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믿는 눈치였지?"
에른은 마쿠스와 교정을 걸었다.
"좀 이상한 사람으로 보는 거 같 긴 했습니다만…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얘기니까요."
마쿠스가 씩 웃었다.
"그리고 골드 싫다고 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아카데미 측에선?"
"그쪽도 마찬가지죠. 학생들한테 장학금 주겠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그게 그렇지도 않아. 수혜를 입 은 졸업생이 상회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게 될 우려가 있거든."
"저희는 아직 우려할 규모도 아니 고 해서 단순한 호의로 받아들인 모양입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에른이 웃었다.
"그렇게 행동하건 말건 별로 신경 안 쓰이는 학생들이다?"
"...부인하기 어렵네요."
"두고 보}. 이 필라프 장학회… 아 니, 나중에는 에른 장학회가 되겠 지만."
클럽〈비상〉.
회원들의 미래가 하나씩 스쳐 지 나갔다.
에른의 입꼬리가 한껏 치켜 올라 갔다.
"앞으로 10년, 아니 5년이면 판 가름 난다. 우리 상회가 한 최고의 투자가 될 테니까."
"너무 장기투자인데요...
"장투? 뭘 그거 가지고."
에른은 더 길게, 아득한 저 너머 의 미래를 보고 있다.
그는 앞으로 17년 동안의 모든 [카르 숨] 졸업자의 이름과.
향후 두각을 나타낼 숨은 인재, 운 좋은 후계자들의 이야기를 알 고 있다.
그들 전부는 아니더라도, 절반이 라도 포섭할 수 있다면.
"기대해도 좋아. 열 배, 백 배로 돌아올 거야."
"아, 예...
"너무 마지못해 동의하는 거 아니야?"
"아, 아닙니다."
"아니긴. 내 말 들어서 손해 본 적 있어? 최근 포도주 건만 해도."
" 아."
마쿠스의 눈에 신뢰의 빛이 돌아왔다.
다른 건 몰라도 이건 인정해야 한다.
"갑자기 포도밭에 병충해가 돌 줄 이야… 지금 위기감에 다들 사재기 하고 난리 났습니다."
"이제 와서 그래 봐야 몇 발은 늦 었지."
"예. 남부에서 생산된 질 좋은 포 도주들은 저희가 다 선점해 놔서. 당장 수확량이 확 줄어들면 가격 이 최소 몇 배에서 십수 배까지도 뛸 겁니다."
마쿠스가 은근히 물었다.
"그런데 어떻게 아신 거죠? 해충 이 창궐할 거라는 거."
"올해 유독 따뜻한 날씨가 이어졌 잖아. 벌레들이 예년보다 빨리 활 동할 것 같았지. 농가에선 방심하
다 당한 거고."
"단지 그 이유로?"
마쿠스가 혀를 내둘렀다.
이런 예측이야 누구나 할 수 있 는 것이긴 하다.
하지만 그 약간의 근거를 믿고 막 대한 양의 골드를 투입하는 과단성 은, 보통 강심장이 아니고선 불가능 하다.
결과적으론 에른의 도박이 성공 적이었으니.
그 일로 요새 눈코 뜰 새도 없이
돌아다니느라 피곤함에 찌든 마쿠 스였다.
하지만 그도 뼛속까지 상인의 피 가 흐르는 전직 상회주.
무모한 투자가 대박 나는 걸 보 면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짜릿한 쾌감을 느꼈다.
"장학회가 잘만 된다면 대박이긴 하 죠. 전 회주님의 판단만 믿습니다."
"기대해도 좋다니까. 그런데."
" 네?"
"그 포도주 건을 좀 써먹을까 하
는데."
"말씀하십시오."
"상회를 하나 더 만들었으면 해.
이번에는 에른 상회로."
"언제까지 가짜 이름을 내걸 수는 없잖아. 천천히 본명을 되찾아야지."
"그건 그렇긴 하죠."
마쿠스는 에른이 필라프라는 것 을 아는 두 번째 사람이었다.
그와 지르칼만이 아는 비밀.
심지어는 실비아도 모르지만 마 쿠스에게는 말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 장학회 일만 해도 그에게는 사정을 설명해야 했고, 앞으로를 생각하면 밝히는 게 맞았다.
"규모는… 그렇게 클 필요는 없어. 가게 하나 빌리는 정도면 되고. 직 원 몇 명 고용해서 작게 사업을 하 다가, 포도주 판매로 빵 터뜨리면서 규모를 키울 생각이거든."
"그러면 필라프 상회는?"
"일단은, 투 트랙으로 가야지. 나 중에 에른 상회에 흡수시키든지
하고."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이거."
에른은 마쿠스에게 환약이 든 통 을 건넸다.
".…"이게?"
"요즘 머리가 무겁고 자도 자도 피곤하지? 그거 먹고 푹 자면 개 운할 거야."
마쿠스에게 준 것은 1계에 널린 〈청죽환〉이라는 피로회복약이다.
내상약도, 금창약도 아니고 단지
피로를 풀어줄 뿐.
운기조식이란 흘륭한 수단이 있 는 1계인들에겐 별로 인기가 없어 서 남아도는 물품이었다.
10개에 1코인이라는 염가 중의 염가이고.
"아… 감사합니다."
고개를 숙이는 마쿠스의 얼굴이 찡그려지는 게 보였다.
"왜, 냄새 때문에?"
"뭐...
"냄새는 그래도 효과 하나는 직방
이야. 먹어봐."
"지, 지금요?"
마쿠스는 에른의 눈치를 보다가 코를 막고 청죽환을 입에 넣었다.
"어때?"
"모르겠는데요."
"혀에 붙여만 놓고 있으니까 그렇 지. 꼭꼭 씹은 다음에 삼켜."
회주가 까라면 까야지.
마쿠스는 죽을상을 하고 씹기 시 작했다.
꿀꺽.
"어?"
그의 눈이 번쩍 뜨였다.
"이, 이거 신기한데요...?"
[88 화]
놀라움도 잠시.
청죽환의 효과가 전신으로 퍼져 나갔다.
물에 불린 면발처럼 완전히 풀어 진 마쿠스의 얼굴.
피곤함과 나른함이 싹 사라지고 개 운함과 활력이 그 자리를 채운다.
" O ... O 으.I"
놀란 눈을 한 마쿠스.
그에게 에른은.
"거봐, 효과 있지?"
"놀, 놀랍네요. 회주님, 이거 대체 뭡니까?"
잦은 초과 근무와 수면 부족으로 칙 칙해진 안색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충혈된 흰자도 많이 가라앉았고.
"포션은 아닌 것 같은데 대체...?"
"청죽… 아니 그냥 파란약이라고 해 두자. 쏘션 같은 거창한 물건은 아니고 피로 정도만 풀어줄 뿐이야."
"〈파란약〉이요? 무슨 그런 대충
지은 거 같은 이름이.... 별로 파 랗지도 않은데."
"재료 색이 파래서 그래."
"아…. 혹시 북부 지방의 민간요 법 같은 겁니까?"
뭐 이리 꼬치꼬치 묻는 건지 모 르겠다만.
설명하기 귀찮고, 설명할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그런 걸로 해 두기 로 했다.
"스틸가드에서 자생하는 약초로 만 든 거야. 누가 처음으로 이걸 써먹
을 생각을 했는진 모르겠지만… 용
감한 사람이지."
"흠...
마쿠스가 손바닥을 탁 쳤다.
"어떨까요? 이거, 사업 아이템으 로 써 보는 건?"
"글쎄."
"왜... 귀한 약인가요?"
"그렇진 않지. 마음만 먹으면 몇 백 개도 구해올 수 있을걸."
그래 보}야 몇십 코인밖에 안 되니.
물량도 많아서 보이는 족족 줍줍 해 오면 그만이다.
마쿠스가 바로 머릿속 계산기를 두드렸다.
"스틸가드가 멀긴 하지만, 운송비 가 많이 들 것도 없고 효과는 확 실하고… 저도 하나 장담해도 되겠 습니까?"
" 뭘?"
"파란약이라고 하셨죠? 이거 뜹니다."
"포션이나 회복 마법하고 비교했 을 때, 장점이 없는 건 아니지."
무엇보다 압도적인 가성비!
10개 1코인에 구해온다고 한다면, 한 2골드에 팔 경우 괜찮은 마진율 이 나온다.
2골드면.
마법사를 부르거나 스크롤을 쓰 거나, 하급 포션을 마시거나.
어떤 선택지를 고르건 파란약보 다 무조건 몇 배는 더 비싸다.
"근데 2골드가 싸긴 해도 부담되는 가격이란 말이지. 하루 1골드도 못 버는 사람들이 널렸는데. 하루의 피
로를 풀려고 2골드를 쓸까?"
"재력이 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해야죠."
"그럼 포션이나 성수 마시고 말지 굳이 파란약을?"
귀족이나 부호들이 냄새나는 환 약을 삼키려고 할지 의문이다.
"부회주만 해도, 내가 억지로 먹 으라고 안 했으면 손도 안 댔을 거잖아."
"그렇긴 합니다만.... 이거 분명 수요가 있어요. 저 같은 사람들."
일에 치여 사느라 항상 피곤함에 찌들어 있지만, 그렇다고 매번 포 션을 쓰기엔 부담스럽다.
그런데 파란약이라면?
매일 하나씩 먹어도 좋을 것 같다.
"에른 상회에서 시험 삼아 판매해 보는 건 어떨까요? 제가 무슨 수 를 써서라도 입소문 내 보도록 하 겠습니다."
"수상한데. 부회주가 쓰려고 팔겠 다는 건 아니고?"
"그, 그런 게 아예 없는 건 아니지
만… 저도 제값 내고 사야죠. 그리 고 사업성은 충분하다고 봅니다."
"뭐, 알았어. 스틸가드 쪽에 얘기 해 볼게."
에른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며.
"자."
남은 청죽환을 마쿠스의 주머니 에 넣어 주었다.
"이… 이러실 필요는 없는데."
"넣어둬, 넣어둬."
어차피 운기조식하면 그만인 에른에겐 별 의미 없는 물건이었다.
그리고 마쿠스는 받을 자격이 있다.
현재 에른에게 가장 많은 도움이 되는 인물.
선장의 위치에서 항로를 결정할 능력은 없지만, 이인자 자리에서 보좌하는 능력은 타고났다.
"부회주가 피로에 무너지면 상회가 안 돌아가지. 파란약 먹고 힘내."
"감사합니다."
마쿠스가 머리를 숙였다.
"참, 클럽으로 쓸 건물은?"
"그... 알아보고 있습니다. 무조건
21클럽보다 넓고 좋은 장소여야 한다고 하셨죠…. 아카데미 근처로 한정하면 좀 어렵긴 한데."
"부회주만 믿어."
"...알겠습니다."
*
마쿠스를 배웅하고.
기숙사로 돌아오자 풀죽은 얼굴 의 드미트리가 에른을 맞이했다.
"축하한다."
"대련? 소식 한번 빠르네."
"발 없는 말이 대륙 횡단하는 거 몰라? 벌써 교내에 싹 다 퍼졌지."
"말은 축하한다고 하면서 표정은 영 아니다?"
"그야.. 넌 한 번에 70위를 뛰어 올랐는데 난 순위 방어도 힘든 처 지고...
"뭘 그래. 내 실력 몰랐던 것도 아니고."
"알기는 알았지. 근데 막상 헤어
진다고 생각하니까."
에른이 픽 웃었다.
"왜 헤어져? 반은 바뀐다지만 방 은 그대론데."
"그, 그래도 다르지. 중급반이 어 떻게 감히 상급반하고 어울릴수 있겠어. 그냥 상급반도 아니고 서 열 2위하고...
'언제는 어울렸었나?'
드미트리는 룸메이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바란 패거리에게서 구해준 일로
무슨 둘도 없는 친구라도 된 듯이 착각하는 것 같은데....
그건 드미트리를 각별하게 여겨 서가 아니라 바란이 하는 짓이 같 잖아서 나선 것일 뿐이다.
"반이 뭐가 중요하지? 넌 똑같은 드미트리고 나도 똑같은 나인데. 달라지는 건 없어."
"그, 그렇지? 역시 너라면 그렇게 말할 것 같았어! 아,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드미트리는 급 신이 나서 주섬주섬 옷을 꺼내 입기 시작했다."
"어디 가?"
"훈련하러. 너처럼 될 수는 없겠 지만… 그래도 상급반은 가야 옆에 서기 덜 부끄럽지 않겠어?"
"뭐라는 건지."
고개를 젓는 에른이었다.
뭐, 방을 비워 주면 좋기는 하다.
"언제 올 건데?"
"식사 시간까진 해야지."
"열심히 해라."
드미트리가 없으면 방에서 편하
게 차원거래를 할 수 있다.
에른은 혼자 남게 되자마자 1계 채널에 들어갔다.
가장 먼저 할 일은 오늘의 판매 량을 체크하는 것.
[보유 코인 : 89950]
'오늘은 3만 코인 못 넘겼네.'
아침에 나갈 때만 해도 6만 코인 약간 넘는 정도였으니 2만 9천대 의 매출을 낸 셈이다.
거래소의 물건을 떼다 파는 것으로 에른이 먹는 순이익은 8〜9% 사이.
3만 코인을 찍으면 2500코인 가 량 벌어 간다고 보면 된다.
최고 매출은 하루 5만 까지도 도 달해 봤지만, 그건 프로모션 빨이 컸고.
이벤트가 다 끝난 현재는 3만 언 저리에서 왔다 갔다 하는 중.
'유지만 된다면, 나쁘지 않지.'
이 기세라면 조근남에게 2년 기한으 로 빌린 20만 코인, 이자까지 쳐도.
'1년이 뭐냐, 100일 안에 상환 가능하겠는데.'
여유롭다.
그것도 아주 많이.
"이참에 날 위해 좀 써볼까?"
슬슬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겠다 는 생각이 든다.
이만하면 코인은 모을 만큼 모았 고 1계에서 할 만큼 했다고 본다.
-에른 : ...구매합니다. 선제시 부탁드리고. 쭉 접속하고 있을 거
니까 바로 연락 주세요.
게시글을 남긴 두1, 마쿠스에게 약 속했던 청죽환을 200개 구매하고.
채널을 돌면서 재고를 보충했다.
그러던 중.
삐빅!
메시지가 왔다.
'벌써?'
그렇게 쉽게 나올 매물이 아닌데.
갸웃거리며 쪽지함을 확인하니.
-옥면금룡 조검휘 : 접속 중이시 죠? 잠시....
요즘 한참 연락이 없던 그였다.
조검휘는 조검휘대로 복수의 칼 날을 가느라 바쁘고, 에른은 제휴 상점 관리, 클럽과 상회 일로 쉴 틈이 없었다.
해서 오가던 대화도 자연스레 뜸 해진 터.
-에른 : 어,무슨 일이라도?
-옥면금룡 조검휘 : 저, 내상약
-에른 : 잠깐, 잠깐만 기다려.
에른은 인벤토리를 뒤져 최상급 내상약을 찾았다.
이런 일에 대비해 구비해둔 것.
전송 버튼을 누르고.
-에른 : 괜찮나? 다른 거 뭐 필 요한 거라도?
-옥면금룡 조검휘 : 내상약, 그 거면 됩니다.
운기조식을 몇 주천 하고도 남을 시간이 지나갔다.
조검휘는 초절정고수다.
거래소 공인, [초월적인 무공을 보유한 자].
그런 그가 내상을 입을 정도라면.
'상대도 그만큼 강했다는 거겠지. 그렇다는 건?'
-옥면금룡 조검휘 : 이제 한결 나아졌습니다. 하핫.
-에른 : 설마… 한 거지?
-옥면금룡 조검휘 : 뭘 말이죠?
-에른 : 시치미 떼지 말고. 그거잖아?
-옥면금룡 조검휘 : 그거라면 ..?
-에른 : 이걸 내 입으로 말해야 한다고? 한 거 맞잖아, 복수! 어느 쪽이지?
-옥면금룡 조검휘 : 하긴 했죠. 제가, 이 두 손으로.
느껴진다.
행간에 숨은, 그러나 채 숨겨지지 않은 감정.
-옥면금룡 조검휘 : 눈치 정말 빠르시군요. 어떻게 아셨습니까?
-에른 : 나도 같은 경험 있다고 했잖아. 그걸 어떻게 숨겨?
손바닥으로 가린다 해도 새어 나 오는 태양 빛을 감출 수는 없듯이.
샘솟는 기쁨을, 에른은 알아챌 수
있었다.
-에른 : 누구야? 정호근? 이난희?
-옥면금룡 조검휘 : 직접 보시죠.
조검휘가 대화창에 물품 하나를 올려놓았다.
-이난희의 목 : 백가협녀 이난희 의 수급. 부릅뜬 눈에 불신과 경악 이 어려 있다.
-에른 : 아니 이럴 것까진....
-옥면금룡 조검휘 : 신기하죠? 거래소가 사람 목까지 알아본다니.
-에른 : 뭐… 그쪽 세계에서는 날리는 고수였다고 하니까.
-옥면금룡 조검휘 : 단지 그 이 유에서일까요?
당연히 아닐 것이다.
난주혈사의 주역 중 하나.
동시에 피해자들에게서 빼앗은 내공을 거래해 코인을 긁어모은
헤비 교류자.
-에른 : 거래소는 가치 있는 물 품만 취급하지. 누군가에겐 그냥 죽은 사람의 머리일 뿐이겠지만.
-옥면금룡 조검휘 : 천금과도 같 죠. 저희 가족한테는.
-옥면금룡 조검휘 : 할아버님께 서 보시면 통쾌해하실 겁니다. 부 모님의 영전에 두 연놈의 목이 나 란히 놓인 장면을요.
—에른 : ....
연놈이라.
셋이 아닌 둘.
이번에는 씁쓸함이 물씬 풍겨난 다.
-에른 : 이난희가, 주범의 이름 을 불지 않던가?
-옥면금룡 조검휘 : 예.
-옥면금룡 조검휘 : 마지막까지 도 당당하기 짝이 없더군요. 내가 뭘 잘못했냐고. 그런 기회가 굴러 들어 왔으면 너도 똑같이 행동했을
거라고.
-에른 : 고문이라도 했어야지!
-옥면금룡 조검휘 : 백가장의 무 사들 때문에 그럴 여력이 나지 않 았습니다.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 만 해도 운이 좋았어요.
-옥면금룡 조검휘 : 그래서 다음 번엔 더 철저히, 시간을 들여 준비 하려고 합니다.
-에른 : 당연히 그래야지.
조검휘의 얼굴도, 목소리도 모른다.
그에 대해 아는 것은 리포트가 알려준 것, 그리고 몇 번 나눈 대 화로 느낀 것뿐.
하지만 복수라는 공통의 관심사 를 공유해서일까?
이상하게 조검휘에게 마음이 갔다.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는 중.
삐빅.
알람음과 함께 화면 한쪽이 번쩍 였다.
-에른 : 어…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기다리는 메시지가 왔거든.
-옥면금룡 조검휘 : 아, 그러시 죠. 다시 연락 드리겠습니다.
-에른 : 뭐 또 필요한 거 있으면 언제든 말하고.
-옥면금룡 조검휘 : 감사합니다.
조검휘와의 교감도 좋지만 당장 은 이쪽이 더 급하다.
이번에는 진짜였다.
-태양신군 : 〈환골탈태〉를 사겠 다고? 그거 값이 좀, 아니 많이 나 가는데.
-에른 : 상관없습니다.
-태양신군 : 본좌는 간만 보고 빠지는 놈을 제일 싫어해.
-에른 : 간 볼 생각 없습니다. 실탄은 충분해요.
-태양신군 : 그으래? 그럼 선제 시라고 했으니 가격 부르지.
'과연.'
아이템,〈환골탈태〉.
1계에서 구할 수 있는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그래서 언제나 최고가 라인에 속하는 물품이다.
얼마나 할지.
-태양신군 : 15만 코인.
' 어.'
숫자를 본 에른이 황급히 계좌를 살폈다.
-태양신군 : 내가 간잽이 다음으 로 싫어하는 게 뭔 줄 아나?
-에른 : 그걸 제가 어찌 압니까.
-태양신군 : 네고, 에누리, 가격 후려치는 놈들! 명심해, 이 밑으로 는 무조건 파기다.
단호한 태도에, 에른의 이맛살이 찌푸려졌다.
L보유 코인 : 59827]
모자라도 한참 모자랐기 때문이다.
[89 화]
태양신군이라.
'뭐 하는 인간이지?'
말투나, 닉네임만 봐도 범상치 않 다는 게 느껴진다.
그래도 정확한 건 까보기 전에는 모르니.
'어디, 볼까.'
[닉네임 : 태양신군
종족 : 인간
접속 장소 : 1계, 제1 무림계.
거래 등급 : Level 2
혼의 위상 : 신적인 무공을 보유한 자. 보유 코인 : 이
'신적인 무공을 보유한 자라면 .... 이 사람 신화경이네?'
일류 위에 초일류가 있고, 절정 위 에 초절정이 있다.
그 위에서 이 모두를 굽어보는 경
지, 신화경!
자이온 대륙의 경지와 비교한다면 완벽히 딱 들어맞진 않겠지만, 신화 급과 견줄 수 있다.
달성한 그 자체로 역사에 기록될 초강자.
물론 제1 무림계는 가장 먼저 무 학의 꽃을 피웠다는 첫 번째 무림계 라, 대륙에서 신화급이 대접받는 만 큼은 아니었다.
그래도 어쨌거나 신화경은 신화경.
여태껏 만난 교류자 중 최고수다.
이런 절대자들과도 독대할 수 있는 게 차원거래의 장점.
왠지 모르게 가슴이 뛰었다.
-태양신군 : 거래하는 사람 어디 갔나?
-태양신군 : 본좌는 기다리는 것 을 정말 싫어한다.
뭐 그리 싫은 게 많은지.
스스로를 본좌라고 부르는 이상한 말투도.
그러나 신화경이란 걸 알고 나니 뭔가 좀 너그럽게 받아들이게 된다.
-에른 : 아, 잠시만요.
'근데 신화경이 왜 개털이야?'
의아해하며 프로필 아랫부분을 봤다.
[거래소 리포트 - 제1 무림계의 천하십대고수, 태양궁의 절대자 태 양신군 이지함이다. 만물을 녹여 버 리는 강력한 열양지기를 운용하는
것으로 유명해 태양신군이라는 별호 를 얻었다. 북해빙군 설진욱과는 청 년 시절부터 유명한 라이벌 관계. 50년을 이어온 대립 구도는 결국 이지함의 승리로 끝났다.
사흘 밤낮을 싸운 끝에 승자의 영 예를 거머쥐었지만, 이지함도 멀쩡 하지만은 않았다. 거처가 얼어붙을 정도의 극한의 빙기가 혈맥을 잠식 해 가고 있어 위독한 상태다. 성격 도 무공을 따라가는지 단순무식, 열 혈에 참을성이라곤 참새 눈물만큼도 없다. 길게 끌지 말고 칼거래 하도 록 하자.]
'왜인지 알겠군.'
대강 그림이 그려진다.
극양과 극한의 대결이라.
1계인들은 굳게 믿고 있다.
태고부터 음과 양의 대립이 이어져 왔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임을.
거기다 서로 신화경이라면 당연히 운명을 건 한판 승부일 터.
준비도 철저히 했을 테고, 재산을 죄 털어 영약 한 뿌리라도 더 달여 먹었을 것이다.
에른은 손가락을 까닥거려 스크롤
을 위로 올렸다.
-태양신군 : 15만 코인.
그리고 다시 잔고.
[보유 코인 : 59827]
9만 173코인 부족하다.
가격 특전을 동원한다면 [에누리를 누리리]로 10% 할인, [가격 보조]로
30% 보조금을 받는다 해도, 4만 5000코인 이상 더 필요하고.
'아까 재고를 채우는 게 아니었어.'
그러나 2만 코인 더 있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진 않는다.
애초에 빚까지 내서 구매할 생각은 없었고.
보유 코인이 마이너스가 되면 구매 가 막히기 때문에 만물상 운영에 타 격을 입는다.
'그래도 환골탈태는 꼭 필요한데.'
환골탈태.
무인의 내공과 깨달음이 극에 이르 러 신체가 재구성되는 현상을 말한다.
잃었던 젊음을 되찾고, 훼손된 신 체가 원래대로 돌아오는 등의 여러 부가 효과가 있지만.
가장 좋은 건 무공을 익히기에 최 적화된 근골로 변한다는 것.
에른은 한동안 정체에 빠져 있었다.
각성급에 오른 뒤로 느낀 것은 여 전한 재능의 부족.
15만 코인이 비싸기는 하나, 매번 모든 무공을 사서 충당하는 데 드는
비용에 비하면야.
차라리 재능의 한계를 높여 수련하 는 쪽이 멀리 봤을 땐 더 싸게 먹 힌다고 본다.
'물론, 그것 말고도.'
-태양신군 : 본좌가 네 번째로 싫 어하는 게 뭔 줄 아느냐?
-에른 : 내가 어떻게 압....
-에른 : 아니, 알겠네요. 두 번 말 하게 하는 거 아닙니까?
-태양신군 : 그, 그걸 왜 맞춰?
-에른 : 왜, 남이 뭐 맞추는 것도 싫어해요? 그게 다섯 번째?
-태양신군 : ....
"태양신군 : 거래 안 할 거면 가 보겠다.
어쨌거나 환골탈태는 필요하다.
채널에 도는 물품도 아니고.
[현재 채널의 환골탈태(아이템)의
평균 거래가는 14만 코인.]
[현재 채널의 환골탈티1(아이템)의 거래량은 유일.]
거래가보다 1만 골드 비싸게 팔고 는 있다만, 거래량이 '희구r만 되어 도 부르는 게 값이 된다.
그걸 넘은 '유일'한 물건임을 감안 하면 별로 비싸게 부르는 것은 아니 라고 본다.
하지만, 제값에 구하는 건 역시 영 내키지 않아서.
'정보가 있는데도 써먹지 않는 건
리포트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에른 : 아뇨, 해야죠. 거래.
-에른 : 그런데 칼거래를 원하는 이유가… 빙한지기를 한시라도 빨리 몰아내야 하기 때문인가요?
-태양신군 : ???
-태양신군 : 너… 뭐냐? 그걸 어 떻게 알지?
-에른 : 태양신군과 북해빙군… 두 신화경이 맞붙은 건곤일척의 승 부. 1계 채널에서 모르는 사람도 있
나요?
-태양신군 : 아, 알 사람들은 다 알긴 하지. 참관인이 꽤 많았으니까.
-태양신군 : 그래도 이상해. 빙한 지기에 시달린다는 것까지 어떻게?
-에른 : 태양궁이 얼음궁전이 됐 다는 소문이 파다하던데. 북해빙궁 저리가라 할 정도로 추워졌다고 하 더군요.
-태양신군 : 홍, 듣는 귀가 없진 않은 모양이군.
-태양신군 : 그래서 뭐? 빙한지기
못 몰아내고 있으면 뭐?
에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신화경의 무인에 대한 예우는 잠시 접어 두기로 하자.
-에른 : 뭐긴, 배 째라는 식으로 나올 처지는 아닌 것 같다 이거지.
-태양신군 : 뭣?
환골탈태라는 귀한 매물을 급히 처 분해야 할 정도인 상황.
안 봐도 뻔하다.
-에른 : 그런 상태면, 완전히 빙한 지기에 먹혔다는 건데. 몰아내려면, 최상급 정수는 기본에 선급이나 천 급 영약도 있어야 할 테고.
-에른 : 다급하실 텐데, 코인은 충 분하신가?
-태양신군 : ....
점이 찍히자마자 자답했다.
-에른 : 당연히 부족하겠지. 그러 니까 모양 빠지게 궁주가 직접 코인 마련하러 다니는 것일 테고.
-에른 : 태양궁이면 나름 거대 문파 로 알고 있는데 요즘 좀 쪼들리나 봐?
-태양신군 : 이… 이 새끼가 감히! 너, 내가 누군 줄 알아?
-에른 : 말했잖아. 잘 안다고.
-태양신군 : 아는 놈이… 오냐, 너 잘 걸렸다. 내 태양장 맛을 봐야 눈 물을 흘리겠구나!
태양궁의 심처.
거기서 끓어오른 분노한 목소리가 차원을 건너뛰어 화면을 통해 전달 되어 왔다.
하지만 겁먹을 것은 없다.
-에른 : 진짜 성격 불같네. 겨우 이런 걸로 부들거리긴.
-태양신군 : 뭐, 부들?
-에른 : 그래, 부들! 맨날 본좌, 본좌… 하고 다니니까 교류자들이 다 그쪽 수하로 보이는 모양이지?
-에른 : 근데 하나 알려줄게. 차원 거래는 말이야.
종종 착각하곤 한다.
1계인, 특히나 이지함 같은 혼의 위상이 높은 교류자들이.
-에른 : 지위? 무력? 명예? 그쪽 이 신화경이건 뭐건 아무런 의미가 없어. 왜냐고? 그거참 다행스런 일 인데.
-태양신군 : ...?
-에른 : 난 다른 차원에 살고 있 거든.
-에른 : 더 아쉬운 쪽이 을이고 덜 아쉬운 쪽이 갑일 뿐. 그런데 아 쉬운 쪽이 누굴까?
-태양신군 : 누구… 나? 아쉬운 게 나라고?
-에른 : 환골탈태 못 한다고 죽는 사람은 없지. 그쪽은,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고.
잠시 침묵이 흘렀다.
-태양신군 : 음.
-태양신군 : 흠흠. 본좌가 사과하 지. 이 망할 놈의 빙한지기 때문에 두뇌까지 굳어 버린 모양이야.
신화경이라도 목숨은 소중한 모양.
에른은 웃으며 대답했다.
-에른 : 그 사고}, 받아들이도록 하 죠. 그런데 어쩌다가 빙한지기에?
-태양신군 : 크흠… 설진욱 그 얼 음땡이 새끼, 질 것 같으니까 너 죽
고 나 죽자 식으로 나오더구만.
-태양신군 : 그래도 난 놈을 죽이 고 싶지 않았지. 살려둔 채로 이기 고 싶어서 살을 내주고 뼈를 취하려 다가....
-에른 : 잘 안 돼서 뼈 내주고 뼈 를 취했군요.
-태양신군 : 그 선택 때문에 이런 꼴이다.
-태양신군 : 그래서. 뭐냐, 본좌한 테 원하는 게? 내 인생에 에누리는 없다곤 했지만… 한 1만 정도는 깎 아줄 용의가 있다.
-에른 : 그러실 필요 없어요. 그 냥, 이렇게 하도록 하죠.
-태양신군 : 이, 이렇게 뭐?
왠지 모를 불길한 예감.
에른은 자본주의로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지함에겐 보이지 않겠지만.
-에른 :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고 객님?
-태양신군 : ...?
-에른 : 나는 환골탈태를 원하고 그쪽은 살고 싶고. 맞죠?
-태양신군 : 맞… 긴 하지.
-에른 : 그러니까 서로 원하는 걸 갖 도록 하자 이겁니다. 좋잖아요, 윈윈.
협상 끝에.
〈거래 결과〉
지불 : 이글이글 타오르는 화정(최
상급) 2개, 만년삼왕(선급) 2뿌리, 대환단(천급) 3개, 태청단(천급) 2 개, 4만 5천 코인.
구매 : 환골탈태(아이템)
[캐시백 — 7500코인을 받습니다.]
-태양신군 : 어째 손해 보는 느낌 인데....
-에른 : 손해는. 다른 어딜 가도 한 번에 이만큼 구할 수가 없어요. 운 좋은 줄 아셔야죠.
최상급 자연의 정수와 선급 영약은 1만 5천 선에서 가격이 형성된다.
여기에 천급 5개를 더하면 1만이 니 3만 5천 코인 깎은 셈이겠지만.
이지함이 큰 손해를 봤냐고 한다면 꼭 그런 것도 아니다.
다른 교류자들이 그의 사정을 알았 다면 이보다 더 비싸게 받았을 게 뻔하니까.
-태양신군 : 뭐… 이미 끝난 거래, 더 따져 뭐 하나. 본좌는 뒤끝 없는 사람이야.
-에른 : 그런 건 좋네요.
-태양신군 : 세상 참 좋아졌어. 돈 만 있으면 몸도 새 걸로 바꿀 수 있고.
-태양신군 : 마음껏 누리라고. 새 로운 신체. 환골탈태 한번 하잖아? 예전 몸으로는 절대 못 돌아가. 답 답해서.
-에른 : 그런 분이 낡은 몸으로 돌아가게 됐으니, 안 됐습니다.
-태양신군 : 뭔 소리?
—에른 : ...?
-에른 : 정수하고 영약 구하려고 환골탈태 판 거 아니었어요?
-태양신군 : 미쳤어? 내가? 그러 느니 죽는 게 낫지. 애초에, 이 꼬 라지에 몸까지 늙다리로 돌아가면 바로 향냄새 맡으러 가야 해.
자연스레 드는 의문.
-에른 : 그럼 이 환골탈태는?
-태양신군 : 그건 본좌가 설진욱 그 패배자 새끼한테서 뺏은 거야.
-에른 : 어, 어떻게?
-태양신군 : 이번 비무에 건 게 그거였으니까. 패자는 늙고 추한 모 습으로 죽어간다!
이지함이 껄껄 웃었다.
-태양신군 : 깔끔하게 죽일 수도 있었지만 그러면 내 반백 년 묵은 감정이 안 가시지.
-태양신군 : 덕분에 고생 좀 했지 만... 이거만 있으면 한기도 몰아낼
수 있고. 결국 최후의 승자는 본좌 라 이 말이야.
'이 인간… 북해빙군을 대체 얼마 나 싫어한다는 거야?'
그냥 깔끔하게 죽이는 게 나았을 것 같은데.
뭐, 에른에게는 좋은 일이었다.
이지함이 그러지 않은 덕분에 그 희귀한 환골탈태를 바로 구하게 됐 으니.
인벤토리를 들여다보자.
-환골탈태(아이템) : 사지육신부터 세포 하나까지! 초인의 그것으로 탈 바꿈시킨다. 새 육체로 거듭나는 동 시에 근골과 단전이 무공에 최적화 된 형태로 재구성된다. 모든 무림인 이 바라는 이상적인 신체를 얻을 수 있는 꿈의 아이템.
에른은 잠깐의 고민도 없이. [아이 템 사용]을 눌렀다.
'과연 설명대로일지, 보자고!'
[90 화]
[아이템을 사용합니다』
['내 머릿속의 스펀지'의 효과가 적 용됩니다.]
『환골탈태' 진행 중, 1%....]
에른이 주먹을 꽉 쥐었다.
시작됐다.
신체 재구성.
기분 좋은 떨림이 전신으로 번져 나갔다.
1500도, 1만 5천도 아닌 무려 15 만을 호가하는 아이템.
15만 코인이면 진짜로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금으로 환산하면 150만 골드.
스틸가드의 5년 세수다.
북부에서 대공사를 벌여도 한동안 진행할 수 있고, 특급으로만 이루어 진 기사단을 꾸려 나바로 최강이란
타이틀을 얻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보다.
'내 몸이 더 소중해. 더 가치 있고.'
대륙의 유일한 차원 교류자.
또한, 맥스급 11대 특전의 보유자.
자뻑이 아니라, 객관적인 시선으로 봐도 이게 맞는 거다.
비옥한 땅에 물을 대는 게 현명하 고, 명마에게 좋은 먹이를 주는 게 지혜로운 것처럼.
"벌모세수는 며칠 걸렸지. 이건 얼 마나 걸리려나?"
혼잣말을 마치는 순간.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흔들.
'.…"입 안?'
간질간질한 쪽에 혀를 대 보니 위 쪽 어금니가 흔들리고 있는 게 느껴 졌다.
툭.
"에엥?"
손바닥 위로 떨어진 것은 뿌리까지 뽑혀 나온 치아였다.
"...벌써 진행되는 거야?"
호기롭게 [아이템 사용]을 누른 것 은 변화가 점진적으로 찾아올 줄 알 아서 였다.
'그, 그게 아닌가?'
왼쪽 눈이 붉게 타올랐다.
『환골탈태' 진행 중, 4%… 5%…
6%....]
"어… 너무 빠른 거 아니야?"
그때.
트 g
=v, =〒.
치아 두 개가 더 떨어졌다.
빠르게 손을 움직여 받아내는데.
흔들, 흔들, 흔들.
' 음'?'
w w M 4 M M f
=f, =r, -i—I—r그r!
무슨 옥수수 알갱이 떨어지듯 떨어 지기 시작한다.
곧, 흰 치아들이 손바닥 위에 수북 이 쌓였다.
에른이 눈살을 찌푸렸다.
'이러면 밥 못 먹잖아. 말하기도 좀 그렇고. 곤란한데.'
사소한 불편함을 떠올리는 순간, 치통이 전류와도 같이 뇌리를 강타 했다.
"크아아악!"
생살을 찢고 새로운 치아들이 돋아 나고 있었다.
아프다.
아파 죽겠다.
아니, 이런 생각마저 사치라고 느
껴질 정도의 극통.
"우욱!"
에른이 핏물을 내뱉었다.
지금까지 겪은 모든 치통을 합산하 고 두 배쯤 삥튀기를 시켜도 이보다 는 덜 고통스러울 것 같은데.
*
같은 시각.
태양궁.
이지함은 유황온천에 몸을 담그고 있었다.
태양궁은 극양지기가 흐르는 열지 (熱地) 위에 세워졌다.
그런 탓에 이 온천은 한서불침인 무 림인이 들어가도 화상을 입을 정도.
열양지공을 경지까지 수련한 화공 의 고수만이 목욕을 즐길 수 있다.
애초에 궁주 전용 탕이라 아무나 들어갈 수 없지만.
그런데 여태껏 보지 못했던 광경.
온천이 살얼음으로 덮여 있다.
데일 것 같은 뜨거운 김이 모락모 락 올라오고 있어야 정상인데, 그건 이지함의 몸에 똬리를 틀은 빙한지 기 탓이다.
'잠깐, 그러고 보니 그 친구… 모 르지 않나? 0계인이니까.'
환골탈태의 고통이 어느 정도인지.
강골 중의 강골인 이지함조차도 그 때를 생각하면 치가 떨린다.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자연 환골달 태는 대비할 도리가 없지만, 거래소 를 통해 인공적으로 시도하는 경우 엔 얼마든지 준비할 수 있다.
1계의 최상위 교류자들 사이에서 도는 꿀팁이었다.
'마취, 무조건 해야 하고… 그리고, 알몸! 이게 제일 중요하지. 알려줄 걸 그랬나?'
우우웅.
이지함이 눈을 돌렸다.
붉은 빛을 내는 차원거래서가 허공 에 떠 있었다.
그는 인벤토리에서 화정을 꺼내 손 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불의 정수.
열기가 사방으로 퍼져 나가자.
쩌저저적.
살얼음이 갈라지며 후끈한 기운이 온천 전체를 덮었다.
이제부터 중요한 순간이었다.
에른이고 뭐고.
간만에 보는 당돌한 놈이라 기억에 남기는 한다만.
당장 자기 목숨이 중하지 처음 본 교류자야 뭐.
"내 알 바인가? 지가 알아서 하겠지."
*
"끄아아악!"
에른은 옷자락을 구겨서 입안에 쑤 셔 넣었다.
이러다 기숙사 사람들 다 달려오게 생겼다.
"크허헉...
고통에 찬 신음이 새어 나왔다.
새 치아가 돋아난 뒤론, 머리카락 과 손톱, 발톱이 전부 빠지고 다시 순식간에 자라났다.
치통보다는 훨씬 참을 만해서 다행 이었다.
그다음으론.
뚜둑! 뚜두두둑!
전신의 뼈가 재조립되고.
빠직, 빠지직.
온몸의 근육과.
빠지 지 직!
근섬유 다발이 찢어지고 합쳐지면 서, 최고의 효율을 내는 상태로 재
탄생했다.
그건 좋다, 좋은데....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로 아프다는 게 문제다!
"헉, 헉… 허억...
에른은 천근처럼 무거운 눈꺼풀을 겨우 들어 올렸다.
겨우 확인한 차원거래 화면.
['환골탈태' 진행 중, 58%....]
'...그래도 벌써 절반 넘었네.'
온몸이 식은땀으로 젖었고 입가는 피범벅.
고비 하나 넘겼나 싶은데.
다음으론.
"우욱!"
참을 수 없는 복통이 찾아왔다.
내장 기관, 그리고 단전이 변형을 시작했다.
복통 다음으로 이어지는 것은 신경 계 전체가 타들어 가는 듯한 작열감.
전신 혈맥이 재구성되고 있다는 신 호다.
"크아아악!"
['환골탈태' 진행 중, 89%....]
피부가 계란 껍질처럼 부서지고, 새로운 피부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환골탈태' 진행 중, 98%....]
'이젠 진짜 끝인가.'
하지만 방심할 수 없다.
아직 남은 2%가 뭔지 몰라서.
그런데 격통이 찾아올 타이밍임에 도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휴우.…"
우선 드는 것은 안도감이다.
그만큼 정말 끔찍한, 다시 겪고 싶 지 않은 경험.
'태양신군 이 인간… 경험해 봤으 면 이렇게 된다고 말을 해 줘야지!'
물론 사후 관리까지 해주기에는 그 의 상황도 그리 녹록한 편은 아니긴 했다.
"음?"
고통이 가신 건 좋은데, 뭔가 이상 한 느낌이....
에른이 숨을 들이마셨다.
희미하게 느껴지는 것은.
'악취? 이상한데?'
자기 몸에서 이런 냄새가 날 리가.
믿기지 않지만, 고약한 냄새가 점 점 심해지고 있었다.
".…"뭐야?"
몸을 더듬자 뭔가가 만져졌다.
물컹.
소매를 걷어 본다.
팔 아래로 시꺼먼 진흙 같은 게 흘러내렸다.
에른은 곧 정체를 알아차렸다.
"...탁기. 탁기구나. 당연히 탁기 도 다 빠져야겠지. 환골탈태인데."
남은 2%는 탁기 배출인 것 같다.
몸 안 깊숙한 곳과 세맥.
평생 쌓인 온갖 더러운 기운을 몰 아낼 차례.
그때, 문득 드는 불길한 예감.
'이거 혹시...?'
직감하자마자 황급히 옷을 벗어 보 지만.
이미 늦었다.
주르르륵!
전신 모공에서 노폐물이 쏟아져 나 오기 시작했다.
"아, 안 돼!"
*
"으... 냄새!"
드미트리가 코를 틀어막았다.
"인간적으로 이건 아니지."
귀찮아서 며칠 안 씻은 데다 훈련 으로 땀범벅까지 되니까 자기 체취 인데도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기숙사로 돌아와 자기 방으로 향하 는 중이었다.
'갈아입을 옷 가지고 바로 샤워장 가야겠다. 냄새 풀풀 풍기는 건 에
른한테도 미안한 일이고.'
똑똑.
드미트리는 노크하고 문을 열었다.
"어? 벌… 벌써 왔어?"
놀란 얼굴의 에른이 그를 맞이했 다.
"섭섭하게 벌써가 뭐냐? 훈련장 최 후의 2인 찍고 왔는데."
"혼자 남아야 최후지. 최후의 2인 은 뭔...
"그 한 명은 못 이기니까. 사실상
1 등이야."
"뭐라는 건지. 알았으니까 들어와라."
"어. 근데, 잠깐."
드미트리의 얼굴에 물음표가 떠올 랐다.
뭔가 이상했다.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가장 먼저 느 껴지는 것은 평소에는 맡을 수 없는 냄새.
코끝을 자극하는 것은....
"뭐냐, 이 향기는?"
드미트리가 코를 킁킁거렸다.
"향수 뿌렸어?"
에른이 손을 내저었다.
"내가 향수가 어딨어. 방에서 나는 냄새지."
"남자 둘이 사는 방에서 뭔 놈의 향기. 너 설마...
"나 나간 사이에 여학우를 초대하
기라도 한 건?"
"미쳤냐. 퇴학당할 일 있어?"
"그치? 아무리 차석이라고 해도 그 건 진짜 쫓겨날 일이지?"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애초에 아는 여자애도 없고."
"그건 내가 더 잘 알지. 아는데 이 상하네… 밖에 꽃이라도 폈나?"
드미트리는 갸웃거리며 창가로 향 했다.
창가 아래.
누런 진액이 고여 있었다.
'앗!'
그걸 본 에른이 얼른 허공섭물을 발휘했다.
널브러져 있던 수건이 스르륵 날아
가 진액을 덮었다.
다행히 드미트리는 못 보고 지나쳤다.
'휴...
이따위 일로 허공섭물을 쓰게 될 줄이야.
환골탈태를 마친 두L
방안은 개판이 되어 있었다.
배출한 노폐물과 떨어져 나온 신체 일부, 홀린 침과 피부 조각....
환골탈태란 개념이 없는 사람들에게 이게 뭔지 설명해야 하게 된다면?
상상하기도 싫은 일.
'드미트리가 돌아오기 전에 다 치 워야 해.'
에른은 우선 삼매진화를 일으켜 더 러워진 옷을 태우고.
인벤토리에서 화골산을 꺼내 한데 모은 치아와 손발톱, 머리카락 등을 녹였다.
[클린 룸] 스크롤을 찢어 방 청소 까지.
그리고 0계 채널에서 주워온 방향 제를 마구 뿌려 악취를 잠재웠다.
그렇게 원상복구 시킨 줄 알았는 데, 미처 못 보고 지나친 흔적이 있 었던 모양이다.
"꽃은 무슨. 잡초도 안 보인다."
드미트리가 몸을 돌렸다.
"...너 왜 나한테 딱 붙어 있냐?"
"아하하… 아무것도 아니야."
에른은 발로 진액을 덮은 수건을 쓱쓱 문질렀다.
다 지우고 뒷걸음질 치려는데.
"잠깐만, 에른."
"왜?"
"너 좀 이상해."
"뭐가?"
"아니, 내가 이상한 건가? 오늘따 라 왜 이렇게 잘생겨 보이지?"
"잘생긴 게 어디 하루 이틀이냐. 새삼스럽게."
뒤로 물러나자 드미트리가 그만큼 다가왔다.
"아니야. 피부가 너무 백옥인데? 잡티 하나도 없고."
"나 원래 잡티 없었어."
"없긴 했지. 근데 지금은 없어도 너무 없잖아."
환골탈태의 부수적인 효과 중 하나다.
외모 수준 향상.
물론 원판 불변의 법칙에선 벗어날 수 없지만.
에른의 원판이 워낙 좋다 보니 시 너지 폭발!
"그 머리도 그래. 너무 윤기 나고 탐스럽잖아."
"나 원래 머리카락에 신경 많이 써. 잘 빠지는 집안이라."
"알아. 평소에도 막 뭐 바르고 하 는 거. 그래도 지금은 찰랑거려도 너무 찰랑거리잖아."
의심스러운 눈초리.
드미트리가 눈썰미가 있었다면 더 많은 걸 잡아낼 수 있었을 것이다.
키가 반 뼘 정도 커졌고, 어깨는 넓어진 데다, 팔다리도 더 길쭉하고 곧게 변했다.
이건 변명의 여지도 없는데 그걸 못 알아보니.
'쓸데없이 디테일에만 강하다니까.'
얘도 가만 보면 보통 이상한 게 아니다.
에른이 슬그머니 문가로 향하자 드 미트리가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
"어디 가? 나 얘기 아직 안 끝났어."
"그러냐? 난 좀 바쁜데."
"바쁘긴 뭐가 바빠? 이 시간에."
"훈련. 나 훈련하러 간다."
"...갑자기?"
"영 찌뿌둥해서. 몸 좀 풀어야겠어."
"거짓말. 대답하기 곤란해서 자리
피하는 거지?"
"아니거든. 이따 보자."
찌뿌둥하다는 건 거짓말.
막 환골탈태한 직후라, 몸은 깃털 처럼 가볍기만 하다.
그래도 훈련장은 원래 가려고 했다.
과연 이 최상의 신체에서 어떤 성 능이 나올지, 내일까지 기다릴 자신이 없어서.
훈련장 근처.
"하앗! 흐아아압!"
날카로운 기합 소리가 들렸다.
'그 못 이긴다는 한 명인가?'
드미트리가 말한 최후의 1인.
아직까지 저러는 걸 보면 진짜 훈 련광인 것 같았다.
이미 사위는 어둑해진 참이었다.
새벽에 바위산을 오르려면 슬슬 휴 식하고 잠을 청해야 체력 관리가 될 텐데.
안으로 들어가자 수련생의 움직임 이 눈에 들어왔다.
달빛 아래 몰아치는 검무.
긴 머리카락이 함께 나부끼고 있었다.
'여자애네?'
에른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아는 얼굴, 본 적 있는 실루엣이라.
"...미타잖아?"
[91 화]
월광, 소녀, 그리고 검.
달은 밤하늘에서 가장 밝은 천체다.
수많은 별들도, 유성조차도.
커튼처럼 드리워진 달빛 앞에선 반 딧불에 불과할 뿐이다.
소녀, 미타는 처량할 정도로 가냘 펐다.
가는 손목, 가장 작은 사이즈를 입 고도 헐렁한 수련복 상의.
그리고 고사리 같은 손에 들린 검.
검 한 자루로 달빛보다 빛날 수 있을까.
미타의 검무는 뛰어난 것과는 거리 가 멀었다.
그럼에도, 아름다웠다.
휘영청 밝은 달이 두 팔을 뻗어 미타의 몸을 감싸고.
파앗!
작은 체구에서 나온 것이라고는 믿 기지 않는 폭발력과 함께.
쌔애행!
목검의 궤적이 반월을 그린다.
정교함보단 투박함이, 능함보단 서 투름이 더 엿보이는 검무.
그러나.
두근.
에른은 멍한 얼굴로 가슴에 손을 댔다.
'뭐지, 이 심장 박동은?'
정말 별것 아닌 움직임인데.
평가 대상조차 되지 못하는 수준이다.
왜일까.
그런데도 묘한 감흥이 느껴지는 것은.
미타는 거북이처럼 느릿느릿, 그러 나 일정한 속도로 계속 나아간다.
같은 반 수련생들을 앞지르고, 동기 들을 지나쳐 같은 세대의 강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특급 기사로.
그게 30대 초반의 일이다.
그때가 되어서야 사람들은 깨닫게 되었다.
기존에 알던 것과는 전혀 다른 종 류의 재능이 존재하고, 그걸 가진
게 미타라는 사실을.
그녀는 더딜지언정 한계가 없었다.
충분한 시간만 주어진다면 영웅급… 아니, 전설급도 가능할지 모른다.
그렇게 나바로의 미래를 책임질 기 사로 떠올랐지만, 거기까지 가기 위 해 미타는 매일 오늘과 같이 수련하 며 15년을 보내야 했다.
그런 집념고} 끈기.
오직 에른만이 미타의 진가를 알아 본다.
그렇기에 어설픈 검무에 시선을 빼
앗기는 것일지도 모른다.
문득, 쇄혼경천검의 한 구절이 떠 올랐다.
-혼을 깨뜨려 쇄혼, 하늘을 놀라게 하여 경천이다.
이 부분.
에른은 쭉 이렇게 받아들여 왔다.
'상대의 혼을 박살 내는 거? 어렵 지 않지. 멘탈 부서질 때까지 때려 주면 되는 거고. 근데 경천은… 가 능한 거야?'
쇄혼경천검.
천검성을 대표하는 독문검법이다.
석현에게 천위신공을 추출해 넘겨 준 대가로 받은 무공.
그 심오함은 일류일 때도 이해하지 못했고 한 단계 올라선 지금도 영 감이 잡히지 않았다.
검으로 하늘을 놀라게 한다니.
말이 되는 소리냔 말이다.
그런데.
쿵, 쿵-
두근거림이 멈추지 않는다.
미타 또한 검무를 멈출 생각이 없 어 보이고.
지친 숨을 몰아쉬고 땀을 비 오듯 흘리는 그녀는.
확실흐], 달빛보다 아름다웠다.
"설마 그 뜻이...
에른의 입에서 중얼거림이 흘러나 왔다.
'혼을 깨뜨려 쇄혼, 하늘을 놀라게 하여 경천이다.'
수백 번을 참오했던 문장.
갑자기 전혀 다른 의미로 성큼 다
가왔다.
에른은 이 구절을 재해석해 보았다.
-스스로의 혼을 깨뜨려 쇄혼. 그리 하여 하늘까지 놀라도록…. 그래서 경천이 다.
'단단히 잘못 생각하고 있었어.'
쇄혼, 경천, 검.
아니.
쇄혼경천검.
쿠웅...!
심장의 고동이 최고조에 이르렀다.
그러나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찾아온 깨달음.
깨달음은 희열이 되고, 무아지경이 되어 에른의 뇌리를 휘감았다.
검으로 대자연을 압도할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아무리 오러를 드넓게 펼친다 한 들, 너른 대지와 광활한 하늘을 뒤 덮을 수는 없으니까.
그렇다면 어떻게?
오직 할 수 있는 것은 혼을 산산 이 바스러뜨릴 각오뿐.
쇄혼으로 경천한다.
그것은, 인간만이 가능한 일.
가냘픈 인간이기에 더욱 빛나는.
"아...!"
깨달음의 조각을 붙든 에른이 탄성 을 내질렀다.
목소리가 꽤 컸는지 미타가 검무를 멈췄다.
그리고 뒤돌아서 이쪽을 봤다.
"누… 누구?"
"...안녕?"
"에, 에른?"
미타가 검을 내리며 물었다.
"여, 여긴 어쩐 일이야?"
"나도 훈련하러 왔지."
"이 시간에?"
"너도 있는데 뭐. 나라고 안될 거 있어?"
"그건 아니지만… 난 이제 끝내고
들어가려고 했거든."
미타가 눈을 내리깔았다.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에른과 대
화를 나누게 되다니.
그것도 훈련장에서 단둘이!
의식하게 되니 호흡이 가빠지고 시 선 처리가 마음대로 안 됐다.
"왜 그래?"
"아, 아니야...
미타는 아예 고개를 푹 숙여 버렸다.
에른과의 아이컨택.
3초 이상 유지하기가 심히 어렵다.
달빛 아래라 그런지, 둘만 있기 때 문인지.
미소 짓는 에른의 얼굴이 원래 알 던 것보다 더욱 화사해 보였다.
"그거 줘 볼래?"
" 응?"
"손에 든 거."
"아...
미타가 목검을 내밀었다.
받아든 에른.
그가 검을 이리저리 둘러봤다.
"맨질맨질하네. 손잡이가 닳았어."
"그게 왜?"
"신기해서. 입학식 때 받은 검이 벌써 이렇게 됐다는 게."
"아… 다른 애들 것도 다 그렇지 않아?"
"그럴 리가. 잠시."
에른은 미타를 지나쳐 간 뒤, 검을 쓱 휘둘러 봤다.
쑤우우웅!
별로 내공을 실은 것도 아닌데 파 공음이 장난이 아니다.
스스슷!
그리고 가볍게 펼치는 보법.
신형이 순간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 났다.
'이게 환골탈태의 효과...
이 몸이 자기 몸이 맞는가 싶을 정도다.
10의 힘을 쓰면 딱 10만큼 표출되 는 정직한 과거의 몸과는 달리, 1만 써도 10, 아니 20이 나오는 미친 효율.
이제야 천재들이 보는 세상을 이해 할 수 있겠다.
'이런 몸을 갖고 태어났으니까 뭐
든 쉬운 거겠지. 더럽게 불공평하 네.'
그러나 지금부턴 타고난 천재들이 에른의 근골을 보고 불공평함을 느 껴야 한다.
환골탈태로 인해 천재 중의 천재, 타고난 중에서 가장 타고난 몸이 되 었으니까.
'어디 한 번.'
막 붙잡은 깨달음을 시험해 본다.
여태껏 엄두도 내지 못했던, 머릿 속에서만 시뮬레이션해 본.
심호흡과 함께, 폭발적으로 내공을 끌어올렸다.
츠파앗!
쇄혼경천검, 제일초.
목검이 훈련장을 반으로 가르며 쏘 아져 나갔다.
번뜩이는 뇌전과도 같은 쾌검.
이 초식의 이름은.
'...섬뢰.'
목검이 허공을 꿰뚫었다.
만약 적이 있었다면 인지하기도 전
에 절명했을 터이다.
척.
멈춰선 에른의 입가에 웃음이 감돌 기 시작했다.
펼쳐진다.
쇄혼경천검이.
고작 일초식에 불과하고, 아직 완 벽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환골탈태와 더불어 조금 전의 깨달 음이 다음 단계를 넘보게 되는 계기 를 마련해 줬다.
"너, 너...
미타에게 돌아가자 그녀가 놀란 토 끼 눈을 하고 쳐다봤다.
"방금 그거… 뭐였어?"
"뭐긴, 내 찌르기지. 아무한테나 안 보여주는 건데. 어때, 소감이?"
"완, 완벽한 찌르기야! 빠르고, 날 카롭고. 내가 본 것 중에서 최고! 교관님들 시범도 그 정도는 아니었 는데."
"에이, 그건 시범이잖아. 설렁설렁 하니까 그렇게 느끼는 거겠지."
'정말 그럴까?'
에른이 펼친 쾌검은 미타의 상식을 한참 벗어난 것이었다.
흡사 공간을 뛰어넘기라도 한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아무리 상급반 2등이라고 해도, 이 게 1학년이 보일 수 있는 움직임인 지 의문이 든다.
"아무튼 다 너 덕분이지. 고맙다."
에른이 감사를 표하자 미타가 고개 를 갸웃거렸다.
"내, 내가 무슨?"
"그런 게 있어. 그건 그렇고. 너도
보기 좋더라. 열심히 하는 모습."
"봤… 봤어? 훈련하는 거...?"
그렇다면 완전히 번데기 앞에서 주 름잡은 격 아닌가.
혹시나 비웃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미타는 귀까지 새빨개졌다.
그러나 생각지도 못한 반응.
에른은 느낀 바를 솔직히 말했다.
"아름답더라."
"뭐...?"
"두 번 말하긴 좀 그래."
"놀, 놀리지 마! 나도 내가 형편없 다는 것쯤은 아니까!"
"진심인데. 진심이 아니라면 내가 왜 널 영입했을까?"
미타도 그게 궁금했다.
"왜인지 생각해 봤어. 봤는데… 아 무리 생각해 봐도 모르겠더라."
"난 널 높이 평가하고 있어. 뜻한 바대로 끝까지 밀고 나가라."
에른은 미타에게 목검을 넘겨주었다.
"오늘 보니까 확신이 더 강해지네. 넌 비상에 가장 어울리는 사람이야."
미타는 가만둬도 알아서 잘할 것이다.
뭐, 그건 대부분의〈비상〉회원들이 그렇긴 했다.
다만 시기의 문제일 뿐.
그 만개 타이밍을 조금씩 앞당겨 주는 게 에른의 역할이다.
" 잠깐만."
에른은 청죽환 10알을 꺼내 미타 에게 건넸다.
"이건...'?"
"받아. 약이야. 몸에 좋은 약이라서 쓰지만, 효과는 끝내주니까."
코를 찌르는 약 냄새.
미타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지만, 잠시일 뿐.
그녀는 웃으며 청죽환을 품에 넣었다.
"고마워."
두 사람은 훈련장을 나와 한동안 같이 걸었다.
미타를 여자 기숙사에 데려다주고.
방으로 돌아온 에른은 드미트리의 질문 공세를 원천 차단하기 위해 이 불을 뒤집어썼다.
"너 일부러 이러는 거지! 나랑 얘
기 좀 해!"
"아니, 훈련하고 왔더니 피곤해서. 말 시키지 마라. 잘 거니까."
환골탈태한 몸이 얼마나 좋은지 확 인했으니, 이젠 정말 다음 단계로 나아갈 차례였다.
에른의 눈이 붉게 빛나기 시작했다.
차원거래를 시작한 그는 먼저 [업 적/퀘스트] 창으로 들어갔다.
[섭리의 눈]을 발동시키자.
[다음 거래 등급까지 남은 업적(4/5)]
[등급 상승에 필요한 혼의 위상-무공 수집가, 아낌없이 무공 파는 자, 완전히 탈바꿈한 자, 초월적인 무공을 보유한 자, 사술 마스터 중 하나. (획득 - 완전히 탈바꿈한 자)]
〈완전히 탈바꿈한 자〉라는 혼의 위상.
여기서 탈바꿈이란 환골탈태를 뜻 하는 것이다.
저 중에서 가장 달성하기 어려운 혼의 위상.
태양신군과의 거래로 달성한 지금 은, 단 하나만이 남아 있었다.
'남은 업적을 뭘로 채운다...
현재 달성한 4개의 업적은 황금왕 1에서 3단계와 내공 흡수 1단계.
일단 떠오르는 것은 [내공 흡수 三] 이다.
환골탈태로 확장된 단전은 내공을 얼마든지 더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 고, 쇄혼경천검을 익히려면 아무래 도 현재 가진 100년 내공으론 부족 할 것 같았다.
'섬뢰… 검기를 끌어올린 것도 아 닌데 내공이 훅훅 빠져나갔지.'
에른은 내공을 구매하기 시작했다.
잔고가 늘었어도 한 번에 이만큼의 내공 구매는 약간 부담이 된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이참에 보충을 해야 하긴 해서.
[1 만 5120코인을 지불했습니다.]
[내공(60년)을 구매했습니다.]
[캐시백- 2268코인을 받습니다.]
에른은 바로 [흡수]를 시작했다.
이번에는 가진 내공이 흡수할 내공 을 압도하는 터라, 어렵지 않게 포 용할 수 있었다.
단전이 따뜻하게 차오르는 듯한 느 낌과 함께.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내공 흡수 三 : 내공 2갑자를 흡 수하십시오.]
[달성 보상! '10년 내공'을 받습니다.]
' 됐나.'
전생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조 금 떨렸다.
이제부터는 에른도 그리 잘 알지 못하는 미지의 채널.
전생은
1계에서도 잘 되진 않았지만, 2계에 선 정말 쓰디쓴 기억 밖에는 없었다.
그러나.
두려울 것도, 의기소침할 것도 없다.
하던 대로 하기만 한다면 마찬가지 로 좋은 결과를 얻게 될 거니까.
주먹을 꽉 쥐는 그때.
[모든 업적, 필요한 혼의 위상을 충족하였습니다.]
[거래 등급이 올랐습니다.]
[Level 2 등급이 되었습니다.]
[이제부터 2계 채널에 입장 가능합 니다.]
쏟아지는 메시지들과.
마지막 메시지.
이번에는 놀라지 않는다.
['마음의 소리' 특전이 개방되었습니다.]
아니, 오히려.
등급 업보다 새로운 특전을 더 기 대하고 있었다.
'마음의 소리라… 이건 또 얼마나 사기인지 볼까?'
[92 화]
[마음의 소리 (Lv. Max)]
-대화 중인 상대의 심리 상태가 '상세히' 표시됩니다.
-상대방의 속마음이 '일부' 노출됩 니다.
"흐음...
새로 생긴 이 맥스급 특전.
이름에 딱 걸맞은 효과를 가지고
있다.
딱 봐도 좋다는 생각이 들기는 한 다.
사실상의 독심술 아닌가.
그렇긴 한데....
에른은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기분 이 차츰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흠.…"
"왜 그래?"
드미트리가 가까이 와서 물었다.
"무슨 고민 있어?"
"그런 거 없다."
"없긴. 아, 내일부터 상급반으로 올 라가니까? 하긴… 새로운 환경에 적 응한다는 건 언제나 부담스러운 법 이지."
그따위를 걱정하게 생겼나.
방구석, 그것도 이불 속에서 2계 진출.
바로 지금, 룸메이트가 한 차원 높 은 곳으로 올라갔다는 걸 드미트리는 상상은커녕 꿈에서도 모를 것이다.
물론 세기의 업적 같은 것은 아니 다.
할아버지, 라제칸도 2계까지 뚷었 을 것은 거의 기정사실이었고.
'〈초월적인 무공을 보유한 자〉를 기본으로 깔고 가니까… 당연히 올 라가셨겠지.'
4계의 물품, 불가살이의 알을 비고 에 보관해 뒀던 것만 해도.
2계 진출 그 자체가 목적이라면 달 성하기 아주 어려운 일은 아니다.
쉬운 업적만 찾아 도장 깨기 하고,
가장 난이도 낮은 혼의 위상을 확보 하면 되는 거니까.
그런데 이건 위에서 내려다보는 입 장일 때나 할 수 있는 말.
전생의 에른은 얻어걸린 덕분에 2 계에 갈 수 있었던 거지, 운이 나빴 다면 끝까지 헤매기만 했을지도 모 른다.
그런 이유로.
어쨌거나, 0계인이 2계에 도달했다 는 것은 나름 성공한 편이라고 봐야 한다.
모래알처럼 많은 0계의 교류자들.
여기서 하계를 탈출해 큰물로 진출 하는 이들은 소수에 불과하니.
"그럼 뭐가? 뭔데?"
"그런 게 있어."
"넌 너무 비밀이 많아."
"나 원래 수수께끼 같은 남자야. 그러니까 신경 꺼라."
에른은 드미트리의 2차 시도를 가 볍게 차단하곤 한숨을 쉬었다.
'분명 좋은 특전이긴 한데.... 왜 하필.'
2계 보상으로 풀리냔 말이다.
'일단은, 부딪혀 보자.'
에른은〈1계 채널〉표시를 눌러
채널 이동을 활성화시켰다.
2계를 터치하자.
우웅.
침대 위에 둥둥 떠 있는 차원거래 서가 진동을 시작했다.
그와 함께 다른 색으로 변해 가며, 에른의 좌완 또한 기존에 나타나지 않은 색으로 물들어 갔다.
'역시 칙칙해.'
회백색이 되어 버린 차원거래서.
에른의 눈에서도 뿌연 아지랑이와 도 같은 광채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또렷한 금안에 무채색 안광이라.
0계나 1계처럼 강렬하진 않아도 대
비 효과로 더 눈에 띌 것 같았다.
1계의 레이아웃은 피를 연상시키는 붉은색에 누가 봐도 동방의 양식인 기둥 모양이었다.
2계는 깔끔한 동시에 차가운 느낌.
테두리에는 깨알 같은 글씨들이 적 혀 있는데, 자세히 보면 그건 수식 이었다.
정교하고 복잡한 마법 수식.
〈2계 채널〉
에른은 구매 게시판부터 확인했다.
-지도교수용서못해 : 대형급 마나 엔진 3기 대여해 봅니다. 가격은 대 당 100코인 정도. 실험 데이터만 뽑 고 돌려드릴 생각인데… 저 이거 못 하면 죽어요. 꼭 연락 부탁드립니다.
-과묵한흑마법사 : 제 호문클루스 가 괴수화 진행중이네요흐흐. 지바 스탄 배양액의 영향일까요. 날이 갈 수록 식탐이 강해지고 있는데 이런 부작용은 처음 보거든요. 나중엔 저 까지 잡아먹으려 할지도…. 아, 발레
포르의 학설에 결함이 있는 건 아닐 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아주 흥미 로워요흐흐. 아무튼, 그래서 배불리 먹일 게 필요한데요. 소나 돼지 100 마리, 가금류 300마리 정도 구매하 려고 합니다.
그렇다.
2계 채널은 마법계.
이곳의 교류자들은 1계인들보다 더 특이했다.
대륙에도 마나 기반 무술이 존재하
지만, 그보다 더 발전된 [무공]으로 [무림]이란 독자적인 세계를 구죽한 1 계처럼.
대륙에도 역시 마법은 존재하지만, 2계의 마법은 대륙 수준과는 차원이 달랐다.
[마도 문명]을 일구어낸 [마도 국 가]들을 모아 놓은 2계 채널.
마탑의 선택을 받은 일부만이 마법 사가 될 수 있는 대륙과 달리, 마도 국에서는 누구나 마법 교육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아예 마법이 의무 교육인 국가도
있다고 하고.
마도국의 평범한 학생도 대륙 기준 으로는 천재 마법사다.
확실히 대단한 사람들이긴 한데, 그런 만큼 이상하기도 했다.
방금 본 구매글만 봐도 뭐지 싶은 느낌을 풍긴다.
'구매가 아니고 대여? 꼭 돌려준 다... 그 말을 어떻게 믿고 빌려줘? 그리고 아랫놈도 정상이 아니야.'
저게 과묵한 거라면 대체 얼마나 말이 많아야 수다스러운 축에 속하
는 건지 의문이 든다.
그래도 2계인들이 이렇다는 걸 모 르진 않았기에, 전생보단 문화 충격 이 덜했다.
'벌써부터 어질어질하네.'
흔들리는 멘탈을 다잡기 위해.
이벤트 페이지로 들어갔다.
[프로모션의 프로]가 또 밥값을 할 때가 왔다.
[쿠폰이 도착했습니다.]
편지 봉투 모양의 아이콘에서 잿빛 연기 같은 게 흐르고 있었다.
잘못 보면 봉투에 불이 붙은 것 같기도 한.
아이콘을 누르자 편지 내용이 화면 가득 떠올랐다.
[안녕하십니까, 에른 교류자님!
1계 축하 선물을 드린 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2계에 도달하셨군요.
빠른 발전을 축하드리며 거래소가 준비한 소정의 선물을 보내드립니다.
보내드릴 물품은 총 4개이며 바로 인벤토리에 지급됩니다.
-고대의 마나 증폭 펜던트
-마나 서클 각인(1서클, 기본 회로 포함, 아이템)
-해석학 개론(지식)
-라이트닝 안마기.
귀하의 거래에 무한한 이익이 깃들 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차원거래소 드림.]
'이번엔 쿠폰이 아니네?'
그런데 문득, 싸한 느낌이 들었다.
뭔가를 놓친 듯한 기분.
뇌를 간지럽히는 감각의 정체
"앗!"
갑작스런 탄성에 드미트리가 다시 다가왔다.
"에른? 왜?"
"고… 마… 해라? 구마해라!"
"알, 알았어...
드미트리는 시무룩해져서 자기 침 대로 돌아갔다.
"아니, 너한테 말한 거 아닌데."
"됐어. 내가 그렇게 방해되는 줄 몰 랐네. 이젠 정말 귀찮게 안 할게. 싯."
그런데 이번에는 정말로 드미트리 한테 말한 게 아니었다.
거래소에서 주기로 한 물품 목록.
앞글자를 따면.
'그만 좀 하라고? 뭘 그만해?'
우연이라고 보기엔 너무 공교롭다.
다른 물품이야 그렇다 쳐도 라이트 닝 안마기는 대체 뭔데?
이상한 물건을 끼워 넣으면서까지 글자를 맞춘 걸 보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냥 농담으로 하는 말일 수도 있 겠지.'
작작 좀 하란 소리를 들어도 이상 하지 않을 만큼 코인을 긁어모아 왔
던 것은 사실이니까.
경고일지, 나름 유머랍시고 던지는 말일지.
이것만으로는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에른은 인벤토리 창으로 들어갔다.
이제는 예전의 그 낡은 인벤토리가 아니 었다.
코인이 몇만 단위로 모이기 시작하 면서 인벤토리에 투자할 여력이 생 겼고, 무림만물상의 물품들은 값비 싼 것들이 많아서.
그렇게 꾸준히 업그레이드한 결고}.
[인벤토리 Lv. 6]
"저장 용량 (2763/8000)
-인테리어: 튼튼한 강철 대문, 냉 난방이 가동되는 맞춤형 보관실.
움직이는 대형 창고라고 해도 과언 이 아닐 정도.
에른은 거래소에서 받은 물품들을 하나씩 확인했다.
-고대의 마나 증폭 펜던트 : 고대 마도문명의 발상지 테페르 유적에서
발굴된 펜던트. 소유자의 마력량을 증폭시켜 주는 효과가 있다.
'이건 이름 그대로고.'
서클 각인은 마법사가 되기 위해 꼭 필요한 과정.
마나 서클이 없는 마법사는 제아무 리 수식 계산에 뛰어나고 마법진 기 깔나게 그리는 재주가 있다 한들 마 법사로 인정받지 못한다.
검의 달인이라 해도 심장에 마나를 쌓을 수 없으면 기사가 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마나 서클 각인(1서클, 기본 회로 포함, 아이템) : 심장에 첫 번째 고 리를 각인시켜 준다. 추가로 깔리는 기본 회로는 서비스. 이것만 있으면 당신도 마법사가 될 수 있다!
'회로? 고리? 뭔지 모르겠네.... 어찌 됐든 이걸 쓰면 마법 재능이 생긴다는 거지.'
1계 축하 선물이 '단전 형성'고} '5 년 내공'이었으니까 이번 선물도 거 기에 딱 들어맞는다.
1서클이면 별로 대단한 것은 아니다.
가볍게 맛만 보게 해서 얼마나 좋 은지 깨닫게 하고....
'마법 없이 살 수 없는 몸이 되어 버리면 그때부터 코인 털어 가겠다 는 발상? 거래소답지.'
해석학은 마도학의 근간을 이루는 여러 뿌리 중의 하나.
필수적인 학문이라 선물 목록에 포 함된 듯하고.
마지막으로.
-라이트닝 안마기 : 무엇이든 고
쳐 주는 만병통치 기계. 마도공학계 의 괴인 안셀로가 개발한 기이한 발 명품으로, 이 기계로 완치 및 호전 을 기대해볼 수 있는 증상이 1500 여 가지에 이른다고 한다.
밥그릇을 잃을 것을 두려워한 치유 마법사들이 극렬 반발하여 끝내 양 산화는 되지 않았고, 고작 몇 대만이 차원거래 채널에서 거래되고 있다.
'말이 되는 소리를…. 아니지. 보면
알잖아.'
에른은 [흐름 파악]을 사용했다.
[현재 채널의 라이트닝 안마기의 평균 거래가는 4000코인.]
[현재 채널의 라이트닝 안마기의 거래량은 희귀.]
'정확히는 천병통치 기계인가… 가 격을 보면 좋은 물건이 맞는 거긴 한데.'
그만하라는 게 어쩌면 완곡한 부탁 일 수도 있지 않을까.
4000코인이나 나가는 물건을 줄
정도면.
널리고 널린 게 라이트닝 계열 아 이 템이다.
[라이트닝 볼트]라든지 라로 시작 하기만 하면 되는 거니까 성의 없이 [라이트]를 골라도 되는 거고.
굳이 비싼 물품을 넣은 것은 의미 하는 바가 충분히 있다.
'하긴, 내가 무슨 정책을 위반한 것도 아니고 말이지.'
받은 특전 잘 활용하고, 멍청한 놈 들 뒤통수치면서 성장했을 뿐이다.
이게 죄라면 코인 좀 만진 교류자는 태반이 영구 정지당해야 할 터이다.
'두고 보면 알게 되겠지. 그럼… 마검사나 되어 볼까.'
에른은 '마나 서클 각인'을 사용하 고 '해석학 개론'의 흡수를 시작했다.
마검사나 되어 볼까.
에른은 별것 아닌 듯이 말했지만, 누가 들었다면 기가 차서 이렇게 따 져 물었을 것이다.
마검사가 무슨 장난이냐고.
그렇게 쉽게 입에 올릴 칭호가 아
니라고.
몇백 년에 한 명 나올까 말까 한 게 마검사다.
기사는 심장에 마나를 쌓고, 마법사 는 심장 주위에 마나 고리를 만든다.
마나 하트와 마나 서클을 동시에 키우고, 그 수를 늘려나가는 것은 지루하고 어려운 과정이었다.
'마나 하트는 서클 확보를 방해하 고, 마나 서클은 마나 축적을 방해 하지. 하나만 하는 것보다 다섯 배 로 노력해야 겨우 비슷한 경지를 맞 출 수 있어.'
그러나.
어렵지 않았다.
차원거래와 함께라면.
진행률이 100%에 이르자 메시지 가 떠올랐다.
[마나 서클 각인이 완료되었습니다』
[흡수가 완료되었습니다.]
에른은 심장에 새겨진 첫 번째 서클
을 느꼈다.
1급 수준의 마나로 가득 찬 마나 하 트와 이를 둘러싼 선명한 마나 서클.
'나도 이제, 마검사다.'
[93 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