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웅방 준장과는 친한 척도 하지 말아야겠다.
※ ※ ※
백홍표는 뭐가 그리 좋은지 50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숨을 헐떡이며 뛰어왔다.
"헉헉, 구, 군납 계약하기로 했습니다."
"아! 잘됐네요. 완제품으로 받겠답니까?"
"원액이라도 괜찮답니다. 계약금이라고 250억이나 입금됐고요."
"잘됐네요. 그렇지 않아도 저걸 언제 희석해서 병에 담나 했는데, 서비스로 원액 한두 통 주면 되겠죠?"
급하긴 급했던 모양.
물건도 안 왔는데 돈부터 먼저 주다니.
군으로선 당연히 받아야지.
포자 독 해독제도 걸려있는데.
"덕분에 한숨 돌렸습니다."
"대출금 상환은 하셨어요?"
"네, 바로 처리했습니다."
"그 은행과는 당장 거래를 끊으시고."
"이를 말입니까? 괘씸해서 원래 있던 계좌도 해지했습니다."
버틸 수 있는 자본금은 확보했고.
"고아원에도 신경을 쓰셔야 할 겁니다. 놈들이 무력을 동원할 수도 있으니."
"그래서 말인데, 우리 원생 출신 적합자와 각성자들 불렀습니다, 태주씨 경호 목적으로."
"네? 절 경호하시겠다고요?"
"현재로선 제일 위험한 분이 태주씨니까요."
"하하하, 괜찮습니다. 전 걱정 말고 고아원이나 지키라고 하세요."
"그래도···,"
누가 누굴 지킨다고.
"마침 잘됐네요. 그렇지 않아도 포자 독 해독제도 시험해볼 겸, 밀림으로 사냥 나가려고 했는데,"
"헉! 사, 사냥요?"
"네, 사냥. 같이 나가면 되겠네요. 원생 출신 적합자, 각성자들과 함께."
"아, 그, 그게 각성자 1명과 적합자 6명입니다. 숫자가 적어요. 다른 아이들도 있지만 다른 지역에서 활동 중이라 부를 러면 시간이 걸리고."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백홍표는 도무지 영문을 몰랐다.
태주는 분명 각성자가 아니다.
각성자가 되면 생기는 얼굴 문양이 없기 때문에.
잘해봐야 적합자, 대체 어디서 오는 자신감이지?
예전에 군인이었다는 데, 그걸 믿고 저러나?
"또 절 믿지 못하는 눈치군요. 이쯤이면 신뢰가 쌓일 때도 되지 않았습니까?"
"아, 아닙니다. 믿죠. 믿고 말고요. 제가 태주씨를 안 믿으면 누굴 믿습니까?"
"아무튼 내일 아침에 사냥 나갈 테니 준비하라고 일러주세요."
"···알겠습니다."
아직 할 말이 남았는지 가만히 태주의 얼굴을 바라보는 백홍표.
"···용건이 있으시면 말씀하셔도 됩니다. 어떤 충고라도 듣겠습니다."
백홍표는 잠시 침묵했다 말을 이었다.
"혹시 포자 독 해독제 말고도 다른 약을 개발할 생각이 있으신지?"
"네, 그렇지 않아도 생각해둔 것이 많습니다."
강호 무림 최고의 의가(醫家)였던 사천당가.
가주였던 당군악의 경험과 지식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는 태주였다.
어디 해독제뿐인가?
영약도 가능하다.
마수들이 품고 있는 에너지 결정체.
알고 보면 그것도 내단이나 영단 아닌가!
소림의 대환단이라든지, 화산의 자소단, 무당의 태청단, 똑같지는 않을지라도 비슷하게는 재현해 낼 수 있다.
"그럼 바이오 제약회사를 설립해 보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으음."
미처 예상도 못 한 제안.
"제약회사를 설립해 군납 업체로 지정되면 여러 가지 혜택이 있습니다. 세금 감면에, 군에 보호를 요청할 수도 있고요."
제약회사라.
그렇지 않아도 염두에 둔 적이 있다.
"글쎄요. 할 수 있을까요?"
"회사 설립이야 간단합니다. 성장 가능성도 충분하고."
"···."
"대답만 해주세요. 설립에 필요한 일은 다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마음이 기운다.
언제까지 혼자 약을 만들어 팔 수는 없는 노릇.
세력을 가져야 한다.
제약회사가 그 발판이 되어줄 수 있다.
절대독마 당군악도 혼자는 아니었다.
사천당가를 비롯한 여러 세력과 함께 강호를 제패했다.
태주는 결단을 내렸다.
"회사 설립, 까짓거, 해보죠. 대신 같이 동업하는 겁니다? 지분을 나눠서."
"하하하, 무조건 성공할 건데 저도 출자해야죠. 어차피 태주님만 믿고 가는 회사니까···, 지분율은 9 대 1? 물론 태주님이 9."
"안 됩니다. 백사장님도 발을 깊숙이 담그세요. 6 대 4. 양보 못 합니다."
"지분이 아니더라도 회사에 뼈를 묻을 거지만, 정 그렇다면 8 대 2."
"운영은 백사장님이 하셔야죠. 좋아요. 7 대 3. 이거 안 받아들이시면 회사 설립도 없습니다."
"···하아, 받겠습니다."
태주가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그의 손을 꽉 잡아 오는 백홍표.
"하지만 운영은 제가 안 할 거예요."
"네?"
"전 약국 사장일 뿐입니다. 마침 능력 있는 사람이 있는데···,"
"원생 출신?"
"맞습니다. 혹시 괜찮으신지?"
백홍표가 고아들을 돌보기 시작한 지 어언 20년, 그동안 수많은 아이를 거둬들여, 그들을 어엿한 사회인으로 진출시켰다.
다양한 직업에 종사하고 있는 백홍표의 아이들, 이건 그가 가진 진정한 힘이었다.
"능력 있는 사람은 누구나 환영입니다. 제가 혼자 뭘 하겠습니까? 그분들만 믿고 가는 거죠."
"바로 불러들이겠습니다."
해독제 100만 병 판 걸로 여유가 생긴 줄 알았는데, 지금은 턱없이 모자랐다.
제약회사가 동네 구멍가게도 아니고,
돈! 더 많은 돈이 필요하다.
※ ※ ※
백홍표는 빠르게 움직였다.
관청으로 달려가 회사 설립 신고부터 했다.
자본금 300억, 회사명은 태홍 바이오.
태주의 이름 첫 글자 '태'와 백홍표의 '홍'을 합친 이름.
허가가 떨어지자 백홍표는 지리산 마수 방어군단 오진형 중장과 군납 업체로서 정식 계약을 맺었다.
동시에 중앙 일간지 뉴서울 일보에 기사가 특집으로 게재됐다.
<제국군 지리산 마수 방어군단, 태홍 바이오와 모기독 해독제 군납 계약 체결.>
<앞으로 지리산 마수 웨이브 방지를 위한 대규모 토벌 작전이 시작될 것으로 전망.>
<그게 다가 아니다. 태홍 바이오, 포자 독 낙타 고라니 해독제 출시 예정.>
<극상의 맛! 포자 독 낙타 고라니 사냥이 가능해졌나?>
<최고의 제약회사들도 시도했다가 실패한 해독제, 일부 전문가들은 절대 불가능할 것이라 예상.>
<대형 식품 업체 문의 쇄도, 미식가들 대환영, 고라니 고기 가격이 얼마가 되든 사 먹겠다.>
<삼한제국 황실에서도 관심, 황실 요리사들, 빠른 시일 안에 지리산으로 방문하겠다.>
이 소식은 곧 구례시에도 전해졌다.
각성자들과 마나 적합자들은 분통을 터뜨렸다.
"내 이럴 줄 알았다! 결국 군에서 낼름 삼켰네."
"부작용 운운하던 새끼들 다 어디 갔어?"
"어후, 그동안 자유 도시라 강제 집행도 못 하고 군침만 흘렸을 텐데."
"이때다 싶었을 거야. 100만 병 쓸어갔댄다."
"뭐, 할 수 있나? 군바리는 방충복 따윈 시원하게 벗고 대규모 작전 벌여서 마수 부산물 챙기는 거고, 우린 방충복 시대로 다시 돌아가는 거지."
게다가 포자 독 낙타 고라니 해독제 출시 예정이라는 소식까지 들리자.
"와! 포자 독···. 미치겠다."
"그냥 가만히 있었으면 구례에 제일 먼저 팔았을 거 아니야?"
"고라니 보고도 그냥 지나친 적 많았는데, 계속 지나쳐야겠네."
"지리산 마수 방어군단 짬밥에 고라니 고기 올라오는 거야? 군대 재입대할까 보다."
"씨발! 이게 다 조훈석 그 새끼 때문이야!"
"마주치기만 해봐! 자치위원이고 뭐고, 그 새끼 죽이고 난 구례 뜬다."
비난의 대상이 된 YJ 약국 대표 조훈석은 캐슬 안에 있었다.
괜히 시내에 나갔다간 봉변 당 할 수도 있기에.
'제기랄!'
상황이 뜻하지 않게 흘러갔다.
돈줄이 끊겼을 때 최소한 협상 정도는 할 줄 알았는데.
'강하게 나오네. 거지 같은 새끼들이,'
뜬금없이 군과 계약을 체결하다니.
군과 엮었으면 어찌할 수도 없다.
급기야 상임위원 지광인도 전화를 걸어왔다.
군이 개입했으니 자신도 어쩔 수 없다고, 사과하고 끝내라고.
그동안 잘도 처먹어 놓고선 이제 와서 발 빼겠다? 이 비리 공무원 새끼가!
이쯤에서 끝낼 수는 있다.
하지만 자존심이 용납지 않았다.
더구나 얻어낸 것이 하나도 없다.
거기에 포자 독 해독제라는 신약.
개발이 성공적으로 끝나 이것도 독점 판매하면 자신은 구례시 약국 사업 완전히 접어야 한다.
'서둘러야겠군,'
3단계를 실행할 차례.
전에도 이와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위치가 기가 막힌 약국 하나를 차지하기 위해 백스 드럭샵 사례처럼 약품 공급을 끊고, 돈줄까지 말려버렸는데도 끝까지 저항했던 약국 주인이 있었다.
결국 구례 뒷골목 빌런 조직 각성자를 보냈다.
그 빌런 조직은 예전부터 조훈석과 마약을 거래한 사이.
약국 사장을 납치해서 가두고 마약을 투여했다.
한번 맞으면 절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마약이기에 약국 주인은 자신의 노예가 되었고.
일단 중독되면 모든 걸 잊어버리고 마약에만 몰두한다.
오직 마약 하나만을 위해 뭐든지 한다.
가족도 판다. 영혼도 판다.
이번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김태주, 그놈을 마약 중독자로 만들어 모기 해독제 제조식을 빼낸다.
당연히 포자 독 낙타 고라니 해독제도.
그리고 노예로 만들어 두고두고 뽑아먹는다.
마약도 일종의 독(毒).
해독제를 만드는 능력이 있다고?
그럼 어디 마약도 해독해 보라지.
※ ※ ※
그 시각 태주는 백사장이 연결해준 고아원 원생 출신의 각성자, 적합자들과 함께 있었다.
알고 보니 고아원 잔치 때 함께 국밥을 먹은 안면 있는 사이였다.
각자 커다란 배낭 하나씩 메고.
"준비됐니?"
"네, 김태주 사장님!"
"그냥 형님이라 불러."
태주는 그들에게 약병 1개씩 나눠줬다.
"모기독 해독제 한 병씩 마시고."
호르륵, 호륵.
모두 다 마시는 걸 보고 난 뒤.
"너흰 내 뒤에서 따라와. 내 지시 없인 마수 공격도 금지."
"하, 하지만···,"
"뭐?"
"아버지께서 형님 다치지 않게 꼭 지켜드리라고."
"하하하, 누가 누굴 지켜? 천천히 잘 따라오기만 하면 돼."
레이드 목적은 포자 혹 낙타 고라니 해독제가 잘 듣는지 확인하는 것, 아울러 고라니 고기도 최대한 많이 확보하고.
해독제는 완벽하다.
아니 완벽하지 않더라도 상관없다.
만에 하나, 이들이 중독되면?
직접 해독시켜주면 되지.
혼원무상독령공이 있는데.
< 회사 설립 > 끝
ⓒ 꾸찌꾸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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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폭 >
지리산 밀림, 백창훈은 6명의 적합자 동료와 함께 김태주의 뒤를 따라갔다.
백창훈은 25살의 각성자.
등급은 유저, 특성은 <철벽>, <검사>.
성이 백씨인 이유는 백홍표 때문이다.
고아 중엔 자신의 성과 이름을 아는 아이들도 있고, 모르는 아이도 있다.
모르는 아이들은 거의 백홍표의 성을 따른다.
비록 피는 섞이지 않았지만 그들에게 백홍표는 아버지니까.
그런 아버지께서 신신당부하셨다.
김태주 형님을 보호하라고, 여차하면 무조건 데리고 도망치라고.
"저어, 형님, 제가 앞장설게요. 이래 봬도 각성자입니다. 상황대처 능력이 형님보다는···."
"쉿! 그냥 따라오랬지? 왜 자꾸 말이 많아."
"아, 아니."
"확! 앞으로 뛰어간다?"
"···그러지 마세요."
포자 독 낙타 고라니를 만나 해독제를 시험해보고 돌아오는 임무.
원래 계획한 레이드팀의 진형은 자신이 앞장을 서고 6명의 전투 보조 요원이 김태주의 주위를 둘러싸면서 보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홀로 쭉쭉 앞장서 걸어가는 김태주.
너무 겁 없는 거 아니야?
'짐꾼 생활을 했다면···,'
마나 순응자, 일반인이겠지.
적합자도 위험한 이 밀림에.
장비를 챙겨 입긴 했다.
최소 30억을 호가하는 환상 여우 가죽 코트.
'뒷모습은 정말 멋져.'
하지만 그게 다다.
방어력이 있다고는 하지만 결국 폼.
코트를 입고 어떻게 싸우려고.
걸리적거려서 움직임이 불편해 도망도 못 간다.
'불안한데.'
너무 안쪽으로 많이 들어왔다.
칼날이빨 담비 구역을 한참 벗어났다.
포자 독 낙타 고라니는 출몰 지역은 지리산 밀림 전역.
즉 비교적 쉬운 사냥감이 모여있는 칼날이빨 담비 구역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다.
그래서 지금쯤이면 낙타 고라니 한 마리쯤은 눈에 띄어야 하는데, 아직 만나지 못했다.
칼날이빨 담비 정도는 처리 가능하지만 이러다 폭풍 족제비나 붉은 털 늑대라도 마주치게 되면?
'안 되겠어.'
돌아가는 게 낫다.
오늘만 날이 아니니.
나중에 다시 오면 되고.
그런데 문제는 저 형님이 고집이 너무 세다는 것.
도무지 말을 듣지 않았다.
자신이 앞장서겠다고 해도 저러는데 돌아가자고 하면 말을 들을까?
'한 번만 더 설득해보자.'
듣지 않으면 강제로라도 끌고 밀림을 빠져나가야겠다.
그게 죽는 것보다 나으니.
마침 멈춰 선 태주에게 슬며시 접근하는 백창훈.
"혀, 혀, 형님."
"조용."
"네?"
"왔다."
뭐가 왔다는 건지.
포자 독 낙타 고라니?
하지만 앞엔 아무것도 없었다.
이 양반이 헛것을 보나?
이해한다.
해가 잘 들어오지 않아 어두운 밀림.
심약한 사람들은 가끔씩 착란 증세를 일으키기도 하는 곳.
"그러지 마시고 내일 다시 오···,"
그때였다.
툭.
새까만 무언가가 나무에서 툭하고 떨어져 내렸다.
"케륵!"
날카로운 날개 지느러미를 달고 있는 폭풍 족제비였다.
탐색하듯 기다란 몸체를 요리조리 움직여대는 놈.
"이, 이런!"
백창훈은 탄식했다.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이 일어나고야 말았다.
그래도 다행히 한 마리.
'이 정도면···,'
하지만 이게 다가 아니었다.
투둑, 투두두둑!
거뭇거뭇한 물체가 나무 위에서 연신 떨어져 내렸다.
다행은 무슨.
"키키키!"
"키킥?"
"케르르르,"
"쿠룩!"
.
.
.
폭풍 족제비는 담비보다 몸집도 작고 공격력이 약하지만 대신 매우 빠르다.
그런데 왜 폭풍일까?
이 새끼들은 한번 나타나면 최소 20마리 이상.
서로 뭉쳐서 뱅글뱅글 돌면서 공격하는 모습이 마치 회오리나 폭풍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대충 세도 20마리 이상의 폭풍 족제비들이 쐐기모양의 진형을 갖추며, 위협하듯 꼬리를 바짝 세웠다.
큰일 났다.
다 죽게 생겼다.
태주 형님의 표정도 좋지 않았다.
매우 심각한 얼굴로 눈살을 찌푸리는 모습.
백창훈은 잔뜩 긴장한 목소리로 동료들에게 말했다.
"너희들, 내가 신호하면 형님 모시고 빠져나가."
"차, 창훈이 형, 형도 가, 같이···,"
"정신 차려! 태주 형님은 반드시 살려야 해! 그래야 우리 동생들이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어."
"···아, 알았어."
백창훈은 검을 들고 폭풍 족제비 무리에게 달려들 준비를 마쳤다.
그의 특성은 검사.
검에 대한 재능을 부여하는 특성.
최소한 시간을 끌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이야 죽든 말든.
'한 마리도 놓치면 안 돼! 한꺼번에 어그로를 끌어서···,'
그런데 두 손을 코트 안에 넣고 몸이 뻗뻗히 귿은 듯 움직이지 않고 있는 태주.
"형님, 제가 신호하면 쟤들과 함께 달리면 됩니다. 반드시 사실 겁니다. 저는 걱정말고···,"
순간!
불쑥!
태주의 손이 코트에서 빠져나왔다.
동시에 엄청난 속도로 두 손을 앞으로 쭉 뻗어 강하게 털어냈다.
푸앗! 푸아악! 푸닷다닷!
파팍! 파파파팍! 파바바바바바바밧!
터져 나오는 굉음.
"어···,"
갑자기 삭제되듯 사라지는 20여 마리의 족제비 무리.
폭죽처럼 터져 사방으로 흩날리는 살점들.
백창훈은 그저 입만 떡 벌렸다.
'샤, 샷건이야, 뭐야?'
비폭일섬(飛瀑一閃)의 비폭.
일섬보다 사정거리는 비교도 안 되게 짧지만 근거리에서 기습용도로 쓰이는 암기술.
오른손엔 작은 못처럼 생긴 폭우이화정 한 움큼, 왼손엔 오돌토돌한 철환 한 움큼, 한 손당 최소로 잡아도 100여 개, 합하면 200개.
혼원무상독령공 4성으로 강화된 경력을 담은 암기들이 부채꼴 모양으로 쏘아져 폭풍 족제비 무리를 단번에 갈아버렸다.
조용했다.
꿀꺽.
마른침 삼키는 소리만 들렸다.
믿지 못할 광경에 아무도 입을 여는 이가 없었다.
한방에 족제비 20마리?
'태주 형님도 각성하셨어? 아니야. 문양도 없잖아.'
'적합자라도 쳐도 너무 강해.'
'진짜 샷건인가? 코트 안에 숨겼나?'
'샷건이라 해도 산탄 총알로는 족제비 가죽도 못 뚫을 텐데.'
확실한 건 건 태주 형님이 20마리의 족제비를 한 번에 처리할 수 있을 만큼의 강자였다. 행동으로 증명했다.
'아, 쪽팔려.'
백창훈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저런 사람에게 위험하다느니, 다음에 오자느니, 나만 믿고 도망치면 살 수 있다는 말까지 했다.
태주도 말이 없었다.
'···씨발!'
하필 나타난 게 폭풍 족제비라니.
일섬으로 하나하나 조지기에 너무 많은 숫자.
족제비 무리와 마주치고 난 뒤 한참을 고민했다.
유엽비도를 날려 한 마리씩 처리할까?
20마리인데 하나라도 놓치면?
자신에게 달려드는 거야 오히려 고맙지만, 한 마리라도 빠져나가 팀원들을 덮치면?
백홍표 사장 볼 낯이 없어지는 거다.
결국 어쩔 수 없이 비폭을 사용했다.
아아아! 저 아까운 암기들.
'···회수는 포기.'
어느 세월에 저 많은 암기를,
아깝지만 내버려 두자.
어차피 찾으려고 해도 못 찾는다.
당군악은 씀씀이도 크고, 강호 최고의 재력을 자랑했는데, 지구의 자신은 왜 이리 궁상맞을까? 돈은 돈대로 벌고 있으면서.
열심히 노력해야지.
혼원무상독령공 7성에 오르면 손 한번 뻗는 것으로 암기를 회수할 수 있다.
태주는 아직도 얼이 빠져있는 백창훈에게 말했다.
"봤냐?"
"···어음, 봐, 봤습니다."
"이젠 내가 앞장서도 되겠지?"
"넵! 입 꾹 닫고 따라가겠습니다."
다시 안쪽으로 들어가는 태주의 일행.
드디어 만났다.
포자 독 낙타 고라니를 말이다.
이번에도 놈은 사람을 피하지 않았다.
역시 학습효과 때문, 보고도 지나갈 것이라고 여기는 듯.
태주는 팀원에게 이번에 새로 만든 해독제를 나눠줬다.
바르는 해독제와 먹는 해독제 두 가지.
"이건 먹고, 이건 발라. 너희들이 잡아봐. 난 뒤로 빠져있을 테니."
"넵! 형님!"
백창훈이라고 포자 독의 위험성을 왜 모르겠나?
그러나 하나도 두렵지 않았다.
이미 모기독 해독제를 만들어낸 사람, 그리고 좀 전에 보여준 놀라운 능력까지.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하는 고라니를 슬그머니 포기하고.
들고 있던 검으로 냅다 목을 찌르니!
"으아아아아아아악!"
기분 나쁜 고라니 비명이 들리고.
포퐁! 퐁!
등에 달린 혹이 터졌다.
터져 나오는 극독의 포자.
태주는 즉시 혈인독장으로 포자 독을 끌어당겼다.
너무 많이 노출되면 위험할지도 모르니까 조금씩.
그래서 팀원들에게 간 포자 독은 그리 많지 않았다.
모기독 해독제 시험해 볼 때와는 상황이 달랐다.
포자 독은 사람을 죽이는 독.
물론 완벽하게 해독될 거라 자신했고, 확인 절차도 끝냈지만.
"어때?"
"괜찮습니다. 아무렇지도 않은데요?"
"그래?"
잘 됐다.
몇 마리 더 잡으면서 노출되는 포자 독의 양을 늘려보자.
"참! 너희들 도축할 줄 알아?"
"제가 할 수 있습니다."
"좋아! 같이 도와주면서 해봐."
낙타 고라니 고기는 무조건 챙겨야지.
포자 독 해독제가 본격적으로 출시되면 고라니 씨가 마를지도 모르니까.
※ ※ ※
올해 30살, 백서연은 삼한제국 수도 뉴서울에 위치한 미리내 그룹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그녀는 구례 자유도시 백스 고아원 출신.
그녀의 나이 10살에 부모님이 돌아가셨다.
아빠의 친구인 백홍표가 자신을 거둬주었고.
그의 지원으로 초중고를 졸업, 뉴서울 대학교 경영학과에 입학해서 마침내 대기업 본사까지.
백서연은 어릴 적부터 머리가 똑똑했다.
거기에 악바리 근성으로 노력까지 합쳤다.
이런 사람을 보통 천재라고 부른다.
입사하고 나서도 그녀의 천재성은 빛을 발했다.
그룹 미래전략본부에 배속되어 여러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면서 최연소 과장 직급에 올랐다.
하지만 회사 생활이라는 게 그렇듯, 일만 잘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었다.
동료들과의 유대관계, 상사에게도 잘 보여야 하고, 사내 정치에 발을 담가야 하고.
백서연으로서는 이런 모든 것들이 힘에 부쳤다.
고아원 출신에, 친척 하나 없는 고아, 뉴서울엔 그녀가 맘 편안히 기댈 곳이 없었다.
당장이라도 구례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그래도 꾹 참았다.
아버지께서 자신에게 신신당부하셨기 때문이다.
구례를 떠난 이상 돌아올 생각은 말라고, 여긴 쳐다보지도 말라고, 나중에 이 정도면 성공했다, 싶을 때 한번 들리라고.
섭섭했지만 백서연은 이해했다.
그녀라고 아버지 마음을 왜 모르겠나?
그때였다.
"어이, 백과장?"
"네, 차장님."
"잠시 나 좀 보지."
전략본부에서 그녀의 상사인 전주학 차장.
용건이 있는 모양.
백서연은 차장실로 들어갔다.
"긴말할 것 없고, 자네 구례 고아원 출신이지? 백스 드럭샵의 백홍표 사장이 원장이고."
음? 아버지 이름이 여기서 왜?
"맞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혹시 신문 봤나? 태홍 바이오, 군부와 계약한 기사 있잖아."
"아, 포자 독 낙타 고라니 해독제 말씀이시죠? 당연히 읽어봤습니다."
"그럼 백홍표 사장이 운영하는 드럭샵이 태홍 바이오 자회사라는 것도?"
"네?"
백서연은 깜짝 놀랐다.
구례에서 포자 독의 해독제가 개발 중이라는 것까진 알았다.
자유도시 특성상 여러 신약이 많이 만들어지고, 시판되는 곳이 바로 구례.
그런데 아버지의 드럭샵이 태홍 바이오 소속이라고?
"몰랐나 보군. 그럼 당장 구례로 내려가. 지금 하고 있는 프로젝트에서 손 떼고."
"무슨 일로요?"
"백홍표 옆에서 지켜보라고. 해독제 개발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 효과는 확실한지, 개발자 김태주라는 사람은 누구인지."
눈썹꼬리가 살짝 위로 올라 가는 백서연.
보통 그녀가 심기가 불편할 때 짓는 표정.
"해독제 실체가 확인되면 어떻게 하는지 알겠지? 제조식 거래 계약을 맺든, 로열티 계약을 하든, 몰래 훔치든, 반드시 제조식을 확보해야 해."
지금 스파이 짓을 하라는 건가?
키워준 아버지에게서 해독제 제조식을 빼오라고?
"내가 모시는 분이 누군지 잘 알지? 이번 일만 잘하면 책임지고 내 후임으로 진급시켜주지. 만약 거절하면···, 말 안 해도 알 거야."
기가 찼다.
아무리 포자 독 낙타 고라니 해독제라고 해도 그렇지.
"어차피 약이 나오면 금방 카피할 거야. 자네도 알잖아! 우리 미리내 제약 연구소 수준이 어떤지, 다만 시간을 절약하자는 것뿐이야."
"···."
"빨리 말하게. 할 건가, 아니면 하지 않을 건가? 차장 승진의 기회야. 물론 난 부장으로 올라가고."
아열대 기후에서만 자생하는 변종 3줄 무늬 모기와는 달리, 포자 독 낙타 고라니는 삼한제국 전역에 존재한다.
개체수도 어마어마하게 많다.
오죽하면 웨이브가 일어날 때 사람들을 가장 많이 죽이는 마수 중 하나라고 소문이 났겠나.
포자 독 해독제를 확보하면 제약회사로는 떼돈을 벌 터.
"저는 하지 않···,"
순간!
지이잉!
주머니에서 울리는 스마트폰.
백서연은 스마트폰을 꺼내 통화 거절 버튼을 누르려다 멈칫했다.
'아버지?'
구례에서 걸려온 전화.
너무 반갑기는 하지만 한편으론 걱정도 들었다.
"잠시 전화를 받아도 되겠습니까?"
"흐음, 간단하게 이야기하고 빨리 결정을 내리게, 나도 보고하러 가야 하니까."
그녀는 전화를 받았다.
통화는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불쾌한 듯 인상을 찌푸리는 전주학 차장.
이윽고, 전화를 끊고,
"그래, 결정했나?"
"네, 결정했습니다. 구례로 내려가겠습니다."
"오! 잘 선택했어. 그럼 세부 사항을 논의···,"
"단!"
백서연이 싱그러운 미소와 함께 전주학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사직서 낼게요. 회사 그만두겠습니다."
"···뭐, 뭐?"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그럼 이만."
"야야! 백서연! 백과장! 너 미쳤어?"
미치긴!
얼마나 기다렸던 일인데.
이깟 회사 따윈 조금의 미련도 없었다.
< 비폭 > 끝
ⓒ 꾸찌꾸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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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마는 때론 자비롭다. >
여타 다른 재벌 기업과 마찬가지로 이곳 미리내 그룹도 승계권을 둘러싼 암투가 심했다.
특히 미래전략본부실은 말할 것도 없다.
누구에게 줄을 대느냐.
줄을 댄 사람이 어느 위치에 있고, 무슨 성과를 냈는지에 따라 희비가 엇갈린다.
하지만 백서연은 포지션을 정하지 않았다.
그럴 정신 있으면 일이나 더 하지.
전주학 차장 같은 경우엔 그룹 차남 이동우의 라인에 올라탄 사람.
이번 포자 독 고라니 해독제를 가지고 오라는 지시도 이동우가 내렸을 것이다.
그는 미리내 바이오 제약회사의 사장이었으니까.
"야! 백서연! 너 이렇게 나올 거야? 이 바닥에서 영영 매장되고 싶어?"
나가는 그녀를 뒤따라 나오며 바락바락 악을 쓰는 전주학 차장.
"이 바닥요? 저 뉴서울 떠난다고 말씀드렸잖아요."
전주학은 잠시 숨을 고르며 타이르듯 말했다.
"그래, 구례로 간다고 했지. 어차피 뉴서울로 다시 올라올 거 아니야? 그 위험한 촌구석에서 썩으려고?"
"네, 거기서 쭉 살 거예요."
"하아, 좋아. 그럼 제조식만 구해줘. 100억 정도는 줄 생각 있어. 자리를 잡으려면 돈이 필요하잖아. 돈이 싫다면 구례시 캐슬 안에 집 한 채 얻어줄게."
"꿈 깨시라고 전해주세요. 저 위쪽에."
그러자 전주학의 인상이 험악하며 변했다.
"너 진짜 죽고 싶냐? 구례라고 해서 미리내 그룹이 아무것도 못 할 줄 알아?"
"협박이시네요. 뭐, 이 정도까지 왔으면 좋게 헤어질 수는 없겠고···, 업무인수인계는 필요 없겠죠? 사직서도 메일로 보내드릴게요."
백서연은 단호했다.
하루빨리 구례로 내려가고 싶은 마음.
할 일이 많다.
전세방도 빼야 하고, 이사 준비도 해야 한다.
아버지가 직접 도와달라고 전화가 왔다.
평소 이런 부탁 안 하시는 분.
믿을 만한 사람과 회사를 설립하셨는데, 일할 사람이 없다고.
'태홍 바이오라고 했지?'
최근에 생긴 회사.
하지만 발전 가능성은 충분하다.
모기독 해독제는 이미 출시되어 군부에도 납품했고, 또한 포자독 해독제도 개발 중이라니,
'회사 조직부터 갖춰야 해.'
그런데 아버지와 동업했다는 사람은 누굴까?
해독제 개발자 같은데.
정체 확인이 우선이다.
목적이 뭔지, 왜 하필 아버지를 선택했는지.
만약 아버지를 바지사장으로 내세워 음흉한 흉계 같은 걸 꾸민다면?
'일단 만나보고 나서 생각해봐야겠어.'
※ ※ ※
태주와 원생 출신의 레이드 팀은 구례로 돌아왔다.
앞으로 태홍 바이오의 근거지가 될 태주 소유의 빌딩으로.
포자 독 낙타 고라니 해독제 효과도 충분하게 검증했고, 발골해서 가져온 고라니 고기와 사골, 내장, 그리고 독초와 약초들도.
메고 간 배낭들이 가득가득 찼다.
풍성한 수확이었다.
'당분간 해독제나 만들어야겠군.'
모기독 해독제와 낙타 고라니 해독제, 두 가지만.
재료가 충분치 않다.
그동안 드럭샵을 통해 약초와 독초들을 매입해왔다.
하지만 문을 닫아 재료 공급이 끊긴 상태.
될 수 있으면 빨리 마무리하고 드럭샵 재오픈해야지.
백홍표와 동업해 드럭샵 지분도 소유한 터라 드럭샵에 대한 애정도 생겼다.
보관소와 냉장 저장고에 수집해온 재료와 고라니 고기를 쟁여 놓은 후.
"수고 많았어."
"네! 형님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제 고아원으로 돌아가서 푹 쉬어."
"네? 저희들 여기 있을 건데요?"
"왜?"
오히려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태주를 바라보는 백창훈.
"어어, 아버지께서 아무런 말씀 없으셨나요?"
"아! 경호 문제 때문이지?"
"넵!"
"근데 오늘 일 겪고도 그런 생각이 들어?"
"···."
백창훈의 표정이 머쓱해졌다.
"생각해보니 필요가 없겠네요."
"그래, 고아원 아이들이나 돌봐. 백사장님도 지키고."
사실 고아원은 안전할 것이다.
자유 도시 구례에서 고아원은 단 한 군데.
거길 건든다고?
구례 시민들의 분노를 어떻게 감당하려고.
그러나 세상엔 진짜 또라이들이 많다.
구례는 특히 그렇다.
그래서 방심할 수는 없는 노릇.
믿을 만한 사람들이 더 필요하다.
빨리 회사 조직이 갖춰지고 해독제 재료를 손질해줄 인원 정도만 채용해도 다른 약을 추가해 볼 여유가 있는데.
근처 비어있는 땅도 넉넉하게 사뒀으니, 돈 벌면 건물도 새로 올리고.
예산보다 훨씬 일이 커졌다.
적당히 벌어서 자리를 잡으려 했는데.
뭐, 크게 벌이는 것도 나쁘지 않지.
'인테리어는 끝났나?'
태주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건물 5층 꼭대기로 올라갔다.
지하 대피소 다음으로 인테리어를 한 곳이 바로 여기.
'좋네.'
거주공간으로 꾸몄다.
부엌과 침실, 서재, 거실, 욕조가 갖춰진 화장실···.
'내 집이구나.'
기분이 묘하다.
처음으로 내 돈 주고 산 집.
마나 거부자로 태어난 죄, 파주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죽을 줄 알았다.
하지만 생각보다 명이 질겼고, 그래서 새엄마에 의해 군으로 쫓겨나야만 했다.
그리고 믿었던 상관에 의한 살해 위협, 전역하고 구례로 와서 짐꾼 생활···, 짧은 시간이지만 파란만장하다.
'싱숭생숭하기도 하고.'
마침 좋은 사람을 만났다.
이게 가장 큰 소득.
구례가 시작점이 될 것이다.
당당하게 홀로 설 수 있는 기반이 말이다.
슬슬 피곤하다.
잠이나 자야겠다.
※ ※ ※
부스럭, 부스럭.
구례시 변두리 지역, 태주가 사들인 건물 주변.
그곳을 향해 은밀하게 접근하는 일련의 무리들이 있었다.
"크읍! 입안이 바짝바짝 마르네. 약빨이 떨어졌나?"
"너 지금 가지고 온 약은 손대면 안 돼."
"에이, 형님도 제가 또 공과 사는 잘 구별합니다."
"마약쟁이 말을 어떻게 믿어?"
"형님도 마약···, 애호자 아니십니까?"
"이 새끼가?"
자유 도시 구례는 일반 도시들과는 다르다.
평범한 도시도 양지가 있고 음지도 있는 법이지만 구례의 음지는 매우 어둡다.
구례 슬럼가.
마약이 돌아다니는 건 기본.
폭력, 살인, 강간, 인신매매, 마약···, 온갖 추악한 범죄들이 일어났다가, 일어난 지도 모르고 금방 묻히는 곳.
그 구례 슬럼가에서 활동하는 조직이 있었다.
오랫동안 YJ 약국과 거래해온 빌런들, 조훈석에게서 마약을 공급받고 법적으로 해결하지 못한 일을 대신 처리해줬다.
"저게 김태주, 그놈 건물이야?"
"그런 것 같은데요? 맨 위층에 불이 커져 있습니다."
"구례로 들어온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부터 부동산 사들이고 지랄이야."
"모기독 해독제가 대 히트를 쳤으니까요. 포자독 해독제도 곧 나온다고 하니."
조훈석의 의뢰.
모기독 개발자인 김태주를 납치해 강제로 마약을 투여해 중독시키라는 것.
해독제 제조식을 캐내려는 수작 같은데···,
빌런 조직 두목 비기너 등급 각성자 마상식은 살짝 아쉬운 표정.
'쯧! 아깝네.'
놈의 가치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엄청나다.
당장 모기독 해독제만 해도 얼마인가?
마음 같아선 이놈을 납치해서 제조식을 혼자 독식하고 싶지만.
어쩔 수 없다.
조훈석이 공급하는 마약에 이미 길들어져 있어서.
놈이 마약을 끊으면 어떻게 살라고?
'원하는 거 들어 주고, 대신 더 많이 요구해야지.'
마약이 이렇게나 무섭다.
자신보다 약한 놈의 뒷구멍을 닦아줘야 하는 신세.
비상계단을 통해 조용조용 올라가는 빌런 조폭들.
이윽고 문 앞에 도착했다.
마상식은 문고리를 잡았다.
한번 비틀면 문이 열릴 것이고, 안엔 놈이 있겠지.
"들어가면 말 섞지 말고 바로 주사 바늘부터 찔러넣어. 마약 맛 한번 보면 눈깔 획 돌아갈 테니까, 조용하게 차에 태우고 돌아가면 돼."
"흐미, 이 좋은걸···."
"하아, 이 마약쟁이 새끼가, 입맛 다시지 마라! 네 대가리부터 뽑고 시작할까?"
"아닙니다. 바로 찔러넣겠습니다."
마상식은 문고리를 비틀었다.
우드득!
문이 열렸다.
※ ※ ※
태주는 놈들이 비상계단을 통해 걸어 올라올 때부터 이미 깨어있었다.
잠을 자는 동안에도 경계심을 늦추지 않는 것, 당군악이 마교에 쫓겨 강호를 떠돌 때 가졌던 습관 중 하나였다.
'하나, 둘, 셋, 넷···, 총 4명인가?'
어떤 식으로든 공격이 들어올 거란 예상은 했다.
그런데 이렇게 뻔한 식이라니.
하긴!
이 방법밖에 없을 것이다.
점점 여론은 험악해지고, 군납을 통해 재정도 튼튼하고, 거기에 포자 독 해독제가 출시된다고 하니 궁지에 몰렸겠지.
'빨리 끝낼 수 있겠네.'
무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명분이 만들어졌다.
일단 저놈들부터 처리하고.
태주는 천천히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벽에 걸린 코트를 입으려고 했는데···,
순간!
두런두런, 문 바로 앞에서 놈들이 나누는 대화.
'음?'
분명히 들었다.
'마약?'
이게 웬 떡인가.
독정(毒精)의 성취가 깊어지려면 되도록 다양한 종류의 독을 맛봐야 한다.
마약도 독(毒).
전에 맛보지 못한 새로운 성질의 독.
'얼마나 가지고 왔지?'
많이 가지고 왔으면 좋겠다.
혼원무상독령공 4성이면 마약 정도야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고.
절대독마 당군악도 강호를 종횡할 당시, 다양한 종류의 마약을 섭렵했다.
양귀비로 만든 앵속, 갖가지 종류의 몽환약, 절정의 무사도 견디지 못하는 극락향, 음양고, 색혼단···,
태주는 침대에서 일어나다 말고 다시 그대로 누웠다.
그리고 동시에,
우드득!
문이 열렸다.
"이 새끼, 자고 있네요?"
"멍청한 놈, 어떻게 경계심이 없어요. 가진 것도 많은 새끼가···, 뭐해? 빨리 주사해. 혈관에다 깊숙이,"
"네!"
똘마니 하나가 자고 있는 태주의 소매를 위로 올렸다.
그리고 주사 바늘을 찔러넣으려는데···,
순간!
덥석!
"···생각해봤는데 말이야."
똘마니의 손을 잡으면서 몸을 일으키는 태주.
"원래는 그냥 맞으려고 했거든?"
당연히 빌런들은 기겁했다.
"씨발, 깜짝이야."
"···깨어있었네?"
"야! 빨리 찔러!"
"그, 그게 소, 손이 움직이지 않아서."
태주는 놈의 손에서 주사기를 빼앗으며 말했다.
"깜빡 잊어버렸다. 내가 주사 맞는 걸 싫어해. 아프잖아."
그리고는 입에 가져다 대고.
"이 마약, 입으로 먹어도 되지? 효과가 조금 떨어지려나?"
"···어, 그걸 왜 머, 먹어?"
찌익!
주사액이 태주의 입을 통해 안으로 들어갔다.
마상식은 황당했다.
갑자기 깨어난 건 그렇다 치고, 마약인 줄 알면서도 입에 넣어?
경구 투여해도 효과가 나타나긴 하지만···,
아깝다.
혈관에 주사해야 좋은데, 그래야 직방인데.
주사기에 든 마약을 한 번에 다 마신 태주.
그리고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는 마상식과 똘마니들.
"쩝, 맛이 씁쓸하네. ···더 없냐?"
미친놈인가?
"아무렇지도 않아?"
"어."
"막 환각이 보이고 몸이 붕 뜨면서 기분도 좋아지고, 이런 거 못 느껴?"
"흐음, 몇 개 더 먹어보면 알지도 모르겠다. 있으면 종류별로 다 꺼내 봐."
"이런 개새끼가!"
마상식이 주먹을 치켜들며 태주에게 다가왔다.
"넌 그냥 기절시켜 데려가는 게 낫겠다. 약도 아까운 놈이야."
그때였다.
손가락을 들어 총처럼 겨누는 태주,
피식! 핏! 핏!
멈칫!
"···어?"
다가오는 자세 그대로 굳어버린 마상식.
무공의 종류엔 자신이나 혹은 특정 세력만이 알고 있는 독문 무공이 있고, 누구나 다 익힐 수 있는 범용 무공이 있다.
그 범용 무공 중 하나가 바로 점혈법.
지풍을 날려 마혈(痲穴)이나 맥문을 짚어 적을 마비시키는 기술.
이래서 인간이 마수보다 쉽다.
마수는 혈을 짚을 수 없으니까.
"혀, 형님!"
"이 새끼 무슨 짓을 한 거야?"
"잡아!"
스슷!
태주의 신형이 흐릿하게 변하더니 어느새 침대에서 사라져버렸다.
"헉!"
"어, 어디?"
"뒤, 뒤에 있···,"
쿡쿡! 쿠쿠쿡!
점혈은 지풍을 날리는 것보다 직접 손가락으로 찌르는 것이 효과가 더 좋다.
침실에서 마네킹처럼 굳어버린 빌런들.
태주는 놈들의 몸을 여유롭게 뒤졌다.
"어이구야. 많이 가지고 있었네. 이거 내가 가지고 가도 되지?"
여기저기서 주사기가 튀어나왔다.
하나씩 입으로 가져가 쩝쩝 맛을 보면서.
"야이, 씨발 놈아!"
"그거 다시 안 가지고 와?"
"너 내가 반드시 죽인다!"
아혈은 짚지 않았다.
왜냐하면 들을 말이 있기 때문이었다.
먼저 스마트폰을 꺼내 카메라 어플을 실행한 후 동영상 모드로 찍으면서,
"자, 이제 말해봐. 이 일을 시킨 사람이 누구야?"
그러자 미친 듯이 웃음을 터뜨리는 마상식.
"낄낄낄낄, 병신아! 내가 그걸 말할 것 같아? 여기서 죽이든지, 신고하든지 마음대로 해!"
역시 마약에 절어있는 놈이었다.
태주는 마상식의 손목을 잡았다.
"왜? 고문이라도 하게?"
"아니, 치료해주려고."
"치료?"
"네 몸에서 마약의 기운을 흡수할 거야. 완전히는 말고, 걱정 마. 아주 조금은 남겨줄게."
"···뭐?"
"그럼 금단증상이 일어나겠지? 넌 엉엉 울면서 애걸복걸할 테고, 제발 주사 한 대만 놔 달라고, 흠, 알고 보면 이것도 고문의 일종인 건가? 아무튼 시작한다?"
"자, 잠깐!"
태주는 혼원무상독령공을 운기했다.
'마약이라 그런지, 꽤 맛있네.'
맥문을 통해 흡수되는 마약의 기운.
얼마나 착하고 호구 같은 짓인가.
자신을 납치하려고 찾아온 놈에게 마약 치료라는 자비를 베풀다니.
"아, 안 돼! 제, 제에발, 멈춰···,"
마상식은 사시나무 떨듯 몸을 떨어댔다.
약 기운이 떨어지자 덮쳐오는 금단증세.
"큭! 끄으윽, 키익, 헤으으윽, 학학! 크크극!"
괴기한 음성으로 반쯤 미쳐가는 마상식.
그걸 본 다른 약쟁이들은 공포에 질렸다.
"다, 다 말할게요."
"조훈석이 시켰습니다!!!"
"전 그냥 따라만 왔어요!"
하여간 양아치들이란.
의리도 없고, 양심도 없다.
이제 증거도 얻었겠다.
다음 차례는?
'자경단에 신고나 해볼까?'
어떻게 처리하는지 정말 궁금하다.
< 독마는 때론 자비롭다. > 끝
ⓒ 꾸찌꾸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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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스터라고? 그게 뭔데?(1) >
구례시의 치안은 자치위원회 자경단이 담당한다.
안정된 도시 유지를 위해 제국이 민간에게 합법적인 무력 사용권을 인정한 것, 물론 감시와 관리를 받는다는 조건으로.
제국에서 파견된 차관급 사무관 지광인이 상임위원을 맡아 자경단을 감시하고 견제 역할을 하고 있다.
자경단은 캐슬 바깥에 있다.
자경단 구성원은 무력이 필요하기에 노고단 길드의 각성자들이 중심.
이것이 노고단 길드의 특이점이다.
사냥보다는 구례시 치안에 더 신경을 쓴다.
돈은 어떻게 버냐고?
세금이 있지 않나?
가끔 사냥을 나가기도 하지만 세금으로 길드 유지비는 충분히 나온다.
구례시 자경단에 아침 일찍 범죄 신고 전화가 걸려왔다.
신고를 받은 노고단 길드원은 내용이 심상치 않아 곧바로 길드장 사무실로 달려갔고.
"뭐야? 무슨 큰일이라고 나한테까지 왔어? 너희들이 알아서 처리하면 안 돼?"
이정학 길드장은 귀찮은 안색으로 길드원을 다그쳤다.
"그, 그게 신고자 이름이."
"누군데?"
"김태주입니다."
"그건 또 누구야? 내가 그런 듣보잡까지 신경써···, 뭐?"
순식간에 표정이 돌변한 이정학.
"김태주?"
"네."
"모기 독 해독제 개발자 김태주?"
"맞습니다."
"신고 내용은?"
"여기···,"
자경단 담당 길드원이 미리 정리한 신고 녹취본을 건넸다.
"직접 읽어보십시오."
이정학은 천천히 읽어내려갔다.
갈수록 그의 얼굴색이 점점 붉어졌다.
"하아, 돌아버리겠네."
양아치 마약쟁이 4명이 김태주의 집을 침입해 그를 납치하려다 발각됐단다.
현재 놈들을 억류 중이고, 용의자 이름도 나와 있었다.
'마상식, 이 병신 새끼가.'
유명한 약쟁이 조폭 새끼들, 일명 상식이파, 두목 마상식은 각성자이다.
이들은 YJ 약국 대표 조훈석이 즐겨 사용하는 도구들이다.
이정학도 알고 있다,
조훈석이 이들에게 마약을 공급하고 있다는 걸.
여긴 자유도시 구례.
마약이야 슬럼가에 굴러다니는 것.
다 조사해서 발본색원하려면 인력과 돈이 얼마나 드나?
주시는 하고 있었지만 지금까진 커다란 문제는 일으키지 않았기에 내버려 뒀다.
또한 조훈석이 마약을 무기로 제법 잘 통제해왔고.
'이왕 시작했으면 성공했어야지. 멍청하게 실패를 해?'
더구나 배후도 밝혀냈단다.
증거도 있으니 와서 데려가란다.
철저하게 수사해서 자경단의 신뢰를 보여달라는 말도.
"제기랄!"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다.
조훈석은 구례의 유지이자 자치위원 중 한 명, 위원회 안에서 나름의 세력도 가지고 있다.
이놈을 처벌하기란 매우 부담스러운 일,
반면 김태주는 구례에 온 지 얼마 안 되는 뜨내기라 하더라도 무시 못 할 배경이 있는 놈.
백스 드럭샵 대표이자 백스 고아원 원장인 백홍표, 구례 안에서 사람들에게 신망이 매우 높은 그가 뒤에 있다.
어느 쪽도 쉽게 처리하지 못한다.
"후우, 어째 불안불안하더니."
일단 현장 확인부터 해보자,
"애들 불러, 즉시 김태주 집으로 출동한다."
"네! 알겠습니다."
이정학은 즉시 출발했다.
자동차 안에서도 이정학의 고민은 여전했다.
'어떻게 처리해야 하지?'
가장 좋은 방법은 조훈석 멱살 끌고 김태주 앞에 대령해서 사과를 시키고 합의를 유도하는 것,
하지만 조훈석이 순순히 응할까?
미친 척하고 끝까지 발뺌하면?
갈등이 장기화될 수도 있다.
자경단으로서도 큰 부담이다.
슬슬 다 와 간다.
저기 저 5층짜리 건물 앞 공터.
"아씨!"
4명의 남자들이 줄에 묶여 땅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상식이파 놈들이었다.
놈들 뒤에선 백홍표와 회색 코트를 입은 남자, 그리고 무기를 든 사람들이 있었다.
무기를 든 이들은 원생 출신의 각성자, 혹은 적합자일 테고.
끼익!
자동차가 멈추고 이정학이 내렸다.
그러자 우르르, 그를 보좌하듯 함께 내리는 노고단 길드원들.
이정학은 잔뜩 성이 난 듯 다른 사람들은 쳐다보지도 않고 묶여있는 마상식에게 걸어가 놈을 냅다 걷어찼다.
"이 좆 같은 약쟁이 새끼! 내가 언제고 너 사고 칠 줄 알았다."
퍽퍽! 퍽퍽퍽!
"아악! 악악! 사, 살려주세···,"
"아파? 아프다고? 넌 아플 자격도 없어!"
스르렁!
이정학이 검을 뽑았다.
"폐하께서 내게 내려주신 권한으로 즉결처분을 집행한다. 이 씨발놈아!"
"허어어억!"
태주는 그런 이정학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사실 여부를 따져보지도 않고 오자마자 한다는 짓이 즉결 처분?
그래서 나섰다.
"그만하시죠."
"뭐야? 넌 누구야?"
"김태주라고 합니다."
"아···,"
그제서야 태주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는 이정학.
"이제야 보는군. 한번은 만나고 싶었는데, 모기독 해독제 만들어줘서 고맙다는 말도 할 겸."
"그런가요? 아무튼 마상식 이놈은 주요 증인입니다. 수사도 안 하고 죽여버리면 안 되죠."
"주요 증인이라."
"여기···,"
태주는 스마트폰 동영상을 재생했다.
- 배후는 YJ 약국 대표 조훈석입니다. 놈이 납치해서 마약을 중독시키라고···, 아아! 제발 주사기 한 대만 주세요.
묵묵히 영상을 시청하는 이정학.
"좋아, 다 좋은데, 이놈은 약쟁이잖아. 진술의 신빙성이 있다고 생각해?"
"그건 자경단이 밝혀야죠. 제가 수사 권한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조훈석을 조사하라고?"
"당연한 거 아닌가요?"
이정학은 지그시 태주를 노려봤다.
감히 네가 뭔데 이래라저래라 참견하냐는 표정.
태주도 이정학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이정학 길드장은 마스터다.
무공 수위로 따지면 얼마나 될까?
마주해보니 자연스레 깨달았다.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기세, 잘 단련된 체형, 절제된 몸짓, 그리고 형형한 눈빛.
마스터인 아버지와 함께 살 때는 마스터의 경지가 어느 정도인지 몰랐다.
마나 거부자 신세였는데 어떻게 알아?
그저 옆에 사람들이 마스터라고 하니까 그런가 보다 했지.
하지만 자신도 어느 정도 경지에 올라오니 알겠다.
'꽤나 강하네.'
저자와 맞붙으면 몇 초나 버틸까?
이윽고 입을 여는 이정학.
"내가 제안 하나 하지."
"뭔데요?"
"여기 이 4명, 모가지 따는 걸로 마무리 짓는 게 어때?"
"조훈석은요?"
"물론 그냥 넘어가면 안 되지. 내가 끌고 와서 반드시 사과시킬 거야."
"사과? 살인 청부가 명백한데, 사과로 끝내겠다는 말씀입니까?"
"물론 금전적인 보상도 따로 하고."
"제가 돈 때문에 이러는 거 같아요?"
이정학은 심기가 불편한 듯 잔뜩 눈살을 찌푸렸다.
"뭔가 착각하는 모양인데."
그의 손에 들린 검이 천천히 위로 올라갔다.
"여기 자유도시 구례에서 내 결정이 바로 법이야."
"동의할 수 없습니다만."
"네 동의는 필요 없어. 내가 하자고 하면 따르면 그만이야."
마상식의 머리로 떨어져 내리는 이정학의 검.
"어디 한번 막아보던가."
순간!
츠핏!
채챙!
묵직한 단검 하나가 이정학의 손에 들린 검신의 옆면을 때렸다.
탈명비도로 펼쳐 낸 일섬(一閃).
그로 인해 마상식을 비켜나간 검로.
'음? 이게 어디서?'
누군지 알겠다.
이정학은 재미있다는 듯 태주를 보며 미소 지었다.
"인제 보니 한 수가 있었군. 이놈들도 네가 잡았나?"
그리고는 자신의 옆면을 때리고 땅에 떨어진 탈명비도를 보면서,
"투척 스킬? ···그런데 넌 각성자도 아니잖아. 잘 해봐야 적합자일 테고, 스킬도 아니면서 이런 위력이 나와?"
이정학은 묘한 눈으로 태주를 다시 봤다.
적합자도 마나에 의해 강화된 신체를 가진다.
그러나 한계는 명확하다.
아무리 날뛰어봐야 비기너를 넘지 못한다.
각성자는 스킬을 가지고 있으니까.
"뭐, 그건 그렇고."
이정학의 목소리가 거칠어졌다.
"감히 내게 칼을 던졌다 이건가?"
성큼,
이정학이 태주를 향해 한 발짝 걸음을 옮겼다.
"대체 무슨 배짱인지 모르겠군. 모기독 해독제 개발자가 그렇게 대단한 건가?"
우우웅!
한층 더 강해지는 마나의 소용돌이.
이정학의 검이 우윳빛으로 빛났다.
마스터의 상징인 마나 블레이드.
그러나 태주의 표정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그저 코트 앞섶을 살짝 벌리고 혼원무상독령공을 운기할 뿐.
"아니면 그 희한한 투척술을 믿는 거냐?"
이정학이 검 끝을 아래로 향한 채, 한 걸음 더 다가왔다.
저릿저릿!
피부가 베일 정도로 강해지는 마스터의 기세.
"이도 저도 아니면 장군인 네 애비를 믿고? 그런데 어쩌나? 이미 호적에서 파였다던데."
그제야 살짝 변한 태주의 표정.
'호적에서 파였다고? ···그랬구나.'
아버지도 자신을 포기한 모양.
하지만 달라질 건 없다.
애초 홀로서길 결심한 상태.
서운한 감정도 들지 않았다.
아버지를 이해하고 있었으니까.
"진짜 궁금해. 네가 믿는 구석이 뭔지?"
"정당한 요구입니다. 오히려 제가 궁금하군요. 길드장님의 믿는 구석이 뭔지."
"하아, 건방진 새끼가···,"
이정학이 검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화들짝 놀란 백홍표가 두 사람 사이로 달려왔다.
"멈춰요! 이정학 길드장!"
"백사장은 끼어들지 마! 죽기 싫으면,"
스웅!
"허억!"
달려오다가 무형의 힘에 밀려 뒤로 나동그라지는 백홍표.
"아버지!!!"
"야이, 개새끼야!"
백홍표가 쓰러지는 걸 본 백창훈의 눈이 돌아갔다.
원생 출신의 적합자도 마찬가지.
모두 병기를 빼 들고 전투태세를 갖췄다.
이정학은 기가 막혔다.
"···개새끼? 참나! 내가 우스워 보였나? 이런 하찮은 놈들까지,"
구례시 노고단 길드 길드장, 그리고 마스터.
지금까지 자신에게 이렇게 겁 없이 달려든 놈들은 단 하나도 없었다.
"좋게좋게 끝내려 했는데···,"
그래서 백홍표도 다치지 않게 그저 밀어버렸다.
"내 호의를 무시해?"
이정학의 신형이 갑자기 사라졌다.
다시 나타난 곳은 백창훈의 바로 앞.
"팔 하나는 잘라주마. 네 잘못을 반성할 명분을 만들어 주지."
그리고 김태주에겐 까불지 말라는 경고의 의미도 알려주고.
마나 블레이드가 백창훈의 어깨에 떨어졌다.
바로 그때!
츠핏!
'헛!'
뒤통수를 향해 날아오는 날카로운 예기.
휘릿!
채앵!
검을 휘둘러 막았지만,
츠핏, 츠핏! 츠피피핏!
좁고 가느다란 나뭇잎 모양이 투척 무기가 자신의 급소를 노리고 집요하게 날아왔다.
채챙! 챙챙! 채채챙!
'이런···,'
이정학은 살짝 놀랐다.
빠른 것도 빠른 거지만 투척 무기의 날아드는 경로가 직선이 아니다.
어떤 것은 휘어지고, 어떤 것은 바로 앞에서 꺾이고, 빠르게 왔다, 느리게 왔다, 어떤 것은 상체를 노렸다 하체로 떨어지고, 또 어떤 것은 하체를 노렸다 상체로 올라온다.
하나 정도 맞아 줄 수는 있었다.
장비도 입었고, 그깟 투척 무기가 자신의 몸을 상하게나 할 수 있을까?
그러나 암기가 짓쳐 날아올 때 느낀 위기감, 보기만 해도 기분 나쁜 녹색의 기운.
저건 맞으면 안 된다.
왠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한편 태주는 분노했다.
전에 경험하지 못한 생소한 감정이었다.
생판 남인 사람임에도, 그가 받는 핍박에 분노하고 있었다.
'이 새끼가, 백사장님을···,'
자신이 선택한 사람이다.
함께 미래를 만들어가자고 약속한 동업자이다.
태주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타오르는 분노, 고양되는 투쟁심, 그럴수록 냉정해지는 마음.
뭐? 마스터라고?
그게 뭔데!
스슷!
또 다시 팔목 보호대에서 빠져나온 유엽비도 6자루, 오른손과 왼손에 각각 3개씩.
유엽비도가 시퍼렇다.
독정에서 흘러나온 독기.
지금까지 태주가 섭렵한 모든 독의 정수가 유엽비도에 씌워졌다.
독더덕, 독도라지, 변종 칠점사, 산공독인 모기독, 지리산의 각종 독초, 독 발톱 삵, 포자 독과 마약.
스쳐도 중독이다.
절대독마의 지독함이 얼마나 무서운지 보여준다.
물론 마스터의 두꺼운 피부를 갈라야 하지만.
이정학도 당황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김태주가 생각보다 강해서?
아니다.
저 정도 강함은 문제도 되지 않았다.
'이놈···,'
긴 코트를 입고 투척 무기를 쥔 두 손을 밑으로 늘어뜨리며 우뚝 선 김태주.
마스터인 자신도 위축감을 느끼게 하는 존재감.
김태주는 거대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냥 그랬다.
지금껏 수많은 강자와 맞서봤지만 저런 느낌을 주는 자는 처음.
삼한 제국 최고의 각성 마스터인 황제와 만나면 이 느낌일까?
원래 전투라는 건 기세 싸움, 그것이 꺾이면 이미 진 거나 마찬가지.
그러나 이정학은 자신의 감정에 동의하지 않았다.
'씨발 새끼.'
두려움을 떨쳐내려는 듯, 이정학은 검 자루를 꽉 꼬나쥐고 좌우 지그재그로 스텝을 밟으며 김태주에게 쇄도했다.
츠핏! 츠피핏!
채챙! 챙! 챙챙!
쏟아지는 암기.
그걸 검으로 다 떨쳐내는 이정학.
그런데!
치짓!
암기 하나가 손등을 스치고 지나갔다.
이정학의 오른손등에 가로로 아주 작게 맺힌 혈흔.
우우우웅!
상처를 입은 것에 분노한 듯 이정학의 마나 블레이드가 한층 더 빛을 발했다.
"이놈!!!! 사지를 잘라서 오크 먹이로 던져주마."
"혀가 길다. 깝치지 말고 빨리 들어와!"
태주는 이정학의 돌진에도 물러서지 않았다.
고작 마스터 따위에게 절대독마가 도망친다고?
차라리 팔 한쪽을 던져줄지언정 후퇴란 있을 수 없다.
물론 위험하긴 하다.
마스터의 마나 블레이드.
자신도 장담할 수 없다.
하지만 피해를 입더라도 모조리 죽인다.
자치위원회, 천왕그룹 회장, 제국에서 파견된 고위공무원, 노고단 길드 자경단, 약국 협의회···, 어느 하나라도 남겨두지 않을 것이다.
자신은 변했다.
맞다.
찌질했던 마나 거부자로서의 김태주는 사라졌다,
다른 세상의 나 자신, 같은 영혼인 절대독마 당군악과 심령의 연결이 이루어지고 난 뒤 그렇게 됐다.
솔직히 그게 자신의 본성일지도 모르지.
마나 거부자라는 천형에 얽매어 잠자듯 숨어있었던 진정한 나.
태주는 코트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단전의 독정(毒精)이 파르르 요동쳤다.
해보자.
이정학의 마나 블레이드에 몸이 잘리든가, 아니면 비폭으로 놈을 벌집으로 만들든가.
태주의 양손이 진한 녹색빛으로 물들었다.
바로 그때!
투타타타타타···.
갑자기 들리는 헬기 프로펠러 소리.
모두의 눈길이 하늘로 향했다.
어느새 헬기가 공중에 떠 있었다.
착륙하기도 전에 공중에서 이정학과 태주가 맞선 중간지점에 뛰어내린 흰머리 성성한 남자.
슈우웃! 팍!
한쪽 팔과 한쪽 무릎을 땅에,
남자는 일명 히어로 랜딩을 성공적으로 펼치며 내려왔다.
"어이, 이정학이!"
그를 본 이정학의 얼굴이 사정없이 일그러졌다.
"오랜만이야? 늘 변함이 없어 좋군그래."
"···오중장님."
지리산 마수 방어군단 오진형 군단장이었다.
< 마스터라고? 그게 뭔데?(1) > 끝
ⓒ 꾸찌꾸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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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스터라고? 그게 뭔데?(2) >
인류가 마나의 침범에 서서히 적응해나갔던 시점에서 제일 먼저 나타난 이들은 마나 순응자였다. 마나를 받아들여 적응한 사람들.
뒤를 이어 마나로 인해 육체 능력이 향상된 마나 적합자들이 나타났고.
이 시점에서 마나 거부자라는 말이 생겼다. 변화에 도태된 사람들이라고 할까?
그리고 마침내 각성자.
시스템 레벨업을 통해 맨몸으로도 마수와 맞서 싸우는 이들.
300년이 지난 지금.
인구 구성비로 따지면 마나 거부자가 전체의 5% 정도, 마나 순응자는 70%, 나머지가 마나 적합자와 각성자.
각성자의 정확한 숫자는 아무도 모른다.
삼한제국의 인구가 6억인데 한 200만은 충분히 넘지 않겠냐고 추측하는 학자들도 있다.
군에 있는 각성자들은 통계에 잡혀있다.
물론 군이 정확하게 밝히진 않는다.
마스터도 마찬가지, 숫자가 정확히 몇 명인지는 모른다.
군의 특성상 마스터들은 그 신분이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숫자를 짐작할 수 있지만 민간은 그렇지 않다.
공식적으로 알려진 자들도 있고, 자신이 마스터라는 걸 숨기고 조용히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고.
노고단 길드 이정학 길드장은 알려진 마스터.
구례시를 관리하는 3개의 축 중에 하나.
그래서 지리산 마수 방어군단 오진형 중장과도 일면식이 있었다.
"뭐하러 오셨습니까? 여기 자·유·도·시까지."
"엉? 내가 이곳에 오는 것도 자네의 허락을 맡아야 하나?"
"설마요, 구례에서 일어난 사건에 군이 개입하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되는지 물어보는 겁니다."
"에이, 내가 황제 폐하의 뜻을 거역할 리 있나? 군인으로 온 거 아니네. 나도 자유인의 한사람으로 왔어. 그냥 오진형씨라고 부르게."
뛰어내린 사람은 오진형 혼자만이 아니었다.
슈슛! 슈우웃! 탁! 탁! 탁!
간단한 체육복 차림의 남자 3명도 뛰어내렸다.
한쪽 뺨이 턱과 연결되는 부분에 흐릿하게 새겨진 문양.
각성자를 나타내는 얼굴 문양은 등급이 올라갈수록 더 작고 희미해진다.
즉 저들은 모두 마스터다.
구준영 소장, 박필성 소장, 홍준태 소장, 지리산 마수 방어군단 소속 사단의 사단장들.
'씨발,'
이정학은 입술을 잘끈 깨물었다.
산 넘어 산.
이정학의 마음이야 어떻든지, 오진형은 유들유들한 태도로 백홍표에게 다가가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백사장이 불렀군.'
모기독 해독제 군납 계약.
도와달라는 명분은 충분했겠지.
오진형 뿐만 아니라 3명의 마스터도 딴청을 피웠다.
"나도 구례에 놀러 왔어. 구준영이야, 구씨라고 불러."
"그래, 군복도 안 입었잖아."
"나도 준태라고 불러줘."
"헬기 타고 드라이브하던 중이었는데, 진형이 형님이 갑자기 뛰어내리더라고, 그래서 우리도 따라 내렸지."
드라이브는 개뿔.
다 알고 왔으면서.
지리산 방어군단의 모든 마스터들이 이곳에 나타났다.
그리고 줄줄이 백홍표에게 다가가.
"아이고, 백사장님, 어디 다친 데는 없습니까?"
"누가 그랬어요? 말만 해주세요."
"보약이라도 한 제 지어드려야 하나?"
"그러지 말고, 네 부대에서 노는 장교들, 경호 차원으로 몇 명 보내라. 우리 군에 해독제 납품하는 분이신데 험한 일 당하면 안 되지."
"그럴까?"
백홍표는 그들과도 각각 손을 잡아가며 감사의 의사를 전달했다.
오늘 아침 김태주에게서 걸려온 전화.
자택을 침입해서 자신을 잡아가려는 상식이파 일당 4명을 붙잡았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리 놀라지 않았다.
마상식은 각성자.
조직원들도 마약에 찌들어 사는 미친놈들.
반면 김태주는 각성자가 아니다.
그러나 창훈이에게 김태주의 숨겨진 실력을 미리 전해 들었다.
폭풍 족제비 20마리를 한 방에 보내버리는 실력자였다고?
하긴!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모기독과 포자독의 해독제를 만드는 사람인데, 결코 평범한 사람이 아니겠지.
그런데 뒤를 이어서 했던 김태주의 말.
구례 자치위원회 자경단에 신고했으니 자신은 신경 쓰지 말라고.
신고가 들어가면 이정학 길드장이 직접 움직일 터, 그만큼 큰 사안이니까.
이건 좋지 않다.
자경단은 정의를 표방하는 조직이 아니다.
이정학 길드장은 더더욱 그렇고.
김태주 또한 고분고분한 인물이 아니다.
가끔씩 그를 접할 때마다 느껴지는 카리스마.
마스터라고 해서 그가 고개를 숙일까?
만에 하나 충돌이 생기면?
그래서 오진형 중장에게 전화를 했다.
이런 이런 일이 생겼으니 잠시 와달라고.
그리고 예상은 적중했다.
지켜보던 이정학 길드장은 한숨을 쉬었다.
'어쩔 수 없군.'
오진형 중장을 비롯한 마스터 넷.
게다가 군바리 아닌가.
대화로 풀 수 있는 자들이 아니다.
이만 물러난다.
여기 계속 있다간 쓰러질 것 같았다.
그러나 반드시 책임을 물을 것이다.
제군 황실에서 파견된 지광인 사무관을 통해 보고가 올라가면 오진형도 절대 발뺌하지 못할 테고.
"그럼, 담소들 나누십시오. 전 이만."
"벌써 가려고? 좀 다 있다가 가지 그러나."
"제가 생각보다 바쁜 몸입니다. 한가하게 헬기 타고 드라이브 다닐 시간도 없고."
"음? 그건 좀 의외인데?"
"뭐가 말입니까?"
"아니, 바쁘게 돌아다녔으면 구례에 이런 쓰레기들이 설치고 다니는 걸 애초에 막았어야지. 대체 자경단이 하는 일은 뭔가? 내가 지원 병력 몇 명 보내줘?"
"···됐습니다."
끓어오르는 분노를 내심 참으며 자동차로 돌아가는 이정학.
그리고 같이 온 길드원들에게 말했다.
"상식이파 새끼들, 다 차에 실어. 돌아가서 처리한다."
하지만 그대로 두고 볼 오진형이 아니었다.
"어허, 어림도 없지. 걔들은 두고 가. 내가 데려갈 거야."
이정학의 얼굴이 시뻘개졌다.
부들부들 떨리는 입술.
"군에서 개입하지 않는다면서요?"
"쯧, 내 친·한·친·구를 납치하려던 놈이야. 그걸 알고도 가만있으라고?"
"이건 명백한 칙령 위반입니다. 황제 폐하께서 아시기라도 하는 날엔···,"
순간!
화아아악!
오진형의 전신에서 일어나는 가공할 기세.
같은 마스터라고 해서 가진 능력이 다 똑같지는 않았다.
"어이! 이정학이!"
"···무슨?"
"여기서 네 모가지 따버리면 황제 폐하께서 내게 무슨 벌을 내릴 것 같나?"
"당신, 이러고도···,"
"한번 맞춰봐. 경고나 감봉? 근신? 황궁에 소환되어 갈 수도 있고, 뺨을 몇 대 때리실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 정도면 충분히 감수할 수 있어. 네놈 하나 죽이는 데 아무런 걸림돌이 되지 않아."
"···."
3명의 사단장 마스터들도 기세를 끌어올리며 이정학을 노려봤다.
"눈 안 깔아? 구례에서 사람들이 떠받들어주니 아주 간이 배 밖에 나왔구나."
"설마 우리가 널 건드릴 수 없다고 생각하냐?"
"착각하지 마라. 나 명령에 죽고 사는 군바리야. 지금이라도 중장님이 지시하시면 즉시 널 죽여버린다. 까짓거, 옷 벗으라면 옷 벗지."
피식, 하고 웃는 오진형 준장.
"구준영 소장, 자네가 전역하면 황제 폐하께 구례시 자치위원회에 추천해주지. 저놈 자리가 빌 테니까."
"어후, 진짭니까? 저야 좋죠."
"···구소장 말고 저 어떻습니까? 제가 하면 안 되겠습니까?"
"명령만 내리십시오. 아무나 먼저 죽이는 놈이 옷 벗고 전역하는 겁니다. 전 자신 있습니다."
이정학은 아무 말도 못 했다.
노고단 길드는 구례 최고의 길드.
길드 수익도 엄청나다.
제국 내에서도 이렇게 돈이 많은 길드는 몇 개 되지 않을 정도로.
그러나 규모 면에선 그리 큰 길드가 아니다.
삼한제국 전체로 보면 중위권 정도에 머무른다.
노고단 길드 세력이 커지는 걸 못마땅해하는 다른 상임 위원들의 견제 때문에 길드의 몸집을 키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마스터인 길드장 이정학을 제외하고는 다들 고만고만한 길드원들의 수준.
마스터들의 힘겨루기.
하지만 태주는 끓어오르는 살기를 다스리느라 다른 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후우, 후우.'
실수했다.
멍청한 짓이다.
영혼은 천하제일의 절대 고수.
그러나 육신은 아직 그에 미치지 못하고.
살기는 적을 충분히 죽일 수 있다고 확신했을 때 풍기는 것이다.
어설픈 살기는 상대방에게 경계심만 가지게 해주는 꼴.
태주는 천천히 혼원무상독령공을 운기했다.
마음이 고요해진다.
힘겨루기에서 패배한 이정학은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그리고는,
"모두 차에 타! 돌아간다."
차에 타고 문이 닫히자 그제야 긴 한숨을 토해내는 이정학.
솔직히 서 있을 힘도 없었다.
체면 때문에 버티고 있었던 거지.
오진형과 마스터 때문에?
아니다.
"벼, 병원으로 가!"
"···네?"
"빠, 빨리! 크흑!"
김태주의 투척 무기에 오른손등에 상처가 생겼다.
그저 살짝 긁힌 정도였는데, 상처로부터 음습한 기운이 혈관을 타고 심장으로 침범하고 있었다.
마나를 일으켜 필사적으로 틀어막는 중.
'이, 이게 무슨!'
설마 독인가?
그럴 것이다.
독에 능통한 놈.
그러니 해독제도 척척 만들어 내겠지.
마스터 정도가 되면 만독불침까진 아니더라도, 독에 대한 상당한 저항력을 가진다.
실제로 많은 독을 경험해봤고.
그런데 이 독처럼 지독한 것은 처음.
"아, 아직 멀었나?"
"곧 도착합니다."
"으, 응급실 의사들 대기시키라고 해!"
한편 태주는 노고단 길드원이 빠져나가는 걸 끝까지 지켜본 후, 백홍표 사장에게 다가갔다.
"다친 데는 없으시죠?"
"걱정 마세요. 멀쩡합니다. 그래도 이정학 길드장이 나름 사정을 봐줘서···."
"그놈이 착해서 그런 겁니까? 백 사장님 다치게 하면 큰일 나니까 눈치 보고 그랬겠죠."
말로는 괜찮다고 하지만 정말 다친 데는 없을까?
태주는 백홍표를 꼼꼼히 살폈다.
다행이다.
넘어지면서 쓸린 상처 말고는 없었다.
그때 오진형이 슬며시 옆에 와서 태주를 보며 말했다.
"자네가 혹시 모기독 해독제 개발자···,"
"네, 처음 뵙겠습니다. 김태주입니다."
"이제야 만나게 되는군. 오진형일세."
굳게 손을 잡는 두 사람.
마나의 기운이 손을 통해 들어왔지만 괘념치 않았다.
서로가 가진 성취를 가늠해 보는 행위.
강호에서도 흔하게 일어난다.
그래서 슬쩍 경력을 흘려주고는,
"이렇게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잠깐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물어볼 것이 많아."
"물론이죠. 얼마든지요."
"하하하, 귀찮게 하지는 않겠네."
좀전의 기세는 어디 가고 인상 좋은 중년인으로 변한 오진형.
"그런데 말이야, 포자 독 낙타 고라니 해독제 있잖은가, 혹시···?"
"개발 완료했습니다. 곧 양산 작업에 들어갈 겁니다."
"오오!"
"고기도 있는데 드셔보시겠어요?"
"저, 정말인가?"
그러자 3명의 사단장 마스터들도.
"저어, 김태주님, 우리 몫도?"
"네, 많이 있습니다."
찌릿! 노려보는 오진형.
"자네들은 저 쓰레기들이나 잘 감시해. 저러다 도망가면 어떡해?"
"하하하, 걱정 마세요. 꽁꽁 묶여있어서 우리 아이들이면 충분히 지킬 수 있습니다."
백홍표가 도와주자 다시 얼굴이 밝아지는 마스터들.
그럴 만도 하다.
무려 고라니 고기 아닌가?
※ ※ ※
지글지글, 피어오르는 연기.
고라니 고기 파티.
숯불은 밖에서 피웠다.
철망 위에서 먹음직스럽게 익어가는 고라니 고기.
밑간도 하고, 야채도 쌈장도 곁들이니 정말 끝장났다.
술이 없으면 되나?
여러 이야기가 오고 갔다.
주로 포자 독 낙타 고라니 해독제 납품 문제.
가격과 물량에 논의하고, 서로 밀당도 해보고, 구두로 계약까지 하고.
오진형은 만족했다.
태주가 지리산 마수 방어군단만을 통해서 해독제를 공급하기로 약속했다.
군납에만 한정되는 것이긴 하지만 이것도 어떻게 보면 독점 공급.
'헬기 타고 사단장 몇 명 데려와서 무력 시위 한번 했더니 이렇게 엄청난 소득을 얻게 될 줄이야.'
태주도 만족했다.
해독제를 만들려면 재료가 필요하다.
혼자서 그 많은 재료들을 어떻게 채집해?
그래서 오진형에게 말했다.
군에서 재료를 채집해서 공급해주면 안 되겠냐고, 공짜로 부탁하는 게 아니라 정당하게 값을 쳐서 매입하겠다고.
오진형은 흔쾌히 수락했다.
당장 내일부터 채집 작전 실행하겠다면서.
그 외에도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갔다.
이상한 건 아버지 김웅방 준장과 파주 영지에 대한 이야기는 일절 흘러나오지 않았다.
태주도 말을 꺼내지 않았고, 오진형 중장도 그랬다.
군부의 같은 마스터라면 서로 안면도 있을 텐데 말이다.
아마도 얽힌 사연을 알고 있는 모양.
술자리가 파하고 헬기가 도착했다.
묶여있는 상식이파 놈들을 헬기에 태운 후,
"이놈들은 내가 알아서 처리하지. 그리고 이놈들 뒤에 있는 배후도."
"안 그러셔도 됩니다만."
"쯧, 이건 사적인 문제가 아니네. 우리 지리산 마수 방어군단의 안위가 걸린 문제야. 당장 이놈들 때문에 해독제 생산이 차질을 빚으면 어떻게 되겠나?"
"으음···, 알겠습니다."
헬기가 군단 본부를 향해 날아올랐다.
태주는 술에 취해 얼굴이 붉어진 백홍표를 보며 말했다.
"우리도 슬슬 준비해야겠습니다."
"그래. 군에서 재료가 들어오면 바빠질 거야."
이정학과의 돌발적인 충돌, 그리고 술자리를 통해 한껏 가까워진 두 사람.
태주는 부담스러우니 이제부터 말을 편하게 해달라고 부탁했고, 백홍표는 이를 받아들였다.
"직원이 필요할 것 같아요. 제 지시대로 독초를 다듬고 준비해줄 인원이."
"혹시 많이 위험하냐? 적합자 위주로 알아볼까?"
"아뇨. 일반인이라도 방독면이나 방호복 입고 작업하면 전혀 문제없을 겁니다. 재료 중에 포자 독처럼 위험한 독은 딱히 없어요."
"그럼 쉽지. 우리 아이들도 있고."
"믿을만하겠네요."
월급은 넉넉하게, 아니 대기업 경력직 뺨칠 만큼 챙겨줘야지.
사업주와 직원들 간의 신뢰는 돈에서 나오는 법.
그러고 보니 돈 들어갈 곳이 많다.
저 건물 하나만으로는 너무 좁다.
현재 계약된 물량을 치고 나가기도 힘들 터.
'공장도 짓고, 창고도 짓고.'
정 안되면 약품 하나 더 추가하자.
사람들이 모여들면 여유가 생길 테니까.
< 마스터라고? 그게 뭔데?(2) > 끝
ⓒ 꾸찌꾸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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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스터라고? 그게 뭔데?(3) >
지리산 마수 방어군단의 본부는 산청시에 있다.
산청으로 가는 헬기 안.
"모두 어떻게 생각해?"
오진형 중장의 물음에 구준영 소장이 먼저 답했다.
"각성자가 아닌 건 분명하지만, 뭔가 확실히 있습니다."
"그 뭔가가 뭔데?"
"굉장히 자연스러웠습니다. 우리도 나름 군 지휘관이고, 마스터인데···,"
"위축되는 거 하나도 없지?"
"네! 카리스마가 몸에 배어 있었습니다. 군 정보부에서 조사한 파주 영지 마나 거부자 김태주가 맞나 싶을 정도로."
박필성도.
"카리스마뿐만이 아닙니다. 이정학이와 충돌했다던데, 버틴 걸 봐도."
"맞아. 악수할 때 슬쩍 경력을 집어 넣어봤더니, 웃으면서 흘리더군."
"···흘렸단 말입니까?"
"그래, 물론 기운은 익스퍼트에 못 미치지만 그걸 다루는 기술은 익스퍼트 수준을 뛰어넘는다고 할까."
"이상합니다. 간혹, 각성하지 않았어도 각성자보다 강한 적합자가 나타나긴 하지만, 김태주는 마나 거부자 아닙니까?"
"마나 거부자가 어때서? 어떤 방식으로든 천형을 극복했겠지."
반면 홍준태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래서 전 마음에 걸립니다. 역시 이정학이를 죽여야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지. 분명히 놈에게 찍혔을 테고."
"벌써 짧은 기간에 해독제를 둘씩이나 만들었습니다. 그중 하나는 전략 물자고요. 우리 군을 위해서라도 지켜야 할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때 이정학이 조금 이상하지 않았나? 그놈, 마치 똥 마려운 개처럼 안절부절못하던데."
모두 다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이상하긴 했다.
"아무튼 조훈석은 처리하자고. 준태, 네가 맡아."
"당장 기동 특전 요원, 구례로 파견하겠습니다."
"괜히 증거 같은 거 남기지 말고!"
"넵!"
오진형은 박필성과 구준영에게도 명령을 하달했다.
"자네들 부대에서 10명씩 차출해. 익스퍼트급 장교 한 명은 무조건 포함해서, 임무는 해독제 생산 공장 및 고아원 경비."
"사단 직속 수색대 1개 분대 준비하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오진형은 무심한 눈으로 헬기 구석에 쥐 죽은 듯 묶여있는 4명의 상식이파 각성자들을 노려봤다.
그러나 찔끔! 눈치를 살피는 마상식.
자신들이 깨어있음에도 불구하고 비밀스러운 대화를 주고 받는 장성들이 마음에 걸렸다.
"저, 아무것도 못 들었습니다."
오진형이 푸근한 미소로 말했다.
"괜찮아. 들어도 돼."
"네?"
"우리가 너희들을 왜 데리고 왔는지 알겠나?"
"그, 글쎄요."
그게 이상하다.
이들은 배후가 누군지 다 알고 있었다.
병력을 보내 처리한다는 말까지 했다.
한마디로 자신들은 필요가 없었다.
"이정학이 망신 좀 주려던 거야. 자유도시 믿고 설치지 말라는 뜻이었지."
"아! 그렇군요. ···그럼 저희들은 풀어주시는 겁니까?"
"뭐, 목적은 달성했으니까, 풀어줄게."
"가, 감사합니다!"
헬기는 이미 지리산 밀림 상공을 날고 있었다.
비행 마수들을 피할 목적으로 고도를 최대한 높여서.
이 높이까지 올 일도 없지만 마수가 나타난다고 해도 상관없다.
비행 마수 정도 따돌릴 수 있는 수단 정도는 구비된 전투 헬기니까,
불쑥!
오진형의 눈짓을 받은 홍준태 소장이 헬기 좌석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드르륵, 옆문을 열고.
"한 명씩 내린다."
"···네?"
갑작스러운 말에 멍하니 입만 벌리는 마상식.
"왜 놀라? 보내준다고 했잖아."
"어디로? ···설마 여기서?"
"그럼 우리가 내 집까지 곱게 모셔줘야 해?"
"여, 여기서 떨어지면 전 주, 죽습니다."
"알빠임?"
홍준태는 먼저 마상식부터 던졌다.
휙!
"잘 가라!"
"헉! 아아아아아아악!"
그 뒤로 줄줄이.
휙! 휙! 휙!
"으아아···,"
"사, 살려···, 악!"
"씨발 새끼들아아아아아아!"
손을 툭툭 털면서 홍준태는 다시 자리에 다시 앉았다.
"부대에 돌아가면 실전 대비 훈련 시행해. 곧 대규모 토벌 작전 진행할 테니까."
"재료 채집 작전과 병행하겠습니다."
"포자 독 해독제 공급되면 고라니 사냥도 실시한다."
"네!"
"알겠습니다."
"포자 독 낙타 고라니 사냥 마릿수는 확실하게 보고하도록. 뒤로 빼돌리지 말고."
"···네, 네."
"···아, 알겠습니다."
오진형은 사단장들을 믿지 않았다.
이미 고기 맛을 봤는데 어떻게 참아?
분명히 빼돌리겠지.
그러나 한두 마리쯤은 눈감아줄 용의가 있었다.
지리산 마수 방어 전략이 바뀌었다.
소극적 현상 유지 전략에서 적극적 대토벌 전략으로.
※ ※ ※
이정학과의 충돌이 있었던 다음 날.
뉴서울에서 백서연이 구례에 도착했다.
집은 구하지 않았다.
적당한 집이 나올 때까지 고아원에서 지낼 예정.
오히려 그게 더 좋다.
고향 집 같은 느낌이 들어서.
오면서도 구례 상황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그녀의 지인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께서 갑자기 회사를 차리려고 한 이유가 뭔지, 동업을 결정했다는 김태주라는 사람이 누군지,
그러다가 친남매 같은 백창훈과 통화를 하게 됐다.
- 태주 형님? 진국이지. 내 인생의 멘토, 나의 존경을 가져갈 자격이 충분한 형이야.
"멘토? 언제는 아버지처럼 되고 싶다며,"
- 에이, 멘토가 꼭 한 사람이어야 하는 규칙이 있어? 아버지. 태주형, 둘 다 내 롤모델이자 멘토야.
"으음, 난 혹시 사기꾼이 아닐까 걱정했는데."
- 사기꾼? 아니 고아원 운영에 보태라고 수십억씩 툭툭 던져주는 사람이 사기꾼이야? 그 비싼 고라니 고기도 아낌없이 내주셨어.
"고라니? ···포자 혹 낙타 고라니?"
- 어, 형님하고 같이 잡았지.
그 말의 의미는···,
"해독제가 이미 만들어졌단 말이야?"
- 맞아. 태주형이 만들었어. 곧 양산에 들어갈 거래.
이제야 깨달았다.
아버지께서 자신을 부른 이유를.
자식이 잘되기만을 바라는 아버지.
그런데 대기업을 그만두고 동업자와 함께 회사를 창업했는데 도와달라고 하셨다.
백서연은 최연소 과장으로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자식의 성공을 바라는 부모로서 결코 해선 안 되는 부탁이었다.
물론 아버지를 위해 그 정도쯤은 희생할 자신이 있었지만.
'알고 보니 날 위한 거였어.'
막 창업한 태홍 바이오.
스타트업이나 벤처 회사 수준이 아니었다.
성공이 보장된 회사였다.
자신의 능력을 맘껏 펼칠 수 있는 무대가 마련된 곳이었다.
백서연은 택시를 잡아타고 아버지가 알려준 주소로 갔다.
금방 도착했다.
다소 초라한 5층짜리 건물.
그 앞 넓은 공터에 모여있는 사람들.
"어머?"
반가운 얼굴도 보인다.
창훈이를 비롯해 성인이 된 친구와 동생들, 원생으로 보이는 어린 아이들.
'잔치가 열렸나?'
모닥불이 두 군데나 피워져 있었고, 그 위엔 커다란 솥이 걸렸다.
마침 아버지의 모습이 보였다.
백서연은 택시에서 내려 달려갔다.
"아버지!"
"···어? 오! 서연아!"
반갑게 맞이하는 백홍표 사장.
"이 녀석이! 오기 전에 연락이라도 할 것이지, 그럼 내가 마중 나갔을 텐데."
"헤헤, 놀라게 해드리고 싶어서요."
"별로 안 놀랐다. 이놈아! 요즘 놀랄 일이 하도 많아서."
"그럴 것 같아요. 근데 오늘 잔치해요?"
"잔치는 무슨, 어제 하도 술이 과해서 해장이나 하려고 낙타 고라니 사골로 국밥이나 먹어보려고."
"···네?"
도저히 실감이 안 난다.
포자 독 낙타 고라니는 고기뿐 아니라 사골도 엄청 비싸다.
그런데 해장용으로 국물을 내고 있다니.
"참! 내 정신 좀 봐라. 이리 와. 소개해 줄 사람이 있다."
"네? 누구···, 아!"
백홍표는 백서연을 잡아끌고 아이들에게 국밥을 떠주고 있는 태주에게 갔다.
"태주야."
"어르신, 빨리 식사하세요. 자칫하다간 국물도 없습니다. 요놈들이 다 퍼먹어요."
"흐흐흐,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른데, 참! 인사해라. 내가 전에 말했던···,"
"아! 혹시 백서연씨?"
태주는 하던 일을 멈추고 백서연에게 다가갔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김태주입니다."
"백서연이에요."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제가 해독제는 잘 만들지만 그 외 다른 건 아무것도 모르거든요."
"제약회사에서 약 만드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 또 있나요? 저야말로 잘 부탁드려요, 태홍 바이오, 삼한 최고의 회사로 만들어 보겠습니다."
태주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백서연과도 악수를 나누었다.
점점 체계가 잡혀간다.
자신은 새로운 약을 개발하고, 백홍표 사장은 유통을 맡고, 그리고 백서연은 경영을 맡는다. 또한 백창훈은 회사의 경비와 여러 잡다한 일을.
'그러고 보니 나만 빼고 다 백씨네.'
아무렴 어때?
다 믿을 만한 사람들인데.
강호 무림의 절대독마 당군악도 그랬다.
마교에게 터전을 잃어버리고 변방으로 쫓겨났을 때, 가문이 재기할 수 있었던 가장 주요한 힘.
그것은 돈도 아니고, 무공도 아니고, 바로 사람이었다.
살 집이 없어도, 땅을 잃어도, 돈 한 푼 없어도 믿을 만한 사람이 곁에 있으면 언젠가는 뜻을 이루게 되는 법이다.
'그러고 보니 해독제를 들고 백사장님을 제일 먼저 찾아간 것이 신의 한 수였어.'
백서연의 합류로 점차 틀이 잡혀가는 태홍 바이오 제약.
그리고 며칠 후.
마침내 백스 드럭샵이 모기독 해독제 판매를 재개했다.
해가 떠오르기도 전에 끝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게 줄 선 사람들.
백홍표가 드럭샵 셔터를 올리자 물밀듯이 밀려들었다.
부작용 운운하는 사람들은 하나도 없었다.
애초에 있지도 않았으니까.
※ ※ ※
자유도시 구례.
가장 안전한 곳이라 알려진 캐슬 내부.
부유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 구역 정비가 매우 잘되어 있었다.
깨끗한 거리, 널따란 도로, 그 위를 지나가는 고급 승용차.
조훈석은 벌써 며칠째 캐슬 밖을 나가지 않았다.
나가면 사람들에게 돌팔매질이라도 당할 것 같아서.
그러나 오늘은 어쩔 수 없었다.
자치위원회 회의가 잡힌 날이었고, 상임 위원들이 반드시 출석하라고 통보를 했기 때문이다.
안건은 약품 가격 담합 행위와 무리한 중소 약국 괴롭히기에 대해 자신의 책임을 추궁하는 자리.
결국 잘못을 시인해야 했다.
황실 파견 사무관 지광인과 천왕그룹 회장 민동열도 등을 돌린 상황에서 저항은 소용이 없었다.
'개새끼들,'
자신을 한심하게 바라보던 눈초리가 얼마나 아니꼽던지.
이정학 길드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다행히 상식이파 청부살인 관련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고.
그것까지 문제 삼으면 어떡하나, 내심 걱정하고 있던 차였다.
어쨌든 이 문제는 일단락됐다.
조용히 몇 달 지내다 보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질 테고.
이제 캐슬로 돌아가야지.
당분간 그곳에서 나오지 말아야겠다.
늦은 밤.
조훈석은 캐슬로 가는 진입로로 차를 몰았다.
신호등이 걸려 잠시 정차하고 있던 참에 운전석 옆으로 오토바이 한 대가 정차했다.
부릉! 부르릉, 부릉!
"뭐야?"
요란한 엔진 소리에 슬쩍 옆을 봤는데.
콰직! 쨍그랑!
"허억!"
차 유리창을 깨고 들어온 둔기가,
퍽!
조훈석의 옆머리를 강타해버렸다.
"끄응,"
충격에 그만 기절해버린 조훈석.
그리고 슬며시 눈을 떴는데.
'···음? 여긴 어디지?'
아직 차 안이었다.
그리고 전면 유리창 너머로 넓은 호수가 보였다.
'저긴···,'
캐슬을 둘러싸고 있는 인공호수.
황급하게 옆문을 바라보니 자동차가 아슬아슬 절벽에 걸쳐있었다.
'나, 나가야 해!'
이러다 추락할라.
안전벨트부터 풀고.
딸깍!
하지만.
"어어?"
벨트가 풀리지 않았다.
그때였다.
"정신이 들어?"
"헉!"
뒷좌석에 누군가 있었다.
"뭐, 뭐야? 당신 누구야?"
"누구긴, 지금 이 상황에서 그걸 모르면 정말 멍청한 건데."
"아···."
조훈석은 등줄기가 오싹해졌다.
청부살인?
누군가를 이렇게 해봤지, 자신이 꿈에도 당할 줄은 몰랐다.
"기, 김태주가 보냈나?"
"아니, 남원 마수 방어사단 기동 특전대 소속이다."
"군? 군에서 왜?"
"왜겠어? 네가 한 짓 때문이지. 모기독 해독제가 군 전략 물자로 지정된 거 몰랐나? 네가 살아있으면 생산에 차질을 빚을지도 몰라."
"으아아···,"
조훈석은 공포에 질렸다.
"사, 살려줘. 절대 방해하지 않을게."
"내가 굳이 네게 소속을 밝힌 이유를 모르겠나? 설마 살려주려고 그랬겠어?"
"저, 절대 비밀로,"
"넌 선을 넘었어. 청부는 하지 말았어야지. 그럼 살 수도 있었을 텐데."
콱!
다시 뒤통수에서 전해지는 충격.
조훈석은 천천히 정신을 잃었다.
그 과정에서 드는 후회.
'백스 드럭샵의 군납 계약 때문인가?'
모기독 해독제의 지속적인 공급을 원하는 군으로선 자신의 존재는 눈엣가시였을 터.
'차라리 그냥 놔뒀더라면···.'
구례시에서만 팔렸을 것이고, 군에다 공급하는 일은 없었을지도 모르지.
기우뚱,
자동차가 천천히 기울어졌다.
그러더니 첨벙, 인공호수 안으로 들어갔다.
절벽 위에선 남자는 그 모습을 끝까지 지켜보고 있었다.
잠시 출렁이는 호수의 물결이 잠잠해질 때까지.
한참을 서 있다가 무전기를 꺼내.
"임무 완료했습니다. 이제 복귀하겠습니다."
조훈석의 차가 발견되긴 어려울 것이다.
발견된다고 해도 사고 처리다.
< 마스터라고? 그게 뭔데?(3) > 끝
ⓒ 꾸찌꾸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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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이언트 반달곰 사냥(1) >
현재 태주가 사들인 건물은 대규모 공사 중.
회사도 만들었겠다, 최소한 사옥은 있어야 한다.
건물을 살 때 구입한 여분의 공터에서도 건물이 지어지고 있었다.
이곳은 약품 생산공장으로 활용될 예정.
그런 이유로 현장은 항상 시끌벅적했다.
백서연은 인테리어가 완료된 지하 대피소를 임시 사무소로 사용하고 있었다.
"순철아! 나 누나야, 요즘도 사냥 서포터 하니? 어디, 거창? 그럼 당장 구례로 넘어와. 같이 일하자. 무슨 일이냐 하면···,"
"미정아, 미용실은 잘 돼? 하아, 이 언니가 너무 힘들어. 사람이 너무 부족해. 네가 미용실에서 받는 월급 두 배로 맞춰줄 테니까, ···응? 지금 온다고?"
"여보세요? 영길이니? ···뭐? 회사 잘렸어? 놀고 있다고? 아니 누가 우리 영길이를 몰라보고, 당장 누나에게 와!"
이곳저곳 전화를 돌리며 사람을 채용했다.
왜 공채를 통해 정식적으로 사람을 뽑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제가 회의론자는 아니지만 여긴 구례잖아요. 별 이상한 사람들이 다 모여드는 동네인데···, 어쩔 수 없어요. 알고 지내던 사람 위주로 뽑는 수밖에."
납득이 간다.
물론 좋은 사람도 있겠지만, 구례에서 그걸 가려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백홍표 사장도 백스 드럭샵, 아니 태홍 드럭샵을 운영하느라 바쁘다.
"아싸! 1등!"
"오늘은 몇 개까지 팝니까? 될 수 있으면 많이 쟁여둬야지."
"백사장님!!! 이제 셔터 내리면 안 돼요."
"시비 거는 놈 있으면 저한테 먼저 말해주세요."
"저도요! 제일 먼저 달려갈게요. 그런데 포자 독 해독제는 언제?"
그 와중에 마음대로 약품을 빼갔던 제약회사 영업사원들이 다시 와서.
"백사장님! 다시 문을 여셨군요. 약은 얼마나 넣을까요? 장사도 잘되시는데 전보다 물량을 두 배 정도 더 준비해왔습니다. 제가 진열해 드릴까요?"
환하게 웃으며 사근사근 이야기했다.
약 빼갈 때는 언제고.
얼굴에 깐 철판이 보통 두껍지 않다.
그러나 백홍표는 받아줄 마음이 없었다.
"돌아가세요."
"네?"
"그쪽 약 안 받습니다."
"무, 무슨 말씀을···?"
"다른 제약회사 약들이 들어올 겁니다. 적어도 우리 약국에서는 당신 회사 약 팔일은 없을 거예요."
매출 1등 태홍 드럭샵.
해독제뿐만 아니라 다른 약도 제일 많이, 빨리 팔리는 약국이다.
그런데 물건을 안 받겠다니.
제약회사 영업사원은 당황한 표정으로 백홍표에게 매달렸다.
"아, 아니! 갑자기 이러시면···, 억울합니다. 저도 다 지시받고 한 일입니다."
"왜 이러실까, 지시라뇨? 과장님이 결정한 거 아닙니까? 저도 눈이 있고 귀가 있어요."
"···죄송합니다. 그러면 안 되는 거였는데,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 제발 받아주십시오."
하지만 백홍표는 단호했다.
"나가세요!"
대출 조기 상환을 요구했던 은행 지점장도 찾아와 다시 거래를 열어달라며 찾아왔다.
"험험, 이게 제 불찰입니다. 조훈석이 얼마나 협박을 해오는지···."
"그랬군요."
"사과의 의미로 특별한 혜택을 만들어 왔습니다. 이전보다 예금 금리를 0.5% 더···,"
"지점장님."
"네, 백사장님, 말씀하십시오."
"앞으로 그쪽 은행과 거래할 일은 없을 겁니다. 시간 낭비하지 마시고 다른 곳이나 알아보시죠."
대출금 조기 상환 요구를 당했는데, 그냥 넘어가면 그게 호구지.
평소 사람이 괜찮았으면 또 몰라.
항상 고압적인 태도로 사람을 무시하던 은행 지점장이었다.
"마, 말씀드렸잖아요. 본의가 아니라고, 조훈석이가···."
"대출금 조기 상환 통보했을 때, 이미 우리 관계는 끝난 겁니다."
"아, 아니! 제, 제발 한 번만···,"
태홍 바이오는 구례 최고의 매출을 자랑하는 1등 기업이 됐다.
곧 구례의 돈을 진공청소기처럼 빨아들일 터.
하지만 선택을 잘못했다.
'적어도 염치가 있다면 찾아오지 말았어야지.'
반면 어부지리로 태홍 바이오의 자금을 유치한 경쟁 은행은 현재 축제 분위기.
지리산 마수 방어군단에서도 병력이 도착했다.
그들을 맞이하는 태주.
"멸마! 소령 도민수 외 19명, 태홍 바이오 경비 임무를 위해 차출되어 왔음을 보고 합니다."
"···아, 잘 오셨어요. 하지만 지금은 공사 중이라, 지낼 곳이 없어서."
"괜찮습니다. 야전 숙영 장비 챙겨왔습니다. 천막치고 생활하면 됩니다."
이거 미안해서 어쩌나?
"식사는 하셨어요?"
"아직 못했습니다."
"이따가 고라니 사골 국밥 말아드릴게요."
"···네? 저, 정말입니까?"
뜨끈한 국밥이면 누구나 환장하지.
태주라고 해서 논 건 아니다.
군에서 넘어온 재료를 가지고 해독약 제작에 착수했다.
재료 손질은 도와주는 사람이 있어서 비교적 빨랐지만 최종 법제는 태주의 몫.
4성에 이른 혼원무상독령공.
더 섬세하고 빠르게 독 기운을 섞고, 순화시켜 양질의 원액을 생산해 낼 수 있었다.
하지만 공정이 복잡하고 어렵다.
비교적 약한 독을 해독하는 모기 독 해독제와는 달리 포자 독 낙타 고라니 해독제는 극독을 해독시켜야 한다.
또한 포자 독의 특성상, 외부에 노출되는 피부 보호를 위해 바르는 약도 같이 만들어야 한다.
즉 외용제와 경구 투여제가 한 세트.
가격도 그만큼 비쌀 테고.
이것도 수요가 엄청날 것이다.
고라니 사냥을 위해?
아니, 그보다는 구례에 사는 사람이라면 웨이브에 대비해 누구나 상비약으로 하나쯤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 그리고 포자 독 낙타 고라니가 어디 지리산에만 있나?
'공정 과정은 최소한으로 줄이고.'
태주의 지시에 따라 재료를 섬세하게 손질하는 건 사람이 해도, 삶거나 찌거나 분쇄하는 건 기계가 해도 된다.
만들어진 재료를 분량 별로 섞어서 최종적인 법제만 태주가 하는 식으로,
그렇게 기계도 들여오고, 공장도 짓고.
돈과 시간이 제법 많이 든다.
'이거 버는 돈보다 나가는 돈이 더 많겠네.'
장비가 갖춰지기 전까지 군대에 납품할 포자 독 해독제는 수작업으로 만들기로 하고.
'어쩔 수 없이 약 하나 더 추가해볼까?'
이번엔 해독제가 아닌 영약이 어떨까?
필수품은 아니지만 수요가 꽤 많은 영약.
일종의 명품 약이라고나 할까.
각성자들, 혹은 적합자들의 힘은 역시 마나에서 나온다.
마나가 고밀도로 응집된 약은 적합자가 각성하는 데 도움을 주고, 각성자도 등급을 올리기 위해 영약을 복용한다.
그렇다면 영약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재료는?
마나가 고밀도로 응집된 물건이 어디 있을까?
당연히 마수들의 몸 속에서 나오는 에너지 결정체가 핵심 재료다.
에너지 결정체는 마나 결정체라고도 불린다.
일반 결정체야 흔하게 나오는 거지만 영약의 재료로 쓰이기 위해선 무조건 '엘리트' 마수의 결정체가 필요하다.
하지만 엘리트 마수들은 잡기가 어렵다.
놈들의 강함은 둘째치고서라도, 개체 수가 그리 많지 않다.
더구나 매우 영리해서 인간들 앞에 잘 나타나지도 않는다.
또한 운이 좋아서 엘리트 마수를 잡는다고 치자.
무조건 결정체가 나오나?
엘리트 마나 결정체가 나올 확률이 일반 마수보다 훨씬 더 떨어진다.
그래서 영약이 귀하고 비싼 것이고.
'하지만 대체재는 충분히 있지.'
지구와 강호 무림을 비교하자면 과학기술 면에서 강호가 뒤떨어지지만, 그래도 월등하게 앞서는 분야가 있다.
그건 바로 기(氣)를 다루는 방법.
지구의 인류가 무형의 에너지, 마나와 조우한 지는 불과 300년.
하지만 강호는 수천 년의 세월 동안 마나와 비슷한 내공이라는 무형의 에너지를 다뤄왔다.
그 정화가 현재 태주의 머릿속에 담겨 있었고.
'해볼 만해.'
양약을 만들기 위해 엘리트 결정체까지는 필요가 없다.
강호 무림의 연단법으로 영약을 만들 생각이기 때문에.
지금 현재 지리산에서 영약의 재료로 쓰일 만한 재료는 뭘까?
하나 있다.
'자이언트 반달곰의 웅담.'
영약 약재로서 충분하다.
웅담 크기에 따라 대충 6~8개의 영약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강호 무림에서도 영물 곰을 잡아본 기억이 있다.
북해 빙궁 영역에 사는 설산백웅(雪山白熊).
백웅의 웅담으로 영약도 만들어 봤고.
'만약 반달곰과 백웅의 웅담이 비슷하다면 초반에 처리를 잘해야 해.'
이게 가장 어렵다.
잘못하면 약효가 다 날아가 빈껍데기가 된다.
사람들이 자이언트 반달곰의 웅담을 아직도 잘 활용하지 못하는 이유.
'그러면 먼저 놈을 잡아야 하는데···.'
아무래도 혼원무상독령공 4성으론 부족하다.
절정의 경지라고 할 수 있는 5성은 되어야지.
결국 힘을 기르는 것이 답.
정직하게 차곡차곡 독기를 쌓는 수밖에.
'잠잘 시간도 모자라겠네.'
5성 가자.
반달곰이나 이정학 정도는 쉽게 죽일 수 있다.
마스터?
솔직히 별거 아니다.
마스터의 기준은 단순하다.
마나 블레이드를 사용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
마나 블레이드.
검에 무형의 마나를 압축해서 덧씌우는 것.
그래서 티타늄 같은 단단한 검도 썩둑썩둑 잘라버리는 위력.
강호 무림에도 검강(劍罡)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언뜻 보면 비슷해 보인다.
하지만 둘의 근본적인 차이.
시스템에 의해 익히는 마나 블레이드, 고된 수련과 실전을 통해 깨달음을 얻어 화경의 경지에 올라야 비로소 익힐 수 있는 검강(劍罡).
뭐가 더 강할까?
'으음, 나도 쉽게 얻은 깨달음이긴 하지만···,'
어때?
어쨌든 당군악과 김태주는 영혼이 같지 않나.
그래서 태주는 이미 깨달은 사람.
강기를 이룰 공력이 부족할 뿐이지.
'나중에 혼원무상독령공 7성에 올라 암기에 강기를 씌우면?'
생각만 해도 짜릿하다.
그러나,
'어휴, 아직 멀었다.'
최소 5성은 이루고 나서 생각하자.
※ ※ ※
노고단 길드 자경단은 캐슬 바깥에 있지만 이정학의 거처는 캐슬 안에 있다.
집 방안에서 두꺼운 이불을 뒤집어쓰고 뻘뻘 땀을 흘리면서도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 이정학.
"으으으···, 드드득, 드득."
이빨마저 달그락거렸다.
이게 다 그놈의 독 때문이다.
김태주가 던진 나뭇잎 모양의 단검에 묻은 극독.
하지만 살짝 스쳤을 뿐이다.
상식적인 선에서, 아무리 강한 독이라도 주입되는 양이 적으면 효과는 미약하다.
병원으로 가서 응급 치료도 받았고, 약국에 사람을 보내 종합해독제를 구해서 입으로 쏟아 넣어도 독기는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았다.
해독제를 잘 만드는 놈이었다.
그렇다면 독(毒)에 대해서도 전문가였을 터.
조심, 또 조심했어야 했는데.
'제기랄!'
이러다가 영영 일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몇 개 없다.
첫 번째, 자존심을 굽히고 김태주를 찾아가 해독제를 달라고 부탁하는 방법.
그러나 그건 애초부터 논외.
차라리 죽어버리지, 그놈에게 구걸해?
김태주가 어떤 조건을 걸지도 두렵고.
두 번째, 치유 스킬과 해독 스킬을 가진 각성자들을 수소문해서 구례로 초빙한다. 하지만 그들을 찾아내는 것도 힘들고, 찾아낸다 해도 구례까지 와줄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세 번째, 영약을 복용해 마나의 힘으로 강제로 독을 소멸시킨다.
이 방법밖엔 없다.
가장 현실적이고.
사실 영약은 매우 비싸다.
더구나 독을 몰아내려면 최소 상급 이상의 영약이 필요하다.
그래서 삼한제국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뉴서울 미리내 제약으로 부길드장 박정태를 보냈다.
아무도 모르게 해야 한다.
자신이 투병 중인 사실은 오직 박정태만 안다.
똑똑,
노크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부길드장 박정태가 가방을 들고 방 안에 들어왔다.
"영약 구해왔습니다."
"얼마라고 했지?"
"100억입니다."
"···하아. 알았어. 수고했네. 가서 푹 쉬어."
졸지에 현금 잔고가 절반으로 뚝 떨어졌다.
뭐, 부동산 몇 개 팔면 상관없겠지만.
이정학은 가방을 열었다.
고가의 약답게 금박으로 포장된 미리내 제약회사의 영약.
일련번호와 보증서도 있었다.
몇 년도 몇월 며칠에 묘향산 '엘리트 금뿔 사슴' 마수를 잡아서 나온 엘리트 마나 결정체로 제조한 영약이라고.
이보다 싸게 구할 수 있지만 그러다 보면 가품을 살 수도 있다.
비싸지만 대기업 제품이 안전하지.
'이거면 독을 몰아낼 수 있을 거야.'
마스터에 오른 지금, 영약은 등급 상승에 더 이상 도움을 주지 못한다.
영약을 먹는다고 해도 마나가 축적되는 양이 극히 미약하기 때문이다.
마나 응집으로 인한 폭발 효과가 잠시 일어났다가, 대부분 몸에 축적되지 못하고 빠져나간다. 마나를 담는 그릇의 크기에 한계가 있다고 할까.
하지만 그때의 순간적인 마나 폭발력을 이용해 독기를 소멸시키거나 몸 밖으로 배출하는 데는 도움이 될 터.
이정학은 그렇게 믿었다.
그래서 서슴없이 가방에서 약을 집어 입에 넣었다.
꿀꺽!
엘리트 마나 결정체로 만든 영약이 몸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후.
우우우우우웅!
폭발적으로 쏟아져 나오는 엄청난 마나량.
이젠 몰아내기만 하면 된다.
이정학은 스킬로 익힌 마나 심법을 운용했다.
마나가 혈류를 타고 온몸 구석구석으로 퍼져나간다.
그 과정에서 힘을 잃고 소멸하기 시작하는 독기.
'됐어!'
땀구멍에서 진득한 노폐물들이 흘러나왔다.
정신이 맑아진다.
활력이 넘쳐흐른다.
'역시 정품 영약을 선택한 게 옳았···,'
그때였다.
'어?'
무슨 일이지?
폭발적으로 일어났던 마나가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동시에 반전이 일어났다.
마나에 밀려 쫓기는 독기가 갑자기 힘을 얻어 마나를 먹어 치우기 시작했다.
'대, 대체?'
낯설지 않았다.
구례에서 활동했던 각성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해 봤던 현상.
'···변종 3줄 무늬 모기 독?'
비슷하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강했다.
모기 독이 마나를 흩트려버리면, 다른 독들이 뿔뿔이 흩어져 힘을 잃은 마나를 먹어 치운다.
"씨, 씨발!"
다시 거무죽죽해지는 안색.
영약으로 일부의 독은 바깥으로 내보냈지만 남은 일부의 독은 더 강해지고 말았다.
"쿨럭, 쿨럭."
이정학의 눈빛은 암담했다.
< 자이언트 반달곰 사냥(1) > 끝
ⓒ 꾸찌꾸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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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이언트 반달곰 사냥(2) >
건물 내부 설비 인테리어에, 제조 공장 건설에, 직원 채용, 드럭샵에서의 해독제 판매, 모두가 바빴다.
군납 기업으로 지정된 태홍 바이오.
군인들까지 파견되어 공사 현장을 지키고 있으니, 웬만한 사람들은 접근조차 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지리산 마수 방어군단에서 간곡하게 부탁해왔다.
포자 독 낙타 고라니 해독제를 단 10세트라도 공급해 줄 수 없냐며, 실전 대비 훈련에 반드시 필요하다고.
원래는 양산 시설을 갖추고 생산에 돌입하려 했지만 하루에 한 번씩 전화해대니 견딜 재간이 없었다.
실전 대비 훈련은 개뿔, 아마 고라니 고기가 먹고 싶어서 안달이 났겠지.
어쩔 수 있나?
태주는 100세트를 만들어 군단에 보냈다.
귀찮더라도 대형 고객의 니즈는 충족시켜 드려야지.
그렇게 납품을 하고 나서.
태주는 지리산 밀림으로 들어갔다.
목적은 혼원무상독령공 5성.
그리고 자이언트 반달곰을 잡아 웅담을 확보하기.
벌써 며칠째 드나들었지만 5성 달성은 멀기만 하다.
'너무 욕심인가?'
아무리 깨달음을 얻은 후라지만 4성에 오른 지 한 달도 안 돼 5성을 넘보려 하다니, 또한 독정의 안정화도 염두에 둬야 한다.
'안정화는 5성에 오르고 나서 고민해보고, ···빠르게 가자.'
탓!
순식간에 앞으로 쏘아지는 태주의 신형.
표홀질풍보.
이 보법 또한 당군악이 즐겨 사용하던 경공.
환영미리보는 전투에 최적화되었고 표홀질풍보는 특정 목적지까지 최대한 빠르게 이동하는데 특화됐다.
굳이 빠르게 달리는 이유는 쓸데없는 마수와 맞닥뜨리기 싫었기 때문이다. 암기나 독기에 버티지 못하고 고꾸라지는 마수들은 수련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독공은 다른 여타 심법의 수련 방식과 완전히 다르다.
보다 많은 독을 섭렵해보기.
그리하여 독정(毒精)의 성장을 촉진하는 것.
다양한 생물이 품고 있는 고유한 독의 성질을 독정에 각인시켜야 한다.
지리산 밀림의 모든 독은 태주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되며 내공이 된다.
사실 영약은 하등의 쓸모가 없다.
그래서 팔아보려는 거고.
파밧!
밀림 이곳을 달리다가 수상한 냄새가 나면,
'독진액 상피목이구나.'
마나로 인해 세상이 변했지만 생명체들은 여전히 비슷한 방식으로 자신을 보호한다.
이 나무는 껍질에서 독액을 흘려 줄기를 갉아 먹는 개미 같은 곤충이나 딱따구리, 벌레들을 막는다.
태주는 손가락으로 껍질에 맺혀있는 진액을 찍어 입에 넣었다.
'···단맛이네?'
보통 독은 달지 않은데.
이건 보호라기보다는 공격인가?
다시 다른 독을 찾아서.
하나 더 발견했다.
'푸른 배 무당개구리.'
배 부분이 새파란 개구리다.
그 부분에 독이 있고.
일종의 마취제, 당하면 잔다.
깨지 않고 끝없이, 그러다 굶어 죽는 거지.
이것도 채집.
스스스슷!
큼지막한 지네도 한 마리 보였다.
'백목 왕지네.'
웬만한 뱀보다 더 크다.
지네 마디 하나하나마다 각각 눈이 달렸다.
독의 세기는?
말도 못 한다.
오크도 한 방에 죽여버릴 정도.
덥썩!
손으로 잡으니.
콰직!
독니를 태주의 손등에 꽂아 넣었다.
'윽!'
따끔하다.
하지만 이대로 내버려 뒀다.
독을 받아들이는 방식도 달라야 하기 때문이다.
먹어서 소화기관을 통해 섭취하는 방식보다 이처럼 혈관에 직접 주입하는 방식이 훨씬 효과가 좋다.
마치 수액주사 맞는 것처럼 독액을 쭉 빨아당기니, 꿈틀꿈틀 움직이다가 축 늘어지는 백목 왕지네.
'···아직도 멀었나?'
단전이 조용하다.
수많은 독을 섭렵했지만 독정이 움직일 낌새가 보이지 않았다.
'하는 수 없지. 편식 없이 집어 먹다 보면 언젠가는···.'
바로 그 순간!
등줄기를 찔러오는 서늘한 살기.
'음?'
스스슷.
뭔가가 움직인다.
긴 수풀 사이로 희끗희끗 보이는 흰색 털.
흰색 털을 가진 동물이 뭐가 있지?
'설마 삼두백호?'
그러기에 크기가 너무 작은데?
이곳 지리산 밀림에도 삼두백호가 존재한다.
신수(神獸) 삼두백호(三頭白虎).
놈이 삼한제국의 상징이 된 이유는 다름 아니다.
황제가 삼두백호를 잡아 그 가죽을 용상 방석으로 깔았기 때문이다.
즉, 강해서 숭배되는 놈이 아니라 고귀하신 황제의 엉덩이에 깔려있기 때문이다.
삼두백호는 제국 전역에 퍼져있다.
하지만 지금 여긴 삼두백호의 영역이 아니다.
그렇다면?
부스럭.
수풀을 헤치고 나타난 거대한 몸집.
'···하아!'
자이언트 반달곰.
인제 보니 흰색 털은 놈의 가슴팍에 그려진 반달 모양의 무늬였다.
원래 찾았던 놈이지만.
'너무 일찍 만났어.'
아직 4성인데.
뭐, 상관없다.
애초에 도망갈 생각은 없었다.
자존심 상하는 짓이지.
또한 자이언트 반달곰은 생각보다 쉬운 마수일지도.
몸집도 커서 대충 암기를 던져도 빗나갈 일은 없을 터, 다만 암기가 가죽을 뚫고 꽂히지 못할까 우려스럽다.
"쿠오오오오!"
반달곰이 포효를 내지르며 두 발로 일어섰다.
인사부터 나누자.
츠핏!
은은한 녹색 빛의 유엽비도 한 자루가 태주의 손에서 떠났다.
그러자 갑자기 앞발을 휘둘러.
휘릿!
태앵!
유엽비도를 튕겨내는 자이언트 반달곰.
'···헐, 꽤 빠르네?'
순간!
쐐애애액!
놈이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오며 몸통 박치기를 시도했다.
'환영미리보.'
스슷!
사라지는 태주의 몸.
츠핏, 츠핏, 츠피핏···.
유엽비도 6자루가 순차적으로 공기를 갈랐다.
푹푹, 푸푹푹!
6개 모조리 놈의 몸에 꽂혔지만.
"크아아아아앙!"
다시 몸을 일으킨 반달곰, 꽂혀있던 비도들이 하나둘씩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어쭈?'
손가락 한마디만큼도 들어가지 않은 듯했다.
가죽은 뚫어야 독이 들어가는데,
어설픈 독기로는 곰의 웅담이 들어온 독을 모조리 해독시켜 버릴 터.
'장기전이구나.'
태주는 주머니에 넣어둔 푸른 배 무당개구리를 꺼내 입에 넣고 잘근잘근 씹었다. 바닥에 쓰러진 백목 왕지네도 한마디 뜯어서 입속으로,
"크아아앙!"
달려드는 반달곰.
스슷!
사라지는 태주의 신형.
코트 속 암기를 다 소모하는 한이 있더라도 잡는다.
츠피피핏! 츠핏!
유엽비도가 쏟아졌다.
크기가 큰 탈명비도도 섞어 던졌다.
쐐애액!
반달곰의 몸통 박치기.
그리고 가공할 앞발 공격.
피하고 암기를 날리고, 빈틈을 노려 혈인독장으로 놈의 등짝을 찍고.
몸집이 크다고 해서 방심할 수 없었다.
자칫하다 발톱에 걸리면 피부가 갈가리 찢겨나갈 터.
반달곰 따위에게 상처를 입는다고?
당군악이 얼마나 자신을 비웃겠나?
태주는 혼원무상독령공을 극성으로 끌어올렸다.
혈맥을 치고 흐르는 충만한 독기.
환영미리보가 화려하게 펼쳐졌다.
혈인독장으로 시전한 붉은색 장영이 허공을 수놓았다.
스우우우웅!
가공할 압력을 동반하는 앞발을 종이 한 장 차이로 슬쩍 흘려버리고.
퍼억!
옆구리에 한방.
"캬아아악!"
부우웅! 붕붕!
분노한 자이언트 반달곰이 마구잡이로 앞발을 휘둘렀다.
그러나 그 파괴력과 빠르기는 절대 무시할 수 없었다.
충분히 거리를 벌리면 기다렸다는 듯 강하게 몸통 박치기로 돌진하는 놈.
그럼 탈명비도로 일단 저지, 비교적 약한 부위인 곰의 안면으로 유엽비도를 날린다.
츠핏! 츠피피핏!
눈이나 입속으로 하나만 꽂혀주면 좋으련만,
반달곰도 쉽사리 맞아주지 않겠다는 듯, 앞발 하나로 얼굴을 가리며 돌진해왔다.
"크앙!"
크고 빠른 놈이다.
비기너 등급은 앞발을 피하지 못해 찢길 것이고, 레귤러는 놈의 돌진에 받혀 훨훨 날아갈 것이다.
익스퍼트는?
대적은 가능하겠지.
그러나 오래 버티진 못할 것이다.
태주도 맞상대는 피하고 있다.
환영미리보와 질풍보를 믿고 원거리, 근거리 번갈아 가면서 치고 빠질 뿐.
그런데 희한하다.
점점 몸이 가벼워진다.
'흐음, 좋네.'
고도로 집중되는 감각.
태주의 의식 속엔 오로지 거대한 반달곰만이 보인다.
잡생각 따윈 버렸다.
어떻게 해야 몸을 효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을까?
불필요한 동작은 버리고, 최적의 동선을 설정해 움직이며, 동시에 가장 최선의 공격을.
의식하니 몸이 움직인다.
이거 설마 깨달음?
이미 깨달았지 않나?
아직 남은 게 있었어?
츠피피피핏!
연달아 펼쳐지는 일섬.
푸닥! 푸다다다닷!
파바바박!
부지불식간에 쏘아지는 비폭!
암기의 수발도 이렇게 자유로울 수가.
"아···,"
이제야 알았다.
이건 육신의 깨달음이다.
태주가 당군악의 영혼과 연결되어 깨달은 건 의식의 영역.
그러나 몸은 그렇지 않았다.
육신은 온전히 김태주다.
신체와 정신은 분리된 것이 아니다.
의식의 깨달음에, 몸의 깨달음도 함께 따라와야 한다.
그렇게 인식하는 순간!
우우웅.
요동치는 독정(毒精).
혈맥 속에서 독기가 파도처럼 넘실거린다.
'5성이구나.'
팽그르르르르,
마치 팽이처럼 몸을 회전시키면서 태주는 코트 안에서 암기를 꺼내 자이언트 반달곰에게 슬쩍 던졌다.
나풀나풀,
두 마리 나비가 날아간다.
아래위, 좌우, 때로는 사선으로, 이리저리 변화를 보이며 날아가는 금속 나비들.
혈접(血蝶).
혼원무상독령공 5성에 이르면 사용 가능한 암기술.
5성은 돼야 혈접을 움직일 공력이 나오기 때문이다.
"쿠오오!"
반달곰이 혈접을 앞발로 쳐내려 했지만···,
사뿐, 피해서 한 마리는 반달곰의 큼지막한 눈꺼풀에,
"크앙?"
한 마리는 귓속으로,
푸욱!
혈접의 더듬이가 눈동자와 귓속을 찔렀다.
그러자 주입되는 독기운.
모기독의 산공 성질, 출혈을 가속화시키는 변종 칠점사 독, 강력한 산성의 기운으로 내부 장기를 녹이는 포자 독.
이걸 다 웅담으로 해독할 수 있을까?
아니 웅담으로 가기 전에 이미 자이언트 반달곰의 뇌로 독이 스며들었다.
"크룩, 크루룩···."
반달곰이 점차 느려진다.
눈과 귀에서 흐르는 시뻘건 피.
급기야 몸을 돌려 도망치려 했지만···,
"크어엉···,"
오래 가진 못했다.
기우뚱, 옆으로 픽 하고 쓰러지는 거대한 몸체.
기어코 잡았다.
두 가지 목적이 한꺼번에 달성됐다.
자이언트 반달곰의 웅담.
조심해서 잘 꺼내 보자.
※ ※ ※
제국군 지리산 마수 방어군단.
지리산 북부 밀림 지역에 계급별 군인들이 모였다.
군단장 오진형 중장을 비롯해, 각 지역 사단장, 영관급, 위관급, 부사관, 일반 사병 등등.
목적은 포자 독 해독제 실험.
포자 독 낙타 고라니 한 놈을 발견해서 도망가지 못하게 잡아뒀다.
마스터들이 고라니 가장 가까이 있었고,
익스퍼트급은 저 뒤쪽에.
그리고 유저, 비기너, 레귤러, 적합자, 일반인 순으로 각각 거리를 두고 대기했다.
"시작하지."
오진형이 지시하자 대뜸 앞으로 나서는 구준영 소장.
그리고 마나 블레이드를 발현해 냅다 고라니의 목을 베어버렸다.
우우우웅!
서걱!
그러자 터지는 혹.
퐁! 퐁!
포자가 사방에 퍼지기 시작했다.
오진형을 비롯한 마스터들이 먼저 포자 독 먼지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시간이 흐른 후.
"어떤가?"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포자가 피부에 닿아도 괜찮습니다."
"그래? 그럼 애들 불러."
각성 등급이 높은 순서로 군인들은 포자 독에 접촉했다.
"익스퍼트 이상 무!"
"레귤러 이상 무!"
"비기너 이상 무!"
"유저 이상 무!"
"일반 사병 이상 무!"
그제야 만족한 듯 미소 짓는 오진형.
"효과 확실하군."
"값어치, 톡톡히 하는 물건입니다."
"오히려 싸죠."
"지속 시간도 무려 12시간이니."
"취사병 투입시켜!"
그러자 병사 하나가 득달같이 달려와 고라니를 끌고 안전한 장소로 옮겨 칼질을 시작했다.
"여, 여기서 먹습니까?"
"작전 중에 무슨 소리야? 잘 싸서 배낭에 넣어."
옷이나 장비에 포자 독이 묻었지만 1시간에서 2시간 정도 지나면 독성이 거의 사라진다.
"1시간 정도 밀림에 머물다가 돌아가면 될 것 같습니다."
"응? 돌아가다니, 자네 미쳤나? 해독제 아깝게, 자! 계속 전진한다. 고라니 수색해!"
"···넵!"
모기가 덤벼들었지만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
가끔 달려드는 잡마수들은 위관급 장교 선에서 처리됐고.
그렇게 잡은 고라니만 5마리.
모두가 즐거웠다.
영관급 이하의 장교들은 저 고라니 고기가 자신에게까지 올 리 없다고 판단했지만 대령급 이상은 기대에 부풀었다.
'설마 다리 한 짝 정도는 주시겠지.'
'갈비살 만이라도.'
'난 다리뼈, 푹 고아서···,'
'머리 고기도 그렇게 맛있다던데.'
그러나 오진형의 생각은 전혀 달랐다.
'관저 냉장고에 꽁꽁 숨겨두고 아껴서 먹어야지.'
등심 한 점도 줄 생각이 없었다.
어차피 해독제 공급이 활성화되면 지들이 알아서 사냥해서 몰래 먹을 것이 분명하다.
그렇게 사냥을 종료하고 오진형과 부하들은 밀림을 빠져나와 차량에 고라니 고기가 든 배낭을 실으려고 했는데,
바로 그 순간!
"수고했네."
지리산 밀림 북부 진입로 초입에서 뒷짐을 지고 그들을 기다리는 누군가.
"···어?"
"음?"
"헉!"
새하얀 백발, 은빛 수염을 고풍스럽게 기른, 심지어 각성을 나타내는 얼굴 문양마저 하얀, 건장한 노인이었다.
"그, 금 비서관님."
"오랜만이야, 오중장, 본지 한 1년 넘었나?"
황제 폐하를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보좌하는 궁정 비서관 금수호였다.
100살이 훨씬 넘었지만 웬만한 마스터는 귀싸대기 하나로 제압한다는, 일명 그랜드 마스터라고 부르는 요괴 중의 요괴.
"어쩐 일로 여기까지 오셨는지?"
"그야 자네들이 고라니 고기를 폐하께 진상한다고 하기에 한달음에 달려왔지."
"···."
어떻게 알았을까?
"호오, 많이도 잡았군. 폐하께서 기뻐하실 모습이 눈에 선해. 부대까지 들고 가려면 무거울 테니, 여기선 내가 가져가지."
멍하니 금수호를 바라보는 오진형.
"뭐? 불만 있나?"
"아, 아닙니다. 없습니다."
"허허허, 역시 오중장이야."
완전히 망했다.
"폐하께 자네의 충심을 꼭 전하겠네. 요즘 그분이 입맛이 없으셔서 끼니를 거르시는 일이 많아. 고기양이 살짝 부족하긴 하지만, 이 정도면 일주일 정도 드시겠군."
오진형은 가슴 한구석이 쓰라렸다.
눈뜨고 빼앗긴 꼴, 하지만 어디다 하소연하나.
"참! 포자 독 해독제 아직 남았지? 다 가져가는 건 염치없는 짓이고 50개만 주게."
"···네! 드, 드리겠습니다."
그래, 다 가져가라! 다 가져가.
금수호는 해독제 세트와 고라니 고기가 든 배낭을 하나하나 자신의 차에 옮겨 실었다.
"그런데 말이야, 조훈석이 죽인 건 괜찮은데, 이정학까지 손댄 건 너무 했네. 그놈 죽으면 골치 아파져."
"네? 손 안 댔는데요."
"허면 왜 오늘 내일하고 있나?"
"그, 금시초문인데요? 그놈이 어떻게 됐는데요?"
"쯧, 직접 알아봐. 난 이만."
금수호는 자동차를 타고 지리산 북부 진입로를 빠져나갔다.
남은 사람 모두 나라를 잃은 듯한 허망한 표정.
"차라리 먹고 왔어야 했는데···,"
후회는 언제나 늦는 법이다.
< 자이언트 반달곰 사냥(2) > 끝
ⓒ 꾸찌꾸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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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약의 효과가 너무 좋다. >
지금은 2323년.
하지만 지구의 문명은 과거 300년 전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발전은커녕 오히려 퇴보된 부분도 많다.
마나 침범으로 사람이 너무 많이 죽었기 때문이다.
물론 컴퓨터도 있고 책도 있고, 한때 번성했던 현대 문명의 자료들이 남아있긴 했다.
그러면 뭘 해?
기술을 다룰 수 있는 사람들이 없는데.
인구 낭떠러지는 치명적이었다.
문명 발전보다 생존이 더 급했다.
뭔가를 창조해내기보다는 이전의 것을 복원하는 데 주력했다.
겨우겨우 바닥을 치고 올라간 것이 100여 년 전.
지금은 예전의 성세를 거의 회복하고 있었고,
그 100년 동안 눈부시게 발전한 분야가 있었다.
바로 마나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법.
마나 결정체 공학, 마수 사냥 아이템, 그리고 바이오 제약.
이 세 가지.
각각 나뉘었지만 사실은 '생존'이라는 하나의 키워드로 묶였다.
영약 제조도 결정체 과학을 기반으로, 인류의 공동의 적인 마수를 사냥하기 위해 발전한 분야.
마수들은 사는 곳에서만 산다.
흔히 밀집 지역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그곳을 폭발 무기로 타격하다가는 큰일 난다.
곧바로 웨이브가 터지는 것.
웨이브 때 마수는 평상시의 마수와는 차원이 다르다.
더더욱 광포하고 잔인해진다.
핵무기로 소멸시키면 안 되냐고?
옛 중국을 보면 교훈이 될 터.
중국 정부는 밀집지대에 핵을 터뜨려 마수들을 소멸시키려 했지만 핵폭발에도 살아남은 일부의 마수들이 있었다.
핵에 적응하거나 혹은 방사능에 노출되어 기존의 한계를 극복해버린 무시무시한 비욘드 엘리트 마수들의 출현.
중국은 망했다.
일부 살아남은 사람들이 동쪽으로 탈출해 삼한제국에 몸을 의탁하며 살아가고 있었고.
그래서 지금도 곳곳에 중국계 제국민들이 많다.
구례 슬럼가에도 차이나타운이 존재할 정도.
아무튼 마수를 안전하게 사냥하기 위해선 각성자들이 필수.
적합자들을 길러내고, 각성자들의 레벨업을 도울 목적으로 만들기 시작한 영약.
삼한 제국 군부도 '사관학교 아카데미'를 운영하면서 영약을 이용해 각성자를 길러내고 있다.
벽면과 천장, 바닥에 마나 결정체가 빼곡하게 박힌 훈련실에서 엘리트 마수 결정체가 약 0.001% 정도 들어간 영약을 일주일마다 복용하면서 각성을 꿈꾸는 학생들.
학비가 매우 비싸다.
자신의 배다른 동생 김태평과 김태천도 사관학교에 다니는 중이고.
하지만 아무리 영약 기술이 발달한들 강호 무림에 비할까.
무림 각 문파의 영약 제조 기술은 수천 년 동안 비전으로 이어지면서 발전해왔다.
사천 당가도 마찬가지.
영약을 만드는 수백 가지 방법이 있다.
비록 대환단이나 자소단에 미치지 못하지만 사천 당가 영약은 가성비가 끝내주기로 유명했다.
물론 태주는 혼원무상독령공을 익힌 터라 영단이나 독단은 별 쓸모가 없지만.
'만들어서 팔면 되잖아.'
이제 재료를 손질해보자.
먼저 태주는 쓰러진 자이언트 반달곰의 배를 갈랐다.
몸집만큼이나 커다란 곰의 쓸개, 웅담이 보인다.
원래 곰 쓸개는 그리 크지 않지만 이놈은 매우 컸다.
웬만한 사람 머리통만 한 크기.
함부로 떼 내면 담즙이 빠져나가 약효가 극히 떨어진다.
빠져나간 담즙은 금방 변질하고.
또 조심조심한답시고 시체를 어디로 이동시켜 작업하는 것도 금물, 자이언트 반달곰이 사망하자마자 웅담 부패가 진행되니까.
이 웅담을 제대로 손질하기 위해 필요한 몇 가지 무공들이 있다.
기막(氣幕), 열양공(熱陽功), 한음공(寒陰功).
기막(氣幕)이라고 해서 호신강기처럼 거창한 건 아니다.
손바닥으로 기를 방출하여 대상을 공기와 차단한다.
태주는 자이언트 반달곰의 배를 가르자마자 웅담을 기막으로 감쌌다.
다음으로 열양공(熱陽功) 시전.
몸속의 기를 화력으로 전환하는 무공.
웅담의 수분은 날려버리고, 액기스만 남도록,
너무 뜨거우면 약재의 기본 성질이 파괴된다.
또 너무 약하면 수분 증발이 잘 이루어지지 않고 부패가 일어난다.
그래서 제법 시간이 많이 걸린다.
은근하게, 오래오래, 기막을 살짝 열었다 닫았다 해서 수분도 배출하고.
어느 정도 건조가 잘 이루어졌다 싶으면.
한음공(寒陰功).
급속 냉각.
츠츠츠츠츠···,
순식간에 차갑게 변하는 자이언트 반달곰의 웅담.
사실 재료 손질 과정이 제일 어렵다.
반면 영약을 만드는 건 쉽다.
기술의 힘을 빌리면 되니까.
'다 됐다.'
태주는 꽝꽝 얼어버린 웅담을 가지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이제 채취한 웅담을 냉동고에 장기 보관하든가, 아니면 바로 만들든가.
태주는 후자를 택했다.
바로 백창훈을 불러서.
"창훈아!"
"넵! 형님."
"가서 압력솥 하나 사와. 그리고 플라스틱은 떼어 내, 김이 빠져나오는 구멍은 용접해서 막아버리고."
"알겠습니다. 바로 사 올게요."
"아, 그리고 대형 오븐도 필요해. 압력솥이 들어갈 정도로 큰."
백창훈이 압력솥과 대형 오븐을 가지고 올 때까지 재료 손질이나 하자.
웅담은 준비됐다.
또 다른 재료는 마나 삼지구엽초.
가장 흔히 사용하는 마나 약초.
지리산엔 특히 많이 자생하고 있다.
마나가 모든 식물을 이상한 방향으로 변이시킨 건 아니다.
유독 마나를 잘 받아들인 식물도 있었다.
마나 삼지구엽초가 그중 하나.
이건 생으로 넣어야 한다.
그리고 변종 마황.
이것도 마나를 가득 품은 약초.
평범한 마나 결정체도 준비하고.
그 외 마나 보리도 넣고, 응고 역할을 하는 꿀까지 준비했다.
품질이 좋은 꿀이면 더 좋겠지만.
그렇게 재료를 준비하다 보니 백창훈이 압력솥과 오븐을 트럭에 실어 왔다.
요구 조건대로 김이 빠지는 구멍을 용접으로 막아서.
"형님, 또 어떤 해독제 만드시려고요."
"해독제 아니야."
"네? 그럼 뭔데요?"
"입이 심심할 때 먹는 간식 같은 거."
"오! 맛있는 겁니까?"
"당연히 맛있지."
특히 너 같은 각성자에겐, 마나 적합자에게도 효과가 있겠고.
태주는 손질해둔 재료를 조금씩 덜어 솥 안에 넣었다.
다 넣으면 안 된다.
실패하면 이 아까운 재료들 다 날리니까.
꽝꽝 언 웅담도 네 조각. 결정체도 네 조각, 다른 재료들도 정확히 네 등분해서 한 조각씩 솥 안에 넣어 밀봉했다.
그리고 제조과정에서 필요한 무공 하나.
무림인이라면 누구나 익히는 범용 무공인 침투경.
태주는 압력솥에 손을 가져다 댔다.
그리고 침투경 운용.
파삭, 파사삭! 파삭!
밀봉된 솥 안에서 바스러지는 약재들.
꽁꽁 언 웅담 조각. 마나 결정체, 마나 삼지구엽초, 변종 마황, 마나 보리.
모두 안에서 으깨졌다.
이렇게 해야 마나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다.
그리고 바로 오븐에 넣었다.
강호 무림에서 영약을 만들 때 제일 힘든 과정이 바로 온도 조절.
지속적으로 같은 온도를 유지해야 하는데 그게 어디 쉽나?
그래서 무당이나 소림 같은 곳에선 장작 대신 삼매진화를 이용한다.
하지만 이곳에선 오븐이 있기 때문에 그 과정은 날로 먹는 거지.
'일단 300도로 맞추고.'
오븐에 돌려 10분.
10분이 지나면 다시 압력솥을 꺼내 침투경으로 굳은 재료를 가루로 만든다.
그러고 나서 오븐 온도를 290도 맞추고 또 10분 돌린다.
굽고 나서 당연히 침투경으로 또 부숴야 하고.
온도를 단계적으로 낮추어 굽고 부수고, 또 낮추고, 굽고, 부수고···.
이걸 9번 반복한다.
이 모든 과정이 밀봉된 압력솥 안에서 이뤄졌다.
그래서 다소 지루한 작업.
옆에서 지켜보던 백창훈도 어느덧 하품하더니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이제 됐나?'
태주는 압력솥은 오븐에서 꺼내 천천히 식혔다.
마침내 긴장된 마음으로 열어보니.
"흐음."
까만색 가루들이 그 안에 소복이 쌓여있었다.
'너무 탔나? 쯧, 실패군.'
진갈색의 윤기가 흘러야 하는데.
그럼 처음부터 다시!
온도가 너무 높은 것 같으니 온도와 시간을 줄여서.
아직 기회가 남았다.
그러나 또 실패.
'아이고! 아깝게시리.'
이번엔 진짜 정성을 들여.
세 번째로 압력솥 뚜껑을 열었는데.
'애매하네.'
솥 안엔 흑갈색 윤기가 흐르는 가루들.
빛깔이 살짝 탁하다.
'뭐, 이 정도면···,'
성공했다고 치자.
태주는 꿀을 조금 흘려 넣었다.
그리고 적당한 크기로 뭉쳐가며 동글동글한 환의 형태로 빚었다.
크기는 엄지손톱만 한 크기.
꽉꽉 뭉치니 겨우 두 알 나왔다.
'자, 이제 효과를 알아봐야 하는데···,'
아무리 좋은 영약이라도 자신이 먹으면 그냥 똥 된다.
태주가 가진 힘의 근원은 독정, 차라리 복어알이나 씹어 삼키는 게 이로울···, 가만!
'어어, 왜 복어 독을 생각 못 했지?'
깜빡했다.
바다에도 독을 가진 생명체들이 아주 많다.
시간 내서 바다에도 꼭 가봐야지.
어쨌든 이걸 누구에게 먹여본다?
태주는 옆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백창훈을 손으로 흔들어 깨웠다.
"창훈아, 창훈아?"
"···으음, 네, 네? 아! 깜빡 졸았습니다."
"이거 한번 먹어볼래?"
"뭐, 뭔데요? 쎅토끼 똥인가?"
"···."
얼마나 공을 들였는데 똥이라니.
"몸에 좋은 거야. 일종의 영약이라 해두자."
"이게 영약이라고요? 에이, 영약을 만드는 게 얼마나 힘든데."
"그래서 안 먹겠다고?"
"···어, 아뇨! 머, 먹겠습니다."
백창훈은 태주가 어떤 사람인 줄 깜빡 잊었다.
모기 독 해독제에, 포자 독 해독제까지.
영약을 만드는 게 뭐가 이상해?
이것도 영약이 맞을 것이다.
다만 효과가 어느 정도인지 모르지만.
'가장 싼 영약이 얼마 정도 하더라.'
엘리트 마나 결정체 함유량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지만 50% 이상 들어간 명품 영약은 대략 100억 정도 일터.
명품 영약을 먹으면 등급을 올리는 데 도움을 준다.
하이엔드 명품 영약도 있다.
엘리트 마나 결정체가 100%, 통째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런 약은 부르는 게 값이다.
먹으면 곧바로 등급 상승.
물론 사람에 따라 다르긴 하다.
"자, 먹어봐."
"지금요?"
백창훈은 태주에게서 흑갈색 토끼똥 같은 환단을 받아 들었다.
그리고 입으로 꿀꺽 삼켰는데.
"어때?"
"잘 모르겠는데요? 으음, 잠깐만요, 왠지 뱃속이 뜨거워지기 시작···, 흐익!"
순간!
우우우우웅!
진동하듯 떨리는 백창훈의 몸.
"으아아아, 윽윽!"
"창훈아!"
하지만 백창훈은 대답할 수 없었다.
마나가 몸 안으로 모인다.
모이자마자 강하게 응집하기 시작했다.
전신으로 치닫는 뜨거운 마나의 기운.
그리고 잠시 후.
백창훈의 귓가에 시스템 메시지가 들려왔다.
[축하드립니다. 당신은 등급이 상승했습니다.]
[이제 비기너 등급으로 스킬 습득이 가능합니다.]
[특성에 맞은 스킬을 탐색합니다.]
[스킬 : 섬광 찌르기를 습득하셨습니다.]
[스킬 : 철갑 피부를 습득하셨습니다.]
"아!"
멍한 표정으로 우두커니 앉아있는 백창훈.
태주가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괜찮니? 무슨 반응이 왔어?"
"혀, 형님."
"왜?"
"저, 저 드, 등급 상승했어요."
"···뭐?"
등급 상승이라니.
반쯤 실패한 줄 알았는데···, 이렇게 효과가 좋았다고?
혹시 창훈이에게만 유독 효과가 좋았던 걸까?
"으허헝, 흑흑흑,"
갑자기 눈물을 흘리는 백창훈.
"저 어떡해요."
"왜?"
"이 비싼 약을 염치도 없이 먹어버렸잖아요."
"진정해. 재료비도 얼마 안 해."
"···얼마를 드려야 하죠? 노예 계약서 써야 하나요?"
이렇게 순진한 놈이었다니.
각성은 어떻게 했나?
안 되겠다.
"야! 징징대지 말고 가서 친구 하나 더 데리고 와."
"치, 친구요?"
"원생 출신 중에 마나 적합자 있지? 착하고 입 무거운 놈으로."
"설마 걔도 이거 먹이시려고요?"
"그래."
잠시 머뭇거리다 밖으로 나가, 멀끔하게 생긴 청년 하나를 데리고 오는 백창훈.
"저보다 두 살 어린 동생 놈이에요. 똘똘하고 착해요."
"처음 보네?"
"안녕하십니까! 형님, 장순철입니다. 서연이 누님 전화 받고 어제 여기 막 왔습니다."
"그래, 순철아. 너도 이거 한번 먹어봐."
"토끼똥입니까?"
"···."
"상관없습니다. 형님이 주시면 먹겠습니다."
장순철은 태주가 건네주는 환단을 그대로 입에 넣었다.
약간의 시간이 흐르고 백창훈이 겪었던 마나의 응집이 지난 후,
우우우우웅!
장순철이 벌떡 일어났다.
휘몰아치는 기운, 전신 구석구석 충만해지는 마나, 절로 터져 나오는 외침.
"오오오오오!"
동시에 머릿속에서 울리는 시스템 메시지.
[축하드립니다. 당신은 각성하셨습니다.]
[특성을 습득하셨습니다. 상태창으로 확인이 가능합니다.]
"어어···,"
순간! 스르륵!
마치 마법처럼 장순철의 얼굴에 흑색 문신이 새겨졌다.
태주는 흠칫 놀랐다.
"너 설마?"
"네, 가, 각성했다는데요?"
"···."
마나 적합자에서 각성자가 된 장순철이 주먹을 불끈 쥐더니 차렷 자세로 서서 태주에게 꾸벅 인사했다.
"형님! 충성을 다 하겠습니다."
"아니, 충성까지는···,"
"뭐든 시켜만 주십시오. 형님 은혜에 반드시 보답하겠습니다."
"···."
그건 그렇고.
효과가 너무 좋다.
태주도 이런 결과를 예상하지 못했다.
아무리 좋은 게 좋은 거라지만 이건 도를 넘었다.
'이건 팔면 안 되겠어.'
< 영약의 효과가 너무 좋다. > 끝
ⓒ 꾸찌꾸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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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려는 드릴게. >
자신이 직접 만든 약이지만 태주는 상상도 못 했다.
하이엔드급 명품 영약도 아닌데, 단 한 알로 기존 각성자를 등급 상승시키고 적합자를 각성시켰다.
이 약이 시장에 풀렸을 때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특히 권력자들, 등급에 목마른 각성자들, 그리고 각성 하나에 인생을 건 적합자들.
벌떼처럼 달려들 터.
'군이 알아도 안 돼.'
두려운 게 아니라 귀찮은 거다.
이미 모기 독, 포자 독 해독제로 주목을 끌었다.
거기에 기존의 효과를 훨씬 뛰어넘는 영약까지 풀리면?
'모기독 해독제만으로도 견제가 들어오는 판에,'
재료도 문제.
엘리트 마나 결정체는 0.000001g도 들어가지 않았다.
기껏해야 자이언트 웅담 4분의 1과 일반 마나 결정체, 그리고 흔한 약초들인데.
누가 들어도 기절초풍할 일.
해독제 개발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래서 아직 알려지면 안 된다.
'영약 판매는 하지 말아야겠군.'
별수 있나?
다른 약 개발해야지.
영약을 만드는 과정에서 생각해 둔 약이 또 있다.
'우선 이 두 놈만 키워서···,'
태주는 나름 사람을 보는 안목이 있다.
29살의 젊은 놈이, 관상가도 아니면서 어떻게 사람을 판단하느냐고 하겠지만, 의외로 태주는 관상에 조예가 깊다.
왜냐하면 강호 무림에서 일가를 책임졌던 절대독마 당군악이기도 하니까.
태주가 판단하기론,
백창훈은 순진하고 여리다.
장순철은 영악하고 똘똘하다.
하지만 둘의 공통점은 믿을 만한 놈들이라는 것.
"오늘부터 너희 둘은 날 따라다녀."
"집에서 같이 살아야 합니까?"
"아니, 나한테 고용된 거라고. 오늘부터 너희들에게 약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줄게. 월급도 내가 준다."
"넵!"
"그리고, 오늘 있었던 일은···."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믿으십시오. 창훈이 형만 조심하면 됩니다."
"야! 나도 입 무겁거든!"
아직 재료는 남았다.
영약 말고 진짜 팔 수 있는 걸 만들어보자.
태주가 생각하는 건 요상단(療傷丹)이다.
강호 무림에서 내상 치유제로 쓰이는 약.
만드는 재료나 방식도 영약과 비슷하다.
주재료의 비율을 높이면 최상급 수준의 영약, 낮추면 회복제.
웅담과 마나 결정체의 양만 대폭 줄였다.
반대로 마나 삼지구엽초와 변종 마황, 마나 보리의 양은 엄청나게 늘리고.
이렇게 하면 영약이 아닌 회복제가 된다.
남은 재료를 이용해 밤새도록 약을 만들었다.
그리하여 만들어낸 환단 모양의 회복제.
이 한 알에 자이언트 반달곰 웅담이 얼마나 들어갔을까?
엄지와 검지, 한꼬집?
그보다 더 적을지도.
'효과 검증은 어떻게 할까?'
영약을 먹은 그날로부터 항상 자신의 옆에 꼭 붙어있는 백창훈과 장순철.
'어차피 약을 생산하려면 자이언트 반달곰 웅담이 더 필요하니까.'
태주는 멀뚱히 서 있는 두 명을 보며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혀, 형님, 왜 그렇게 웃으시죠?"
"우리가 뭘 잘못했습니까?"
"아니, 잘못은 무슨, 지금 나하고 사냥 가자고."
"좋습니다! 당장 준비하겠습니다."
장순철이 반색했다.
하긴 이제 막 각성자가 됐으니.
하지만 백창훈은 불안했다.
좀전의 태주형의 음흉한 미소가 마음에 걸렸다.
"···근데 어떤 놈 잡으러 갑니까?"
"자이언트 반달곰."
"아하, 그렇구나···, 네? 자, 자이언트 반달곰?"
"괜찮아. 안 죽어. 나 믿지?"
"그, 그게."
태주는 코트 주머니에서 회복제 한 알을 꺼내 백창훈의 손에 꼭 쥐어줬다.
"다치면 이거 먹으면 돼."
"어어, 영약? 아닌 것 같은데."
"회복제."
그제야 백창훈은 깨달았다.
"···저희 실험체인가요?"
"비슷해."
"사, 살려는 주실 거죠?"
"걱정 마! 절대 안 죽어! ···살짝 아프긴 하겠지만,"
"···."
당분간 사냥에 몰두하자.
회복제 재료도 채취하고, 창훈이와 순철이 훈련도 시키고, 겸사겸사 독정의 안정화도.
이제 자이언트 반달곰 정도는 충분히 잡는다.
혼원무상독령공 5성, 절정의 경지, 혈접이라는 천변만화의 암기술.
순간!
지이이잉!
스마트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누구지?'
오진형 중장이었다.
이 양반은 왜 자꾸 전화해?
"여보세요?"
- 태주군, 태주 사장, 아니 태주님, 한 번만 더 부탁함세.
부탁?
뭐겠나.
포자독 해독제 만들어 달라는 거겠지.
"포자 독 해독제는 좀 기다려달라고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지금은 모기 독 해독제가 더 급해요."
- 나도 알지, 아는데···,
"공장이 완공되고 양산 체제가 만들어지면 그땐 순조롭게 납품할 수 있을 겁니다. 정 고기가 드시고 싶으면 이리 오세요. 넉넉하게 드릴 테니까."
- 하아, 고기 문제가 아니라 이쪽저쪽에서 연락이 와서 미치겠네. 포자 독 해독제 조금만 나눠 달라고, 돈으로 구매하겠다고.
"전에 100세트 만들어 드렸잖아요. 거기서 몇 개 나눠주시지."
- 우리도 부족해. 그나마 가지고 있던 해독제 절반도 도둑이 와서 쓸어갔어.
"도둑이라뇨?"
- 그런 양반이 있네. 염치도 없는 분이시지. 뭐, 덕분에 제국 황실에서 군 운영 예산이 빵빵하게 내려왔지만.
도둑은 아닌 듯하고, 높은 사람이 와서 강제로 강탈해간 모양인데, 오진형 중장보다 높은 사람이 누가 있지? 대장이라도 왔나?
아무튼 누가 해독제를 사려는지 모르겠지만···.
"제가 수작업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이게 시간도 많이 걸리고 귀찮거든요. 그래서 싸게는 못 팝니다."
- 어, 얼마에?
전에 지리산 마수 군단에게 100세트를 납품했을 당시, 세트당 가격을 50만 원으로 책정했다.
백서연은 너무 싼 가격이라고 반발했고, 백홍표는 해독제가 사냥을 위한 것만이 아닌, 웨이브가 일어났을 때 일반 시민들에게 상비약으로 필요한 것이기 때문에 싸게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태주는 백홍표의 손을 들어줬다.
그래서 포자 독 해독제의 시판 가격은 50만 원.
"정 급행료 지불하고 포자 독 해독제 구하고 싶으면 세트당 1,000만 원은 받아야겠다고 전하세요."
- 허어,
"아니면 몇 달 기다리든지."
- 아, 알겠네. 그렇게 엄포를 놓지. 조금 있다 다시 전화하지.
사냥 준비나 하자.
이왕 가는 김에 반달곰 웅담 충분히 챙겨 와야지.
보냉 가방에, 아이스팩도 준비하고,
'일단 오중장 전화 받고 나서.'
솔직히 살 사람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안 했다.
서너 달 정도만 기다리면 공장이 완공되어 싼 가격에 살 수 있을 텐데, 그걸 못 참고 해독제 한 세트에 천만 원을 태워?
그런데 있었다.
한 세트 천만 원이라도 사겠다는 사람들이.
- 줄을 섰네. 물건 언제 받을 수 있냐고, 선입금해주겠다던데.
"···어. 진짜 1,000만 원이라도 사겠다고요?"
포자 독 낙타 고라니 사냥을 하려나 보다.
혹은 출시 전에 카피약이라도 만들어보려는 모양.
'카피는 못 할 텐데.'
모기 독 해독제와 마찬가지로 성분 분석만으로 되는 게 아니다.
혼원무상독령공으로 성질을 변화시킨 약재들, 분석기 기계는 같은 성분이라 판단하겠지만 실제론 차이가 있다.
어쨌든 만들어야지.
100세트만 만들어도 10억을 버는데.
"알았어요. 팔게요."
- 허허허, 잘 생각했네.
"3일 후에 물량 준비해서 팔겠다고 전해주세요. 판매 장소는···,"
여긴 공사 중이라 바쁘다.
여기로 불렀다가는 작업에 지장이 생길 수도 있다.
"지리산 마수 방어군단 본부에서 판매할게요."
- 오! 그럼 준비되면 연락해주게. 헬기를 보낼 테니.
한 1000세트 만들면 되겠지?
100억만 벌어 오자.
이걸로 땅도 더 사고, 장비도 구입하고.
"애들아!"
"넵!"
"사냥은 다음에 가자. 대신 약을 만드는 거 도와줘야겠는데···."
"마음대로 부려 먹으십시오!"
"어떻게 하는지만 가르쳐 주세요,"
"그럼 작업용 고글과 마스크 준비해와. 그리고 고무장갑도."
해독제를 만드는데 드는 수고의 9할은 재료 손질과 준비.
마침 심복 두 명도 생겼겠다, 이전보다는 수월하게 재료를 손질할 수 있었다.
백창훈과 장순철은 고글과 마스크를 착용하고 태주의 지시에 따라 약재를 분류했다.
"이건 이파리 말고 뿌리를 사용하는 거죠?"
"어, 맨손으로 만지지 마. 장갑 꼈지?"
"넵!"
"그건 착즙기에 넣어서 즙을 짜. 저 약초는 건조기에 넣어서 두시간 정도 말리고."
혼원무상독령공은 마지막 조율 단계에서 필요하다.
그래도 바르는 약과 먹는 약을 두 가지 모두 준비해야 하니 시간이 제법 걸린다.
그때였다.
"태주야."
지하 연구실 문을 열고 심각한 표정으로 들어오는 백홍표.
태주는 하던 일을 멈추고 그에게 다가갔다.
"백사장님."
"으험, 호칭 좀 어떻게 할 수 없나? 형님이라고 부르라고 했잖아."
"···그럼 창훈이가 나보고 삼촌이라 불러야 하는데요? 족보가 꼬여서."
"에이, 우리가 족보가 어디 있다고!"
"그런데 무슨 일로? "
"참! 누군가 자넬 만나고 싶다고 해서 찾아왔는데, 그냥 가라고 해도 한사코···."
누구지?
"제가 만나봐야 할 사람입니까?"
"글쎄, 일단 이름은 알려줄게. 구례 자경단원이자 노고단 길드 부길드장, 이름이 박정태라고, 이정학 심복이야."
"아···."
누군가 했다.
"왜 왔데요? 또 무슨 꼬투리 잡으려고."
"시비 걸려고 온 건 아닌 것 같아. 표정이 굉장히 안 좋더라고."
짐작이 가는 게 하나 있다.
이정학과의 충돌했을 때, 혼신의 힘으로 날린 유엽비도 한 자루가 놈의 손등을 스쳤었다.
"만나볼 텐가?"
"네, 제가 알아서 할게요."
"창훈이 부를까?"
"저 혼자 만나면 돼요."
태주는 건물 밖으로 나갔다.
주차장 공터에 검정색 고급 리무진이 한 대 세워져 있었다.
그리고 차 문 옆에서 서 있는 건장한 남자 하나.
천천히 리무진으로 걸어가니.
"안녕하십니까. 노고단 길드 부길드장 박정태라고 합니다."
"전에 여기서 한번 뵀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무례를 저질렀습니다. 사과드리겠습니다."
"네. 사과받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여주고는,
"차 안에 이정학 길드장 있죠?"
"알고 계셨군요. 맞습니다."
"증세는 어때요?"
"···어, 어떻게 아셨습니까?"
"심한가요?"
"하아, 그게 매우 좋지 않습니다."
직접 확인하자.
태주는 철컥, 차 문을 열고 들어갔다.
"콜록, 콜록,"
손수건을 입에다 대고 기침을 하는 이정학.
하얀 손수건에 혈흔이 보였다.
"어, 어서 오게. ···번거롭게 해서 미, 미안하네만."
이정학은 제대로 말하지도 못했다.
창백한 얼굴, 파르르 떨리는 손.
태주는 태연하게 이정학과 마주 보는 리무진 뒷자리, 이정학과 마주 보는 좌석에 앉았다.
이정학이 자신을 부른 이유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독을 해독해 달라는 거겠지.
하지만 먼저 말을 꺼내진 않았다.
뭐하러?
정말 죽기 싫으면 먼저 말을 걸어올 터.
오래도록 침묵이 흘렀다.
그저 이정학의 깊은 기침 소리만 들였다.
이윽고.
"···사, 살려주게."
항복선언이었다.
"뭐, 뭘 해도 낫지 않아. ···벼, 병원에서 해, 해독 치료를 받아도, 깨, 깨끗한 피로 수혈도 받아봤고, 이, 인공 투석을 했는데도, 차도가 없어."
당연하다.
독이 한가지라면 모를까.
다양한 성질의 독 기운이 씌워진 독에 당해버렸는데.
"···심지어 미리내 제약에서 마, 만든 최고급 영약도 무용지물이었어. 쿨럭쿨럭, 여, 영약의 기운이 몸속에 들어오자마자 흩어지더군,"
실제로 심각해 보였다.
잘하면 차 안에서 비명횡사할 정도로.
"제가 길드장님을 살려주면 전 무슨 이득이 있을까요?"
"···최, 최대한 협조하겠네. 날 자네의 칼로 써도 돼."
"칼? 필요 없는데요?"
"아아···, 제, 제발!"
"대신 한 가지만 약속해주면 생각해 볼게요."
태주의 입에서 긍정적인 말이 나오자, 이정학의 눈이 반짝 빛났다.
회광반조 같은 건가?
"뭐든지 말해주게."
"구례시 치안에 집중해요. 자경단의 본분에 충실하라고요. 쓸데없이 권력다툼 같은 거 하지 말고."
"쿨럭, 쿨럭! 아, 알았···,"
어차피 살려주려고 했다.
딱히 큰 흉계를 꾸민 것도 아니고, 제 나름대로 문제를 해결하려고도 했다.
그게 태주의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뿐이지.
이정학이 죽으면 자경단의 역할이 무너진다.
그러면 구례시 치안이 위험하고.
"복수하고 싶으면 언제든 날 찾아오세요. 괜히 주변 사람 괴롭히지 말고, 만약 백사장님이나 고아원 사람들 건드리면···."
태주의 눈에서 살기가 피어오른다.
전엔 지기 싫어서 오기로 피운 살기지만 지금은 너 정도는 충분히 죽일 수 있다는 의미의 살기였다.
"언제든 다시 목숨을 거둘 수도 있습니다."
"···."
끝내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만 끄덕이는 이정학.
태주는 손을 뻗어 이정학의 맥문을 잡았다.
"몸에 힘 빼요."
우웅! 5성의 혼원무상독령공이 그의 몸 안에 있는 독기를 회수하기 시작했다.
"크윽···,"
이정학의 몸이 허물어졌다.
독기가 사라지자 바짝 세우고 있었던 긴장이 풀렸기 때문이다.
슬슬 잠이 온다.
이정학의 눈이 감겼다.
태주는 그런 그의 주머니에 알약 하나를 넣어주며 말했다.
"후유증이 남을 테니까 집에 가서 이 회복제 꼭 먹어요."
"고, 고맙···."
이정학은 곯아떨어졌다.
잘한 선택이다.
구례시 자치위원회 상임위원이지 않나.
관계가 회복되면 도움받을 일이 있을지도 모르고.
< 살려는 드릴게. > 끝
ⓒ 꾸찌꾸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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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복제라고 평범할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