이었다. 운동할 마음도 안 생기고.

외운 거, 그러니까 이제까지 배운 것 중에 실습 가능한 것들 시간 날 때마다 내려가서 해 보라고 했으니 그거라도 할까나.

이거 어째 월급 루팡이 된 기분이네.

갖가지 장비는 익숙해지면 익숙해질수록 좋다고 했다.

그거라도 하자, 그리 마음먹은 순간이다.

"너 담배 안 태우냐?"

팬더 대리가 말을 걸었다.

"네."

굳이 왜.

불멸자의 폐는 영원불멸 튼튼하니까 다들 담배는 필수 기호품으로 안고 산다.

하지만 난 그 냄새가 싫다.

재떨이 냄새, 지독하다고.

변신족 각성으로 발달한 후각은 아무리 닫고 있어도 그 매캐한 향을 잡아챈다.

옆에서 피우는 거야 그러려니 하고 견디겠다만, 직접 피워서 내 몸에서 냄새를 풍기는 건 절대 싫다.

"소셜 스모킹 몰라? 좀 배워라."

"하실 말씀이라도?"

"따라와."

팬더 대리가 의자에서 일어나 착착 걸어갔다. 덩달아 몸을 일으켜 따르려는데 뒤통수가 가려웠다.

뒤를 돌아보니, 팀장이 언짢은 눈빛으로 쳐다보는 게 보였다.

"얘도 알 건 알아야죠."

"찬스도 안 썼는데 힌트는 왜 주고 지랄이야. 시발."

팬더 대리는 뒤도 안 돌아보고 걸으며 답했고.

팀장은 들리는 걸 알면서도 혼잣말처럼 말했다.

난 다 무시하고 팬더 대리의 뒤를 따라갔다.

승강기를 타고 옥상으로 올라갈 때까지 한마디 말도 없던 팬더는 대나무 대신 담배를 하나 꺼내 물고 불을 붙였다.

뻐끔하고 흰 연기로 도넛을 만드는 걸 보니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니었다.

"수습 3개월, 3개월 뒤에는 정직원이 약속됐지. 그럼 그 3개월 동안 평가는 누가 할까?"

대뜸 묻는 말이다.

"회사에서 하는 거로 압니다."

"회사가 사람이냐?"

"아닙니다."

이게 무슨 말인가.

그래, 회사는 사람이 아니니 평가를 하는 사람은 있다. 그런 말이었다.

"각 팀 팀장이 그 사원의 적성도를 판단하고 보고서를 올리지. 그건 곧 고과에 반영되고, 앞으로의 회사 생활에도 영향을 미칠 거다."

추상적으로나마 알던 얘기였다. 회사에 들어오기 전에는 몰랐고 들어와서 설명으로만 들었던 얘기.

새삼 이동훈 대리 입에서 들으니 피부에 와닿는 기분이었다.

이 말이 피부에 확 와닿는 동시에 소름이 돋는다.

"제 평가를 그럼 팀장님이 하십니까?"

물었다.

"그럼 누가 할까? 내가 하리? 내 의견도 들어가긴 하겠지."

팀장이 내 평가를 좋게 할까? 지금까지 상태로 봐서는 절대 좋게 안 줄 것 같은데.

"우리 팀장님 스탠스는 신입이 들어올 때마다 같았어."

믹서기.

생각만 하고 말은 안 했는데.

"믹서기 알지?"

대리가 말했다.

타이밍이 기가 막혀서 독심술이라도 하는 것 같다.

"우리 팀장님은 신입 싫어해."

"포기하란 겁니까? 그 평가가 안 좋으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쯔읍.

담배 연기를 깊게 들이마신 대리가 입을 연다. 말하는 와중에도 흰 연기가 공중에서 흩어졌다.

"부서이동 될 거고, 초반 입사 평가는 그렇게 굳어지겠지."

난 이 회사에 들어오면서 시험을 봤고 면접을 봤다.

장원 급제, 그러니까 수석 합격을 했는데 그건 어디까지나 최소한 변별력을 보는 시험에서 아는 게 많다는 것뿐이었다.

그다음은 오티.

난 거기에서 등수 놀이보다 다른 사람과 잘 어울릴 수 있다는 걸 증명하려고 노력했다.

그거 때문인지, 아니면 화림 사장이 변태라 그런지는 모르지만, 그 일로 사장에게 찍혔다.

그 오티 이후, 진짜 회사 생활이 시작된 거고.

기록에 남는 평가는 이거부터일 거다.

수습 평가, 또는 입사 평가라 불리는 것.

다들 입사한 뒤에 왜 그리 아득바득 일하나 했더니.

왜 아무도 이런 건 말 안 해 주는 거냐?

아니, 최근에는 나도 너무 바빴다.

그게 아니었다면 요한에게 물어봐서 알 수 있었을 내용이다.

아니구나. 이건 회사 선배, 그러니까 사수가 말해 주는 거다.

"너 눈치 빠르니까 대충 알지? 각 팀에서 평가하는 기준이 다 달라."

그래서 요한이고 귀태고 말해 줄 수 없었을 거다.

"김정아는 애가 너무 딱딱해서 설명에는 영 재주가 없으니까 내가 대신 말해 주는 거다. 모른 채로 끝나면 좀 가혹하잖아?"

선의? 아니, 의무다. 알려 줘야 하는 일인 거다.

"바쁘니까 짧게 말해 줄게. 우리 팀장님은 기준이 있어. 정확하게 말하면 자신만의 기준이 있지."

자기만의 세계에 살고 있다는 건 진즉에 눈치챘지.

보면 딱 알지, 그게 어디 정상적인 상태입니까.

"하나, 팀장님이 주는 숙제는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다. 둘, 이런 숙제 외에도 시험이 몇 번 있을 건데, 그건 미리 말해 주지 않는다."

"지금 하신 말씀은...."

팬더가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입을 열었다.

"맞아, 동기한테 물어보는 건 네 자유인데, 그걸 팀장님이 모르겠냐? 그러니까...."

"자력으로 알아내란 거군요."

대리의 말을 내가 끝맺었다.

"알았으면 됐다."

툭툭.

팬더가 내 어깨를 두드리고 꽁초를 툭 던져서 재떨이에 골인시켰다.

재주 좋네.

날 지나쳐 걸으며 팬더가 말했다.

"팀 옮기고 싶으면 미리 말해. 지금 옮기면 팀장님도 별말 안 하고 금세 옮겨 줄 거다. 사장님이 뭐라고 했든 간에, 여기서 괜한 고생 하지 말라고."

난 사장님 인사 조치로 이 팀에 들어왔다. 그걸 물려주겠다는 소리다.

팬더가 내려갔다.

난 가만히 선 채로 고개를 들었다.

빌어먹을 서울 하늘.

오늘도 스모그가 가득 꼈네. 쾌청한 하늘이면 얼마나 좋을까.

피식.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팀을 옮겨?

그래, 나도 이쪽 팀이 막 미친 듯이 사랑스럽진 않다만.

"호락호락."

그리 넘어갈 순 없지.

날 지켜 줬던 등.

그 사람은 어떻게 살았을까?

적어도 이런 일쯤은 웃으며 넘어갔을 거다.

나도 그럴 것이다.

숙제든, 시험이든, 상관없었다.

지금 나는 외부 보안 3팀의 팀원이었고, 고작 팀장이 별나다는 이유로 팀을 옮기고 싶진 않았다.

하물며 이중봉 팀장.

실력만은 진짜 중의 진짜다. 심장이 뛰고 나도 모르게 웃음이 실실 나온다.

나도 미쳐가나.

나 왜 이게 재밌냐.

27. 오른손이었다.

팀장과의 대련 이후, 다들 날 패배자라 놀리기에 전 직원이 한 번씩 비웃을 줄 알았는데 그런 일은 없었다.

그냥 으레 일어나는 그런 일.

그들에게는 이게 당연한 거였다.

그러니까, 변한 건 없었다.

얼음 공주와 눈인사를 했다. 이 선배는 언제나 1등 출근이고 오늘은 나도 좀 일찍 왔다.

자리를 잡고 앉으려니,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일찍 왔네, 꽝익이."

"뒤에 익자는 빼, 이건 그냥 꽝이야. 정기남, 우미호 놔두고 왜 하필 꽝이 왔어."

팬더와 시발 팀장이 같이 출근하는 모습이다.

둘이 나눈 대화를 듣자니 참 정겹다. 매일 듣다 보니 이제 이것도 익숙해졌다.

산유국의 왕자는 자비롭도다.

나는 관대하다.

"야, 너 속으로 내 욕했지?"

팀장이 물었다.

"안 했습니다."

나는 관대하다.

"했잖아."

"안 했습니다."

나는 관대하다.

"안 했다잖습니까."

팬더 대리가 말렸다.

"아니, 했어. 분명해, 아침인데 기분이 더러워. 특히 꽝을 보는 순간 기분이 더 더러워."

우리 팀장님이 기분이 나빴구나.

그랬구나.

근데 팀장님은 지금까지 한 번도 아침에 기분 좋은 적이 없지 않습니까?

"내 눈을 바라봐. 넌 내 욕을 했어. 내가 바로 걸어 다니는 거짓말 탐지기야."

진짜 거짓말 탐지기 초능 특수종이 보면 배를 잡고 웃을 거다.

그리고 당신 이렇게 말 많은 사람이었어?

시발 두 글자로 모든 대화를 하던 사람이었는데, 어느 순간 방언이 터지더니 청산유수다.

언제부터더라.

아, 중력 제어 훈련 끝나고 나서부터 슬슬 입을 열었지.

중력 제어실에 처박아 놓고 그 위에 비석을 세우고 싶은 인간....

"봐, 딱 지금, 욕하네."

"아닙니다. 밑에 층에서 신입 오티 교육 있어서 가 보겠습니다."

"이 새끼 도망가는 것 봐."

"그만 괴롭히세요."

팬더 대리가 피식 웃더니 자리에 앉았다.

소동 아닌 소동에도 김정아는 눈길 한번 안 줬다.

그래도 내 사수다.

"다녀오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니, 고개를 끄덕인다. 유심히 봐야 알 수 있을 만큼 작은 고갯짓이다.

그 길로 팀장의 지랄을 빠져나왔다.

"저 새끼 언제 한 번 걸려 봐."

"저번에 두들겨 팬 거로 성에 안 차십니까."

"시발, 차겠냐? 한 열댓 번은 더 해야지."

뒤에서 날 두고 떠드는 둘의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들렸다.

아니, 옆 팀에도 다 들리겠다. 이 양반아.

그리고 지금 당장 내가 붙을 줄 아나.

일단 숙제 해결하고 비벼 볼 만하면 그때 다시 붙을 거다.

그래, 숙제. 그 숙제가 문제다.

염병,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답이 안 나온다.

난 팀장의 양팔을 붙들었고 조였다.

부러지거나 최소한 금이 갔을 거다.

그 상황에서 뭐로 내 머리를 후려갈긴 걸까.

발? 불멸자는 연체동물이 아니다.

오랜만에 어머니께 대련을 요청해서 비슷한 상황으로 몰고 가 봤다.

양팔을 붙들린 상태에서는 발로 머리를 찰 순 없겠더라.

그러므로 발은 아니다.

그럼 박치기?

아니지, 그거라면 피했을 거다.

무기일까?

맨손 대련이었다. 암묵적인 규칙이었고, 보는 눈이 많았다.

아무리 막 나가는 팀장이라지만 신입이랑 대련하면서 몰래 무기를 쓴다고?

아니지, 그렇게 치사한 인간은 아니다. 아침마다 지랄맞은 성격으로 발광을 하지만 그런 인간은 아닐 것이다.

어머니에게 여러 가지를 묻기도 했었다.

"엄마, 나 변신족이라 몸이 좀 튼튼하잖아요."

"그렇지."

"타격 한 방에 기절할 수 있을까요?"

"엄마가 보여 줄까? 문 크리스탈 파워 펀치로?"

"아뇨. 그냥 일반인이요."

어머니는 인자한 웃음과 함께 말했다.

"넌 변신족 몸뚱이가 무슨 비브라늄인 줄 아니?"

"어제 어벤져스?"

"응."

밤늦게 영화 보시는 것 같더라니.

"그래도 튼튼하잖아요."

"특수종이라고 해도 몸의 구조는 인간과 같잖니, 그러니 단련된 사람이라면 가능하지."

단련, 그래, 팀장의 육신은 담금질된 강철과 같았다.

숙제의 답을 찾기 위해 맞아서 쓰러진 순간을 수없이 되새겼다.

그때의 감각을 기억했고, 그 순간을 복기했다.

양팔을 붙들었을 때, 팀장은 아주 단단했다. 커다란 바위를 안은 기분이었다.

적절한 힘.

완벽한 타격점.

두 가지를 갖췄다면 무엇이 가능한가.

나 같이 튼튼한 변신족도 쓰러뜨릴 수 있겠지.

그래, 이건 인정한다니까.

문제는 뭐로 쳤냐는 거다.

팀장 이 양반한테 꼬리가 달렸나.

생각하는 와중에 신입 교육 장소에 도착했다.

오늘은 분석팀에서 교육을 나온다고 했다.

"꽝익."

"빵귀."

귀태 형과 마주했고 우리는 서로의 애칭을 불렀다.

"요한이는 요새 죽을 맛인가 본데. 저기 봐라."

먼저 대회의실에 들어가 널브러진 불쌍한 영혼이 보였다.

엎드린 채로 곤히 잠든 모습이다.

우리 요한이, 감각을 완전히 조절하는구나.

이런 상황에서 잘도 자네.

사람은 많았고 한마디씩만 해도 꽤 데시벨이 높았다.

그 밖에도 반가운 얼굴이 많았다.

오티 때 1조였던 문신남과.

내가 등 떠밀었던 비만 돼지 강푸름.

"넌 살 안 빼냐?"

"빼는 중."

여전히 말 짧고 사교성 없는 새끼다.

그리고 개싸가지 개나리 정기남과.

그에 준하는 싸가지 우미호도 보였다.

신입도 숫자가 꽤 되다 보니 이렇게 대회의실에 다 모이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보통은 다 잘라서 교육하는데 오늘은 다 모였다.

분석팀 교육이라는 게 그만큼 중요하다고 한다.

아, 몰라, 지금 나한테는 숙제가 더 중요하다.

귀태 옆에 적당히 앉아서 물었다.

"불멸 중에 꼬리가 나는 사람은 없나?"

"...우리 광익이 아침에 유통기한 지난 우유 마셨니?"

없군.

그럼 꼬리도 아니다. 그럼 대체 뭐냐.

"조용."

그사이 대회의실 앞에 사람 하나가 나섰다.

"옆 사람 깨워 주고 모니터 주목합니다."

귀태가 요한을 깨워 줬다.

그사이에도 난 생각에 잠겨 있었다.

이놈의 숙제, 빌어먹을 숙제.

뭐냐, 뭐로 때린 거냐.

"자, 저는 분석팀의 장호성 대리입니다."

귀는 대강 열어 뒀다.

화림의 교육은 굉장히 심플한 편이다.

딱딱한 사내의 시스템을 외우는 걸 제외하면 대부분 필요한 것만 머리에 넣어 준다는 개념이다.

이것도 모르면 제대로 일 못 할걸? 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니 들을 건 들어야 했다.

"분석팀은 다양한 일을 합니다. 위험인자를 추적하기도 하고, 불확실한 추측이나 예언을 듣고 그 이유를 찾는 일도 하죠."

대강 아는 얘기다.

그 말 많은 요한을 입 다물게 한 팀이다.

김요한은 분석팀 신입이었고, 덕분에 자기 인생에서 최고로 바쁜 시간을 보내는 중이었다.

외우고 익힐 게 다른 팀의 10배는 된다고 한다.

초반에 여유 있을 때는 분석팀의 대단함을 나와 귀태에게 열심히 설파하곤 했다.

"그중에서 관찰은...."

블라블라.

"특수종이 개입된 실종 사건은 골든 타임이 짧으므로 상황 분석이 아주 중요...."

블라블라.

그래, 그렇구나. 분석팀은 위대하구나.

외울 필요는 없으니 나도 개요만 머리에 넣으면 그만이다.

뭐로 때렸을까.

여전히 숙제 고민이 머릿속 대부분을 차지했다.

절간에 사는 스님은 화두 하나를 두고 평생을 참선하고 고민한다더니.

지금 내 꼴이 그렇다.

계속 귀는 열어 뒀다.

분석팀 장호성 대리는 적절한 템포로 계속 말을 잇는 중이었다.

"오라클 프로젝트라는 게 있습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미래를 예언하는 시스템을 만들려고 했었죠. 그 여파로 나온 게 지금의 분석팀입니다. 네, 뭐죠?"

우등생 우미호가 대뜸 손을 들었다.

"예언가는 실재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네, 실재합니다."

예언가라니. 허무맹랑한 말 같지만, 진짜 있단다.

그렇다고 판타지 소설처럼 진짜 앞날을 예측하는 그런 종류는 아니었다.

모든 예언가는 미래는 가변성이라고 말한다.

e=mc² 같은 소리다.

미래 = 가변성이란 거다.

미래는 끊임없이 변하므로 특정한 시점을 말하는 행위 자체가 또 다른 미래를 파생시킨다.

그러므로 예언은 입에서 나오는 순간 이뤄지는 확률이 낮다.

고로, 모든 예언가는 거짓부렁쟁이다.

최근에 얼음 선배에게 특수종의 역사에 배울 때 들은 얘기다.

내가 또 이런 쪽에는 관심이 많아 즐겁게 공부한 편이다.

장비의 소재가 어떤 건지 외우는 것보다는 낫지, 암, 오천 배 낫다.

"미래 예측은 말함으로 거짓이 된다. 하지만 말하지 않은 채 그 장면을 투영하고 소수의 사람만 알고 있다면, 그 미래는 실현될 수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게 무슨 개소리야.

우미호의 말을 곱씹었다.

그러니까 말하면 거짓이 되니까 말하지 않고, 그 머릿속을 들여다보기만 한다는 거다.

"네, 그런 이론도 있었죠."

"실제로 구현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네, 맞습니다. 그게 오라클 프로젝트의 하나이기도 했으니까요."

"하지만 실패했다고 하셨죠.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우등생 포스가 절절 흘러넘치는구나.

동기 얼굴 몇 명에 불편한 기색이 보였다.

안 그래도 지루해 뒤지겠는데 왜 시간을 끌고, 지랄이냐는 그런 기색 말이다.

난 흥미가 생겨서 귀를 기울였다.

"역시 우리 미호, 영리해. 내가 반한 여자답다."

들리지 않게 중얼거리느라 고생이 많소, 우리 귀태 형.

이런 자리에서 이런 말을 들으면 저 우미호도 가만히 넘어가진 않을 테니까 정말 아주 작게 간신히 내 귀에 들릴 정도로 속삭였다.

이렇게 작게 말하는 것도 재주다.

"실패한 이유, 네, 많이 알려지진 않긴 했죠. 그렇다고 비밀도 아니니 말해 보죠. 간단합니다. 인간의 뇌는, 더 쉽게 말하면 이 머릿속에 들어 있는 생각이란 놈은 진실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장호성 대리가 자신의 머리를 집게손가락으로 톡톡 치며 말했다.

"그러니까, 예언의 능력을 가진 이들의 머릿속을 들여다봤는데 그들이 진실이라 믿고 있는 것 중 사실은 진실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가 많았다는 거죠. 그것도 그럴듯한 게 많아서 많이들 속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덕분에 오라클 프로젝트는 천문학적인 손해를 만들어 냈죠."

예언가는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일을 진실이라 믿는다. 하지만 그들의 예언 메커니즘이 만들어 내는 모든 내용은 사실이 아니다.

자신은 진실이라 믿지만, 객관적으로는 허무맹랑한 얘기도 섞여 있다.

고로 인간은 착각한다.

착각, 그 두 글자가 뇌리에 남았고.

꽈릉.

머릿속에서 벼락이 내리쳤다.

수없이 많은 인과가 머릿속을 스친다.

문장이 뒤엉킨다.

대련 상황이 되새김질 된다.

"팀장님은 왜 여기 있습니까?"

내가 물었고.

"사명감."

팀장이 답했다.

그 뒤에 무슨 일이 일어났지?

양팔을 조였다.

방금 장호성 대리가 뭐라고 했나.

인간의 뇌는 진실만을 말하지 않는다.

대련에서도 그런 순간이 있었다.

눈앞에 보이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게 했었다.

그 비기의 이름은 무엇인가.

기척 죽이기다.

내가 배웠고 익힌 것.

불멸의 비기, 팀장도 순혈의 불멸답게 물 흐르듯 쓴 기술이다.

이 비기의 원리는 무엇인가.

인지의 혼란이다.

상대방이 눈앞에 있다. 하지만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뇌는 순간 혼란을 일으킨다.

인지 부조화.

심리학에 이런 용어가 있다.

이솝 우화에 여우가 너무 높은 곳에 열린 포도송이를 보고 아무리 뛰어도 닿지 않자, 저 포도는 신 포도일 거라며 포기하는 이야기가 있다.

상대가 눈앞에 있지만, 느껴지지 않으므로 없다고 생각하게 한다.

이게 기척 죽이기의 기본이다.

불멸의 감각은 유별나고 특출나기에, 상대가 인식하고 인지하는 감각에 주는 정보를 차단하는 게 가능하다.

그럼 그 반대는?

아니, 응용인가?

인과.

원인이 있어야 결과가 있다.

난 맞고 쓰러졌고 맞으려면 때려야 한다.

그 상황에서 무기를 쓰지 않고 때리려면 뭐가 필요한가.

처음부터 답은 정해져 있었다.

주먹이다. 주먹으로 때렸다.

기척 죽이기의 응용.

깨달음과 동시에, 순간 어떻게 그게 가능한지 알았다.

기척 죽이기 다음 단계의 비기를 알 수 있었다.

기척 속이기.

상대에게 거짓 정보를 주고 착각하게 만드는 거다.

난 양팔로 팀장을 조였다.

그리고 팀장은 당했다.

난 팀장의 양팔을 다 붙들었다고 생각했다.

그런가? 진짜인가? 깨닫는 순간, 내가 당했던 그 시간이 머릿속에 스치듯 떠올랐다.

초를 쪼갠 그 시간을 불멸의 감각은 느낀다. 복기하고 또 복기했을 때는 보이지 않았던 한 장면을 내 머리가 제멋대로 구현했다.

팀장은 양팔을 붙들리지 않았다.

처음부터 오른팔은 빠져 있었다.

남들 눈에는 내가 덤벼 껴안고, 그대로 한 대 맞고 기절한 장면이지만.

나한테는 갑자기 떨어진 벼락같은 일격이었다.

"오른손이었네."

내가 말했다.

수업 중이었으므로 모든 사람이 날 주목했다.

"...유광익 사원, 할 말이라도?"

"...죄송합니다."

달리 핑계 댈 말이 없었다.

"졸았습니다."

"조는 건 저희 팀 신입 하나로 충분한데요."

장호성 대리가 딱딱한 표정으로 말했다.

요한이 어깨를 흠칫 떨었다.

저 사람이 꽤 무섭나 보다.

괜히 눈 밖에 났다.

이게 다 팀장 때문이었다.

어쨌든 숙제의 첫 단추는 풀었다.

날 때린 건, 오른손이었다.

28. D랭크 임무

교육이 끝나자마자 인사도 없이 움직였다.

답을 알았으니 그 답을 말해 줄 차례다.

보고서를 쓰라고 했다.

오른손이었다고만 쓰면 되려나?

아니지, 기본 양식은 갖춰야겠지.

위쪽에 올라가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팀장님께 드려야 하는 것 아닌가.

실실 웃음이 새어 나오네.

막 자리에 도착한 순간, 놓친 게 있다는 걸 깨달았다.

뭐지? 뭘 놓쳤지?

머리에서 답은 안 나오는데 감각은, 불멸 특유의 육감과 직감은 느꼈다.

놓친 게 있다고.

그러니까 그게 뭐지?

천천히 상황을 되짚었다.

되짚은 상황 속에 답이 있었다.

내가 양팔로 안은 건 오케이, 그건 내 감각을 완전히 속여 먹었다고 치면 그만이다.

그럼 어떻게 그 타이밍을 알았지?

내가 덮칠 거란 걸 알아야 속일 수 있지 않나?

감각을 흔드는 일이 그리 쉬운 일일까? 아닐 것이다.

그게 쉬웠다면 불멸자가 모든 특수종을 다 썰고 다녔겠지.

팀장은 미리 준비했다. 그 싸움의 와중에서 그 한순간을 노린 거다.

단 한 방에 끝내려고.

어떻게 알았지?

탁.

발이 멈췄다.

사무실 내 자리 앞에 선 채로.

시선이 자연스레 팀장에게 꽂혔다.

팀장은 귀를 파다가 날 바라봤다.

"봐, 저 새끼 내 욕하는 거 맞다니까. 지금 봐, 눈깔로 욕하잖아. 이 새끼야, 너 지금 상사 욕했냐?"

...운인가, 운일지도 모르지. 순전히 운으로 내 공격을 읽은 걸지도 모른다.

아니, 그럴 리가 없었다.

뭔가 있다.

"아닙니다."

대강 답하고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재차 고민에 들어갔다.

"저거, 저거 버릇없는 것 봐라."

팀장의 말은 무시했다.

어떻게 알았는가, 이제는 다른 화두가 생겼다.

염병, 숙제 한번 지독하네.

두 번째 문제는 금세 답이 나왔다.

첫 번째와는 달리 그 해답이 나한테 있었으니까.

기본이었다. 어릴 때부터 수없이 배웠던 것 중 하나.

상대를 마주하고 파이팅 포즈를 취하는 순간, 난 무엇을 하는가.

주먹이 오가고 스텝을 밟는 순간, 내 시각과 촉각, 육감은 무엇을 하는가.

상대의 움직임을 예측하기 위해 듣고 보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팀장은 내 타이밍을 정확히 읽어 냈다.

단기 예지.

달리 말하면 '전투 예지'.

불멸의 감각을 제대로 키운다면 가능하다.

순간적으로 감각을 확장하면 가능할 것이다.

이 또한 깨닫는 순간 어떻게 하는지 알았다.

그와 함께 난 보고서를 꼭 손으로 쓸 필요는 없다는 것도 알았다.

숙제의 답은.

이거로 대신하면 그만이다.

할 수 있을 것이다. 가능하다.

심장이 쿵쿵 뛰고 호기가 솟았다.

상대의 의표를 찌를 수 있다는 생각과 새로운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희열, 복합적인 감정이 날 움직였다.

"점심 먹으러...."

팬더 대리가 중얼거리는 걸 들었다.

그와 동시에 난 심장이 시키는 대로 행동했다.

기척 죽이기는 나를 보여 주지 않는 것.

그걸 반대로 한다.

우습게도 기척 속이기는 변신족의 비기 '야성의 살기'를 다루는 법과 비슷했다.

그러므로 그걸 토대로 난 기척 속이기를 실현했다.

실제로 그리 움직이지는 않지만, 그렇게 움직일 것처럼 보여 준다.

사무실 한복판, 난 발을 한 번 내딛는 것만으로 상대에게 당장 달려들 거란 착각을 줄 수 있었다.

"이 새끼가 돌았나."

반응한다. 팀장이 자세를 잡고 순간적으로 사무실 한가운데 있는 탁자를 발바닥으로 밀었다.

구수한 냄새가 날 것 같은 고무 슬리퍼 바닥이 테이블을 나한테로 밀어냈다.

난 그 움직임 전부를 눈에 담았다.

완벽할 순 없다.

처음 해 보는 거니까.

하지만 흉내 정도야 일도 아니었다.

감각을 최고치로 끌어올리고 모든 신경을 상대에게 집중한다.

감각 확장으로 인한 단기 예지, 그러니까 전투 예지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이거다.

집중력.

상대만을 오롯이 내 인지 범위 안에 넣는다.

그래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열린 감각을 통해 주변 모든 정보가 물밀 듯이 밀고 들어와 뇌를 엉망으로 만들 테니까.

고요하다. 한없이 고요한 시간이다.

주변 소리를 차단한 채, 오롯이 집중한 순간이었다.

"웃냐?"

팀장이 말했다. 그 목소리가 귀에 꽂혔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딱 한 번, 딱 한순간, 난 팀장의 다음 행동을 읽었다.

테이블을 밀고 기척에 반응하는 팀장의 움직임을!

"네."

대답과 동시다.

펑.

땅을 박차고 그대로 주먹을 뻗었다.

바닥을 박찬 힘을 이용해 몸을 내던지시다시피 했다.

팀장은 테이블을 내 쪽으로 밀며 그 힘을 사용해 뒤로 물러났고.

물러남과 동시에 왼발을 축으로 몸을 틀었다.

내 공격을 예상한 움직임.

그리고 난 그런 팀장의 목에 래리어트 어택을 먹였다.

팔로 감싸 그대로 질식시켜 줘야지.

그 야심 찬 꿈은 금세 깨졌다.

퍽!

목이 걸리긴 했는데 그사이에 팀장의 팔이 끼었고.

"이 새끼 봐라."

팀장의 웃는 얼굴도 볼 수 있었다.

염병, 내가 본 것처럼 팀장도 봤다. 수 싸움에서 졌다.

그와 동시에 상하좌우 공격의 기척을 느꼈다.

시발, 뭐가 진짜인지 모르겠잖아.

쩍.

턱이다. 주먹이 턱을 갈겼다. 숏 어퍼였다.

"욱!"

어금니를 꽉 깨물고 통증을 참았다. 칼날 구보에 비하면 한 대 맞는 거야 우습다.

턱을 맞아 균형감을 잃었기에 뒤에 있는 의자에 등을 기대고 버텼다.

그제야 탁하고 고무 슬리퍼가 바닥에 떨어졌다.

"너 뭐하냐?"

팀장이 물었다. 슬리퍼 한 짝을 잃어서 한 발을 다른 발 위에 올린 채였다.

"보고서요."

"뭐?"

"숙제 해답이요."

얼얼한 턱을 잡고 목을 좌우로 꺾었다.

우둑, 우둑.

"보고서라고?"

"이게 더 정확한 답 같았거든요."

내가 답하자.

"또라이네."

파티션 바로 넘어 외부 보안 2팀의 대리가 말했다.

소란을 일으켰으니 주목받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너 정상이니?"

팬더 대리가 물었다.

"의무실 가 봐."

얼음 선배도 말했다.

화림에서 말하는 의무실은 하나다.

정신의학, 상담 치료 센터.

뭐라 답하기도 전이다.

"뭐, 시발, 답은 맞긴 하네."

팀장이 떨어진 슬리퍼를 발끝으로 가져와 신으며 말했다.

그 한마디가 모든 상황을 정리했다.

"네?"

그 말에 내가 되물었다.

사실 욱하기도 했고 순간적으로 열이 올라 덤비기도 했다.

나도 나 자신이 왜 그랬나 싶었다.

아마도 순간의 희열 때문이겠지.

성적인 충동이나, 폭력의 충동 대신 찾아온 희열이 준 에너지.

고로 변신족의 본능이 몸을 먼저 움직여 버렸다.

그런데 팀장이 저리 말한다.

이 양반 정상인가?

"뭘 빤히 봐? 가서 커피나 타 와."

몸을 일으켰다.

커피 타는 건 팀의 막내가 할 일이다. 한번 시원하게 덤비고 한 대 맞으니, 아까 느꼈던 충동이 사라졌다.

"침 뱉으면 뒈진다. 내 미각 못 속인다."

네, 그런 짓 안 합니다.

예민한 불멸의 미각을 속일 자신은 없습죠.

무색무취 무미의 독약을 구하기 전에는 충실하게 맛있는 커피 믹스를 만들 겁니다.

그런데 팀장 이 사람 왜 이러나.

다짜고짜 덤볐는데 그냥 넘어간다고?

모르겠다. 커피나 타 와야지.

회사 생활 별거 있나.

시키는 거 잘하고 하지 말라는 거 안 하면 되는 거지.

* * *

"쟤 뭐한 겁니까?"

"기척 속이기."

동훈이 묻고 김정아가 중얼거렸다.

"몰래 가르쳤어요?"

동훈이 다시 물었다.

"내가 그럴 사람으로 보여?"

팀장이 답했다.

아니지, 절대 아니지.

"근데 대뜸 덤빈 걸 보고서라고 인정해 줍니까?"

"인상적이잖아. 시바."

중봉이 말했다.

표정 숨기는 거 하나는 자신 있었던 팀장의 얼굴에 어느새 미소가 걸려 있었다.

"3팀장, 애들 교육 신경 써. 사무실에서 이게 뭔 난리야?"

예민하기로는 이 사무실에서 원톱을 다투는 외부 보안 2팀장의 말이었다.

"신경 쓰고 있는 거다. 이게."

"쫓아낼 거면 빨리 쫓아내든가."

2팀장이 중얼거렸다.

여기서 그 중얼거림을 못 듣는 사람은 없었다.

동훈은 생각했다.

3팀은 신입을 받지 않는다. 특히나 저런 새파란 신입은 원하지 않는다.

왜? 팀장님이 원하지 않으니까.

지금까지는 그랬다. 그랬었다.

"김정아, 저거 몸뚱이는 어때?"

"육체 단련도만 봤을 때는 회사 전체를 통틀어도 손에 꼽습니다."

선배이자, 광익에게 기본적인 격투술을 가르치는 사람의 말이다.

"어디서 배운 거겠죠?"

동훈이 물었다. 여전히 아까 그 비기에 꽂혀 있었기에 나오는 물음이다.

팀장은 생각했다.

배우긴, 그 거친 투박함, 제대로 배운 순혈이었다면 보일 수 없는 어설픔이다.

말 그대로, 지금 막 이 자리에서 깨닫고, 깨우친 그대로 실행에 옮겼다.

익히자마자 써먹은 거다. 그것도 팀장 자신한테.

'어디서 저런 게 왔을까?'

부모 얼굴이 궁금해졌다.

모든 불멸자의 개인정보는 기밀이다. 그건 부하 직원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임원급이 아니면 볼 수가 없다.

혼혈인데 이 정도 재능, 이레귤러라고 퉁 쳐서 말하는 게 부족할 정도다.

중봉은 진심으로 광익의 아버지 얼굴이 궁금했다.

아무리 재능이 출중해도 할 수 없는 게 있는 법이다.

어릴 때부터 영재 교육이라도 받았다면 모를까.

그래서 궁금했다. 신입의 부모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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