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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100%EXP / Chapter 18: 18

Capítulo 18: 18

* * *

엘리스가 나와 윤서현을 안내해 준 곳은 다름아닌.

- 함장실

함장실이었다.

"함장실은 원래 접근이 불가능했지만 지금의 함장이 입장 권한을 훔쳐냈어요."

엘리스가 관리자의 키카드를 가져다대자.

치이익······.

기계식 문이 열리며 옅은 증기를 뿜어냈다.

오랜 기간 열리지 않았던 건지 가벼운 먼지가 쌓여 있다.

"정말로 사용되지 않던 장소인가봐요."

먼지 때문인지 윤서현이 가볍게 기침을 했다. 엘리스가 멋쩍은 듯 말했다.

"내부는 작동하지 않아요. 함장 말에 따르면 무슨 짓을 해도 안된다고 그러더라구요. 그래서 줄곧 방치 상태였죠. 이런 장소가 함선에 꽤 많아요. 그래도 여기에 있는 기계가 분명히······."

앞선 엘리스를 따라 함장실 내부로 걸음을 옮긴 순간이었다.

우우웅—.

함장실의 내부가 옅게 진동하더니, 안쪽의 기계 장치에서 푸른 선이 뻗어져나왔다. 형광빛의 푸른 선은 벽과 바닥을 타고 함장실의 내부를 밝히기 시작했다.

엘리스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뭐, 뭔가 건들이셨나요?"

"아니. 아무것도."

말 그대로다. 그냥 걸음을 옮겼을 뿐이다.

함장실 전체로 퍼져나간 푸른 선은 이내 방 전체를 가득 채웠다.

『 내부 조명 ON 』

동시에 함장실 전체에 불이 들어왔다. 어두컴컴했던 내부가 환하게 밝혀졌다.

"이런 적은 없었는데······."

당황한 엘리스가 중얼거린 그 순간이었다.

팅!

『 함선 세이비어가 함장 '이지한'의 출입을 감지합니다. 』

『 세이비어의 인공지능 비서 네이아가 활동을 개시합니다. 』

우우웅!

바깥의 상황이 보이는 홀로그램창이 떠오르고, 각종 장치에 게이지와 전원 램프가 반짝이기 시작했다.

멈춰 있던 함장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한씨가 함장이라는데요?"

"이게 어떻게 된거죠······? 사부가 함장······? 아, 설마······!"

진세아는 창고에 있던 이 함선을 훔쳐왔다고 했다.

애초에 이만한 성능의 물건이 창고에 있던 이유는 명확했다.

내가 죽었기 때문이다.

김건은 처음부터 나를 염두에 두고 이 함선을 제작해 두었던 것이다.

그러니, 아무도 사용하지 못하고 있었을 수밖에.

『 어서오세요. 이지한 함장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

세이비어의 인공지능 '네이아'의 목소리가 함장실에 울려퍼졌다.

155화 세이비어(3)

"내가 함장······?"

『 예, 그렇습니다. 현재 함선 전체의 운용 현황을 파악 중에 있습니다. 해당 시퀀스에는 다소의 시간이 소모됩니다. 』

홀로그램 메시지와 함께 인공적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부가 진짜 함장이었던거군요······. 여기서라면 함선의 전체적인 모습이 한눈에 파악되겠어요."

함장실 내부를 살피는 엘리스의 눈이 빛나고 있었다. 잘은 모르지만, 계기판 위로 함선 내부가 담긴 CCTV와 다양한 수치가 오르락 내리락하고 있다.

이전에는 없던 기능인 것 같다.

그보다 내가 함장이라니.

'······그런거였나.'

김건은 처음부터 이 함선의 주인을 나로 설정해 둔 것이었다.

미래에서 내가 맡는 역할을 생각하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오히려 진세아가 함선 전체를 훔쳐서 사용하고 있었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고.

팅!

붉은색 메시지가 떠올랐다.

『 70,425 건에 해당하는 비인가적 접근을 확인했습니다. 』

『 현재 세이비어를 불법적으로 점거하고 있는 세력에 관한 정보를 확인합니다. 』

『 주동자 '진세아' 및 '엘리스 스튜어트'에 대한 배제 프로토콜을 실행하시겠습니까? 』

별안간 함장 진세아의 사진과 로브를 뒤집어 쓴 엘리스의 사진이 떠올랐다.

"설마, 여기에 있는 사람들 전부 외부인 취급하는 건가요?"

윤서현의 말대로다.

"헉."

엘리스의 동그래졌다.

따지고보면 그들은 함선에 대한 불법 점거자란 건가.

"배제 프로토콜이란 건 어떻게 진행 되는 거지?"

『 내부의 전투 안드로이드를 활용한 직접 제거가 추천됩니다. 각 안드로이드는 SS급의 전투 능력을 소유하고 있으며, 특수 개체는 일시적으로 SSS급의 출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

거 참 삭막한 대답이다.

"됐어. 놔둬. 여기 있는 사람들은 전부 내 동료다."

『 알겠습니다. 현재 함선에 거주하고 있는 이들에 대한 판단은 보류하겠습니다. 』

"보류가 아니라 동료라니까."

『 해당 명령은 현재 함장님께서 소유하신 권한을 초월합니다. 마스터키를 꽂아 함장님의 권한을 복구해주십시오. 』

"마스터키······?"

『 ······. 』

돌아오는 대답이 없었다. 다시 물어도 마찬가지였다. 주위를 둘러 보던 윤서현이 가볍게 말했다.

"혹시 기밀 같은 거 아닐까요? 권한이 없는 상태에선 접근조차 할 수 없는 그런거요. 그나저나 이런 영화에나 나올법한 걸 만들 수 있다니. 김건 그 사람은 진짜 천재인가보네요."

확실히 내부는 현대에선 볼 수 없는 최신 기계들로 가득 차 있었다. 이것들 하나하나의 기능과 쓰임새는 나로선 짐작하기 어렵다.

"사부, 여기에요! 재능의 조각을 합칠 수 있는 기계."

어느샌가 함장실 내부로 들어가 있던 엘리스가 손짓해서 날 불렀다. 애초에 함장실에 온 목적은 이거였다.

투명한 시험관처럼 생긴 기계 장치.

엘리스는 앞쪽의 입구를 열어 젖혔다.

"어쩌면 인공지능이 말하는 마스터키라는 게······. 재능의 원석들을 합쳐서 나오는 걸지도 몰라요. 사부가 사용하신 걸 몇 번 봤거든요."

그렇다면야 망설일 것도 없다.

나는 들고 있던 세 개의 조각을 기계에 집어 넣었다.

파란색, 검은색, 남색의 조각이 시험관 내부에서 두둥실 떠오른다.

찰칵.

입구를 닿자 인공지능 네이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 재능의 원석을 확인했습니다. 』

- 미약한 재능의 조각

- 특이한 재능의 조각

- 신기한 재능의 조각

내 부족한 재능을 조금씩이나마 메꿔주던 조각들.

『 해당 조각들을 하나로 합성하시겠습니까? 』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선 이 재능을 하나로 모을 필요가 있다.

"그래."

내 대답이 끝나자마자 장치의 내부가 새하얗게 빛나기 시작했다. 이내 이리저리 유리관을 날아다니던 세 개의 조각이 하나로 합쳐졌다.

『 재능의 원석 합성에 성공했습니다! 』

그 중간으로 떠오른 것은.

『 애매한 재능의 결실 』

오색찬란한 빛을 띈 검은 보석이었다.

"애매한 재능······? 뭐, 이름이 그래요?"

보석을 바라보는 윤서현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러나 장치에서 보석을 꺼내 손에 쥐는 내 마음은 달랐다.

두근두근.

가슴이 벅차오르는 감정이 솟아오른다.

'이제 애매하다고 부를 정도의 재능이 된 건가.'

멸망한 세계에서 나는 죽기 직전까지 F급 헌터였다. 근력 Lv.1 하나를 소유한 어쩔 도리도 없는 무재능의 극치.

그러나, 지금 내 손에는 '재능'이란 게 존재한다.

애매하다고 해도 그것은 분명한 재능.

그 크기는 상관없다.

이 조금의 재능이 50만배의 경험치와 합쳐진다면.

분명 폭발적인 효과를 발휘할테니까.

『 마스터키의 존재를 확인했습니다. 현시점부로 함장 '이지한'의 권한은 최고 등급(EX)로 고정됩니다. 』

애매한 재능의 결실을 손에 넣은 순간, 인공지능 네이아가 반응했다.

『 함선의 모든 기능이 해제 됩니다. 』

그 변화는 CCTV를 통해서 바로 확인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 마공학 엔진, 마도공학 동력장치 등 주요 동력원의 손실률이 30%가 넘습니다. 』

『 공간 마법 보호막 등 함선 보호 수단의 파괴를 감지했습니다. 』

『 세이비어 자가 복구 시퀀스에 돌입합니다. 』

엘리스의 근처로 홀로그램 창이 떠올랐다. 다른 승무원들로부터 온 메시지인 모양이었다.

"파, 파괴 되었던 시설들이 복구 되고 있다고요······?

내부에 잠들어 있던 안드로이드들이 활동을 시작했음은 물론이다. 이전 여제의 공격을 받아 파괴되었던 부분이 수리되고 있단 뜻이었다.

"굉장해요. 사부!"

엘리스가 기쁜 표정으로 내 두 손을 마주 잡았다.

이걸로 끝이 아니었다.

『 대기권에서 대량의 마기를 감지합니다. 고도를 높여 안정성을 확보합니다. 』

내 권한을 확인한 네이아는 스스로 함선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함선의 속도를 나타내는 계기판이 미친듯이 치솟아 오른다.

『 엔진 출력 56% 』

『 이차원 보호막 가동률 79% 』

창밖을 스쳐지나가는 검은 구름들.

바깥의 풍경만으로 압도적인 속도가 느껴질 지경.

그러나 함선은 한 점의 흔들림 없이 하늘 위로 날아 오른다.

붉은 하늘이 어두워지고, 검은 구름조차 시야에서 전부 사라진다.

이윽고 우리는 무한한 어둠.

반짝이는 별들이 가득한.

우주를 바라보고 있었다.

『 함장실 내부의 투명도를 조정합니다. 』

기계로 가득하던 함장실의 벽면이 투명하게 변했다. 우리의 발 아래 위치한 땅 덩어리가 자그맣게 보일 지경이다.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지구는 썩 볼만하다.

"와아······. 예뻐요."

"사부, 굉장해요······. 정말로요."

바깥을 내다보는 엘리스와 윤서현이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끄아아—! 대, 대체 무슨 일이야!!"

함장실의 바깥에서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다급하게 함장실 내부로 들어 온 미래의 진세아는 다시 한 번 소리쳤다.

"이, 이게 어떻게 된거야?! 이 놈들은 또 뭐고?!"

진세아는 혼자가 아니었다.

우당탕탕!

뒤늦게 달려온 열 마리 가량의 안드로이드가 진세아의 목덜미를 들어 올렸다. 못 벗어날 무력은 아니었으나, 진세아는 내 얼굴을 살피더니 반항을 멈췄다.

네이아의 인공적인 목소리가 함장실 내에 울려퍼졌다.

『 네이아의 자가 판단 아래, 함장 행세를 하며 함선을 불법 점거한 인물 '진세아'를 확보했습니다. 배제할까요? 』

진세아는 질렸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응, 대충 알겠네."

* * *

『 본함 세이비어는 최후의 인류를 마족으로부터 수용하고, 최후의 전쟁을 대비하기 위해 설계된 기동 요새입니다. 』

함장 등록이 끝난 뒤, 인공지능 네이아가 활성화되자 함선의 모습은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져있었다.

식사를 하기 위해서 식당으로 이동하니, 한바탕 소동이 일어나 있었다. 수 백 명의 인원이 식당 근처에 모여 있었다.

"우와앗! 햄버거가 나오잖아!"

"원하는 요리를 골라서 먹을 수가 있다고······?"

"하, 함장님······!"

본선에 내장되어 있던 안드로이드들이 활동을 개시하며 비어져 있던 식당을 차지한 것이다.

어딘가에 숨겨져 있던 식재료들도 전부 방출되는 모양.

지금까지는 빵이나 스프 같은 배급이 전부였단다. 그것도 구하느라 죽을 둥 살둥 고생했다는 게 진세아와 엘리스의 말이었다.

사람들의 반응이 폭발적인 건 당연했다.

"세상에."

"함장님께서 뭔가 하신겁니까?!"

"최곱니다. 미쳤어요, 진짜! 새로 업데이트 된 겁니까?"

승선해 있던 시민들의 시선이 진세아에게 모였다. 진세아가 떨떠름하게 가슴을 폈다.

"아, 으응. 그렇지. 뭐."

의외로 내 얼굴은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모양. 원래 그런 걸 신경쓰고 살지는 않지만 말이다.

우리도 먹고 싶은 음식을 받아 자리에 앉았다.

미래의 진세아가 포크로 샐러드를 푹푹 찍었다.

"이야, 신선한 샐러드라니. 기쁘다, 기뻐."

"말하는 거랑 표정이랑 반대네요. 뭐, 어때요. 제가 발견한 자료 좀 봐요. 함선에 내장된 수많은 기능······."

눈을 가늘게 뜬 채로 엘리스가 내민 자료를 살피던 진세아의 눈이 커졌다.

"자, 잠깐······. 이런 출력으로 주포를 쏠 수 있었다고? 장난 아니잖아. 이 함선은 이런 기능을 숨기고 있었단 말이야?"

본래 함선은 진세아가 훔쳐왔기에 비활성화된 구역이 많았다고 한다.

"근데 원래 세아는 어디에 있나요?"

"아, 훈련 중. 나중에 구경하러 와."

나는 스테이크를 썰며 인공지능에게 물었다.

"진세아에게 함장의 직위를 넘겨줄 순 없는거야?"

내가 가지고 있어도 무의미하다. 나는 어차피 돌아갈 사람이다. 이 사람들을 이끌고 데려온 것은 진세아다.

『 훌륭한 농담이네요. 』

"아니, 농담이 아니야."

단순한 인공지능이라기엔 자율적인 판단도 할 줄 알고, 나름의 의지도 가진 모양이다.

『 불가능합니다. 초기설정에서 벗어납니다. 』

"그렇다면 우선 부함장으로 설정해. 그건 되겠지."

『 함선 무단점거 테러리스트 '진세아'를 부함장으로 임명하시겠습니까? 』

녀석의 어투에서 다분한 악의가 느껴진다. 인공지능 네이아의 입장에선 함선을 도둑 맞은 거나 다름 없다는 건가.

"그래, 부함장으로 임명해."

『 유사시에 부함장은 함장으로 승격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정말로 괜찮으십니까? 』

"괜찮다니까. 오히려 그렇게 해라."

『 알겠습니다. 진세아를 부함장으로 등록하겠습니다. 』

잠자코 듣고 있던 진세아는 입 안에 방울토마토를 던져 넣더니 피식 웃었다.

"인공지능 주제에 자존심은 있구나."

『 전 이지한 함장님과 함선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할 뿐입니다. 』

"어쨌든 나도 부함장이니까. 내 말을 잘 들어야 하지 않겠어?"

『 ······. 』

"야, 로봇 대답해."

『 저는 초인공지능 네이아입니다. 로봇과 비교하는 건 저에 대한 모독······. 』

두 사람의 신경전이 이어지는 가운데.

엘리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희는 훈련하러 이동할까요? 아까 확인해 봤는데, 함선 내부에 초호화 훈련시설이 존재하더라구요. 빨리 가보고 싶어요."

『 트레이닝 센터까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

어딘가에 있던 안드로이드 하나가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외관은 거부감이 느껴지지 않는 형태다.

안내를 따라 통로를 이동하던 도중.

"어, 저건······."

지상이 내려다보이는 복도 앞에 섰다. 커다란 창 밖으로 대한민국의 국토가 한눈에 보인다.

대한민국을 거대한 장막이 감싸고 있다. 그 위로 오로라 같은 보랏빛의 물결이 일렁이고 있다.

보는 것만으로 압도되는 기분이다.

엘리스가 창 앞에 서서 설명을 해주었다.

"여제가 지배하는 대한민국이에요. 차원 자체가 나뉘어져 있어 그 누구도 결코 침입할 수 없는 장소죠."

"내가 저런 능력을 가졌다고요······?"

"네, 서현씨에게는 그만한 잠재력이 있어요. 지금부터 그걸 설명 드릴거에요."

잠시 말을 멈춘 엘리스의 시선이 나에게로 향했다.

"그리고 사부에겐 일자베기 14레벨을 달성하기 위한 방법을 알려드릴 거고요."

일자베기 14레벨.

지금의 내가 도달할 수 있는 최대치의 레벨이자, 본래의 시간대로 귀환하기 위한 필수조건.

그 훈련이 지금부터 시작된다.

156화 세이비어(4)

치이익—!

굳게 닫혀 있던 격벽이 열리며, 오랜 시간 폐쇄 되어 있던 트레이닝 센터가 모습을 드러냈다.

『 트레이닝 센터 A - 105 』

『 현재 내부 공기를 정화 중에 있습니다. 』

새하얀 방 위에 직사각형이 푸른 선이 그어졌다. 우리가 훈련할 장소를 안내해주는 모양이었다.

"사부가 함장 인증을 하기 전과는 정말 딴판이네요."

엘리스도 입을 벌린 채 주위를 구경하며 들어갔다.

위잉. 철컥.

엘리스가 한가운데 서자 바닥이 솟아나더니 각종 무기가 담긴 보관함이 나타났다. 엘리스는 죽도를 꺼내 내게 던졌다.

"일자베기 14레벨을 익히기 위해선 선행 스킬이 필요해요."

"잠시만요, 14레벨이요? 잘못 들은 거 아니죠?"

경악하는 윤서현을 향해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말도 안되더라······."

"사부에 대한 설명이 끝나면 곧바로 서현씨의 능력을 강화 시킬 방법도 알려드릴게요."

뒤쪽에 대기하고 있던 안드로이드들이 윤서현이 편휘 쉴 수 있도록 의자와 테이블을 들고와 한쪽에 배치해 주었다.

"고, 고마워."

나와 엘리스는 죽도를 들고 마주섰다.

"선행 스킬은 바로 유니크 심화 스킬을 의미해요. 힘, 민첩, 지력, 체력에 해당하는 스킬들이죠. 지금의 사부는 얼마나 가지고 계시죠?"

이전에 미래에 왔을 때 배워두었던 스킬이 있다.

바로 유니크 '영웅의 힘'과 '초마력회로'다.

이 두 개의 스킬은 미래에만 존재하는 스킬로 엄청난 효율을 자랑한다.

그 두 개가 각각 힘과 지력에 해당하니, 남은 건 민첩과 체력.

내 설명을 들은 엘리스의 얼굴이 조금 밝아졌다.

"다행이네요. 초마력회로는 여제 측 사람들 말고는 습득하고 있지 않거든요. 그렇다면 남은 스킬은 공중기동과 초인의 체력이 되겠네요."

엘리스가 가볍게 땅을 박차고 뛰어 올랐다. 그대로 바닥에 떨어지는 대신 엘리스는 하늘 위로 날아 올랐다.

그녀의 뒤로 금빛의 마력이 날개처럼 형상을 이룬다.

"사람마다 사용 방법에 차이는 있겠지만, 이게 기본적인 공중 기동이에요. 유니크 단계에서의 민첩성이란 결코 땅 위에서의 전투에만 국한되지 않으니까요."

엘리스는 사뿐하게 다시 땅 위로 내려왔다.

"어떤가요? 마력의 흐름이 느껴지시나요?"

"······."

솔직히 모르겠다. 애매한 재능을 소유하게 되었건만, 스킬을 한 번 보고 따라한다거나 하는 일은 여전히 천재의 영역이다.

그래도 완전히 처음 마주하는 일은 아니다.

'마기를 조종해 하늘을 날 때를 생각하면······.'

잠깐 몸이 두둥실 떠오르는 듯한 기분이 들었으나, 감각은 금방 사라졌다.

마기와 마력은 다르다.

마기가 원하는 현상을 만들어내는 것에 특화되어 있다면.

마력은 스킬을 사용하기 위한 동력원에 가깝다.

스킬이 없이 감각만으로 헤쳐나가긴 쉽지 않단 말씀.

엘리스는 몇가지 설명을 덧붙여 내가 이해하기 쉽도록 알려줬다. 물론 쉽게 전수되지 않았다.

"으으······. 제 설명이 부족한걸까요."

시간을 투자하면 분명 결실이 있겠지만.

나는 이미테이션 장갑을 꺼내 꼈다. 아이템을 알아 본 엘리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그 아이템은······."

유니크 이하의 스킬을 복사해주는 장갑이다.

"다시 한 번 공중기동을 보여줘."

"네, 사부. 알겠습니다."

스킬의 원리 따위 나는 모른다.

그러나, 단 한 번 복사해 내면 충분하다.

『 스킬 '공중기동'을 복사합니다. 』

『 50만 배의 경험치가 적용됩니다. 』

샤아아—!

푸른 빛이 내 주변을 감싸고 돌기 시작했다.

동시에 내 주변으로 떠오르는 홀로그램창 들이 시야를 가득 메운다.

촤르르륵!

『 유니크 스킬 '공중 기동 Lv.1'을 획득합니다. 』

『 스킬 '공중 기동 Lv.2'을 획득합니다. 』

『 스킬 '공중 기동 Lv.3'을 획득합니다. 』

···

..

.

『 스킬 '공중 기동 Lv.11'을 획득합니다. 』

『 추가효과 : 이동계 디버프 저항 30% 』

그 어렵던 11레벨이 순식간에 찍힌다.

50만배의 경험치와 올라간 재능 덕분이다.

공중에서의 움직임이 한결 자유롭다. 마기로 허공을 이동할 때보다 민첩하고 빠르다.

"역시 사부네요."

엘리스가 씩 웃으며 날 바라봤다.

"다음 스킬은?"

"그게······."

엘리스가 설명을 하려던 순간.

『 인공지능 네이아가 심화 유니크 스킬 '초인의 체력'에 관한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

『 특수 지도 트레이닝을 시작하시겠습니까? 』

네이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엘리스는 약간 곤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 초인의 체력은 적절한 강도로 두들겨 맞을 때 생기는······. 그런 맷집에 관련된 스킬이거든요. 어쩌면 제가 직접하는 것보다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는 게 좋을지도 몰라요."

"······."

그래 그런 스킬이 있었지.

『 허락하신 것으로 알고 프로그램을 실행하겠습니다. 』

우우웅······.

트레이닝 센터 내부에 잠들어 있던 안드로이드들이 차례로 쏟아져 내렸다. 20여기가 넘는 안드로이드들이 나를 향해 천천히 다가왔다.

그 위압감이 상당하다.

『 함장님,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

『 최첨단 기술을 활용한 일종의 안마나 마사지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

그 친절한 설명이 오히려 걱정스러운데.

『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

퍼버버버벅! 퍼버벅!

나를 둘러싼 안드로이드들이 일제히 나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일반적인 주먹이 아닌 마력이 담긴 강력한 공격이 쏟아졌다.

'크으윽······.'

맷집 스킬이 있음에도 참기 힘든 고통이다.

『 참고로 도망치셔야 합니다. 해당 스킬은 다방면의 체력을 기르는 게 목적입니다. 』

"그런 건 진작 말해······!"

콰앙!

나는 트레이닝 센터의 바닥을 박차고 하늘 위로 날아 올랐다. 공중 기동을 통해 놈들을 따돌리려고 했다.

안드로이드들의 성능 또한 출충했다. 놈들은 등에서 마력을 분출하며 순식간에 나를 쫓아왔다.

퍼벅, 퍼버벅!

잠깐이라도 주의를 팔면, 놈들의 팔다리가 나를 향해 날아왔다.

정신 나간 훈련법이지만, 이게 가장 효율이 좋다면 얼마든지 할 의향이 있다.

"괴, 굉장하네요."

감탄하는 윤서현을 향해 엘리스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

"사부의 훈련은 네이아에게 일임하고, 저희는 새로운 훈련을 하러가죠. 여제의 능력을······. 서현씨에게도 알려드릴게요."

이 훈련이 끝나면 모두 한단계 이상 성장해 있을 거다.

진세아와 윤서현.

그 둘이 미래에 온 것도 결코 우연은 아닐 거다.

* * *

"후우······."

『 고생하셨습니다. 달성률은 23%입니다. 유례 없는 속도 입니다. 』

안드로이드가 건네준 이온 음료를 마시며 트레이닝 센터를 빠져나왔다.

일단 스킬이 생기기만 하면 문제가 없는데 그 전까지가 항상 고역이다.

아니다, 예전에 했던 신태양과의 훈련을 생각하면 지금 수련은 오히려 마음이 놓일 지경.

'네이아는 적절하게 힘을 조절하지만, 미래의 신태양은 그런 것도 없었지.'

지금 그 녀석은 여제의 편에 서 있다고 한다.

'여제에게도 분명 납득할만한 이유가 있지 않고서야······. 그 녀석들이 동조할 리가 없을텐데.'

어째서 그렇게 된 건지 이야기를 들어 볼 필요가 있다.

『 영양의 균형을 고려한 식단을 섭취하는 것은 스킬 습득에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

식단 관리까지 해주다니.

네이아가 짜준 훈련은 확실히 편했다.

진행도가 표시된 그래프를 보여주고 효율적인 휴식과 훈련을 반복하고 있었으니까. 생각 없이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

이런 고도의 인공지능이 존재한다는 것도 신기할 따름이다.

"네이아, 너는 김건이 만든건가?"

『 아닙니다. 함선 세이비어의 제작자는 김건이지만, 저를 만드신 제작자는 따로 있습니다. 』

"그건 누구지?"

『 제작자는 기계의 장치의 신이라 불리는 존재입니다. 제공 가능한 정보는 여기까지 입니다. 』

"함장의 권한으로도 알 수 없는 건가."

『 이건 제 자의적인 판단입니다. 현 시점 이지한 함장님의 시공에서 습득할 수 없는 정보를 미리 제공하는 게 오히려 악영향이라고 판단했습니다. 』

궁금하기는 하다.

기계 장치의 신.

그것은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의미한다.

오래 전 문학이나 연극에서 흔히 사용된 연출로서, 모든 사건을 단번에 마무리 짓는 사기적인 요소를 의미한다.

다만 그냥 간과할 수는 없는 말이다.

'내 무재조정······. 분명히 시스템이 발동한 프로토콜의 이름이 데우스 엑스 마키나였다.'

어떤 연관성이 있을지도 모른다.

몇 가지를 더 물으며 식당으로 향하는데 트레이닝 센터의 유리창 너머로 희미하게 목소리가 들려온다.

"끄아아아!"

창에 딱 달라붙었던 진세아가 무언가에 발목을 붙잡혀 끌려가고 있었다. 이내 모습이 사라졌다.

『 진세아는 부함장의 지시에 따라 익스트림 난이도의 훈련을 수행중입니다. 』

『 현재 기하급수적인 성장을 보이고 있습니다. 』

미래의 본인에게 직접 훈련 받는 거니 효과는 확실하겠지.

그야말로 순조롭다고 할 수 있다.

* * *

훈련 1주일차.

부함장인 미래 진세아로부터 호출이 있었다.

"아, 사부. 함장, 아니지. 부함장은 저기에 있어요."

엘리스가 가리킨 방향.

진세아는 종이 서류와 수많은 홀로그램 창 더미에 파묻혀 있었다.

"계획을 좀 변경해야 될 것 같아."

"계획을 변경한다고?"

본래대로라면 여제와의 교섭 재료를 찾아, 여제를 만나러가는 게 목적이었을 터.

"마족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아."

진세아가 손을 펼치자 홀로그램 창 위로 세계 지도가 떠올랐다. 검은색으로 표시된 마족의 대군이 우리가 위치한 상공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군단장이 움직이기 시작했어. 문제는 이 녀석이 우리한테 필요한 교섭 재료를 가지고 있단 거야."

그 옆으로 교섭 재료에 대한 정보도 떠올라 있었다.

『 테서렉트 : 고유 차원 (유일) 』

- 해당 아티팩트의 영향을 받는 모든 존재는 차원 고정 됩니다.

"마족 놈들이 이 세계에서 버티고 있는 이유 중 하나가 이거거든. 이걸 우리가 손에 넣는다면 여제와 동등한 위치에 설 수 있어."

마족과 고착 상태에 빠진 가장 원인.

아티팩트.

마족의 제약처럼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아이템이란다.

'유일급 아이템이라······.'

이전에 최후의 5인이 사용했던 시간의 모래시계와 같은 등급이다.

"처음 목표는 놈들이 가진 아티팩트를 빼앗는 거였어."

진세아는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래서 오빠가 힘을 키울 때까지 기다리려고 했는데, 오빠 덕에 함선의 모든 기능이 밝혀졌잖아."

입고리를 틀어 올니 진세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린 진군하는 마족들을 박살낼거야. 그리고 놈들에게서 아티팩트를 강탈할거고."

남은 군단장은 둘.

불사의 마족과 검의 마족이란다. 두 마족이 세계 전역을 지배하고 있는 게 현재의 상황.

그 중 우리가 노리는 상대는 검의 마족.

"놈들이 진군하는 방향은 아마도 여제. 만약 여제가 테서렉트를 손에 넣으면 상황은 최악으로 치달아. 반면 군단장은 충분히 상대할만하지."

가공할 능력을 지닌 상대지만, 함선 세이비어가 있다면 충분히 맞서볼만한 상대란다.

"남은 건 오빠의 선택이야."

『 군단장 '검의 마족'과의 전투에서 승리할 확률은 78%입니다. 』

『 승리시에도 25% 확률로 세이비어가 반파될 가능성이 존재합니다. 』

인공지능 네이아의 판단 또한 그러했다. 지속해서 정보를 습득하고, 분석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지금 당장 여제와의 전투에서 승리할 확률은?"

『 테서렉트 없이 여제와의 전투에서 승리할 확률은 3%입니다. 해당 전투는 권장되지 않습니다. 』

『 테서렉트 소유시 승리 확률이 97%까지 상승합니다. 』

그만큼 여제의 힘이 강하다는 의미다.

나는 결정을 내렸다. 길게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 출진하시겠습니까? 』

내 앞으로 손바닥이 그려진 홀로그램창이 떠올랐다.

"출발하자."

나는 그 위에 손을 올렸다. 푸른 빛이 점멸하며 홀로그램창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함장실 내부의 계기판들이 빛을 내기 시작했다.

『 함장 이지한의 출진 명령이 승인 되었습니다. 』

『 현시간부로 본함은 전투 기동 태세에 진입합니다. 』

세이비어는 이미 대기권을 벗어난 지역에 안착해 있다.

"놈들의 공격은 여기까지 닿지 않는다 이건가."

정면의 홀로그램창을 통해 검의 마족이 점거한 대륙이 한눈에 들어 온다.

마계의 땅처럼 변한 불모지.

바글거리는 마족과 광포화된 마수들이 위치한 군단.

놈들은 개미떼처럼 득시글 거리고 있다.

"그래, 그러니까 더더욱. 일방적인 전투가 될 거야."

진세아가 비릿한 미소를 흘렸다.

세이비어 내에 전투가 가능한 인원은 그리 많지 않다. 전적으로 세이비어의 기능에 의지해 하게 되는 전쟁이다.

진세아는 이게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리고 네이아도 그러한 판단을 내렸다.

『 '주포 : 대규모 절대마력파괴광선'을 사용하여 현재 공간에서 적을 타격할 수 있습니다. 』

『 현재 주포의 에너지 충전율 : 10,000% 』

압도적인 병기를 소유한 진영에 의해 전투의 수준이나 양상이 뒤바뀌는 건 당연하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인류의 최후의 병기가 숨겨둔 힘을 발휘할 때였다.

『 '주포 : 대규모 절대마력파괴광선'을 발사합니다. 』

157화 세이비어(5)

군단장 검의 마족.

그녀와 그의 군대는 과거 중국 땅을 너머 대한민국을 향해 진격 중이었다. 헤아리기 힘든 수의 군대가 검은 물결처럼 일렁이며 대지를 나아간다.

여제가 점령한 최후의 국가 대한민국.

그들이 전력을 외부로 분산시켰다는 소식을 들은 찰나였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인간들의 기세를 꺾을 수 있는 중요한 기회였다.

'문명계를 지배하는 게 이렇게까지 길어질 줄이야······.'

검의 마족의 새하얀 백발이 마기 섞인 바람에 흩날렸다.

'이번 공격이 실패한다면 나도 끝이겠군.'

인간의 저항이 상상 이상으로 거셌다. 마족들의 예상과 달리 프로젝트는 난항을 겪었고 그런 상황은 끝까지 바뀌지 않았다.

가장 큰 원인을 꼽자면······.

대적자.

프로젝트 아포칼립스가 엎어지면서부터 모든 것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예언의 마족이 대적자에게 죽임 당하던 순간을 잊을 수가 없었다. 긴 세월 끝에 무감해져 있다고 생각했건만.

'대적자는 사라졌으니······. 분풀이를 할 상대가 없군.'

세계의 억지력만 아니었다면, 프로젝트 아포칼립스만 순조롭게 진행 되었다면 진작에 끝났을 지배가.

유난히도 길어지고 있었다.

'그것도 이제는 끝이다.'

자신의 군대가 대한민국을 점령하고나면, 남은 것은 함선 세이비어 뿐이다.

여제 측의 전력에 비하면 그들의 힘은 미미한 수준이었다.

검의 마족은 허리춤에 찬 검집을 움켜쥐었다.

'힘은 완전히 돌아왔다. 패배는 생각하기 어렵다.'

여제측 최대의 전력은 최후의 5인.

자리를 비운 급히 돌아오는 것은 불가능할 거다.

검의 마족은 품 안에서 푸른 정육면체를 꺼내들었다. 그 내부에는 또하나의 정육면체가 오묘한 빛을 띄고 있다.

아티팩트 테서렉트.

검의 마족은 그것을 다시 품 안에 집어 넣었다.

'더 이상 여제의 공간 지배를 걱정할 필요도 없겠군.'

인간들도 그녀가 테서렉트를 소지하고 있단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니, 이번 움직임은 이해가 안가는 부분이 존재했다.

'인간들에게 영향을 끼칠만한 사건이 일어난 건가?'

예언의 마족이 없는 지금, 그리 짐작하는 게 최선이었다.

스릉.

검집에서 검을 꺼내든 검의 마족이 군대를 향해 소리쳤다.

"들어라. 대적자는 사라졌다. 이제 우리를 막을 자는 없다."

그녀의 새하얀 풀 플레이트 메일이 햇빛에 반사되어 번쩍였다. 들어 올린 칼날은 마기로 벼려져 한없이 날카롭다.

"그러니 우리는 인간들을 몰아내고 이 세계를 손에 넣는다. 인간들의 마지막 발악과 희망을 남김 없이 삼켜 우리의 것으로 만들어라. 마(魔)를 따르는 자의 비호 아래 모든 힘을 보여라!"

마족과 마수들에게도 물러설 자리는 없었다.

이 세계를 점령하지 못한다면 그들의 앞에 펼쳐진 미래는 죽음 뿐이었기에.

마기로 증폭된 그녀의 말은 군대 전체로 퍼져나갔다.

우오오——!

마족과 마수들의 함성이 대지 위로 들끓었다. 땅이 떠나가라 울리는 함성이 끊이지 않고 터져나왔다. 사기는 최고조였다.

그들의 마음에 있던 일말의 불안을 지워내는 연설이었다.

대적자가 아니라면 괜찮다.

여제는 결코 우리를 막지 못한다.

사기가 좋아지는 건 당연했다.

그들의 뒤에는 최상위 마족 중에서도 강함을 달리하는 검의 마족이 있으니.

그녀의 뒤로 보좌 권속이 다가왔다.

"훌륭하십니다. 곧 여제의 영역에 들어서는데 선두에 서시겠습니까?"

곧바로 여제와의 전면전이 될 가능성을 부정할 수 없었다.

"아아, 그래야겠······."

검의 마족이 고개를 끄덕이려던 그 순간이었다.

번쩍.

붉은 하늘에서 푸른 빛줄기가 보였다.

"······?!"

땅 위로 내려 앉은 푸른 빛줄기는 광범위한 폭발을 일으켰다.

아니, 폭발이란 단어로는 설명하기에 한참 모자랐다.

검의 마족이나 다른 마족, 권속, 마수 모두 일찍이 경험한 적 없던 막대한 규모의 폭발이 대지를 뒤덮었다.

고밀도의 에너지가 마족의 군대를 싸그리 집어 삼키며 하늘 위로 피어올랐다. 버섯의 형상을 한 구름이 아득하게 솟아올랐다.

압도적인 충격파가 마족과 마수를 덮쳤다.

콰아아아아—!

별안간 닥쳐온 습격이나 마찬가지였다.

검의 마족이 검을 들어 올려, 에너지를 베어내려고 했지만 늦어도 한참 늦었다. 그저 버텨내는 게 최선이었다.

"크으으윽······!"

그녀의 눈가로 핏줄이 새겨졌다. 검을 들어 올린 순백의 장갑 위로 무수한 상처가 새겨지기 시작했다.

수십 시간 같은 몇 초가 지나고.

주위를 둘러싸고 있던 메마른 산이나, 과거 인간의 흔적 전체가 사라진 평평한 대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

검의 마족은 허탈한 표정으로 땅을 바라보았다.

"하······."

수백만에 달하던 단 한순간에 먼지가 되어 하늘 위로 흩어졌다. 방금 전까지 자신의 옆에 있던 보좌 권속의 흔적도 찾을 수가 없었다.

"이, 인간의 짓이란 말인가······?"

여제의 공격인가? 아니라면 무슨 일이 일어난건가?

무엇하나 이해할 수 없었다.

이러한 병기를 개발했다는 소식은 듣지도 못했다. 아니, 이만한 힘을 구태여 숨기고 있을 필요가 있기는 했단 말인가?

그러한 그녀의 의문에 답하듯 하늘 위에서 붉은 빛이 떨어져 내렸다.

"설마 한 번 더······?"

자세를 바로 잡았지만, 다행히 그건 아니었다.

콰아앙!

메마른 땅에 착지한 것은 다름 아닌 진세아였다. 그녀는 망토를 툭툭 털어내고선 검의 마족을 바라봤다.

"어이, 잘 지냈냐. 어때? 우리 레이저포 맛은? 기가 막히지?"

"여제도 아니었단 말인가······."

이 순간이 꿈이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였다. 자신의 군대를 일격에 박살낸 이가 여제도 아닌 고작 진세아라니.

꽈악.

흑도를 움켜쥔 검의 마족이 자세를 잡았다. 진세아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녀의 손에 들린 에픽급 단검이 마력에 의해 붉게 타올랐다.

진세아는 함장모를 고쳐썼다. 그리고 여유로운 표정으로 말했다.

"내놔, 테서렉트. "

검의 마족에게 선택지는 없었다.

* * *

가공할 위력이었다. 그것말고는 딱히 설명할 방법도 없다.

'······.'

함선 '세이비어'의 대규모 절대 마력 파괴광선.

마족의 군단 하나가 사라졌다. 김건은 도대체 이런 무기를 어떻게 만들어서 단건지 의문스러울 정도다.

진세아와 검의 마족 간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잠시 상황을 지켜보던 엘리스가 말했다.

"사부, 저희도 내려가죠. 이번에는 서현씨는 여기 있어요."

"그게 낫겠죠?"

화면으로만 보이지만 전투의 수준이 차원이 달랐다.

땅이 갈라지고 지형이 바뀌는 정도니.

내게도 예외는 아니다.

이계 규율의 필드 보너스가 있다고는 하지만,

지금은 멸망한 세계의 말기.

SSS급 상위의 전투는 내가 끼어들기엔 벅차다.

눈으로만 봐도 알 수 있다.

엘리스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사부는 걱정마세요. 제가 전력으로 서포트할게요. 그리고 사부는 존재만으로 충분해요."

『 저도 서포트하겠습니다. 검의 마족에 대한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

물론, 함선 내부에서 구경만하고 있을 생각도 없었다.

'시간 승부가 된다.'

전투가 벌어지는 장소는 여제의 땅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

이변을 알아차린 그들이 다가오기 전에 테서렉트를 손에 넣어야 한다.

내가 앞으로 나서자, 인공지능 네이아가 전송을 시작했다.

『 텔레포테이션이 시작됩니다. 』

과연 미래의 기술이다 싶다.

순식간에 눈앞의 풍경이 뒤바뀌었다.

함장실 내부에서 메마른 평원 위로.

앞쪽에서 벌어지는 전투의 후폭풍이 이쪽에도 생생히 전해진다.

『 함장님, 함선 바깥에서도 저는 여전히 함께하고 있습니다. 우선은 검의 마족에 대한 정보를 분석하겠습니다. 』

그래, 그건 네이아에게 맡기도록 하자.

"우리는 조금이라도 검의 마족의 주의를 끌어보자고."

"네, 사부!"

마족들 사이에서도 내 죽음이 알려져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내가 나타나는 것만으로 놈에게 동요를 주기엔 충분할 터.

딱히 무언가를 할 필요도 없었다.

[ 대적자······! 살아 있었던 거냐······?! ]

진세아를 향해 검을 휘두르던 녀석이 멈춰섰다. 그 눈이 붉게 달아 오른다.

압도적인 살기와 격이 나를 향해 쏟아졌다. 심장이 멎을 듯한 충격이 내게 덮쳐온다. 생물 본연의 공포가 내 몸에 새겨지는 듯하다.

『 스킬 '영웅의 격 Lv.1'을 발휘합니다. 』

잊혀진 영웅에게서 받았던 격을 발휘함하는데도 온 몸이 떨릴 지경이다.

"사부, 제가 있어요. 편히 이야기 나누시면 돼요."

그 사이를 엘리스가 가로 막았다. 확실히 격이 사라지는 게 느껴진다. 그러나 나는 엘리스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아니, 괜찮아."

미래의 진짜 최상급 격이 나를 향해 쏟아지고 있다.

이런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는 없다.

내 입가엔 희미한 미소가 감돌 지경이다.

"알겠습니다."

잠시 나를 쳐다보던 엘리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어딜 한눈 팔아!"

"크윽!"

진세아의 공격이 검의 마족을 향해 쏟아졌다. 내 눈으로 간신히 쫓을 정도의 연격이 마족을 향해 쏟아졌다.

콰과과과가—!

근처의 땅이 완전히 파헤쳐지고 바위의 파편이 미친 듯이 치솟아 올랐다. 그 와중에도 검의 마족은 끝까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대적자! 덤벼라! 네 놈만큼은 내 손으로 죽이겠다!"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다. 무슨 원한이라도 있는가 싶을 정도.

나는 그런 놈의 분노와 격을 그대로 받아냈다.

"큭."

놈과 나의 차이가 지대하다는 건 분명하다.

입 안에서 쇠맛이 느껴진다. 피가 울컥 솟아 올라 입 밖으로 터져나올 지경이다.

그러나 나는 태연한 척 놈 앞에 섰다.

『 함장님, 치명적인 데미지가 누적되고 있습니다. 』

『 돌이킬 수 없는 정신적 트라우마와 신체적 결함을 낳을 가능성이 존재합니다. 』

나도 안다.

그래도 가만히 있어라.

레전더리급의 스킬의 경험치를 이렇게 많이 얻을 수 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으니까.

『 레전더리급 스킬 '영웅의 격 Lv.2'를 획득합니다. 』

『 스킬 '영웅의 격 Lv.3'를 획득합니다. 』

『 스킬 '영웅의 격 Lv.4'를 획득합니다. 』

『 스킬 '영웅의 격 Lv.5'를 획득합니다. 』

50만배의 경험치에 힘 입어.

단숨의 레벨이 5단계가 올라갔다.

그 효과는 극명하다.

어느새 나는 놈을 마주 볼만한 수준이 되었다.

"지금까지 숨어 있었던거냐?! 대적자! 정정당당히 나와 내 검을 받아라!"

검의 마족은 진세아를 상대하면서도 나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그 검기가 땅을 가르며 나를 향했다.

그러나 그것은 내게 닿지 못한다.

『 동료 엘리스가 스킬 '시간 조작 Lv.10'을 발휘합니다. 』

검기는 왔던 길을 되돌아가 그대로 사라졌다.

'마족들도 정말 내가 죽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모양이군.'

내 죽음에 대해선 아무도 아는 바가 없다. 그 말이 진짜였다.

나는 검의 마족을 향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정정당당 같은 소리하고 있네."

세계가 망했다고는 하나 언제부터 마족이 정정당당이란 소리를 할 줄이야.

"대적자아아아!"

검의 마족은 괴성과 함께 검을 휘둘렀다. 보이지 않는 검기가 저 멀리 산의 땅을 베어내고, 시야 너머의 장소에서 폭발을 일으킨다.

아찔한 마기에서 생겨난 검은 구름들이 하늘을 뒤덮는다.

역시 아직은 그 수준을 가늠하기 힘들다.

그러나, 놈은 분명히 동요하고 있었다.

그 빈틈이 승패를 갈랐다.

푸욱!

진세아의 단검이 마족의 철제 갑옷을 꿰뚫었다. 마족에게 올라타듯 검을 박아넣은 미래의 진세아가 말했다.

"나는 네 움직임을 강탈하겠어."

『 동료 진세아가 스킬 '절대 강탈 Lv.10'을 발휘합니다. 』

"대적자!!!"

새하얀 빛이 한순간 검의 마족을 휘감았다. 시간이 정지한 듯 마족의 움직임이 멈췄다.

SSS급 상위에 도달한 진세아의 능력은 추상적인 움직임마저도 강탈해낸 것이다.

서걱—!

진세아의 단검이 마족의 목을 잘라냈다. 최상위 마족이자 군단장이라는 게 어이 없을 정도로 간단한 최후였다.

"나이스, 오빠. 완벽한 도발이었어. 이 녀석 오빠한테 원한이 있었던 것 같거든. 뭐, 자세히는 모르지만."

그런 것 같더라.

그게 아니더라도 나는 이미 마족의 원수나 다름 없는 사람이다.

쓰러진 검의 마족에게서 진세아가 푸른 정육면체를 들어 올렸다.

『 테서렉트 : 고유 차원 (유일) 』

- 해당 아티팩트의 영향을 받는 모든 존재는 차원 고정 됩니다.

아티팩트를 확인한 진세아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이제 여제와 교섭하러 갈 수 있겠어."

윤서현.

어째서 그녀가 그렇게 변해야만 했는지.

직접 들을 때가 되었다.

158화 여제의 뜻(1)

유일급 아티팩트 테서렉트.

그 능력은 차원 고정이다.

"여제의 능력은 공간, 차원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힘."

진세아는 손에 쥔 정육면체 모양의 테서렉트를 빙글 돌렸다.

"이 아이템이 있으면 그런 여제의 공간 간섭을 방어할 수 있어."

나는 아직 여제가 가진 능력의 단편만 엿보았을 뿐이지만, 그 힘의 크기는 대강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그녀는 타차원에 존재하는 아룡종을 불러내 함선을 공격했다.

역으로 상대를 다른 차원으로 날려보낼 수도 있다는 게 진세아의 설명이었다.

"정말 무시무시하지. 지금까지 마족들이 섣불리 여제를 건드리지 못한 이유기도 하고. 그래도 이제 테서렉트가 있으니 그런 걱정은 끝."

테서렉트는 이른바 대(對) 공간능력자용 아티팩트란 말이었다.

"아티팩트는 일반 아이템하곤 다르게 한 세계에 하나씩 밖에는 없으니, 이걸 잃어버리거나 빼앗기면 거기서 끝이니 잘 보관해야겠지만."

그리 말한 진세아는 인벤토리 안에 테서렉트를 던져 넣었다. 중요하다고 말한 것 치고는 막 다루는 게 녀석 답다.

진세아가 망토를 펄럭이며 솟아오른 땅 위에서 뛰어 내렸다.

"그러면 빨리 귀환하자! 이만한 규모의 전투였으니, 여제 측에서도 눈치챘을거야. 테서렉트 때문에 공간을 넘어 오지 못하는 것 뿐."

군단장의 전투에서 승리.

이로써 남은 군단장은 단 하나.

그렇다기엔 진세아도 엘리스도 그리 기뻐하는 기색은 아니었다.

살아남은 것이지 이긴 것이 아니다.

나는 황량해진 땅을 바라보았다. 과거에 세워졌던 문명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고, 메마른 대지가 허허벌판이 되어 남아 있을 뿐이다.

치열한 전투의 흔적은 오히려 이 세계에 있어 상처일 뿐이다.

내 표정을 살핀 엘리스가 슬쩍 다가왔다.

"여제에게서 승리한다면, 분명히 희망이 있을 거에요. 그리고 사부의 세계는 아직 무한한 가능성이 남아 있어요. 이것보다 더 좋은 미래를 그려나갈 수 있을 거에요."

그녀의 말에 묻어나오는 슬픔을 이해할 수 있었다.

회귀 전, 희망 한 점 없는 멸망한 세계.

그것에 비하면 훨씬 좋은 상황인 것만큼은 틀림없다.

"그래."

그렇다고 만족할 순 없었다.

이 세계의 나는 어째서 사라졌는가.

무엇이 인류의 구원을 방해하는가.

그러한 의문을 여기서 풀어가야만 했다.

그리고 그 해답은 미래를 바꾸는 중요한 열쇠가 될 것이다.

『 텔레포테이션 : 귀환 하겠습니다. 』

네이아의 목소리와 함께 우리는 함선 내부로 이동했다.

"으아아, 삭신이 쑤신다. 삭신이 쑤셔."

팔을 붕붕 휘두르는 진세아. 그런 그녀와 우리의 뒤편으로 승무원들이 축포를 터트렸다.

"함장님! 무사하셨군요!"

"고생하셨습니다!"

"이길 줄 알고 있었습니다!"

수십 명의 인원이 진세아를 향해 달려왔다.

어찌되었든 군단장을 물리친 일이다.

축하받아 마땅한 일이었다.

"자, 잠깐 이거 놔!"

"안됩니다! 축하할 건 축하해야죠!"

승무원들은 진세아를 들어 올려서 헹가래 쳤다. 괜히 잘못 움직였다 승무원들을 다치게 할까 얼어붙은 진세아의 표정이 꽤 볼만하다.

이 녀석은 인류 최후의 리더이기도 하니까.

엘리스도 땅에 떨어진 축포를 주워 나를 향해 빵하고 쐈다. 반짝이는 종이가루가 내 머리 위로 쏟아졌다.

"사부, 지금을 즐기죠. 즐길 수 있을 때 즐겨라. 함선 세이비어의 규칙이에요."

멸망한 세계에선 내일이 어찌 될지 모르니까.

"여제와의 전투를 준비하려면 시간이 꽤 걸릴 거에요. 함선에 있는 모두의 동의를 얻어야 하기도 하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고깔 모자까지 머리에 쓴 엘리스가 진지하게 말했다.

"일자베기 14레벨. 그걸 위한 발판을 완벽히 마련해야죠."

여제와의 전투.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최선을 다해 준비하는 수밖에 없다.

"하, 함장님이 두 명이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소문이 진짜였어?"

우선은 저 앞쪽에서 일어난 소란부터 구경할까.

* * *

우리가 검의 마족과 전투를 벌이는 동안, 현재의 진세아는 계속 훈련장에 있었단다.

간신히 빠져나왔지만 미래의 진세아에게 금방 제압 당했다.

승무원들의 동요를 잠재우는 설명 또한 지극히 간결했다.

"아아, 이 녀석은 내 분신이야."

"그런 거였군요. 어쩐지."

"새로운 스킬을 연마 중이셨군요."

워낙 미래의 진세아가 이것저것 하고 다녔기에 납득하는 분위기였다. 납득 못하는 건 현재의 진세아 뿐이었다.

"뭐란거야! 내가 무슨 분신······?! 으아악, 이거 놔! 어떻게 빠져나왔는데······!"

"분신의 능력이 극치에 달하면 자의를 가진달까."

그리 말하면서 과거의 자신의 목덜미를 들어올리는 진세아(미래).

"콜라, 콜라 한 캔만 먹고 갈테니까······. 우아아, 오빠!"

내가 무어라 말할 새도 없이 진세아(현재)는 트레이닝 센터로 다시 끌려갔다.

훈련을 하고 있는 건 진세아 뿐이 아니다. 윤서현 또한 엘리스의 지도 하에 특수한 트레이닝을 하고 있다.

뭘하고 있는지는 비밀이란다.

나는 가볍게 음료수 한잔만 마시고 바로 훈련장으로 돌아왔다.

직접 전투에 참여하지 않고 격을 받아낸 게 전부지만 피로감은 상당하다. 각종 자연 회복, 재생 스킬로도 지워지지 않는 피곤.

'그러니 더더욱 훈련을 해야 한다.'

극한의 상황에선 경험치가 더 잘 오른다는 걸 경험적으로 체득하고 있다.

마지막 심화 스킬인 '초인의 체력'을 습득해야 한다.

일자베기 13레벨의 경험치를 올리기 위해서 선행되어야 하는 필수 스킬.

『 트레이닝을 개시합니다. 』

『 목표 스킬 : 초인의 체력 』

인공지능 네이아의 서포트 아래, 안드로이드들을 피해다니며 훈련을 지속했다.

3일째 되는 날.

촤르르륵!

『 유니크 스킬 '초인의 체력 Lv.1'을 습득합니다. 』

『 스킬 '초인의 체력 Lv.2'을 획득합니다. 』

『 스킬 '초인의 체력 Lv.3'을 획득합니다. 』

···

..

.

『 스킬 '초인의 체력 Lv.11'을 습득합니다. 』

『 추가효과 : 추가 체력 및 방어력 50%, 격의 상승 』

나는 나를 쫓아 오는 안드로이드들을 가뿐하게 제쳤다.

퍼버버벅! 뻐억!

기다리던 안드로이드들이 나를 타격하지만 이전과 같은 데미지는 없다.

『 축하드립니다. 함장님. 예상 습득 시간보다 빨리 목표를 달성하셨습니다. 』

『 경이로운 속도입니다. 함장님이 소유하신 능력에 대한 심도 깊은 분석을 요청하고 싶을 정도입니다. 』

"됐어."

체력을 소비해도 더 이상 지치는 일이 없거니와 전체적인 방어도가 증가해 두들겨 맞아도 끄덕 없다.

나는 안드로이드가 가져다 준 이온 음료를 들이켰다. 목구멍을 타고 시원하게 넘어가는 이온 음료.

파는 거랑 맛이 똑같다.

이런 걸 멸망한 세계에서 마실 수 있다니.

정말로 대단한 함선이다.

돌아가면 김건에 대한 투자를 대폭 늘려야겠다.

이어지는 시스템 메시지.

『 유니크 심화 스킬을 모두 습득 및 마스터하셨습니다. 』

- 초인의 체력 Lv.11

- 영웅의 힘 Lv.11

- 공중 기동 Lv.11

- 초마력회로 Lv.11

『 네 가지의 스킬들이 통합 됩니다. 』

『 통합 유니크 스킬 '심화 능력 Lv.11'을 획득합니다. 』

유니크 스킬들의 통합.

기존 스킬들은 그대로 활용하면서, 새로운 추가효과가 생긴다.

『 추가효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

- 일자베기 13레벨의 경험치가 축적됩니다.

- 레전더리급 스킬의 획득 확률이 소폭 증가합니다.

'드디어 일자베기 14레벨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

남은 건 일자베기를 단련하는 것 뿐이다. 나는 흐르는 땀을 수건으로 닦아내고 트레이닝 센터 바깥으로 나왔다.

엘리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절묘한 타이밍이지만, 미래를 예지하는 그녀의 능력 덕일거다.

"축하드려요. 이제부턴 제 도움이 필요하신거죠?"

"맞아. 훈련 방법은······."

일자베기 13레벨에는 수명이 소모된다.

엘리스는 의미심장한 미소와 함께 말했다.

"실전입니다."

역시 그것 밖에 없는 건가.

"회의 결과, 함선째로 강행 돌파하기로 했어요. 곧 여제와의 전투가 시작될거에요. 세아양의 훈련이 끝나는대로 바로요."

"윤서현 헌터는?"

"이미 필수적인 훈련은 전부 마치셨죠. 후후, 기대하셔도 좋아요. 아마 깜짝 놀라실걸요?"

엘리스는 여제 윤서현에 대한 정보를 추적, 조사하고 있었다.

여제가 어째서 그토록 강대한 힘을 가지게 된건지, 어떠한 방법을 거친 것인지.

여러 정보를 조합해 가장 효율적인 훈련을 했다는 게 엘리스의 설명이었다.

남은 건 진세아인데.

"아, 왔어? 훈련은 순조로워. 역시 나랄까. 천부적인 재능이라니까."

응원차 진세아가 있는 훈련장에 들렸다.

미래의 진세아가 팔짱을 낀 채 서 있었다. 훈련장의 중심에는 검은 구체가 떡하니 자리 잡고 있었다.

푸확!

그 속에서 땀으로 범벅이 된 진세아(현재)가 뛰쳐나왔다.

"으아악······. 더는 무리야······. 콜라, 콜라 줘······."

아직도 콜라를 찾는 모습이 애처로울 지경.

미래의 진세아가 씩 웃으며 쭈그려 앉았다. 그녀는 손가락으로 검은 구체를 가리켰다.

"사실은 숨겨 놨어. 저 안에. 아주아주 시원한 걸로."

"······!"

"먹고 싶으면 마음대로 훔쳐 먹어."

기진맥진하던 진세아의 눈빛이 바뀌었다. 몸을 억지로 일으켜서는 다시 비틀비틀 어두운 구체로 향한다.

"3일 안에는 끝나."

자기 자신이라 그런지 훈련 방법이 적절하다고 해야하나.

당근과 채찍을 적절하게 사용하는 모습이다.

"아, 저렇게 어릴 때부터 강해지면 나중에는 대체 얼마나 강해질까. 나란 사람의 재능은 무섭구만."

훈련 내내 미래의 진세아의 입꼬리는 내려갈 줄 몰랐다.

* * *

그리하여 검의 마족을 처치한지 딱 1주일 되는 날.

모든 준비가 끝났다.

"모두 고생했어. 다들 여기까지 날 따라와줘서 고마워. 목표는 여제와의 협상. 잘 안되면 무력 진압이 되겠지만, 질 거란 생각은 안 하거든."

함교 위로 올라선 진세아가 말했다.

지휘는 함장실에서도 가능하지만 여기에 있는 게 마음이 편하단다.

그녀의 목소리는 인공지능 네이아를 통해 세이비어 전체에 울려퍼졌다.

함선에 타고 있는 승무원들과, 일반 사람들의 함성이 여기까지 들려오는 것 같다.

"자, 그러면 엔진 최대출력, 전속력으로······."

나와 엘리스도 그 뒤에 섰다.

진세아(현재)와 윤서현은 함장실에 있다.

망토를 펄럭인 진세아가 소리쳤다.

"여제의 땅을 향해 출발!"

고오오오——!

함선의 양측에 달려 있는 거대 엔진이 불을 뿜기 시작했다.

함장을 되찾은 세이비어는 한 점의 요동 없이 지상을 향해 전진했다.

우주와 하늘을 나누는 카르만 라인의 아래로.

성층권 아래의 보랏빛 장막에 덮힌 대한민국을 향해 나아간다.

별빛 가득한 우주의 공간을 지나쳐 마기에 물든 붉은 하늘이 모습을 드러낸다.

진세아는 품 안에서 테서렉트를 꺼내 들었다.

『 테서렉트에 의해 해당 공간이 차원 고정 됩니다. 』

푸른 빛이 함선 전체를 코팅하듯 둘러쌌다. 그 아름다운 광경에 일순 사람들이 넋을 놓을 정도였다.

모든 것이 순조롭다고 생각한 그 순간이었다.

콰아아앙—!

함교 위로 무언가가 불시착했다. 일순 유성인가 했지만, 그렇다기엔 비정상적으로 꺾여져 이곳을 향해 정확히 떨어졌다.

엘리스의 얼굴이 굳어졌다.

"여제의 공간 능력으로는 침투할 수 있을 리가······."

공간 능력이 아니었다.

놈은 뛰어서 이곳에 착지한 거다.

충격에 의한 연기가 걷히고 불청객의 정체가 드러났다.

너저분한 흑발과 날카로운 붉은 눈, 오른쪽 머리에 솟은 뿔 하나. 반대편의 뿔은 흉하니 잘려나가 있다.

야차와도 같은 인상의 마족.

놈은 비틀거리며 우리를 바라보았다.

그를 확인한 진세아가 단검을 꺼내들었다.

"불사의 마족······!"

이 세계에 존재하는 마지막 군단장.

그가 직접 우리를 찾아온 것이었다.

『 죄송합니다. 적의 침입을 허용하고 말았습니다. 』

『 방어막의 손상률은 3%입니다. 즉시 복구하도록 하겠습니다. 』

『 적성 배제 프로그램을 활성화 하시겠습니까? 』

이 타이밍에 세이비어에 뛰어든 군단장.

그의 주변에는 권속도 다른 마족도 존재하지 않는다.

진세아는 침착했다.

"여기까지 제 발로 와주면 오히려 고맙지. 세이비어, 진격을 멈춘다. 군단장부터 해결한다."

적진 한가운데 뛰어든 마족.

우리에겐 기회나 다름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불사의 마족은 조용히 양 손을 들어 올렸다.

"나는 너희들과 싸울 생각이 없다. 물론 네 놈들도 날 죽이지 못한다. 모든 군단장이 사라진 지금 드디어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 들어라."

그의 특기인 제약을 발휘한 채.

『 마(魔)를 따르는 자의 권역에 진입하셨습니다. 』

『 제약 : 반경 100km의 모든 생물은 죽지 않습니다. 』

불사의 마족은 담담히 말을 이어갔다.

"이대로 가면 너희 인간들에게 승리는 없다. 어디로가든 파멸만이 존재할 뿐. 마계왕을 쓰러뜨리지 않는 한 바뀌는 건 없다. 그 자의 강대함은 너희들의 이치를 뛰어넘었으니. 그러니 내가 돕겠다."

그는 손에 묻은 검은 피를 털어내며 말했다. 자신의 것이 아닌 다른 마족의 피로 보이는 검은 액체가 뚝뚝 떨어졌다.

"구태여 말하자면······. 동맹을 맺자는 거다."

불사의 마족은 그렇게 말했다.

159화 여제의 뜻(2)

동맹.

불사의 마족은 그리 말했다.

"모든 마족이 사라진 지금이 적기다."

군단장급의 존재가 인간과 동맹을 맺자고 하다니. 마족의 성격을 생각하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간 내가 봐온 대부분의 마족들은 대화는 커녕, 회유나 교섭 자체가 불가능했다.

그들에게 인간은 정복하고 굴복시켜야 할 대상이란 게 그들의 사상이었다.

그런 마족의 입에서 동맹이란 말이 나오다니.

"이제와서 동맹? 늦어도 한참 늦었어."

그러나 단검을 들어 올린 진세아의 눈빛은 날카로워져 있었다.

"널 제외한 군단장은 전부 죽었잖아. 항복을 하려면 진작했어야지. 네이아, 배제, 배제!"

진세아가 싫증난다는 듯 외쳤지만, 네이아는 침착하게 내 의사를 물었다.

『 이지한 함장님. 어떻게 할까요? 』

불사의 마족.

멸망한 세계에서 놈은 마계왕에게 반란을 일으켰다 죽임을 당했다.

그걸 생각하면 놈의 동맹 제안도 이해가 간다. 놈의 반란은 애시당초부터 결정된 미래였을지도 모른다.

'내가 가진 이계 규율도 본래대로라면, 불사의 마족의 손에 들어갔을 거다.'

동맹까지는 몰라도, 몇 가지 묻고 싶은 점은 있다.

놈은 검은 피를 옷에 문질러 닦아내며 말했다.

"다른 마족들은 내 손으로 처리하고 왔다. 이제 이 세계에 존재하는 마족은 내가 유일하다. 그러니 배신 같은 걱정은······."

불사의 마족.

놈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대적자인가. 사라졌다고 들었는데······. 아아, 그런건가. 이계 규율이라면······."

"이계 규율에 대해 뭔가 알고 있나?"

"응? 아아, 알고 말고. 그 힘은 원래 내것이 되어야 했을 힘. 모를 턱이 있나. 네가 중간에 가로채지만 않았다면 순조롭게 끝났을 것을."

놈은 아예 바닥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버렸다.

턱을 괸 채 유심히 나를 지켜보더니 말을 이었다.

"동맹을 맺는다면 이계 규율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정보를 전부 알려주마. 마계왕을 쓰러뜨리기 위해 전적으로 협력하는 건 당연하고. 그걸로 끝이 아니다."

놈의 손끝이 나를 향했다.

"네가 본래의 시간대로 돌아갔을 때, 나를 회유할 방법 또한 알려주지. 군단장 하나를 인간들의 아군으로 삼는 거다."

진세아의 눈치를 살핀 불사의 마족은 한마디를 덧붙였다.

"나에게 적의는 없다. 뭣하면 저기에 있는 금발의 예언자에게 물어봐라. 내가 네 놈들을 습격하거나 배신하는 미래는 없을테니."

놈의 말에 엘리스가 진지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사실을 말하고 있기는 한데······. 예지는 만능이 아니에요. 타차원의 변수가 개입하면 언제든지 어그러질 수 있어요."

당장 싸우고 싶어 죽겠다는 표정의 진세아가 나를 돌아봤다.

"설마 진짜로 마족하고 동맹을 맺겠다는 건 아니지?"

나는 한걸음 다가갔다.

"동맹은 불가능하지."

이 녀석의 의중을 완벽히 파악할 수 없을 뿐더러 위험 부담을 안고 갈 수 없다.

다만.

"마족의 이름을 걸고 노예의 계약을 맺어라. 그건 받아들이지."

조건에 따라 항복을 받아주지 못할 것도 없었다.

긍지 높은 마족이 이러한 제안을 수락할 확률은 거의 없다. 그러나 우리가 내밀 수 있는 최대한의 양보다.

놀랍게도 불사의 마족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받아들이지. 계약을 준비하마."

"엑, 진짜로······?"

진세아의 반문에 불사의 마족은 당연하다는 표정이었다.

"말했잖은가. 나는 무의미한 살육과 전쟁을 막고 싶을 뿐이다. 마계도, 문명계도 끝없는 피와 증오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아무래도 그 말이 거짓은 아닌 듯 했다.

놈의 심장 부근에서 검은 마기가 쏟아져 나왔다.

그것은 이내 심장의 형태를 이뤄 진세아의 앞에 놓여진다.

단순한 주술이 아닌 맹약.

이내 최상위 마족만이 구사할 수 있는 마도 계약이 시스템으로 구현되었다.

『 마도:계약에 의거하여 주종관계를 맺습니다. 』

『 불사의 마족이 진세아에게 영혼의 충성을 맹세합니다. 』

"이 의식이 뭔지는 알고 있을 거다. 마계왕조차 맺지 못한 계약이다. 그러나 새로운 시대 위해서는 필히 거쳐야 하는 과정. 네 단검으로 그 심장을 찔러라."

무조건적인 협력.

실질적으로 인류를 이끌어가는 진세아가 불사의 마족의 주인이 된다. 불사의 마족의 생사를 결정 지을 수 있는 권한을 손에 넣게 되는 것이었다.

"진짜 맹약이잖아."

진세아의 눈이 커졌다.

"대체 무슨 꿍꿍이인건지."

"그 또한 대답하겠다."

"필요가 없다고 생각되면 즉시 죽이겠어."

"각오하고 있다."

푸욱!

진세아가 검은 심장에 단검을 찔러 넣었다. 진세아의 마력이 맥동하는 검은 심장을 완전히 뒤덮은 순간.

『 SSS급 헌터 진세아가 불사의 마족을 지배합니다. 』

계약이 맺어졌다.

* * *

불사의 마족이 합류했다.

그러나 예정은 그대로 진행된다.

여제를 설득을 위해.

함선은 대한민국을 향해 다시 움직인다.

불사의 마족은 실제로 자신의 아래에 속해 있던 권속과 마족을 모두 정리하고 온 모양이었다.

찢어진 의복 탓에 상반신이 그대로 드러나있다. 그러나 그런 차림새는 조금도 신경쓰지 않는 것인지.

불사의 마족은 우리의 뒤에서 입을 열었다.

"네 놈들은 간과하고 있다······."

"네 놈들?"

진세아가 불쾌하다는 듯 눈썹을 찡그렸다.

"실수."

불사의 마족이 바로 말을 수정했다.

"그대들은 마계왕의 존재를 간과하고 있다. 모든 군단장이 쓰러졌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다."

함교에 선 그는 붉은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마계왕은 초월자다. 그러나, 초월의 섭리를 어기고 세계에 간섭하고 있지. 여제와의 싸움에서 승리한다고 해도 마계왕을 막을 수 없을 거다."

"그건 모르는 거지. 군단장들도 우리 손에 죽을 거라곤 생각 안했을걸."

불사의 마족은 고개를 저었다.

"그대들도 곧 보게 될 거다. 어째서 마족이 모든 차원의 절대적 패자로 군림하고 있는지······."

쿠우우웅!

어느덧 함선이 여제가 만들어낸 보랏빛 장막에 닿았다. 테서렉트로 코팅된 함선 전체가 부드럽게 장막을 뚫고 들어간다.

고오오오—!

베일에 가려져 있던 여제의 땅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동화 속에나 나올 법한 거대한 유리성. 빛에 반사되어 무수히 반짝이는 아름다운 성.

"뭐, 마계왕도 문제지만······. 당장은 여제에게 집중하자."

진세아가 망토를 펄럭이며 함교의 중심부로 이동했다.

함선의 그늘 아래로 수 백의 헌터들이 보인다.

우리의 습격을 막아내기 위해 결집한 최정예들이란다.

현시점 인류를 이끌어가는 건 소수의 영웅이라는 점은 예나 지금이나 같다.

홀로그램창을 통해 보이는 그들의 표정은 불안 그 자체.

일주일 전에 벌어졌던 전투에 대한 정보가 그들에게도 들어갔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전쟁을 하러 온 게 아니다.

테서렉트를 손에 넣고 함선이 제 기능을 되찾은 지금.

여제와의 교섭이 우선이다.

"가시죠, 사부."

"가자, 오빠."

"그래."

불사의 마족에게는 로브를 입혔다. 유사시에 전력이 되어 줄거다. 네이아의 공간이동 기능을 활용해 우리는 땅 아래로 내려왔다.

헌터들 사이에서 대표로 보이는 자가 우리 쪽으로 걸어나왔다.

"대적자께서 친히 방문하실 줄이야. 이거 영광입니다."

의외의 얼굴이었다. 하지만 내가 잘 아는 얼굴이었다.

대한민국 최후의 5인은 이름 그대로 총 다섯명이었다.

대마법사 김민수.

성녀 채아연.

최후의 리더 천성호.

이들 모두를 제외하더라도 둘이 남는다.

그 둘 중 하나가 바로······.

만물의 주인 한기성.

그는 최후의 5인 중 하나였다.

능글 맞은 미소를 지어보이는 그의 태도에는 여유가 넘쳤다.

그를 알아본 엘리스가 입을 열었다.

"우리가 뭘하러 왔는지는 알고 있다는 표정이네요."

"물론이죠. 삼라만상(森羅萬象). 현 시간대에 존재하는 모든 건 모두 제 손 안에 있으니까요."

엘리스가 시간을 다루는 예언자라면, 한기성은 모든 존재를 다루는 책략가.

물론 내가 아는 그보다 훨씬 발전해 있었다.

"······그래서였군요."

엘리스의 설명에 따르면, 삼라만상은 전지(全知)의 능력에 무척이나 가까운 스킬. 한기성은 그런 스킬을 손에 넣었단다.

"그래서 사부가 나타나자마 습격이 시작된 거였어요."

사소한 의문이 풀렸다.

나는 한발자국 앞으로 나섰다.

"여제와 대화하고 싶다. 무력이 아닌 대화로 상황을 풀고 싶은데."

"그런가요. 대화라, 그거 좋죠. 참 좋은데······."

한기성은 비릿한 미소를 흘리며 뒤로 물러났다.

"지금은 필요 없을 것 같네요. 당신은 우리의 리더가 아니니까요."

그의 양 옆으로 익숙한 얼굴 둘이 나타났다.

신태양과 천성호.

그들의 표정은 어둡다.

그러나 결의에 찬 눈빛만큼은 변하지 않았다.

다시 천천히 보게 되는 천성호도 결코 광인의 모습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미 싸우기를 작정한 얼굴이었다. 둘 다 양측에서 검을 뽑아 들었다.

"······대화는 불가능한건가."

내 말에 신태양이 입을 열었다.

"당신은······. 이해하실 수 없을 겁니다."

카아아앙!

눈으로 쫓을 수조차 없는 속도의 검이었다.

내게는 진세아가 단검으로 신태양의 검을 막아낸 모습만 보였다.

"그래, 다들 아주 돌았다니까! 일단 때려 눕히고 생각하자!"

『 상황을 확인했습니다. 전투 안드로이드 출격합니다. 』

푸쉬이이—! 콰아앙!

함선 내부에 잠들어 있던 수 백 기의 안드로이드들이 일제히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것을 신호로 상대편의 헌터들도 우리를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 뒤에 서 있던 한기성이 의기양양한 얼굴로 소리쳤다.

"진세아, 당신은 정의로워요. 우리를 죽이지 않을 거잖아요! 날을 갈지 않은 무기를 들이대 봤자 우스울 뿐이라고요!"

"시끄러, 이 아저씨야!"

카앙! 카앙!

안드로이드들과 헌터들이 격돌했다. 최정예 헌터들을 상대로 밀리지 않는 모습이다. 함선의 기술력이 대단하긴 하다.

마법이 날아들고, 검과 창이 부딪히는 소리가 성 주변으로 울려퍼진다.

인간끼리 검을 맞대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진세아, 얌전히 이지한을 넘겨라. 그러면 모두 해결된다."

"웃기시네. 넘기겠냐!"

진세아가 신태양을 향해 발차기를 날렸다.

콰아아아—!

쏘아지듯 붉은 궤적을 그리며 날아간 신태양이 유리성의 꼭대기에 쳐박혔다. 옅은 연기와 유리가루가 하늘 위에서 반짝인다.

어마어마한 각력이다.

진세아는 신태양을 향해 다시 붉은 마력을 분출하며 뛰어들었다.

그러는 사이, 천성호가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의 검에서 붉은 마력이 뚝뚝 떨어져 내린다.

"리더······. 취급은 해줄 필요 없겠지. 금빛의 현자, 후회하지 않을 자신있나? 그 자가 있으면······. 진짜 리더를 되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천성호의 차가운 눈빛은 엘리스를 향했다.

"그런거였나."

내가 있으면 진짜 리더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천성호의 그 발언으로 확신할 수 있었다.

이 시간대의 나를 찾기 위해선 내가 필요하단 의미였다. 사라진 나에 대한 단서가 그들에게 있단 의미기도 하고.

"설령 그렇다고해도······. 사부는 절대로 넘길 수 없어요."

"이번에는 봐주지 않는다. 어차피 과거의 존재는 이 시대의 싸움을 쫓아 올 수 없을테니."

천성호가 천천히 대검을 들어 올렸다. 엘리스는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사부, 전력으로 서포트하겠습니다. 지금의 사부와 저라면 충분히 상대할 수 있어요."

『 동료 엘리스의 스킬 '시간 가속 Lv.10'이 발동됩니다. 』

내 시간이 빠르게 흐른다. SSS급 상위에 올랐을 천성호의 공격이 전부 눈에 보인다.

나는 역전의 검을 들어 올린 뒤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 유니크 스킬 '공중 기동 Lv.11'을 발휘합니다. 』

『 유니크 스킬 '초인의 체력 Lv.11'을 발휘합니다. 』

미래에서 새롭게 익힌 스킬이 발동되며 부족한 능력치를 메꿔진다.

애시당초 한계돌파의 효과로 2배가량 올라가 있던 능력치가 크게 상승.

『 필드 '마계(魔界)'의 칭호가 적용됩니다. 』

『 마계의 재앙 : 데미지가 1,000% 증가합니다. 』

『 마(魔)의 대적자 : 능력치가 3배 상승합니다. 』

거기에 더해 멸망한 세계에선 이계 규율의 칭호가 그대로 적용된다.

콰아아앙!

"뭐?!"

예상치 못한 빠르기와 힘에 검을 받아낸 천성호의 얼굴이 굳어졌다.

속도를 따라잡았으니, 이제 공격할 차례다.

『 스킬 '일자베기 Lv.13'을 발휘합니다. 』

『 유니크 심화 스킬에 의해 위력이 더해집니다. 』

서걱—!

천성호의 검이 그대로 잘려나갔다. 이해가 가지 않는단 표정으로 고개를 들어 올리는 천성호.

『 '일자베기 Lv.13'의 경험치가 12% 상승합니다. 』

14레벨 일자베기까지 앞으로 열 번 남았다.

160화 여제의 뜻(3)

잘려나간 무기를 확인한 천성호의 얼굴이 굳어졌다.

"형은 역시 형이라 이건가······."

그러나 SSS급 헌터가 소지한 무기가 그것 하나 뿐일 리가 없다. 천성호는 다른 양손검을 꺼내 손에 쥐었다.

"전력으로 간다."

천성호를 주변으로 발산되는 강대한 격과 짙은 마력.

마력은 불꽃의 형상을 띄며 붉게 타올랐다.

마력의 수준이 극의에 달하면 발생하는 이른바 '형상화'.

나도 과거에 먼발치에서 지켜 본 게 전부인 기술이다. 그것을 온 몸으로 받아내자니 전신이 욱신욱신 쑤신다.

『 레전더리 스킬 '영웅의 격 Lv.5'를 발휘합니다. 』

『 대량의 경험치를 습득합니다. 』

『 스킬 '영웅의 격 LV.6'를 획득합니다. 』

그러나 충분히 견딜 수 있다. 오히려 좋은 수련이 된다.

엘리스가 있기도 했고.

내 옆에 선 엘리스 덕에 마력의 불길은 내게 직접 닿지 못한 채 흩어졌다.

물론 천성호는 그저 나를 노려보기만 했을 뿐이다.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진 눈빛.

'과연 SSS급 상위 헌터라는거냐.'

이마 위로 땀이 한방울 흘러내렸다.

다음은 천성호의 진심이 담긴 공격을 막아내야 한다.

나도 모든 전력을 다하지 않으면······.

그리 생각하는 순간이었다.

콰아아앙!

불사의 마족이 뒤쪽에서 땅을 박차고 날아왔다. 놈은 그대로 천성호를 향해 발차기를 날렸다.

검으로 막아내긴 했지만 땅이 주욱 그이며 크게 뒤로 밀려난 천성호가 눈썹을 일그러뜨렸다. 예상 외의 힘에 당황한 듯했다.

"뭐야······? 마족?"

불사의 마족은 뚜둑하는 소리와 함께 목을 풀었다.

"다들 대화할 생각이 없는 것 같군. 대적자, 동료들과 함께 앞으로 나아가라. 이곳은 내가 맡지."

명령하지도 않은 짓을 하고 있었다. 녀석은 정말로 우리를 도울 작정인 모양이었다.

"시간을 끄는 거라면 특기다."

샤아아아—!

불사의 마족 주변으로 빠르게 퍼져나가는 그림자. 마기로 구성된 그림자는 여제 편의 헌터들의 발목을 붙잡았다.

"뭐, 뭐야. 이거······?!"

"큭, 안끊어지잖아!"

"다들 조심해!"

그림자를 피하기 위해 공중으로 뛰어 오른 헌터들조차도 날렵하게 잡아 속박했다.

상황을 파악한 여제 측의 책사 한기성이 즉시 진세아를 비난했다.

"세이비어도 썩을대로 썩은 거 아닙니까? 불사의 마족과 한패라니. 정말 제정신인겁니까?"

진세아는 축 늘어진 신태양을 바닥에 던졌다. 인류의 한축을 담당하고 있는 리더다운 무력이다.

"마족이랑 한 패 같은 소리하고 있네. 그 놈은 이제 내 노예거든?"

어쨌든 불사의 마족은 여제측의 헌터들을 잡고 늘어지는데 성공했다.

전투안드로이드들이 기세를 몰아 헌터들을 밀어내고 있었다.

천성호와 한기성은 불사의 마족과 전면전을 해야하는 상황에 놓였다.

우리의 시선이 유리성의 정문을 향했다.

"이틈에 움직이자. 여제가 있는 방으로······."

그러나 여제는 우리를 쉽사리 들여보내줄 생각이 없어보였다.

유리성 주변의 공간이 만화경처럼 나뉘며 그 안에서 갖가지 마수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테서렉트가 보호해주는 건 딱 우리까지란 말인건가.'

차원 고정의 범위가 닿지 않는 곳이다.

함선의 방어를 풀 수도 없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

크어어어······.

으어어어······.

마물들이 쏟아지다시피 기어나오고 있었다.

놈들의 수준은 대충 짐작해도 SS급 이상.

『 '일자베기 Lv.13'의 경험치가 3% 상승합니다. ( 현재 15% ) 』

콰아아아!

일자베기로 베어낸 자리의 푸른 틈이 마수들의 오장육부를 갈라 놓았다.

대인전만큼은 아니지만 스킬 경험치는 착실히 쌓이고 있다.

"오빠, 내 뒤로! 엘리스는 버프 부탁해!"

"알겠어요!"

콰과과!

엘리스의 가속 버프를 받은 진세아를 필두로 우리는 마수들을 학살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진세아는 마수들이 죽어서 생긴 사체조차 쳐부수며 돌격했다.

콰아아앙!

유리성의 대문에 무수한 균열이 새겨졌다. 진세아가 한 번 더 단검을 휘두르자 유리 조각들이 가루가 되어 흩날렸다.

그 모습이 몽환적이긴 하나 감상하고 있을 여유는 없다.

"그래, 이럴 줄 알았어."

외부에서 보이는 모습과 다르게 유리성 내부의 길은 단순했다. 복잡하게 꼬여 있을 공간을 테서렉트가 본래의 공간으로 고정시킨 덕이었다.

더욱이 내부엔 병력이 아무도 없었다.

우리는 순식간에 여제가 있는 방의 문을 열어 젖힐 수 있었다.

콰앙!

"비겁하게 숨지 말고 나와! 안 그러면 여기 전부 날려 버릴테니까!"

문을 열자마자 무기들이 보랏빛 궤적을 남기며 쏟아졌다. 수 백 자루의 검이 우리를 향해 날아들었다.

공간을 너머 쏘아진 무기들이었다.

진세아는 그것들을 전부 쳐냈다. 그 하나하나가 치명적인 능력과 힘을 가진 무기었지만, 닿지 않는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저 멀리 유리로 된 왕좌 위에 여제가 서 있다.

"······."

새하얀 드레스와 순백의 왕관을 걸친 흑발의 여제.

내가 아는 윤서현과는 너무나도 다른 차가운 눈이 우리를 향했다.

이어지는 건 경멸스럽다는 표정이었다. 냉정한 음성이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 날 이야기는 끝났을텐데. 너는 날 이해할 수 없고, 나도 널 이해하지 못하니. 각자의 길을 가는 것으로."

여제의 말에 진세아가 입을 열었다.

"그래, 나는 이해할 수 없어. 오빠가······. 그러니까 리더가 인류의 모두보다 소중하다는 그런 이야기."

그렇게 말한 진세아는 고개를 들어 여제를 바라봤다.

"하지만······. 이해는 못해도 대화는 해볼 수 있잖아. 안 그래?"

"여전히 그대로구나. 그래선 아무것도 바뀌지 않아."

여제는 조용히 손을 들어 올렸다. 주변의 모든 공간이 일그러지며 거대한 창날이 모습을 드러냈다.

테서렉트의 영향이 닿지 않는 모든 장소에서 창들이 우리를 노리고 떠올라 있다.

『 해당 무기는 에픽 아이템 '궁니르(복제)'입니다. 』

『 치명적인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 생존률 8% ) 』

『 세이비어로의 복귀를 강력 권고합니다. 』

함선의 인공지능 네이아가 붉은 홀로그램창을 띄우며 경고해왔다.

아니, 여기서 물러서서는 아무것도 안된다.

진세아 또한 그 사실을 알고 있다.

녀석은 망토를 펄럭이며 앞으로 한 발자국 나섰다.

"실력 행사를 하시겠다면 우리도 못할 건 없지."

『 텔레포테이션 기동 』

우리는 테서렉트를 사용해 여제의 공간 깊숙히 침투했다. 그렇다면 이제 이곳은 우리의 공간이다.

여제의 지배에서 벗어난 공간이 되는 셈이다.

우우웅······.

진세아의 뒤쪽의 공간이 일렁였다.

그 장소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진세아와 윤서현이다.

그것도 내가 잘 아는 모습의 둘.

"이제 우리 차례야."

미래의 진세아는 나타난 윤서현에게 테서렉트를 건네주었다. 윤서현은 여제를 바라보았다.

"나는 잘 이해가 안가지만······."

『 동료 윤서현이 '절대 공간 조작 Lv.4'를 발휘합니다. 』

테서렉트를 든 윤서현의 손으로부터 보랏빛 파동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느릿하지만, 차근차근 주변의 공간을 정돈하는 안정된 빛이었다.

여제에 의해 변화되었던 공간이.

윤서현의 같은 능력에 의해 바뀌어나간다.

사아아아—.

우리를 향하고 있던 궁그닐이 희미해진채로 사라졌다. 테서렉트가 적용되는 범위가 더욱 넓어진 것이다.

"이야기 정도는 들어줄 수 있는 거 아니야? 나 그렇게까지 쪼잔한 사람은 아니지 않아?"

"······."

과거의 자신을 마주한 여제의 눈썹이 일그러졌다.

화가 난 것 같기도 하고, 언짢은 것 같기도한 표정이다. 실제로 그녀의 능력은 전부 무력화 되었다.

여제는 씁쓸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직접 보지 않는 게 차라리 나았을텐데."

여제가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너희는 잘못 생각하고 있어. 대화나 설득으로 뭔가가 해결될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할 뿐이지. 하지만······."

그녀의 팔 새겨진 문자가 허공으로 떠올랐다. 동시에 바닥에서 검은 비석 하나가 솟아 올랐다.

공간 조작이 아닌 이곳의 장치였다.

쿠웅!

붉은 쇠사슬로 칭칭 묶인 검은색 비석이 모습을 드러냈다.

『 초월의 비석 』

이전에 보았던 바위다.

발전의 마족이 있던 공간에도 있었고.

엘프 학자 세레네가 있던 환상계에도 존재하던 비석.

여제는 비석에 손을 올렸다.

한결 무너져 내린 듯한 목소리였다.

"리더가 사라진 그 날. 나는 포기하지 않았어. 그도 그럴게 지한씨가 우리를 버리고 사라질 리가 없잖아. 무수한 차원을 헤짚으며 나는 리더를 찾으려고 했어."

새하얀 빛이 감돌며 비석의 내부로 스며들었다.

비석의 내부 희미한 형체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 반투명한 형상은 완벽히 내 모습 그대로였다.

잠에 빠진 듯 눈을 감은 내가 비석 속에 존재했다.

"많은 희생이 있었지만 나는 찾았어. 사라졌던 리더를 찾았다고."

신체를 잃고 영혼만이 간신히 자아를 유지하고 있는 상태.

여제가 비석을 가볍게 쓸어내렸다.

"신체를 잃고 영혼만이 간신히 유지되고 있는 상태. 어쩌다 이렇게 되었냐는 아무도 몰라도 내 힘으로는 이 정도가 한계야."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차갑고도 냉철한 눈빛이 나를 향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여제의 손가락이 나를 향했다.

"과거의 이지한이 있다면 리더를 구할 수 있어. 그의 신체는 그릇으로서 완벽하게 작용할거고. 기적 같은 기회가 왔고, 이제 단 한 발자국 남았는데. 대화? 진심이야?"

여제의 말을 들은 미래의 진세아는 이를 악물었다. 용납하지 못한단 표정이었다.

"틀린 건 틀린거야. 그게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해선 안 돼."

두 사람의 가치관은 양립할 수 없다.

둘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엘리스가 내게 털어놓듯 말했다.

"이런 사정일 거라고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미리 말해주지 못해서 미안해요."

엘리스도 진세아도 확신하지는 못했던 모양이다.

여제의 마음은 확고했다.

"······마계왕은 우리의 힘으로 막을 수 없어. 리더가 있어야만 해. 그러니 방해하지 마."

현재의 진세아는 어이가 없단 표정으로 물었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 오빠를 제물로 바쳐서 미래의 오빠를 되살리겠다는 거야?"

요약하자면 그게 맞다.

그때였다.

뒤쪽에서 소란이 일어났다.

헌터들이 떼를 지어 성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여제를 지켜라!"

"세계가 우리의 손에 달려 있다!"

"여제! 괜찮으십니까?!"

불사의 마족이 이들의 발을 묶어두는 데에 실패한 모양이었다. 헌터들이 물밀듯 성 내부로 들어왔다.

테서렉트로 공간은 억제한다고 해도, 이들 전부를 막기는 어렵다.

"이제 그만 포기해라!"

신태양도 천성호도 검을 쥐고서 우리를 향해 달려오려 했다. 한기성까지 있으니, 우리 쪽이 상당히 불리해 보이는 게 사실이다.

"젠장, 일단은 후퇴해야하나?"

미래의 진세아가 혀를 찼다.

투욱.

나는 그런 녀석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그럴 필요 없어. 해결 할 수 있을 것 같다."

"해결······? 저 답답한 여제랑 아무리 말해봤자······."

"아니, 그런 게 아니야."

나는 여제가 있는 쪽으로 걸어나갔다.

초월의 비석 안에 잠든 나를 향해서.

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 말이다.

도대체 얼마나 멍청했던거냐.

얼마나 혼자서 모든 걸 끌어 안으려고 하고 있었던거냐.

이 자리에 있는 그 누구도.

미래의 진세아나, 여제도, 신태양도, 천성호도······.

전부.

내 능력에 대해 알지 못하고 있다.

상황을 타개할 능력에 대해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리더라고 불리고는 있지만.

고독한 것이었다.

'이것저것 전부 비밀로 하고 있는 지금의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이 정도 됐으면 상의도 하고 그래야 되는 거 아니냐.

자기 능력이 뭔지 동료들에게 알려줄 법도 하잖냐.

『 스킬 향상의 반지를 사용합니다. 』

『 찬란한 초월의 성배(에픽)을 사용합니다. 』

『 유니크 스킬 '다세계 해석 Lv.13'를 발휘합니다. 』

비석에 잠든 나를 꺼낼 수 있는 방법.

그것이 13 레벨 다세계 해석에 의해 밝혀진다.

미래의 나는 무수한 차원을 헤매이며 방황했다.

그 증거는 내 영혼에 분명히 새겨져 있어 분명하게 해석된다.

『 유니크 스킬 '절대 다차원 간섭 Lv.1'을 습득합니다. 』

그 경험의 일부가 내게로 흘러들어온다.

다시금 손을 가져다 대고 정신을 집중한다.

드드드······.

내 품 안에 넣어놨던 재능의 조각이 미친듯이 진동하는 것이 느껴진다.

막대한 양의 스킬 경험치가 내게로 흘러들어 온다.

『 스킬 '절대 다차원 간섭 Lv.2'를 획득합니다. 』

『 스킬 '절대 다차원 간섭 Lv.3'를 획득합니다. 』

···

..

.

『 스킬 '절대 다차원 간섭 Lv.11'을 획득합니다. 』

다시 한 번 말하자면.

이들 중 아무도 내 능력에 대해 정확히 모르고 있다.

알고 있었다면 일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거다.

경험치 50만배.

그건 단순하지만 매우 강력해서.

『 스킬 향상의 반지를 사용합니다. 』

『 스킬의 레벨이 1 상승합니다. 』

『 찬란한 초월의 성배(에픽)을 사용합니다. 』

『 스킬의 레벨이 1 상승합니다. 스킬 등급이 한 단계 상승합니다. 』

아무도 가보지 못한 능력의 끝을.

누구도 생각치 못한 가능성을.

『 레전더리급 스킬 '절대 다차원 간섭 Lv.13'을 발휘합니다. 』

현실로 만들어 낸다.

161화 여제의 뜻(4)

"뭐, 뭐야······?!"

"여제님!"

"저 놈을 당장 막아!"

당황한 여제측의 헌터들이 나를 바라보며 소리쳤다.

"아니, 잠깐."

그러나 여제는 이 변화를 눈치챈 모양이었다. 헌터들을 향해 손을 들어 올려 제지했다.

"도대체 어떻게······?"

그리 중얼 거리는 여제.

절대 차원 간섭 Lv.13

본디 이 스킬의 최대 레벨은 10 이고 등급은 유니크에 불과하다.

그러나 무재조정의 효과와 스킬 향상의 반지, 에픽 아이템인 성배는 기적을 만들어냈다.

그렇게 완성된 레전더리급 13레벨 스킬.

이 세계에는 아마 존재하지 않을 스킬이 내 손에서 발휘되고 있었다.

샤아아아—!

막대한 양의 빛이 초월의 비석으로부터 흘러나온다. 방대한 양의 정보가 비석을 통해 내게 전해진다.

'크윽······.'

버거울 정도의 정보량이 뇌속에 새겨지고 있었다. 머리가 타오르듯 시큰거리고 뇌 속이 불로 지져지는 것처럼 뜨겁다.

『 유니크 스킬 '지고의 정신 Lv.3'을 획득합니다. 』

『 스킬 '지고의 정신 Lv.4'을 획득합니다. 』

『 스킬 '지고의 정신 Lv.5'을 획득합니다. 』

여지껏 느릿하게 경험치를 얻고 있던 지고의 정신의 경험치가 빠르게 올라간다. 그만큼 내 정신에 걸리는 부담이 크다는 의미다.

"사부······!"

"오빠!"

주변으로 다가오던 헌터들과 그들의 목소리가 아득하게 멀어지고 있었다. 시간이 끊임없이 늘어지며 느리게 흐르기 시작한다.

동시에 미래의 나 '이지한'이 듣고 보고 겪었을 무수한 일들이 내게 전달된다.

'대체······.'

『 스킬 '지고의 정신 Lv.6'을 획득합니다. 』

강렬한 격통이 머릿속을 뒤흔들었지만 나는 비석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무수한 차원 속에서 여제가 찾아낸 미래의 나.

그를 온전히 이곳으로 데려오기 위해선 차원 간섭을 멈춰서는 안되었다. 정신에 걸리는 부하는 심해지고, 전신에서 땀이 비오듯 흘러내린다.

『 스킬 '지고의 정신 Lv.7'을 획득합니다. 』

『 스킬 '지고의 정신 Lv.8'을 획득합니다. 』

내가 알지 못했던 사실들과 내가 겪지 않았던 일들이 거듭하여 머릿속을 채워나간다.

'젠장······.'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모든 것이 뒤틀어진다. 조금만 잘못 건들인다면 부숴질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미래의 내 영혼은 수많은 차원을 방랑하며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도저히 사람의 것이라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셀 수 없이 많은 인과의 사슬들이 영혼을 구속하고 있다.

그를 온전히 이곳으로 데려오기 위해선.

그 전부를 이해해야만했다.

그러니 애초부터 나밖에 할 수 없는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를 이해하는 건 결국 내가 될 수밖에 없으니.

화아아악!

격류와 같은 시간의 흐름이 나를 훑고 지나간다.

이지한은 아무도 모르게 사라졌다.

자신도 돌보지 않은 채.

동료들도 내버려둔 채.

무언가를 찾아 헤맨다.

환상계, 맹림계, 증기계, 정령계, 마계, 대양계, 행성계, 고차원계······.

다른 차원에서 있었던 일들이 휙휙 내 기억을 스치고 지나간다.

『 스킬 '지고의 정신 Lv.9'을 획득합니다. 』

『 스킬 '지고의 정신 Lv.10'을 획득합니다. 』

다른 차원에서의 만남과 인연이 얽히고 섥혀 나를 옭아맨다.

새로운 동료, 잊지 못할 경험, 죽음의 위협과 절망스런 재앙.

그러한 시간이 쌓일수록 기억은 희미해지고 본래의 목적은 의미를 잃을 것만 같아진다.

그럼에도 미래의 나는 무수한 차원을 돌아다니며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뭘 위해서 이렇게까지 하고 다닌거냐······.'

감정조차 바래질만큼.

기억조차 희미해질만큼.

나는 필사적으로 돌아다닌 것이다.

한때는 F급에 불과했던 재능 없는 헌터가.

세계를 구하기 위해 단 하나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차원을 넘었다. 지치지도 않고 계속해서 나아간다.

그 모든 기억을 훑은 나는 알 수 있었다.

나는 돌아오지 않은 게 아니었다.

돌아오기 위해 안간힘을 쓴 것이었다.

본래의 세계를 구하기 위해.

초월자 마계왕을 죽일 방법을 찾아내기 위해.

나는 최선을 다했다.

"크으윽······."

『 스킬 '지고의 정신 Lv.11'을 획득합니다. 』

『 추가효과 : 이제 최상위 정신계 스킬을 습득할 수 있습니다. 』

화아아악!

내 주변을 뒤덮고 있던 검은 장막이 걷히며 본래 내가 서 있던 풍경이 드러났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무감각해지는 기분이었다.

1초? 2초? 그 정도였을지도 모른다.

투명한 유리성 내부.

놀란 헌터들의 모습과 내게로 달려오는 동료들이 보인다.

여제의 눈은 흔들리고 있었다. 변화를 알아챈 걸까?

나는 쓰러지다시피 주저 앉았다.

"사부! 괜찮아요?!"

"오빠! 정신차려!"

평생 살아 온 것 이상의 삶을 살아냈다. 그것도 단숨에. 지치는 게 당연했다. 그러니 잠깐만 내버려둬라.

그래도 확실히 성공했다.

촤르르륵······.

초월의 비석을 두르고 있던 쇠사슬이 흘러내렸다.

굉음과 함께 비석이 무너져내렸다.

가벼운 연기가 비석 내부에서 피어올랐다.

그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한 남자.

"······."

그는 아무 말없이 몸을 털고 일어섰다.

그 등장만으로 유리성 내부에 있던 모두가 말을 잃고 멈춰선다. 침묵의 장막이 가라앉은 듯 한없이 고요하다.

무기를 들고 달려오던 이도 거센 고함을 치던 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조용했다.

모두를 천천히 둘러 본 남자가 침묵 속에서 입을 열었다.

"고생했다."

고작 한마디였지만.

이제껏 만나왔던 어떤 이보다 강한 카리스마와 격이 성 내부를 잠식한다.

나도 무릎이 꺾이고 고개가 내려갈 것만 같은 강대한 격이었다.

대부분의 헌터들은 고개조차 제대로 들지 못할 정도였다.

그러나 두려워하는 이는 없었다.

그들의 가슴에선 공포가 아닌 희망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남자는 품에서 검은 가면을 꺼내들어 자신의 얼굴에 올렸다. 일대를 짓누르던 격이 단숨에 사라졌다.

이어지는 건 엄청난 환호성과 기쁨의 함성이었다.

"와아아아아!!"

"리더가! 리더가 돌아왔다!"

"리더!!!"

"사부······. 진짜, 사부가······."

"진짜 오빠야······?"

미래의 진세아도 엘리스도.

신태양 천성호, 한기성 누구 할 것 없이.

남자를 향해 고개를 들어 올린다. 그들의 눈에 눈물이 글썽였다.

기다리고 있었던 그.

미래의 진세아의 눈에서 큼지막한 눈물이 방울 방울 떨어져 내렸다.

"지한씨······."

얼음장 같이 차가운 얼굴을 하고 있던 여제조차도.

한없이 풀어진 표정으로 눈물을 쏟아낸다.

여제는 그대로 남자에게 달려가 와락 안긴다.

그녀 뿐만이 아니다. 남자의 귀환을 모두가 기다렸을 것이다.

모두가 남자를 향해 달려나갔다. 방금 전까지 적이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 그를 마주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그들의 얼굴은 미소로 가득했다.

"이 정도면 해피 엔딩인건가? 구해준 건 오빠인데, 다들 정신은 미래의 오빠한테 팔려 있네."

내가 잘아는 현재의 진세아가 몰려드는 사람들을 보고 내게 말했다.

나는 한발자국 뒤로 물러서 현재의 동료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윤서현이 멋쩍은 듯 어깨를 으쓱였다.

"잘 됐네요. 근데 여제랑 저는 다른 사람인 거 알죠? 저 여자랑 나랑은 상관 없어요. 진짜요."

"예. 참고하겠습니다."

나는 그들의 리더가 아니다. 이방인이자 손님이다.

이번 미래가 특별한 이유였다.

진세아가 두 명이고, 윤서현이 두 명이다.

미래의 존재가 현재와 공존한다.

물론, 그들의 입장에선 우리가 과거다.

우리는 그들의 세계에 잠시 들른 방문객인 셈.

그들에게 그들의 세계가 있듯, 우리에겐 우리의 세계가 있다.

내 옆에 서 있던 진세아가 물었다.

"근데요······. 여기가 미래면 오빠도 언젠가는 사라진다는 뜻?"

"설마."

윤서현의 눈이 나를 향했다.

아마 같은 일은 안 일어날 거다.

"그렇게 안되게 해야겠지."

이로써 인류의 두 진영 간의 전쟁은 불필요한 피를 내지 않은 채 끝이났다. 남은 건 인류의 화합과 재건 뿐.

그렇게 마무리 지을 수 있다면 좋았겠지만.

그우우우우우······.

유리성 바깥의 붉은 하늘에서 기이한 소음이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붉은 하늘의 중심부에 거대한 균열이 생겨나있었다.

하늘이 부숴질 것처럼 무너진다는 표현이 맞을 거다.

그 틈으로 검은 마기가 끊임 없이 쏟아져 내린다. 흡사, 이전에 보았던 재액처럼. 구멍에서 검은 액체가 폭포처럼 떨어진다.

당황한 진세아(현재)가 묻는다.

"뭐, 뭐에요······? 이제 다 끝난 거 아니었어요?"

"세계의 끝이 다가오는 거다. 마계왕이 내 배신을 알아차린 모양이야. 본격적으로 움직일 생각인 것 같군."

어느틈에 다가온 불사의 마족이 설명을 시작했다. 많이 맞았는지 몸 전체가 너덜너덜했다.

그는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하지만, 설마하니 사라진 대적자를 부활시킬 줄은 몰랐다. 정말 놀랐다. 인간들 말로는 이런 걸 두고 대박이라 하던가."

이변을 감지한 건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축제처럼 과열되었던 분위기도 금세 얼어붙을 정도였다.

들리지는 않지만 미래의 내가 사람들을 안심시켰다. 그제서야 다시 활기가 돌아왔다.

어쨌든 이들에게는 마계왕이라는 진짜 적이 남아 있다.

"이후의 일은 지금의 인간들이 해낼 일이다. 과거의 대적자여. 넌 충분한 기적을 보여줬다."

"그래."

잘난 듯이 말하는 불사의 마족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이계 규율에 대해서 물어봐야했지만, 지금은 잠깐 미뤄두자.

저 멀리에 있던 미래의 진세아.

그리고 여제가 함께 내게로 오고 있었으므로.

"······진짜 고마워. 이걸 말로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오빠. 이거 세이비어라도 선물로 주고 싶은 기분이라니까."

가볍게 주먹을 내미는 진세아(미래).

투욱.

나도 주먹을 마주했다.

풀리지 못할 것 같은 갈등의 고리.

그 해결은 어렵지만 나에 의해 극적으로 타결되었다.

내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 다행인 셈이었다.

내 옆에 서 있던 윤서현은 여제를 째려보았다. 여제에게 불만 가득한 얼굴이었다.

"그래서, 무슨 할 말이 있어요? 지한씨를 죽여서 그쪽 지한씨를 살린다는 생각을 한 사람이."

여제는 고개를 들지 못한 채 내게 말했다.

"미안해요. 그건 변명의 여지가 없네요. 원망해도 당연하겠죠. 하지만······. 고맙다는 말만큼은 전하고 싶었어요. 정말 고마워요."

"설마 용서해주는 거 아니죠?"

윤서현은 단단히 화가 난 모양이었다. 뭐, 여제가 윤서현이고 윤서현이 여제니 만약 같은 상황이었다면 비슷한 결론을 내지 않았을까.

"그렇게 미안하면······. 강해지는 방법이나 알려주시죠."

"네?"

되묻는 여제.

물론 내 이야이가 아니다.

나는 윤서현을 가리켰다.

"기왕이면 가장 빨리 강해지는 방법으로요."

"저, 저요?"

당황하는 윤서현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일로 그녀가 여제급의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는 게 증명되었다. 따라서 그녀는 더욱 강해져야 한다.

그야, 우리는 다른 미래를 향해 나아갈 거니까.

* * *

"근데 나 이번에 한 게 아무것도 없는데? 그 지옥 같은 훈련은 대체 무슨 소용이었던거냐고요!"

"자자, 진정해. 이거나 마셔. 아, 술은 안되나? 그러면 주스라도."

미래의 진세아가 과거의 진세아의 입에 주스를 물렸다.

파티였다.

인류의 리더가 돌아 온 중요한 날이었으니까.

그들은 성대한 환영 파티를 열었다.

두 파벌로 나뉘어 있던 인류 전체가 세이비어에 집결했다.

내가 둘이 되자 인공지능 네이아가 심히 당황해 했지만 결과적으로 함장은 진세아가 이어서 맡기로 했다.

여제 측 사람들은 내게 사과와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그들이 주는 사죄의 선물들로 방 안이 가득 채워질 지경이었다.

인류의 리더가 돌아왔단 소식이 함선 전체에 알려졌다.

내 얼굴을 모르던 사람들도 내 이름과 행적만큼은 잘 알고 있었기에. 한동안 세이비어에는 축제 분위기가 이어졌다.

군단장도 전부 쓰러뜨린 마당에 마계왕이라고 이기지 못할 건 없어보였으니까.

어찌되었건 희망은 분명히 존재했다.

윤서현의 훈련과 진세아의 훈련이 남았기에 나는 일부러 일자베기의 레벨을 올리지 않았다.

그렇게 일주일이 흘렀다.

'물론 여기에 평생 있을 순 없겠지.'

이전처럼 우리의 세계에서도 시간이 흐르고 있을 가능성이 있었다.

돌아갔는데 세계가 멸망해 있다거나, 그런 일은 없어야 했으니까.

"오늘은 또 뭐냐."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문 앞에 선물이 한가득이었다. 각종 아이템들과 몸에 좋다는 영약이 떨어져 있었다.

미래의 무기나 장비는 과거로 가져갈 수 없다.

운 좋게 이계 규율이 발동해야 가져갈까 말까니까.

그래도 영약 같은 건 도움이 된다.

『 100년급 체력 증진 영약 』

아마 천성호와 신태양의 짓일 거다. 미안했는지 계속해서 이런 아이템들을 가져다 받치고 있었다.

멸망한 세계 어디에서 이런 걸 구해오는 건지.

근데 주면 받아야지.

나는 영약을 들이켰다.

입 안 가득 쓴맛이 퍼진다.

『 체력이 영구적으로 25% 상승합니다. 』

『 체력 관련 스킬의 습득 가능성이 증가합니다. 』

마지막 한 방울까지 털어 넣고 트레이닝 센터로 향했다.

『 오늘이 함장님을 뵙는 마지막 날이라는 게 아쉬울 따름입니다. 』

네이아의 안드로이드가 나를 안내한다.

"함장은 진세아로 바뀌었잖아. 그리고 이 시대의 내가 있는데. 뭐, 어때."

『 각인효과라고 아시나요? 태어난 새끼 오리가 처음 본 대상을 부모로 여기는 현상입니다. 』

"알지."

『 마찬가지로 저도 처음 뵌 함장님께 충성심을 느낍니다. 』

"너는 오리가 아니잖아."

『 그런 냉정함도 오늘로 마지막이라는 것에 슬픔을 느낍니다. 』

네이아도 학습을 하는 건지. 부쩍 말이 많아져 인공지능이란 느낌이 거의 사라졌을 정도다. 녀석이 어디에서 왔는지, 어디서 찾을 수 있는지는 알아냈다.

조만간 다시 보게 될지도 모른다.

나는 늘 하듯이 트레이닝 센터로 들어왔다. 전투 안드로이드들을 상대로 연습하다보니, 아직 100%가 되려면 꽤 남았다.

여기서 최대치까지 채우고 모두가 있을 때 다같이 귀환할 예정이었다.

"응?"

그런데, 트레이닝 센터에서 의외의 인물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검은 가면을 쓴 남자.

아무런 기운도 느껴지지 않지만, 그 고요함이 오히려 압도적인 느낌을 불러 일으킨다.

"왔나."

그 정체는 다름 아닌 미래의 나였다.

162화 여제의 뜻(5)

검은 가면을 쓰고 있는 남자.

미래의 인류를 이끄는 최후의 리더이자.

언젠가 내가 도달하게 될 미래.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건가.'

가면 너머의 표정은 알 수 없었지만 상관 없었다. 어쩐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무표정한 얼굴이 나를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그가 부활한지 약 일주일.

'직접 이야기를 나눈 적은 없었지.'

공백의 시간이 컸던만큼 그가 해야할 일은 많았다. 그의 주변에는 사람들이 항상 몰려 있었기도 했고.

때문에 세이비어 내부에서 1대1로 마주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밖에서 보아온 그는 훨씬 과묵하고 조용했다. 말수는 더욱 줄어 있었고, 필요한 말 이외에는 거의 하지 않을 정도다.

뭐라고 해야 하나.

나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그래도 미래의 나를 직접 만날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다. 아니, 영영 없을지도 모르겠지.

가라앉은 침묵.

나와 내가 마주한 기이한 상황.

그 어색함을 메꾸기 위해 내가 먼저 말을 걸었다.

"뭔가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는거냐?"

내 말에 가면의 남자는 품 안에서 검을 꺼내들었다.

"없다."

검으로 나를 가볍게 가리켰다.

"너는 이미 보았을 테니."

그건 그렇다.

미래의 나를 구하는 과정에서, 나는 그가 행해온 일들을 경험했다. 그것들은 모두 기억이라는 형태로 남아 있다.

내 불완전하던 미래에 대한 지식이 완전해진 셈이었다.

"그저······."

남자는 반대편을 향해 검을 뻗었다.

"감사 인사를 하고 싶었다."

그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내가 느끼기엔 그러했다.

내가 눈치채도 못할 찰나의 순간.

스으으······.

트레이닝 센터의 한 귀퉁이에 올곧은 선 하나가 떠올라 있었다.

선은 옅은 빛과 함께 틈을 만들어냈다.

파아앗!

그 틈은 순식간에 내가 있는 공간 전체를 집어 삼켰다.

이전 검성이 보여줬던 공간검과 비슷한 기술이었다.

그러나 그보다 한 발자국 앞서 있다.

'이건······.'

그도 그럴게 공간이 아닌 차원을 뛰어 넘고 있으니까.

정제되지 않은 총천연색의 세계가 일렁인다. 푸르른 초목의 세계가, 녹슨 고철 덩이로 가득한 세계와 증기를 뿜어내는 세계가 동시에 스쳐지나간다.

눈이 핑핑 돌아가는 느낌이다.

그야말로 일자베기의 정점.

내 일자베기를 본 신태양이 이런 기분이었을까.

보는 것만으로도 내가 나아갈 방향을 미리 느끼게 된다.

미래의 내가 아니라면 그 누구도 알려줄 수 없는 미래의 경지.

그만이 가능한 일이었다.

닫혀 있던 눈이 트이는 느낌이다.

'굉장하다.'

주변을 둘러싼 풍경은 천천히 원래대로 돌아왔다. 나와 남자는 어느새 원래 있던 트레이닝 룸에 서 있었다.

"근데 이걸 보여주는 이유가 뭐지?"

솔직히 말하자면 보여준다고 따라할 수 있는 기술이 아니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 미래의 나의 경험은 이미 알고 있다.

남자는 아랑곳않고 인벤토리에서 알약 하나를 던져줬다.

"먹어라."

알약은 아이템이었다.

『 절대 스킬 재현의 명약(제작자:이지한) 』

- 등급 : 유일

- [ 제한 없음 ] 눈으로 확인한 스킬을 한가지 습득합니다.

- [ 일회용 ] 습득한 기술은 1회 사용시 사라집니다. 경험치를 획득할 수 없습니다.

단순한 알약의 외형과 다르게 그 효과는 어마무시했다.

어떠한 기술이던 하나 습득할 수 있는 알약이었다.

"쓸모가 있을 거다."

설명은 그걸로 충분했다.

'오······.'

잠시 알약을 멍하니 바라보던 내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감사 인사라는 게 이런 거였나.

이런 선물이라면 얼마든지 환영이다.

아이템은 본래의 시간대로 가져갈 수 없지만, 스킬은 이야기가 다르다.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도 그대로 남는다.

꿀꺽.

나는 곧바로 알약을 삼켰다.

그 효과는 바로 발휘 되었다.

원리를 몰라도, 방법을 몰라도 스킬을 익히게 해주는 사기적인 효과다.

『 명약을 사용하여 스킬을 습득합니다. 』

『 일자베기(Lv.?) - 명명 '차원베기'를 습득합니다. 』

습득을 알리는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나는 가볍게 주먹을 쥐었다.

미래의 내가 전해주는 기술.

제대로 전해 받았다.

단 한 번이지만.

사용하기에 따라 다른 미래가 그려질 것이다.

남자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더 나은 미래를 손에 넣어라."

그 말과 함께 남자는 트레이닝 룸을 빠져나갔다.

강함을 대가로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잃어버리기라도 한 모양.

나는 저렇게 되지 말아야겠다.

그래도······.

충분히 의미 있는 만남이었다. 그의 의도는 내게 전해졌다.

『 인공지능 네이아가 훈련을 보조하겠습니다. 』

"그래, 시작하자."

이제 다시 일자베기를 단련할 시간이다.

* * *

세이비어에서의 일주일 동안.

불사의 마족에게서 이계 규율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녀석은 진심으로 인류에게 협력하고 싶어했다.

노예 생활을 자처하면서도 마계왕을 쓰러뜨리고 싶어했다.

물론 그를 100% 신뢰하는 사람은 없었다만.

- 아아, 나를 찾았나? 그래 내가 아는 건 전부 말해주지.

어쨌든 가장 중요한 이계 규율.

그는 흔쾌히 설명을 시작했다.

- 마족들은 많은 수의 차원을 지배하고 정복해왔다. 그러나 이계 규율에 대해서는 극히 미미한 정보만이 존재할 뿐이지.

마계의 기술 담당이었던 발전의 마족이 소유하던 문헌에도 고작 한 문장 적혀 있었을 뿐이다.

전지의 능력을 가졌던 엘프 세레네의 말을 떠올랐다.

'그 힘은 결코 부정되지 않는 모든 것의 규칙이자 초월자의 자격이다.'

이어서 불사의 마족의 입에서 나온 말은 흥미로웠다.

-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이유. 그 이유가 뭘까? 답은 간단했다. 이계 규율은 외차원(外次元)에서 존재하는 법칙이기 때문이다. 오랜 조사 끝에 알아냈지. 5만년에 달하는 내 수명이 결실을 맺는 순간이었다.

외차원.

차원을 넘나드는 기술을 가진 마족들도 확인할 수 없는 바깥의 차원.

- 그곳에서는 완전히 다른 법칙이 존재하는 거다. 완전히 색다른 시스템이 존재하는 셈이지.

정리하자면 이계 규율은 차원 바깥의 장소(외차원)에서 왔단다.

- 외차원은 우리가 존재하는 세계와는 철저히 단절되어 있지만 간혹 영향을 주는 일이 있다. 그렇게 나타난 것이 바로 네가 사용했던 '마기의 원천 : 이계 규율'이었다.

불사의 마족이 5만년 동안 찾아 헤매던 걸 내가 도중에 가로챘다는 말이 되는데.

의외로 녀석은 담담했다.

- 처음에는 분개했지. 다만, 네 놈을 죽인다고 이계 규율이 돌아오는 건 아니니. 차라리 관찰하기로 결정한 것 뿐이다. 그러다보니 손을 쓸 수 없게 된 것 뿐이고.

근데 그 설명이면······.

- 결국 너도 딱히 아는 게 없다는 거 아니냐.

- 아무렇지 않게 정곡을 찌르는군. 그래도 소기의 성과는 있었다. 이계 규율을 찾으면서 그것을 소유한 자들에 대한 잊혀진 기록을 복원할 수 있었으니.

기록 복원.

마지막으로 나온 말이 진짜였다.

- 이계 규율을 소유한 존재는 모두 초월자가 되었다. 그러니 이계 규율의 목적은 소유자를 초월자로 만드는 게 아닐까. 그런 결론이 나왔다.

마계왕과 같은 초월자라······.

나는 팔목의 검은 팔찌를 들여다 보았다.

이계 규율에 의해 습득한 이것의 이름 또한 초월의 팔찌다.

명백하게 초월의 길로 나를 인도하고 있다는 증거다.

- 결국, 이계 규율을 소유한 그대가 밝혀내야 할 문제다. 개인적으로 궁금하니, 과거의 나에게 꼭 답을 알려주게.

그 길이 옳은 길이냐 아니냐는 두고봐야 할 문제지만.

- 그러면 이제 과거의 이 몸. 최상위 불사의 마족을 인간의 편으로 삼는 법을 말해주마.

- 필요 없는데.

- ······. 한 번 들어나 보는 건 어떤가?

이계 규율에 대한 정보 수집은 이렇게 끝이 났다.

외차원에서 왔으며 소유자를 초월자로 만든다.

지금 확신할 수 있는 부분은 이 정도였다.

미래의 나조차도 이계 규율에 대한 건 전부 밝혀내지 못했으니.

때문에 그 존재 이유나 진짜 목적은 알 수 없다.

'무언가 의문만 더 생긴듯한 기분이네.'

그러나 차차 밝혀질 거다.

그것만은 확실해보였다.

* * *

함선의 바깥, 황량한 대지.

"더 있다가 갔으면 좋았을텐데······."

미래의 진세아가 아쉬운 듯 말했다.

"그래도 붙잡을 순 없겠지."

과거에서 온 우리를 배웅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미래의 진세아와 엘리스, 여제와 미래의 동료들 마지막으로 미래의 나까지.

함장모를 쓴 진세아가 망토를 펄럭이며 앞으로 나섰다.

"다시 한 번 모두를 대표해서 말할게. 진심으로 고마워. 오빠 덕분에······. 우리의 세계는 희망을 얻었어. 봐봐, 우리 오빠도 기뻐하잖아."

"······."

가면을 쓴 남자의 옆구리를 툭툭치는 진세아(미래).

그렇게 막 건들여도 되는 건가 싶다.

"과거의 지한씨에게 하나 더 줄 게 있어요."

미래의 나는 여제와 함께 내게로 다가왔다. 미래의 나는 가볍게 손을 들어 올렸다.

파직, 파지지직······!

허공에서 붉은 스파크가 튀어오른다.

『 이계 규율 두번째 : 예외 규칙 』

『 이제 해당 시공에서 아이템을 한 가지 가져올 수 있습니다. 』

간섭에 의해 이계 규율이 메시지창을 띄워 올렸다.

미래의 내가 만들어낸 틈새.

'적지 않은 자원을 소모할텐데.'

이렇게까지 해줄 줄이야.

여제는 자그마한 금빛의 큐브를 내게 내밀었다. 엄지만한 크기로 상당히 작다.

"차원 압축 입방체에요. 언젠가······. 과거의 내가 지금의 나만큼 강해진다면 사용할 수 있을 거에요."

"감사합니다."

나는 큐브를 받아 인벤토리에 넣었다. 확실히 챙겼다.

뭐가 들어 있는지는 일부러 말해주지 않은 모양이다.

마지막으로 가벼운 작별 인사가 이어졌다.

"사부, 과거의 저에겐 가능한 한 정보를 전달해 놓을게요."

엘리스는 그리 말했다. 그러고보니 그녀는 다른 시간축의 자신들과 어느정도 소통할 수 있었다.

꿈이라는 형태로 전달되던가?

현재의 엘리스의 힘이 약해서 그런지 그리 완벽한 전달은 안되는 것 같지만.

"정말 죄송했습니다."

"정말로 미안합니다."

다시 고개 숙여 사과하는 신태양과 천성호. 나는 가볍게 손을 들어 올렸다. 어차피 지난 일 탓해서 뭐하겠는가.

여기 있는 동안 영약을 포함한 선물을 잔뜩 받았으니, 봐준다.

미래의 진세아는 헤드락을 걸고서 과거의 자신의 머리를 마구 쓰다듬고 있었다.

"훈련 알려준 거 절대로 빼먹지 말고 꼭 해. 알았지? 자, 따라해. 나는 천재다"

"나는 천재다······. 으윽, 드디어 끝났다······."

"정신차려! 내가 알려준대로하면 미래가 바뀐다니까. 잘만하면 여제의 자리도 니가 꿰찰 수 있을지도 몰라."

"그거는 뭐 꽤 좋은 정보기는 한데······. 생각은 해볼게."

"그러다 너 후회한다니까."

도대체 뭘 알려준 건지.

어쨌든 두 사람의 사이도 꽤 좋아진 모양이다.

여제와 윤서현도 마지막 작별인사를 나눈다. 일주일이란 짧은 시간이지만, 역시 동일 인물이라 통하는 게 있는 걸까.

여제가 윤서현의 두 손을 꼭 잡은 채 이야기하고 있었다.

"포기 하지 말고. 힘내."

"이러다 괜히 나만 김칫국을······."

"아니라니까. 너도 봤잖아."

그 사이 내 앞으로 검은 가면을 쓴 남자가 다가왔다.

미래의 나.

그는 말 없이 나를 바라볼 뿐이다.

이제 슬슬 돌아갈 때라는 거겠지.

"그러면 돌아갈까."

붉은 하늘 위로 보이는 암운(暗雲).

마기의 재액은 여전히 지상을 향해 떨어져내리고 있다.

이제 이들의 상대는 마계왕이다.

승리인가 패배인가.

그것은 모두 여기 남은 사람들의 손에 달려 있다.

『 안녕히가십시오. 함장님. 』

그러니, 우리는 우리의 세계로 돌아갈 때다.

나는 검을 들어 올렸다.

마력을 담아 검을 휘두른다.

『 스킬 '일자베기 Lv.13'을 발휘합니다. 』

푸른 선이 근처의 허공을 가르며 부족한 경험치를 채웠다.

드디어 완성했다.

『 충분한 양의 스킬 경험치를 습득하셨습니다. 』

지금의 내가 도달할 수 있는 최대 스킬 레벨.

『 레전더리 스킬 '일자베기 Lv.14'를 획득합니다. 』

『 추가효과 : 스킬의 등급이 두 단계 상승합니다. 』

14레벨의 일자베기가 완성되었다.

레어였던 스킬이 단번에 레전더리의 반열에 올랐다.

검을 쥔 손에서 흘러나오는 마력이 연기처럼 흩어져나간다.

흐읍.

나는 숨을 들이마시고, 다시 검을 들어 올렸다.

모두의 이목이 내게로 집중 된다. 시끌벅적했던 사람들 사이로 침묵이 내려 앉았다.

나는 있는 힘껏 검을 휘둘렀다. 일자베기의 무한한 가능성을 머릿속에 그리며, 칼날이 시원하게 뻗어나갔다.

『 레전더리 스킬 '일자베기 Lv.14'를 발휘합니다. 』

스으으······.

한없이 고요한 황량한 대지에 자그마한 실선이 그어진다.

변화한 건 아무것도 없다.

탈력감도 무엇도 없다.

원근을 무시한 채 만들어진 실선.

가늘지만 공간은 분명히 베어졌다.

그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저 멀리 이름 모를 산이 무너져 내린다. 산사태와 함께 막대한 연기가 자욱하게 솟아난다.

쿠구구구······.

진동과 소음이 한참 뒤에야 이곳에 전해진다.

산은 내가 그어낸 선 그대로 깔끔하게 잘려나갔다.

칭호의 도움을 받았다곤 하나 압도적인 위력과 사거리다.

"헐······. 진짜?"

진세아(현재)가 얼빠진 듯한 표정으로 나지막이 말했다. 그런 녀석의 반응을 보고 주위에서 웃음이 터져나왔다.

"그럼 진짜지."

미래의 진세아가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사람들의 마지막 배웅이 이어졌다.

"잘 가!"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고마웠습니다!"

"그쪽 세계에서도 화이팅입니다!"

그들에게 화답하며 진세아가 소리친다.

"마계왕 죽여버려요!"

모두의 목소리가 점차 희미해지는 것과 동시에.

세계가 변화해나가기 시작했다.

『 귀환 조건 '일자베기 14레벨( 1/1 )'을 달성하셨습니다. 』

『 재능 획득 물약(에픽)의 효과가 사라집니다. 』

『 본래의 시간축으로 귀환합니다. 』

나와 진세아, 윤서현을 제외한 세계가 완전히 일변한다.

먹물이 번지듯 새하얗게 물든 공간을 거쳐.

우리는 본래의 세계로 돌아왔다.

부유감이 사라지고, 단단한 땅이 발 아래 자리잡는다.

꽤 길었다. 그래도 많은 것을 얻었다.

"돌아 온 건가."

크르르르······.

뭐, 사소한 문제가 있다면.

"근데 여기는 어디에요? "

"제대로 온 거 맞아요······?"

"글쎄요."

마수들이 득실 거리는 자리에 떨어졌다는 것 정도일까.

163화 오버 더 월드(1)

이른 새벽.

창문의 커튼으로 푸른 빛이 새어나오는 시각.

엘리스는 잠에서 깨어났다.

"으우······."

침대에서 상반신을 일으킨 엘리스는 옆 테이블에 놓여진 스마트폰을 들어 올렸다.

"뭐였더라······."

비몽사몽간에 열심히 메모 어플에 꿈의 내용을 기록했다.

어제 공략이 있었던터라 피곤함에 눈이 감겨왔지만 어쩔 수 없었다.

엘리스에게 있어 꿈은 미래 자신으로부터 예언을 받을 수 있는 통로였다. 그 적중률은 거의 100%에 달한다.

사부님을 만난 것도 전부 꿈 속의 예언 덕분이었다.

그러니 꿈의 내용을 기록해 둬야 했다.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릴 염려가 있었으므로.

"휴우······. 다 썼다."

기록을 끝마친 엘리스는 다시 침대에 푹 쓰러졌다. 해가 뜨고서야 다시 몸을 일으켰다.

기지개를 핀 뒤, 잠시 멍하니 있던 엘리스가 눈을 번쩍 떴다.

"맞다, 예언!"

우선 스마트폰을 집었다.

예언을 받았다는 건 기억나는데, 그 내용이 뭐였는지는 다시 자고 나니 완전히 까먹었기에.

"역시 기록해두길 잘했어."

사부님이 실종 되고서 약 1달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이지한, 윤서현, 진세아.

세 명이 공략 도중 동시에 실종 된 일은 심각한 문제였지만.

협회의 부회장이 마족이었다는 사실에 대한민국, 아니 전세계가 발칵 뒤집히는 바람에 크게 화제가 되진 못했다.

은날의 길드장 윤지은이 큰 패닉에 빠지기는 했지만.

- 제 예지에 의하면 사부님과 다른 분들은 무사할거에요.

엘리스는 그런 예지를 받을 수 있었다.

현재 엘리스는 은빛의 날개에 임시 등록한 상태.

덕분에 좋은 숙소를 제공 받고, 훌륭한 식사와 훈련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약 한 달 뒤.

미래의 자신으로부터 새로운 예지를 받은 것이다. 무한히 분기된 미래의 가능성 중 어딘가로부터 날아온 메시지.

엘리스는 그 메시지를 읽기 위해 스마트폰을 들여다보았다.

한참을 들여다 보던 엘리스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이, 일자베기 14레벨······? 쓰지마······?"

그 외에도 오타인지, 뭔지 이해 못할 단어가 다수였다.

뭔 소리야.

그리 중얼거린 엘리스는 스마트폰을 놔두고서 세수를 하러갔다.

세면대에서 시원한 물로 얼굴을 적시던 엘리스는 문득 떠오른 생각에서 멈칫했다.

"설마, 사부님이 돌아오시나?"

* * *

우리가 떨어진 장소는 정글의 한가운데였다.

덩쿨들이 뒤얽힌 나무들 사이에서 마수들의 눈동자가 번뜩였다.

진세아는 단검을 손에 들었다.

"설마, 아직도 미래라거나?"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귀환 했다고 시스템 메시지가 분명히 말했다. 이상한 시간대로 튕겨나간 적도 없었고.

'그러고보니 회귀 직후에도 이상한 장소에 떨어졌었지.'

그건 배신자인 김민수의 짓이였나? 그것만큼은 아직도 확실치 않다.

꾸우우—.

불길한 새의 울음 소리가 숲에 울려퍼졌다.

이어서 낮게 으르렁거리는 마수들.

습하고 더운 공기 탓에 답답함이 느껴진다.

"잠시만요."

윤서현은 쭈그려 앉더니 곧바로 땅에 손을 얹었다.

샤아아—!

그녀를 중심으로 습한 공기가 걷히고 상쾌하고 시원한 공기가 우리의 주변을 가득 메웠다.

꽈앙!

우리를 향해 달려들던 흑표범 마수가 투명한 벽에 가로막혀 주르륵 미끄러져 내렸다.

방어와 공기 청정까지.

공간을 장악한다는 게 이런 건가 싶다.

"우와, 언니. 이건 혁명일지도. 그런 스킬은 언제 얻었어요?

진세아의 칭찬에 윤서현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아직 보여 줄 거 더 많아. 나 많이 강해졌거든. 지한씨도 알아둬요. 미래에서 내가 얼마나 조마조마 했는 줄 알아요?"

"기대하겠습니다."

엘리스에게 받은 특훈 이후로 여제에게 직접 가르침을 받았으니, 윤서현의 능력도 상당히 올라가 있을 거다.

잠시 눈을 감았다 뜬 윤서현이 말을 이었다. 초공간인지를 발휘한 모양.

"여기는 게이트 안이에요. 등급은 S급 상위. 구조는 보스를 잡아야······. 잠시만요."

윤서현의 미간이 좁혀졌다.

"우리 말고도 게이트에 헌터들이 있어요. 왜 이렇게 따로 있는거지? 하여튼 상황이 꽤 안 좋아보여요."

게이트를 공략 중인 길드가 있는 모양이었다.

S급 상위 게이트를 공략하려면······.

'수호, 은날, 오성 중 하나겠어.'

그들을 도와서 빠져나가면 되는 일이다. 그들이라면 우리의 사정을 이해해 줄테니까.

"일단은 그쪽으로 가죠."

"네. 알겠어요. 바로 이동할게요."

"미래에서 돌아와서 쉬나했더니 이게 무슨 일이야······."

진세아의 푸념과 함께 주변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이윽고 모습을 드러낸 장소에선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5명의 헌터들이 각자의 무기를 휘두르고 있었다.

그어어어!

그 상대는 오우거.

딱 한 마리 뿐이었지만, 오우거가 내뿜는 기세는 대단했다. 놈은 달려드는 헌터들을 전부 몸으로 밀쳐낸 뒤 망치를 내리쳤다.

전광석화 같은 움직임이었다.

쿠우웅!

땅이 송곳처럼 솟아오르며 헌터 한명을 띄워올렸다.

"커허억!"

떠오른 헌터를 향해 망치를 내리치려는 오우거.

헌터들도 동료가 당하는 걸 두고만 보진 않았다.

붉은 일본 갑주를 걸친 남자가 오우거를 향해 달려 들었다.

콰아앙!

휘둘러지려던 오우거의 망치와 남자의 검이 도중에 격돌했다. 터져나온 충격파가 정글의 수풀을 크게 흔들며 퍼져나갔다.

"크윽!"

망치를 받아낸 남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S급 헌터의 힘을 웃도는 오우거의 힘이 그를 짓누른 탓이다.

'하필이면 오우거라······.'

오우거는 일반 마수들과 달리 그 하나하나가 네임드에 필적하는 강함을 가진다.

오크가 근육 돼지 같은 몸집에서 오는 파괴력이 주무기로 쓰는데 반해,

오우거는 날렵하며 단련된 근육을 주력으로 사용한다.

심지어 오우거는 무기를 다루는 기술에 있어서도 훨씬 우위에 있다.

그야말로 전투 병기나 다름 없는 마수였다.

"그런데 저 사람들은······."

대한민국의 길드가 아니었다.

붉은 갑주를 입은 남자는 일본의 헌터 류노스케.

뒤쪽에서 화살을 쏘는 사람은 코하쿠라는 연예인 헌터다.

둘 다 일본이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강자.

여기는 일본 내부의 게이트인건가?

콰앙, 콰앙!

오우거의 무지막지한 기세로 망치를 연거푸 휘둘렀다. 류노스케가 반박자 빠르게 망치를 막아냈지만, 마지막 타격에 자세가 무너지고 말았다.

무릎이 꺾인 류노스케를 향해 오우거가 망치를 들어 올렸다.

"류노스케!"

뒤쪽에 있던 코하쿠가 소리치며 화살을 쐈지만 오우거의 망치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부우우웅!

그러나.

망치는 류노스케에게 닿지 못했다. 허공에서 벽에 가로막힌 듯 멈춰섰다.

『 동료 윤서현이 '절대 공간 격리 Lv.7'을 발휘합니다. 』

사실상 방어막이나 다름 없는 기술이었다.

망치를 든 오우거의 팔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그대로 내리찍으려해도 내리찍어지지 않는다.

공간이 분리되어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스륵.

그런 오우거의 뒤쪽에서 진세아가 나타났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타이밍에 나타난 녀석은 가볍게 오우거의 등을 발로 찼다.

투웅!

놈의 등판에는 진세아의 발자국이 새겨졌다. 그러나 오우거도 만만치 않았다.

오우거는 그대로 상반신을 돌려 망치를 휘둘렀다.

"위험해요!"

무게가 실린 강력한 일격이었으나, 진세아는 가볍게 고개를 숙여 피한 뒤 오우거를 밟고 올라섰다.

코하쿠의 외침이 무색할 정도로 완벽한 움직임이었다.

"으하핫. 훈련이 효과가 있었나봐요! 진짜 느리네."

진세아는 그대로 공중제비를 넘으며 바닥으로 내려왔다.

부우웅! 부웅! 부웅!

마구잡이로 휘둘러지는 망치를 진세아는 전부 간단한 움직임만으로 피해냈다.

그어어어!

오우거의 눈깔이 완전히 돌아있었다. 놈의 몸에서 마력이 스멀스멀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갑작스런 오우거의 돌진!

놈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진세아가 있던 장소를 덮쳤다.

콰아아앙!

그러나 진세아는 거기에 없었다.

오우거의 뒤편.

『 동료 진세아가 스킬 '절대 강탈 Lv.8'을 발휘합니다. 』

어느새 진세아의 손에는 걸맞지 않는 크기의 망치가 들려 있었다.

"윽, 무거워."

무기를 잃어버린 오우거의 얼굴이 더욱 구겨졌다.

그리고 그 순간.

촤르르륵!

윤서현의 마력 사슬이 오우거의 몸을 감쌌다.

완전히 포박되어 옴싹달싹하지 못하는 상태다.

나는 그런 놈의 앞으로 다가갔다.

마무리는 간단했다.

푸욱!

놈의 가슴에 역전의 검을 꽂아 넣었다. 마력을 두른 날카로운 검날이 놈의 가죽을 뚫고 심장을 갈랐다.

『 특성 무재조정의 효과가 발휘됩니다. 』

『 이계 규율의 칭호가 발휘됩니다. 』

『 50만배의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

막대한 양의 경험치가 내게로 쏟아진다.

나에게만 보이는 새하얀 빛이 전신을 감쌌다.

『 레벨업! Lv.101이 되었습니다. 』

『 레벨업! Lv.102가 되었습니다. 』

『 레벨업! Lv.103이 되었습니다. 』

『 레벨업! Lv.104가 되었습니다. 』

···

..

.

『 레벨업! Lv.150이 되었습니다. 』

근처의 숲 전체를 뒤덮을 정도로 환한 광휘였다.

마계에서 여제가 소환한 마수를 몇 사냥하긴 했다만, 소환된 마수는 경험치로 취급되지 않으니까.

즉, 오우거가 한계돌파 이후 처음으로 잡은 마수가 된다.

'······몸에서 느껴지는 힘이 달라졌다.'

그도 그럴게 100에서 150까지 수치로만 따져도 50%의 레벨이 올랐다.

『 한계돌파의 효과를 발휘합니다. 』

- 레벨업으로 획득하는 능력치가 2.5배 상승합니다.

거기에 더해지는 한계돌파의 효과.

지금의 내 능력치는 최소 레벨 225 이상······. 이전의 한계돌파 효과 합치면 수치는 더욱 높아진다.

물론 능력치가 헌터의 전부는 아니다.

일정 수준 이상이 되면 능력치보다 어떤 스킬을 습득하느냐가 문제다.

'그러고보니 한계돌파 퀘스트의 보상을 전부 확인하지 않았는데.'

재능 획득 물약(에픽)을 받고 미래에 가면서부터 보상 지급이 멈췄었다.

스으으······.

빛이 사그라들 때 즈음, 부상당한 헌터들이 눈에 들어왔다.

일단 상황을 정리하고 확인하는 게 나을 것 같다.

나는 쓰러져 있는 붉은 갑주의 사나이 류노스케에게 손을 내밀었다.

"가, 감사합니다."

그가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저희 길드는 아니신 것 같은데, 소속을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잠깐만요. 이 사람들 한국의 헌터들 아닌가요?"

우리의 얼굴을 살피던 코하쿠가 손뼉을 마주쳤다.

"잡지에서 봤어요. 은빛의 날개 맞죠?"

"어, 맞기는 한데······."

진세아가 나를 돌아보며 곤란하다는 듯 물었다.

"이 사람들 한국사람 아니에요? 한국말 잘하는데······."

"일본 헌터들이야. 게이트 내부에선 언어의 장벽이 사라져서 그래. 마족의 말도 이해할 수 있잖아."

"아하······."

상식적으로 마족이 한국말을 배울 리가 없다.

미래에선 세계 전체가 마계화 되어 있으니 말이 통하는 거고.

어쨌든 코하쿠는 진세아를 알아 본 모양이었다. 그래도 류노스케는 여전히 의아하단 표정이었다.

"그런데 여기에는 어떻게 계신겁니까?"

"그건······."

내가 설명하려는 찰나, 류노스케가 생각났다는 듯 선수를 쳤다.

"아! 게이트 간섭 때문이군요. 최근 들어 심각하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게이트 간섭? 그런 게······. 읍!"

"네, 곤란하게 됐습니다."

나는 진세아의 입을 막고 맞장구를 쳤다. 이만한 변명도 없을테니. 윤서현은 눈치껏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인 류노스케.

그는 쓰러진 오우거를 쳐다보더니 허탈하게 웃으며 말했다.

"한국의 헌터들은 수준이 정말 높군요. 그리 이름이 있는 분들도 아닌데, 이 정도라니. 분할 정도네요. 이 수준이면 사최헌 헌터가 얼마나 강할지 상상도 안가네요."

조금 오해가 있는 것 같다.

나도 방금 전투로 확인했지만, 미래에 다녀온 진세아와 윤서현의 실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현 시점에선 대한민국에서도 손에 꼽힐만큼의 강자이지 않을까.

"그런데 어쩌다가 길드가 나뉘게 된 건가요?"

윤서현이 궁금했던 것을 질문했다.

일본의 길드 '류구'는 현재 게이트 내에 분산되어 있었다. 그녀가 초공간인지로 알아낸 사실이었다.

류노스케는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그게 믿기 힘들겠지만······. 고블린 하나 때문입니다."

고블린?

그 말에 윤서현의 눈빛도 달라졌다.

"자세히 들을 수 있을까요?"

"태도를 들고 있는 마수였습니다. 네임드급의 힘을 가지고 있었고요. 외팔에 눈도 하나가 없더군요. 의아하게 여겼었는데······."

이런 우연이 있나.

아니,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

재능 획득 물약의 효과일지도 모른다.

윤서현도 눈치를 챈 모양이었다. 그녀의 시선이 나와 마주쳤다.

"설마, 그 녀석 아니에요?"

쌍태도 쿠흘린.

내가 맨 처음 회귀하고 나서 마주쳤던 네임드 마수.

두 자루의 태도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고블린.

그 녀석이 여기에 있는 것 같다.

164화 오버 더 월드(2)

우연찮게 회귀한 바로 그 날.

나는 게이트에 속에 떨어졌다.

'그 이유는 아직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는 한 마리의 고블린과 마주쳤다.

양 허리에 기다란 검을 두자루 차고 있는 특이한 고블린.

네임드 마수인 쌍태도 쿠훌렌이었다.

녀석의 검술은 기이했고 나는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그러던 와중 시스템에 의해 새로운 특성 '무재조정'을 획득하게 된 것이었다.

'무재조정을 얻지 못했더라면······.'

나는 지금 이 자리에 없었을 거다.

'나 뿐만이 아니다.'

지금 내 앞에 있는 헌터 윤서현.

그녀도 본래대로라면 쿠훌렌에게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그런 미래를 내가 바꾸었다.

피어나지 못하고 사라졌을 재능이, 결국 살아남아 여제로 군림하는 미래까지 발전했다.

그러나 나는 그때 쿠훌렌을 처치하지 못했다.

놈은 살아서 도망갔고 여전히 살아 있다.

헌터들이 마주한 고블린이 쿠훌렌일 가능성은······.

매우 높다.

"가면서 확인 해보죠. 어차피 게이트를 공략하지 않으면 저희도 나갈 수 없으니까요."

게이트 사이를 넘나들 수 있는 네임드 마수 특성상 이미 도망갔을 수도 있다.

"하긴, 그때에 비하면 저희도 엄청나게 강해졌으니까요. 별 거 아니겠죠?"

"그 고블린이 얼마나 세길래 그래요?"

진세아의 물음에 윤서현이 기억을 떠올렸다.

"글쎄, 나는 직접 싸우진 않았어. 지한씨가 엉망진창이 될 정도로 당했으니까······."

"헐, 오빠가 엉망진창이 될 정도였다고요? 그럼 엄청 세겠네."

"아무리 높게 쳐줘도 C급 정도?"

"엥······. 그러면 약한 거 아니에요?"

믿을 수 없단 눈으로 날 쳐다보는 진세아.

잠자코 이야기를 듣고 있던 류노스케가 끼어들었다.

"그런 느낌이 아니었습니다. 압도적인 기백이 느껴졌습니다. 애초에 여기는 S급 게이트이니, C급 수준의 마수가 활보할 수 있을리도 없고요."

그의 말이 맞다.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는 S급 게이트다.

실제로 S급 헌터들을 뿔뿔히 흩어 놓기도 했고.

'녀석도 성장했다.'

이 세계에 존재하는 재능.

그건 인간에게만 주어진 특권이 아니다. 마수도, 마족도 어떠한 이종족도 재능만 있다면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다.

"우선은 쿠훌렌은 나중에 생각하고 길드원들을 한군데로 모으죠."

"좋아요."

내 말에 윤서현이 동의했다. 그녀는 눈을 감고 게이트의 지형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곧 전투가 벌어질 것 같은 곳이 하나 있어요. 쿠훌렌으로 추정되는 개체가 있기는 한데······. 보스의 방에 있는 모양이에요. 지한씨 말대로 신경쓰지 않아도 되겠어요."

그 모습을 바라보던 류노스케와 일본의 길드원들이 옅게 감탄했다.

"위치 파악이 되시는 겁니까?"

"네, 공간계 능력자거든요."

"굉장하네요."

다시 한 번 충격을 받은 류노스케와 코하쿠.

대한민국에는 숨은 고수들이 이렇게 많다는 건가.

저희 완전히 뒤쳐지고 있는 거 아닌가요?

한국이 정보를 완전히 숨기고 있었을 줄이야.

그리 속닥이는 소리가 자그맣게 들려왔다.

일일이 반응이 좋다.

이들이 속한 길드 '류구'는 일본 내에서도 1위의 길드다.

수호 길드보다 보유하고 있는 S급의 수가 더 많으니, 결코 약하다 볼 순 없다.

우리의 시선을 눈치챈 류노스케가 고개를 숙였다.

"그러면 부탁드리겠습니다."

* * *

현재 길드 '류구'는 5팀으로 나뉘어져 있다.

바로 이동한 장소의 상황도 나빠보였다.

8명이 보호막 안에서 오우거들을 힘겹게 막아내고 있었다.

"크윽! 못 들어오게 막아! 들어오면 끝장이야!"

"마력을 쏟아부어!"

"자, 잠깐! 지원이다. 지원이 왔어!"

오우거의 수는 두 마리.

대검을 든 오우거와 가죽 장갑을 낀 오우거.

"아직 몸이 덜 풀렸는데, 잘 됐네."

팔을 붕붕 휘두른 진세아가 오우거를 향해 달려들었다.

"윤서현 헌터는 세아의 보조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저는 나머지 한 놈을 맡죠."

"오케이, 알겠어요."

일본의 헌터들도 가만히 있진 않았다.

류노스케의 지시에 따라 내 몸 위로 형형색색의 빛이 샘솟았다.

『 바람의 가호를 받습니다. (속도 25% 증가) 』

『 수호신의 축복을 받습니다. (모든 능력치 25% 증가) 』

전신에서 힘이 솟아오른다.

내 위압을 느낀 오우거 한 마리가 나를 돌아봤다.

"그어어······!"

놈은 가죽 장갑을 낀 주먹을 위로 들어 올렸다.

그 크기는 인간의 두 배가 넘는다.

오우거는 전투를 위해 태어났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로랜드 고릴라처럼 별다른 노력 없이도 훌륭한 근육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 전투센스가 더해지면.

아무리 S급 헌터라도 상대하기 까다로운 마수가 된다.

쉬익! 쉬익!

위협적으로 주먹을 휘두르는 오우거.

나는 몸을 앞으로 들이 밀어 그 주먹을 받아냈다.

뻐억! 뻐억!

강한 타격음이 연달아 울려퍼졌다.

『 유니크 스킬 '영웅의 체력 Lv.11'을 발휘합니다. 』

『 추가효과 : 추가 체력 및 방어력이 50% 증가합니다. 격이 상승합니다. 』

스킬에 더해 레전더리급 묵빛 풀 플레이트 메일이 데미지를 막아줬다.

'으윽.'

그럼에도 몸이 뻐근할 정도의 충격이 전해졌다. 딱 원하던 수준의 충격이다. 입가에 미소가 지어질 정도로.

'좋아.'

몸을 단단히 말고 녀석의 주먹을 받아내기 위해 다시 한 번 몸을 기울였다.

뻐어억!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한 오우거가 연타를 퍼붓기 시작했다.

퍼버버버벅!

아까와는 완전히 다른 상황.

당황한 류노스케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괜찮으십니까?!"

당장이라도 검을 들고 달려 올 듯한 기세다.

나는 괜찮다는 표시로 손을 들어 올렸다.

"그, 그러다 죽겠어요!"

"빨리 보호마법이라도······!"

일본 헌터들이 달려들려는 것을 진세아가 제지했다.

"놔둬요! 오빠가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을 할 때는······. 다 이유가 있으니까요."

"진짭니까?"

"아, 아마도?"

그러고선 진세아는 다시 오우거를 상대하러 달려나갔다. 벙찐 표정을 지은 채 이도저도 못하는 일본 헌터들.

뭐, 잘했다.

미래의 내가 수많은 차원을 돌아다니며 얻은 경험.

그것은 확실히 내 기억에 새겨졌다.

그 덕에 나는 무재조정을 더욱 잘 다룰 수 있게 되었다.

어떻게 더 강해질 수 있을지 이제야 감이 잡히기 시작했단 의미다.

슬슬 내 체력이 다했을 거라 생각한 오우거가 마무리 일격을 날렸다. 육중한 체중이 실린 스트레이트 펀치였다.

쿠웅!

그리고 그 순간.

촤르르륵!

『 유니크 스킬 '철갑 피부 Lv.1'을 획득합니다. 』

『 스킬 '철갑 피부 Lv.2'를 획득합니다. 』

『 스킬 '철갑 피부 Lv.3'을 획득합니다. 』

···

..

.

『 스킬 '철갑 피부 Lv.11'을 획득합니다. 』

『 추가 방어력 30%, 타격 스킬 저항력 30%, 타격 통증 무시 가능 』

『 추가효과 : 반사 데미지 5% 』

짜릿한 성장을 알리는 메시지가 쏟아져내렸다.

그으으······.

오우거의 표정이 변화한 것도 그 순간이었다. 놈이 내질렀던 주먹에 대한 반사 데미지가 들어갔으니 따끔할 거다.

나는 놈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퍼억! 퍼억!

오우거는 주먹을 휘두르곤 있었지만 점차 뒤로 밀려나고 있었다. 놈이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치고 있었다.

이제 놈의 공격은 내게 아무론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그어어어!

놈이 최후의 발악과 함께 주먹을 휘둘러왔지만, 딱 거기까지다.

그런 힘없는 솜방망이론 나를 막을 수 없다.

푸욱!

나는 검을 꺼내 녀석의 심장에 박았다.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그대로 쓰러지는 오우거.

압도적인 승리였다.

얻어낼 수 있는 것은 남김 없이 가져온다.

이것이 무재조정을 제대로 활용하는 방법이다.

애매한 재능이 뒷받침 되는 지금, 내 성장 가능성은 무한하다.

'좋군.'

진세아와 윤서현쪽의 오우거도 금방 처리 된 모양이었다.

"와······."

그 모습을 넋을 잃은 채 바라보는 일본의 헌터들.

방금 전까지 오우거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던 터라 그 충격이 더 큰 듯했다. 이들도 최전방에 서는 S급 헌터니.

"나 한국 주식 살까봐."

"이 정도로 강한데 아직 별로 안 알려졌다는 건······."

"자자, 다들 정신차려. 아직 다른 길드원들이 남아있어. 우리도 계속 보고만 있을 순 없잖아."

류노스케가 상황을 정리했다.

"그래, 우리도 보여주자고."

"빨리 갑시다!"

"일본의 실력도 보여줘야지!"

의지를 불태우는 일본의 헌터들.

덕분에 나머지 3팀과도 어렵지 않게 합류할 수 있었다.

* * *

게이트 내부의 해가 완전히 저물었다.

보스를 공략하기 전,

하루밤을 휴식하며 회복하기로 했다.

설치된 텐트의 내부는 단정했다. 일본식 인테리어가 눈에 띈다. 이들도 1위 길드인만큼 이러한 편의 시설은 규모가 다르다.

"진짜 덕분에 살았습니다. 게이트 간섭이 이런 식으로 도움이 될 줄이야······."

류구의 부길드장 류노스케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음식까지 해주신다니. 너무 도움만 받는 거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기대해도 좋아요. 오빠 요리 대박이거든요."

그런 이야기가 뒤쪽에서 들려 온다.

나는 텐트 내부의 주방에 자리 잡았다.

원래는 나약의 마족을 공략하는 게이트에서 사용할 식재료였지만, 워낙 공략이 빨랐다보니 사용할 틈이 없었다.

가져 온 걸 썩히기는 아까우니 여기서 쓸 뿐이다.

스킬의 수련도 되고.

『 스킬 '중급 요리 Lv.11'을 발휘합니다. 』

'여기서 불에 마력을 섞으면······.'

『 부가 스킬 '불 조절 Lv.1'을 획득합니다. 』

'조미료를 듬뿍 뿌린다. 여기에는 마력을 순서대로······.'

『 부가 스킬 '자극적인 맛 Lv.1'을 획득합니다. 』

전부 미래의 내가 알고 있던 스킬들이다.

이것들은 지식만으로 얻을 수 있는 스킬들이다. 이러한 부가 스킬은 내가 가진 스킬의 효과를 올려준다.

『 각종 부가 스킬의 효과로 '중급 요리'의 효과가 25%증가합니다. 』

그리하여 냄비에 듬뿍 담긴 카레가 완성되었다.

대량으로 대충 다 때려박고 만들기 좋았다.

나는 텐트 내부의 식당으로 음식을 가져갔다.

"와아!"

일본 헌터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와, 직접한 카레를 먹을 수 있다니."

"이거 감사해서 어쩌죠."

일반적으로 공략시에는 레토르트 식품을 먹게 된다. 그것에 비하면 직접 만든 요리는 환영받는 게 당연하다.

"어서 드셔보시죠."

카레를 한 숟가락 떠먹은 일본의 헌터 코하쿠의 눈이 동그래졌다.

"이, 이렇게 맛있는 음식은 처음이에요······. 이거 카레 맞아요?"

그녀의 반응이 과한 게 아니었다. 대부분의 헌터들도 감탄하며 카레를 퍼먹었다. 진세아와 윤서현도 예외는 아니었다.

"오빠 음식 솜씨는 기가 막히다니까. 우리집 요리사가 해준 것보다 더 맛있어······."

"아니, 뭐 이상한 거 넣은 거 아닙니까? 이게 카레일리가······."

다들 고개를 절레 절레 지으면서도 숟가락을 멈추지 못한다.

현시점 중급 요리 스킬을 보유하고 있는 건 내가 유일하다.

'······.'

나도 먹어봤지만 내가 만들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맛있다.

카레의 달콤함과 특유의 향이 적절하게 어우러져 입안에서 녹아내린다. 감칠맛과 담백함이 어디에도 비견할 수 없이 훌륭하다.

마력을 사용한 음식이라.

『 모든 능력치가 10% 증가합니다. 』

거기에 더해 능력치를 올려주는 부가 효과까지.

"이지한 헌터님. 돌아가면 꼭 사례하겠습니다. 아니, 저희 길드에 한 번 오시죠. 정식으로 초대하겠습니다. 그때는 일본에서 최고급 풀코스로 대접하겠습니다."

류노스케는 그렇게 말할 정도로 만족스러웠던 모양이다.

모든 헌터들이 만족한 식사가 끝나고.

나는 배정받은 숙소로 돌아왔다.

침대와 탁상이 놓인 심플한 방이다.

'그러면······.'

여지껏 확인 못했던 무재조정의 보상을 확인할 차례였다.

『 확인하지 않은 보상이 남아 있습니다. 』

『 보상을 확인하시겠습니까? 』

A등급 한계 돌파 퀘스트의 보상은 물음표로 되어 있었기에 기대가 되는 부분이다.

거기에 더해 150레벨을 찍었으니, 최대레벨 달성 보상도 남아 있었다.

'확인할 게 많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S등급 한계돌파 퀘스트다.

마계왕의 계획을 저지하기 위해서 내딛을 첫발이 될테니.

나는 침대에 누워 확인 버튼을 눌렀다. 이내 보상의 목록이 떠올랐다.

『 보상 일람 』

- 에픽급 재능 획득의 물약을 획득합니다.

- 이제 레벨업 능력치를 2.5배로 획득합니다.

이 두 가지는 이미 확인한 보상이었다.

그 아래로 보이는 두 가지 새로운 보상.

- 모든 스킬의 최대 레벨이 1 증가합니다.

- 무재조정:강화의 돌을 습득합니다.

'뭐······?'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굉장한 보상이었다.

이제부터 모든 스킬이 12레벨에 도달할 수 있다.

14레벨이 최대였던 일자베기의 최대 레벨이 15레벨이 되는 거다.

물론 최대치가 올라가는 거랑 그 레벨이 되는 거랑은 다른 이야기다.

'12레벨까지 경험치를 올리는 건 쉽지 않겠지.'

그래도 이제는 도전해 볼만한 수준이다.

단번에 11레벨을 달성할 정도니까.

마지막 보상은 강화의 돌이다.

어느샌가 인벤토리에 들어 있었다.

평범한 돌멩이지만, 정보창이 떠오른다.

『 강화의 돌 (유일) 』

- 무재조정으로 습득한 장신구를 강화합니다.

- 강화 확률에 따라 능력이 변화합니다.

- 기적(1%), 대성공(16%), 성공(33%), 실패(33%), 대실패(16%), 소멸(1%)

확률에 따라 성공 정도가 달라진다라.

스킬 향상의 반지에 사용하면 가장 좋을 것 같은데.

'기적이 1%라······.'

불가능한 수치는 아니지만 기회는 딱 한 번이다.

실패부터 소멸까지가 마음에 걸린다.

만약 소멸이 걸린다면 스킬 향상 반지가 사라져 버린다.

'잠깐.'

천천히 수치를 읽어내려가던 내 미간이 좁혀졌다.

나는 침대에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엘리스가 있잖아."

그녀의 시간 조작으로 몇 번이고 다시 할 수 있다면.

이건 확정이나 다름 없지 않나?

165화 오버 더 월드(3)

나는 강화의 돌을 인벤토리에 고히 모셔두었다.

'강화 대상은 스킬 향상의 반지다.'

장신구에만 사용이 가능하다고 했으니까.

스킬 향상 반지의 효과는 다음과 같다.

『 스킬 향상의 반지(레전더리) 』

- 선택 스킬의 효과 50% 증가, 레벨 1 증가 (11레벨 이하의 스킬에만 적용 가능)

- 모든 스킬의 경험치 1.25배 습득

동급의 레전더리 아이템과 비교해도 압도적인 성능이다.

에픽과 비교해도 크게 꿀리지 않을 정도.

'여기에 기적 수준의 강화가 붙는다면······.'

차원이 다른 아이템이 탄생할 것은 자명하다.

팅.

나는 홀로그램창을 다시 조작했다.

'아직도 보상이 남았다.'

무재조정의 보상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가 방금까지 봤던 퀘스트 클리어 보상이고,

다른 하나는 최대 레벨 달성 보상이다.

『 S등급의 최대 레벨 150 을 달성하셨습니다. 』

『 보상을 지급합니다. 』

나는 시스템창의 확인 버튼을 눌렀다.

샤아아—!

내 주위로 황금색 빛이 솟아났다.

파직, 파지직!

빛 속에서 붉은 스파크가 튀어나왔다. 내 주위를 맴돌던 황금빛은 글자가 되어 주변을 맴돌기 시작했다.

『 이계 규율이 보상에 간섭합니다. 』

글자는 이내 한군데에 뭉쳐 황금빛의 덩어리가 되더니 내 앞으로 천천히 떨어져 내렸다.

'이건······.'

침대 위에 내려 앉은 보상의 정체는.

『 이계 규율 : 2★ 부여 두루마리 』

검은색의 두루마리였다. 황금색의 띠가 두루마리를 감싸고 있어 고급스런 느낌이다.

외양보다도 그 효과가 중요하다.

『 아이템 효과 』

- 1★ 아이템을 2★으로 강화합니다.

- 강화 성공 확률은 30%입니다.

이전에 획득했던 부여권과 다르게 이것 역시 확률이 붙어 있다.

현재 1★ 아이템인 역전의 검 오르티시아에게 사용해야겠지.

'외차원의 시스템이라고 했던가······.'

불사의 마족은 그리 말했었다.

이계 규율은 외차원에서 온 것이라고.

그것을 증명하듯 별 하나가 늘어날 때마다 그 능력치가 이전과는 비교도 안되게 성장한다. 1성만 되어도 에픽이나 다름 없는 효과가 붙었으니.

'2성 등급의 효과 또한 차원이 다르다.'

미래의 정보 덕분에 확신할 수 있다.

말도 안되는 무기가 탄생할 거다.

다만, 30%라는 확률은 섣불리 도전하기 어려운 수치다. 실패한다면 두루마리를 그대로 날리게 되는 셈이니.

'이것도 엘리스에게 맡기게 되겠군.'

미래에서도 그렇고 여러모로 도움을 받게 된다.

비싼 한정식이라도 사주던가 해야지.

결국 엘리스의 할 일이 하나 더 늘었다.

그리고 대망의 마지막 메시지창.

『 < S등급 > 한계돌파 퀘스트 』

S급을 돌파해 SS급으로 향하기 위한.

그리고 마족으로부터 세계를 구하기 위한 퀘스트를 확인할 차례였다.

'이때까지는 내 목표에 따라 퀘스트도 바뀌었다.'

이번이라고 크게 다를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면 내가 다음 목표로 삼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미래의 나보다 더 빨리 마족들을 몰아내고, 마계왕에 대비해야 한다. 가능한 세계가 온전한 채로 있을 수 있도록······.'

미래에 군단장이 될 최상위 마족 처치.

세계에 존재하는 마족들의 시설 파괴 등등······.

할 일은 많다.

나는 천천히 퀘스트 창을 확인했다.

그런 내 앞으로 떠오른 메시지는 다음과 같았다.

『 사도 처치 ( 0 / 4 ) 』

미간이 좁혀졌다.

몇 번이고 다시 읽어도 메시지는 바뀌지 않았다.

'······뭐야, 사도라고?'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무재조정이 내 의도와 다른 퀘스트를 내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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