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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66% PLYRETUR / Chapter 6: 6

Bab 6: 6

# 55

055. 디어사이드(2)

"점령전... 말입니까?"

"예."

나는 모여 있는 사람들에게 단호히 말했다.

지금 우리는 아까 내가 말했던 건물 안에 있었다.

안전지대로 설정된 만큼 옵저버가 지켜볼 걱정도 없었기에 나는 거리낄 것이 없었다.

현재 이곳에 모여 있는 사람은 총 일곱 명.

나, 한지수, 이민아. 그리고 송창우와 송시우. 루크와 린이었다.

"확실히 요즘 던전의 수가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지만, 점령전이라고 말하기에는 좀."

창우가 조심스럽게 내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아뇨, 확실히 창우 씨의 말이 맞습니다. 던전의 수만으로는 점령전이라는 증거가 안 되죠."

"그럼?"

"던전 각인입니다."

각인이라는 말에 모두의 머리에 물음표가 떠오르는 게 보였다.

"그게 뭔데?"

"간단히 말해 각인한 사람이 속한 집단만 던전을 이용할 수 있게 하는 거지. 지금까지의 던전은 입장 제한이 없었다면, 지금부터는 던전에 입장 제한을 걸 수 있다는 거야."

심지어 한번 각인시키면 한 달간 재 각인이 불가능하다.

겨우 한 달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보통 그 정도의 기간이면 일반 던전은 소실된다.

자원을 채취할 수 있는 던전 정도나 한 번 정도 더 연장할 수 있으리라.

"그럼 최대한 많은 던전을 얻어두는 쪽이 앞으로 유리하겠군요."

"이 서울의 패권을 쥘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지."

던전에서 얻을 수 있는 자원은 무궁무진하다.

단순히 필드에 돌아다니는 몬스터들은 한계가 있었고, 보스몹도 발견하기 힘들다.

심지어 잘못하면 개간이 되지 않은 필드에서 센티넬과 마주치게 될 수도 있었다.

그럼 무조건 죽는다.

안정적으로 자원을 수급할 수 있으며, 포인트를 습득할 수 있는 던전은 플레이어들의 성장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확실히 극심한 경쟁이 될 것 같습니다."

창우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미 대형 길드에서는 움직이기 시작했을 겁니다. 소문으로 이미 들으셨겠지만 서울에는 대형 길드가 여럿 존재하니까요."

우선 3대 길드로 나뉘는 아웃라이징, 피안화, 제네시스 길드.

그 아래로 수많은 산하 길드가 현재 존재하며, 음지의 길드도 존재한다.

우선 현재는 대표적인 건 그믐달이다.

그믐달은 현재 3대 길드와 비교해도 꿇리지 않은 세력을 구축하고 있었다.

또한 흑천회가 사라졌지만, 악마의 계약자가 모인 또 다른 길드도 분명 존재할 거다.

"아마 퀘스트는 곧 뜰 겁니다."

빠르면 오늘. 길면 일주일 정도.

이미 대부분의 길드들에게 소문이 오가고 있을 테니 언제 공지가 떠도 이상하지 않았다.

GM 아카터스는 징계를 받았으니 다른 GM이 공지를 올리게 되겠지.

그럼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경쟁이 시작되는 것이다.

"근데, 근데. 그럼 길드가 없는 사람들은 메인 퀘스트에 참여할 수 없는 거 아냐?"

"임시로 길드에 가입이 가능해. 그럼 해당 길드에 속한 던전을 이용할 수 있지."

"아, 진짜?"

"물론, 대형 길드로 몰리겠지만."

"확실히 그렇겠네."

강한 길드일수록 규모도 크기 때문에 많은 던전을 차지할 수 있으니 당연하다.

가만히 있던 지수도 내 옷깃을 잡아당기며 입을 열었다.

"오빠, 그럼 우리는 용병으로서 참여하는 건가요?"

"아니. 그랬으면 굳이 이렇게 모으지 않았어."

나는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제 슬슬 오늘 이곳에 불러 모은 이유를 말해야 할 때다.

"저는 길드를 만들려고 합니다."

모두는 대충 예상했었는지 크게 놀라는 기색이 없었다.

심지어 민아나 창우, 시우의 경우엔 이미 이전에 이야기했기 때문인지 그냥 그러려니 하는 얼굴이었다.

"앞으로는 혼자서는 대응할 수 없는 일들도 생길 겁니다. 이번 경쟁전처럼 말이죠."

더불어 지금 눈앞에 있는 플레이어들을 빠르게 육성시키는 만큼, 다른 플레이어들의 질을 높이는 것도 중요했다.

그건 나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제대로 된 길드와 동료가 필요했다.

"그러니 함께해 주셨으면 합니다."

"형, 전 무조건 오케이에요. 전에도 그랬잖아요!"

가장 먼저 손을 들고 말한 건 시우였다.

창우 역시 그런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느긋하게 말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전 세한 씨에게 빚이 있는 만큼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나도 별로 상관없어. 다른 길드에 들어가기도 귀찮고."

"저도예요."

민아와 지수도 간단히 긍정했다.

문제는 루크와 린 부녀였다.

그들은 왜 자신들이 이 멤버에 포함되었는지 조금 의문스러워하는 눈치였다.

"음, 세한. 나와 딸아이는 큰 도움이 안 될 것 같네만."

"마, 맞아요. 우리 아빠는 저번에 심지어 맞기만 했는걸요."

"...그, 그렇게 말하면 슬프구나. 나의 딸이여."

"하지만 사실이잖아."

"끄응."

루크는 얼굴을 잔뜩 찡그리며 팔짱을 꼈다.

부정할 말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전혀 상관없다는 얼굴로 말했다.

"괜찮습니다. 도리어 제가 꼭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우리에게?"

"예."

당연하지. 이 둘을 같은 편으로 삼지 않으면 그보다 큰 손해도 없다.

린 테일러는 현존 최고의 재능을 지닌 플레이어다. 그 재능을 모두 개화하게만 한다면, 전생과 같은 배드엔딩으로 절대로 가지 않을 거다. 그 정도의 힘을 린 테일러는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루크도 마찬가지다.

루크 본인은 플레이어로서 대단치 않은 실력을 가졌다고 생각하겠지만, 아바타로선 다르다.

신과의 상성이 최상이기 때문에 어떤 플레이어에게도 꿇리지 않는다.

'전생에는, 일시적이라도 최강의 플레이어에 도달하기도 했었고.'

찰나라고 부를 정도로 짧은 시간. 나는 아직도 그때의 선생님, 루크의 모습을 잊지 못한다.

"그렇게 말한다면... 알겠네. 히어로 같은 자네라면 믿을 수 있으니."

"히, 히어로?"

내가 당황하자, 루크는 하하! 하고 크게 웃었다.

미국인 특유의 과장된 재스쳐다.

"그렇지! 히어로. 사실 나도 노리고 있는 중이라네. 이미 한번 져버려서 히어로로선 실격이지만 말이야."

"아, 아빠. 그만해."

린이 닭살이 돋은 팔을 문지르며 루크의 옷을 잡아당겼다.

어지간히도 부끄러운 모양이지만 나는 그저 쓰게 웃었다.

'히어로라.'

나만큼 그게 안 어울리는 사람도 없을 텐데.

"그럼 오빠, 나 중요한 건데 하나만 물어도 돼?"

대화가 대충 마무리 되자, 민아가 살며시 다가왔다.

"상관없어."

"흠흠, 그럼 길드 이름은 뭐야? 없으면 내가 정하고 싶은데."

"이미 정했다."

"뭐어?"

민아는 크게 실망한 눈치였다.

계속 조용히 있더니 길드명을 생각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뭐야? 뭔데? 이상하기만 해봐."

흠잡을 기색이 만만인 민아의 모습에 나는 피식 웃었다.

그리고 모여 있는 사람들이 모두 들리도록 말했다.

"디어사이드(deicide)."

흔하다면 흔한 명칭이지만, 내게는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는 단어였다.

디어사이드.

신을 죽이는 자라는 뜻이었으니까.

***

다섯 번째 퀘스트 공지가 뜨기를 기다리는 동안, 길드 하우스를 수선했다.

하우징 기능을 이용하면 얼마든지 간단히 변경이 가능했다.

포인트만 내면 얼마든지 업그레이드나 리모델링이 가능하기 때문에 나는 상당량의 포인트를 이 길드 하우스에 투자했다.

우선 지하에는 거대한 공방을 만들었다.

시우에게 이전에 준 공방이 있었지만, 이쪽에 훨씬 크고 좋은 공방으로 새롭게 준비했다.

공방의 질이 좋을수록 만들어지는 장비도 성능이 좋아지니 정말 아낌없이 투자했다.

공방의 내부를 본 시우는 한동안 입을 다물지 못했을 정도다.

그리고 2층은 간단한 단련실.

원래 특별히 그런 장소를 만들 생각은 없었지만 지수의 요청이 있었다.

"제대로 된 전투기술을 배우고 싶어요."

아무래도 이전에 신자운에게 밀렸던 걸 마음에 두고 있었던 모양이다.

혈천수라공의 초식을 알려주는 방법도 있었지만, 그건 나보단 후에 더 좋은 스승이 나타나게 되므로 미뤄두기로 했다.

내가 지수에게 알려준 건 기본적인 전투방법이다.

하루에 한 시간에서 두 시간씩 지수는 나와 꼬박꼬박 대련을 하며 기술을 익혔다.

바로, 지금처럼.

'이 녀석이 천살성치고 살기가 없다는 말은 취소해야겠다.'

나는 정면에서 덤벼드는 지수를 보며 혀를 내둘렀다.

주먹과 발이 오갈수록 지수의 눈이 점차 붉게 물든다 싶더니 폭발적으로 살기가 터져 나왔다.

그간 지수가 붉은색으로 눈이 변한 건 자주 봤지만, 살기의 대상이 된 적이 없어서 전혀 몰랐다.

설마 이렇게나 능숙하게 살기의 대상을 조절할 수 있다니.

타고난 천살성은 뭔가 다르긴 하다는 건가.

'지금 이것도 내게는 억누르고 있다는 게 문제인데.'

빠르게 휘둘러오는 지수의 손과 발을 막아내며 지수의 모습을 유심히 살폈다.

분명 지수는 천살성의 살기를 감출 수 있는 스킬을 가지고 있다.

아마 분명 특성이겠지.

유일하게 내가 지수의 능력치 창에서 볼 수 없는 부분.

문제는 천살성이 살기를 이렇게 말끔히 감출 수 있는 특성의 효과가 뭐냐는 거다.

억누르는 건가? 아니면 단지 느끼지 않게 지우는 건가.

이렇게 싸워보니 지수는 내버려뒀으면 말 그대로 마인이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 같이 데리고 다녀서 다행이군.'

그리고 앞으로도 데리고 다녀야겠네.

내버려두면 어디서 폭발할지 모르니까.

이제야 화곡동에서 들었던 말이 이해가 됐다.

아마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지수를 건드렸다가 좆된 게 분명했다.

천살성의 특성상 적으로 간주한 상대를 살려둘 턱이 없잖아.

파앙!

나는 마지막으로 지수의 주먹을 강하게 튕겨냈다.

"오늘은 여기까지."

그렇게 말하자 지수의 살기가 단번에 사라졌다.

정말 그렇게 넘치던 살기가 한 줌도 느껴지지 않았다.

"와. 한 대도 못 때렸네요. 오빠는 대체 어디서 배운 거예요? 그냥 평범한 게임 폐인 아니었나?"

"내가 싸우는 건 이전부터 봤을 텐데 이제 와서 그러기냐?"

"싸우는 걸 본 거랑 실제로 싸워본 건 다르죠."

지수는 투덜거리며 이마에 흐른 땀을 닦았다.

"그래도 대충 어떻게 움직이는지는 알 것 같아요."

"...아, 그래?"

이래서 재능충들이란.

덜컹.

내가 속으로 투덜거리고 있자, 단련실의 문이 열렸다.

"오빠, 여깄지? 으아, 땀 냄새~!"

지수와 달리 자신의 패배에 대해서는 요만큼도 보완할 생각이 없는 민아였다.

사실 쟤도 재능충이니까 특별히 단련할 필요가 없긴 하다.

그냥 적당히 구르다보면 알아서 싸움법을 익히겠지. 여태 그래왔을 테고.

'그래도 나중에 지수랑 대련시켜야지.'

저런 애는 나보단 지수와 싸워보는 게 효과가 직빵이다.

"무슨 일이야? 단련실은 절대로 안 온다고 하더니만."

"이씨, 그럴래? 지금 부화기에서 이상한 소리 나고 있단 말이야."

"이상한 소리?"

"응. 갑자기 이상한 팡파레 같은 소리가 나더라고."

나는 민아의 말에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부화기는 민아가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

특별한 이유가 있던 건 아니다.

그냥 민아가 할 일이 제일 없어 보였으니까.

'드디어 기린의 열매가 깨어나는구나!'

기린의 열매를 부화기에 넣은 지도 곧 한 달이다.

그렇다보니 나도 조금씩 초조해지고 있었다.

이러다가 '그' 던전이 열릴 때까지 안 깨어나면 큰 문제였다.

여차하면 부화기를 통째로 던전에 들고 가야 되나 싶었을 정도다.

"가자. 아직 나온 건 아니지?"

"응, 아직은 소리만 나고 있어."

나는 민아와 함께 서둘러 부화기가 있는 지하로 내려갔다.

시우의 공방보다도 한층 아래다.

던전을 순회하면서 모은 아이템이나, 시우가 만든 장비들을 모아두는 장소였다.

그중 중앙에서 번쩍 거리는 부화기가 눈에 들어왔다.

"오."

드디어 나오는구나.

나는 부화기의 앞으로 다가갔다.

부화기의 크기도 한층 커져 있었다. 족히 2미터가 넘는 천장까지 닿을 정도의 크기였다.

'이정도면 상당히 성장해서 나오는 건가?'

유년기의 기린이 어느 정도의 크기인지는 나도 모른다.

내가 봤던 기린은 대체로 성체였고, 그건 우리가 있는 이 건물보다도 컸다.

[성공적으로 성수 '기린'의 부화에 성공하셨습니다!]

[업적 '성수를 길들인 자'를 획득하셨습니다.]

[촉매제가 대단한 효과를 발휘했습니다!]

[최초로 기린아(麒麟兒)가 탄생했습니다!]

부화기에 가까이 다가가기 무섭게 연속으로 알림이 떠올랐다.

나는 그 알림들을 흡족한 얼굴로 보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기린아?

뭐야, 그건. 흔히 대단한 능력을 가진 사람을 지칭할 때 기린아라고 칭하긴 한다.

근데 그거랑 이게 무슨 관련이 있다는 거지.

치익──

불안한 예감이 드는 동시에 부화기의 아래에서 작은 문이 열렸다.

나는 당연히 처음 집어넣었던 뚜껑에서 나올 줄 알았더니, 예상외로 따로 문이 있었다.

나는 방금 막 태어난 기린을 보기 위해 문이 열린 곳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할 말을 잃고야 말았다.

"빠우!"

왜냐면 그곳에서 기어 나온 건, 길쭉한 외뿔을 지닌 인간의 아기였기 때문이다.

# 56

056. 던전 점령전(1)

이걸 대체 뭐라고 해야 되나.

나는 부화기에서 기어 나온 갓난아이를 보고 복잡한 기분에 휩싸였다.

'촉매제 효과가 대체 얼마나 뛰어나면 말이 인간이 되지?'

기린은 말이 아니긴 하지만, 대충 그렇다 치자.

그나마 다행인 점은 이마에 제대로 뿔이 달려 있다는 점이다.

거기서 나오는 신성한 힘에 조금 안심은 할 수 있었다.

"우와, 뭐야? 얘, 대박 귀여워!"

민아가 호들갑을 떨며 아기를 안아들었다.

제대로 반응도 못하는 나를 대신해서 움직여준 민아가 고마웠다.

'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난... 엉?'

그런 나의 궁금증을 풀어주는 것처럼 부화기에서 추가적인 메시지가 출력됐다.

바로 이번에 탄생한 기린아에 대한 정보였다.

==

기린아(麒麟兒)

엄청난 재능을 지닌 인간의 피와 성수 기린의 힘이 하나로 합쳐진 존재.

수명과 지닌 힘은 기린과 같다.

처음 태어날 때는 갓난아이의 모습이지만 한 달에 걸쳐 십대 초반의 인간의 모습으로 성장한다.

이후에는 평범한 인간과 동일하게 20대까지 성장하게 된다.

뛰어난 재능을 지녔으며, 특히 마법에 능하다.

천성은 선하나, 인간의 피가 흐르는 탓에 쉽게 타락할 수 있다.

많은 재능을 지니고 있어, 교육에 따라 성장방향이 달라진다.

==

"흐음."

설명을 읽어보니 특별히 나쁠 건 없었다.

오히려 대박이라면 대박이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나는 당연히 펫이라고 생각해서 테이밍 스킬을 익힐 준비를 했는데 갓난아이라면 사정이 달라진다.

아무리 뿔이 달렸다고 해도 사람의 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펫이라고 할 수는 없잖아.

"걔 한 달 지나면 십대 초반의 모습이 된데. 대략 린 정도?"

"아, 진짜? 아쉽다, 이렇게 귀여운데."

민아는 답지 않게 어린아이를 좋아하는 모양인지 아이를 안고 둥가둥가 해주고 있었다.

음, 아무래도 저 아이는 민아에게 맡기는 게 좋을 거 같군.

"근데 수컷인지 암컷인지...."

"아기한테 수컷암컷이 뭐야! 기다려 봐, 내가 확인해 볼게."

아무래도 기린의 알에서 태어난 탓에 어떻게 칭해야 할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으음, 하긴 수컷이나 암컷은 동물에게나 쓰는 표현이니.

근데 반쯤은 동물 아닌가.

"참, 그리고."

"꺅, 뭐야!"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갑자기 왜 놀라?"

민아는 안고 있던 아이를 자기 옷으로 감싸 숨기며 말했다.

"얘, 여자애야."

"...그래?"

"응, 그러니까 함부로 보면 안 돼!"

눈을 부라리면서 경고를 주는 민아의 모습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따지자면 저 아이는 내 팻...이라기엔 뭐하고 내 아이라고 말하기도 뭐하고.

아무튼 내 소속인데 너무하네.

"그보다 이름을 정해야 될 것 같은데."

"아, 그래? 그럼 내가 정할래!"

아주 보모 납셨다. 어차피 얘는 특별히 생각해 둔 이름도 없었으므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전에 길드이름 내가 지었다고 한동안 부루퉁해있었으니 이 정도는 그냥 양보하기로 했다.

"이 아이 이름은 백설이야."

"왜?"

"하얗잖아."

그럼 그냥 흰둥이로 짓지 그러냐.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꾹 눌러 참았다.

'백설이라고 하니 백설 공주가 떠오르지만.'

그래도 어울리는 이름이긴 했다.

아이는 꼭 하얀 눈 같았다. 머리카락도 희고, 눈은 청아한 파란색이라 더욱 그랬다.

아마 눈 색깔은 린의 파란 눈을 물려받은 것 같았다.

"아우!"

백설이 본인도 마음에 든 듯 함박웃음을 지었다.

뭐, 그래도 이렇게 보니 귀엽기는 귀엽네.

이 모습을 며칠 못 봐서 아쉬워하는 민아가 이해되기도 했다.

갓난아이의 모습은 전생에서 볼 수도 없었으니 특히 그런 마음이 들었다.

인간이 태어나는 것보다 멸망하는 게 빨랐으니까.

"다른 사람들에게도 보여주자!"

"마음대로 해라."

민아는 뭐가 그렇게 신나는지 아이를 안고 뛰어올라갔다.

그 뒷모습을 보며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예상과 좀 다르기는 하지만, 그게 꼭 나쁘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뒤, 민아를 쫓아 위로 올라갔다.

민아가 백설이를 데리고 괜히 이상한 짓은 하지 않을까 걱정이 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날 저녁.

드디어 다섯 번째 퀘스트를 알리는 공지가 올라왔다.

***

==

메인 퀘스트 5

던전 레이스

도시 곳곳에 생기는 던전을 공략하고, 각인하여 차지해라.

이제부터 당신은 동료들과 힘을 합쳐 다른 플레이어들과 경쟁을 해야 한다.

던전을 각인 시킬 때마다 점수를 얻게 되며, 가장 많은 점수를 보유한 세력이 승리하게 된다.

당신의 동료들과 함께 영광을 차지하라!

* 혼자서는 퀘스트에 참여할 수 없으며, 길드에 가입 시 퀘스트가 활성화 된다.

* 1주마다 던전을 차지한 숫자가 랭킹으로 표시되며 높은 순위를 차지할수록 추가적인 보상이 주어진다.

* 점수는 차지한 던전에 따라 다르다.

난이도 E 남은 시간 한 달

==

기억과 동일한 퀘스트였다.

아마 이제부터 다른 길드들도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할 거다.

지금까지 생긴 서울 지역의 던전들은 이미 기존 3대 길드의 차지일 거다.

아마 첫 주의 순위는 그들이 상위권을 차지하겠지.

하지만 상관없다.

현재 서울에 생긴 던전들은 대부분 배점이 낮은 던전들뿐이니까.

정말 중요한 건 앞으로 생길 던전들이다.

"이번 퀘스트에서 주목할 점은 하납니다."

나는 길드원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던전에 따라 점수배점이 다르다는 것."

퀘스트에 표시된 내용이니 다들 그건 알고 있을 것이다.

다만 문제는 '어떤' 던전이 점수가 높은지 알 수 있냐는 거다.

"결국 최대한 많은 던전들을 확보하는 게 중요하겠네요."

지수는 엄지로 입술을 쓸며 말했다.

"저희는 수가 적으니 솔직히 경쟁이 힘들지 않을까요?"

"단순한 점령전으로 가면 힘들지."

"그럼 다른 방법이 있어요?"

"배점이 높은 던전을 위주로 차지하면 돼."

던전이 계속 생겨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숫자는 그렇게 많지 않다.

아무리 인구가 많아도 결국 하루에 차지할 수 있는 던전의 숫자는 한정되어 있다는 이야기.

"근데 배점이 높은 던전이 뭔지 어떻게 알아? 기존에 던전을 차지하고 있던 3대 길드 애들도 모르던데?"

"3대 길드가 아는지 모르는지 어떻게 아냐?"

"심심해서 숨어들어가 봤으니까 알징~!"

민아는 새하얀 치아를 보이며 방긋 웃었다.

할 일 없이 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기특한 짓을 하고 있었을 줄이야.

"그나마 제네시스 쪽만 던전의 등장 패턴을 분석하고 있는 정도? 거기 길드장은 머리가 좀 좋아 보이더라."

제네시스면 박성혁인가.

확실히 성가신 녀석이긴 하지.

전생의 일을 생각하면, 이미 첫 주자에 녀석은 던전 레이스를 훤히 꿰고 있었으니까.

"확실히 등장 패턴이 있긴 하지."

나는 미리 그려온 지도를 펼쳤다.

서울 전역을 나타낸 지도이며, 또한 지금까지 나타났던 던전들에 대한 것이다.

"이게 최근 일 주일간 서울에서 나타났던 던전들을 표시한 지도입니다."

"이런 건 어떻게 안 거예요?"

지수가 신기하다는 얼굴로 물었다.

"까마귀들로 계속 체크하고 있었어."

이제는 꽤 익숙해진 까마귀의 눈으로 서울 전역 곳곳에 CCTV처럼 까마귀들을 보내둔 상태다.

다만 한 번에 볼 수는 없어서, 번호로 한 마리씩 지정해서 확인하고 있었다.

지도에는 현재 등장한 던전들과, 해당 던전의 배점이 표시되어 있었다.

"으음~! 이것만 봐서는 잘 모르겠군."

루크가 지도를 골몰히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아뇨, 이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난 볼펜을 들고 등장한 던전들을 선을 그어 연결했다.

"이게 뭐 같습니까?"

그렇게 말해도 여전히 루크는 모르겠다는 눈치였다.

예상했던 반응이다. 보통 떠올리기 힘든 것이니까.

"별자리입니다."

"별자리?"

"예, 이건 거문고자리, 저건 목동자리."

해당 던전들의 배점은 1점이었다. 가장 점수가 높은 던전도 기껏해야 2점.

다른 던전들도 비슷했다. 가장 배점이 높은 던전이라고 해 봐야 3점 정도였다.

"억지 아냐? 던전과 별자리는 별상관도 없잖아."

"그렇지, 하지만 가벼운 힌트라고 생각하면 돼. 그리고 앞으로 이어질 퀘스트가 별자리와 관련된 거라는 징조이기도 하지."

탁.

나는 볼펜은 책상에 내려놓았다.

현재 등장한 던전들을 선으로 이으니 총 여덟 개의 별자리가 완성됐다.

"저희가 노릴 건 배점이 높은 던전들. 그것이 별자리의 급수에 따라 나눠진다면...."

가장 격이 높은 별자리.

그건 황도 12궁에 위치한 별자리다.

황도 12궁에 위치한 별자리의 별 중, 가장 빛나는 별의 위치가 가장 높은 배점을 가지고 있었다. 무려 10점.

평범한 던전을 열 개 점령하는 것과 같은 점수였다.

거기다 다른 별의 위치에 생긴 던전도 점수가 적지는 않았다. 최소 3점부터 최대 5점까지 있었다.

물론 10점보다는 적지만 상당한 점수인 건 분명했다.

"그리고 배점이 높은 던전은 얻을 수 있는 것들이 많아."

희귀 광물이나 소재를 얻을 수 있는 던전.

그리모어 습득이 용이한 던전 등등.

여태까지 나온 던전과는 비교도 안 되는 파격적인 보상을 가지고 있었다.

'포인트만 제외하고.'

나는 배점이 높은 던전을 체크하며, 몇몇 던전들을 따로 체크했다.

소위 '꿀단지' 던전들이다.

배점이 높은 던전들도 중요하지만 이 던전들도 중요했다.

얻을 수 있는 소재는 별 볼일 없지만 포인트 효율만 따지면 꿀도 이런 꿀이 없었다.

나는 대략적인 체크를 마친 뒤, 머리를 긁적였다.

'아무튼 이 던전들이 별자리에 관한 것이라는 건, 신들 중에도 알아챈 자가 있겠지.'

다른 신이라면 몰라도 박성혁을 아바타로 둔 신은 눈치챘을 거다.

전생에 이 던전 레이스에서 가장 큰 이득을 취했던 건 제네시스였으니까.

그럼에도 나는 별 걱정을 하지 않았다.

왜냐면 나는 앞으로 생기게 될 황도 12궁 던전의 위치를 모두 외우고 있었으니까.

상대가 별자리라는 걸 눈치챘다고 해도, 미리 알고 있는 나에 비하면 부족했다.

"그리고 이번 일에서 가장 중요한 건 바로 너야, 이민아."

민아는 갑자기 자신이 언급되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멍하니 중얼거렸다.

"...나? 왜?"

"그건 좀 나중에 설명해 줄게."

"그런 건 바로바로 설명해 주면 안 돼?"

"넌 설명이 길어서 그래."

"씨잉."

민아가 입술을 삐죽 내밀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우선 다른 사람들을 분배하는 게 먼저였다.

그편이 훨씬 빨랐으니까.

"우선 창우 씨는 저와 함께 가시고... 참 한지수."

"네?"

나는 조용히 지도를 보고 있는 지수를 보며 진지하게 말했다.

"너 던전 레이스에서 플레이어에게 괜히 상해를 입히면 안 된다? 이건 경쟁이지 서로 죽이자는 게 아니야."

"아, 알고 있어요. 저를 대체 어떻게 보는 거예요?"

지수가 억울하다는 듯 부루퉁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뭔가가 생각났는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근데 나쁜 애들은 괜찮지 않아요?"

"그 나쁜 애들이 뭔데."

"다른 플레이어들을 해치려고 하거나, 함부로 남의 물건에 손대거나...."

지수는 그렇게 말하며 민아를 보았다.

민아는 그런 지수의 시선에 흠칫 놀라며 황급히 변명했다.

"나, 나는 요즘 도둑질 그만둔 지 오래야!"

"특별히 뭐라고 한 건 아닌데요."

"뭐라 하지는 않았지만 방금 날 봤잖아! 언니가 그렇게 보면 얼마나 무서운 줄 알아?"

생각해 보면 맨 처음 민아와 만났을 때 그대로 민아의 머리가 날아갔을지도 모른다.

운이 좋았던 걸지도 모르겠네.

"음."

나는 지수의 질문에 뭐라 답해줘야 할지 고민하다가 최대한 무난한 답을 내놨다.

애초에 나도 흑천회를 아작 낸 전적이 있어서 지수에게만 뭐라 할 수는 없었다.

"그건 네 판단에 맡길게. 그래도 너무 눈에 띄게 죽이지는 마. 괜히 시선 끈다."

"네."

싱긋 웃는 지수의 미소가 서늘하게 느껴졌다.

역시 지수는 되도록 별일이 없을만한 장소에 배치해야 될 것 같았다.

***

X지존패왕X: 으하하하! 그래, 나는 이런 경쟁전을 계속 기다려왔다. 전쟁이, 나를 부른다.

1망치왕1: 닉네임 답도 없는 거 보소.

X지존패왕X: 네놈이 할 말은 아니다.

정직한삶: 지금 서울 지역은 누가 먹었음?

북유럽미녀: 내가 먹었지롱.

X지존패왕X: 큭큭, 그것도 잠깐이다. 조금 있으면 내 아바타가 전부 차지하게 될 거다. 이번 경쟁전이 지나면 서울은 모두 내 지배아래에 오게 되리라.

두꺼운법전: 저거 컨셉이냐?

한창 커뮤니티에서는 이번 메인 퀘스트에 대한 이야기가 오가고 있었다.

가장 들뜬 건 단연 큰 길드에 속한 아바타를 지닌 신들.

저마다 기 싸움을 하던 도중, 익명 하나가 끼어들었다.

자주 좋은 정보를 흘리는 나름 네임드 익명인 '익명 48'이다.

익명48: 배점이 높은 던전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왔습니다.

북유럽미녀: 얘가 그 예언 계통 신인가 하는 애지? 네 아바타는 뭐니? 우리 길드에 넣어줄게.

익명48: ㅎㅎ; 괜찮습니다. 우선 강남 지역은 여기하고, 여기가 배점이 꽤 높을 것 같습니다.

북유럽미녀: 아, 진짜? 강남 쪽이면 내 거네 이거.

두터운법전: 혹시 강서 쪽은 좋은데 없나? 내 생각엔 이거 배점 높은 던전이....

X지존패왕X: 뭐냐. 왜 말을 하다 마느냐.

두터운법전: 크크, 다 이유가 있는 법이지.

익명 48: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차근차근 알려드리겠습니다.

익명48은 커뮤니티에 차근차근 자신이 보유한 정보를 풀어놓았다.

그동안 계속 좋은 정보를 들고 날랐던 익명 48의 말인 만큼 누구도 의심하는 자는 없었다.

그런 커뮤니티를 보며 세한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흘릴 수밖에 없었다.

'어느 정도 높은 배점이긴 하지, 대략 3~5점 사이정도?'

물론, 간간히 10점짜리도 끼워 넣기는 했다.

대박 배점이 있는 던전들도 알려줘야 그들도 신용할 게 아닌가?

'두꺼운법전, 역시 티르는 알고 있었던 모양이군.'

그가 원하는 정보는 단순히 배점이 높은 던전을 물어보는 게 아닌, '황도 12궁 던전'이 생기는 시기와 장소였다.

'박성혁도 이미 알고 있다고 봐야겠지.'

전생의 일을 생각한다면 당연한 일이다.

'그래도 이제 대충, 분배가 끝난 것 같은데?'

여기까지는 특별한 문제가 없었다.

다행히 이번 메인 퀘스트에는 시스템의 개입이 없는 것 같았다.

"하암."

밤늦게까지 커뮤니티를 확인했더니 영 피곤했다.

세한은 마지막으로 커뮤니티를 훑어보다가 시야 구석에서 깜박이는 아이콘을 확인할 수 있었다.

누군가가 보낸 쪽지다.

'민아인가?'

지수는 쪽지를 보내기보단 직접 찾아오는 타입이었고, 다른 이들은 쪽지라는 시스템 자체를 어색해하는 눈치였다.

"어?"

별생각 없이 쪽지를 열었던 세한은 황망히 입을 벌릴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발신자가 의외였기 때문이다.

발신자: 꿈의 마녀.

바로 1회차에 세한을 아바타로 삼았던 신의 이명이었다.

# 57

057. 던전 점령전(2)

'꿈의 마녀.'

그 단어를 보는 순간, 나는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기분에 휩싸였다.

신들이 쪽지를 보내는 경우는 흔치 않다.

그게 간단했으면 어릿광대도 나에게 심심할 때마다 쪽지를 보냈을 거다.

그렇게 하지 못하는 건, 신이 플레이어에게 쪽지를 보낼 수 있는 횟수가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한 달에 최대 10회.

10회를 소모하면 한 달을 기다려야 다시 쪽지를 보내는 게 가능하다.

신들의 말은 하나의 계시나 마찬가지이니 당연한 일이다.

그러니 자신의 아바타에게도 쉽게 쓰기가 힘든데, 다른 플레이어에게는 보통 보내지 않는다.

그만큼 신이 쪽지를 보낸다는 건 보통일이 아니었다.

'전생에도 쪽지를 받은 적은 없었는데.'

그냥 바로 아바타가 될 것인지 요청을 했을 뿐이다.

쿵쾅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나는 천천히 쪽지를 열었다.

쪽지에는 고작 다섯 글자만이 적혀있었다.

「너는 누구지?」

생각보다 평범한 질문이었다.

그러나 왜 이런 질문을 하는 건지 의심스러웠다.

여태 내가 해왔던 일에 놀라는 신은 있어도 정체를 의심하는 신은 없었기 때문이다.

띠링.

읽고서 답변을 하지 않자, 새로운 쪽지가 날아왔다.

「답변하기 싫은 건가? 나는 그대가 마음에 드는구나.」

나는 이번에도 답변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녀는 계속해서 쪽지를 보냈다.

10회 제한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는 태도였다.

「신들은 그대가 누군가의 아바타라 생각하지. 하지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순수한 인간의 힘이야. 멋져. 박수라도 치고 싶을 정도야.」

「어떤가, 나의 것이 되는 건.」

「나는 그대를 이 게임의 승자로 만들어줄 수 있도다.」

전생에 받았던 쪽지와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혹여나 1회차의 기억을 지니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했지만, 반응으로 보아 아닌 것 같았다.

이 마녀를 비롯한 그 족속들이 1회 차의 기억을 지니고 있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천만 다행이었다. 그들은 기억을 가지고 있어도 '그럴 수도 있지'하고 넘어갈 수 있는 존재들이니까.

「죄송하지만, 거절하겠습니다.」

나는 망설이다가 그렇게만 적어서 답장을 보냈다.

이건 과거의 나와의 결별을 뜻하기도 한다.

내게 있어 마녀는 애증의 관계와 비슷하다.

그녀 덕에 내가 최후까지 승리할 수 있었지만.

배드엔딩에 도달한 것도 그녀 때문이었다.

'아니, 따지고 보면 꼭 녀석의 잘못만은 아니지.'

마녀는 나를 단순한 아바타가 아닌, 자신의 대리자로 삼으려했다.

만약 내가 그것을 승낙했다면 미래는 조금 달라졌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렇게 되면 '문'을 열 수 없을뿐더러 그녀의 세계에 존재하는 이들이 이 세계에 관심을 가지게 될 수도 있었으니까.

그러니 나는 함부로 대리자가 될 수도 없는 입장이었다.

결국, 내가 위로 갈 수 있는 길은 막혀 버렸고.

초상의 영역에 발을 디딘 이가 없었던 이 세계는 멸망하고 말았다.

「그대의 의견을 존중하마. 하지만 언제든 도움이 필요해지면 연락해도 좋다. 나는 언제까지나 그대를 지켜보고 있을 테니.」

마녀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것 같았다.

다행히 추가적인 쪽지는 오지 않았다.

나는 한숨을 쉬며 쪽지함을 껐다.

"잠은 다 잤군."

설령 잠이 든다고 해도, 오늘은 악몽을 꿀 것 같았다.

***

"에휴."

민아는 건물 위에 앉아 지도와 해당 지점을 번갈아가며 보았다.

아직 던전은 생기지 않았지만, 새까만 반점이 아스팔트 도로 한가운데에서 점점 커지고 있었다.

던전이 생기기 전에 나타나는 징조이며, 세간에서는 저걸 '게이트'라고 부른다.

던전 레이스가 시작되며 게이트의 위치는 가장 핫한 정보 중 하나였다.

게이트의 위치를 파악해 길드에 판매하는 자들이 생길 정도였으니까.

「이번 점령전에서 가장 중요한 건 너야, 이민아.」

"부려먹기는 겁나 부려먹어 진짜."

그만큼 보상을 주기는 하지만, 어쩔 때는 좀 너무하다 싶기도 했다.

이번에도 그렇다.

민아가 커버해야 할 범위가 다른 길드원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넓었다.

강남 일대와 강서, 강북 일부를 민아가 돌아다니면서 던전을 차지해야만 했으니까.

까악, 까악.

잘 보면 주변에 날아다니는 까마귀들이 보였다.

저 중에 분명 세한의 까마귀도 있을 거다.

"곧 던전이 생긴다! 모두 준비해!"

건물 아래쪽에서 시끌시끌한 소리가 들렸다.

이번 던전은 세한이 말하길 꽤나 중요한 던전이었다.

아래에 모여든 유저들은 모르겠지만, 이번 던전의 위치는 지도상 백양궁에서 가장 빛나는 별.

하말의 위치에 생긴 던전이기 때문.

간단히 말해 10점짜리 던전이다.

"이런 중요한 던전에 덜렁 나 혼자 보내고."

그 정도로 자신을 신뢰하는 건가?

솔직히 자기의 어떤 면을 보고 그렇게 믿는 건지 모르겠다.

그래도,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조금 귀찮긴 하지만.

'변신.'

민아는 작은 벌레로 변신해서 사람들의 인파에 끼어들었다.

가장 앞에 서있던 남자, 아마 대장으로 추측되는 자의 등에 붙어 던전이 열리길 기다렸다.

쿠쿵, 쿠쿠쿵!

지반이 부서지며, 게이트가 열렸다.

도로 한복판에 거대한 구멍이 생기며 던전이 탄생하는 것이다.

그런 초현실적인 광경에 몇몇 플레이어들은 입을 떡 벌리며 감탄하고 있었다.

"모두 열 맞춰라! 후열은 뒤이어 올 길드들을 견제하고, 전열은 나를 따라 던전에 들어간다!"

"옛!"

대장의 말에 다른 길드원들이 큰 소리로 대답했다.

팔에 새겨진 인장은 피안화 길드의 마크였다.

"가자! 여신님을 위하여!"

"위하여!"

던전이 문이 열리기 무섭게 길드원들이 우르르 들어갔다.

얼핏 광신적인 분위기까지 풍겨, 대장의 등에 매달려 있던 민아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여신이라니, 길드장을 말하는 건가? 아니면 길드장을 선택한 신을 말하는 거야?'

보통이라면 후자겠지만, 이들의 모습을 보면 전자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나도 이제 움직여야겠어.'

민아는 천천히 대장의 등에서 떨어져 날아올랐다.

던전 안은 상당히 어두컴컴했다.

"모두, 조심. 어떤 몬스터가 튀어나올지 모른다. 지금까지의 던전과는 달라!"

'네, 그럼 수고.'

피안화 길드원들이 천천히 주변을 살피며 던전을 공략하는동안 민아는 빠르게 던전을 내려갔다.

'그냥 이대로 각인 장소까지 가도 되겠는데?'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내려가다 보면 무슨 일이 생길지 알 수 없었다.

어느 정도 던전에 깊이 들어왔다고 생각한 민아는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읏차."

그리곤 주변에 몬스터가 있는지 한번 확인한 뒤, 인벤토리에서 동그란 폭탄을 꺼냈다.

세한이 자신에게 준, 점착 폭탄이다.

==

점착 폭탄

원격으로 조종해 폭파시킬 수 있는 폭탄. 몬스터나 플레이어에겐 통하지 않는다.

==

이미 두 번째 메인 퀘스트에서 사용해 본 물건이다.

설마 이걸 또 사용하게 될 줄이야.

"그리고...."

재차 인벤토리를 열고 긴 원통을 꺼냈다. 길이는 대략 5미터 정도.

그걸 바닥에 가로로 내려놓은 뒤, 주변 벽에는 점착 폭탄을 붙였다.

"뻥이요."

콰쾅!

점착폭탄이 일제히 터지며 던전 벽을 부쉈다. 거대한 돌 더미가 우르르 무너져 내리며 길을 매몰시켰다. 그 두께는 족히 수 미터는 되고 던전을 구성하는 돌은 하나하나가 무거운 터라, 플레이어들이라도 쉽게 제거하기 힘들었다.

길을 막아버렸으니 민아는 던전에 갇힌 것이나 마찬가지였지만, 걱정은 없었다.

그럴까봐 아래에 원통을 깔아둔 것이었으니.

5미터가 넘는 길이의 원통의 위로 돌이 깔려 있었지만 원통에는 작은 손상도 없었다.

작은 쥐가 드나들만한 구멍을 가진 원통은 무너진 돌벽 아래로 반대편까지 연결되어 있었다.

말하자면 민아만의 비상구라고 할 수 있다.

'진짜 야비하기는 진짜 야비하다니깐.'

그리고 폭탄을 진짜 좋아한다.

대체 어디서 이런 폭탄을 구해오는 건지 민아는 조금 의문이 들었다.

"그럼 다시 쭉쭉 내려가 보실까."

민아는 이번에 박쥐로 변해서 날아갔다.

중간중간 몬스터가 있었지만, 몬스터들은 굳이 박쥐를 신경 쓰지 않았다.

민아는 각인석에 도달하는 순간까지 특별한 위험 없이 내려갔다.

세한은 굳이 민아에게 말하진 않았지만, 그녀의 존재는 이런 점령전에서 치트키나 마찬가지였다.

"끝."

그렇게 민아는 첫 번째 던전을 순조롭게 클리어했다.

***

"오늘은 운이 좋아."

남자는 눈앞의 게이트를 보며 중얼거렸다.

마침 자신이 관리하는 지역의 근처에 게이트가 딱 생길 줄이야.

"만수 지부장님, 정말 오늘은 되는 날인가 봅니다."

"킬킬, 그래. 지금 다른 길드 놈들이 서로 자존심 싸움하는 동안 우리는 우리 이익만 챙기면 되는 거야."

게이트의 앞에는 대략 서른에 가까운 숫자의 플레이어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의 공통적으로 달 모양의 문신을 하고 있었는데, 그건 어떤 길드를 상징하는 심볼이었다.

바로 그믐달.

현재 서울의 뒷세계를 제압한 길드였다.

최근에는 악마의 존재를 알게 되어, 더더욱 세가 불어나고 있었다.

"야, 근처 통제하고. 누구 오는 놈 있으면 죽여."

"3대 길드면 조금 상황이 복잡해질 텐데요?"

"상관없어, 임마. 이런 곳에 올 놈들이면 대부분 조무래기야."

이곳은 던전들이 밀집되어 있는 지역에서 상당히 동떨어져 있었다.

만수는 솔직히 자신에게 던전을 차지할 기회 따위는 오지 않을 줄 알았다.

그런데 설마 이렇게 지부 앞에 게이트가 생길 줄이야.

"정말 오늘은 운이 좋아. 이대로라면 진급할 수 있을지도...."

지금 그믐달에선 한창 악마와 관련된 것들이 이슈였다.

재능이 있는 플레이어들을 선발해 악마와 계약을 맺거나, 혹은 하수인이 되고 있었다.

그믐달에는 신의 아바타인 플레이어도 상당수 있는 터라, 악마의 등장을 그리 반기지 않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아바타가 아닌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은 악마의 등장을 무척 반길 수밖에 없었다.

만수도 그런 플레이어 중 하나였다.

'기왕 던전 하나 먹은 거, 다른 장소도 노려봐?'

만수는 자신이 제법 실력이 있다고 생각했다.

이런 장소로 밀려난 건, 단순히 정치싸움에서 졌다는 생각이 컸다.

"어라, 여긴 사람이 없을 거라더니."

속으로 즐거운 생각을 떠올리고 있는데, 고운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우리 지부에 여성 플레이어가 있었나?'

그런 기억은 없다.

그믐달에도 여성 플레이어들이 상당수 있었지만, 대부분은 본거지에 있었다.

"네년은 뭐냐? 어떻게 들어왔어?"

"아저씨, 말 좀 곱게 하세요. 전 그냥 들여보내 줘서 들어왔을 뿐이거든요?"

검은 옷을 입은 여성이 화가 난 듯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하지만 험상궂은 남자들만 보던 만수의 입장에선 그저 귀여울 뿐이었다.

"야! 누가 들여보냈어? 여기 오는 녀석들은 다 죽이라고 했잖아!"

"아, 저, 접니다."

"뭐?"

어리숙한 얼굴로 한 남성이 얼굴을 살며시 붉혔다.

"그게, 이렇게 예쁜데 그냥 죽이기는 아깝지 않습니까."

"흐음."

만수는 사내의 말에 여성을 돌아보았다.

확실히 얼굴이 기똥차기는 했다. 연예인이 이렇게 예쁠까 싶을 정도로.

"확실히 아깝긴 하네. 오늘은 역시 운이 좋단 말이야."

"헤헤, 지부장님이 한번 하시면 그다음에 저도...."

"마, 헛물 들이키지 마라."

만수는 껄껄 웃으며 여성을 돌아보았다.

여성의 눈가가 씰룩였다.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무슨 말이긴, 아가씨를 나중에 귀여워해 주겠다는 말이지. 얘들아. 이년을 묶어 놔라. 꼴에 플레이어라 괜히 날뛰면 성가셔진다."

"옙!"

만수의 말에 두 명의 남성이 나와 여성의 팔을 붙잡았다.

"응?"

그런데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두 명의 남자가 끙끙 거리며 팔을 잡아당기건 말건 여성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여성은 눈을 가늘게 좁히며 만수를 바라보았다.

정확히는 만수의 목덜미를.

"아, 그러네요. 저 문신 어디서 봤던 거 같은데."

"봐? 뭘 봐? 그리고 너희는 거기서 뭔 쌩쇼를 하고 있냐? 당장 안 끌고 가?"

"지, 지부장님. 그게... 꼼짝도 하지 않습니다."

"뭔 개소리야?"

여성은 게이트 앞에 모여 있는 남자들을 보았다.

하나같이 몸 어딘가에 문신을 하고 있었다. 달 모양의 문신.

그건 전에 한번 봤던 기억이 있었다. 대전으로 가는 기차를 습격했던 이들 중, 몇 명이 저런 문신을 가지고 있었다.

"한 명."

그렇게 말한 여성은 손가락을 들고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가리키며 수를 세기 시작했다.

게이트 앞 공터에서 여성이 수를 세는 소리가 조용히 울려 퍼졌다.

그 태연한 모습에 만수는 절로 기가 찼다.

"이년 대체 뭐야?! 이걸 확...."

한참 짜증을 부리던 만수는 말을 멈췄다.

뭔가 알 수 없는 서늘함이 몸을 감쌌기 때문이다.

'어.'

만수는 뒤늦게 여성의 얼굴에서 달라진 부분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여성이 세고 있던 숫자는, 이곳에 모여 있는 사람의 수였다.

"서른네 명."

여성은 마지막 한 명, 만수를 검지로 가리키며 웃었다.

"이 정도면 괜찮겠지."

흑진주처럼 까맣던 눈동자가 어느 세 선명한 붉은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 58

058. 던전 점령전(3)

던전 레이스는 아직 초기였지만,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점수 배점이 낮은 던전들은 예상한 대로 숫자로 밀어붙이는 3대 길드가 대다수 가져가고 있었고, 고배점인 던전은 민아가 대활약을 하며 이미 두 개나 차지한 상태였다.

거기다 지수도 5점짜리 던전을 하나 차지해서, 현재 우리 길드는 벌써 25점을 번 상태였다.

덕분에 혹시 있을 일을 대비해서 대기하고 있던 나는 할 일이 없어졌다.

아슬아슬한 플레이를 하고 있는 민아이니 하루 정도는 지켜볼 생각이었지만, 아무래도 걱정은 기우였던 모양이다.

"아우! 아아!"

"그래, 그래."

안고 있는 백설이의 등을 두드려주며 계속해서 까마귀들을 체크했다.

아웃라이징 쪽으로는 루크를 보내뒀지만, 아직까지는 접점이 없었다.

어차피 이쪽은 단순 경계만 하면 되니 별로 신경 쓸 것도 없었다.

'창우 쪽도... 특별히 문제는 없는 것 같고.'

제네시스 쪽은 창우가 맡고 있었지만, 역시 아직은 별다른 일이 없었다.

"아, 아저씨. 저도 백설이 안고 싶어요."

"네가 들기엔 조금 무거울 걸?"

"그런가요...."

유일하게 하는 일이 없는 린이 내 말에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시우는 현재 내가 맡긴 궁기의 가죽과 암야의 외투를 합성하는 중이라 바빴다.

그리고 다른 장비들도 잔뜩 요청해 둔 터라, 백설이를 돌봐주는 건 현재 린이 전담하고 있었다.

나 역시 현재 방어구가 마땅히 없다보니 이렇게 백설이와 놀아주며 던전들을 체크하는 게 전부였다. 애초에 지금은 내가 나설 일도 없었으니까.

'아저씨라는 말은 계속 들어도 적응이 안 되네.'

전생에도 듣던 호칭이라 익숙하지만, 그래도 지금 내 나이는 고작 23살이다.

린의 나이가 13살이니 아저씨라 부르는 것도 이상하진 않았지만 속이 쓰렸다.

"저도 지수 언니처럼 싸우는 법을 알려주시면 안 돼요?"

"왜?"

"아뇨, 저는 전혀 도움이 안 되는 거 같아서...."

린은 손가락을 꼼지락 거리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저번 신자운의 습격 때 가장 충격을 받았던 건 바로 린이었을 테니까.

"아직은 안 돼."

"제가 어려서요?"

"아니."

지금의 린을 단련시키는 건 이르다.

"넌 우선 스스로를 아는 것부터 시작해야 돼."

"저를 아는 거요?"

"그래."

"으음, 전혀 모르겠어요...."

그야 그렇겠지. 하지만 린을 재능만 믿고 섣불리 육성할 필요는 없었다.

아니, 애초에 이 아이는 단련이나 육성과는 거리가 멀다.

그냥 숨쉬고, 우리가 하는 걸 보는 것만으로 강해지니까.

이 아이는 그걸 알아야 한다.

무언가를 위한 노력은 그다음이다.

계속 평범한 사람들 틈에서 자라왔기에, 이 아이는 자신도 평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자신의 재능을 전혀 모르기에 애초에 발현조차 되지 않았다.

아주 가끔, 찰나의 번뜩임만이 남아 재능의 편린을 볼 수 있을 뿐.

"아우, 우우웅~!"

그때, 백설이 고사리 같은 손을 쥐었다 폈다 반복하더니 허공에 커다란 비눗방울을 만들었다.

그 비눗방울은 우울한 얼굴의 린에게 날아가 퐁 터졌다.

비눗방울을 맞은 린은 우울했던 얼굴이 조금씩 편안하게 변했다.

"어? 우와. 뭔가 상쾌해진 기분이에요."

상쾌해졌다고?

나는 안고 있는 백설이를 보았다.

백설이는 그저 헤헤 웃고 있었다.

'마법인가?'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아마 정신을 자극하거나 치유하는 마법인지 린의 표정에는 생기가 돌았다.

본능적으로 린의 기분이 안 좋다는 걸 느끼고 마법을 사용한 모양이다.

'생각해 보니 린만이 아니라, 얘도 평범한 애가 아니네.'

태어난 지 이제 이틀째면서 벌써 마법을 사용하다니.

현재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플레이어가 극소수라는 걸 생각하면 단순히 놀랍다고 표현하기도 힘들었다.

내가 빤히 백설이를 바라보자, 백설이는 코가 간지러운지 킁킁 거리다가 크게 기침했다.

"에, 에에에~~엣취!"

피슝!

백설이의 이마 한 가운데에 달린 외뿔에서 나온 한줄기 빛이 내 볼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것은 내 머리카락 몇 가닥을 베어내며 건물에 작은 구멍을 뚫는 기염을 토했다.

"...."

나는 조심스럽게 백설이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백설이는 뭐가 좋은지 바닥에 내려오자마자 빨빨거리며 기어 다녔다.

린은 가만히 서있는 내 눈치를 조심스럽게 살폈다.

"저, 아저씨? 놀랐어요?"

"안 놀랐어."

그냥 죽는가보다 싶었지.

설마 뿔에서 광선을 쏠 줄이야.

전생에 봤던 기린도 뿔에서 광선은 안 쐈는데.

"빠아~!"

백설이는 뭐가 그렇게 좋은지 나를 향해 연신 손을 흔들었다.

천진난만한 모습이었지만, 나는 조금 옆으로 비켜설 수밖에 없었다.

특별히 광선이 무서워서 쫀 건 아니었다.

정말로.

***

"오늘 나오는 거 맞지?"

"공지에는 그렇게 적혀 있던데."

던전 레이스가 시작된 이후, 오랜만에 사람들이 광화문 광장으로 모여들었다.

광화문 광장에 있는 거대 스크린으로 현재 순위를 발표한다고 공지에 떴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매주 금요일마다 순위가 갱신된다고 하는데, 오늘이 마침 금요일이었다.

던전 레이스가 시작하고 5일만의 일이었다.

"어떤 길드가 1위일 거 같아?"

"당연히 가장 세력이 큰 피안화 아니야?"

"근데 거기는 요즘 던전에 갈 때마다 방해가 들어온다는 소문이 있던데."

"피안화는 무슨 피안화, 당연히 아웃라이징 아냐?"

광장으로 모여든 사람들은 저마다 누가 1위일지 추측하기 바빴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1위로 점치는 길드는 근소한 차이로 아웃라이징이었고, 2위는 피안화. 3위는 역시 제네시스였다.

"오오, 뜬다. 떠!"

약간의 시간이 지나자 광화문 광장에 있는 스크린에서 던전 레이스 순위가 20위부터 순서대로 표시됐다.

순위가 하나하나 발표될 때마다 플레이어들은 일희일비했다.

"아, 우리 길드는 17위네."

"이거 봐! 우리 15위 안에 들었어!"

대부분은 플레이어들의 예상과 크게 빗나가지 않는 순위였다.

중소 길드들은 자신들의 순위에 기뻐하며 과연 10위 안에 들어간 길드들의 순위를 지켜봤다.

이변이 일어난 건, 5위의 이름이 표시된 순간이었다.

==

5위. 피안화 길드

32점.

==

"32점?"

"그 피안화가?"

스크린을 바라보던 플레이어들이 크게 술렁였다.

몇몇 플레이어들은 슬그머니 시선을 돌렸다.

그곳은 피안화 길드원들이 모여 있는 장소였다.

길드장인 이아영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부길드장인 박신일은 연신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변하고 있었다.

"계속 던전이 붕괴되는 사고만 나지 않았어도!"

피안화 길드는 이번 던전 레이스에서 악운이 끼어도 단단히 낀 상태였다.

조금 괜찮아 보이는 던전을 발견해서 들어가려고만 하면 던전이 붕괴되어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놓친 던전이 한두 개가 아닌 터라 박신일의 억울한 것도 당연했다.

"그럼 그 위는 대체 어디야?"

"3대 길드 중 하나가 5위라면...."

짐작 가는 곳이 없었다.

그리고 4위의 이름이 표시됐다.

4위는 바로 그믐달이었다.

"그믐달이라면 납득이 가긴 하는 군."

그믐달에 대한 악명은 플레이어들 사이에서도 알음알음 커지고 있었다.

그래도 다른 대형 길드에 비하면 부족하다는 인식이 있었지만 이번 일로 3대 길드급의 전력을 갖추었다는 걸 보여주고 있었다.

그믐달 다음으로 표시된 3위는 놀랍게도 비어 있었다.

즉, 그 이야기는 2위와 3위의 점수가 동일하다는 거다.

플레이어들은 이어서 발표되는 2위를 주목했다.

아마 이변을 일으킨 주역이 그곳에 표시되리라 생각하며.

==

공동 2위.

제네시스 길드

디어사이드 길드

55점.

==

"디어사이드?"

"거긴 또 어디야?"

제네시스가 2위에 오른 건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라 놀라지 않았다.

문제는 제네시스 아래에 있는 길드였다.

디어사이드.

꽤 많은 길드를 알고 있다는 플레이어들조차 처음 들어보는 길드였다.

마지막으로 아웃라이징 길드가 1위로 스크린에 떠올랐지만, 시선은 여전히 2위인 디어사이드에 쏠려 있었다.

이 수수께끼의 길드야말로 이번 던전 레이스의 폭풍의 핵이었으니까.

***

제네시스 길드장의 집무실.

두 명의 남녀가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여성은 제네시스의 부 길드장인 홍가은.

남성은 제네시스의 길드장인 박성혁이었다.

"예상한 대로 저희가 2위입니다."

"예, 딱 생각한 대로의 순위군요. 첫 1위는 아웃라이징에게 양보해 두는 편이 좋겠죠."

아웃라이징이 1위를 한 건, 가장 적극적으로 던전을 공략한 데다 마땅한 방해자도 없기 때문이다.

제네시스가 마음만 먹는다면 아웃라이징을 앞지르는 것도 가능했지만,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았다.

괜히 처음부터 그랬다가 아웃라이징 길드에게서 견제가 들어오면 귀찮아지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점수는 유지했으니, 다음 주에 크게 점수를 벌리도록 해야겠습니다. 방해를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할 정도로."

표면적으로는 협력하는 입장이니 점수를 크게 벌린다고 해도 갑자기 공격을 해오거나 하지는 못할 거다.

'아웃라이징이나, 피안화나 던전의 배점 방식을 모르는 것 같으니.'

탁자에는 서울시를 나타낸 지도가 있었다.

지도에는 현재까지 나타난 던전의 위치와, 그것을 선으로 연결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별자리라.'

뭔가 의미심장한 힌트다.

앞으로 별자리에 관련된 뭔가가 일어난다는 징조인가?

"그런데 길드장님."

"예, 말씀하세요."

"저희와 공동 2위를 한 디어사이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흠."

박성혁의 눈이 가늘게 좁혀졌다.

그렇지 않아도 어디서 솟아났는지 모를 그 길드 때문에 골머리를 썩는 중이었다.

"신께 계시를 부탁드려봤지만, 신님도 모르시는 모양입니다. 아주 은밀히 활동하고 있는 것 같더군요."

어쩌면 제대로 답변하기 힘든 내용이었을 수도 있다.

게임의 규칙상, 다른 신과 관련된 이야기는 함부로 말할 수 없으니까.

그래도 보통 자신보다 급이 낮은 신에 관련되면 멋대로 말해도 큰 일은 생기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건, 상대가 최소 자신과 비슷한 급이라는 이야기.

박성혁의 신은 법의 신 티르.

상위신인 그가 쉽게 말하지 못하는 존재라면, 디어사이드에도 상위신의 아바타가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문제는 대체 어떤 던전을 점령하고 점수를 얻었냐는 건데.'

이미 제네시스의 정보망으로 배점이 높은 던전을 차지한 길드들은 모두 체크하고 있었다.

그중 디아사이드가 점령했을 법한 던전은 없었다.

55점이나 되는 점수를 얻으려면 1점이나 3점으로는 무리다.

평범한 길드로 위장하고 점수를 번 건가? 아니, 그럴 리는 없다.

'그렇다면 남은 건, 이 무너진 던전들뿐이야.'

별의 위치를 생각하면 황도 12궁에 위치한 던전이다.

그중 무너진 던전은 가장 빛나는 별의 위치.

이게 우연일 리가 없었다.

"추측이지만, 피안화 길드가 노리던 이 던전들을 디어사이드가 차지한 모양입니다."

"아! 확실히 10점짜리 던전이 네 개군요."

"나머지 점수는 적당히 5점이나 3점짜리 던전 몇 개만 점령하면 채울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대충 자신들과 비슷한 점수가 된다.

'이자들도 별자리의 위치가 배점과 관련이 있다는 걸 알고 있다는 건가.'

그렇다면 곤란했다.

만약 이들이 다른 길드에게 해당 정보를 팔아넘긴다면 앞으로의 경쟁이 힘들어질 게 뻔했다.

'앞으로 디어사이드의 움직임에 주목해야겠어.'

분명 배점이 높은 던전을 노리고 움직일 테니 추적하는 건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미리 진을 치고 있다가 습격을 한다면, 그들도 어떻게 할 수는 없겠지.

그렇게 결론을 내린 뒤, 정면을 보자 어쩐지 자신의 눈치를 살피는 홍가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건 홍가은이 궁금한 것이 있을 때 표현하는 작은 신호였다.

박성혁과 다르게 홍가은은 머리 쓰는 일에 몹시 취약했기 때문이다.

"궁금한 것이 있습니까? 가은 씨."

"...부끄럽지만 그렇습니다.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어서요."

"예. 뭐가 이해할 수 없죠?"

"만약 던전을 무너트린 게 디어사이드라면, 던전을 각인시키고 어떻게 빠져나온 걸까요? 보아하니 완전히 돌무더기로 매몰된 모양이던데."

"그건...."

박성혁은 진지하게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모릅니다."

"네?"

"그걸 제가 어떻게 압니까."

"그, 그건 그렇죠."

제네시스의 두뇌라고 불리는 길드장 박성혁.

법의 신 티르의 아바타인 그라도 모르는 건 모르는 거였다.

# 59

059. 숨겨진 폭탄(1)

"슬슬 제네시스에서 우리와 접촉하려고 하겠군요."

순위 발표는 역시 예상대로였다.

1위는 아웃라이징. 우리는 제네시스와 공동 2위.

아마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은 디어사이드가 누군지 열띤 토론을 하고 있을 거다.

"제네시스에서 먼저 말입니까?"

"예, 아마 제네시스는 던전의 배점을 나누는 기준... 별자리에 관한 정보를 자신들만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런데 우리가 대놓고 배점이 높은 던전만 가져가니 모르고 싶어도 알 수밖에 없었겠지.

'물론, 아직은 만날 생각은 없지만.'

그렇다고 무시할 생각은 없었다.

도리어 제네시스는 필히 만나야 하는 상대였다.

왜냐면 그들이 이번 퀘스트의 '폭탄'을 건드리게 되니까.

"근데 세한 씨."

"예?"

"정말 저로 괜찮습니까."

창우는 진지한 얼굴로 나를 보았다.

눈이 보이지 않는 그였지만, 강렬한 시선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예, 괜찮습니다."

"그래도 더 나은 사람이 있을지 모르는데...."

"창우 씨보다 나은 사람은 별로 없고, 있다고 해도 이미 아바타일 겁니다."

창우는 영 부담스러워하는 눈치였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내가 창우를 두 번째 파티원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당연히 파티원으로 얻을 있는 이득 또한 모두 들은 터라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만큼 파티원이 됐을 때 얻는 이득은 어마무시하니까.

'지수도 이제 어느 정도 성장했으니, 한 명 더 받아도 괜찮겠지.'

거기다 내가 파티원에게 분배하는 포인트는 지수와 창우가 나눠가져도 충분했다.

심안 스킬에 뛰어난 검술을 지닌 창우라면, 분명 포텐셜을 터트릴 수 있으리라.

또한 내가 창우의 심안을 얻으며 공유한 스킬은 '결전의 시간'이었다.

섬세한 검술과 심안을 이용해 정확한 공격을 가할 수 있는 창우에겐 잘 맞을 스킬이었다.

"그보다 어서 움직이죠. 이번 주도 놀고 있으면 민아가 투덜거릴 겁니다."

"예."

창우도 툴툴 거리던 민아의 모습이 떠올랐는지 피식 웃었다.

이번 메인 퀘스트의 1등 공신은 단연 민아다.

지금도 배점이 높은 던전들을 홀로 각인시키며 막대한 점수를 벌어들이고 있었다.

다른 길드들은 그런 민아의 움직임을 막기 위해 던전 경계인원을 훨씬 늘렸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각종 벌레나 동물로 변신하는 민아를 대체 무슨 수로 잡겠는가.

상대가 변신 능력자인 걸 알지 못하는 이상, 민아를 잡는다는 건 요원한 일이었다.

'지수도 얌전히 있는 것 같으니 다행이군.'

지수는 처음에 내가 지정해 줬던 장소 인근의 던전을 점령하며 차근차근 행동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혼자 다니는 터라 던전 점령을 많이 못했지만, 개인 무력이 강한 터라 적당히 작은 던전을 홀로 각인시키고 있었다.

루크의 경우엔 최대한 아웃라이징 길드가 활동하는 지역을 돌아다니며 그들은 견제하고 있었다.

특별히 던전을 점령할 필요도 없었다.

그저 그들이 디어사이드에 대한 경계심만을 높여주기만 하면 됐으니까.

'근처에 수수께끼의 누군가가 길드를 감시한다.'라는 느낌을 주는 것으로 충분했다.

루크는 전직 군인 출신인 만큼 이런 일에는 아주 적임이었다.

"근데 의외네요. 전 세한 씨라면 바로 10점짜리 던전을 노릴 줄 알았는데. 5점짜리 던전이라니."

"배점이 높은 던전은 지금 한창 제네시스가 경계를 하고 있으니까요."

반면 5~6점 정도의 적당히 점수가 높은 던전은 상대적으로 경계가 약해졌다.

움직일 수 있는 인원은 한정되어 있으니 당연하다.

"거기다 점수가 낮다고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점수가 높은 던전은 깊이가 깊고, 몬스터가 하나하나 강했다.

덕분에 공략에도 상당한 시간을 투자해야만 했다.

민아처럼 몬스터를 스킵하고 지나갈 수 있지 않는 이상, 던전 공략에 여러모로 에로사항이 꽃핀다는 거지.

반면 점수가 낮은 던전은 길이가 짧고 등장하는 몬스터도 그다지 강하지 않다.

대부분이 군체를 이뤄 우르르 몰려드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몬스터마다 얻을 수 있는 포인트는 얼마 차이 안 나거든요."

왜냐면 포인트의 양은 몬스터의 등급으로 나뉘게 되기 때문.

보스 몬스터가 아닌 이상, 이 시기에 생기는 몬스터들은 등급이 대다수 같았고 그 말은 얻을 수 있는 포인트도 비슷하다는 거다.

배점이 높은 던전과 그렇지 않은 던전의 차이는 얻을 수 있는 소재나 장비가 귀하냐 귀하지 않느냐의 차이.

확실히 배점이 높은 던전에서 얻을 수 있는 보상은 어마어마하지만, 등장 몬스터의 수가 그리 많지 않은 탓에 얻을 수 있는 포인트는 적었다.

하지만 플레이어의 능력치를 올리는 건 근본적으로 포인트였다.

포인트는 많으면 많을수록 플레이어를 강하게 만든다.

장비는 어디까지나 그다음.

"창우 씨."

"예?"

"칼 집어넣으셔도 됩니다. 이 던전은 그냥 따라오시기만 하면 되니까요."

"예? 그게 무슨 말입니까?"

나는 몸을 풀며 외투에 붙은 먼지를 털어냈다.

이번에 시우가 새로 만들어준 외투다. 궁기의 가죽과 암야의 외투를 합성해서 만든 무려 A급 장비. 현존하는 장비 중에 이것보다 등급이 높은 아이템은 없을 거다.

"지금부터 제가 쩔을 해드릴 생각이거든요."

"쩔?"

"다른 말로는 버스를 태운다는 말이죠."

게임 용어를 잘 모르는 창우는 아리송한 표정이었다.

이번 퀘스트는 나에게도 꽤 기억에 남은 퀘스트다.

왜냐면 전생에 뒤쳐져 있던 내가 다른 플레이어들을 따라잡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줬던 퀘스트니까.

"갑니다."

서울 전역에 퍼져 있는 꿀단지 같은 던전들.

그것들을 모두 털어버릴 때가 왔다.

***

던전 레이스 2주차.

광화문 광장의 스크린을 수많은 플레이어가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은 스크린을 보며 서로 자신의 눈을 의심하고 있었다.

'제네시스가 2위, 아웃라이징이 3위?'

피안화는 여전히 5위였다. 그믐달도 4위.

그렇다면 1위는?

"디어사이드가 대체 뭐하는 놈들이야?"

한 남자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주변에 있던 플레이어들도 그의 말에 깊이 공감했다.

대체 어떻게 하면 저런 점수를 얻을 수 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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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위 디어사이드 143점

2위 제네시스 112점

3위 아웃라이징 101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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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위인 제네시스와 무려 30점이 넘게 차이 났다.

반면 1위였던 아웃라이징은 상대적으로 뒤떨어졌다.

제네시스와도 무려 10점차가 나고 있었다.

"1주차에는 분명 아웃라이징과 20점이 넘게 차이나지 않았나?"

1주차에는 아웃라이징이 독보적이었다.

그런데 단 일주일 사이에 뒤집힌 것이다. 그것도 압도적인 차이로.

당연히 뒤집어진 건 플레이어뿐이 아니었다.

3대 길드는 지금 디어사이드라는 이들이 대체 누구인지 정보를 모으기 급급했다.

문제는 아무리 털어도 제대로 된 정보가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이씨, 계속 우리가 먹으려는 던전 털어먹는 게 걔네 맞지?"

피안화의 길드장인 이아영은 언제나 고아한 분위기를 풍기던 그녀답지 않게 날카로웠다.

책상을 손바닥으로 두드리며, 기분이 상한 티를 팍팍 내고 있었다.

"아마 맞을 겁니다. 다른 건 잘 몰라도 그건 디어사이드가 확실해요."

"와, 짜증나네. 보이기만 해봐. 진짜."

"안 보이니까 문제 아닙니까."

디어사이드가 공략한 던전으로 추측되는 장소가 몇 개 있었다.

누가 공략한지 모를 3~7점 사이의 던전들.

문제는 워낙 빠르게 공략당한데다 그쪽에 전혀 신경을 쓰지 못한 탓에 목격자가 없다는 점이다.

'마치 우리가 지켜보고 있다는 걸 안다는 것처럼.'

박성혁은 알지 못했다.

서울 곳곳에 퍼져 있는 까마귀들을 통해 3대 길드의 움직임은 전부 파악되고 있다는 걸.

"우리 쪽도 그놈들이 성가시긴 마찬가지야. 수상한 놈 하나가 우리 주변에서 맴돌고 있다고 하더군. 문제는 보통 놈이 아닌지 제대로 확인도 못했어."

"분명 디어사이드인 것 같군요. 다른 길드의 정보를 모으고 있는지도 모르니 최대한 조심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러지. 근데 너희에게도 하나 묻고 싶은 게 있다."

"...뭡니까?"

아웃라이징이 강태성은 박성혁을 강하게 노려보며 탁자를 주먹으로 두드렸다.

"디어사이드는 디어사이드. 솔직히 너희는 뭐냐? 어떻게 그렇게 치고 올라왔어?"

그는 디어사이드에게 자리를 뺐긴 것만큼이나 제네시스에게 역전당한 게 마음에 걸린 것 같았다.

박성혁은 어깨를 으쓱하며 태연히 답했다.

"운이 좋았습니다. 던전을 공략하는 곳마다 배점이 높은 곳이더군요."

"그 말을 믿으라는 거냐?"

"지금 그런 것보다 디어사이드의 독주를 막아야 합니다. 이대로라면 3대 길드의 위신이 바닥에 떨어질 테니까요."

"그런 거라니, 이 새끼...."

박성혁의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확실히 지금 플레이어들은 디어사이드에게 1위 자리를 빼앗긴 3대 길드의 힘을 의심하고 있었다. 가뜩이나 분쟁이 많은 강북에 거점을 둔 아웃라이징은 생각이 복잡해질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 퀘스트 기간은 2주 남았습니다. 말하자면 바로잡으려면 지금밖에 없다는 거죠."

"그래서 어떻게 하자는 거야?"

"우선 던전 공략을 멈추고, 디어사이드가 누구인지 파악하는 게 먼저입니다. 점수가 높고 낮음과 상관없이 길드원들을 풀어 대기시키는 거죠."

"그렇게 입구를 지켰음에도 털린 던전들이 있지 않았나?"

"그건 그렇습니다. 하지만 배점이 낮은 던전들은 아예 신경도 쓰지 않았죠. 하지만 이번에 오른 점수를 보면 4~8점 사이의 던전을 상당수 노린 것으로 나옵니다."

"흐음."

확실히 현재로서 다른 방법은 없었다.

이번 퀘스트만이 아니라 앞으로의 일을 생각해서라도 디어사이드의 존재는 확실히 알아둘 필요가 있었다.

반드시 던전을 공략해야 되는 지금이 아니면 디어사이드를 확인할 기회가 없을지도 몰랐으니까.

"좋다. 아웃라이징은 당분간 공략을 멈추도록 하지."

"우리도 마찬가지야. 던전 공략보다는 그 망할 것들의 얼굴을 보고 싶어."

"저도 약속하겠습니다."

3명의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이번만큼은 서로 한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

강서구 어느 건물 위.

나는 까마귀들의 시야로 주변을 관찰했다.

'경계가 삼엄해졌어.'

던전이나, 던전이 생길 게이트 주변에 많은 플레이어들이 서 있었다.

아마 디어사이드 길드원을 견제하기 위한 조치인 것 같았다.

"던전 공략보다 우리를 찾아내겠다는 건가."

이정도 수의 플레이어들을 게이트 주변에 배치했다면, 사실상 던전 공략을 포기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공략에 필요한 플레이어의 수가 부족할 테니까.

'그럼 그 성의를 봐서 한번 만나줘야겠지.'

이제 3주차에 돌입한다.

전생과는 이미 순위가 많이 달라진 상태였다.

본래 1위여야 할 제네시스가 2위. 2위여야 할 피안화는 5위였다.

그리고 더 씬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그믐달이라는 길드가 차지하고 있었다.

'여기까지는 계획대로....'

역시 1위를 차지하니 길드들도 위협을 느낀 모양이다.

민아에게도 더 이상 던전 공략을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해둔 상태다.

우선 지금은 우리도 발을 멈출 때였다.

괜히 여기서 공략된 던전이 나타나면, 3대 길드끼리 의심이 싹트게 될 테니까.

3대 길드끼리 무의미한 싸움을 벌이는 건 내가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

'제네시스의 본거지에 가는 건 처음인가?'

나는 가볍게 건물 위에서 뛰어내렸다.

목표는 눈앞에 보이는 커다란 빌딩.

바로 제네시스의 본거지였다.

주변을 지키는 플레이어의 숫자도 꽤 되었지만, 내게는 하등 문제가 되지 않았다.

'역시 길드 하우스는 아니군.'

안전지대로 설정했다고 해도 숨어들어오는 플레이어를 막을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여러 방법장치를 포인트로 설치할 수 있었다.

디어사이드 길드하우스의 경우에는 내가 대략 5천 포인트를 넘게 투자한 탓에, 설령 나라고 할지라도 숨어들어갈 수 없을 정도였다.

"근데 길드장이 있는 방이 어디야?"

길드하우스는 아니지만 건물은 컸다.

제네시스가 빌딩 하나를 통째로 점거한 탓에 그냥 돌아다녀선 절대로 못 찾을 것만 같았다.

나는 방법을 바꾸기로 했다.

내가 모른다면, 아는 사람에게 부탁하면 된다.

'한 명만 와라.'

어둠속에 녹아들어, 복도에서 지나가는 사람이 오기를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젊은 여성 하나가 다가왔다.

'딱 좋군.'

그림자 질주를 사용해 여성의 뒤로 이동했다.

"실례...."

쉬익! 캉!

말이 끝나기도 전에 검이 날아왔다.

창우 못지않은 날카로운 검격이었다.

결코 평범한 플레이어의 실력이 아니었다.

"누구냐!"

공격을 가한 뒤, 매끄럽게 간격을 벌리는 여성은 나도 익히 아는 얼굴이었다.

상대는 나를 모르겠지만.

"처음 보는 얼굴이군. 정체를 밝혀라!"

'마침 또 홍가은이 걸릴 줄이야.'

운이 좋다고 할지, 나쁘다고 할지.

제네시스의 부길드장인 홍가은은 뛰어난 실력과 유도리 없는 성격으로 유명했다.

"나는...."

"아니, 숨어든 도둑놈에게 정체를 물을 필요도 없겠군. 죽어라!"

좀 말 좀 들어라.

문답무용으로 덤벼드는 홍가은의 모습에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그녀를 마주친 순간부터 이렇게 되리라 생각했으니까.

# 60

060. 숨겨진 폭탄(2)

홍가은이라는 여성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검사'다.

단순히 직업적인 의미라기보단, 고전설화에서나 나올 법한 검객이라고 할 수 있다.

융통성 없고, 상관을 향한 충성심이 높으며 하루하루 단련을 즐거움으로 삼는.

조선시대에 태어났으면 무인이 됐을 여자.

좋게 말하면 그렇지만, 돌려 말하면 이보다 이상한 사람도 없다.

'대체 왜 이런 여자가 현대에 있는 거지?'

이 세계가 게임이 되기 전에는 대체 뭐하고 살았는지 궁금하다.

여기가 무슨 오지산골도 아니고,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인데.

"받아라!"

쉬익!

어쨌든 실력 하나만은 확실하다.

심안을 가진 창우와 거의 동급이거나 이상.

제네시스의 길드 마스터인 박성혁은 그다지 강하다고는 말할 수 없는 플레이어였지만, 홍가은은 확실히 강했다.

"단순한, 쭉정이는 아니구나!"

대사 선정도 이상했다.

분명 평범한 서울말을 쓰는데 간간히 사극에서나 나올 법한 단어가 끼어 있었다.

뭐 그건 그거고.

"사람이 말을 하면 좀 들어라."

나는 가볍게 손등을 아래로 굽혔다. 그러자 길쭉한 칼날이 튀어나왔다.

이번에 시우에게 부탁해서 만든 새로운 장비다.

팔뚝에 차는 견갑에 칼날을 수납한 물건인데, 견갑에 가변형 오리하르콘을 넣어둔 터라, 언제든 손에 쥔 무기에 오리하르콘을 코팅하는 게 가능했다.

그리고 지금처럼 튀어나온 칼날에도 오리하르콘으로 코팅하는 게 가능했다.

나는 손을 들고 가은의 검을 가볍게 튕겨냈다.

"흥!"

하지만 튕겨나가기 무섭게 가은의 검이 직각으로 꺾이며 목을 노리고 날아왔다.

아마 스킬을 사용한 모양인지, 방금 전보다 훨씬 강맹한 위력이었다.

카앙!

가은의 검이 부러지며 허공에서 빙글빙글 날며 떨어졌다.

"검이...?"

가은의 얼굴에 당혹감이 어렸다.

설마 이렇게 간단히 검이 부러질 거라 생각하지 못한 모양이다.

"그럼 이제 대화를."

이번에도 말을 다하기도 전에 가은은 자신의 벨트를 쭉 잡아당겨 휘둘렀다.

'연검?!'

볼을 스쳐 지나가는 공격에 이번엔 나도 흠칫할 수밖에 없었다.

설마 허리에 착용하고 있던 벨트가 연검이었을 줄이야.

연검을 다루는 상대를 만난 건 솔직히 처음이었다.

뱀처럼 휘어지는 연검의 공격을 회피한 뒤, 칼의 면을 밟아 그대로 지면에 꽂아 넣었다.

"큭!"

지면에 박힌 검을 당겨 회수하려고 했지만, 내가 발로 꽉 누르고 있는 탓에 뺄 수 없자, 가은은 미련 없이 손을 놓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치마 아래에 숨겨두었던 두 자루의 숏소드를 꺼내들고 달려들었다.

왜 치마를 입고 있나 싶었는데, 검을 숨기기 위함이었던 모양이다.

'아니, 대체 몇 자루나 검을 가지고 있는 거야?'

그나마 무기의 질이 좋지 않아, 속수무책으로 부러져나갔다.

내가 가은을 제압한 건, 그 뒤로 일곱 자루의 검을 다 부러트린 후였다.

"큭, 죽여라."

이제야 모든 무기를 다 사용했는지, 가은이 분한 얼굴로 무릎을 꿇었다.

내 생에 이렇게 질긴 상대는 처음이었다.

인간의 몸에 검을 숨길 수 있는 장소가 이렇게 많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나는 대화를 하러 왔다."

"쥐새끼 따위와 대화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아니, 너 말고 다른 사람이랑 대화하고 싶다고. 제네시스의 길드장 말이야."

제네시스의 길드장을 말하자, 가은의 눈에 재차 살기가 감돌았다.

내버려뒀다간 또 몸 어디선가 검을 끄집어내서 달려들 기세였다.

"나는 디어사이드 소속의 길드원이다."

"...뭐?"

"두 번 말하게 하지 마. 나는 디어사이드 소속의 길드원이다. 너희 길드장과 대화를 하러 왔다."

"그 말이 사실인가?"

"그래."

혹여나 그 말을 어떻게 믿냐고 따지지 않을까 싶었는데 예상외로 시원하게 믿어버렸다.

나야 편하긴 하지만, 얘 이래도 괜찮나.

"좋다, 디어사이드 소속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홍가은은 부서진 검들을 주섬주섬 챙긴 후, 따라오라는 듯 손짓했다.

방금 죽일 듯 노려봤던 사람치곤 시원스런 안내였다.

박성혁의 집무실은 건물 7층에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한창 지도를 바라보고 있던 그의 시선이 우리에게 날아와서 꽂혔다.

"가은 씨. 뒤에 있는 사람은 누구죠?"

"디어사이드 소속의 길드원이라고 합니다."

"예? 그 말이 사실입니까?"

"네. 본인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가은은 시원스럽게 대답했다.

반대로 박성혁이 눈가는 찡그려졌다.

대체 뭘 믿고 나를 여기까지 안내했냐고 질책하고 싶은 눈빛이었다.

문제는 시선을 받은 당사자는 질책하는 시선이라는 걸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능력치를 무력에 올인한 삼국지 장수를 보는 것 같군....'

박성혁의 시선에도 그저 고개를 갸웃할 뿐인 홍가은을 보면 아무래도 전생의 소문이 사실이었던 모양이다.

머리가 가장 청순한 플레이어를 꼽자면 단연 제네시스의 홍가은이라고.

"잠깐."

그래도 나름 여기까지 안내해준 성의가 있으니 여기서는 조금 도와주기로 했다.

"나는 정말로 디어사이드 소속의 길드원이 맞다."

"그걸 어떻게 믿습니까?"

"별자리."

박성혁의 눈이 커졌다.

별자리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박성혁이 더 잘 알 것이다.

"그것을 안다면 이야기가 달라지죠. 이쪽으로 오셔서 앉으시면 됩니다."

현재 던전이 별자리의 형태로 생긴다는 건 제네시스와 디어사이드만이 아는 사실이었다.

오직 두 길드, 그것도 제네시스에서는 박성혁과 홍가은만이 아는 사실이었으니 내가 알고 있다는 건 간접적으로 디아사이드임을 밝히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가은 씨."

"예, 길드장님."

"...고생했습니다. 돌아가서 쉬도록 하세요."

"아뇨, 저도 함께 있겠습니다."

"괜찮습니다. 돌아가세요."

단호한 박성혁의 말에 홍가은은 조금 상처받은 얼굴로 어깨를 늘어트렸다.

"알겠습니다.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불러주세요."

그녀는 쓸쓸하게 등을 돌리며 조용히 문을 닫고 나갔다.

"고생이 많군."

나는 진심을 담아 그렇게 말했다.

"그래도 유능한 부길드장입니다. ...조금 모르는 것이 많긴 하지만요."

모르는 것이 많다기 보단 눈치가 없고 생각이 없는 것 같지만 넘어가도록 하자.

"아무튼 이곳에 온 건 무슨 일 때문인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애초에 먼저 우리를 부른 건 그쪽이겠지."

"그건, 부정할 수 없군요."

박성혁은 탁자 위에 놓여있는 차를 한 모금 마시며 말을 이었다.

"별자리를 언급하신 것으로 보아, 역시 알고 계셨던 거군요."

"당연한 말을."

보통 나는 상대에 맞춰 존대를 하는 편이었지만, 지금은 굳이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최대한 강한 모습을 보여줘야 무시받지 않을 테니까.

특히 앞으로 할 요구를 위해선 좀 더 강압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었다.

"그렇다면 오늘 이곳에 온 건, 던전 통제를 풀기 위해서라고 생각해도 되겠죠?"

"아니."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통제는 계속하는 게 좋다. 나와 접촉한 건 다른 길드에겐 발설하지 마라. 허튼 짓을 할 수도 있으니까."

"예?"

박성혁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그야 던전을 각인 시켜야 점수를 얻을 수 있는 퀘스트에서 계속 통제를 하라고 하니 이상할 수밖에.

"...이유를 물어도 되겠습니까?"

"묻지 않아도 말할 생각이었다."

나는 탁자 위에 놓여있는 지도를 보았다.

그곳에는 디어사이드 길드에 있는 지도와 같이 던전의 위치가 하나하나 표시되어 있었다.

"현재 서울에 있는 던전 중에, 이곳과 이곳."

나는 손가락을 들어 두 개의 던전을 가리켰다.

"그리고 이 근처에 생길 16개의 던전만큼은 절대 들어가지 마라."

"마치 들어가면 무슨 일이라도 생길 것처럼 말하는 군요."

"생기고 말고."

나는 아직 지도에 표시되지 않은 별의 흔적을 따라 손가락을 쓸었다.

그 모양은 황도 12궁 중 하나. '전갈 자리'였다.

"거지같은 새끼들이 여기에 폭탄을 숨겨놨거든."

황도 12궁 중 제8궁.

가장 포악하기로 유명한 전갈 자리의 파편이 그곳에 숨어 있었다.

문제는, 그게 어디에 있는지 나도 모른다는 점이다.

***

그건 전생에 내가 겪었던 사건 중, 가장 지옥 같았던 일 중 하나였다.

처음 시작이 어디였는지는 모른다.

알 수도 없다.

왜냐면 전부 죽어버렸기 때문이다.

사건은 천갈궁(전갈자리)의 던전이 생기면서 부터였다.

다른 던전처럼 별생각 없이 던전을 공략하러 들어갔던 어떤 길드가 던전 내에 있던 괴물을 깨우며 악몽이 시작됐다.

누군가가 던전에 작은 장난을 쳐둔 탓이다.

GM은 아니다. 아마 퍼블리셔 측에서 신들에게 재미를 주기 위해 작은 조미료를 뿌린 게 분명했다. GM은 이정도로 일을 크게 벌이면 감봉 정도로 끝나지 않으니까.

한국에서 가장 플레이어가 많은 서울 지역에서만 그런 짓을 저질렀던 걸 생각하면, 한국이 아닌 다른 서버를 이용하는 신의 사주로 발생한 사건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퍼블리셔는 던전 중 하나에 전갈자리의 힘이 담긴 파편을 각인석 대신 놔뒀다.

당연히 평범한 각인석이라 생각한 플레이어는 각인석에게 마력을 불어넣었고.

플레이어의 마력에 자극을 받은 파편은 주변의 마력과 플레이어들의 마력을 흡수한 뒤, 완벽히 부화했다.

부화한 전갈은 그 자리에 있던 플레이어들을 모조리 죽이고 던전 밖으로 뛰쳐나왔다.

그것이 바로 비극의 시작이었다.

전갈자리 본인은 아니었지만, 그 파편조차 당시의 플레이어들은 감당할 수 없었다.

게다가 깨어난 전갈은 하나가 아니었다.

무려 두 마리였다.

두 마리의 전갈이 서울의 3분의 1을 박살내는 데 걸린 시간을 불과 일주일.

간신히 쓰러트릴 수는 있었지만, 그 전투로 아웃라이징은 궤멸적인 타격을 입었고 피안화와 제네시스도 한동안 몸을 사려야 했다.

이 사건으로 서울에 있던 플레이어들은 한동안 공포에 떨어야만 했고, 그만큼 성장도 더뎌졌다.

그렇게 굴려진 스노우볼은 다음 퀘스트에서도 그 영향을 나타냈고, 지속적으로 플레이어들을 괴롭혔다.

가장 많은 플레이어가 모여 있던 서울 지역에 이런 피해가 생긴 탓에, 한국은 다른 지역에 비해 플레이어의 수가 항상 부족했다.

그러니 이 사건만큼은 반드시 막아내야만 했다.

'전갈 자리를 나타내는 별의 숫자는 열여덟 개.'

그렇다보니 생긴 던전도 총 18개였다.

이중 2곳에 폭탄이 숨겨져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처음 생긴 두 개의 던전은 안전하다는 점이다.

사건은 이후에 생긴 16개의 던전 중 두 곳에서 발생했다.

'혹시 시스템이 바꿔 버렸을까봐 처음 생긴 던전 두 개도 계속 감시하고 있었지만.'

다행히 그 두 곳도 통제가 시작된 이후 생긴 던전인지라 들어간 플레이어는 없었다.

이제 남은 16곳만 조심하면 됐다.

그렇다고 가만히 내버려 둘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내버려 두면 그것들이 밖으로 튀어나와 도시를 쑥대밭으로 만들 테니까.

그것들은 마력을 흡수해서 부화한다.

전갈자리 안타레스의 알이니까.

그래서 전생에는 각인을 세기기 위해 플레이어가 마력을 불어넣어서 깨어나 버린 거다.

내버려 두면 괜찮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던전 안은 마력으로 가득 들어차 있다.

알은 애초에 계속 마력을 숨 쉬듯 흡수하고 있었다.

마력을 불어넣는 행위는 단순한 도화선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니 녀석이 깨어나기 전에 알을 파괴시키면 되지만....

'게임의 내용이 달라진 만큼, 추가적인 조치가 있을 확률이 높아.'

제발 그러지 않기를 바라지만, 그럴 확률이 높았다.

"...폭탄, 말입니까?"

박성혁은 내 말이 무슨 뜻인지 고민하는 눈치였다.

단순히 비유적인 표현인지, 아니면 정말로 폭탄이 있다는 말인지.

"설명은 할 수 없지만 천갈궁(天蠍宮)의 위치에 생기는 던전에는 서울을 피바다로 만들 수 있는 게 존재한다."

"그걸 믿으라는 겁니까?"

"못 믿겠다면 직접 보여줄 수도 있다."

앞으로 생길 던전을 수색하다보면 금방 발견할 수 있을 거다.

다른 녀석들이면 몰라도 나는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으니까.

"내가 지닌 스킬의 효과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 증거는?"

진지한 얼굴로 묻는 박성혁에게 나는 지도 한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틀 뒤 이곳에서 새로운 던전이 생기게 된다. 배점은 7점이지만 먹어두는 게 좋아."

"왜죠?"

"미스릴 광맥이 있기 때문이지."

미스릴은 현재 구할 수 있는 금속 중 가장 대단한 금속이다.

B급 소재이니 일반적인 경로로는 입수조차 할 수 없는 것.

당연히 박성혁의 눈이 휘둥그레 떠졌다.

"그 말이 사실입니까?"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은 던전을 서로 차지 않기로 합의한 참이라...."

"각인만 하지 않으면 되는 일이지. 미스릴 광맥이 있는지는 눈으로 확인만 해도 충분할 텐데?"

느긋한 내말에 박성혁의 머리가 느릿하게 끄덕여졌다.

"알겠습니다. 그럼 이틀 후, 정말로 미스릴 광맥이 나온다면 당신의 말을 믿도록 하죠."

"그래,"

나는 짤막하게 대답하며 영 못 믿는 눈치인 박성혁을 보았다.

사람을 너무 쉽게 믿어 문제던 홍가은과는 극과 극이었다.

'어차피 이틀 후면 믿을 수밖에 없겠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박성혁의 집무실에서 나왔다.

더 이상 나눌 대화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틀 후, 하나의 쪽지가 도착했다.

발신인은 당연히 박성혁이었다.

# 61

061. 숨겨진 폭탄(3)

"솔직히 반신반의했습니다."

이미 한번 왔던 제네시스 길드장의 집무실.

박성혁은 세한을 보자마자 그렇게 말했다.

그는 여전히 세한을 살피고 있었지만, 전보다는 경계가 한결 풀어져 있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미스릴 광맥이 정말로 있었기 때문이다.

'대체 그런 걸 어떻게 안 거지?'

박성혁은 눈앞에 있는 사내를 조심스럽게 살폈다.

상대는 검은색 두건과 목도리로 얼굴을 숨기고 있었다.

유일하게 보이는 건 눈이었지만, 그것도 두건의 그늘에 가려 뚜렷하게 볼 수 없었다.

'디어사이드 길드에서는 어느 위치에 있는 걸까.'

단순히 말단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길드의 말단이 제네시스의 검이라 불리는 홍가은을 압도하는 실력을 가졌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사실 그렇게 믿고 싶은 마음이 컸다.

"이해한다."

"그렇게 말해준다면야 감사하군요."

딱딱한 어조로 말하는 그의 모습에 박성혁은 내심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혹시나 미스릴 광맥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지는 않을까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른 금속도 아니라 무려 미스릴이다.

현재까지 미스릴이 발견된 사례는 없지는 않지만 극히 드물었다.

주로 퀘스트 보상이나, 아주 희귀한 던전에서나 소량으로 간혹 볼 수 있는 것이지 '광맥'은 여태 등장한 적이 없었다.

'그런 미스릴은 흔쾌히 내어줬다는 건, 그 이상의 것을 가지고 있다는 건가?'

미스릴 이상의 금속은 아직 등장하지 않았다.

그에 준하는 금속은 기껏해야 백련정강(百鍊精鋼)정도.

혹시나 상대가 미스릴의 가치를 잘 몰라서 양보했다는 생각도 했지만 고개를 흔들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게 던전의 생성이 별자리와 관련이 있다는 것도 아는 길드였다.

그리고 제네시스의 본거지에도 서슴없이 침입해 홍가은을 제압할 실력을 가진 플레이어가 있는 길드가 미스릴의 가치를 모를 리 없었다.

'그러고 보니 가은 씨의 모두 무기가 부러졌다고 했었지.'

현재 제네시스는 전력으로 무기를 제작할 수 있는 대장장이 플레이어를 육성 중이었다.

홍가은이 들고 있는 무기는 대다수 그 시험작.

그렇다 해도 상점에서 구할 수 있는 장비보다는 훨씬 질이 좋았다.

그런 장비를 수수깡처럼 부러트렸다는 건 던전에서 대단한 장비를 건졌거나, 미스릴과 같은 금속을 재련하여 장비를 만들었다고 봐야했다.

되도록 전자이길 바랐지만, 그때 사용했던 무기가 굉장히 특이했던 것으로 보아 직접 만든 무기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런 복잡한 생각을 하는 박성혁과는 달리 세한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박성혁에게 내어준 미스릴 광맥도 그에겐 큰 가치가 없었기 때문이다.

'왜냐면 미스릴 광맥은 그거 말고도 더 있으니까.'

그리고 그건 이미 세한이 각인시킨 지 오래다.

두 개의 미스릴 광맥이 있었고, 백련정강(百鍊精鋼)이 묻혀 있는 광맥도 하나 차지한 상태였다.

한 개 정도는 양보해도 세한에게 하등 문제도 없었다.

"알겠습니다."

어느 정도 생각을 정리했는지 박성혁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어떻게 그 사실들을 알았는지는 묻지 않도록 하죠."

박성혁은 영리한 자다. 굳이 캐묻기 보단 정말로 중요한 문제에 시선을 집중하고자 했다.

세한이 굳이 아웃라이징이나 피안화가 아닌 제네시스의 도움을 얻고자 한 것도 그런 연유였다.

다른 두 길드라면 세한의 말을 들을 생각도 않고 덤벼들었을 테니까.

박성혁은 지도에 표시된 열여덟 곳의 던전을 훑으며 말했다.

"서울을 뒤엎을 만한 존재가 던전의 아래에 묻혀 있다면 먼저 그것부터 처리하는 게 중요하니까요."

"그래, 그러니 한동안은 계속 던전을 감시해 줬으면 한다."

"다른 길드에게도 말하는 게 좋지 않습니까?"

"그들이 말을 들을 거라고 보나?"

"으음...."

박성혁의 얼굴이 미묘하게 일그러졌다.

그도 알고 있으리라. 다른 길드들이 결코 그렇게 하지 않으리라는 걸.

길드장 본인이 성급하고 다혈질인 아웃라이징은 말할 것도 없고, 피안화는 이아영의 밑에 모여든 광신적인 집단이다.

던전 안에 그녀를 위협할 존재가 있다고 판단되면 막무가내로 쳐들어갈 확률이 높았다.

혹은 제네시스가 뭔가를 독차지하려고 생각하고 들어갈 수도 있었다.

잠시 말을 잇지 못하던 박성혁은 한숨을 시곤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리고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뭐지?"

가장 처음 했어야 할 질문이었지만 말할 시기가 밀려 버린 질문이었다.

"당신은 우리가 이런 식으로 던전을 통제하게 되리라 생각한 겁니까?"

"대충은. 당신들이 이렇게 하지 않았다면 나도 다른 방법을 사용했을 거다."

완벽히는 아니더라도 세한은 어느 정도 이렇게 되리라 예상했다.

'예로부터 온라인 게임에서 사냥터 통제는 흔히 있는 일이지.'

꼭 온라인 게임이 아니더라도 사람이란 자신의 이득에 관련된 건 최대한 독차지하려는 성향이 강하다. 거기에 끼어든 이물이 있다면 처리하고 싶어 하는 게 정상이다.

"마치 우리를 상대할 수 있는 방법이 아주 많다는 것처럼 들리는군요."

"상상에 맡기지."

"이걸 오만하다고 해야 할지...."

그렇게 말하는 박성혁의 얼굴은 크게 기분이 나쁜 것 같지 않았다.

하기야 미스릴 던전을 차지한 상태니 무슨 말을 들어도 기분이 상할 일은 없었다.

물론, 현재 3대 길드의 합의 때문에 각인까지는 시키지 못했지만 7점짜리 던전에 굳이 나설 길드들이 아니었다. 이미 자리를 잡았으니, 약조가 풀렸을 때 바로 점령하면 그만이리라.

"마지막으로, 서울을 뒤엎을 정도의 재앙이 거기에 있다면, 당신들만으로는 힘들지 않습니까? 차라리 모든 길드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편이...."

"그랬다간 많은 플레이어들이 죽게 될 거다."

"마치 다른 플레이어들을 위하는 것 같은 말이군요."

"비슷하지."

이번 일로 생길 피해를 생각하면 세한으로선 당연한 답이었다.

"약한 플레이어는 숨을 쉬는 것만으로 죽음을 맞이할 거다."

만약 전갈의 알이 깨어나 그것과 싸우게 된다면 평범한 플레이어들은 그 즉시 모두 죽음을 맞이하게 되겠지.

기껏해야 부길드장인 홍가은 정도가 선전할 수 있으리라.

"...알겠습니다. 당신의 실력은 이미 봤으니 믿어보겠습니다. 당신 수준의 실력자가 막을 수 없다면 저희들로서도 역부족이기도 하고요."

"그래."

"혹시나 도움이 필요해지시면 언제든 말씀해 주셔도 됩니다. 미스릴 광맥에 대한 빚은 확실히 갚을 테니까요."

"알겠다."

세한은 최대한 딱딱하고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자신의 정체를 최대한 숨기기 위함이다.

"그럼 대화도 마무리 된 것 같으니 이만 가보도록 하지."

"아, 그럼 함께 나가시죠."

"그럴 필요 없다."

그런 말이 들린 순간, 이미 세한의 모습은 눈앞에서 사라진 후였다.

코앞에서 감쪽같이 사라진 그의 모습에 박성혁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대체 어떻게 사라졌는지 감도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이 암습을 가한다면 그야말로 끔찍하군.'

어떤 방비를 하더라도 살아남을 수 있을지 자신할 수 없었다.

사실 세한은 그저 그림자 질주를 사용해서 밖으로 빠져나갔을 뿐이었지만, 박성혁이 그런 사실을 알 리가 없었다.

"디어사이드라...."

후에 서울을 대표하는 길드를 꼽는다면 3대 길드가 아닌 디어사이드를 말하는 플레이어들이 생길 것 같았다. 아니, 분명 그렇게 되겠지.

박성혁은 그런 막연한 예감이 들었다.

***

디어사이드의 본거지로 돌아온 나는 본격적으로 준비를 시작했다.

분명 녀석들은 위험한 놈이긴 하지만, 센티넬급은 아니다. 제대로 준비한다면 막지 못할 건 없었다.

'준비만 한다면 말이지.'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손에 들린 물건을 보았다.

그건 미스릴과 몇몇 소재를 이용해 만든 방독면이었다.

"형, 어때요? 부탁하신 대로 만들었는데."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친 시우가 내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던전 통제가 시작되며 쉬고 있는 다른 길드원들과 달리 시우는 쉴 틈이 없었다.

"이 정도면 충분해. 몇 개 만들었지?"

"우선 다섯 개 만들었어요."

이 방독면에는 그간 내가 얻은 던전의 소재들과 소량의 캐쉬템. 그리고 미스릴이 함유된 고가사양이다. 별거 아닌 것 같지만 나는 이 방독면에 아낌없이 투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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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은(眞銀)의 방독면(B)

귀한 미스릴과 여덟 종의 소재를 합쳐 만든 특수한 방독면.

그 어떤 독무 속에서도 신선한 공기를 마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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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플한 설명의 아이템이다.

하지만 효과는 역시 발군이었다. 아이템 설명은 심플할수록 성능이 뛰어난 경우가 많다.

이 방독면의 효과는 독의 완전 무효.

이런 효과가 나올 수 있었던 건 단연 미스릴의 힘이 크다.

괜히 미스릴이 귀한 금속이 아니지.

단순히 단단한 걸로만 따지면 백련정강 쪽이 단단할지 몰라도 부가 효과를 따지면 미스릴이 훨씬 뛰어나다.

온갖 해로운 효과를 방해하는 미스릴의 힘이 제대로 녹아들어간 방독면이다.

"고맙다, 시우야. 가지고 싶은 게 있으면 형이 다 사줄게. 뭔가 원하는 게 있어?"

"아뇨, 형. 전 그냥 이런 거 만드는 게 좋아요. 애초에 지금 이 공방도 형이 전부 선물해 준 거잖아요."

시우는 기특하게 이야기하며 씩 웃었다.

"그, 그러면 됐고."

당연히 그런 시우의 말에 나는 내심 찔렸다.

애초에 공방이 좋을수록 이득을 보는 건 나다. 그만큼 우수한 장비를 만들 수 있으니까.

그만큼 이 길드 건물에서 가장 많은 포인트가 소모된 건 시우의 공방이었다.

온갖 캐쉬템으로 덕지덕지 발라서, 그 어떤 공방도 따라올 수 없는 최고의 시설을 구비한 상태였다.

미스릴을 재련해서 이런 장비를 만들 수 있는 것도 그런 연유였다.

'나중에 따로 큰 선물을 준비해야겠군.'

어떤 걸 선물할지는 창우와 한번 상의를 해봐야 할 것 같았다.

"참 형, 저번에 제가 만들어 드린 옷이랑 장비는 괜찮으세요?"

"괜찮고말고. 지금 있는 어떤 방어구보다 좋다."

"에이, 과장하실 필요는 없어요. 그래도 뭔가 뿌듯한 기분이 드네요."

시우는 내가 띄워주려고 하는 말이라고 생각한 모양인지 손사래를 쳤다.

'과장한 게 아닌데.'

지금 내가 입고 있는 장비는 암야의 외투에 궁기의 가죽을 합성한 장비였다.

그 등급도 무려 A랭크.

A랭크 장비는 퀘스트가 상당히 진행된 먼 미래에도 희귀한 아이템이었다.

==

흉험한 암야의 외투(A)

내구도: A

방어도: A+

마법저항: A

특수능력: 그림자 질주(B+) 궁기의 날개(B)

==

보다시피 감탄만 나오는 사양이다.

어디 하나 떨어지는 구석이 없는 올 A급 스텟에 특수능력으로 '궁기의 날개'까지 붙어 있다.

무려 B랭크나 되지만 사실 효과는 극히 심플하다.

암야의 외투에서 새까만 날개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

물론 비행이 가능하며, 비행 속도는 플레이어의 민첩에 따라 달라진다.

계속 날개를 소환할 수는 없고, 하루에 최대 한 시간 동안만 소환이 가능하다.

'넘치도록 훌륭한 장비지.'

이거에 비하면 다른 플레이어들이 입는 건 거적때기에 불과했다.

"우선 제일 중요한 건 준비했고...."

다른 장비들도 체크했다.

하나같이 미스릴로 코팅된 장비들이다.

"근데 강도로만 따지면 백련청강이 더 좋은데 왜 굳이 미스릴 코팅을 한 거예요? 방독면이면 몰라도 백련청강으로 만든 무기들은 굳이 미스릴로 코팅할 필요가 없을 거 같은데."

"그건 미스릴이 가지는 성질 때문이야."

"미스릴이 가지는 성질...."

시우는 내 말에 천천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금속에 대해서는 나보다 더 잘 아는 녀석이니 대충 이유를 파악할 수 있을 거다.

'이번에는 가변형 오리하르콘을 쓸 일은 없겠어.'

가변형 오리하르콘은 팔에 착용하는 견갑에 수납되어 있었다.

견갑에서 칼날을 꺼내면 자동으로 오리하르콘이 코팅되는 방식이었다.

"근데 형 혼자 가는 건가요?"

"아니, 그렇게 하고 싶어도 못하지."

"왜요?"

"시간이 부족해."

나는 모든 장비 체크가 끝나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미 밖에는 지수와 루크, 그리고 창우가 대기 중이었다.

'시스템이 갑자기 관여할 수도 있으니 쉬고 있을 시간은 없지.'

갑자기 시스템이 전갈의 알을 부화시켜 버리기라도 하면 걷잡을 수 없어진다.

거기다 제네시스가 다른 두 길드를 구슬려서 시간을 끌고 있지만 그것도 길지는 않을 거다.

갑자기 미친놈이 들어갈 수도 있으니까.

# 62

062. 영웅의 심장(1)

전생에 나타났던 '전갈'의 숫자는 총 두 마리였다.

그 강함은 센티넬이나 레이드 보스보다 조금 약했지만, 정보를 모른다면 그 둘보다 상대하기 벅찬 몬스터였다.

녀석들이 등장하는 던전은 천갈궁에 위치한 열여덟 개의 던전 중 두 곳.

그중 이미 나타난 두 개의 던전은 아니었으니 열여섯 개의 던전에서만 찾으면 된다.

"뭔가 사서 고생하는 느낌이네."

던전으로 향하는 중, 민아가 투덜거렸다.

반면 어릿광대의 옵저버는 뭐가 그렇게 신나는지 우리의 머리 위를 빙빙 돌아다녔다.

던전에 숨겨진 폭탄들, 전갈자리 안타레스의 알의 정체를 이야기하자 정의감이 비교적 강한 창우와 루크는 내 행동에 동의했지만 민아는 그저 떨떠름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굳이 나서서 위험을 자초하는 내 행동을 이해할 수 없는 거겠지.

지수의 경우엔 그저 내가 하면 따라가겠다는 듯 잠자코 있을 뿐이었다.

"근데 하나하나 던전에 들어가서 찾아야 되는 거야?"

"그럴 필요는 없다."

각인석의 모습만 확인하면 그것이 알인지, 아니면 단순한 각인석인지 알 수 있다.

나는 장비를 챙기고 나온 시점에서 까마귀들을 던전에 보내둔 상태였다.

하나하나 들어가는 것보단 우선 까마귀로 정찰해 보는 게 낫다.

혹시 플레이어가 들어가면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르는 일이고.

"아, 루크 씨는 계속 다른 플레이어들의 감시를 부탁드릴게요."

"그래, 어차피 나는 특별히 도움이 되지 않을 테니 그렇게 하마."

루크는 몬스터보단 사람을 상대하는 게 훨씬 편할 거다.

다만 자신을 심하게 낮추는 경향이 있어 조금 정정해 줄 필요가 있었다.

"도움이 안 돼서가 아닙니다. 몬스터만큼이나 다른 플레이어의 행동도 조심해야 되니까요. 아무리 제네시스에 말해뒀다고 해도 모든 플레이어가 생각처럼 움직여 주리란 법은 없습니다."

"하하하! 걱정 말게나. 특별히 비관하거나 하는 건 아니니. 나는 내 나름대로 열심히 해보지."

"예, 부탁드립니다."

정중히 부탁하는 내 모습에 민아는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오빠는 루크 아저씨에게는 되게 정중하네. 난 그냥 막 부려먹으면서."

"왜. 너도 정중하게 대해줄까?"

"됐네~! 난 이 정도가 딱 좋아."

손사래를 치며 말하는 민아의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러다 문득 루크에게 건네줘야 할 아이템이 있다는 게 생각났다.

"아참, 까먹을 뻔 했네, 루크 씨. 이것도 받으세요."

"이건 뭐지?"

"팔찌입니다. 던전 클리어 보상으로 받은 건데 분명 도움이 될 겁니다."

루크는 팔찌를 손목에 착용하곤 팔을 흔들었다.

"흠. 효과는 확인할 수 없는 아이템이로군."

"예, 아무래도 제 소유라 그럴 겁니다."

당연히 던전 클리어 보상이 아니라 DLC 상점에서 구매한 캐쉬템이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서 구매한 거지만 되도록 쓸 일이 없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럼 대충 됐나.'

루크에게서 시선을 뗀 나는, 본격적으로 까마귀의 시야에 집중했다.

'어디....'

우선 첫 번째 던전에 들어간 까마귀가 확인한 건 평범한 각인석이었다.

두 번째 던전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네 번째 던전까지는 별일이 없었지만, 문제는 다섯 번째 각인석을 확인할 때 나타났다.

평범한 각인석이 아닌, 기이한 기척이 느껴지는 둥근 돌.

각인석으로 위장하고 있지만 거기서 흘러나오는 힘은 결코 평범한 각인석이 낼 수 없는 힘을 내포하고 있었다.

바로 '별'의 힘을.

"찾았다."

"어딘데?"

"여기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야."

나는 지도를 펴서 위치를 체크한 후, 다른 던전에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까마귀들을 계속 확인했다. 그리고 열두 번째 던전에서 전갈의 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섯 번째와 열두 번째 던전.'

이후 다른 던전들도 훑어봤지만 다른 알은 발견되지 않았다.

단지 문제라면 마지막 열여덟 번째 던전은 아직 게이트 상태인지라 확인을 할 수 없다는 점이다.

'하필 마지막에 열리는 던전이 가장 빛나는 별의 위치인데.'

천갈궁에서 가장 빛나는 별, 안타레스.

그건 천갈궁을 차지한 전갈의 이름과 동일했다.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창우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입을 열었다.

"그래도 아직 생기지 않았다면, 다른 두 개를 서둘러 처치하고 남은 하나도 확인하면 될 것 같습니다."

나도 그 말에 동의한다.

보아하니 게이트가 열리려면 적어도 이틀은 더 있어야 할 느낌이니 막연히 기다리고 있기는 시간이 아까웠다. 게이트는 아직 제대로 된 형태도 갖추지 못했으니까.

"그럼 먼저 두 개를 클리어하고, 마지막 남은 건 따로 처리하도록 하죠."

"예."

루크를 제외한 우리는 곧바로 두 개의 던전이 있는 장소로 움직였다.

던전의 입구에는 길드 소속의 플레이어들이 지키고 있었다.

숫자는 대략 열 명.

상당히 삼엄한 경비의 모습에 민아가 조용히 물었다.

"나는 변신해서 들어가면 되는데 나머지는 어쩔 거야?"

"정리해야지."

"응? 저, 정리라니?"

무덤덤한 내 대답에 민아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얜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이상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게 분명한 민아의 말을 정정해 주려 하자, 잠자코 있던 지수가 불쑥 얼굴을 내밀었다.

"제가 할까요?"

어쩐지 얘 눈동자가 약간 분홍색으로 변해 있는 것 같은데.

"...너 나쁜 놈만 건든다며."

"지금까지는 그랬는데, 아무래도 지금은 급한 거 같으니까요."

급하기는 급하지.

그렇다고 죄도 없는 플레이어들을 죽일 만큼 급하진 않다.

설령 그래야만 하는 상황에 몰려도 그렇게 하고 싶지 않고.

전생에서 그토록 후회했던 일을 반복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한지수."

"네?"

"나는 네 판단을 존중하지만 적어도 무의미한 학살은 하지 마라. 아니, 이유가 있어도 몇 번을 생각해."

어떤 특성으로 천살성의 힘을 억누르고 감추고 있는 지수지만 그 영향이 아주 없는 건 아니다.

게임이 막 시작했을 때와 지금의 지수는 확연히 성향 차이가 있었다.

어쩌면 원래부터 가지고 있던 성향이 천살성으로 개화되었을 수도 있지.

간단히 말하자면 지금의 지수는 외줄을 타는 것만큼이나 위태로운 상태다.

본인 말로는 나쁜 놈들이 아니면 손을 덴 적이 없다지만, 그것도 한 끗 차이이니까.

"...알겠어요."

지수는 시무룩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이런 우리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민아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아마 대화의 내용상 저 플레이어들을 해치려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된 모양이다.

"뭐야, 깜짝아. 난 또 정리한다니까 죽이려는 줄 알았잖아."

"그럴 리가 있냐?"

이 정도는 제압만 해도 충분하다.

나는 주변 바닥에 떨어져있는 돌멩이를 주웠다.

거기에 가볍게 마력을 넣고, 손가락을 튕겨 쏘았다.

쏘아진 돌멩이는 하나의 마탄이 되어 경계를 서던 플레이어의 뒷목을 강타했다.

"컥!"

짧은 신음을 흘리며 쓰러지는 플레이어의 모습을 확인한 뒤, 나는 계속해서 손가락을 튕겼다. 다른 플레이어들이 동료가 쓰러지는 걸 눈치채는 것보다 빠르게 돌멩이들이 날아갔다.

"우와."

상황이 정리되는 데는 불과 10초도 걸리지 않았다.

"진짜 순식간이네. 근데 정말 기절만 한 거지?"

"그래."

플레이어의 몸은 워낙 튼튼해서 이 정도로는 후유증 하나 없이 깨어날 거다.

적당히 쓰러진 플레이어들을 안전한 곳으로 옮긴 후, 우리는 던전의 입구로 돌아왔다.

"겉모습만 보면 평범한 던전 같네요."

"겉모습만 본다면 말이야."

지수는 다른 던전들과 그다지 다를 것 없는 입구를 보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다른 던전과 별로 다를 게 없으니 그 사단이 난거다.

입구에서부터 수상한 기운이 팍팍 풍겼다면 전생에도 그런 일이 터지지는 않았을 거다.

3대 길드가 멍청한 녀석들은 아니니까.

"그럼 이제 방독면 꺼내죠."

"벌써 꺼냅니까?"

"던전 안에서는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요."

어쩌면 던전에 들어가자마자 알이 부화할지도 모르는 일이니 최대한 변수는 만들지 않는 편이 좋다. 그런 내 말에 창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방독면을 천천히 착용했다.

"이렇게 방독면을 쓸 정도면 정말 보통 몬스터가 아닌 모양이군요."

"그래. 보통 몬스터가 아니지."

주변에 옵저버들이 많이 있어 자세한 설명은 할 수 없지만 정말 단순한 몬스터가 아니다.

안타레스의 알에서 부화한 전갈들이 평범한 몬스터일 리가 없잖아.

"그럼 들어가자."

일행이 모두 방독면을 착용한 걸 확인한 나는, 천천히 던전 안으로 발걸음을 내디뎠다.

부디 이번만큼은 별다른 일 없이 끝낼 수 있기를 바라며.

***

세한이 막 던전 안으로 발을 내딛었을 무렵.

루크는 아직 게이트 상태인 열여덟 번째 던전의 위치에 있었다.

본래라면 전갈의 알이 있는 다른 한 던전을 경계하고 있어야 했지만, 마침 해당 던전의 입구를 지키는 것이 제네시스 길드원이었기에 그럴 필요가 없었다.

심지어 부길드장인 홍가은까지 있는 걸 보면 전갈의 알을 발견하자마자 따로 요청을 넣었던 모양이다.

「느낌이 이상합니다, 열여덟 번째 던전을 주시하세요.」

거기다 루크 자신의 신의 요청도 있었다.

열여덟 번째 던전을 주시하라는 쪽지의 내용에 루크는 두말할 것 없이 열여덟 번째 던전 근처에서 매복하고 있었다.

세한의 스킬을 사용한 은폐에 비하면 부족했지만 루크도 모습을 감추는 건 특기였다.

'여신님이 직접 말할 정도라면 뭔가 있을지도 모르겠군.'

세한의 말로는 대략 이틀 정도 걸린다고 했지만, 이 게임은 변덕이 심하다.

GM이나 퍼블리셔가 관여하게 되면 언제든지 뒤틀릴 수 있으니까.

"이봐! 이거 게이트가 뭔가 이상한데?"

"이상하다니?"

"뭔가... 움직이는 것 같지 않아?"

아니나 다를까.

루크가 두 시간 정도 매복해 있을 무렵, 이변이 일어났다.

분명 생성까지 이틀은 걸린다고 했던 던전이 크게 일렁이기 시작한 것이다.

'세한의 말이 틀린 건가?'

아니, 그건 아닐 것이다.

며칠 전 자신이 이곳에 왔을 적엔 아예 게이트도 없던 장소다.

게이트가 생기고 상당한 시간이 지나서야 던전이 생긴다는 걸 생각하면 던전 생성의 속도가 지나치게 빨랐다.

'GM이나 퍼블리셔가 개입한 건지도 모르겠군.'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세한은 루크에게 GM과 퍼블리셔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게이트의 생성은 이틀 후가 분명하지만 외부의 힘이 개입한다면 얼마든지 달라질 수도 있다고.

대표적인 세 가지 예가 GM, 퍼블리셔, 마지막으로 시스템이었다.

다만 시스템의 경우에는 이런 사소한 정도의 변화가 아닌 대규모 변화가 일어나기에 그럴 일은 없을 거라고 했던가.

대체 어떻게 그런 것들을 아는지는 모르겠지만, 루크는 세한의 말을 전부 숙지하고 있었다.

우선 던전이 생겼다는 사실을 세한에게 쪽지를 통해 연락한 후,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크게 일렁이던 게이트는 이내 거대한 입을 벌리며 휘황찬란한 입구를 만들어냈다.

그건 누가 보더라도 다른 평범한 던전과는 격이 달랐다.

"뭐, 뭐야. 이거. 지금까지 생긴 던전과는 뭔가 다르잖아."

"분명 10점짜리 던전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 생겼을 리가 없잖아."

"...확실히 그럴지도 모르겠어."

플레이어들은 저마다 숙덕거리며 던전의 입구를 보았다.

어디로 봐도 다른 던전과는 전혀 달랐다.

10점짜리 던전이라도 입구는 다른 던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건만, 이건 겉모습부터가 위엄이 넘쳤다.

"우선 길드장님께 보고하자."

"하지만 말한다고 해도 달라질 게 있나? 어차피 점령하는 건 금지 아니었어?"

"야, 아직 아무도 몰라."

숙덕거리던 둘의 대화는 루크에게까지 들리지 않았다.

세한이나 지수와는 달리 루크는 먼 거리에서 들리는 소리를 캐치할 능력이 되지 않았다.

그저 플레이어들이 숙덕이더니 한 플레이어가 어디론가 향하는 걸 확인했을 뿐이다.

던전에 들어가지 않았다는 것에 루크는 내심 안도했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못했다.

"이게 새로 생긴 던전이라는 건가?"

아웃라이징의 길드 마스터. 강태성이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호오."

부길드장도 없이 나타난 그는 새롭게 생긴 던전을 무척 흥미로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여태 이런 던전이 생긴 적은 없었어. 혹시 함정인가?'

보통 독이 든 버섯은 색감이 화려한 법이다.

이 던전도 그런 이유로 멋진 외형을 갖추고 있는지도 몰랐다.

"직접 확인해 보는 게 좋겠군."

"기, 길드장님. 그러면 다른 길드들과의 약조를 어기게 되지 않습니까?"

"던전 한 개 정도는 뭐라 하지 않겠지. 그리고 제네시스 놈들도 이미 눈독을 들이고 있는 던전이 하나 있더군. 각인은 하지 않았지만 던전에 들어갔던 걸 본 자가 있다."

그러니 이쪽이 던전에 들어간다고 해도 설령 뭐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만약 독이 든 버섯이라면 뱉으면 그만이지.'

강태성은 자신의 실력에 절대적인 자신감이 있었다.

3대 길드의 길드 마스터 중에서 가장 강한 건 그였고, 다른 어떤 플레이어들과 비교해도 뒤떨어진 적은 없었다.

오히려 그는 항상 강했다.

무려 전쟁의 신, 아레스의 아바타가 아닌가.

그는 언젠가 자신이 최강의 플레이어가 되리라는 것을 전혀 의심치 않았다.

이런 던전 따위는 그의 일대기에 한 줄로 언급도 되지 않을 만큼 하찮은 것이었기에 하등 신경 쓰지 않았다.

독이 든 것이라면 뱉으면 되는 것이고, 만약 이 외형대로 대단한 뭔가를 품고 있다면 아웃라이징이 단번에 최고의 길드가 되는 것도 문제가 아니었다.

피안화가 현재 가장 강력한 길드라고 해도, 그건 습자지 한 장 정도의 차이였으니.

"들어간다. 이곳에 있는 사람의 절반은 남고, 절반은 나를 따라오도록 해라."

"하, 하지만...."

"내 실력을 의심하는 것이냐?"

"아뇨! 아닙니다!"

뭔가 꺼림칙한 표정을 짓던 플레이어들도 강태성이 얼굴을 찡그리자 고개를 흔들었다.

전쟁의 신의 아바타답게 그의 성질은 불과 같았다.

"그럼 잔말 말고 따라와라."

강태성은 자신감이 넘쳤다.

이 던전에 무엇이 있든 이길 수 있다는 자신이 말이다.

# 63

063. 영웅의 심장(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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